2018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 은모든 작가가 첫 장편 『애주가의 결심』과 첫 단편 『꿈은, 미니멀리즘』 이후, 같은 해 세 번째 작품집 『안락』을 선보인다. 병상에서 생을 연명하는 아흔일곱의 이모할머니와 자발적 수명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려는 여든여덟의 할머니, 할머니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와 이를 지켜보는 딸 지혜까지, 이 소설은 죽음 앞에 선 다양한 세대 여성들의 감정을 한자리에 불러내온다. 10년 뒤의 근미래에 대한민국의 삶은 어떠할까. 여전히 소수자 혐오 집회와 세대 간 갈등으로 사회뿐 아니라 가정도 분화하고 다투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와중에 국회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할머니의 폭탄선언으로 ‘안락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지혜네 가족에게 침투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할아버지를 보낸 할머니는 인사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일의 안타까움을 뼈아프게 느끼고는 스스로 신변 정리를 시작한다. 그사이 안락사 법안 통과를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되고 그 결과는 할머니의 손을 들어준다. 알고 하는 이별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마는 할머니는 조용히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담근 자두주로 온 가족과 건배도 나눈 뒤에 “모두 수고 많았다. 고맙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말로 고통스러운 삶을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떠나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죽음도 삶의 중요한 한 순간인 만큼 이제는 삶의 한가운데서도 죽음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 『안락』이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는 소설을 읽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어떻게 다른지, 소설이 어떻게 삶을 자극하는지 고민합니다. 인간성을 탐구하고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라면,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소설을 찾아 더 많은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가볍게 지니지만 무겁게 나누며 오래 기억될 ‘작은책’ 시리즈에 담긴 소설은 e-북과 함께 오디오북으로도 제공될 예정입니다.
저자소개
저자 : 은모든 2018년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집으로 『애주가의 결심』『꿈은, 미니멀리즘』이 있다.
목차
안락
작가 노트 그리하여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책 속으로
나는 한참 동안 잠든 이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깊이 잠든 그의 두 눈동자는 눈꺼풀 안쪽에서 천천히 왕복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오려던 차에 이삭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
나는 한참 동안 잠든 이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깊이 잠든 그의 두 눈동자는 눈꺼풀 안쪽에서 천천히 왕복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오려던 차에 이삭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졸음이 가득 묻은 얼굴로 하품을 하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p. 129)
할머니는 우리가 평소 옷차림대로 편히, 가급적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와주길 바랐다. 나는 아빠가 꺼내놓은 여행용 트렁크 안에 검은색 원피스와 카디건을 챙겨 넣은 뒤 평소처럼 살짝 물이 빠진 청바지 위에 살구색 스웨터를 입었다. (p. 130)
안방에서 나오자 노란 장미 앞에 앉아 있는 지용이의 모습이 보였다.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용이는 내게 장미가 꽂힌 병을 내밀며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싱싱한 장미에서는 사과처럼 상큼한 향기가 났다. “누나, 장미향이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였던가?” 지용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긴장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향도, 빛깔도, 꽃잎과 가시의 감촉도 마냥 처음 느끼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pp. 142~143)
“기도해줄게. 너랑 너희 가족을 위해서. 할머님을 위해서.” “너 지금도 기도를 하는구나. 몰랐어.” “가끔은 하지. 도저히 내 손이 닿지 않는 일이 있으면, 가끔은.” p. 144
이 술은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입술을 넘어 혀끝을 적시듯 조금씩 맛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잔을 살짝 기울여 입안에 소량의 술을 흘려 넣자 산뜻한 산미와 달콤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목 넘김은 와인에 비하면 다소 묵직한 편이었으나 더 이상 소주의 독한 뒷맛이 입안에 남지 않았다. 숙성하면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술잔을 들었다. p. 147
“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_ p. 139
죽음이 얼마나 개별적이고 사적인가를 굳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반려동물의 안락사 문제에 동의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결정 후에 집에 돌아갔을 때, 눈뜨고 바라보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선뜻 병원에 데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목격하고 어떤 결심을 하였다고 해서, 내 가족에게 그런 결정을 하게 할 수 있을까. 가족의 죽음은 이후에도 자신을 삶을 흔들어놓는 너무나 구체적인 현실이 아닌가. 소설 『안락』은 죽음의 자기 결정권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설정 안에서 사건을 극대화시킨다. 같은 가족이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구성원들은 그 관계(딸, 손녀, 아들, 사위)에 따라 감정선이 다양하게 얽혀 있다. 극중 화자 지혜는 할머니의 죽음을 맞는 일도 힘겹지만, 할머니(엄마)를 잃는 엄마(딸)를 지켜보는 일 또한 고통스럽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사실과 또 개인의 죽음이라는 사적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달큼 시큼 짜릿한 자두주 같은 이승의 맛만큼이나 구체적으로 죽음의 형상을 그려내는 소설 『안락』을 통해 우리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금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어느 분기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이 소설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_ p. 156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또 ‘죽어가는 삶’이라는 동일한 조건 안에 있다. 그래서 잘 살아간다는 말 안에는 잘 죽어가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8년 2월을 기준으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라 하여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삶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통증이 두렵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나줘주는 게 아닐까 염려하는 일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와 삶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의 목숨을 끊는 것은 엄연한 ‘살인’이라는 목소리가 충돌”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 합법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말한다. “잘 죽고 싶다” “편안하게 죽으면 좋겠다”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며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확산될 수 있을까. ‘적극적 안락사’를 논해볼 수 있을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의 충만함은 삶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안타까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아름다운 마무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본다.
이별은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까닭에 그 슬픔과 아픔이 깊이를 더하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너무나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을 더욱 슬프고 아프게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절대 비극을 향해 나이 들어간다. 죽음이라는 절대 비극은 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을 그리 절실히 찾는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행복했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비극이 희극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비극이라면 죽음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은모든 작가의 장편소설 <안락>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반응들을 만날 수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에게서 나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준비한다고 해서 슬픔이 줄고 아픔이 덜하지는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보고 싶은 이들과 눈도 한번 마주치지 못한 체 이별하는 것보다는 좋을 것 같다. 가족들 한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일 것 같다. 그런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이들과의 마지막 이별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젊은 지혜이지만 이야기는 지혜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할머니가 살아온 과거를 들려주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오늘을 보여준다. 그리고 할머니가 선택한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안락사(euthanasia) 는 그리스 단어인 eu(good, well) 와 thanatos(death)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안락사라는 표현보다는 ‘웰 다잉’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할머니의 ‘웰 다잉’ 선택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보다는 웰 다잉을 선택한 할머니의 심리와 할머니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리 묘사가 주요 흐름을 이루고 있다. 점점 멀어지는 건강함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웰 다잉’이 보편화될듯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웰 빙’ 만큼이나 ‘웰 다잉’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 듦과 건강은 반비례일 수밖에 없으니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께서 ‘웰 다잉’을 선택하신다면 어떨지는 책을 덮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럽기만 하다.
할머니가 자신의 ‘수명 계획’을 밝힌 이후에, 엄마는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 정말 땅이 꺼질 수 있다면 이십일 층에 위치한 우리 집이 꺼지고 꺼져, 지면 아래로 가라앉을 만큼의 깊은 한숨이었다. 나는 이따금 적당히 하라고 짜증을 내고, 대체로는 엄마를 달래면서 그 주를 보냈다. (p.25)
화면 속 아나운서는 십 년 전인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되었던 일명 ‘웰다잉법’과 오늘 통과된 법안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웰다잉법은 사망이 임박한 상태의 환자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 호흡기 착용 같은 인위적인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주요 골자였다고 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임종을 목전에 둔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업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였다고 아나운서는 덧붙였다. 그렇게 임종 과정에 돌입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제한이 완화될 것이라는 의학 전문 기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p.46)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지금까지 한순간도 할머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온전히 다 알지 못한 채 말이 앞섰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 순간 처음으로 했다. 할머니는 말수가 없어진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나는 당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손이었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쳤다. 이제 정말 숟가락 들 힘도 안 남았어.” (p.75)
엄마는 할머니가 임종 일정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더욱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매일의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부모고 자식이고 소용없고 어차피 인간은 다 혼자야.” 하면서 몇 시간이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빠가 애써 장난스럽게 “그래도 남편은 좀 다르지 여보. 부부는 촌수도 무촌이잖아.” 하고 말을 걸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청소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에 가보았더니 타일 바닥에 주저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제 거품이 묻은 엄마의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뒤에 나는 말했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니 나와 할머니 집에 가자고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 감정만 우선일까, 나는 좀 신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 한구석에는 자기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울고 화풀이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엄마를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p.93)
2018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 은모든 작가의 세 번째 작품 <안락>. 책은 벌써 구 년 가까이 요양원에서 생을 연명하고 있는 아흔일곱의 이모할머니와 자발적으로 수명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려는 여든여덟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와 이를 지켜보는 딸 지혜의 이야기로 죽음을 앞에 두고 떠나려는 사람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선들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외가의 삼대가 모두 모인 자리. 할머니의 충격적인 선언이 이어진다. 앞으로 오년 안에 나머지를 싹 정리하고 개운하게 갈 예정이니 모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말이다. 이것은 할머니 본인이 오 년 안에 자의로 당신의 생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어디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본인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겠다니 미리 언질을 받은 언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쉽게 이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정작 할머니 본인은 이런 엄청난 말을 하고서도 너무나 태연하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할머니의 폭탄선언으로 집이 발칵 뒤집힌 지혜네 가족에게 이 일은 점점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사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법안이 국민 투표를 거쳐 제정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안락사 법안 통과를 위한 국민 투표의 진행 결과 할머니는 쾌재를 불렀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두고 어느 곳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인가.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안락사 문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는 분명 달라지겠지. 그럼 이제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당연히 죽음을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결정하는데 있어서 곁에 서 있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직까지 더 크다. 솔직히 할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어느 누가 자식들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을까. 본인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평온한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이 할머니 정도의 나이가 된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건강하게 생존해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인 감정이 더해져 마음이 점점 더 격해진다. 내게 책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일이 덮쳐온다면 혼자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내 곁에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일로 치부될 것임을 알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당연히 너무나 슬펐고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이금래 할머니는 분명 행복하게 두 눈을 감으셨겠지. 마지막에 이르자 쉼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작가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신 걸까. 죽음, 언제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임에도 딱히 당장에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 여기며 소홀히 대했던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죽음이라고 해서 모두가 슬픈 것은 아니었다. 선택하기에 따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은 모두에게 정말이지 큰 고통이었다. 안락사가 과연 개인에게 안락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답을 내지 못하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미 비포 유』를 다시 봤다. 존엄사를 다루는 두 작품은 죽음을 결심한 당사자와 가족의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미 비포 유』를 다시 봤다. 존엄사를 다루는 두 작품은 죽음을 결심한 당사자와 가족의 심경을 대변한다. 어느 한 쪽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두 입장 모두 존중할 필요가 있고, '생명'이란 테두리 내에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안락은 10년 후, 한국에서 존엄사가 합법화된 상황이라는 가정하에 진행된다. 지혜의 할머니는 5년 후 죽겠다는 선언을 가족들에게 하신 후, 천천히 자신의 삶을 정리해 나간다. 하지만 가족들 내에서도 찬반의 양상은 뚜렷하고 특히, 지혜의 어머니는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정정한 엄마가 몇 년 후에 죽겠다니 딸의 입장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인 거다.
할머니라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마감하는 결정이 쉬운 결정이었을까? 아니다.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은 노인이 되었고 몸은 여기저기서 삐거덕 소리를 낸다. 이제 자신의 몸은 병원을 다니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밖에 없기에 허탈함과 지난날의 무상함이 겹쳐 오셨을 테다. 자신을 간호하며 병수발을 들 자식들의 미래가 뻔히 내다보이기에, 그 꼴은 절대로 보기 싫어서 하루라도 건강할 때,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 인생계획을 세운다.
할머니의 죽음이 어떤 느낌일지 처음으로 실감해본 순간은 지혜가 수면내시경을 받는 장면이었다. 지혜는 할머니의 입장을 존중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수면내시경을 했던 단 몇 분간의 기억이 삭제되어 기억나지 않자, 할머니의 죽음도 이런 것일까 실감한다. 주삿바늘을 뽑으며 난동 부렸던 순간조차도 전혀 머릿속에 없는데,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일까 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눈물을 보인다.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 여전히 저토록 깍듯한 어투로 얘기해주는지, 간호사의 변함없는 친절에 나는 감탄했다. 또한 그가 말한 일들이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 몸속으로, 내장 기관 안쪽 깊숙한 곳까지 카메라를 단 호스가 들어간 일도, 그게 겁난다고 혈관에 꽂은 주삿바늘을 뽑아내며 사방에 핏방울이 튀도록 한 만행까지도 깨끗하게 기억이 없다니.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까. 할머니가 맞이하는 죽음이란 이렇게 고통도 기억도 일순간에 지워지는 과정인 것일까. 그럼 그다음은 어떤 게 기다리고 있을까. 몽롱한 기분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찔끔 눈물이 났다. (p. 98)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을 알면, 쉽게 웃을 수 없다. 『미 비포 유』에서 윌은 사지가 마비되어 어느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신은 진짜 내가 아니라서 불행하기에, 불행한 자신을 보는 사람도 불행해질 걸 알기 때문에 선택을 한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저절로 최악을 생각한다. 숨만 쉰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하나라도 스스로 할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삶을 일궈나갈 수 있을 때, 그게 사는 게 되어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한다. 할머니가 이와 같은 선택을 했던 것은 독한 약들과 싸우다 지쳐 간신히 숨만 붙어 있기보단, 마지막 가는 길은 내가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삶을 돌아보고 정진하고 즐기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회 없이 살다 가기 위해 노력하셨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미소를 지으시지 않았을까.
나의 할머니 이금래 씨. 할머니는 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유년시절 내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분주했다. 열아홉에 가정을 이룬 뒤에는 세 자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느라,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는 시가의 식당에서 독립해 차린 밥집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또한 여든을 넘기고 가게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곳곳에 탈이 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p. 148~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