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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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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210*19mm
ISBN-10 : 1189982196
ISBN-13 : 9791189982195
무해의 방 중고
저자 진유라 | 출판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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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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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탈북한 한 여성, 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탈북 사실을 숨긴 채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던 중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은 그녀는 홀로 남게 될 딸에게 남겨줄 기록을 시작하고, 자신 안에 기록이 되지 못한 기억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경유하는 그 험난한 고난 속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무해의 고백이 치매의 몸을 입고 소설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저자소개

저자 : 진유라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7
초로기 치매…14
농마국수…29
공산주의식 사랑…48
굶주림에 대하여…71
인조 고기밥…95
국경…110
엄마만의 방…125
검은 사람…143
카스텔라…166
고백기도…193

작가의 말…210
참고자료…214

책 속으로

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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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로 치매였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보니, 그제야 인생이 막 작동되었다.
―본문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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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경계를 넘어온 당신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 《무해의 방》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사위원 윤대녕·윤성희·구병...

[출판사서평 더 보기]

경계를 넘어온 당신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 《무해의 방》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사위원 윤대녕·윤성희·구병모·송종원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무해의 방》은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탈북한 한 여성, 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탈북 사실을 숨긴 채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던 중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은 그녀는 홀로 남게 될 딸에게 남겨줄 기록을 시작하고, 자신 안에 기록이 되지 못한 기억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경유하는 그 험난한 고난 속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무해의 고백이 치매의 몸을 입고 소설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변화하는 남북한 관계를 예민하게 감각하여 축조해낸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질문한다. 같은 맥락에서 《무해의 방》이 가장 치열하게 파고드는 탈북자 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심사평에서처럼, 《무해의 방》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미리 추체험해보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탈북이라는 생존의 위협을 견뎌온 무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 존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무해의 방》은 치매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소중해지는 망각의 순간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면서, 소설은 치매가 만들어내는 비일상의 공간을 재현과 고백의 공간으로 바꾸어낸다. 무해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데, 특히 기억의 폭풍 속에 주저앉은 무해를 붙드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해의 고백기도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구성된 생생한 소설적 상황은 무해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하는 한편 고통을 넘어서려는 문학적 시도를 구성한다. 이 시도를 통해 《무해의 방》은 미래에서부터 이쪽의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너머’의 메시지를 전한다.


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기억’들이 있었다.
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 모래와 함께 살던 무해는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는다. 그녀는 지금까지 탈북 사실을 숨겨왔지만 초로기 치매의 진단 후 생존 기간이 5~6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홀로 남을 딸을 위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무해는 북한에서 자주 먹던 감자 전분으로 만든 담박한 농마국수를 만들어놓고 딸 모래에게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모래는 순식간에 농마국수 한 그릇을 비워냈다.
“엄마는 북한 음식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아? 북한 사람처럼?”
무해는 모래의 질문을 잠시 밀쳐놓았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그녀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농마국수는 엄마가 북조선에서 즐겨 먹던 국수였다고 그녀는 모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 본문 47쪽

치매가 진행될수록 무해의 행동은 모래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이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기억, 기록되지 못한 무해의 역사가 치매가 만드는 비일상의 시공간에서 현실로 되살아난다.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기근을 겪은 북한에서의 삶, 그 속에서 존엄을 잃고 비참해진 사람들의 모습, 탈북을 결심하고 홀로 내달렸던 숲과 압록강의 검은 물, 중국 브로커의 집에서 팔리기만을 기다리며 지낸 시간, 장애가 있는 시골의 한족에게 팔려간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고백해야 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고소한 콩 볶은 냄새와 카스텔라처럼 달콤한 냄새가 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 체취가 나는 사람도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체취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콩 농사를 짓는 농부의 딸이었으므로 콩 냄새가 났고, 엄마가 만들어준 유일한 간식거리인 카스텔라를 자주 먹었기 때문에 달콤한 카스텔라 냄새가 났다. 남편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결코 하지 못할 이야기를 무해는 오늘 하고 싶었다.
― 본문 177쪽

그 기억들은 무해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을 잃어가는 무해에게는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하다. 노트에 북한에서 먹었던 음식의 레시피를 기록하거나 모래에게 북한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무해는 그녀가 겪은 삶의 충만한 순간도 함께 떠올린다. 아버지가 밀수해왔던 카스텔라의 맛, 남한에 도착해서 처음 들었던 정중한 인사, 남편인 은석과 벌였던 탁구 시합, 절친한 친구 영주와 놀러 다닌 곳, 무해를 낳고 씻기고 먹여 키운 일 등. 그녀는 그녀를 따듯하게 감싸고 있는 사소한 일들과 엉성하지만 사랑스러운 공동체를 되살핀다. 그리고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지탱하는 것은 딸 무해와 그녀의 오랜 친구 영주의 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그들의 따듯한 손에 붙들린 채 그녀는 절절한 고백기도를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절실해지는 순간,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묻다

《무해의 방》은 ‘호적이 없다’는 의미의 ‘후이구가’, 혹은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무해의 삶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엄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대기근과 함께 정부의 구조적 도움조차 멈춰버린 북한의 비인간적인 삶과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중국에서의 야만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재난을 피해 국가를 탈출해야만 했던 개인에게 새겨진 폭력의 역사를 조명한다. 그러나 소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폭력에 노출된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 어떻게 타인을 신뢰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한 반추의 자리가 ‘치매’가 만들어놓은 비일상의 자리라는 점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사회와의 격리나 단절로 여겨지는 치매를 통해서 무해의 기억은 비로소 타인과 공유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무해의 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 외부를 조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 노인인 무해가 겪는 일들은 한국 사회 내부의 노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더 나아가 ‘굶주림’의 경험이 있는 무해와 그렇지 못한 남편 은석의 만남은 한국 사회 내부를 가로지르는 다종다양한 계층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소설은 한국 사회의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면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으며, 또한 겪게 될 이야기를 문학의 힘으로 경험함으로써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심사평

《무해의 방》은 고통을 겪는 인간이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그와 전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동의 세계를 이룩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물론 이 물음과 답은 직설적이지 않고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것들인데, 이 이야기의 성분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심사위원 윤대녕·윤성희·구병모·송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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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무해의 방/진유라, 장편소설"탈북자 무해는 남편이 죽고 난후 무표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급히 남편의 유품을 정...

    "무해의 방/진유라, 장편소설"
    탈북자 무해는 남편이 죽고 난후 무표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급히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고 같이 살던 아파트도 정리하고 작은 소형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깔끔하던 무해는 습관과 성향이 바뀐다. 쓸고 닦던 집안은 청소도 하지 않고 양말 한 켤레로 한달을 신는 일도 생겼다. 무해의 딸 모래는 이러한 증상들이 치매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길을 잃었다는 전화를 받고서 엄마 무해가 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엄마 무해의 병명이 초로기 침해라는 판정을 받고 길어봤자 5-6년의 시간을 남겨둔것을 알게 되었다.
    무해는 자신이 침해라는 사실을 알고 기록을 하기로 한다.
    무해는 딸 모래에게 북한의 넝마국수를 해주고 북한에는 감자요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딸 무해는 엄마가 어떻게 북한의 요리를 잘하느냐고 묻는다. 엄마 무해는 병원의 진단을 받은후 병원 의사의 말대로 약을 잘 챙겨 먹지만 음식을 바닥에 떨어 뜨리고 참외를 여러번 씻고 약속을 잃어버리며 소소한 일상들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해는 초기 한국 정착시절 구청에 있는 도서관에서 도서 배가하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녀는 한국 생활중 언어는 한국 말을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국 말에는 외래어가 많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을 어려워했고 말을 섞기가 힘들었다. 무해는 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남편과 만났고. 결혼을 했다.
    이 책은 북한에서 탈출한 무해가 북한에서 탈출해 한국까지 온 이야기가 들어 있다. 굶주림에 지쳐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야기. 그리고 탈출해 한국까지 온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통일이 된다해도 결코 쉽지 않을 언어와 체제 그리고 굶즈림에 허던여야 했던 그들의 모습, 우리가 티브이를 통해서 듣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숨막히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고, 이 이야기에서 왜 그녀가 그리 빨리 치매에 걸릴수 밖에 없었는가를 느낄수가 있었다.
    이 책에서 북한과 남한의 사람들이 섞일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건 체제가 아닌 굶주려본자와 굶주려 보지 않은 자에게 공통점이 없고 서로가 이해가 되지도 않는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반된 것들이 었고, 가끔은 그녀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피식 웃기도 했다.
    우리 남한에 넘어 왔으나 마음은 언제나 이방인이었던 그녀의 삶이 얼마나 외러웠을까, 우뚝선 혼자 홀로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너무나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 무해의 방 | ma**wolf | 2019.06.2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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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잃는다는 건 시간 감각을 잃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했던 그 모든 사건을 잃는다. 잊는 게 아니라 잃는다. 마치 검은 구멍 속으로 시간이 쑥 빠져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처럼, 잃는다. 점점 시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다가, 앞뒤가 없는 시간속을 떠돌게 되고, 그러다 영원히 시간 속의 미아가 되는 것이 치매 환자들이었다.

     

     

     

    탈북자 무해에겐 4년 전 위암으로 죽은 남편과 하나뿐인 딸 모래.

    그리고 친구 영주가 있다.

    탈북자란 신분을 숨기고 살았던 무해에게 어느 날 병이 찾아온다.

    초로기 치매라는 이름으로.

     

     

     

     

    무해의 병은 매일 조금씩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요했고, 은밀했으며, 야만스러웠다.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다.


    치매라는 병도

    탈북자라는 신분도

    아무나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strong>늙음과 죽음을 배운 자만이 인생의 절정을 배울 수 있다.</strong>

     

     

    점점 기억을 읽어갈 무해는 모래를 위해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에 대한 기록.


    혜산.

    무해의 고향 압록강 어귀에서 바라보던 창바이는 빛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냄새는 굶주린 혜산 사람들을 강으로 이끌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 속에 무해도 있었다.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혜산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다.

    가보지 못한 곳.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묘사가 소름 돋게 한다.


    무사히 강을 건넜지만 무해에게 무해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혜산 보다 더 깡촌으로 팔려간 무해는 다리 없는 남편 대신 고달픈 농사일을 떠맡아야 했다.

    아들이 아닌 딸을 낳은 무해는 그 아이의 앞날에 자신이 설자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탈출한다.

    카스테라의 달콤한 내음을 담고 있는 아이를 남겨두고.

     


     

    늙기도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녀는 누구나 쉽고 당연하게 노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노인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사히 행운이 지속되어야만 노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치매는 무해를 급격히 늙게 만들었다.

    기억의 어귀에서 멀건 눈으로 헤메이는 무해를 보며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모래는 두려워진다.


    무해의 방.

    이곳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

    환영처럼.


    무해를 통해 나는 그 길을 미리 가 보았다.

    해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나이 들어간다는 자체를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해처럼 갑자기. 한순간에.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2019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이다.


    가까지만 절대 갈 수 없는 나라의 사람이었던 그녀 무해.

    언제든 코밑으로 은밀하게 스며들어 기억을 갉아먹을 수 있는 기생충 같은 치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었는데 마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써 내려간 글들이 사무치게 절절하다.

    무심한듯한 글 속에 담긴 무심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읽고 있을 때 보다 읽고 나서 더욱 마음에 스며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해는 이제 살아온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 계획을 세워야 했다. 상상하지 않았던 삶. 기정사실화된 삶.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정해져버렸다.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사라졌다.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삶을 살아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해는 잊어 가겠지만

    모래는 고스란히 기억하게 될 시간들.

     


    병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요란한 파편을 남겨두고 사라진다.

    삶을 살면서 가장 잘 준비해야 하는 일이 죽음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노인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거라는 걸 여지껏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무해와 함께 미리 체험한 것들을 깊이 되새기며 살아야겠다.

    결국 삶에 대해 겸손한 마음만이 행복한 죽음을 가져올 테니 말이다.

     


    여운이 남아서 자꾸 뒤돌아 보는 이별처럼

    나는

    무해의 방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 무해의 방 | he**ajh | 2019.06.2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북한, 참 멀고도 가까운 나라, 같은 민족이라지만 이질감이...

     

    북한, 참 멀고도 가까운 나라, 같은 민족이라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다른 곳의 사람들, 생활과 문화, 정치와 사회, 이념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쉽게 함께하지 못하는 관계. 현재 남북한의 관계가 화합을 다져나가지만, 서로 견제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속내는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남한내 탈북자 또한 다르지 않다. 목숨 걸고 넘어온 핏줄의 땅이라지만, 남한사람과 북한사람 이렇게 갈리는 것은 당연지사고, 때론, 적대적인 시선과 불공평한 잣대, 열등하다는 무시를 경험하기도 한다. 2019년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분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은 그런 탈북자의 삶을 치매를 통해 되짚어 낸다. 남북한 관계를 예민하게 포착하면서도, 한 여성이 탈북이라는 생존의 위협을 견뎌온 수많은 고비의 순간을 담담하나 처절하게 그려낸다.

     

     

    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로 치매였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보니, 그제야 인생이 막 작동되었다

     

     

    - 경계를 넘어온 당신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

     

    나이 쉰 셋, 중년에 접어든 나이다. 젊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병에 걸린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무해는 그 병에 걸린다. ‘초로기 치매’. 환갑도 아닌 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지만, 무해는 자신의 머리 속, 그 수많은 을 들여다보며,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리고 꺼내놓기 시작한다. 딸 모래에게 드디어 말할 때가 온 것이다.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무해는 북한에서 자주 먹던 감자 전분으로 만든 담박한 농마국수 한 그릇을 놓고 고백을 시작한다. ‘엄마는 북한 음식에 대해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아?’딸의 물음에 자신이 북한에서 즐겨먹던 국수였다고 나지막히 말한다.

     

    과거 무해는 북조선 혜산에 살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무시되는 곳. 기근으로 인한 배고픔은 인간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었다. 극심한 굶주림으로 가족을 잃고, ‘좀 더 잘 살기 위해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 오로지 살기 위해탈북을 결심한다. 북한의 삼엄한 감시속에 시커먼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다. 탈북을 도운 브로커는 중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준다고 했지만, 인신매매범이였고, 무해는 장애를 가진 한족에게 팔려간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그 뒷이야기를, 마음에 묻은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기 시작하는데...


     

    - 고통으로 가득찬 기억, 그 기억마저도 잃고 싶지 않은 상황.

    기억의 상실과 생명의 상실을 겪어가는 무해, 딸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

     

    글쎄, 이 소설의 서평은 쓰기 참 난감하다. ‘북한치매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두 소재가 극을 끌어가는 요소이며, 남한인 본인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북한의 삶과 탈북해온 땅에서의 북한인으로써의 삶은 모두 낯선 부분을 넘어 결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엄마가 딸 아이에게 고백하는 순간, 그 모정의 진실함에 끌려 집중하게 되고, 저자의 세밀한 묘사와 감정적인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그려내 독자의 이입을 도와줌은 물론, 그 참담하고 울분섞인 무해의 삶에 안타까움을 넘어선 분노와 슬픔 그 격정의 감정들을 차분하게 쌓아올린다.

     

    <무해의 방>을 읽어보자라는 추천은 못하겠다. 그녀의 삶이 너무도 버겁고 격해 온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읽어보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당면해야할 남한과 북한간의 이야기이며,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문이다.

     

     

     

  • 무해의 방 | ue**pi | 2019.06.2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인간의 의식 변화, 건강의 이상은 한순간에 닥쳐 올 수 있다. 매사에 깔끔하고 바지런하며 온순했던 무해. 그녀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급속도로 내면의 상처가 폭풍우 몰아치듯 퍼져 의사로부터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오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다가온 치매라는 병명은 그녀의 딸 모래에게도 큰 도전이며, 예전과 같지 않은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근심이 동시에 밀려오는 기폭제가 된다.   ...

    인간의 의식 변화, 건강의 이상은 한순간에 닥쳐 올 수 있다. 매사에 깔끔하고 바지런하며 온순했던 무해. 그녀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급속도로 내면의 상처가 폭풍우 몰아치듯 퍼져 의사로부터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오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다가온 치매라는 병명은 그녀의 딸 모래에게도 큰 도전이며, 예전과 같지 않은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근심이 동시에 밀려오는 기폭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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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은 이렇게 인간이 반박할 수 없게끔 인간의 육체를 빌려 증명하듯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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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의 발생이란 특정 지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 문득, 시련 섞인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은 있다지만 시간의 흐름에 의해 노쇠해가는 인간 육체 본연의 모습까지 완벽히 재생해 낼 수는 없다. 그렇게 인간은 육체에서 정신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멸해간다.

     

    무해는 탈북자였다. 그리고 육 개월간의 국정원 조사를 통해 간첩이라는 의심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무수히 넘쳐나는 조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지금, 하나 남은 딸 모래를 위해 기억의 소실이 빠르게 밀어 닥치기 전 자신의 기록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자신의 역사일 수 있지만 딸을 위해 던지는 마지막 선물이자, 유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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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마국수', 음식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추억의 이음새와도 같다. 무해는 그간 모래에게 비밀로 했던 출생지에 대한 내용을 털어놓기 위해 '농마국수'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에서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 용범이와 그의 누이 명희의 결혼식에 얽힌 사연들을 담아내며 '농마국수' 이야기도 기억 속에서 상기시킨다. 그리고 친구인 용범 가족의 몰락. 공산권에서 가장 금기시했던 부의 창출 욕구. 밀수 사업으로 인해 용범을 비롯해 그의 가족은 당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고, 어느새 무해의 시선에 용범 또한 멀어져 간다. 이처럼 북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살던 무해는 딸에게 전해 줄 '농마국수'의 레시피를 위해 잊고 싶었던 지난 기억을 한 줄씩 적어내려가며 모래와의 단출하지만 잊지 못할 '농마국수' 만찬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간 숨겨 둔 출생지의 비밀, 탈북인에 대한 사실을 딸 모래에게 나직하게 고백하고 만다.

    '농마국수'는 무해의 기억이란 끈을 과거에 현재로 이어지는 매개체의 일부이며 딸에게 자신의 감춰진 진실을 알리는 전달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뿌리에 대한 중요성, 기억의 끈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은 무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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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조선 시절 음식의 기억에 이어, 사별한 남편 강은석과의 첫 만남에 이르기까지 1인칭 시점이 아닌 제3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어쩌면 이야기의 진전을 이어가는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 혹은 기록을 살펴 가며 이야기를 정리하는 그녀의 딸 모래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상 기록이 깊이감 있게 전달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각인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 우리 민족의 이야기, 탈북자의 생사고락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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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해의 방'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 당시 교원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녀. 하지만 북조선의 경제 기근으로 교원의 지위가 떨어짐을 실감하게 된다. 먹고살기에 급급한 국가적 현실로 인해, 미래의 혁명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란 보기 좋은 떡이었던 학교는 허울로만 남았을 뿐, 인색한 투자 부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로써 자신들의 기근을 암묵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기아와 배고픔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금전적 이익이래봤자 북과 중국 접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밀수 행위가 범법임에도 행해지고 있었으며, 그 이익은 비싼 값에 불량품까지 수입하게 되는 북한의 상황에 의해, 고스란히 중국 측의 더 큰 이익으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아프고 무력했던 기억은 무해의 기록으로 남겨질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함과 암울했던 북조선의 경제 상황을 글로 느끼며 드는 건 그저 ''해질 수밖에 없는 정신을 추스르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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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지금 당장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살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유예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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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 물줄기를 경계로 북조선과 중국이 접경하고 있는 지역은 피와 땀, 울분, 살기까지 서려있는 공간이다. 삶과 죽음의 희망과 공포, 생존을 위한 불법 행위 등이 서슴없이 벌어지는 범죄의 온상이기도 하다. 또한 3%밖에 되지 않는 남조선으로 귀환, 자유를 꿈꾸며 빈곤하지만 의지를 불태워 마지막 동아줄을 잡으려는 북조선 민중들의 생사가 담긴 빛을 고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불행과 어머니의 행방불명까지 겪은 무해의 어둡기만 했던 미래는, 북조선의 공산체제를 따르고 순응했던 정서에서 주변 지인들의 변화무쌍한 행위들에 의해 심적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간 공산주의 국가에 충성했던 나가 아닌, 자유와 삶의 존속을 위해 생의 유예를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믿고 따르려 했던 동향 김 씨의 사기행각이었음에 분노하고 만다. 한국으로 떠나야 할지, 중국인의 아내로 남은 삶을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삶의 정당한 유예. 이것이 무해의 또 다른 숙제로 남게 된 탈북 탈출기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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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하반신 불구의 중국인과 첫 혼인, 그리고 눈에 밟힐 수밖에 없던 첫아이 페이와의 이별과 현재의 딸 모래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무해는 슬프고 암울했던 기억을 행복으로 바꿔가기 위한 종착 지점에서도 삐거덕하고 만다. 한 여인의 삶이었지만, 우리가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민족의 이야기로도 확장 가능하다. 남편 은석의 만남에서 죽음, 이어서 찾아오는 초로기 치매 환자 무해의 가슴 아픈 기록의 마무리는 이 책을 끝까지 탐독한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동감할 만한 심정으로 가득하다. 내가 아니지만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는 마음, 무해의 방 기록은 개인사가 아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사의 단편으로까지 확장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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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해의 방 | md**tlej | 2019.06.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 자신의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갔을 대 그리고 그 삶이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을 준 사람...

     

     " 자신의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갔을 대 그리고 그 삶이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을 준 사람이 개인이 아니라 체제나 거대한 국가일 때, 힘없는 개인은 국가에 대한 분노를 자기 자신으로 돌린다는 사실을 무해는 뒤늦게 깨달았다. 분노의 대상으로 국가는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자기 학대였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다. (p.107) "

     

     백반집에 가면 식사 손님들 쪽으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탈북민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나올때가 있다. 아마 주로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프로이리라. 언젠가 어떤 테이블에서 혼잣말인듯 들으라고 하는 말인듯 큰소리로 떠들어댔던 말이 문득 머리속에 박혀있다 떠올랐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을 당해낼 수가 없어. 북한 사람들 눈에는 독한 기가 있어.' 특히나 목숨을 내걸고 북한을 벗어나 남한까지 내려온 사람들은 다른 체제나 문화 속에서 어수룩해보일지라도 그 근본에는 더 강하고 굳은 의지가 있어서 쉽게 보면 안된다는 그런 내용의 말이었다. 그래서 북한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남한 젊은이들은 그래서 안된다고 혼을 내기도 하는 말을 두서없이 더 늘어놓았다. 확실히 어색한 방송용 화장과 차림을 하고 앉아있는 그들은 어설퍼보여도 카메라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해보였다. 목숨을 건 저마다의 탈북기도 따라할 엄두가 안나는 내용이어서 노인의 말이 불만스럽기는 해도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었다.

     

     '무해의 방'을 읽고 한동안 멍하니 있다 문득 떠올린 것이 그때의 기억이었다. 바로 저 일이 내 안에서 무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속물적이고 직설적인 경험이었다. 무해는 어떤 사람인가. 책 한 권을 그녀에 대해 읽고서도 무해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삶의 어떤 큰 결단을 내려서 남한으로 온 그녀의 삶에는 확실히 커다란 굴곡이 존재했다. 그녀가 쫑의 죽음을 가장 큰 고통으로 꼽은 남편의 상실과,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선언이 가장 큰 위기로 다가온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삶이 있고 나의 상처와 남의 티끌을 비교해서 판단하여서도 안되지만 내가 보기에도 무해와 무해가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확연히 다른 뭔가가 존재했다. 그것은 무해의 삶을 읽어낸 나와도 너무나 먼 거리가 존재해 나는 굵고 진한 글씨로 드러날 몇가지 사실 외에는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그저 몇번이고 무해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말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해의 내면과 과거가 항상 이질적으로 느껴졌는데, 치매라는 병이 그녀를 무너뜨리는 과정만큼은 너무나 남들과 같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각 품고있는 과거가 개인의 삶의 모든 과정을 무차별적으로 지우고 선별하여 재생시키는 병과 만나자 오히려 옅어진다. 법이 아니라 병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지는 것일까. 무해는 탈북 과거를 가진 여자가 아니라 주전자를 태우고 동네에서 길을 잃고 강아지 밥 주는 일을 잊는 보통의 초로기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무해를 조금은 가깝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구병모 작가의 '파과'를 자주 떠올렸다. '파과'의 주인공인 할머니 킬러 조각 역시 저항할 수 없는 노화를 겪으며 삶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가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치매를 앓는 소설의 주인공이라 하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유명하지만 어쩐지 그보다는 '파과'의 조각이 무해와 더 비슷하게 느껴졌다. 비록 무해는 조금 젊은 편이지만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등장하는 것은 반가웠다.

     

     " 되돌아가봤자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이미 혜산에는 없었다. (p.118) "

     

     '무해의 방'에서 가장 눈을 끌었던 문장이다. 무해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 나온 문장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의 시인의 유명한 시처럼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것이기에,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어지자 무해가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일까. 혜산에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무해가 떠나가는 곳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무해는 그녀가 탈북자이기 때문에 이방인인것처럼 느낀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녀는 어디에서도 심지어 혜산에 남아있었어도 뿌리없는 흔들림을 느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중국 어딘가의 콩과 카스테라 냄새가 나는 아이 페이도 느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쯔와 두 다리가 없는 그녀의 아들이 페이의 뿌리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 무해가 떠난 곳에서 여자로 태어난 페이는 카스테라 대신 할머니가 사온 색색의 사탕과 초콜릿을 먹으며 무사히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었을 것 같다.

     

     남겨진 페이를 떠올리면서 무해가 모래에게 하는 말들, 특히 차조심해야 한다고 하는 잔소리가 한참 애틋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무해의 기억이 더 깊고 복잡하게 뒤섞이면서 모래대신 '페이'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해의 방은 그녀의 세계를 축소시킨 모습으로, 또 기억의 여러 부분들을 각기 따로 나누어 둔 내면의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굳게 닫아 잠가두었던 수많은 방 중 어떤 방이 열릴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그녀의 세계가 한칸짜리 방 안에 집어넣어진 듯 갇힌 기분으로 머물기도 했다. 모든 방을 열어본 들 또 한 방에 오래도록 머문 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해와 그녀 뿐 아닌 그 누구라도 영영 이해할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방이 행성처럼 멀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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