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법어집. 중도사상(中道思想) 을 핵심으로 인도의 원시불교에서중국 선종 및 우리나라 선종사상까지를 언급하고 있다.성철 큰스님께서 67년에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추대되면서 백일 동안에 한 법문을 정리하여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 불교 전반에 걸쳐 두루 밝히고 있는 이 설법은 일찍부터 백일법문이라 불리며 오랫동안 많은 수행자와 불자들의 귀중한 지침이 되어 왔다.상권에서는 근본불교, 곧 아함경과 남전대장경에 나타난 원시불교의 온갖 이론을 대승의 입장에서 풀이하고, 또 대승의 제반사상인 중관과 유식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하권에서는 천태와 화엄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상의 요점과 선사상의 핵심인 선종의 근본이 돈오에 있음을 여러 조사의 어록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소개
목차
제1장 서 1. 불교의 본질 1) 깨달음의 종교 2) 절대적 인간관 3) 참선 수행 2. 중도사상 1) 교학(敎學)에서의 중도사상 2) 선종에서의 중도사상 3) 대승비불설 비판 4) 중도사상의 독창성
“나는 여기서 본분사(本分事)로서 사람들을 대한다. 만약 나로 하여금 근기따라 사람을 대하게 하면 삼승 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가 있게 되느니라”고 조주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근기에는 상근기도 있고 중근기도 있고 하근기도 있으니 근기를 따라서 설법한다면 자연히 삼승 십이분교가 벌어지므로 본분사로서 사람들을 대할 뿐이요, 근기를 따라서 설법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는 것이 조주스님의 생명선이고 선가(禪家)의 생명선입니다. 불교의 근본을 이론과 언설을 가지고 이렇게도 설명하고 저렇게도 설명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 법문이 선문의 골수가 아닌 줄 알고 들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선가의 본분을 버리고 이론과 언설로서 불교의 근본 뜻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불교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있어서 이 경(脛)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저 경을 보면 저렇게 말씀하는 등, 누가 어떤 것이 불교냐고 물으면 이것이 불교라고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예수교나 유교나 회교 등 다른 종교들은 근본 경전이 간단하여 예수교는 성경, 유교는 사서삼경(四書三脛), 회교는 코란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통칭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하니 누가 들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으니 무슨 말씀인지 알기 힘들고, 설사 좀 안다고 하여도 간단하게 어떤 것이 불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하나하나 얘기하려면 끝이 없으니 간단히 무엇을 불교라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불교라는 말 자체에서 보면 불교(佛敎)란 불(佛) 즉 부처님의 가르침[敎]입니다. 부처[佛]란 인도말로 붇다(Buddha)라고 하는데, ‘깨친 사람’이란 뜻입니다. 불교란 붇다 즉 일체 만법의 본원(本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 즉 부처의 가르침이므로 결국 깨달음에 그 근본 뜻이 있습니다. 만약 불교를 논의함에 있어서 깨친다[覺]는 데에서 한발짝이라도 떠나서 불교를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인 그 깨친다는 것은 일체 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일체 만법을 총괄적으로 표현하여서는 법성(法性)이라 하고, 각각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자성(自性)이라고 하는데, 그 근본에서는 법성이 즉 자성이고 자성이 즉 법성이니 자성이라 하든 법성이란 하든,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佛)라 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敎]이란 법성이나 자성을 바로 깨치는 길 즉 깨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 근본입니다.
2500여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새벽에 명성(明星)을 보시고 정각(正覺)을 이루셨으니 이것이 불교의 근본 출발점입니다. 유교는 공자님이 옛날의 삼경이든 육경이든 이것을 읽고 외우고 하여 문자에 의지해서 거기서 얻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세웠고, 기독교는 예수가 절대신의 계시에 의해서 성경을 의지하여 세워졌으니 곧 절대신의 계시가 기독교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불교에서 부처님은 많은 지식을 얻음에 의하거나, 혹은 절대신의 계시를 받음에 의해서 부처가 된 것이 아닙니다. 보리수 아래에서 자기 스스로 선정(禪定)을 닦아 자기의 자성을, 일체 만법의 법성을 바로 깨쳐서 부처님이 되었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가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절대신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불교는 오직 일체 만법의 법성인 자기 자성을 바로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불교 이외의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이와 같은 이론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가 주장하는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진리로서 천고만고에 변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입니다. 일체 만법의 법성, 즉 자기 성품을 바로 깨치는 이것이 불교의 근본 특색으로 되어 있느니만큼 만약 이 노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과 역대의 모든 조사(祖師)스님들이 자기 성품, 자기 마음을 깨쳐서 부처를 이루었지 절대신이나 언어문자에 의지해서 부처를 이룬[成佛]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 생명선이며, 영원한 철칙이며 만세의 표준입니다.
불교는 성불(成佛), 즉 부처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언설과 이론만 가지고는 성불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학자라도 언설과 이론만 가지고서 성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하려고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놓았는가? 금강산이 천하에 유명하고 좋기는 하나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불법이란 바로 깨쳐야 하는 것이니 일체만법이 법성자성을 깨쳐야 하는데 그것은 언어문자의 이해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자성법...
불법이란 바로 깨쳐야 하는 것이니 일체만법이 법성자성을 깨쳐야 하는데 그것은 언어문자의 이해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자성법성이라는 것은 이름이 없고 모양이 없어 일체가 끊어졌기 때문에 증지(證智), 즉 깨친 지혜로서만 알 수 있고 다른 것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법이란 반드시 깨쳐야 되는 것인데 깨친다는 것은 언어문자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도 다 떨어진 무심지(無心地)에 이르러서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