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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최후의 노력 /한길사 / 3-090800 /정가: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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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35654868
ISBN-13 : 9788935654864
로마인 이야기. 13: 최후의 노력 /한길사 / 3-090800 /정가:12000원 중고
저자 시오노 나나미 | 역자 김석희 | 출판사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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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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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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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3권. 시공을 관통한 고대 1천년의 흥망성쇠를 통해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근원적 좌표를 낱낱이 주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상으로 '제정 후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시기, 즉 원수정에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한 시기의 로마 제국을 다루고 있다. 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했는지, 그 실태는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점이 원수정과 다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등의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소개

저자 : 시오노 나나미
1937년 7월 7일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가쿠슈인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열풍처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어떤 공식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공부했다. 고교 시절 『일리아스』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 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 가쿠슈인 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5년에 걸쳐서 『로마인 이야기』를 1년에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표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무엇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다.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4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3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초기작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바다의 도시 이야기』(1982년 산토리 학예상),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1988년 여류문학상) 등 20여 권의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로마 제국 흥망성쇠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제1~12・1993년 신조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상), 그리고 『살로메 유모 이야기』『사랑의 풍경』『남자들에게』『침묵하는 소수』『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인 에세이류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힘을 숭배하는 보수적인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어떤 일이든지 개방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면 인생이 굉장히 유익하고 즐거워진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시오노 나나미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서도

목차

독자들에게
 
제1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 (서기 284~305년)
 
혼미에서 탈출
'양두정치'
'사두정치'
병력 증강
제국 개조
관료 대국
세금 대국
통제 국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기독교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
은퇴
 
제2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서기 306~337년)

'사두정치' 붕괴
여섯 황제
수뇌 회담
'공적' 막센티우스
결전
역사를 창조한 전투
'패치워크'의 개선문
기독교 공인
새로운 수도 건설
지도층의 변모
군대의 변모
빈부 격차
가정의 비극
 
제3부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
 
때를 기다린 시기
정식 무대로
'밀라노 칙령'
기독교 진흥책
니케아 공의회
'인스트루멘툼 레그니(Instrumentum regni), 요컨대 '지배의 도구'
 
연표
참고문헌
그림 출전 일람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 거장의 투혼 … 아직도 끝나지 않은 로마인들의 이야기 2005년 2월 『로마인 이야기』 제13권 ‘최후의 노력’이 출간되었다. 천년 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의 생생한 역사를 찾아 떠났던 ‘로마인 이야기’의 장대한 여정도 어느덧 종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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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의 투혼 … 아직도 끝나지 않은 로마인들의 이야기 2005년 2월 『로마인 이야기』 제13권 ‘최후의 노력’이 출간되었다. 천년 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의 생생한 역사를 찾아 떠났던 ‘로마인 이야기’의 장대한 여정도 어느덧 종반부에 접어들어 쇠망의 역사 한가운데 성큼 들어섰다. 전체 15권 완간을 목표로 매년 한 권씩 써낸다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공언은 어김없이 지켜졌고, 역사를 분석하는 냉철한 눈도 말기 로마 역사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제 완간까지 마지막 두 권을 남겨놓았다. 1년 중 쓸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집필을 위한 공부에 투자한다고 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거장다운 면모를 과시하며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의 전체틀을 바꾸어 위기를 극복하다 … ‘사두정치’의 단행과 기독교 공인 로마 황제가 야만족 앞에 무릎을 꿇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이른바 ‘3세기의 위기’라 불리게 된 시대부터 로마는 복원력을 잃어버린 스프링처럼 한번 찾아온 위기를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제13권 ‘최후의 노력’은 흔히 왕정, 공화정, 제정(원수정), 후기 제정(절대군주정)으로 변천하는 로마의 역사에서 바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한 시기의 로마다. 작가 시오노는 이 책에서 야만족들의 대규모 침입이 이루어지는 제12권 ‘위기로 치닫는 제국’에 이어 또 다른 측면에서 로마가 직면한 위기와 쇠망의 원인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국가 구도의 큰 틀이 다가올 암흑의 중세를 예고하는 결정적 변화를 초래한 만큼, 왜 절대군주정으로 이행했는가, 그 실태는 어떤 것이었는가, 어떤 점이 원수정과 다른가, 그리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체계적으로 서술해나가고 있다. 첫 번째로 정치와 군대체제에 찾아온 변화를 들고 있으며, 두 번째는 국교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는 종교적 문제가 안겨준 문제의 소용돌이였다. 바로 전자는 더 이상 출중한 지도력을 지닌 황제를 배출하지 못하는 로마의 국가 시스템 상황에서 네 명의 황제가 다스리게 되는 ‘사두정치’의 출범으로서, 체제의 주인공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서기 284년에서 305년)였다. 후자는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함으로써 역사상 ‘대제’(大帝)라는 칭호를 얻은 세 명의 위대한 인물-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샤를마뉴 대제-가운데 한 명이 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이들에게도 황제의 가장 큰 책무가 로마의 ‘안전보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단행한 어떠한 개혁과 결정도 국가 재건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결정하고 실행한 일은 어두운 면을 지닐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데 정신이 팔린 로마인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로마가 로마답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 연구자들 중에는 ‘사두정치’를 단행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으로 로마 제국이 부활하고 부흥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것은 그만큼 3세기의 야만족의 침입 상황에서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 책임 황제인 정제(正帝)와, 그 아래 부제(副帝)를 두어 총 4명이 철통같이 지켰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네 사람은 각자의 관할 구역 사이에 벽이라도 세운 것처럼 유동성을 차단했고, 각자 이익을 챙기려는 욕심으로 내전의 양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본국과 속주의 구별 없이 종횡무진으로 깔린 가도망으로 군단의 신속한 이동으로 대처했던 시절과는 다르게 서로 군사를 적절하게 서로 융통해주는 체제도 없어졌다. 아울러 네 개라는 체제의 복잡성은 필연적으로 관료기구의 비대화와 군사력의 증강으로 이어져 세금 증가를 가중시켰다. 이제 로마인들은 야만족한테서 도망칠 필요는 없었지만 무거운 세금에서 도망칠 필요가 생겼다. 한편 정점에 서 있는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권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원수정 시대처럼 원로원과 로마 시민권자가 황제에게 권력 행사를 위임하는 형태로는 충분치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는 불충분하다면 남는 것은 신밖에 없는데, 신에게 권위를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비로마적이지만 이 시기에는 나타났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더불어 통치나 지배의 권리를 ‘인간’이 아니라 ‘신’이 주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좋든 나쁘든 역대 로마 황제를 괴롭힌 암살의 위협- 원수정 시대에는 언제든 자격 없는 황제들은 ‘리콜’될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다-은 해소되었다. 그러나 황제의 권력을 견제하는 기관이었던 원로원은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를 잃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로 로마가 로마답지 않은 가장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국내 출간 10년을 돌아보다 특히 올해는 『로마인 이야기』가 국내 소개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지난 1995년 국내 최초로 이루어진 ‘시독회’ 행사를 통해 그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먼저 검증받고 출간된 책이니만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자필쇠’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천년제국을 이어간 로마인들의 국가경영전략과 지혜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현실로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명한 리더와 지도자상, 몇백 년을 내다보는 제대로 된 사회 인프라 구축,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무(노블레스 오블리제). 『로마인 이야기』가 던지는 이 커다란 세 화두에서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교훈의 열매를 얻었다. 이것이 언론계와 학계, 정계와 재계, 어른 아이 할것없이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 매료된 이유다. 그래서 90년대 역사책 읽기를 하나의 지적 즐거움으로 만든 책이 있다면 단연 『로마인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사회과학도서가 출판의 주류를 이루었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는 인문서들이 약진했고, 그 한가운데 ‘역사평설’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로마인 이야기』가 출간됨으로써 인문도서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난 1999년 이후 네 번에 걸쳐 실시되었던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경연대회’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책읽기의 훈련뿐만 아니라 로마역사기행이라는 실천적인 현장학습의 기회도 제공했다. 회사 직원들의 연수용 교재로도 활용되었고 사회 지도자들의 리더십 과정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변화의 모델을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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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임진영 님 2009.01.25

    "로마인은 세 번 세계를 지배했다.처음에는 군단으로, 다음에는 법률로, 마지막에는 기독교로."

  • 임진영 님 2009.01.21

    평화는 인간 세상에서 최상의 가치다.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평화는 당장 손에서 넘쳐흘러버린다.

회원리뷰

  • 로마인 이야기. 13 | yx**8743 | 2017.07.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로마제국의 본격적인 쇄락기를 다루고 있다. 내부도 흔들리고 외부는 야만족의 침략으로 더욱더 흔들리고 특히나 계속된 침공으로 로...
    로마제국의 본격적인 쇄락기를 다루고 있다. 내부도 흔들리고 외부는 야만족의 침략으로 더욱더 흔들리고 특히나 계속된 침공으로 로마제국의 국력은 계속해서 쇄락해져만 간다. 개인적으로 이부분 부터는 유명한 전략게임으로 먼저 접햇던 부분이라 꽤나 반가웠달까.. 쇄락해가는 로마를 부흥코자 마지막까지 애썼던 황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부흥을 위해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여러 제도의 개혁을 단행했는데 양두정치 사두정치 교과서에서 봤던 익숙한 용어가 많이 나온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하고 본격적인 기독교 국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수도도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관점에 따라 허울뿐인 비잔틴제국으로 로마의 명맥을 유지하지만.. 쓰려져가는 로마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역부족.. 이었나 보다.
  • 13권의 부제는 ’최후의 노력’이다. 13권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로 취임한 서기 284년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사망...
    13권의 부제는 ’최후의 노력’이다.
    13권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로 취임한 서기 284년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사망한 서기 337년까지의 53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에는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단 2명의 황제만 취임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내에서도 후세의 역사가들에게서도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출생지도, 출생년도도 불명확한 상태라고 한다.
    다만, 오늘날 크로아티아 영토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바닥’에서 태어나 로마군대에서 한 단계씩 진급하여 경호대장까지 하다가 황제가 된 인물이었음에도 권력에는 욕심이 없었다.
    자신이 즉위한 해에 친한 친구였던 막시미아누스를 처음 ’카이사르’에서 몇 개월 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로 격상시켜 공동 황제로 함께 취임한다.
    디오클레레티아누스는 당시 야만족의 침입과 방위선에 대한 대처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음을 인정하고 막시미아누스에게는 서방을, 자신은 동방의 방위선을 담당한다.
    황제로 즉위한 이후 약9년 동안 두 황제는 서방과 동방에서 야만족을 격퇴하고 페르시아국을 위협하고 도적떼를 소탕했다.
     
    그리고 그들은 293년 역사적인 ’사두정치’를 선보인다.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가 각자 ’카이사르’를 한 명씩 임명한다.
    서방의 막시미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 클로쿠스를, 동방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갈레리우스를... 둘 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골랐고 모두 군단에서 경력을 쌓았다.
    군장교 출신의 4명의 황제(정제와 부제)는 각자의 담당지역에서, 그리고 일부 협동작전으로 방위선의 야만족을 격퇴하고 페르시아와 전쟁에서까지 승리를 거두어 150년 전의 로마제국 영토와 방위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나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한다.
    - 병력 증강 : 기존에 30만명에 달하던 로마군을 두 배로 증가시켰다.
      이는 군사력의 질을 떨어뜨리고 4두 정치를 담당한 황제들 사이의 유동성을 약화시켰고
      로마시민과 속주민들은 엄청난 방위비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 민군 분리 : 갈리에누스 황제가 원로원 의원이 로마군 장교에 취임할 수 없게 하였는데 그에 더하여 민간 경력과 군대 경력을 완전히 분리해 버린다.
    - 황제에 대한 개념 변경 : 기존과 같이 대관식은 별도로 없었지만, 보석을 아로새긴 ’디아테마’라는 호화로운 관이 황제의 머리 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호화로운 옷차림과 함께...
    - 관료조직 확대 : 4두정치에 이어 황제를 대리하여 각 지역을 다스리도록 행정구역을 개편한다. 그에 따라 관료조직이 늘어나고 인력도 늘어나고 비용도 늘어났다.
    네 황제는 자신의 근거지에 모두 수도를 지정하고 황궁과 대규모 도시를 건설했다.
    - 세제 개편 : 제국이 1년에 필요한 액수를 황제가 결정하고 시민들의 수입과 관계없이 납세자에게 부과. 세무는 모두 통합하여 중앙정부가 관리. 세금은 ’토지세’와 ’인두세’로 양분.
    - 가격통제 정책 실시
    - 기독교 탄압(303년) : 기독교 교회 파괴. 신도들의 모임 금지. 성서와 미사에 쓰이는 소품 소각. 기존 특전 박탈. 법정에서 보호받을 권리 박탈. 교회 재산 몰수. 공직 추방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이 위기임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대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황제는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인 권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로마제국의 기반을 또 다시 무너뜨리게 된다.
    원로원과 지식인층만 소외되었던 로마제국의 황제권력은 잘못된 군대 개혁과 세제개편으로 부유층 뿐 아니라 로마시민과 속주민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로마의 역사이자 기반이었던 제도와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 다시 제도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악순화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서 욕심 없는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너무 일찍 은퇴해버려(막시미누스를 강제도 동반 퇴임시킴) 또 다른 분란이 싹트도록 한다.
     
    2차 사두정치는 305년에 콘스탄티우스 클로투스가 브리타니아/갈리아/히스파니아를, 세베루스가 이탈리아/북아프리카를, 갈레리우스가 발칸과 그리스를,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오리엔트 전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306년 콘스탄티우스가 사망하여 사두정치가 붕괴되고 황제가 6명으로 난립한다.
    310년 막시미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이 강요로 자결하고 311년 갈레리우스가 병사한다.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리키니우스와 손잡고 막센티우스를 공격하여 전사시키고 325년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와 항쟁에서 패배하고 처형당한다.
    이리하여 기독교도가 추앙해 마지않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7년 단독으로 집권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집중적으로 추진한 일은 무엇일까...
    그는 313년 리키니우스와 공동으로 기독교를 ’공인’한다.
    황제의 재산을 기독교에 기증하도 기독교 성직자가 공무를 맡지 않도록 결정하다.
    316~317년 도나우 강을 건너서 야만족을 격퇴하고 강화를 맺다.
    비잔티움에 새로운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했다.
    방위선의 로마군대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여 ’파트타임’ 군인으로 바꾼다.
    325년 니케아에서 기독교 공의회를 열어 ’삼위일체’파를 공식적인 해석으로 결정한다.
    글자 그대로 로마제국과 로마시민, 속주민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다.
    대신, 로마제국을 약화시키는데 앞장 선 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왜 기독교를 공인하고 진흥하려고 애쓰고 수도를 옮겼을까...
    콘스탄티누스는 재임 중 기독교로 개종한 것일까...
    객관적인 자료와 사료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죽음 직전에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 313년 기독교를 ’공인’시킨 황제의 칙령의 문구는 그 이전까지 금지하고 박해하던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같이 로마제국에서 동등하게 인정한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하지만 ’기독교 공인’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진흥하기 위해 애쓴다.
    실제 아주 편파적으로 기독교와 성직자들이 부와 권력을 잡도록 제도화시킨다.
     
    작가는 콘스탄티누스가 ’지배의 도구’로서 기독교를 고려했다고 주장한다.
    계속되는 군대의 반란, 황제 참칭, 원로원과 지도층의 무능, 정국 불안정 등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 또는 중단기적인 대책의 하나로 기독교를 품에 안았다는 것...
    콘스탄티누스가 그동안 황제를 추대하고 승인하고 인정하던 인간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유일한 ’신’이 권력을 황제에게 주게되면 주요 성직자 한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로부터 황제의 권력이 안정되리라고 예상 or 판단했다는 것...
    기독교의 ’왕권신수설’에 기울었기 때문이라나...
    콘스탄티누스 치세 하에서 진행된 과정만 보면 그렇게 분석할 수도 있다...
    나쁘지 않게 해석하면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콘스탄티누스의 의도가 그랬다면 그는 아주 머리가 나쁜 황제였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교활하고 야비하고 사악한 기독교도인 것이고...
    ’콘스탄티누스 로마제국을 다시 융성시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자 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팩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콘스탄티누스는 후세의 역사가들이나 기독교들이 붙여주는 호칭인 ’대제’는 전혀 아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3개 과제’에 제대로 기여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3개 과제’를 무시하고 파탄시킨 측면이 컸다.
    로마군에 대한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 방위선을 지키기는 커녕 소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야만족으로부터 침입, 약탈 당하도록 방치했으며,
    끝없이 늘어나는 로마시민과 속주민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의 주요 재산인 ’황제 재산(황제 재산은 황제에 위임된 로마제국의 재산일 뿐 개인 재산은 아니다.)’을 자기 멋대로 기독교도에게 기증하는 횡포를 부렸다.
    하드 인프라와 소프트 인프라를 유지,보수,관리하기는 커녕 그대로 방치해두었고 수도 로마를 그대로 둔채 임의로 비잔티움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면서 로마제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제국의 자산을 탕진한 황제이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가 즉위한 해부터 로마사를 더 이상 쓰지 않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많은 부분 동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콘스탄티누스 이후 1,000년을 뒤로 돌리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하여 서구에서는 결국 모든 종교를 공인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다.
    그런데 왜 그런 황제에게 ’대제’라는 표현을 쓸까나...?? 
     
    작가는 여러번 책 속에 카이사르의 명언을 제시했었는데 나는 비로소 13권 서평에 그 말을 옮기고자 한다. 13권에 그 말이 제일 어울릴 것 같아서...
    "비록 나쁜 결과를 낳은 사례라 해도 그것이 시작되었을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2010년 10월 06일 ]
  •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 YO**IK | 2009.05.1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최후의 노력》이라는 부제가 붙은『로마인 이야기-13』은 서기 284년에서 337년까지 54년간의 로마 제국 마지막 황혼을 그려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85년 백제가 박사 왕인을 일본에 파견했고, 313년 고구려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했다. ...

    《최후의 노력》이라는 부제가 붙은『로마인 이야기-13』은 서기 284년에서 337년까지 54년간의 로마 제국 마지막 황혼을 그려놓았다우리나라에서는 285 백제가 박사 왕인을 일본에 파견했고, 313 고구려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재위 284~305)

    경호대장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병사들의 추대로 황제에 오른다해방노예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을 만큼 하층계급 출신인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제국의 안정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일까다섯 아래인 막시미아누스를 서방황제로 임명하고 각각 부제(副帝) 지명하여 사두정치를 펼친다 사람 발칸 지방 출신 군인이었다개혁 정신은 아주 이상적이었으나, “정책이나 시책은 입안한 사람이 예상치도 못한 효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분할하고 세분화하면 오히려 분야마다 필요한 인원과 비용이 늘어난다.”  전체 병력이 30만에서 60만으로 늘어나면서 당연히 세금이 증가할 밖에…….   농민은 무거운 세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경지를 버리고 도시로 흘러든다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않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격 통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경제는 더욱 악화된다거의 모든 직업에 세습제를 시행하고, 기독교도에 대한 대탄압을 실시한다개혁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점점 꼬여갔다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동료 황제인 막시미아누스까지 끌어들여, 모든 사람들이 찬탄할 만큼 깨끗이 퇴위하여 고향에 틀어박힌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 (재위 306~337)

    서방정제 콘스탄티우스 클로쿠스가 급사를 하자 브리타니아 군단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황제에 옹립한다병사들이 황제를 옹립하는 악습을 없애기 위해 만든 사두체제는 졸지에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콘스탄티누스는 군인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타입이지 않았을까?  “전투에 호소하지 않고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정치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타협을 하지 않으면 상황을 만들어낸 , 로마에 무혈 입성하여 300 역사의 엘리트 근위군단을 해산하고 원로원에 특별세를 부과한다.  313,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 발표한다.  “지위를 잃으면 권력도 잃는 법이다.”  전임 황제가 확신을 가지고 실시한 정책은 그가 아직 살아 있을 모조리 파탄을 맞았다.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도만이 아니라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자에게도 각자가 원하는 신을 믿을 권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이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까그런데 밀리노 칙령으로 공인된 신앙의 자유를 1400 계몽주의 시대에 다시 목소리로 주장해야 했을까?

     

    324, 40 만에 로마 제국은 단독 황제가 통치하는 상태로 돌아갔다그리스사와 로마사를 통해 한번도 주요 도시가 적이 없는 비잔티움을 제국의 수도로 정했을까원로원 등의 기득권층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까새로운 수도, 새로운 정체(政體), 새로운 종교를 통한 새로운 제국의 탄생 - 이런 것이 바로 혁명이 아닐까군사 경력과 정무 경력의 완전 분리 라는 전임 황제의 개혁 정책이 원로원 의원을 안전보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국사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제 황제 혼자서 국법을 결정하는 법치국가로 변하여 제국은 완전히 황제의 사유물이 셈이다그래서일까?  ‘중세는 콘스탄티누스에서 시작되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단언한 것은. 

     

    325, 로마 황제의 공식 초청으로 열린 최초의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설 채택한다황제는 무엇보다도 기독교 교회 조직의 통일을 중시했다고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도가 아니었다그런 그가 기독교를 옹호하고 성직자 공식 승인하였으며 황제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였을까정국 안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면에는 제국의 이익보다 자기 가문의 존속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하니……속세를 통치하거나 지배할 권리를 군주에게 주는 것은 인간 아니라 이라는 사고방식의 유효성을 재빨리 깨달았으니, 콘스탄티누스의 정치 감각이야말로 경탄할 만큼 뛰어나다.  ‘신의 뚯이다!’ - 마디면 그만이다.  ‘현세에 대한 지배권의 신수설’ – 콘스탄티누스가 씨를 뿌렸으나 그의 아들 대에서 단절되고 만다 또한 신의 뜻이었을까페르시아 왕국과의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62세에 병사하여 12사도 교회 매장 콘스탄티누스는 서양사에서 대제(Magnus) 칭호를 받은 3 중의 명이 되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금본위제로의 전환으로 농지는 방치되거나 대규모 농장에 흡수되고, 상점은 문을 닫고, 수공업자는 차례로 군수산업으로 전업해갔다금본위제가 야만족 대신 농민들을 습격하여 약탈한 셈이 되었다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직자 계급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바람에 중류층 대부분이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에 기독교도로 개종했다서민과 중류층이 몰락한 후에 얼마나 오래 제국을 유지할 있을까?

     

  •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 se**eo94 | 2007.08.2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로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중에 '기독교'는 조금 낯설다. 우리에게 익숙한 '네로'나 '카이사르'에게서 그런 이미지는 잘 보이지 ...

    로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중에 '기독교'는 조금 낯설다. 우리에게 익숙한 '네로'나 '카이사르'에게서 그런 이미지는 잘 보이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전진하는 로마 군단이 떠오를 뿐이다. 특히 그리스도가 처형된 시기의 로마를 떠올린다면 오히려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곳이 바로 로마이다. 하지만, 현재 로마에는 천주교의 본산인 '바티칸'이 존재한다.

     

    로마를 기독교로 이끈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에겐 세계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이 바로 그 사건이다. 그와 더불어 기독교가 힘을 얻게 되는 이 시기의 로마를 다룬 것이 로마인이야기 13권이다.

     

    로마인 이야기 13권에서는 앞선 12권에서처럼 여러명의 황제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마지막 불꽃을 피운 로마제국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마지막 불꽃이 진정한 로마의 모습이 아닌 오리엔트적 전제적 군주로 변신한 황제에 의해 태워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이 시기를 이끈 두 인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 두 인물이 13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혼란한 시기를 극복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강력한 지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체제를 내세운다. 이른바 양두정치 혹은 사두정치가 그것이다. 제국을 동/서로 나누고 자기를 대신해 지역을 다스릴 사람을 뽑는다. 이른바 양두정치이다. 여기에 덧붙여 각각의 정제는 부제를 뽑아 네명이 제국을 관할하는 사두정치를 시행한다. 이 체제는 북방 야만족의 침입으로 인해 약화된 국방을 강화하는 방편이긴 했지만, 이로인해 각 지도자들은 자신의 병력 강화를 위해 제국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게 된다. 물론 국방의 안정은 제국의 번영을 좀더 이끌어 내긴 하지만, 장기적인 제국의 발전은 요원해지고 만다.

     

    뒤이어 등장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원래 정제의 아들이었으나 실력으로 경쟁자들을 모두 제압한 뒤 단독황제에 취임한다.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리키니우스와의 사이에 맺은 협정이 바로 밀라노 칙령이다. 이 칙령의 내용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공인을 의미한다. 당시까지 기독교는 금지의 대상이었으나, 이로 인해 기독교는 공인되고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 세력을 광대히 키워나가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또 다른 행적은 바로 새로운 수도의 건설이다. 이후 동/서 로마 제국의 성립을 야기시키는 이 행위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이제 '개선식'에나 볼 수 있는 도시로 격하시켰고 오리엔트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 시켰다. 이와 더불어 원로원의 기능은 정지되고, 로마제국이 여타의 왕조와 차별화된 요소들이 퇴색되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강력한 황제의 권력아래 안정을 구가하긴 하지만, 결국 멸망을 앞둔 전조에 불과하다.

     

    두명의 황제를 접하며 읽는 내내 아쉬움이 커져갔다. 물론 난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있는 법이지만, 로마제국의 멸망이 가까움이 느껴져 그 아쉬움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나, 중세의 암흑기를 불러온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은 당시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일이었다고 하나 이후 로마제국 = 유럽세계를 퇴보하게 만들었음은 인류사에 큰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다.

     

    기독교가 로마를 접수하고, 이제 로마는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더이상 로마답지 않은 로마. 마지막 모습은 어떨지.

  • 로마인...... . | jo**aedo | 2006.12.18 | 5점 만점에 1점 | 추천:0
    로마의 신의 고독함,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죄함의 시작을 파악할 것.
    로마의 신의 고독함,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죄함의 시작을 파악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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