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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접경인문학 번역총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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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2*224*36mm
ISBN-10 : 1156121485
ISBN-13 : 9791156121480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접경인문학 번역총서 1) 중고
저자 정영환 | 역자 임경화 | 출판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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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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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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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
60만 재일조선인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 책은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 정영환이 2013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朝鮮?立への隘路: 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法政大?出版局, 2013)를 번역한 것이다. 지은이는 1945년 해방의 날로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해방 5년의 역사를, 실로 방대한 자료를 구사하며 다각도로 분석했다.

저자소개

저자 : 정영환
1980년 일본 지바현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났다.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사회학박사).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 교양교육센터 교수다. 전공은 역사학, 조선 근현대사, 재일조선인사다. 지은 책으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2016), 《いま、朝鮮半島は何を問いかけるのか: 民衆の平和と市民の役割?責任》(공저, 2019), 《朝鮮獨立への隘路─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2013) 등이 있다.

역자 : 임경화
중앙대?한국외대 접경인문학 HK+ 연구단 연구교수.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 전공은 한일비교문학, 일본 마이너리티 연구, 코리안 디아스포라 비교 연구다. 지은 책으로 《두 번째 전후: 1960~19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공저, 2017), 《1905년 러시아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공저, 201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의 1960년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2017), 《나는 사회주의자다: 동 아시아 사회주의의 기원, 고토쿠 슈스이 선집》(2011)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한국어판 서문

한국어판 특별 보론|해방 전 재일조선인사
1. 조선인의 도일과 정착(19세기 말~1920년대 전반)
2. 재일조선인 사회의 형성(1920년대~1930년대)
3. 전시체제와 재일조선인(1930년대 후반~1940년대 전반)

서장|해방 전후의 재일조선인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문제의 소재
2. 시각과 과제
3. 선행연구
4. 이 책의 구성

제1장|해방과 자치
1. 재일본조선인연맹의 결성과 조련 자치대
2. 조련 자치대와 일본의 경찰권
3. ‘자치’와 분단: 쓰치우라土浦 사건

제2장|귀환, 송환, 거주권
1. 귀환의 송환화
2. 거주권의 위기: 생활권 옹호투쟁과 12월사건

제3장|외국인 등록령과 조선인단체
1. 외국인 등록령 공포公布와 재일조선인단체
2. 교섭에서 투쟁으로: 1947년 7월
3. 외국인 등록 실시: 1947년 8월 이후
4. 외국인 등록의 기반 정비: 등록 실시 후의 내무성 조사국

제4장|조국 건설의 일꾼
1. 새 활동가의 탄생
2. 활동가들의 세계

제5장|‘이중의 과제’와 재일조선인운동
1. 조선독립 문제와 일본의 민주화
2. 민족인가 계급인가
3. 재일조선인의 참정권을 둘러싸고
4. 남북 분단과 백무 서기장의 파면 문제

제6장|남북 분단과 민족교육
1. 조선학교폐쇄령과 민족교육 옹호투쟁
2. 남조선 단독선거와 건청 효고

제7장|‘조국과의 직결’과 일본의 민주화
1. ‘정당한 외국인 대우’란 무엇인가
2. ‘조국과의 직결’이 의미하는 것

제8장|조련과 민청의 해산
1. 패전 후 일본의 단체 규제와 조선인단체
2. 조련 해산론의 등장
3. 특별심사국의 ‘방침 전환’과 조련?민청 해산
4. 해산과 그 영향

제9장|외국인 등록체제의 형성
1. 외국인 등록령 개정
2. 재외국민등록과 외국인 등록

종장|조선 독립으로 가는 험한 길
1. 봉쇄된 ‘해방’: 조선인 지배의 재편
2. 새로운 ‘전시’로: 분단과 외국인 등록체제의 성립

보론 1.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 재일조선인은 어떻게 보았나
: 도쿄재판과 반민특위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1. 문제의 소재: ‘식민지 책임론’의 부재?
2. 재일조선인운동의 ‘전쟁범죄인’ 추궁과 ‘친일파’ 문제
3. 전범재판을 둘러싼 재일조선인의 논설
4. 세계사적인 ‘식민지 책임론’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보론 2. 쓰시마 거류 조선인의 ‘해방 5년사’
: 재일본조선인연맹 쓰시마 도본부를 중심으로
1. 쓰시마 조선인들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나
2. 패전 후 쓰시마의 ‘밀항’ 경비체제
3. 재일본조선인연맹 쓰시마 도본부의 조직과 활동
4. 남북 분단과 쓰시마의 조선인 사회
5. 잊혀진 ‘국경의 섬’의 해방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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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해방 5년사’에서 전개된 운동이란, 1920년대 전반과 후반에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김천해, 박열, 백무, 김두용 등)을 최고참 리더로 앉히고 1930년대 일본공산당 시절에 노동운동, 소비조합운동 혹은 ‘융화단체’나 생활 상호부조단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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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해방 5년사’에서 전개된 운동이란, 1920년대 전반과 후반에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김천해, 박열, 백무, 김두용 등)을 최고참 리더로 앉히고 1930년대 일본공산당 시절에 노동운동, 소비조합운동 혹은 ‘융화단체’나 생활 상호부조단체 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기반이 되어 10대부터 20대 청년들이 말단에서 뒷받침하는 가운데 전개되어갔던 것이다(72쪽).

재일조선인이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일본으로 도항할 수밖에 없거나 강제 연행된 사람들인데 …… 해방 후에도 계속해서 일본에 살게 된 이 사람들의 국적, 출입국관리령의 적용과 재류권, 교육 그리고 영주권의 범위 등을 둘러싸고 한일 양 정부는 10년 이상이나 교섭을 계속했다. 즉 ‘재일조선인 문제’는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과 관련한 여러 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계속해서 한일 간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였다(86쪽).

‘내지’에 존재했던 다수의 조선인은 조선으로 귀환하고자 했다. 조선인 민족조직이 일본 각지에서 조선 귀환이나 미지불 임금 쟁의를 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이들을 규합하여 45년 10월 15일 조련 창립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46년 1월 7일까지 오키나와를 제외한 모든 도도부현에 지방 본부가 설치되었다. 조련은 당초 조득성趙得聖을 위원장으로 하여 45년 9월경부터 “잔류 희망자의 취직 알선, 귀국자의 수속”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105쪽).

건청은 45년 9월 10일에 결성되었다. …… 쓰보이가 옳다고 한다면, 건청은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초기 협화회 계열 인맥을 포함한 조련에 대한 반발로 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그 해 11월 17일에 다시 건청 재결성대회를 열어 홍현기洪賢基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건청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의 급속 실현”, “민주주의국가의 실현”, “민족문화의 영원한 발달”, “청년건설대의 편성”, “향락적 생활의 배격과 근로정신의 배양”을 강령으로 내걸었다(130쪽).

46년 봄 이후에 데이비드 콘데David W. Conde가 ‘반反조선인 히스테리’라 불렀던 대대적인 반反밀항 캠페인이 시작된다. 그 최대의 것이 8월 17일 중의원 본회의에서의 진보당 국회의원 시쿠마 사부로椎熊三?의 연설이다. 시쿠마는 조선인 밀항자 중에는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의 보균자가 다수 있으며”, “일본 암거래의 근원은 바로 오늘날 이러한 불령한 조선인들이 중심”이며 “500억을 넘는 일본의 신엔新円의 3분의 1은 아마도 그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고 단언했다(159쪽).

거주증명제도는 시행되지 않다가, 11월에 오사카부 조선인등록조례라는 형태로 실시되었다. 문공휘文公輝는 거주 증명과 조선인 등록은 밀입국 조선인의 단속과 송환을 대의명분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조선인에게 “범죄 예비군 혹은 잠재적인 치안에 대한 위협으로 의심의 눈을 돌려 호구조사나 일제 검거, 거주증명서 발급 수속이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앞으로 경찰 활동의 기초 데이터로 삼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발상은 1947년 5월의 외국인등록령에도 계승된다(163쪽).

민단과 건청은 여기에 강하게 반발한다. 조련의 참정권 획득 요구는 일본의 내정 간섭이 되며 “스스로가 일본인 할 희망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건청은 외국인이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준연합국인’으로서의 처우를 요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조련도 ‘준연합국인’의 대우를 요구하고 있어서 쌍방의 주장에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민단과 건청은 외국인인 이상 참정권은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271쪽).

1월 26일 문부성 적격심사실장은 조선인 교직원도 적격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달을 내렸다. …… 3월 1일에는 문부성 학교교육국장의 이름으로 “교원 2명 이상, 학생 20명 이상”의 교육시설은 2개월 이내에 ‘각종 학교’ 인가를 신청할 의무가 있다, 신청하지 않을 경우는 인가를 받을 때까지 교육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통달했다. 이 영향으로 3월 18일에는 야마구치, 4월 20일에는 도쿄, 효고, 오카야마 등에서 조선인 아동의 공?사립학교 전입이 시작되었고, 무인가 조선학교의 폐쇄, 일본 학교로부터 차용했던 조선인 학교시설의 명도를 요구하는 학교 폐쇄령이 내려졌던 것이다(287쪽).

점령 당국은 재일조선인 민족교육 옹호투쟁을 선거 실시 반대투쟁과 연동된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미 제8군은 4월 24일 효고현 지사가 폐쇄령을 철회한 직후 비상사태 선언을 발령하여 고베시 전역에 직접 군정을 확립했던 것이다. 비상사태 선언하에서 경찰과 현병이 ‘조선인 사냥’에 나서 4일 동안 검거자가 무려 1,973명을 헤아렸다. 또한 오사카 부청 앞의 민족교육 옹호투쟁에 경찰이 발포하여 김태일金太一이라는 조선인 청년이 살해되었다(292쪽).

1948년 들어 분단이라는 형태이지만 한반도에 독립국가 수립이 확정되자, 일본정부나 GHQ는 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 맥아더는 각 부국에 재일조선인에 관한 조사를 명하여 48년 8월 16일 외교국의 핀Richard B. Finn 3등서기관은 〈재일조선인에 관한 국원 연구在日朝鮮人に?する局員?究〉를 완성했다. 핀은 재일조선인을 일본의 공산주의자와 조선?중국?러시아의 공산주의자를 연결하는 ‘극동의 중대한 불안정 요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재산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식으로 해서 자발적으로 귀환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재일조선인의 국적에 대해서는 ‘연합국민’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며, 장래에 조선과 일본정부 간의 협정으로 결정될 때까지는 일본국민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314쪽).

조련은 공화국 국민이라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일본정부에 ‘정당한 외국인 대우’를 요구했다. 특히 더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식량배증이었다. 일본 패전 직후부터 외국인에 대해서는 일본국민과는 다른 특별배급이 실시되었다. 그 혜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연합국 국민, 중립국 국민, “전쟁의 결과 그 지위를 바꾼 나라의 국민”, 그리고 ‘무국적자’의 네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인은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이 배급에서 제외되었다(315쪽).

GHQ의 민간정보교육국CIE은 49년 6월 미 제8군의 군사력에 의한 조선학교 폐쇄 권고를 내지만, 참모부는 치안 유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것을 각하한다. …… 8월 시모노세키사건이 일어나자, 조련 해산 움직임이 가속화된다. 시모노세키사건이란, 조련 해방 기념집회의 축하 아치를 민단의 트럭이 손상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양자의 충돌로 발전했는데, 여기에 경찰이 개입하여 조련 측을 일방적으로 검거해 강제조사를 하고, 나아가 소요죄를 적용한 사건이다(356쪽).

일본정부로서는 강화조약의 발효까지는 재일조선인은 일본인이라는 것이 전제이므로, 재일조선인의 등록 신청자를 한국국민으로 승인하는 수속에 협력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382쪽).

재일조선인에게 45~46년은 ‘해방’이 급속히 봉쇄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해방 후에 한반도에서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소련군?미군이 점령을 추진하는 한편,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적 질서가 만들어졌다. 조선에서 일본의 군사적 지배는 붕괴되었고, 일본에서도 조련은 귀환이나 노동쟁의 지원, 정치범 석방 등을 스스로 담당해갔다. 그리고 조련은 처음부터 재일조선인을 독립한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조선 독립을 실효화하려고 활동을 개시했다(396쪽).

47년 5월 2일에 제정된 외국인 등록령은 이러한 46년의 ‘역코스’를 법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등령은 일본정부의 ‘조선인=제국 신민’으로 보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호적을 근거로 재일조선인을 외국인 등록령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을 통치권의 범위 내에 포함시키면서 외등령 위반에 의한 형벌과 강제퇴거를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다음날 시행된 일본국 헌법의 권리를 향유하는 대상에서도 배제했던 것이다(398쪽).

분단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한반도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상황에 편승하여 일본정부의 지배의 틀 내에 재일조선인을 ‘일본인’으로 포위했고, 또한 일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등록령을 적용하여 조선인 지배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외국인 등록체제가 확립된 것이다. 1949년의 조련과 민청의 해산 지정과 조선학교 폐쇄를 거쳐, 마침내 일본정부는 식민지기와 다른 형식의 조선인 지배의 법체계를 만들어내게 되었던 것이다(407쪽).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직전인 52년 4월 19일의 법무부 민사국장 통달에 의해 재일조선인의 ‘일본국적 상실’이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하게 되어, 외국인등록법과 입관령이 규정하는 ‘외인’으로 다시 일본법 안에 편제된다(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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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민족사’ 서술을 시도한 값진 역작 일제강점기 고향을 등져야 했던 수많은 재일조선인은 우리 민족의 ‘아픈 손가락’이자, 그들의 활동은 한국 현대사의 ‘빈 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90년대 이전 한국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의 존재는 분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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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 서술을 시도한 값진 역작

일제강점기 고향을 등져야 했던 수많은 재일조선인은 우리 민족의 ‘아픈 손가락’이자, 그들의 활동은 한국 현대사의 ‘빈 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90년대 이전 한국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의 존재는 분단의 상흔을 드러내거나 또는 독재정권이 분단체제의 유지를 위해 활용되는 ‘희생양’으로만 조명을 받았다. 사실, 그간 우리 사회나 학계는 일제 패망 이후의 재일조선인을 마치 그 이전에 아무런 전사前史나 역사적 배경도 가지지 않은 일군의 사람들로, 또는 전후 처리 ‘문제’의 일환이나 전후 처리의 대상으로 다루는 경향이 짙었다.
이 책은 이 같은 시각을 거부한다. 대신 재일조선인은 ‘문제’로 취급될 대상이 아니라 독립을 향한 험난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역사의 ‘주체’였다는 치밀하게 입증해낸다. 그러면서 과연 재인조선인은 일제 패망으로 ‘해방’되었는지, 식민주의는 현재진행형인지를 엄중히 묻는다. 그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국내 학계가 소홀히 해온 민족사로서의 재일조선인사를 천착한 이 책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주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재일조선인의 해방 봉쇄와 지배체제 재편

이 책은 해방 직후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연맹이 ‘외국인인 조선인의 공적 기관’을 자임하며 자치대를 조직하는 등의 자치활동을 전개한 것을 소개하며 전후 재일조선인운동사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연합국총사령부GHQ를 설득한 일본정부는 조선인을 ‘독립국민’ 혹은 ‘연합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 경찰권의 통제를 받는 ‘신민=일본인’으로 간주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미군정과 일본정부는 조선인의 거주권이 인정되는 귀환의 권리를 부정하고 민족단체의 영향을 배제하고 스스로가 수송계획을 주도하며 (일제시대와 다를 바 없는) 송환 문제로 바꾸어버렸다. 이와 같이 재일조선인의 자치권을 부정하고 치안 통제 대상으로 삼으려는 목적으로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 시까지 ‘재일조선인=일본인’을 관철시킨 일본정부는, 그 한편으로 1947년에는 외국인등록령을 실시하여 재일조선인에게 퇴거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본서의 전반부에는 1945년에서 1947년까지 재일조선인의 해방이 급속히 봉쇄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들이 이에 맞서 조련을 중심으로 거주권과 생활권 옹호를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그것은 중앙은 물론 지방, 심지어 도서지역인 쓰시마에까지 미쳤음을 밝혀낸다. 그들은 전국에 초중등교육기관 및 활동가(일꾼) 양성을 위한 고등학원, 청년학원을 설립하고 일본공산당을 포함한 일본의 진보진영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운동조직과 민중을 잇는 젊은 활동가(일꾼)들을 소개하며 운동을 입체화시켜간다. 또한 재일조선인들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조국에의 공헌과 외국인으로서의 권리획득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둘러싼 내부 논쟁도 이때부터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재일조선인 2세의 의식이나 젠더 문제 등도 다루어졌다. 또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도쿄재판’을 둘러싸고 재일조선인들이 전쟁책임론을 식민지 지배 책임론과 관련시키고자 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아시아의 동시대 식민지 해방의 움직임에 강한 관심을 표했다는 논의는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1948년부터 50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후반부에서는 조선의 분단이 확정되고 새로운 전시로 돌진하면서 재일조선인이 외국인등록령체제로 편재되어 가는 과정을 밝힌다. 우선 GHQ와 일본의 공조에 의한 1948년의 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이 한반도의 분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여 동아시아 지역질서 재편이라는 동시대성 속에 맥락화했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조련은 ‘정당한 외국인’ 대우를 주장했고, 이에 대해 일본공산당의 비판을 받고 철회한다. 이후 일본공산당에 집단 입당하여 참정권 획득 요구 등을 통해 일본의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했으며, 이것은 조국 방위를 위한 것이라고 논리가 관철되었다. 하지만 결국 1949년에는 조련과 그 관련 기관들이 해산되어 재일조선인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된다. 이를 통해 전후 일본이 외국인등록체제를 완비하여 조선인 개인에 대한 직접 관리를 실현하며 일본 거주 조선인에 대한 지배체제 재편을 완료했다. 이로써 재일조선인들의 ‘독립’은 배반되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이후에는 실질적인 무국적 상태에 놓여 한미일 사이에서 당사자성을 부정당하고 ‘문제’로서 다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방대하고 치밀한 사료 분석, 참신하고 개방적인 시각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뛰어난 학문적 완성도이다. 이는 무엇보다 재일 역사가가 아니라면 입수하기 어려운 방대한 사료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고증한 점으로 뒷받침된다. 추천의 글을 쓴 정용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재일조선인 단체들이나 개인들이 생산한 각종 문서와 신문, 잡지 등을 발굴하고 정리한 데에 덧붙여 일본정부와 연합국 점령 당국의 문서는 물론 프랑게문고Prange Collection, 일본 지방자치체의 공문서 등 광범하고 다양한 문서를 발굴하고 구사했다”면서 이후 연구를 위한 사료적 토대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지은이는 기존 연구가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인 운동가(일꾼)에 대한 천착, 쓰시마의 사례를 통한 지방사 차원의 재일조선인 운동사 연구,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대한 재일조선인들의 인식과 반응 분석 등 전후 재일조선인사 연구는 물론 동시기 동아시아사의 구조와 성격 해명을 위해서 음미할 만한 여러 가지 참신한 접근을 시도한 점도 이 책의 미덕으로 꼽았다.

돋보이는 학문적 성실성

이 책의 원서는 2010년 지은이가 히토쓰바시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데 한국어판을 내면서 지은이는 대대적인 수정, 보완을 했다. 해방 전의 재일조선인사를 개괄하는 ‘특별 보론’을 책머리에 싣고, 전범 처리를 위한 도쿄재판에 대한 조선인사회의 시각과 한국과 접한 ‘국경의 섬 쓰시마’에 거류하는 조선인의 ‘해방 5년사’를 다룬 논문 두 편을 말미에 첨부했다.
이는 사료의 추가나 추가적인 연구 성과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 지은이는 밝히는데, 결과적으로 조선인사의 거시적 조망과 미시적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원서의 충실한 수정증보판이 되었다. 지은이의 학문적 열정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의 기존 시각에서 본다면 이 책은 ‘조총련’의 전사前史 혹은 조총련계 재일조선인들의 해방 초기 운동사로 읽힐 수 있다. 재일조선인들의 해방 5년사가 민단이 아닌 ‘조총련’의 전신으로 일컬어지는 조련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냉전과 분단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로 재단하는 전형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결과로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겨진 이들이 점령군 측의 몰이해와 일본의 식민주의에 여전히 노출된 가운데, 남이냐 북이냐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경계인’들의 역사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은이가 의도한 “동포가 읽을 만한” 역사이면서, 읽는 이들에게 민족사로서의 ‘한국 현대사’란 생각거리를 던지는 묵직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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