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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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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쪽 | | 129*206*10mm
ISBN-10 : 893203494X
ISBN-13 : 9788932034942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중고
저자 박준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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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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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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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게 당도하는 말들, 과거에 있었던 기억의 한 풍경들 단 한 권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단 한 권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인 박준이 2012년 첫 시집 이후 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시집에서 상대에게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으로 폐허가 된 자신의 자리를 돌보던 ‘나’는 이번 시집에서 당신을 돌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시집의 화자인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화자 ‘나’가 기다리는 것은 미래의 무언가가 아닌, 과거에 서로를 다정하게 호출했던 안부의 말, 금세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일상의 말들 등 과거에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다. 그렇게 ‘나’는 그 말들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을 기다리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먹으면 좋을 소박한 음식을 준비하며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보낸다.

저자소개

저자 : 박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선잠/ 삼월의 나무/ 84p/ 쑥국/ 그해 봄에/ 사월의 잠/ 문상/ 목욕탕 가는 길/ 아,/ 생활과 예보/ 연풍/ 우리의 허언들만이/ 낮과 밤

2부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여름의 일/ 초복/ 손과 밤의 끝에서는/ 우리들의 천국/ 단비/ 마음이 기우는 곳/ 목소리/ 바위/ 뱀사골/ 오름/ 장마/ 메밀국수/ 처서/ 연년생

3부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능곡 빌라/ 가을의 말/ 마음, 고개/ 호수 민박/ 맑은 당신의 눈앞에, 맑은 당신의 눈빛 같은 것들이/ 나란히/ 이름으로 가득한/ 안과 밖/ 미로의 집/ 종암동/ 천변 아이/ 멸치/ 가을의 제사

4부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숲/ 겨울의 말/ 좋은 세상/ 남행 열차/ 잠의 살은 차갑다/ 큰 눈, 파주/ 살/ 겨울비/ 오늘/ 입춘 일기/ 세상 끝 등대 3

발문
조금 먼저 사는 사람 · 신형철

책 속으로

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다시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둑과 단단히 살을 굳힌 자갈과 공중을 깨며 부리를 벼린 새들의 천변을 마주하면 적막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다만 낯선 소리라도 듣고 싶어 얇은 회벽에 귀를 대어보면 서로의 무렵에서 기웃거렸던 우리의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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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다시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둑과 단단히 살을 굳힌 자갈과 공중을 깨며 부리를 벼린 새들의 천변을 마주하면 적막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다만 낯선 소리라도 듣고 싶어 얇은 회벽에 귀를 대어보면 서로의 무렵에서 기웃거렸던 우리의 허언들만이 웅성이고 있었다
―「우리의 허언들만이」 전문

나는 사실 꽃 지고 열매 맺힌 이 길을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한번은 수국이 피어 있었고
다른 한번은 눈이 내렸다

근처에 넓은 목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나의 무렵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
당신의 걸음은 빠르기만 했다
―「오름」 부분

곁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신은 나와 헤어진 자리에서 곧 사라졌고 나는 너머를 생각했으므로 서로 다른 시간을 헤매고 낯익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 시간과 공간 사이, 우리는 서로가 없어도 잔상들을 웃자라게 했으므로 근처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도 있었다
―「우리들의 천국」 전문

나는 저녁으로
쑥과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일 생각을 한다

[……]

나는 벽을 보고 돌아누워
신발을 길게 바닥에 끌며
들어올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쑥국」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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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저자, 박준 신작! 단 한 권의 시집과 단 한 권의 산문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시인 박준이 두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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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저자, 박준 신작!

단 한 권의 시집과 단 한 권의 산문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시인 박준이 두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펴냈다. 2012년 첫 시집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다. 지난 6년을 흘러 이곳에 닿은 박준의 시들을 독자들보다 “조금 먼저” 읽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작정作情”어린 발문이 더해져 든든하다.
시인은 말한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고. ‘보고 싶다’는 바람의 말도, ‘보았다’는 회상의 언어도 아니다. ‘볼 수도 있겠다’는 미래를 지시하는 언어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함께할 수도 있는 시간을 짚어낸다. 함께 장마를 보기까지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을 담담한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인의 서정성과 섬세한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묵묵히 차오르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지난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허수경은 “이건 값싼 희망이 아니라고 당신이 믿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의지해 다시 한번 박준이 보내는 답서에 담긴 아름다움을, 다시 다가올 우리의 시작을 믿어본다.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현재로 도착하는 과거의 말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숲」 부분

이 시집의 화자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낮에 궁금해한 일들”에 대한 답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낮과 밤」). 그런데 박준의 화자 “나”가 기다리는 것은 미래의 무언가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다. 과거에 서로를 다정하게 호출했던 안부의 말, 금세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일상의 말들. 오늘의 내게 당도하는 말들은 과거에 있었던 기억의 한 풍경들이다. 신형철에 따르면 박준에게 과거는 “더 먼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지금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부분

과거가 현재로 도착하는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지금 이 순간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태백에서 “나”는 두 번의 편지를 쓴다. 첫번째 편지에서 나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를 쓰지만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린다. 그리고 두번째 편지에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는다. 처음 쓴 편지에서 이미 벌어진 일들을 풀어놓았다면, 그다음 편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시하는 말이 적힌다. 나는 아직 미래에 닿지 않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다 보면 미래의 나는 당신과 함께 장마를 볼 수 있는, 바로 그곳으로 향할 수 있다.

당신보다 한 걸음 먼저 사는
‘돌보는’ 사람

그때까지 제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 저는 입을 조금 벌리고 턱을 길게 밀고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더 오래여도 좋다는 듯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말입니다
―「메밀국수-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부분

그렇다면 이 시집에서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앞서 우리는 과거에 나와 당신이 나누었던 말들이 현재의 나에게 도착하는 지점에 대해 논했다. 아마도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그 말들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 다른 말로는 ‘당신’, 그리고 시인의 표현으로 ‘미인’일 것이다. “먼 시간을 헤아리”며,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는 ‘나’는 과거에 헤어졌던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창을” 여는 작은 기척에도 “하고 있던 일을” 바로 접을 만큼 보살피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84p」). 격렬하지는 않지만 생활 속의 매 순간 ‘나’의 촉각을 세우게 하는 마음을 두고 신형철은 “돌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박준의 돌봄이란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이며, 그렇기에 이 시집의 화자는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시집에서 박준의 화자는 “오늘 너를 화구에 밀어넣고” 내려오며, 예전에 너에게 받았던 조촐한 생일상을 떠올린다. 지난 시집에서 상대에게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으로 폐허가 된 자신의 자리를 돌보던 “나”는 이번 시집에서 당신을 돌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내”가 당신을 돌보는 방법으로 시인이 택한 것은 음식이다. 지난날 나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생일상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먹으면 좋을 소박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겨울 무를 꺼내” “어슷하게 썰어” 담거나(「삼월의 나무」), “쑥과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일 생각을 한다(「쑥국」). 밥을 먹지 못하는 상대를 위해 무쳐놓은 도라지를 싸주거나(「사월의 잠」), 흰 배추로 만들 만두소를 떠올린다(「메밀국수」). 당신이 먹으면 좋을 것들을 준비하려는 마음가짐, “이런 마음먹기를 흔히 ‘작정作定’이라고 하지만” 여기선 “작정作情”이라 말해보기로 한다. “돌봄을 위한 작정, 그것이 박준의 사랑이다”(신형철).

[뒤표지 글]
흘려보낸 날들의 뒷모습을 봅니다. 사람의 기대 같은 것으로. 뒤늦음으로. 풀 죽은 미움 같은 것으로.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앉아서. 마음 높이 거짓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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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 한 달 동안 읽을 책 | me**ats | 2020.01.2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1
    시. 시라는 것은 참 독특합니다. 몇 년 전 읽고 헛소리다 냉소하며 지나쳤던 시가 어느 날은 차디찬 겨울에 불을 지릅니다. 신...
    시. 시라는 것은 참 독특합니다. 몇 년 전 읽고 헛소리다 냉소하며 지나쳤던 시가 어느 날은 차디찬 겨울에 불을 지릅니다. 신기합니다. 어느 시는 처음부터 화살촉처럼 마음을 뚫고 머물러 떠나가지 않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우연히 마주친 게 벌써 저번 봄입니다. 아프지만 또 밝아서 이상했습니다. 좋았습니다. 얼음장이 아니라 얼음장 속의 촛불 같았습니다. 계절이 네 번 바뀔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또 그냥 지나갔는데. 어쩐 일인지 무슨 바람인지 그날은 새로운 봄이 도착하기 전에 꼭 이 시집이 갖고 싶었어요. 마음이 가난해서 시는 살 수 있어도 시집은 못 사던 제가 시집을 가지고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시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시는 지금은 마음에 없어 보이더라도 몇 년 후 어느 바람이 부는 날 그치는 날 숨어있다가 나타나겠지요. 
  • 박준 작가님의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전에 박준 시...

    박준 작가님의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전에 박준 시인님의 시집을 보고 인상이 깊었고,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박준 시인님의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고'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지... 많은 내용을 함축된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회상이 아닌 앞으로 남은 미래를 지시하는 언어 속에서 언젠가 우리는 함께할 수도 있는 시간을 짚어낸다는 서평을 듣고 앞으로 내릴 장마를 함께 보기까지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을 담담한 기다림을 ㅗ채워가는 박준 시인님의 서정성과 섬세한 언어를 읽으면서 새로운 감정을 느껴본 것 같습니다.

    박준 시인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내적으로 묵직하고 따뜻한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준 시인님의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책을 읽으면서 미래를 생각하고, 다가올 희망적인 일들을 생각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   목소리     어른들도 상철이라고 했고   아이들도 상철...

      목소리

     

      어른들도 상철이라고 했고

      아이들도 상철이라 불렀는데

      정말 그이의 이름이었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다리가 조금 불편했어

      그러면서도 얼마나 잘 뛰는지

     

      비 오면 비온다고 소리치며 뛰고

      누구 집에 낯선 사람 왔다고 뛰고

      등꽃 피었다고 뛰고

      그믐이라고, 보름이라고 뛰고

     

      그중 목소리가 제일 클 때는

      밥 먹고 뛸 때였어

     

      뭘 뭐라고 해

      자기 밥 많이 먹었다고

      말하면서 뛰는 거지

     

      너도 그만 일어나서 한술 떠

      밥을 먹어야 약도 먹지

      병도 오래면 정들어서 안 떠난다

     

      일어나, 일어나요

     

    -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기억 되는지는 어쩌면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그저 기억된다는 거, 그거면 행복한 일이겠다. 나는 그럼 당신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 보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야 시를 올곧게 이해했다 할 수 있다. 지레 겁을 먹었던 탓인지 읽는 족족 나가 떨어졌던 ...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야 시를 올곧게 이해했다 할 수 있다. 지레 겁을 먹었던 탓인지 읽는 족족 나가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어떠한 마음가짐이어야 시인이 품은 큰 뜻에 다가설 수 있는지. 한낱(?) 글 앞에서 작아지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는 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쉽고 어려움 여하를 떠나 도전 아닌 도전에 나섰다. 시는 어렵다는 내 안에 깊이 박힌 편견에의 도전이었고, 이번에는 뭔가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 탓에 도전이 아니기도 했다. 사람의 수준이라 하는 건 도토리 키재기와도 같았던지, 발문의 시작 부분에는 이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조촐하게 시작된 박준의 시 쓰기가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가는 과정을 얼마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이 예외적인 성공이 그의 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 될까 염려되었다.”

    우린 박준의 시로부터 무엇을 읽어내고 싶었던 걸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심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나보다 나이 어린 시인의 시를 읽으며 그 나이라 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었다. 시를 쓰기 위함이었던지, 저자의 생활 반경은 퍽이나 넓었고, 나로서는 고작 여행사를 따라 하루, 그것도 반나절 유명 장소만을 훑기 바빴던 곳에서 시들은 쓰여졌다. 아무도 주목 않는 탄광촌 즈음으로 여겨왔던 태백에서 저자는 어둠이 가득한 가운데 빛을 보았다. 북녘 땅을 바라보기에 좋은 곳으로만 여겨 왔던 철원에 삼십 년 동안 막국수를 팔아온 가게가 있다는 걸 나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한 번도 닿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섬 증도를 떠올릴 적마다 나는 기대감에 발갛게 상기된 표정을 짓곤 하는데, 저자는 가장자리가 헌 배낭을 내려 둔 채 그곳에서의 휴식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쳤던 유명 대학의 소재지 즈음으로 받아들여 온 종암동에서 저자는 아버지에게 눈물을 선사한 할아버지의 냄새를 느낀다. 굳이 이를 표현하자면 경험이 빚어낸 ‘감수성’ 즈음에 해당할 터이다. 우린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으나, 여기서 비슷하다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오로지 시간 뿐, 그 외의 것은 하나같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혼자만의 독백과도 같았던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듣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양 읽혔다. 처음에는 분명 아니었는데, 나는 어느 순간 그가 낭송하는 시들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봄은 진정 죽기에 좋은 계절이었던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면 밥이라도 먹고 갈 것이지, 왜 하필 그 순간에 당신은 바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던지. 글이 상대에게 닿기까지의 시일이 장마를 함께 맞이할 무렵까지이듯 나의 질문도 당신에게 언젠가는 닿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상하게 내 안에서 일었다. 당신은 함께 장마를 볼 수 있는 사람을 기대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기대할 바 없는 나는 ‘함께’라는 단어를 은연중에 힘줘 읽으며 헛된 바람에 빠져들었다. 아아, 독자의 독이 獨(홀로 독)임을 내게 가르쳐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시집에 실린 첫 시다. 박준 시인의 시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평범한 낱말과 쉬운 문장 구조이지만 은근하고 강력한 자장을 갖고 있다.그리하여 시인의 고백 같지만 시를 읽는 나도 한때 같은 경험을 한 듯 감정이입하게 된다. 서투르지만 곧바로 다가간 우리, 같은 음식을 먹고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을 다 하겠다는 다짐까지 이어진다. 몸을 툭툭 건드리기도 하는 사이로 나아가 가뭇없는 선잠과도 같았던 “그해 우리.” 후속편 같은 시를 만날 수 있다. “늦은 해가 나자 /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 / 옷을 힘껏 털었고 // 그 소리를 들은 저는 /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 창밖으로 / 겨울을 보낸 새들이 /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 온몸으로 온몸으로 /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84p」).

     

     

    문상

     

    한밤

    울면서

    우사 밖으로 나온 소들은

    이곳에 묻혔습니다

     

    냉이는 꽃 피면 끝이라고

    서둘러 캐는 이곳 사람들도

    여기만큼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냉이꽃이 소복을 입은 듯

     

    희고

     

    머지않아 자운영들이 와서

    향을 피울 것입니다

     

    소는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지만 고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살아있는 목숨 그대로 땅에 묻힌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 소가 묻힌 곳에 핀 냉이꽃이라고 모를까. 소복을 입은 듯 핀 냉이꽃 근처로 나물 캐는 사람들은 들지 못한다. 소가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알고 있는 바에야 차마 갈 수가 없다. 냉이꽃이 소복을 입고 상을 치룰 때 자운영이 찾아와 향을 피울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소의 죽음도 처연하지만 개의 생이별도 깊은 슬픔이다.새끼 여섯을 낳고 “한 마리는 인천으로 / 한 마리는 모래내로 /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 그렇게 가도 / 내색이 없다가 // 마지막 새끼를 / 보낸 날부터 // 단비는 집 안 곳곳을 /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 밤이면 /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 새벽이면 /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 멀리 방죽까지 나가 / 함께 울고 돌아왔다”(「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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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서클체인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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