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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시선 235)
| A6
ISBN-10 : 8936422359
ISBN-13 : 9788936422356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시선 235) 중고
저자 정호승 |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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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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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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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정호승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착하고 맑은 시심을 간직하면서도, 낮은 곳에 임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실상을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명료하면서도 순수한 시세계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격조있는 슬픔의 정조를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표현해낸다. 정호승은 또한 시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다. 이들 시편에서 시적 자아는 '참회'를 멈추지 않는 자아이며, 이미 참회한 것들을 깨달음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자아이다.

저자소개

목차

[ 제1부 ]
시인 / 이사 / 신발끈을 맬 때마다 / 혀 / 소 / 만월 / 얼음부처 / 산산조각 / 바닥에 대하여 /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 / 시각장애인 식물원 / 도요새 / 물 먹는 소 / 유실 / 통닭 / 연꽃 구경 / 헌식대에 누워 / 나의 수미산 / 노모의 텔레비전 / 불국사 / 막다른 골목 / 부도밭을 지나며 / 12월 / 맹인수녀 / 노인들의 냉장고 / 나의 수미산 / 겨울부채를 부치며 / 걸인 /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 갓난아기를 위한 장례미사 / 촛불의 그늘 / 겨울 한강 / 밤의 십자가 /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잔치국수 / 영등포가 있는 골목 / 연평도 / 불일폭포
[ 제2부 ]
어린 낙타 / 국화빵을 굽는 사내 / 부드러운 칼 / 나비 / 가시 /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살모사 / 참회 / 미리 읽어본 아버지의 유서 / 내 가슴에 / 마음에 집이 없으면 / 꽃과 돈 / 똥 / 겨울 산길을 걸으며 / 닭 / 불면 / 아버지를 찾아서 /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 내 그림자에게 / 이별 / 사랑에게 / 야간분만 / 빈손 /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며 / 꿈속의 꿈 / 작은 주먹 / 벽 / 입관실에서 / 눈사람 / 버려진 골목 / 무덤을 지키는 개 / 유기견(遺棄犬) / 막장에서 / 자살하는 이에게 바치는 시 / 물 위를 걸으며 / 무릎
- 해설 / 김수이
-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바닥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학창시절 나는 정호승시인의 시와 함께 자랐다. 단 한편의 시로...
     

    바닥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학창시절 나는 정호승시인의 시와 함께 자랐다. 단 한편의 시로 며칠 밤을 가슴앓이하기도 하고, 그와 같은 시를 써보겠다고 서툰 재주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정호승 시인은 사춘기 소녀의 여린 감성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랑과 슬픔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호승의 시는 삶의 위안인 동시에 희망이 되어준다. 부드러운 언어로 그려내는 심미적인 시적 세계는 그의 시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터트리는 시의 꽃망울은 슬프면서 따뜻하고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으로 촉촉이 가슴을 적신다. 


    그동안의 시들이 그래왔지만, 유독 「이 짧은 시간 동안」은 차분한 감정으로 읽힌다. 이번 시집에서 정호승은 몸을 낮추고,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이야기한다. 자신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진다. 그렇게 시의 십자가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연민이 베어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바닥에 대하여 (p.20) -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 내 가슴에 (p.87)-


    정호승 시인이 슬픔과 사랑의 서정시인이라 해서, 지나친 감상주의에만 빠져있거나, 아름다운 감동과 위안만을 위한 시만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정호승의 시에는 ‘삶을 바라보는 지혜’나 ‘상처를 견디는 법’등의 살아가는 법이 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삶을 응시하는 노련한 시선에는 실존주의적인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시인이 아닌 인생 선배로써 건내는 시인의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시집은 유독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 바닥을 알게 하고, 어느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울고, 등에 맨 십자가의 무게에 허리가 휘고,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때론 자신에게 주어진 촛불을 건네받기도 한다. 이 삶의 무게는 누구나 짊어지고 가는 것이면서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몫이다. 다만, 가난하고 버려진 자들의 아픔을 주목하는 시인의 따스한 손길에서 대신할 수는 없어도, 나누어 가짐으로써 조금 덜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1 정호승의 시를 읽다가 보면 눈물이 난다. 시인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으나, 그가 빚은 언어의 진실을 ...
    1 정호승의 시를 읽다가 보면 눈물이 난다. 시인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으나, 그가 빚은 언어의 진실을 대하는 순간만은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을 갈무리하고 싶다. 『이 짧은 시간 동안』은 2004년에 발간된 여덟 번째 시집이다. 어쩌다 보니 그의 시집은 전부 소장하게 되었다. 2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응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 「시인」의 전문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본다>고 시인은 말했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것에게서 시를 본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혹한의 사회체제 속에서 시인의 존재는 결빙되어 잊혀졌다. 21세기는 시인에게 제2의 홍적세이다. 12,500년쯤 지나면 간빙기라도 올까? 그는 한 편 한 편이 절명시가 될 것으로 믿고, 온몸으로 진흙의 울음을 토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3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 수차가 함부로 버려진 소금밭에 눈발이 빗금을 치고 지나가다가 무너진 소금창고 지붕 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 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 「도요새」의 일부 소금은 방부제와 조미료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몸의 수분 농도는 해수와 유사하다. 설탕이 거짓의 언어에 해당한다면, 소금은 진실의 언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화투나 치고 소주나 마시고 있지만, 시인은 외로이 소금밭에서 울고 있다. 아무도 시인의 눈물로 만든 언어를 맛보려 하지 않는다. 4 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는 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마음에 꽂힌 칼 한자루보다 마음에 꽂힌 꽃 한송이가 더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가 - 「영등포가 있는 골목」의 일부 그래도 믿는다. 때가 되면 민물도요새처럼 예수가 돌아 올 것을. 사랑은 누구나 눈물과 결핍으로 만들어간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부족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무릎을 끓고 스스로 사랑이 된다. <죄가 많아 눈물이 많은> 사람, <세상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 <가시 많은 나무에서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 그는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다>고 한다. 5 살아있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초월의 가장 가난한 자세>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섬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바다 속으로 손을 잡고 있다. 은폐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이 자기에게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6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징표이다. 또 다시 피를 흘린다 하더라도, 사랑의 흐름은 계속되어야 한다. 슬프기에 따뜻하고 섬세하기에 지속적일 수 있는 사랑 - 꿈꿀 수 있을까, 나도? ***************************** # image; 유영교「사랑」
  • 정호승님의 시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투박하다. 그러나 따뜻하다. 소외된 사람이 있어서 아프고 쓰라리나 그러나 ...
    정호승님의 시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투박하다. 그러나 따뜻하다. 소외된 사람이 있어서 아프고 쓰라리나 그러나 따뜻해진다. 그렇게 노래하고 있는 시인이 사실 참 부럽고 고맙다., 난 시도 잘 모르고 그렇게 시를 쓴다는 것도 잘 모르지만 시 한편이 때론 커다란 버팀목이 될수도 지친 나를 위로해줄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류시화님.,김용택님,.정호승님,. 내게 있어서 다시금 벅차게.,때론 가슴 떨리게,.그렇게 물들여주신 분들,. 새삼 감사드린다. 책속으로,. 《부도밭을 지나며》 ,.,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 《내 가슴에》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랑이란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이별》 .. 처마 끝에 맺힌 고드름도 한순간에 마당에 툭 떨어지는데 나는 아직 이별의 순간을 떨치지 못하고 운다. .. 그 외 《통닭》《입관실에서》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하게 해주는 구절이 많은 시였다., 나의 관을 툭툭치면 어떤 소리가 날까? 맑은 소리가 날까?나도 아무소리가 안날까? 아님 어두침침한 소리가 날까? 나의 소리는 내가 만들어야겠다.ㅋ
  • 오 년여 만에 나온 시집이라 하니 “시가 나를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상실감에 의해 한꺼번에 씌어진 것들”이라거나 “...


    오 년여 만에 나온 시집이라 하니 “시가 나를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상실감에 의해 한꺼번에 씌어진 것들”이라거나 “시가 내 인생을 위로해줄 때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시인이 말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또 시인의 가슴속에 담긴 시는 아직 시가 아니라고 믿는 정호승인 만큼, “시를 쓰지 못하며 시인으로 보낸 지난 세월을 뼈저리게 아파했”다는 말에도 덩달아 내 뼈가 저렸다. 독자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정호승의 이번 시집에서는 불교적인 지향성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내면의 진실 추구라는 시의 본령과 불교적인 명상의 차이가 무엇이겠느냐는 데 이르고 보면, 연꽃이나 부도, 수미산 등의 시어가 상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과의 등짐을 나타내고자 함은 아닌 것이리라.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연꽃 구경 일부》 p34

    부도밭으로 난 눈길을 홀로 걸으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린다
    누가 줄 없는 거문고를 켜는 소리가
    보인다 저 작은 새들이 눈발이 되어
    거문고 가락에 신나게 춤추는 게 보인다
    슬며시 부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밝은 미소가 보인다
    《부도밭을 지나며 일부》 p44

    그러면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을 때 시인은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고 말한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 일부》 p19

    떨어져 죽어야 사는 것이다
    물보라를 이루며 산산조각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져 죽어야
    사는 것이다
    (…)
    산과 들을 버리고
    밑바닥이 되어 멀리 흘러가지 않으면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새롭게
    살 수 없는 것이다
    《불일폭포 일부》 p74

    그에 따르면, 깨졌다고, 그래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또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높이에서의 낙하도 바로 해탈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뜸의 경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시집에서와 달리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도 적고 있는데, 아들에게 들려주는 시인의 말은 안타깝다 못해 절절한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들을 미워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인 것처럼
    아버지를 미워하는 일 또한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나니
    아들아 겨울부채를 부치며
    너의 분노의 불씨가 타오르지 않게 하라
    (…)
    나 다음에 너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다면
    겨울부채를 부치며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아들이 되리니
    《겨울부채를 부치며 일부》 p52

    “겨울철에 부채를 선사하는 이 마음을/너는 아직 나이 어려 그 뜻을 모르려니/그리워 깊은 밤 가슴에 불 일거던/오뉴월 같은 더운 불길 이 부채로 식히려마” <임제의 시>

    정호승의 겨울부채를 읽으며 아비의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떠올리는 대신, 그리운 님을 향해 타오르는 불길을 달래기 위한 여인의 또 다른 겨울부채를 떠올리는 건 시를 읽는 독자의 장난기와 매몰찬 심성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방안을 장식하듯이
    하느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꺾어
    천국을 장식합니다
    《갓난아기를 위한 장례미사 일부》 p58

    과연 그럴까? 그러나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기를 잃은 젊은 엄마는 “쓰러질 듯/터져나오는 울음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급히 성당 문을 열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꽃봉오리가 꽃잎을 펴듯 주먹을 편다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불끈
    주먹을 쥐어야만 되는 줄 알았던 손을 펴자
    내 작은 주먹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작은 주먹 일부》 p116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가족에 이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고, 시인은 잠을 자는 순간에도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을 것 같은 정호승도, 나이 지천명을 훌쩍 넘긴 이때에 이르러 여전히 단단히 굳어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눈을 떠나가는 것이다.

    여름이 이대로 끝내지는 않겠다는 듯 악다구니를 부리는데도 끝내 가을은 계절의 문턱을 넘어 우리 곁에 섰다.
    시를 적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남이 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시가 문득문득 속된 내 정신을 내려치는 채찍이 될 수는 있겠다. 이 가을에 읽는 시는… 
    모두 일흔네 편의 시 중에서 밑줄을 그은 것이 열한 편, 이만하면 들인 돈(이런 속물)과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 아무런 의심 없이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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