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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재들(걸작 논픽션 7)(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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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쪽 | 규격外
ISBN-10 : 8967350929
ISBN-13 : 9788967350925
최고의 인재들(걸작 논픽션 7)(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 | 역자 송정은 | 출판사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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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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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책 상태 아주 깨끗하고 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jksbmn7***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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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기획한 어리석은 천재들! 『최고의 인재들: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는 미국이 베트남전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이다. 뉴욕타임스에서 일할 당시 미군의 베트남 주둔에 의문을 제기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저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맥조지 번디라는 인물의 취재를 시작으로 케네디 대통령, 린든 존슨 대통령 시대의 워싱턴 엘리트들이 어떻게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실수를 범했는지 광범위한 연구 조사와 인터뷰로 상세하고 신랄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베트남의 입장과 미국의 입장 모두에서 전쟁을 바라보았지만, 베트남 전쟁 자체보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주목하여 그 전쟁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뛰어난 인재들의 집합이었던 이 행정부는 현대 역사에 대한 전문 지식인들에게 그 어떤 자문도 듣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으며 그 어떤 역사적 경험도 고려하지 않은 오만한 결정이었다고 전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정치계의 비화를 들려줌과 동시에 모순과 구렁텅이에 쉽게 빠지는 인간의 심리학적 측면도 묘사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데이비드 핼버스탬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중 한 사람이다. 1934년 4월 10일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대학 졸업 후 작은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가 『내시빌 테네시언』에서 자리를 얻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파헤쳐 닉슨을 사임하게 했던 밥 우드워드 기자도 ‘미국 기자들의 대부’라고 부르며 존경한다는 핼버스탬은 30세 때인 1964년 『뉴욕타임스』 기자로 재직 중에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는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 후에는 『하퍼스 매거진』이라는 잡지에서 역시 베트남전과 관련된 보도를 해 주목을 받았는데, 그를 정말 위대한 기자이자 역사가로 끌어올린 것은 필생의 역작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뉴저널리즘의 창시자이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 외에 핼버스탬은 민권운동을 취재한 기록인 『아이들』, 스포츠 저널리즘을 다룬 『게임』 등 모두 21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2007년 4월 23일, 국내에도 번역·소개된 한국전쟁을 다룬 『더 콜디스트 윈터』의 원고를 탈고한 뒤 닷새 만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마지막 유작으로 남은 이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역자 : 송정은
역자 송정은은 서울에서 태어나 국민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수년간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며 번역에 대한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고 번역계에 입문,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 『제인 오스틴: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광기의 해석: 프로이트 최후의 2년』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좋은 슬픔』 『미디어 모노폴리』 『은행, 그 욕망의 역사』 『브루클린을 부탁해』 『케빈에 대하여』 『맨 다이어트』 등 다수의 인문서와 소설을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여 한국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동 대학원 아프리카·불어권언어문화학과에서 불어 번역과 아프리카 전반의 정치·사회·문화·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역자 : 황지현
역자 황지현은 부산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중국을 경영하라』 『미국 시대의 종말』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 등이 있다. 현재 외서 기획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목차

서문

1장 러벳과의 회동
2장 이제 자유주의자들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
3장 모든 사람의 차선책, 딘 러스크
4장 전설적인 존재, 맥조지 번디
5장 1961년의 상황들
6장 영국적 자질과 식민주의
7장 우리는 왜 중국을 잃었는가
8장 실용과 독단의 반공주의
9장 로스토와 테일러
10장 하킨스의 사령부, 애버럴 해리먼의 등장
11장 열정을 저버린 불안이 만들어낸 전쟁 개입
12장 베트남 최고의 작전 장교, 포드맨 밥 맥나마라
13장 베트남의 수렁 속으로 빠지다
14장 워싱턴을 서성이는 과거의 그림자들
15장 지엠 체제 종말의 조짐들
16장 1964, 잃어버린 한 해와 딘 러스크
17장 폭격을 둘러싼 갈등들
18장 관료사회의 노련한 경기자들
19장 1964년, 우상들이 흩어지다
20장 뼛속까지 정치적인 사람, 존슨
21장 전쟁 게임
22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베트남
23장 행동주의의 정신, 전진하는 본능
24장 웨스트모얼랜드, 세계 총사령관이 되길 원했던 자
25장 강력한 경기자
26장 힘의 오만
27장 진퇴양난

에필로그
덧붙이는 말
저자 노트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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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뉴저널리즘을 창시한 독보적인 저서 흡입력 강하고 상세하며 충격적이고 신랄한 탐사 “핼버스탬은 내가 존경하는 미국 기자들의 대부다.” _워터게이트 스캔들 기사로 닉슨을 사임시킨 밥 우드워드 ★베트남전 진실 밝혀 1964년 퓰리처상 수상★ ...

[출판사서평 더 보기]

뉴저널리즘을 창시한 독보적인 저서
흡입력 강하고 상세하며 충격적이고 신랄한 탐사

“핼버스탬은 내가 존경하는 미국 기자들의 대부다.”
_워터게이트 스캔들 기사로 닉슨을 사임시킨 밥 우드워드

★베트남전 진실 밝혀 1964년 퓰리처상 수상★
★핼버스탬을 정말 위대한 기자이자 역사가로 끌어올린 필생의 역작★
★뉴저널리즘을 창시하고 전범을 제시한 독보적인 저서★
★출간 20년 만에 하드커버 15만부, 페이퍼백 150만부 판매 기록★


‘하버드 클럽’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케네디 행정부가 어떤 이유로 베트남전에 끌려들어가고 또 어떻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기록된 베트남전 패배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포드 사 사장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가 국방장관으로 케네디팀에 합류해 현란하게 활동하는 장면, 그러나 베트남전의 정치적 측면은 이해하지 못한 채 기능적이고 양적으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베트남전은 본질적으로 프랑스의 지배에 대한 반식민전쟁이었는데, 오만한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이 지역의 역사에 워낙 무지해 이 전쟁을 반공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은 아무런 선택도 없는 상태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바쳐진 헌사-

“미국이 베트남과 어떻게 결부되었는지를 다룬 포괄적인 대서사시. 어리석은 행동과 자기기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카이사르 시대에 있는 듯한 워싱턴을 그린 흡입력 강하고 상세하며 충격적이고 신랄한 탐사.” _『워싱턴포스트 북월드』

“이 책은 미 제국이 쓴 ‘일리아드’이자 이상주의적인 정신을 찾아나선 미국의 ‘오디세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를 보는 것 같다.” _『보스턴글로브』

“매우 감동적이다.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서사의 힘을 느끼지 않을 길이 없다. 압도적인 힘의 자장에서 인상적이고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이 펼쳐진다. 환상과 신화, 공포와 폭력, 혼돈과 용맹, 긍지와 오만, 무분별함이 한데 섞인 전쟁.” _『로스앤젤레스타임스』

“설득력이 있고, 위트가 넘치며, 시각이 예리하다. 매력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점뿐만 아니라 매우 지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서사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_『뉴 리더』

“매혹적이다. 핼버스탬이 이룬 야심찬 기획. 꼭 읽어야 할 훌륭한 책이다.” _『뉴스위크』

“모든 미국인이 읽어야 할 스토리.” _『세인트루이스포스트 디스패치』

“이 빛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책은 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양심을 휘저을 것이다.” _『뉴욕포스트』

“광범위하게 연구 조사한 자료로 비길 데 없이 써내려간 최고의 역사서.” _존 갤브레이스

“폭넓고 흥미로우며 심오한 독서 경험.” _『뉴욕타임스』

뉴저널리즘을 창시한 책, 드디어 한국에 번역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전설적인 책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이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의회에서 베트남 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개시하지 못하고 있던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72년 대장정을 마치고 출간된 이 책은 1104쪽(한국어판)에 이르는 대작 논픽션이며 미국이 베트남전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이미 핼버스탬은 『뉴욕타임스』 기자로 있던 1964년 미군의 베트남 주둔에 의문을 제기한 일련의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였다. 유명해진 그는 『하퍼스 매거진』으로 자리를 옮겨 몇 달에 걸친 준비와 취재 끝에 케네디와 존슨 시대의 지식인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인물인 맥조지 번디를 다룬 2만 자에 달하는 기사를 써낸다. 잡지나 신문이 오늘날의 텔레비전보다 훨씬 힘이 강했던 그 시대에 번디에 대한 핼버스탬의 기사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그 기사가 한 시대에 대한 초기 개요라는 점을 깨달았으며 단지 표면만 건드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각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는 맥조지 번디뿐만 아니라 케네디 대통령(1961~1963 재직)과 린든 존슨 대통령(1963~1969 재직) 시대 워싱턴 엘리트들, ‘하버드 클럽’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두뇌들이 모였던 케네디의 드림팀이 어떻게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실수를 범했는지를, 그 인물들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개개의 심리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그려낸 이 대작을 펴내게 되었던 것이다. 500회의 인터뷰와 인터뷰 기록만 2천 쪽에 달했을 만큼 방대한 자료조사를 진행한 핼버스탬은 “그들은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전쟁에 대한 의구심을 털어놓았고, 그것은 그들에게 기이한 카타르시스처럼 작용하는 듯했다.” 여기서 그들은 요원부터 1선, 2선, 3선, 4선의 관련자 전원이다.
미국의 랜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착수금 4만 달러(당시 관행으로 볼 때 매우 적은)를 받고 4년간 집필된 이 책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출간 20주년이 되던 해(1992년)에 계산해보니 하드커버 15만부, 페이퍼백 15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웠다. 미국 내 반전 분위기 형성에도 큰 공을 세운, 핼버스탬을 정말 위대한 기자이자 역사가로 끌어올린 책이다. 책이 나오자 『뉴욕포스트』는 “이 빛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책은 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양심을 휘저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워싱턴포스트』는 “카이사르 시대에 있는 듯한 워싱턴을 그린 흡입력 강하고 상세하며 충격적이고 신랄한 탐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실패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전쟁’이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케네디 정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데, 저자의 집필 동기 역시 거기서 비롯된다. 물론 그 전쟁을 실행한 인물은 케네디 사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이었지만, 미국이나 베트남 모두에게 참혹한 상처를 남기고 세계에도 좋지 않은 기억을 안겨준 이 전쟁의 기획자들은 최고 중 최고라는 케네디 정부의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지적이고 이성적인 그들은 왜, 어쩌다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일까?
대개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결정을 내릴 때 그 상황을 이루는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을 바탕으로 오만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때가 많다. 즉 ‘오만과 편견’이 일을 그르치는 것인데, ‘세계질서의 수호자’라고 자부하는 미국(오만) 역시 한 ‘삼류 국가’ 베트남(편견)을 상대로 그런 처참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이 체계적 조사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한 경청 없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수치를 토대로 주먹구구식의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어이없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고도 브레이크를 걸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옳고 정당하다고 믿으며 반反식민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로 오도했고 세계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도미노 이론’을 주장했다. 결국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개입임을 케네디 정부에서 이미 깨달았지만, 뒤를 이은 대통령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건설에 대한 개인적 야망과 관료세계의 경직성, 그리고 미국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자기기만에 뿌리를 둔 ‘낙관주의’가 그들로 하여금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왜 이성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면 표면적으로만 이성적이지 못했던 것일 뿐, 그들은 결과가 참혹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베트남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했던 폭격은 미국의 절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마저도 실패하자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해 폭격수위를 계속 높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폭격은 상대인 베트남을 단결시키는 결과만 나았고, 그들의 침착하고 단호한 대응이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정당성은 설 자리를 잃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처참히 무너졌다.
사이공 입장에서 전쟁을 보기도 했고, 워싱턴 입장에서 전쟁을 보기도 했던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시선은 베트남 전쟁 자체보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 즉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맞춰져 있다. “뛰어난 지성과 명문 학교 졸업장을 자랑으로 삼는 이 행정부는 세계의 일부를 차지하는 현대 역사에 대한 전문 지식인들에게 그 어떤 자문도 듣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얻은 경험 역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국무장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했던 딘 러스크, 모든 현상을 계량화하고 미국의 승리를 장담하며 전쟁을 밀어붙였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눈이 멀었던 대통령 린든 존슨, 그 밖의 수많은 베트남 전쟁 경기자들, 그리고 정신병자로 몰리면서까지 전쟁의 실상을 밝히고자 했던 대니얼 엘즈버그까지, 당시 역사를 구성하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가 총천연색의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가령 1962년에 베트남 최고의 작전 장교가 된 맥나마라는 실제 경험이라고 해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제국을 다루고 거대한 서유럽의 운송수단을 생산한 일뿐이었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케네디 행정부 사람으로서 지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의 상징이었다. 게릴라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부도난 외국 회사를 매입하는 일과 같았다. 미국의 체제를 그곳에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명성이 절정에 달하던 1963년에도 자신이 지휘하는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나 워싱턴의 ‘선량한’ 자유주의 공동체 모두를 안심시키는 인물이었다. 맥나마라가 책임지고 어떤 일을 바로잡는다면 전쟁도 선한 전쟁이 될 수 있었다. 케네디의 드림팀이 꾸려졌을 때 케네디 정부의 구성원들을 이전 정부들, 곧 해리 S. 트루먼 정부의 구성원 및 봉쇄 정책의 입안자들과 비교하는 게 유행을 이뤘다. 이는 곧 케네디 팀을 치켜세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핼버스탬이 보기에 “그 옛날 냉전에 관한 힘겨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케네디 사람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공직에 있었고, 맡은 업무에 탁월했다. 소련을 다루는 방법은 조지 프로스트 케넌이나 찰스 볼런, 애버럴 해리먼과 같은 선배들의 조언을 기반으로 삼아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것이었다.”
“주어진 문제를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가리키는 최고 지향주의라는 말과 그 위험성을 각인시킨 이 책은 그런 이유로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정치계의 비화를 들려줌과 동시에 모순과 구렁텅이로 쉽게 빠져드는 인간에 대한 심리학 서적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 들게 한다.

서문의 주요 내용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1967년 가을에 베트남으로 향했던 길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3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목격한 것들에 대해 두려움과 환멸을 느꼈다. 사이공 사령부는 낙관하고 있었지만, 전쟁은 이미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우리는 군사적 우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정치적 우위에 있었다. 사실 이는 우리가 작정하기만 하면 어떤 전투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잃어버린 전장을 쉽게 보충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일은 사이공의 미국 엘리트들에게서 목격한 낙관주의였다. 내게 그것은 자기기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최종 승리에 다가서고 있고, 한편으로 상대를 궤멸시킬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매우 성급한 논의도 있었다. 심지어 그해 12월에는 몇몇 고위 외교관이 서광이 비친다면서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 (8쪽)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책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목적의식까지 얻었다. 나는 우리가 왜, 어떻게 베트남에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전쟁의 판을 짠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이 지닌 기본적인 의문은 금세기에 가장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북전쟁 이래 가장 최악의 비극을 기획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13쪽)

그러나 케네디 집권 초기에는 행정부와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전혀 의심을 사지 않았다. 새로운 행정부 구성원들이 워싱턴의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인들로부터 개인적 차원에서 동정어린 조언이라도 받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훌륭한 기자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스스로 계몽되어 계몽적인 기관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라서 케네디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똑같은 것을 지향했다. 게다가 대통령 자신의 특출한 스타일과 기자들을 다루는 자신감과 편안함, 텔레비전을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 아찔할 정도로 깍듯한 매너 등은 그가 죽은 뒤 엄청난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의 각료들 중 많은 사람이 뛰어난 작가였는데, 그들은 케네디가 살해된 뒤 그의 재임 시절에 대한 회상을 깊은 슬픔과 함께(때로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감동적인 문장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이는 케네디에 대한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17쪽)

케네디-존슨 팀에게서 배운 또 다른 사실은 그들 모두 매우 총명하고 이성적인 관리자로 유명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대단히 형편없는 관리자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선택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선택에 대한 가능성의 문은 닫혀만 갔다. 인도차이나의 불행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사란 준엄한 선생이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1946년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남아 있던 선택권들이 점점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것도 폭넓은 선택권과 선택에 필요한 최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프랑스에 돌아갈 권리를 주었고, 그들의 의지를 베트남에 무력으로 강요했다. 1950년까지 우리는 반공산주의라는 글로벌 비전에 사로잡혀 이 전쟁을 식민-반식민 전쟁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전쟁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돈이 뿌려지는 곳마다 거창한 수사가 덧붙여졌다. 우리는 대중을 향한 성명과 많은 기사를 조종해서 그것을 반공에 저항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베트남의 빈민들은 이 전쟁을 토착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식민 세력의 전쟁으로 보았을 것이다. (21쪽)

민주당은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트루먼과 애치슨이 지속적으로 받았던 공격 여파로 인해 중국을 잃으면 백악관까지 잃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매카시가 사라진 뒤에도 민주당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에 관대하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물론 공화당은 중국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그들이 마지막으로 제안했던 것은 전투를 위해 미국 청년들을 중국에 파견하자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마땅히 제안할 정책도 없었다. 중국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었고, 사건들은 우리 통제 바깥에 있었으며, 우리가 지닌 봉건적 대리권은 역사의 영향력에 휩쓸려갔기 때문이다. 그 정치적 암흑기에서 역사의 성쇠는 민주당의 탓으로 돌려지기 쉬웠다. (23쪽)

그것은 매카시 시대의 끔찍한 그림자였고, 그 그림자는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계산에도 은연중에 무겁게 깔려 있었다. 물론 주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정책을 분석하자는 논의는 없었다. 그것은 매우 비밀스러운 주제로서 잠재된 공포의 반증이었다. 미국이 전투부대를 파견하거나 증강할 경우 적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판단하는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볼런과 케넌에 대응하는 아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의 함락과 함께 설 자리를 잃었다. 아시아에 대해 자문했던 사람들은 유럽 전문가이거나 펜타곤에서 차출된 이들이었다. 마침내 책을 끝마치고 출판사 발행인의 승인을 얻었을 때 나는 그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장을 추가해 특출한 중국통이었던 존 페이턴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실었다. 매카시 시절에 그의 경력은 완전히 난도질당했다. 건강하고 나은 사회라면 베트남에 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데이비스 같은 사람을 국무차관보 자리에 앉혀야 했다. (24쪽)

에필로그의 주요 내용

러스크는 상호안전보장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남베트남은 상호안전보장과 관계를 맺었고,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했다. 베트남은 존재 자체를 뛰어넘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러스크의 부하들이 품고 있던 의심은 그의 자신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미국인이 해야 하는 것을 확신했고,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군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굳게 믿었다. 군의 보고와 추정을 위험할 정도로 거의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던 그는 부하들에게 하노이에서 보내는 신호를 감시하고 기다리는 것이 자네들 임무라고 말했다. 신호가 나타나면 그것은 그들이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일 것이고, 그때부터 국무부의 임무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자네들은 그 신호를 찾아야 하고, 그들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 내게 보고해야 하네.” 러스크가 보좌관들에게 한 말이었다. 어느 부관은 절대 위선적이지 않은 것이 러스크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진실함의 결정체였던 그는 세상을 아직도 삼십대의 젊은 시절에 발견했던 방식 그대로 믿었다. 곧, 선善은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동적인 믿음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니까. (1001쪽)

베트남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던 과거 1964년과 1965년의 그 기나긴 고통의 시기에 그들은 모두 합리적인 해결책을 논의했던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호찌민 역시 이성적이라는 가정 아래 토의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찌민이 미국의 관점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판명되고 전쟁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갑자기 린든 존슨도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무엇이 잘못 진행되고 있고,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아는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거꾸러지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덫에 걸렸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전 국민이 숫자놀음을 깨닫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수록 그는 더욱 숫자를 감추었다. (1003쪽)

로스토는 러스크와 맥나마라, 특히 맥나마라와 함께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 또한 발휘했다. 그는 방대한 군의 정보를 꼼꼼히 읽고 한두 건의 긍정적인 것들만 선별해서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매우 쾌활하고 낙천적인 어조로 러스크와 맥나마라를 불렀다. “최근에 입수한 문서들을 보셨습니까? 정말 대단하죠! 안쑤옌 전투에 대한 것도 보셨습니까? 대단한 승리를 거뒀더군요. 한 민간 경비 회사가 베트콩 연대를 이겼다지요? 쩌우독에서의 사상자 수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거대하고 방대한 전쟁에서 일어나는 훨씬 비관적인 수백 가지의 에피소드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차지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맥나마라와 러스크는 비관적인 것들을 도태시키기 위해 몇 시간을 바쁘게 보냈고, 일을 마친 다음에야 대통령의 호출에 따를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었고, 정부의 훌륭한 인재들은 스스로 매복되지 않기 위해 소대가 매복된 것을 확인시켜주는 내용이 없는지 샅샅이 확인했다. 전쟁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업무 때문에 이미 고립된 상태였던 린든 존슨은 사실로부터 더욱 멀어져갔다. (1027~1028쪽)

사이공이 신뢰감과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반면, 워싱턴과 미국은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사이공을 워싱턴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1967년에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웨스트모얼랜드와 벙커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전쟁의 이미지에 윤을 내고 늘어가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고안된 연설을 맡겼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웨스트모얼랜드의 등장은 더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을 조종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벙커와 웨스트모얼랜드로서는 대통령이 국내에서 매우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처음으로 접할 기회였을 것이다. 이제 반전 시위는 공격적인 소규모 집단의 목소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1041쪽)

구정 대공세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적의 인내와 지속성, 빠른 회복력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선명하게 노출되었던 것이다. 과거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멀리 떨어진 정글이나 논에서 재빨리 공격을 한 뒤 밤이 되면 사라지곤 했다. 그들이 억세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실감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구정 대공세에서 그들이 의도적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들은 도시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는 매일 미국 기자들과 더 중요하게는 텔레비전 카메라맨들이 그들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미국의 소모 전략에 대한 신뢰는 구정 대공세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현재 존슨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지인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의 신뢰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웨스트모얼랜드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면, 존슨에 대한 신뢰 역시 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 구정 대공세는 전쟁과 관련해 존슨을 발거벗겼다. 존슨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그의 행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무참히 파괴되었다. (1042~1043쪽)

맥조지 번디는 합리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치적 인본주의의 필요성이 재점화되던 시기의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도덕적 가이드라인 없이 과정의 한계를 무력화시킨 것처럼 보였던 행정부의 운용과 절차를 담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기득권층의 사람이었다. 올바른 정책을 올바른 방식으로 결정하는 올바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엘리트 통치자의 능력과 권리를 믿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 명성을 손상시켜 어떤 생각이나 입후보자를 은밀하게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규칙과 관련한 엘리트의 권리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했다. 상원에서는 자신이 행정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었던 주도적 온건파들이 직원들을 보강해 외교정책에 더 큰 역할을 행사했다. 그 몇 년의 시간은 미국 내의 다른 모든 정치집단으로 하여금 그들이 외교 정책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자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10년의 세월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외국인과 흑인, 여성, 노동자들이 나서서 더 큰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해자(성 주위를 둘러싼 못)에 도착했고,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1056~1057쪽)

그러나 존슨 행정부처럼 닉슨 행정부 역시 사건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들은 티에우에게 공군력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그가 정말로 요구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그것은 베트남 국민이 인정하는 진정한 정치적 합법성이었다. 티에우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여위고 깨지기 쉬운 상태로 흘러가던 시기에 북베트남은 완벽한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시간은 그들 편이었고, 그들은 혁명의 합법적 상속자였다. 그 나라에 떨어지는 미국의 폭탄보다 그들의 합법성을 명확히 확신시켜주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결국 미국이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1966년 12월에 하노이에서 자신감에 찬 팜반동은 『뉴욕타임스』의 해리슨 솔즈베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솔즈베리 씨, 미국은 얼마나 오래 싸우고 싶어합니까? 1년? 2년? 3년? 5년? 10년? 20년? 당신들의 바람에 기꺼이 부응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미 공군은 제한된 목표만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 많은 비용으로 남베트남 사람들을 특정 루트로 전송하는 일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행정부 소식통들은 평화 회복의 진전에 찬사를 보냈지만 진정한 평화조약은 없었다. 1972년에 북베트남군의 공격이 미국의 허약한 소득마저 유린해버리자, 절망에 빠진 닉슨은 북베트남에 대한 더욱 맹렬한 폭격 작전을 승인했다. 이는 존슨 시절에 이미 규제 사항으로 정해진 수많은 것을 해제하는 행위였다. 전 세계가 폭격을 주시하고 대의명분이 사라진 가운데, 미국은 더욱 잔인한 존재로 비치게 되었다. 1972년 여름에 평화는 그 어디에도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었다. 시간은 적의 편이었고,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위치, 빠져나갈 수 없는 위치, 포로들을 집으로 보내줄 수 없는 위치, 오로지 상대를 후려치고 폭격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베트남에 우리의 의지를 강요했던 미국의 무능이 이미 1968년에 증명되었는데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 실패를 교훈삼아 우리의 목표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 나라는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초기의 분노는 망연자실로 바뀐 듯했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터널 끝에서도 빛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더욱 어두워진 암흑만이 있을 뿐이었다. (1069~10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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