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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미학
208쪽 | | 128*188*14mm
ISBN-10 : 896564223X
ISBN-13 : 9788965642237
악마의 미학 중고
저자 백상현 |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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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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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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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대상으로 도발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던 화가 발튀스(1908~2001). 그의 작품들은 8~16세 사이의 어린 소녀들을 성적인 코드를 실어 과감하고 미묘하게 비튼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소아성애자’ ‘회화의 프로이트’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하지만 발튀스는 현재까지도 예술가들이 참조하고 대결하는 문제적 작가이기도 하다.

『악마의 미학: 타락과 위반의 중세 미술, 그리고 발튀스』는 라캉 정신분석의 시선으로 발튀스를 들여다보는 인문 교양서다. 이 책의 저자인 백상현은 라캉주의 정신분석 운동을 위해 분투하는, 우리 시대 가장 열정적인 정신분석가다. 그에 따르면 발튀스는 중세 미술의 전통을 잇는 현대의 수도사다. 성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그려낸 화가가 수도사라는 주장은 엉뚱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중세 회화 속에 숨은 타락과 위반의 미학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편견에 답한다. 중세 화가들은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모호하고 타락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 뒤 발튀스는 그와 같은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다.

타락한 이미지를 통해 숭고와 아름다움을 길어낸 발튀스.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고정관념의 노예가 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단초가 된다. 그런 점에서 『악마의 미학』은 기존 미술비평에서 볼 수 없었던 철학적 인식을 드러낸다. 풍부한 도판과 세심한 해석이 돋보이는 이 책은 더욱 진실한 삶을 감각하는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진리가 사라졌다고 믿는 ‘진리 이후’의 시대에 예술과 진리의 관계를 새로이 생각하게 한다.

저자소개

저자 : 백상현
정신분석학자, 분석가, 저술가. 프랑스 발랑스 ‘에꼴 데 보자르’ 학사를 거쳐 파리8대학 예술학 학사-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라깡 정신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이화여대, 숭실대, 강남대 등에서 정신분석을 강의했으며, 현재 ‘한국라깡칼리지(LCK; blog.naver.com/voice2void)’에서 정신분석 상담전문가를 양성하고 있고 ‘서울 라까니언 정신분석 클리닉’에서 분석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과 분석 그리고 저술 활동을 통해 한국에서의 라깡주의 정신분석 운동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2014), 『고독의 매뉴얼』(2015), 『라깡의 루브르』(2016), 『헬조선에는 정신분석』(2016, 공저),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2017), 『라깡의 인간학: 『세미나 7』 강해』(2017),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2018)가 있다.

목차

프롤로그: 과연 예술은 우리의 방황을 치유하는가?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 그림자의 그림자놀이로서의 회화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성상파괴 아케이로포이에토스 프라 안젤리코와 히스테리적 진리관 시모네 마르티니와 의미에 저항하는 이미지 말하는 이미지와 실어증의 이미지 2장. 회화의 우울증에 관하여: 팔루스의 전통 환멸의 시대 세계라는 환상과 성상파괴 운동 환상은 환상으로 극복된다 발튀스의 백일몽: 가장 은밀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예수-팔루스에서 소녀-팔루스로 추락하는 팔루스의 전통 3장. 회화의 성도착과 승화에 관하여: 20세기의 수도사 발튀스 고정관념을 초과하는 아름다움의 힘 초과하는 아름다움이 도달하는 곳 성스러운 고양이 미추 신성과 신성모독은 같은 것이다 사드, 물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기술 궁정풍 사랑, 공백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기술 결론: 반복은 반복으로 극복된다 에필로그: 진리의 전염병

책 속으로

예술작품이 치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그것은 우리를 더 아프게 해야 하고, 더 방황하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권력을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감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옳고 그름이라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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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 치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그것은 우리를 더 아프게 해야 하고, 더 방황하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권력을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감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옳고 그름이라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확신마저 무너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종류의 확신이 단지 현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효과에 불과했다는 깨달음 속에서 환멸의 구덩이로 던져져야 한다. 건강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그런 미술을, 문학을, 음악을, 종교를, 정치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선언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예술이 분명히 있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예술들의 계보학, 불손한 예술적 욕망의 계보학이다. - 프롤로그: 과연 예술은 우리의 방황을 치유하는가?, 13쪽. 제욱시스의 그림은 이미지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종의 덫이다. 그림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사실성을 자랑하며 관객의 시선이 요구하는 쾌락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응시의 욕망을 진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라시오스는 다르다. 바로 여기에 회화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파라시오스가 그린 것은 베일이며, 이것이 가리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그 때문에 경쟁자 제욱시스는 그것을 눈으로 감상하는 대신 걷어젖히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파라시오스가 그린 것은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시선의 폐지, 또는 불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리는 그림이었다. 따라서 관객의 시선은 그려진 이미지에 머물 수 없다. 관객은 자신 앞에 제시된 불가능성을 제거하고 그 너머를 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뿐이다. -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 29~30쪽. 히스테리의 욕망 구조는 그렇게 현실의 표면을 비틀어 균열을 발생시키고 그곳에 벌어진 구멍을 통해 아버지를 불러내는 문명의 형태다. 이에 대해 서구 중세 예술가들이 몰두했던 것은 이를 어떻게 신비롭게 비틀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슬람 문명의 엄격한 성상파괴 전통과는 다르게, 로마와 비잔틴의 기독교 예술가들은 이미지를 사용해 이미지를 넘어서는 방법을, 가능하면 매혹적으로 이미지를 비트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우상을 사용하는 기이한 전통은 19세기 말에 또다시 서구 미술사에 출현하게 된다. -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 88쪽. 일단의 초현실주의자들이 단지 해체하는 대신 새로운 환상의 유형들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발튀스는 가장 독자적인 환상을 창조해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 그의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환상이고 꿈이며 백일몽이 또 다른 백일몽으로 무한히 대체될 숙명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대체의 순환을 정지시키기 위해 가장 독자적인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문제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진실한 꿈을 꾸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진실한 꿈이란 가장 독창적인 꿈이다. 그 어떤 세계의 꿈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강력한 백일몽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 머무는 것은 20세기의 수도사로서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었다. - 2장. 회화의 우울증에 관하여: 팔루스의 전통, 104쪽. 발가벗겨진 희생자 소녀와 레즈비언이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 성인 여성의 뒤얽힌 이미지. 그러나 소녀가 단순한 희생자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둘 사이의 상호적 폭력성. 사디즘과 마조히즘. 고통과 쾌락을 뒤섞는, 성도착에 관한 모든 전략이 ?기타 레슨?이라는 작품을 통해 여과 없이, ‘당당하게 선언’되고 있다. 그야말로 ‘육체의 모든 꿈틀대는 비극’이 묘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발튀스는 자신의 표현대로 “사람들을 흔들고 싶었고”, 그것을 성취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단지 외설의 수준에서 사람들을 수군거리게 만드는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발튀스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본능의 흔들리지 않는 법칙”, 나아가서 ‘열렬한 예술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것이 표현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2장. 회화의 우울증에 관하여: 팔루스의 전통, 112~113쪽. 20세기의 타락한 구도자 발튀스의 작품이 보여주었던 것은 신성성에 대한 그와 같은 인식의 차원이다. 그는 타락한 욕망의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루시퍼의 수도사였다. 모든 진실한 욕망은 타락의 오명을 덮어쓸 수밖에 없다는 신념 속에서 그의 작품은 신성과 신성모독을 동일한 것으로 뒤섞고 있었다. 가장 진실한 욕망은 현실을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통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며, 인간 문명은 바로 이것을 억압하고 가두기 위해 창안된 다이달로스의 거대한 미로와 같은 것이기에. 진정한 신성성에 접근하기 위해 발튀스는 현실적 욕망의 건강함이라는 환상을 포기한다. - 3장. 회화의 성도착과 승화에 관하여: 20세기의 수도사 발튀스, 156~157쪽. 이것은 현실 세계의 환상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스스로가 창조해낸 또 다른 환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이 유지되도록 하는 욕망의 구조다. 세계의 환상을 거부하면서도 우울증으로의 추락을 피해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도착적 환상의 지배 또한 거부하는 유일한 욕망의 구조다. 소녀의 이미지라는 개별적 욕망의 환상으로부터 출발한 발튀스가 도달한 곳은 중세의 궁정풍 사랑이라는 문학 형식이 의존하고 있었던 욕망의 구조다. 이것은 또한 수도사-화가들이 자신을 공백으로 제시하는 신의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고안해냈던 욕망의 장치를 통해 도달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은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게 된 화가들이 바로 그 ‘아무것nothing’을 욕망하고, 심지어 텅 빈 그것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던 파라시오스의 장소다. - 3장. 회화의 성도착과 승화에 관하여: 20세기의 수도사 발튀스, 182~183쪽. 발튀스가 반복하던 것은 바로 이것, 공백의 가장자리에서 추는 아주 단순한 스텝의 춤이었다. 그리하여 반복은 반복으로 극복된다는 명제가 논증된다. 세계의 환상을 피하기 위해 화가는 공백의 가장자리에서 똑같은 스텝을 밟는다. 소량의 환상만을 허용한 채로 화가의 인생은 매혹적인 허무와 절망적인 환멸 사이에서 위태롭게 춤을 춘다. 그런 의미에서 발튀스가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공백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백을 숭배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제례 의식의 절차가 그림 그리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공백의 허무가 주체를 삼켜버리는 것에 저항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정교한 욕망의 장치였다고 말이다. - 결론: 반복은 반복으로 극복된다, 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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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참조하고 대결하는 문제적 작가 발튀스, 타락과 위반의 미학을 통해 진리로 가는 길을 인도하다 우리 시대 가장 열정적인 정신분석가 백상현이 길어낸 욕망과 해방의 순간들 발튀스(1908~2001)는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이해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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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참조하고 대결하는 문제적 작가 발튀스, 타락과 위반의 미학을 통해 진리로 가는 길을 인도하다 우리 시대 가장 열정적인 정신분석가 백상현이 길어낸 욕망과 해방의 순간들 발튀스(1908~2001)는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꿈꾸는 테레즈〉 〈벤치 위의 테레즈〉 〈황금기〉 〈기타 레슨〉 등 그의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소녀들, 그것도 8~16세 사이의 어린 소녀들을 성적인 코드를 실어 과감하고 미묘하게 비튼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발튀스는 ‘소아성애자’ ‘회화의 프로이트’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인상은 이후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물 속에서 유령처럼 맴돌았다. 단적으로 히사지 하라 같은 사진작가는 발튀스의 작품들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사진을 찍으며 에로티시즘의 경계를 다시금 질문했다. 이렇게 고전으로 자리 잡은 발튀스는 현재도 수많은 작가들이 참조하고 대결하는 문제적 작가다. 『악마의 미학: 타락과 위반의 중세 미술, 그리고 발튀스』는 발튀스가 오명을 무릅쓰고 표현한 위반의 미학이 진리로 가닿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정신분석가 백상현은 발튀스가 20세기 초에 돌출한 ‘변태’가 아니라 중세 미술의 전통을 잇는 현대의 수도사라고 해석한다. 소녀를 대상으로, 그것도 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화가가 수도사라는 주장은 엉뚱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겉으로는 숭고와 희생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중세 회화 속에 숨은 타락과 위반의 미학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편견에 답한다. 프라 안젤리코와 시모네 마르티니를 비롯한 중세 화가들은 언어와 도상으로는 재현될 수 없는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모호하고 타락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 뒤에 나타난 발튀스는 한동안 끊겼던 타락과 숭고의 변증법을 계승한 화가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아름다움은 선보다 멀리 간다”는 명제를 증명하고자 한다. 이때 히스테리 등의 증상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해석하는 라캉 정신분석은 ‘정상’과 ‘상식’의 관념에 얽매인 우리의 좁은 시야를 트이게 해준다. 타락한 이미지를 통해 숭고와 아름다움을 길어낸 발튀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고정관념의 노예가 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단초가 된다. 풍부한 도판과 그에 대한 세심한 해석이 돋보이는 『악마의 미학』은, 발튀스의 ‘악마적 아름다움’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더욱 진실한 삶을 감각하는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해주고 주어진 일상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중세 회화의 신비주의적 전통 저자는 발튀스의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을 환기시킨다. 고대 그리스의 화가 파라시오스는 지나가던 새도 쪼아 먹고자 할 정도로 사실적인 포도 그림을 그린 제욱시스에 맞서 베일을 그렸다. 베일 뒤에 숨은 것을 보여달라고 말한 제욱시스는 그 순간 자신이 패배했음을 자인하고 말았다. 자신은 새의 눈을 속였을 뿐이지만 파라시오스는 사람의 눈을 속였기 때문이다. 파라시오스는 ‘그릴 수 없는 것’을 베일을 통해 그려낸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은 신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금지된 중세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교회의 하인이 되어 교육용 삽화를 그리는 데 복무하거나 그리는 행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화가들은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써 이와 같은 난국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예수의 부활을 다룬 〈나를 만지지 말라〉를 그린 프라 안젤리코와, 천사와 성모 마리아의 대면을 그린 〈수태고지〉의 시모네 마르티니는 이미지를 왜곡함으로써 단순한 종교화에 머물지 않는 신비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거룩한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림 앞에 멈춰 거룩한 순간 그 자체를 감각하게끔 만들었다. 이처럼 ‘말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침묵하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전통은 중세 회화에서 매우 강력한 것이었으며, 이성과 계몽의 시대였던 르네상스와 근대를 지나 현대에 와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발튀스를 통해 부활했다. ‘회화의 프로이트’ 발튀스, 그가 논란 속에서 그린 ‘예수 고난’의 형상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이미지를 파괴함으로써 이성과 합리성의 허상을 깨부쉈다. 하지만 신을 부정했던 근대를 다시 한번 부정하는 이와 같은 제스처는 해체하는 자의 주체성이라는 또 다른 환상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발튀스는 중세의 성상파괴주의를 반복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을 넘어, 환상을 깨기 위해서는 다른 환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더욱 독창적인 꿈을 꾸고자 했다. 그 꿈은 사회의 통념에 위배되는 꿈이었으며 그렇기에 악마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구 미술사의 핵심적인 주제였던 ‘예수 고난’의 형상이 들어 있었다. 이는 발튀스의 대표작인 〈기타 레슨〉(1934)을 볼 때 명확히 드러난다. 소녀가 성인 여성에게 붙들려 허리가 꺾인 채로 매를 맞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이 그림은 ‘소아성애’와 ‘여성 동성애’ ‘가학-피학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발튀스는 ‘회화의 프로이트’라고 불리며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기타 레슨〉은 중세 화가 앙게랑 콰르통이 그린 〈빌뇌브 레 아비뇽의 피에타〉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 성화聖?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고통은 서구 인류의 원죄인 동시에 지고한 쾌락이었다. 허리를 꺾은 채 성모 마리아의 품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예수의 육체는 고통과 쾌락을 뒤섞는 주이상스jouissance의 형상이었던 것이다. 쾌락과 고통은 사실 한 몸이었고, 중세 성화는 이를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기타 레슨〉 속 매 맞는 소녀의 형상은 예수의 마조히즘적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며, 이때 예수와 소녀는 라캉 정신분석의 표현을 빌자면 ‘예수-팔루스’ ‘소녀-팔루스’라고 할 수 있다. ‘팔루스(남근)’는 욕망의 궁극적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은 팔루스를 욕망함으로써 대타자(신-아버지)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발튀스는 신이 없는 세계에서 팔루스를 그리고자 했던 현대의 수도사로서 중세의 전통을 비틀어 자기만의 환상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가장 외설적이고 타락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를 해방시키는 발튀스의 ‘악마적 아름다움’ 발튀스가 현대의 수도사라면 그에게 씌인 ‘소아성애’라는 혐의는 억측에서 비롯된 무고일 뿐일까? 저자는 발튀스에게 소아성애적 욕망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발튀스가 어린 소녀들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며, 약 82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소녀들을 대상으로 위반적이고 일탈적인 묘사를 일관되게 감행해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발튀스는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통념을 거부하는 작품을 만듦으로써 신성함에 도달하고자 했을 뿐이다. 즉 그에게 있어 신성은 신성모독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발튀스의 작품들은 중세의 신비주의적 회화를 잇고 있었던 것이다. 라캉의 명제인 “아름다움은 선보다 멀리 간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발튀스의 작품은 선악의 피안을 향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악마적 아름다움’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발튀스의 악마적인 성향은 사드가 추구했던 성도착과 맞닿아 있다. 프랑스 혁명기의 작가인 사드는 성도착을 실제로 행했을 뿐만 아니라 ‘외설문학’을 집요하게 써냄으로써 일생 동안 감옥과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사드는 “프랑스인이여, 공화주의자가 되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하자!”라고 외치며 현실 질서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기성의 도덕과 규범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타락과 위반의 문학을 통해 역설했다. 그러나 사드의 전략은 성도착에 매몰되어 단지 또 다른 환상으로 도피하는 것에 머물고 만다. 이에 대해 저자는 발튀스의 작품이 사드를 넘어 중세의 ‘궁정풍 사랑’과 흡사한 길을 걷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궁정풍 사랑에서 욕망의 대상인 ‘숙녀’는 어떠한 성격도 갖지 않는 공백으로 나타난다. 사드가 대상에 집착한 데 반해, 궁정풍 사랑 속의 기사는 대상이 아니라 공백을 향한 욕망 그 자체를 추구한다. 그 때문에 기사는 대상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또 다른 모험을 떠날 수 있다. 발튀스 역시 욕망의 대상을 점차적으로 공백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만돌린을 든 소녀〉(2000~01)가 대표적으로,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소녀는 이전 작품에 비해 성애적인 디테일이 흐릿해지며 구도 또한 모호해진다. 발튀스는 공백을 그림으로써 신성함을 보존하는 파라시오스적 작가였으며,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 세계의 환상을 거부하면서도 성도착과 우울증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발튀스는 가장 외설적이고 타락한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준다. 발튀스는 헛되이 반복되는 지배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욕망을 깨우는 데 예술의 본질이 있으며, 우리가 ‘진리라는 전염병’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런 점에서 『악마의 미학』은 기존의 미술비평에서는 볼 수 없는 철학적 인식을 드러내며, 진리가 사라졌다고 믿는 ‘진리 이후post-truth’의 시대에 예술과 진리의 관계를 새로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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