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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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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쪽 | 규격外
ISBN-10 : 8979195842
ISBN-13 : 9788979195842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중고
저자 유영호 | 출판사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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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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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잘 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saqi3***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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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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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을 온전히 순례한 역사기행서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는 제목 그대로 오직 두 다리만 의지한 채 한양도성 전 구간을 돌며 펼치는 답사기행, 혹은 역사기행서다. 여타 기행서들이 풍광과 묘사, 지은이의 사고와 감상으로 채워왔다면 이 책은 답사구간 지점마다 포인트가 되는 장소를 찾고 그 해당 장소에 대한 옛 사건과 사연,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것에 더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현재를 알기 위해선 뿌리가 되는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관찰과 역사적 상상이 필요하다. 이에 저자는 서울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 성곽의 외형은 물론이고 그 자리 자리마다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이면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간 다시 그 사연을 반추했을 때 후세들이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까지 추측과 반성, 의심과 희망을 내어놓는다.

저자소개

저자 : 유영호
저자 유영호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IT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의 대표로 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향한 근본적인 관심을 이기지 못해 뒤늦게 연세대학교 통일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국내에서 전무하다시피 한 북한영화 관련도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아픈 과거마저 똑바로 응시하여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으며, 오늘도 ‘남북의 하나됨’이란 주제와 씨름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를 위하여』,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 『21세기 민족주의』(공저) 등이 있다.

목차

1. 의義

첫 번째 걸음
_ 돈의문에서 사직터널까지
두 번째 걸음
_ 서대문 밖 이야기
세 번째 걸음
_ 인왕산 성곽 (사직동에서 창의문까지)
네 번째 걸음
_ 부암동, 창의문 밖 이야기
다섯 번째 걸음
_ 백악성곽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

2. 지智

여섯 번째 걸음
_ 성북동, 숙정문밖 이야기
일곱 번째 걸음
_ 혜화문 일대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
여덟 번째 걸음
_낙산성곽 (혜화문에서 동대문까지)

3. 인仁

아홉 번째 걸음
_ 동대문에서 장충동까지
열 번째 걸음
_ 장충단공원 일대 (장충동에서 남산입구까지)
열한 번째 걸음
_ 남산성곽 (남소문에서 숭례문까지)
열두 번째 발걸음
_ 예장동 및 필동 일대

4. 예禮

열세 번째 걸음
_ 숭례문에서 서소문까지
열네 번째 발걸음
_ 정동 일대 (서소문에서 돈의문까지)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 한양도성, 조선의 울타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1396년(태조5년) 무려 20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한양의 울타리, 아니 조선의 울타리 역할을 위하여 축조된 한양도성. 이후 조선과 근현대사를 지내온 600여 년간 개축과 훼손이라는 부침을 겪으...

[출판사서평 더 보기]

■ 한양도성, 조선의 울타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1396년(태조5년) 무려 20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한양의 울타리, 아니 조선의 울타리 역할을 위하여 축조된 한양도성. 이후 조선과 근현대사를 지내온 600여 년간 개축과 훼손이라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꿋꿋이 한양도성은 수도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지켜왔다. 그리고 천만의 인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시간에도 여전히 서울 한가운데 오롯이 자리하여 후손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게다가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도성 가운데 세계 최장 기간(514년, 1396~1910) 동안 도성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름대로 지속적인 보완을 해오는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이미 수차례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듯이, 정부는 2014년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했고 2016년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 책의 저자는 600년이란 도성의 역사와 때맞춰 세계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하게 된 2015년이란 현시점에서 ‘내가 발 딛고 살아온 나의 뿌리 서울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한양도성 순례를 시작하였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기본 생각 속에 한양도성을 걷고 또 걸은 저자는 도성의 흔적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당시의 과거를 상상하고 현재를 반성하는 유기적 체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볕 좋은 날 한양도성을 찾는 이들이 많이 나타나길, 그리하여 ‘역사공부’가 아닌 ‘역사체험’을 통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길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그간 우리에게 서울은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수많은 관계와 업무 속에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2015년, 새삼스레 한양도성을 걸어보라 권고하는 것은 왜일까? 단언컨대 우리의 삶이 그만큼 확장되기 때문이리라. 600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반성과 깨달음을 반복하다보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의 윤곽 또한 그릴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이 그만큼 확장되는 것이다. 살아야 하는 서울이 아닌, 바라보고 연구하고 감상할 수 있는 서울을 만나게 된다. 공간으로서의 서울 역시 이처럼 확장된다.

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직접 내 발로 걸어 다니면서 그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역사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다니며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소위 장소감, 즉 특정 장소가 주는 공감과 체감을 통해 활자만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상상이 펼쳐진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서적에서 습득한 지식에 구체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것과 같다. 새롭게 펼쳐지는 상상력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본다면 보다 더 넓은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것이다.

■ 한양도성을 온전히 순례한 역사기행서
창의문에서 시작된 백악구간과 혜화문부터 비롯되는 낙산구간, 다시 흥인지문 구간과 남산구간을 거쳐 숭례문구간까지 오면, 맨 마지막 인왕산 구간으로 끝을 맺는 길, 바로 한양도성을 온전히 순례하는 코스이다. 물론 하루 만에 이곳을 다 둘러보는 것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적 상상과 비전을 경험할 수 없다. 저자는 ‘하루 4시간, 일주일에 한 번, 총 14차례에 걸쳐 100일 안에 도성과 도성주변의 동네를 샅샅이 훑는’ 방법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오직 두 다리만 의지한 채 한양도성 전 구간을 돌며 펼치는 답사기행, 혹은 역사기행서다. 다만 여타 기행서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풍광과 묘사, 그리고 지은이의 사고와 감상 등으로 채워지는 것에 반해, 이 책은 답사구간 지점 지점마다 포인트가 되는 장소를 찾고 그 해당 장소에 대한 옛 사건과 사연,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것에 더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기행이라는 방법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함이다.
그가 이 책의 머리글에서도 밝히고 있듯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E.H.카)라는 진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며 서술해나간다. 현재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듯, 우리의 현재를 알기 위해선 우리의 뿌리가 되는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관찰과 역사적 상상이 필요하다. 이에 저자는 서울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 성곽의 외형은 물론이고 그 자리 자리마다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이면에 어떤 숨은 사연이 있었는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간 다시 그 사연을 반추했을 때 후세들이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까지 추측과 반성, 의심과 희망까지 내어놓는다.

역사기행이란 어차피 과거의 흔적을 따라 상상하며 퍼즐조각 맞추듯 엮어내야 하는 여행 아니던가. ……18.6킬로미터나 되는 성곽길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그 역사는 6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버텨왔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의 아픔과 기쁨의 흔적들이 전해져온다.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조그맣게 나누고 싶다. 나의 바람이 작은 울림이 되어, 어느 볕 좋은 날 서울성곽길을 두 발로 걷는 또 다른 동반자들이 많이 생겨주길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

■ 한용운의 집 ‘심우장’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정체를 묻다
- 교과서 역사가 아닌 그 이면의 역사를 보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산 위에 올라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것을 설계했던 조선 건국 이후부터 근대사와 치욕의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와 유신정권에 이르기까지 한양도성길은 말 그대로 서울의 역사, 아니 대한민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중종과 단경왕후의 서로를 그리는 모습도 담았고, 일제강점기 남대문 주변의 성곽 일부를 헐어버리고 입성한 일본 왕세자의 무례함도 보았으며, 밤의 정치가 펼쳐지는 삼청각 뒤켠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네들의 뒷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한양도성을 둘러보는 자세 또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최대한 알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학습해서 얻어진 역사지식이 아니라 여러 관련자료 연구와 현장에서 얻는 장소감(특정장소가 주는 공감과 체감) 등을 더하여, 좀 더 진실 쪽에 가닿은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 하였다.
가령,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현대사에 이르면 도성 주변 곳곳에 친일 인물과 친일 행적에 대한 흔적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간 ‘민족대표’다 ‘민족작가’다 일컬어진 인물들로 알려졌으나 그 속내와 알려지지 않은 행적을 여실히 드러내며 후대에 와서라도 그 인물에 대한 정확한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성북동에 자리한 심우장을 둘러보며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과 등을 돌린 채 살고 싶어 일부러 이곳 북향집에서 산 한용운을 그리워한다. 저자는 심우장을 돌아 나오며 속으로 외치듯이 묻는다.

우리가 민족대표라고 하는 이들 33인 속에 안창호, 이동휘, 신채호, 김좌진, 김규식, 박은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왜 모두 빠져 있는 것일까? 기미년 3월 1일 그들은 왜 탑골공원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태화관에서 선언문을 발표한 것일까? 셋째, 선언서를 기초했다는 최남선은 정작 서명은 하지 않았으며, 또 서명자 33명 중 길선주,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 등 4명은 태화관에도 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현장에는 29명만 있었는데 이들조차 선언문 발표를 왜 총독부 정무총감에게 먼저 전화로 알리고 발표했을까?……

■ 나라의 흥망성쇠, 개인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 한양도성

서대문역 돈의문에서 첫 걸음을 뗀 저자는 오로지 두 다리만 이용하여 발걸음이 펼쳐지는 대로 한양도성길을 온전히 순례한다. 그리고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고 추억의 향기로 배어 있는 도성길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본문 사진 중 출처가 적힌 몇 장만 빼고는 모두 저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장소에 오롯이 저장되어 있는 옛 이야기와 뒷이야기, 그곳에서 펼쳐진 기쁨과 슬픔의 역사,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위에 언급된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발 앞에 펼쳐진 공간대로 걸어 다니면서 발걸음 닿는 그 순서 그대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해당 장소에 대한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격동의 현대사 등을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전개된다. 대분류로는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시 각 지역별로 구분하여 총 열네 걸음(파트)으로 세분화하여 설명해나간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 있는데, 이 대문들은 맹자에 나오는 4덕(四德), 즉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각 한 자씩 넣고 있다(숙정문에 ‘지(智)’가 들어가지 않는 점에 대해선 여러 학설이 있다). 이는 곧 이 책의 4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여기에 한나라 동중서가 오행설에 기초해 신(信)을 추가함으로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오상(五常)이라 불리며 유가에서는 이 다섯 가지를 두고 ‘인간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성품’이라 하였다. 선조들은 이 오상을 염두에 두고 도성을 건설하여 그야말로 짐승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곳임을 선포하였다.
사대문과 보신각에 형상된 인의예지신(본문그림)

한양도성길의 기억은 나라뿐 아니라 개인 개인의 절절한 사연도 품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백석 시인과 기생 김영한의 못 다한 사랑이 서려있는 길상사가 아닐까. 숙정문 밖 성북동을 돌며 저자는 길상사에 들어선다. 백석과 이루지 못할 사랑과 이별을 겪은 후 이곳에 대원각이란 요정을 지어 최고의 기생으로 살아왔던 김영한. 그러나 그녀는 엄청난 대지의 대원각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이곳은 결국 법정스님이 주지로 있었던 길상사가 되었다. 시가로 1천억 원이 넘는 이곳을 한순간의 기증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한 그녀는 “천억 재산이 어찌 백석의 시 한 줄에 비할 수 있으랴”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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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읽고서 (느낌과 생각)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폐망한 나라인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도...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읽고서 (느낌과 생각)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폐망한 나라인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도성을 기행 한다는 취지에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투박함 속에 진실한 뭔가가 느껴졌다. 처음 한양도성을 건설하던 설계자의 철학이 정말 멋졌다. 유가의 이상인 인의예지신을 도성 건설의 원리로 채택한 것부터 남다른 우리 선조의 지혜가 느껴져서 고마웠다.

    그러나 여기저기 생채기를 남긴 일제의 만행과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한 식민잔재를 말할 때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했다. 외세의 침탈뿐이라면 그래도 ‘지나간 역사의 사실과 교훈이겠지.’ 하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외세보다 더 악독하고 나쁜 내부의 조력자인 친일파의 행위들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저지면서 한편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많은 영광을 지닌 고도古都지만 폐망한 나라의 수도이기에 한양도성은 온갖 치욕과 상처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인과 함께 몇 번 둘러본 한양도성과 주변 마을, 그리고 그 안에 녹아진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큰마음 먹고 다시 가보고 싶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한 번, 총 14차례에 걸쳐 100일 안에 도성과 도성주변의 동네를 샅샅이 훑는’ 방법을 권한다는 저자의 추천이 솔깃하다.

     

     

    [이 책의 주요 내용들]

     

    1. 권력지배층의 야욕과 외세의 침탈로 인한 한양도성과 주변지역 수난의 역사

     

    ○ p.36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으로 인하여 이제 조선은 ‘임금의 나라’가 아닌 ‘공신의 나라’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사대부들에 의한 당쟁을 여는 씨앗이 되었으니, 여기 농업박물관 앞 ‘김종서의 집터’라는 표석 앞에서 나는 조선 당쟁사의 뿌리가 바로 이곳에 있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 p.103

    우리의 생각과 달리 미국과 유엔은, 대한민국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은 유엔 결의안에 따라 ‘1948년 당시 유엔이 감시할 수 있었던 남쪽에 국한’된다고 보는 것이며, 북이 붕괴하거나 흡수통일 되는 경우 북쪽에 대한 통치권은 여전히 유엔에게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정전협정’이다. 이것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긴장과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분단이 계속되거나, 설사 북이 흡수통일이 되더라도 또 다른 파국을 면할 수 없다.

    ○ p.110

    1953년 이곳을 인수한 주인이 그 이름을 ‘안마당에 멋진 오동나무가 있다’하여 오진암이라 지었다. 이렇게 요정으로 시작된 오진암은 당시 중앙부장 이후락 등 최고 권력자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이곳의 영업철학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이었다고 하니 권력가를 상대하는 밤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 p.135~6

    홍제천 계곡 입구에는 세검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지명으로 알려졌으나 세검정이 정자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은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옹립한 반란세력들이 거사를 모의한 곳이다. 이곳에서 칼을 씻어 날을 세웠다 하여 그 이름을 세검정洗劍亭으로 지었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계곡인데 조선시대 당시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씻었다니 이내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그것도 외적의 목을 벤 것이 아니라 같은 조선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점, 그리고 결국 인조반정이 가져온 역사적 후과를 생각하면 더 서늘해진다.

    ○ p.142~3

    그런데 이 창의문을 어명에 의하지 않은 채 출입한 사람들이 딱 한 차례 있었다. 마치 1968년 북의 무장조직이 청와대를 습격하러 온 것처럼 약 400년 전 조선의 임금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반정군이 창의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 인조반정은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동조하면서 명청 중립외교를 추진했던 광해군과 대북파를 제거하였다. 이로써 이후 조선에는 본격적인 노론 정권이 들어섰고, 이들 세력은 조선은 물론 일제 강점기,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창의문과 관련된 인조반정의 역사는 지금의 21세기 현실에서도 우리사회 기득권층과 밀접히 연결된 듯하다.

    ○ p.180~1

    민족애가 흐르는 이들이 살았던 이곳은 급기야 삼청터널이 개통되면서 더욱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어 이제는 일본을 위시한 37개국 대사관저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런 뜻 깊은 동네에 지어진 삼청각이나 대원각 등에서 친일 군부세력의 요정정치가 행해졌다고 하니 씁쓸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한용운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그녀는 심우장의 북서쪽에 일본국 대사관저가 자리 잡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오래 된 그 집을 떠나 버렸다. 현재 심우장은 ‘만해 사상연구소’로 운영되고 있다.

    ○ p.196~7

    장수마을을 옆으로 바라보며 산책하듯 걸어올라 금방 정상에 있는 낙산공원에 도착하였다. 경복궁은 좌청룡, 우백호로 낙산과 인왕산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좌청룡은 장남을 상징하고, 우백호는 차남을 상징한다. 하지만 장남에 해당하는 좌청룡 낙산이 낮고, 우백호에 해당하는 우백호 인왕산이 높고 험준한 까닭에 조선왕조는 적장자 세습이 드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적으로 스물여섯 대에 있었던 왕위 계승에서 적장자로 순탄하게 계승된 경우는 단 여섯 명에 불과하다. 그 여섯 명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이다.

    ○ p.22

    청계천 버들다리에는 1970년 11월 13일 한국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스스로 분신자살한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반신상이 놓여있다, 당시 그가 외친 것은 임금인상도 아니며 그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였다. 하지만 고도성장이란 자본의 논리 속에 이마저 짓밟히고 만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세상을 향해 노동자의 권리를 일깨웠다.

    ○ p.239

    시구문인 광희문 일대는 여전히 조선시대 때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군총들이 주로 살았던 하대인데, 최근의 광희동에는 중앙아시아 인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1990년 러시아와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의류도매상이 밀집한 이곳에 러시아 오퍼상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이후 점차 그 범위를 넓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몽골 이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와 거주한다는 사실에 왠지 조선시대 때 차별받던 군총들이 이곳에 군락을 이루고 살았던 모습과 겹쳐져 마음 한 켠이 아련해진다.

    ○ p.255

    김수근의 설계는 이런 이념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이 두 건물의 남쪽은 성곽이 지나는 자리였는데, 그곳 성곽을 헐어내고 그 성돌로 건물의 북측 담장을 쌓은 것이다. 이것은 문화재청의 조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축대에 사용된 돌에서 성곽의 각자성돌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p.280~1

    지난 날 우리가 이곳에서 빼앗긴 것은 국권이요 인권이지만,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의 기억마저 빼앗기고 말 것이다. 참고로 조선총독부와 안기부가 시대를 이어 존재했던 이곳의 동명은 예장동이다. 본래 이곳에는 조선시대 5군영 군사들이 무예를 연습하던 무예장이라는 훈련장이 있었다. 이 이름을 줄여 예장이라 불리면서 동명으로 채택되었다. 어쨌든 이 일대는 무시무시한 무武의 역사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병사들이 훈련을 하던 곳이었는데, 바로 이 장소에 일본군이 점령하여 무력을 행사하였고,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의 비밀경찰이 이곳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암울한 역사의 공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 p.312~3

    우리가 덕수궁 석조전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조경적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1945년 12월에 있었던 모스코바 삼상회의 결정에 따라 ‘제한적 식민통치’와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1946년 1월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우익세력과 친일세력의 반탁운동으로 결국 미소공동위는 해체되었다. 게다가 이곳은 이남만의 단독선거를 감시하기 위하여 들어온 국제연합 한국위원회에서 사용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석조전은 분단의 씨앗을 창출한 공간이기도 하며, 6.25 전쟁 중에는 미군이 점령하여 군사령부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1961년에는 박정희 쿠데타군에 의해 점령되었던 비운의 장소이다.

    ○ p.322

    19세기말 정동은 양인촌이라 말할 만큼 서양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던 곳이다. 1883년 미국공사관을 위시하여 서구열강들의 공사관들이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이와 거의 동시에 선교기관들이 들어섰다. 이들이 선교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면서 이곳 정동은 양인촌으로 인식되었다.

    선교활동은 주로 미국선교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이미 일본의 조선침략이 미일 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29)을 통해 양국 간 역할분담이 정리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주도적인 선교활동이 가능했다. 이점이 서구 제국주의에 동반한 선교활동과 다르다. 즉 조선에서의 선교는 동양제국주의에 동반된 서양의 선교활동이었다.

    ○ p.334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간 것은 단지 1945년 미국정 시기부터가 아니라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라고 보는 것아 보다 정확하겠다. 미국 대통령의 딸 엘리스가 110년 전 서울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에 머물렀다는 정보를 알게 된 뒤 나는 이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참 새롭고도 많은 역사적 정보를 알게 되었다. 역사란 이렇기 때문에 더욱더 흥미로운 학문이다.

     

    2.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양도성 곳곳에 새겨진 일제 식민지배의 상흔들

     

    ○ p.43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돈의문을 서대문이라 칭하며 새로운 시설이나 지배기관이 들어서거나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족족 그들의 편의대로 서대문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면서 이러한 용법은 더욱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서대문구, 서대문역, 서대문경찰서, 서대문형무소 등 아직도 모든 것이 ‘서대문’이다. 심지어 경인선의 출발지였던 정거장까지 모두가 다 서대문으로 표기되고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일제의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 p.44

    1943년 일제는 행정효율화를 위해 구제區制를 실시하며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남촌이 조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중구中區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중구의 핵심이었던 혼마치本町는 충무로로 바뀌었는데 지역구의 명칭은 여전히 중구이다. 지금이라도 남대문구나 남산구 정도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 p.46~7 발췌 정리

    최고의 친일파 가운데 또 한명이 김구를 찾아 이곳 경교장에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바로 조선의 천재로 불리던 소설가 이광수이다. 그는 김구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정리해둔 일지를 자신이 편집하여 책으로 내보고 싶으니 이를 허락해달라고 김구에게 부탁하였다. ~~ ≪백범일지≫는 ‘저자의 말’ ‘상권-중국편’ ‘하권-조선편’ ‘나의 소원’ 등 총 4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중 '저자의 말‘과 ’나의 소원‘ 부분이 이광수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 그리고 김구는 이렇게 이광수에 의해 윤색된 자신의 글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대로 출판하도록 했을까? 우리를 무척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 p.64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신문>도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독립의 대상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에 국한된 것이다. 그랬기에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독립문은 일제의 식민지배하에서도 ‘독립’이란 문패를 당당히 걸고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은 <독립신문> 논설을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그곳에 실린 논설 중에는 친일 논조를 담은 사설이 부지기수다.

    ○ p.82~3

    무학대사가 입적한 후에 는 지금의 남산(목멱산)에 무학대사를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이를 국사당이라 불렀다. 이렇듯 국사당은 본래 남산 정상에 있었는데 ~~ 어찌하여 ~~ 인왕산 쪽 성 밖으로 옮긴 것일까? ~~ 국사당의 자리이동 또한 일본의 식민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1925년 남산의 조선신궁을 건립하며 그 위에 있던 국사당을 이곳 인왕산 기슭으로 이전시킨 것이다. 일본 귀신 위에 조선 귀신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야말로 나라를 잃으니 우리 민족의 귀한 조상까지 천대받는 형국이 되었다.

    ○ p.149~150

    조선의 한양도성 내 축선은 나름대로 상당히 치밀하게 기획된 설계로 정丁자형 길이다. 화마가 길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축선을 꺾어서 설계한 것이다. 그러난 이러한 한양의 축선은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파괴 및 변형되고 말았다. 특히 일제는 축선을 변경시키고 지맥을 끊는 일에 열중했다. 일제는 먼저 조선이 만들어 놓은 정丁자형 축선을 일一자형 축선으로 바꿔버렸다. 광화문 사거리의 황토마루도 깎아 없애고, 그 동안 관악의 화마를 막기 위해 틀어놓았던 주작대로를 일직선으로 변경시켰다. 이로써 경복궁에서 서울역까지 쭉 뻗은 현재의 세종대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 길을 열면서 경운궁의 대한문 쪽이 잘려났고 이름조차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길을 태평로라 칭했다.

    ○ p.228

    오간수문 바로 옆에 있었던 이 일대는 본래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원(현 국립중앙의료원)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1925년 일제는 내선일체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의 동궁, 즉 훗날 일본의 왕이 되는 히로히토의 결혼(1924) 기념사업의 경성운동장을 건설하였다. 당시로서는 2만 5,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운동장이었다. 그런 이곳에서 각종 근대스포츠가 시작되었다.

    ○ p.252

    이 현재 신라호텔은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호텔이며, 2004년 일본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2011년 어느 한 여성이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미리 예약한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출입이 거부되어 논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황당한 사건도 신라호텔 건설의 역사를 보면 일면 수긍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274

    이곳 조선통감 관저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현재 이것 표석에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로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라고 쓰여 있다.

    더욱이 이 때 이완용이 들고 간 황제 칙유에는 순종의 서명도 없었고 제한제국 국세 날인도 없는 등 최소한의 인준 조건조차 갖추지 않았다. 불법적인 식민조약이 맺어졌다는 증거이다. 그야말로 5천년 우리 조국이 한순간에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이 바로 이곳에서 자행된 것이다.

    ○ p.282~3

    남산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정원과 전각들로 꾸며져 있으며,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보여 주기 위하여 서울에 산재해 있던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그런데 옮겨진 다섯 채의 가옥 가운데 세 채는 친일파의 가옥이라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못 벗어난 느낌이다. 예로부터 ‘나라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친일파들이 이렇게 좋은 가옥에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산 것을 보면 조선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 p.291

    1907년 일본 왕세자가 방한하자 일제는 “대일본의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헐어버리고 숭례문 옆으로 입성하였다. 이렇게 성곽을 헌 자리에는 도로와 전차도로를 만들어 숭례문과 성곽의 연결을 영구히 끊어버렸다.

    ○ p.299

    1895년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육의전의 금난전권조차 폐지하여 자본주의 물결에 호응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자본주의 이행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사대주의자들과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왜곡, 파탄되고 말았다.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남산 일대에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 거주하였는데, 그들에 의해 칠패는 남대문시장으로 크게 성장하지만 대신 일본인을 위한 시장으로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종로 일대의 상권은 일제의 편향적 개발정책에 따라 점차 기울어져 갔다.

    일제의 시장편성에 대항하여 이현시장은 조선상인들이 새롭게 광산시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국주의 자본의 거대한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조선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남촌과 조선인들이 주로 사는 북촌은 확연히 차별되고 말았다.

    ○ p.302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에 이르면 태평양전쟁과 함께 서울은 대동아공영권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신용산 일대(현 미군기지)는 조선군사령부 등 일본군 병영이 차지하였고, 용산역 일대는 철도국을 필두로 여러 철도기관들이 들어섰다. 또한 영등포는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경성 인근의 최대공업단지로 부상하였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서울의 공간적 확장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와 발을 맞추며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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