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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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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쪽 | A5
ISBN-10 : 8958660945
ISBN-13 : 9788958660941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중고
저자 최인호 | 출판사 여백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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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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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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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현실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사흘!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또한 병마와 싸우며 두 달 만에 써낸, 외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 속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지나치게 익숙한 일상이 뒤틀려버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K의 여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휴일 아침,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K는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삶에 엄격한 자신답지 않게 지난밤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어느 시점부터 끊긴 것과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서 K의 혼란은 가중되는데….

저자소개

저자 : 최인호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왔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토요일
제2부 일요일
제3부 월요일

발문 :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 소설가 모두를 구원하리라 - 소설가 김연수

책 속으로

느닷없는 소음 때문에 K는 잠에서 깼다. 강제로 깨어난 불쾌감 때문에 K는 어리둥절하였다.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K는 자신을 깨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자명종 소리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자명종은 자신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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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소음 때문에 K는 잠에서 깼다. 강제로 깨어난 불쾌감 때문에 K는 어리둥절하였다.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K는 자신을 깨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자명종 소리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자명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K는 투덜거리며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자명종의 버튼을 눌렀다.
비명 소리는 멎었다.
K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였다. 자명종의 버튼을 눌러 끈 K는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 스크린에 투영하는 영사기사처럼 끊긴 잠의 필름을 의식적인 접착제로 강제로 이어 붙인 후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순간 K는 의식이 명료해졌다.
자명종이 울렸다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K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떠 시계의 숫자판을 쳐다보았다.
정각 7시였다.
7시라면.
(17∼18페이지)

“이 핸드폰을 어디서 발견했습니까. 술에 취해 어젯밤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서요.”
“극장입니다.”
‘을’이 대답하였다.
“어젯밤에는 휴일 전날이라 시간이 있어서 늦은 식사를 하고 심야극장을 갔었지요. 영화를 보는 도중 앞좌석 포켓 속에서 핸드폰을 발견했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이 찾으러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끝나고 나서도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극장 측에 맡겨 두고 올까 하다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극장이라면 어느 극장을 말하는 건가요.”
“바로 이 건물 3층에 있지요. 가만 있자.”
‘을’은 주섬주섬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아, 여기 있군. 어젯밤에 보았던 영화의 입장권입니다.”
“내게 주시겠습니까.”
“가지려면 가지세요. 내겐 소용없는 물건이니까.”
(101페이지)

오늘 아침 일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K는 수많은 낯익은 인물과 낯익은 존재와 만나고 헤어졌다. 낯이 익은 자명종 소리와 낯익은 침대, 낯익은 K의 방, 낯익은 아내와 낯익은 딸, 낯익은 강아지, 낯익은 처제의 얼굴과 낯익은 장모의 모습. 그와 반대로 낯선 벌거숭이의 몸, 낯선 성냥갑, 낯선 게이바와 낯선 결혼식, 낯선 장인의 등장과 휴대폰을 주운 낯선 ‘을’과의 만남, 낯선 여인의 넓적다리와 낯선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영화 내용, 낯선 C열 45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내의 얼굴과 닮은 동영상 속 낯선 여인의 얼굴.
K는 자신이 온종일 겪은 낯익은 사물과의 익숙함과 낯선 사물과의 이질감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갈팡질팡하는 인식이 자신을 불안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달았다. 어젯밤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121∼122페이지)

H는 K의 친구가 아니다. H는 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 대리인일 뿐이다. 대리모代理母가 불임 부부의 부탁을 받고 낯선 남자의 정액을 자신의 자궁 속에 흘려 넣은 후 아이를 낳고 보상을 받는 것처럼 K가 만나는 모든 인물들은 대리모처럼 고용된 사람들이다. 그 사생아는 출생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열 달 동안 품은 대리모의 존재 역시 모를 것이다. 실제 엄마가 아닌 대리모를 고용한 사람을 엄마라고 부를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자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열매가 아니고 차가운 금전적 거래의 산물이다. 자식은 어미와 아비를 가졌으나 실은 고아인 것이다.
K는 고아이며, 독자獨子다. K는 사생아다. 창조주보다 더 교활한 이 거대한 무대의 연출자는 K를 지켜보며, 훔쳐보며, 낄낄거리고, 웃고, 박수를 친다. 대리 아내와 대리 딸, 대리 강아지, 대리 H, 대리 ‘을’, 대리 장인은 그 연출자에게 고용되었으며, 이 연극에 출연하기 전부터 철저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은 존재한다. 진실처럼 보이는 진리가 진리가 아니고 궤변이듯, 이 가상의 연극 무대 위에서 실수로 놓친 모순들이 조금씩 조금씩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123∼12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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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

[출판사서평 더 보기]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백제와 가야, 조선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뒤틀리고 붕괴된 일상 속에 내몰린 주인공 K의 ‘영원한 사흘’이 상징하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돈의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대인이 맺은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묘파한다.

최인호,
시들지 않는 문학의 숲으로 다시 출발점에 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의 ‘제2기의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_<작가의 말>에서

■■□ 때때로 삶은 잠시 머물다 가라 한다
; 최인호의 투병과 문학적 회귀


2010년 새해 벽두에 우리 문학계는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2006년 장편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소식이 뜸했던 소설가 최인호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그였기에 4년 여의 침묵으로 그동안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던 중에 날아든 이 소식은, 1975년부터 34년 6개월 동안 이어져온 연재소설 『가족』의 연재를 중단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과 함께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겼다.
최인호의 투병은 우리 문학계로서도 큰 손실이었지만, 한 작가의 문학적 완성에 있어서도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안겼다. 1985년 『잃어버린 왕국』을 시작으로 역사와 종교를 다룬 장편소설에 치중해왔던 그가 『제4의 제국』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 찾아온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8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최인호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근대와 현대, 농업과 공업의 시대적·사회적 경계에서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왜곡된 삶을 도시적 감성이 담긴 필체로 그려낸 대한민국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기수였다. 하지만 1985년 『잃어버린 왕국』 이후, 2006년 『제4의 제국』까지 최인호 문학의 절대적인 비중은 역사와 종교를 다루는 장편ㆍ대하소설이 차지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20년 넘게 대하소설에 천착하는 동안에도 현대소설이라는 본령을 잊지 않았던 듯, 작가는 2002년에 출간된 중단편전집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쓴 중단편을 새삼스럽게 읽어보는 동안 나는 문득 작가로서의 남은 인생을 또다시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백 미터를 달려가는 치열한 스프린터로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대하소설 집필을 마라톤의 주법에 비유했던 작가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팽팽한 긴장감이 담긴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2005년 『유림』을 출간하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는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덜컥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와 그의 육신과 문학적 이상을 가로막고 말았다.
이후 최인호는 잠행에 들어갔다. 극히 가까운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의 근황을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의 실질적인 창작 여정은 거기에서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투병 중에도 숨 고르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그의 병이 그를 다시 현대소설로 복귀하게 만들었다. 2006년 『제4의 제국』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펴낸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그는 일상이 탈 없이 흘러갔다면 요원한 일이었을 그 ‘숨 고르기’가 오히려 병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암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최인호를 위해 쓴, 최인호 최초의 전작 현대소설
;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갖는 의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현대소설로의 복귀
첫 번째 의미는 이 작품이 작가가 자신의 본령으로 여겼던 현대소설로 회귀하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초기 중단편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현대소설과 역사, 종교를 다룬 장편ㆍ대하소설을 지나 소설가 최인호의 ‘제3기의 문학시대’가 열리는 시발점이 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장편의 분량과 형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구조와 압축된 문제의식으로 인해 단숨에 읽히는 ‘단편의 콘텐츠’를 취하고 있다.

2. 최인호 문학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두 번째 의미는 작가 자신이 이 소설 「작가의 말」에 밝힌 것을 직접 읽는 것으로 선명하게 와 닿을 것이다.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년 동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수십 편의 장편소설과 대하소설을 집필하였다. 그 모든 소설은 외부의 청탁에 의해 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누군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쓴 수제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특히 최인호와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은 발표할 지면이 미리 확보된 상태에서 집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병과 싸우며 잠행했던 시기에 뇌우와 같은 순발력으로 두 달 만에 써낸 최인호 문학 최초의 비연재작이자 신작인 전작장편소설이다.

■■□ 유실된 기억 속의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모험과 추적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줄거리


토요일 아침,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K는 휴일 아침에 왜 자신이 알람을 맞추어놓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어딘지 모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의 흐름을 느끼던 K는 지난밤의 발기 불능,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태도, 지금까지 써온 스킨의 브랜드가 달라진 것 등을 확인하면서 ‘조작’의 기미를 눈치챈다.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낯설기만 한 미세한 변화에서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삶에 엄격한 평소의 K답지 않게 간밤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어느 시점부터 끊긴 것과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는 그날, K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난밤 술자리에서 끊겨버린 기억과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K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며 등장하는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시공간적으로 전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지난밤 자신의 행적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을 만나보라는 정신과 전문의 친구의 조언을 따라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누이를 찾은 K는, 누이와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특히 몇 년 전 자신이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면서 보냈다는 편지의 필적은 분명 자신의 것임에도 K에게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K는 조작과 속임수의 실체가, 사실은 뒤틀리고 어긋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모든 의혹을 풀기 위해서 그는 몇 년 전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던 ‘나’를 만나러 가는데…….

■■□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으로 추가
“내가 내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을 발견한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네. 어느 날 낯선 골목을 지나다가 빨랫줄에 걸린 여자의 속옷을 보고 그것을 훔쳤지. 그리고 한번 입어보았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 일찍이 그리스의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말하였다네. 태초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이며 여자인 세 가지 성性이 있었다고. 남자는 해이며, 여자는 땅, 남자이며 여자는 달이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은 점점 교만해져서 제우스의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어. 그러자 제우스는 제3의 인간을 둘로 갈라놓았고 그렇게 둘로 떨어진 인간은 서로 반쪽을 찾아 방황하게 되었네.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물이야 말로 인간의 원형이며, 미래에 있어서도 가장 진화된 호모루덴스라고 할 수 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이 늘어난다면 성범죄나 성차별, 사회적 부조리 등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걸세. 그리고 가정은 보다 자유롭고 일종의 성의 해방구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게. 나는 양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는 더더욱 아니네. 어디까지나 여장에서만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여장을 할 때만 변신하는 것뿐이야. 이것은 오로지 심리적 안정 때문이지. 우리를 동성애자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네. 나는 얼마든지 남편이 아내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성은 얼마든지 공산共産화할 수 있으며, 가정은 소유욕이나 질투심이 없는 지상의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
(206∼207페이지)

JS는 K의 발에 입을 대었다. JS는 익사 직전의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내 인공호흡을 하는 구조대원처럼 보였다. JS는 더러운 K의 발목을 자신의 입으로 빨기 시작하였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처럼 K의 발목에 흡착된 입의 에너지는 강력하였다. K는 당황하였다. 즉각적이고 저돌적인 JS의 접문接吻에 당황한 K는 몸을 빼기 위해서 주춤거렸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JS가 억압하듯 말하였다.
“독소를 빼내지 않으면 광견병에 걸릴지도 몰라. 그대로 있어.”
그러한 행위가 K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며 아직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는 ‘ 지난번의 그 미안함 ’을 상쇄할 수 있는 보상 행위인 듯 JS는 헌신적인 자세로 K의 상처 부위를 빨았다. JS의 입술은 공격해야 할 상처 부위에 밀착되었다. 혀는 그 상처 부위를 집요하게 핥고 있었다. 그 행위에 열중하고 있어서 JS의 엉덩이가 K의 휴대폰에 저장된 포르노의 영상처럼 클로즈업되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누이의 포즈가 마치 펠라치오의 오랄섹스 체위처럼 보였다.
(235페이지)

생명의 나무.
세일러문으로 변신한 소녀가 지키려는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의 나무.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신이 만든 선악과가 아닐까.
성경에는 창조신이 자신이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돌보게 한 후,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아담에게 열매를 따줌으로써 원죄原罪가 생겨났으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당한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창조신의 말대로 인간은 먼지로 돌아가게 된다. 생명의 나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살리려는 지구 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나무. 그것은 창조신이 만든 그 생명의 나무가 아닐까.
“생명의 나무를 살리는 세일러문의 노래를 불러드릴깜.”
세일러문은 마법의 봉으로 K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K가 그래 달라고 응낙도 하지 않았는데, 세일러문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266페이지)

“우연은 어차피 있는 법이니까.”
레인저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자, 다시 가위, 바위, 보.”
K2는 이번에도 가위를 냈다. 레인저 역시 가위였다. 레인저가 악몽에서 깨어나려는 듯 신음 소리를 냈다.
“속도를 올리기로 하지. 가위, 바위, 보.”
K2는 주먹을 냈다. 레인저도 주먹이었다.
“삼세번은 있을 수 있어. 젠장 할, 닥치는 대로 해보자고. 자, 시작해 이 새끼야. 가위, 바위, 보.”
K2는 가위를 냈다. 레인저도 가위를 냈다. 다시 보를 냈다. 레인저도 보를 냈다. 생각할 겨를도 없는 무차별의 내기였다. K2가 주먹을 내면 레인저도 주먹을 냈다. 어김도 없고, 착오도 없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내기였다. 어차피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었으므로.
파이가 소수점 아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고 3.14159265358979…… 무한하게 계속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무한급수이자 초월수다. 최근에 슈퍼컴퓨터를 4백 시간 가동시켜 파이의 값을 1조 2천 4백억 자리까지 계산해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가르려야 가를 수 없는 이위일체二位一體인 것이다. 그제야 레인저는 가위바위보로는 K2에게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손바닥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332∼333페이지)

“나쁜 새끼, 더러운 새끼, 너 같은 놈은 맞아 죽어도 싸. 잘못했지, 잘못했지, 잘못했지, 이 새끼야. 대답을 해.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내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잘못했지, 라는 말은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라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아내의 교성임을 K는 느꼈다. K 또한 한낮부터 끓어오르던 용암이 드디어 분출할 만한 엷은 지층을 발견한 것처럼 그곳을 향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아, 잘못했지.”
“잘. 못. 했. 어.”
K의 몸에 들어 있던 긴장된 총탄이 마침내 방아쇠에 의해 발사되었다. K의 아내 역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일부러 줄을 끊어버린 연처럼 알 수 없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물물교환은 성공리에 끝났으며 K와 레인저의 아내 혹은 아파트의 아내는 동시에 부부로서 확인 도장을 찍고, 성공리에 부부로서 재계약을 마친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난 낮에 P교수 아니, 올렝카가 말하였던 잃어버린 K의 반쪽과 아내의 반쪽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원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인은 남자의 갈비뼈로 환원되어 시원의 진흙인간으로 돌아갔다.
(354∼355페이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지하철의 전조등 불빛이 탈옥수를 향해 집중된 교도소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뿜어져 나왔다. K는 이제 재빨리 대피하지 못하면 지하철에 깔려 죽을 것임을 간파하였다.
“안 돼. 제발 빨리.”
“하얀 장미의 기사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말하였다.
“절 버리고 가세요. 어서요.”
K는 세일러문의 손을 놓고 탈출할 수 없었다. K는 시뮬레이션 연극의 엔드 마크가 다가올 때임을 깨달았다.
K는 더욱더 강하게 세일러문의 손을 쥐었다.
기진하여 더 이상 체력이 없던 손에 갑자기 강한 힘이 더해졌다.
K는 자신의 손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K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합체되었다. K는 그 손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K1, 바로 레인저의 손이었다. 레인저는 K2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 나’ 로 합체하였다.
(37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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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김연수 님 2011.08.19

    294 - 메아 쿨파 Mea Culpa 라틴어로 '나의 잘못' "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 (내 잘못을 통하여, 내 잘못을 통하여, 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을 통하여 고백하나이다)."

  • 권기령 님 2011.06.02

    모순은 존재한다. 진실처럼 보이는 진리가 진리가 아니고 궤변이듯, 이 가상의 연극 무대 위에서 실수로 놓친 모순들이 조금씩 조금씩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123∼124페이지)

회원리뷰

  • 만약 어느 날 잠에서 일어났는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사소한 디테일들이 변해있다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너무나도 낯...

    만약 어느 날 잠에서 일어났는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사소한 디테일들이 변해있다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너무나도 낯선 타인의 느낌을 받는다면 어떨까. 故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뒤틀리는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새로운 세계에선 사람과 관계들이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있다. 한순간에 내던져진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선 금지되어 있지만 감추어져 있던 욕망들, 편집증적 의심, 증오가 감추어지지 않고 그대로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카섹스를 하는 연인, 노출증의 여인, 아내의 간음 동영상, 매형이었던 대학교수의 여장 취향. 주인공 K는 이런 터부들을 목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도 그 터부에 다가선다. 이는 수년 만에 만난 누이에게 느낀 성욕과 키스방에서 세일러복을 입은 어린 여자와의 키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처럼 몰래 금기를 욕망하던 사람들은 그저 타인이 아닌 모든 주변인이며 또한 나 자신이다.그걸 깨닫는 순간 이 낯선 타인들은 결국 타인이 아니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게 된다. 같은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또 다른 자신과 그 가족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음을 방증한다. 마치 해리된 자아같은 또 다른 나는, 순수를 상징하는 키스방의 세일러복 소녀를 구하는 장면에서 하나가 된다. 


    내재적 관점의 해석도 분분할 수밖에 없는 마당에 외재적 관점의 해석은 더욱 무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이 최인호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소설임을 상기해보고자 한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지만 암 투병으로 그 마지막이 어렴풋이 보일 때의 심정이 어떨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소설에서 일관되게 보이던 주인공 K의 염세적, 냉소적인 태도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극단적 이타심을(문장은 혼돈의 범벅일지라도) 보여준 것은 뒤틀린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자신이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 마지막 소설에 남긴 게 아닐까 한다. 

     알 수 없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타인들의 집합체 같았다. 잠시 시간을 내 연병장에 모인 오합지졸의 예비군 같은 모임이었다. 서로 피를 나눈 혈연관계라고는 하지만 친숙함이나 다정함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기도박꾼 집단처럼 느껴졌다.
    ˝자, 카메라를 보세요. 저 뒷줄 맨 오른쪽 분 바짝 더 다가서세요.˝
    사진사는 오합지졸의 예비군들을 통솔하는 조교처럼 익숙하게 사람들을 다루었다. K는 너무 더워 땀이 났으므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K는 자신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잘 팔리지도 않으면서 매대에 진열된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같다고 생각하였다. 가족이라는 슈퍼마켓에 아내는 아내라는 이름의 상표로, 장인은 신부의 아버지라는 라벨로, 처제는 신부의 역할을 맡은 신상품의 견본으로 이렇게 함께 서 있는 것이다.
    p.86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de**pule | 2014.06.2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이 소설은 2010년 10월 27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이 소설은 2010년 10월 27일에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 26일에 끝난 작품이다. 정확히 두 달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두 달 동안 나는 계속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다. (중략)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와 손가락에 끼우고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해서 집필하였다. (중략)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라 두 달 동안 줄곧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였다.
    [작가의 말 중에서 발췌]
     
    내가 아는 어떤 소설가는 자고로 한우 등심보다 소설이 더 맛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던 것 같고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말 한우 등심보다 더 맛있었던 소설들도 생각났고 걔 중엔 넌더리를 내가며 끝까지 읽어내느라 땀을 흘린 소설도 몇 편이 생각났다.
     
    동네 서점에 이 책을 주문해두고는 통 찾으러 가질 못 했다. 이번 달 리뷰는 이 책으로 쓸 예정이었지만 암튼,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솔직하게 말 하면 나는 최인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서점에 들러서 느낀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이미 읽었더라는 것이다. 험한 병에 사로잡히면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것일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자세를 나는 존경하는 바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한참 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을 때는 크기는 크지만 아기자기하지 않아서 감당하기엔 좀 버거운 지루한 건물을 구경하는 듯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서걱거림을 던지고 갈피갈피의 사람 냄새를 뒤적여볼 수 있을 거 같다.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눈을 떴더니 세상은 모두 그대로인데 또 그대로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언제나 비비적거리던 일상들이 마치 오늘 처음 대하는 것인양 생경하고 낯설다면 이 세상에 혼자 떨구어진 것처럼 외롭고 슬플 것 같다. 아니, 두려움 때문에 지래 숨이 넘어갈 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제목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잠의 꼬리는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았다. 잠의 도마뱀이 꼬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어디론가 알 수 없는 미궁의 숲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잠을 포기하고 K는 생각하였다. 오늘이 토요일이라면 K는 충분히 늦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자명종이 울렸던 것인가.
    (page19)
     
    이 소설을 읽다보면 죽음 앞에서 참으로 아득하면서도 말 할 수 없이 두려운 작가의 마음이 읽힌다. 사랑하고 애틋해 하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혼자만 빛을 향해 떠나가야 하는 그 가슴 졸임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안타깝다. 작가가 느끼던 외로움과 고통이 행간에 그대로 흐르는 걸 느끼는 것은 숨이 막히기도 한다.
     
    부재중 통화.
    부재중 통화라 함은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K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침에 분명히 22시쯤 전화를 걸었고, K와 통화를 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부재중 통화’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는 것일까. 과연 아내와 통화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내에게 곧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K 자신인가, 아내인가, ‘을’인가, 휴대폰인가, 어제라는 시간인가, 오늘이라는 시제인가. 극장이라는 공간인가, 술집이라는 장소인가.
    K는 혼란스러웠다.
    (page104)
     
    햇살에 눈이 따가우니 그늘이 한결 진해졌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사이 건너편 가로수 그늘이 무척이나 시원해 보인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이라고 했었던가. 그렇지만 계곡도 계곡 나름이 아닐까 계곡이 빼어나면 산도 계곡에 묻힐 수 있을 거다. 최인호라는 작가야말로 빼어난 계곡이었다.
  • 타이밍이 살짝 에러였다 | kj**nn | 2012.08.06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자의식이 팅팅 부어있는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그 자의식을 형성하는 ‘이념’들이 내가 배척하는(라고 쓰고 ‘코드가 맞지 않는’ 라고 읽는다) 것일 때는 의식의 흐름에 눈을 맞추고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거저 독서란, 다른 사람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며, 대략 화가 나 있는 내 자의식을 살살 달래주어야 한다. 그래서 ‘독서인(?)’이라는 정체성이 주인공의 자의식과 내 자의식 사이에서 참으로 고생이 많다. ...
    자의식이 팅팅 부어있는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그 자의식을 형성하는 이념들이 내가 배척하는(라고 쓰고 코드가 맞지 않는라고 읽는다) 것일 때는 의식의 흐름에 눈을 맞추고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거저 독서란, 다른 사람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며, 대략 화가 나 있는 내 자의식을 살살 달래주어야 한다. 그래서 독서인(?)’이라는 정체성이 주인공의 자의식과 내 자의식 사이에서 참으로 고생이 많다.
     
    대한민국 대표작가 최인호님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감히 나의 대표작이라고 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시대의 대표작에 뽑힌다 하여도 손색이 없다. 작가는 이 시대 사람전형을 제대로 만들었다. 주인공 K는 정체성이 없다. 따라서 자아도 없다. 그 빈 자리에 들어 있는 것은 터질 듯 부어 있는 자의식이다. 작가는 K의 자의식과 성욕을 평행구도로 그린다. 그것들은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인 감수성 안에 갇혀 있으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공적인 욕망에 부풀어 통제불능 상태이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K에게, 각각의 타인들의 정체는 모호하게 같으면서 파악할 수 없이 다르다. K는 정체불명의 세트장 같은 세계와 배역으로만 존재하는 타인들이 결국 K 자신이 정체성 없는 세계속에 갇혀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깨달음으로 치닫는 여정은 가히 오디세이이지만, 폭염과 체증의 폭격을 맞은 고속도로 위에서 K를 따라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독서도, 타이밍이 중요하군.
  • 낯익다는 것고 낯설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familiar 와 strange. 분명히 다른 단어인데 이...
    낯익다는 것고 낯설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familiar 와 strange. 분명히 다른 단어인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낯익다는 것이 사실은 낯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낯설은 타인들의 거리 라는 '도시의 그림자'라는 밴드의 노래가 있다.
    그 노래와도 오버랩된다.
     
    이 무슨 조화인가?
     
    최인호... 1945년 생..나의 아버지와 동갑이다.
    암 투병을 거쳐 작가 본인의 의지데로 썼다, 현대 소설 작가로써
    본인의 바램을 이루었다는 작품이다.
     
    K1, K2..그 둘은 하나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가
    진실은 무엇인지.
     
    읽으면 읽을 수록 헛갈리게 만들지만
    중심은 잃지 않고 줄거리를 이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2010년 겨울에 완성했는데
    혹시 동일본 대지진을 예감했던 것은 아닌지.
    작가의 예견(?)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pj**nga | 2011.12.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너무 읽어보고싶은 신작들이 쏟아지던 때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저자 이름이 익숙해서 골랐으나 생각해보니 최인호저자의 이름은 ...
    너무 읽어보고싶은 신작들이 쏟아지던 때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저자 이름이 익숙해서 골랐으나 생각해보니 최인호저자의 이름은 많이 접해봤으나 다른 책을 본 적은 없다.
    제목만 봐서는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표지는 어두운 바탕색에 가운데 노란 불빛이 비친 그림으로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였다.
    하지만 소설의 첫장을 읽어나가면서는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같은 행동들 속에서 조금씩 평소와 같지않음을 느낀 K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여러 생각을 해 봤지만 이 책은 너무 어려운 책이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책의 첫장은 토요일 아침, 눈을 깨면서부터 달라진 세상이 시작된다.
    바쁘고 반복적인 생활패턴의 획일적인 삶 속에서 K는 조금씩 이전과 다른 낯선 느낌을 받는다.
    당연했던 주변사람과 사물, 모든 것들이 비정상적인 느낌으로 마치 자신을 놀리듯 다가온다.
    진짜와 가짜, 본인과 또 다른 본인, 거짓 투성이의 삶을 말하는데  
    사실 그런 비정상적인 것들은 원래의 것들 그대로인 것이고 실제로 변한것은 K 자신인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지루하다고 느꼈음에도 손을 놓지 못한 것은 문체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기때문이다.
    읽어야만 할 것 같고 빨리 읽고싶어지는 느낌으로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정말 또 다른 내가 존재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사는 삶이 어쩌면 가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는 또다른 스릴이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 진짜가 아닐수도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끝을 보고싶었다.
    그 정도로 책에 빠져들었고 읽고나서는 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비로소 개운함을 느낄수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저자에 대해 검색 해 보았는데 암투병중에 집필한 책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어쩌면 K는 평범한 일상 속에 살다가 투병을 하면서 조금씩 낯설어진 생활속에 들어 선 저자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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