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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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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쪽 | A5
ISBN-10 : 8962631032
ISBN-13 : 9788962631036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중고
저자 김덕호,문지영,이정희,송충기,박진희,이은경, 이내주, 이관수 | 출판사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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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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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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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로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은 근대 산업 사회를 형성한 주역이자 노동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혁신가로서 엔지니어를 조망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제1차 산업혁명기, 18세기 후반에서 1870-80년대까지를 다루고, 근대를 구축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엔지니어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양성되었고, 사회적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과연 동일한 길을 걸었을지 아니면 국가별로 각기 다른 길을 걸었는지 등에 대해 알아본다. 근대화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20세기 비유럽 국가에서 전개된 근대화의 길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 역시 보편적이기보다 국가별로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 김덕호
저자 김덕호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저자 : 문지영
저자 문지영은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저자 : 이정희
저자 이정희는 건국대학교 과학기술학 강사

저자 : 송충기
저자 송충기는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저자 : 박진희
저자 박진희는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목차

머리말

프랑스: 국가, 혁명 그리고 산업화
1 머리말
2 프랑스 엔지니어의 기원
2.1 엔지니어 개념의 변천
2.2 앙시앵 레짐의 공학 교육
3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과 공학 교육 체제
3.1 프랑스 혁명과 에콜 폴리테크닉의 창설
3.2 산업화와 민간 엔지니어 양성
4 프랑스 엔지니어 집단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5 맺음말

독일: 국가, 교육 그리고 수공업
1 독일 엔지니어의 탄생과 특수성
2 엔지니어 교육: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고등기술학교’로
2.1 엔지니어 교육의 출발: 전문기술학교와 ‘폴리테크닉 학교’
2.2 기술교육의 ‘학문화’: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고등기술학교’로
3 ‘교양 시민층’을 향해: ‘기술자’에서 ‘엔지니어’로
4 독일 엔지니어 협회: 전문 직업화
5 새로운 출발

영국: 전문 단체와 신사-엔지니어의 이상
1 머리말
2 영국 근대 엔지니어의 기원
2.1 군사공학의 등장과 발달
2.2 ‘민간 엔지니어’의 등장
2.3 신사-엔지니어의 원조, 존 스미턴
2.3 신사-엔지니어의 원조, 존 스미턴
3 엔지니어의 성장과 분화
3.1 토목 엔지니어의 집단화
3.2 장인적 기계 엔지니어
3.3 철도 붐과 철도 엔지니어의 성장
3.4 기계 엔지니어 협회의 설립
4 엔지니어 양성
4.1 작업장 문화의 전통
4.2 대학 공학 교육의 선구자
4.3 공학 교육의 체계화와 실험실 교육
5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5.1 신사-엔지니어
5.2 두 계층의 엔지니어 사회
6 맺음말

미국: 유럽 따라잡기와 엔지니어의 팽창
1 머리말
2 미국 엔지니어의 기원
2.1 토목공학
2.2 기계공학
3 엔지니어 양성
3.1 남북전쟁 이전
4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4.1 남북전쟁 이전
4.2 남북전쟁 이후
5 엔지니어 단체의 출현
5.1 토목 엔지니어 협회
5.2 기계 엔지니어 협회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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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근대 산업 사회를 형성한 주역이자 자본과 노동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혁신가로서 엔지니어를 조망하다 과학기술사 연구는 공학을 응용과학으로 보는 견해가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공학은 산업혁명 이전 혹은 산업혁명이 진행되...

[출판사서평 더 보기]

근대 산업 사회를 형성한 주역이자 자본과 노동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혁신가로서 엔지니어를 조망하다


과학기술사 연구는 공학을 응용과학으로 보는 견해가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공학은 산업혁명 이전 혹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철교나 증기 기관을 만들던 장인 기술 혹은 기예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신설 학문이다. 공학은 과학을 응용해 발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독자적으로 발달한 공학 지식에서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 중요한 사례가 다수 있다. 따라서 기술과 공학이 과학의 응용에 불과하다는 전통적ㆍ 상식적 견해는 재고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엔지니어 및 공학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 사회의 일반적 특성이나 문화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연구가 과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왔다면, 이 연구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엔지니어 집단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산업 사회라는 인류사의 새로운 문명을 이끌고 근대 산업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역사의 주역으로서 근대 엔지니어는 혁신적 기술을 통해 자본가에게는 새로운 이윤 창출을, 노동자에게는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었다.
학문으로서 공학의 정착 과정은 국가별로 뚜렷이 구별된다.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은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산업혁명과 전 세계의 산업 발달을 주도했다. 따라서 이 연구는 근대 엔지니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이 4개국의 엔지니어를 연구 대상으로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근대를 구축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엔지니어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양성되었고,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그들은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과연 동일한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국가별로 각기 다른 길을 걸었을까?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근대화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마치 20세기 비(非)유럽 국가에서 전개된 근대화의 길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 역시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국가별로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제1차 산업 혁명기, 즉 18세기 후반에서 1870년대 혹은 1880년대까지다. 특히 이 시기의 토목공학과 기계공학에서 근대 엔지니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시기는 주요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엔지니어 양성의 무게중심이 장인의 작업장에서 대학 및 기술학교의 실습실로 이동한 때이다.

엔지니어란 누구인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장인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엔지니어에 의한 공학의 탄생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과정이다. 이것은 곧 전통적 장인에서 근대적 엔지니어로 사회적 위상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엔지니어의 지위를 과학자만큼 끌어린 것도 공학 덕분이다. 엔지니어의 형성 과정은 4개국 모두에서 벌어진,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주목할 만한 일이며, 이는 산업화 이전 혹은 산업화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엔지니어들은 스스로를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동질적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술사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엔지니어들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며, 언제 어디서나 전문가로 기능했다고 볼 수 없다. 이 연구는 과학이 이론 지향적이고 순수한 학문이며, 공학은 실천 지향적이고 과학을 응용한 학문이라는 관념이 공학과 과학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19세기 후반에 자리 잡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기술사가들의 관점에 동의한다.

국가적 스타일
공학 이론의 역사에서 프랑스 엔지니어는 매우 중요하다. 몇몇은 과학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서양 과학사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는 샤를-오귀스탱 쿨롱이나 사디 카르노 등이 프랑스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발명이나 실질적 기술 개발의 역사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혁신적 인공물의 발명이나 특허 영역에서 프랑스 엔지니어의 기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국제적으로 팽창일로에 있던 산업 연구 분야에서 프랑스 엔지니어의 활동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미국의 상황은 정반대다. 공학 이론 측면에서 19세기 미국의 엔지니어가 남긴 성과는 대단치 않다. 하지만 산업 연구 영역에서는 실로 풍성한 연구 결과를 도출했고, 상당수의 실질적 기술 개선을 이끌어냈다.
이 연구에서 다루는 프랑스ㆍ 독일ㆍ 영국ㆍ 미국은 산업 혁명기 이래, 국가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880년대까지 기술 인력 양성의 방향이 사적 훈련에서 공적 교육으로 전환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럼에도 각국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인다.
영국의 엔지니어는 자수성가한 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 노력을 통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초창기 엔지니어를 배출한 도제 제도가 강력하게 유지되면서 전문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대학의 공학 교육이 매우 더디고 불완전하게 진행되었으며,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 또한 전문 직업인으로 정착하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엔지니어는 상층부의 국가 엔지니어와 중하층의 민간 엔지니어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18세기 말 이래 프랑스는 ‘새로운 인간형’으로서 국가 엔지니어를 양성했다. 이들은 ‘혁명’(프랑스 혁명, 산업혁명)과 ‘전쟁’(나폴레옹 전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변되는 정치적ㆍ 경제적 변화의 부산물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엘리트로 성장한 국가 엔지니어는 19세기 중엽부터는 민간 엔지니어와 경쟁하면서 학교 서열과 교육 내용이 계급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엔지니어 집단 내부에 다양성과 계층화가 진행되었다.
독일 엔지니어의 경우는 19세기 초부터 정부가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엔지니어 양성과 수급에 나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국가적 지원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민간 엔지니어 양성으로도 이어졌다. ‘교육을 통한 산업 부흥’이라는 모토 아래 바우 아카데미부터 폴리테크닉 학교, 고등기술학교로 이어지는 다양한 근대 엔지니어 양성 기관이 발달했다.
미국의 근대 공학 교육은 프랑스를 모방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영국식 도제 훈련 방식의 영향이 컸다. 이리 운하 건설 사업 같은 공공 토목 프로젝트가 사회적 측면에서 엔지니어 양성 공간 역할을 수행했으나 1862년 연방 정부가 모릴 법을 통해 주립대학이 공과대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정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대학에서 엔지니어가 대규모로 배출되었다.

근대 엔지니어의 기원
근대 엔지니어의 궤적을 추적하려면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6세기 초에 시작된 프랑스의 공학 교육은 18세기에 도약기를 거치면서 공학의 제도화를 일궈냈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앞서 토목학교를 비롯한 전문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는 등 다른 유럽 국가에 공학 교육 체제의 역할 모델을 제공했다.
프랑스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은 1789년 대혁명, 1794년 에콜 폴리테크닉 창설, 이후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19세기 초의 산업화가 가져온 민간 엔지니어 양성이라는 새로운 공학 교육 체제의 변화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공학 교육 체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그 가운데 근대 공학 교육의 요람으로 평가받는 에콜 폴리테크닉의 초기 역사는 프랑스에서 국가 전략상 과학기술 정책 및 교육에 대한 국가 지도자나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어떻게 이공계 우대 전통을 확립하고 발전시켜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일 지역에서 근대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주로 정부와 군대에서 건축과 토목을 담당하는 전문 집단에서 비롯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국의 수도 빈에는 1670년 세운 엔지니어 장교 양성 기관이 존재했으며, 1743년 드레스덴 엔지니어 아카데미, 1770년 뷔르템베르크 사범학교와 광산 아카데미, 1788년 왕립 엔지니어 아카데미 등이 속속 세워졌다. 그렇지만 이들 전통적인 기관에서는 근대 초기에 나타난 새로운 기술을 전수할 체계적인 교과 과정과 전문 인력 그리고 교육 체계가 없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기술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한층 폭넓고 체계적인 양성 기관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1799년 베를린에 설립한 ‘바우 아카데미’였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영국의 산업혁명은 엔지니어 집단을 키우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에서 엔지니어라고 일컬어지던 사람들은 공병 장교, 즉 군사 엔지니어뿐이었다. 군대에서는 전쟁에 필요한 성을 짓고, 참호를 파고, 도로를 건설하는 공병단을 운영했다. 그러다 1770년경 민간 토목 분야에서 군사 엔지니어와 유사한 일을 하는 전문 기술자가 등장했고, 이들이 영국 근대 엔지니어의 기원이 되었다.
세 나라에 비해 미국은 언급할 자격조차 없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미국은 엔지니어는커녕 장인 기술자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독립한 이후에야 토목과 기계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볼 수 있는 집단이 등장했다. 미국의 근대 공학 교육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례를 모방한 웨스트포인트와 렌셀러 공과대학에서 시작되었지만 장인적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그러나 상위 계층에서 하위 기술 집단을 계몽하고 훈련하거나 하위 집단의 신분 상승 시도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소수의 사업 엘리트와 그들의 기술적 파트너가 인적 결합을 통해 식민지 시기와 구별되는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엔지니어의 양성
산업화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기술교육, 즉 공학 교육은 각국의 산업 및 경제 발전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을까? 유럽의 대부분 고등 기술교육 기관이 가졌던 우선적 관심은 그 시대 산업이 요구하는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공론화된 국력에 대한 우려, 즉 상대적 쇠퇴에 대한 우려가 새로운 형태의 교육 기관에 대한 공적 투자를 이끌어낸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때문에 신설하는 기술교육 기관은 대부분 특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엘리트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따라서 이들 기관은 사회적ㆍ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을 띠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학의 학문 경력주의와 위계 구조는 실제적 훈련보다 이론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며, ‘학문화(academization)’ 과정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원래는 산업을 위해 만든 학교가 공학의 중심지로 진화하게 되었다.
프랑스 근대 공학 교육 및 엔지니어 양성에서 국가적 동력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1789년 혁명 당시 길드 제도를 폐지하면서 전통적인 장인 기술도 크게 위축되었는데, 혁명 정부는 근대적 의미의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엔지니어 양성 기관을 설립함으로써 ‘근대 공학의 제도화’를 향한 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정부는 과학과 기술의 융합을 지향하고 부르주아의 참여를 통한 ‘과학의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국가 이념을 공학 교육 체제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그 결과 1794년 설립한 ‘에콜 폴리테크닉’은 국가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엘리트 교육의 장으로서 수학을 중시하는 이론적ㆍ 연역적 교육 방식을 통해 국가 엔지니어 양성 기관으로서 특권과 독점을 누리게 되었다.
19세기 초 산업 시대가 열리면서 ‘지연된 산업화’에 대한 각계의 우려가 커지자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유형의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공학 교육 체제가 요구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민간 산업체에 종사할 다양한 인력 양성이 필요했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실용적 응용 교육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공예학교나 중앙공예학교 같은 새로운 엔지니어 양성 기관이 설립되었다. 기술공예학교 졸업생은 ‘산업계의 하사관’으로서, 중앙공예학교 출신은 ‘공장과 제작소의 의사’로서 기계나 금속 혹은 철도 산업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독일에서는 국가에 의한 기술 관료 양성 체제를 갖춤으로써 본격적으로 근대적 엔지니어 양성이 이루어졌다. 16~17세기 과학혁명의 전개는 기술 지식의 체계화에도 영향을 미쳐서 도제를 통한 경험 전수가 아닌 공식지로서 기술 지식의 전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학 이론을 따라 기술에서도 원리를 찾고 이 원리를 훈련하는 교육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제도화된 기술 교육이 등장했다. 이렇게 등장한 최초의 기술 교육 기관은 ‘엔지니어 아카데미’ 같은 군사 기술 장교 양성 학교였다. 이들 학교의 출현으로 기존의 도제식 기술 교육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술 지식을 전수하는 근대 엔지니어가 출현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전문기술학교들도 바우 아카데미와 같은 근대적인 방식의 전문 교육 기관으로 바뀌어 전문적인 기술교육에 힘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 산업화로 기계를 다루는 직종이 등장하면서 이들 ‘기술자’를 교육하는 기관이 필요해졌다. 이들을 위한 기술학교로 1821년 프로이센의 베를린에 설립된 ‘실업학원’과 그 이외 지역에 들어선 ‘폴리테크닉 학교’가 있었다. 독일의 근대 엔지니어가 집단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이들 학교들이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크닉과 합스부르크 왕국의 폴리테크닉 학교 제도를 본받아 엔지니어 양성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영국에서는 국가가 엔지니어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공식 경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산업혁명 이전의 방식, 즉 독학이나 도제 제도를 통해 배출되었고 이러한 방식이 오래 지속되었다. 특히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귀족형 도제 제도’인 문하생 제도가 거의 필수 코스였다. 한편에서 대학 수준의 전문 공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제 출신의 명망 있는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스스로 도제 시스템을 통해 후진을 양성하는 상황에서 대학의 공학 교육 정착은 쉽지 않았고, 따라서 느리게 진행되었다.
체계적인 공학 교육을 먼저 시도한 것은 런던과 산업 도시에 새로 들어선 대학들이었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는 1838년 토목(및 기계)공학과를 설치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1841년에 토목공학 교수를 임명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공학 교육의 확산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학의 공학 교육이 정착한 것은 1870년대 이후로, 대학 수준의 교육을 받고 현장 경험도 갖춘 엔지니어 출신이 교수로 임명되어 현장과 결합한 교육을 위해 노력한 덕분이었다. 1855년 글래스고 대학에 부임한 윌리엄 랭카인은 교과서 집필을 통해 이론과 실기를 결합한 공학 교육을 시도하고, 1875년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부임한 알렉스 케네디는 작업장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공학 실험실 교육을 도입했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엔지니어는 연방 정부 또는 지역 유력자의 후원과 개입을 통해 형성된 소수 엘리트 집단이었다. 1817년 실바너스 세이어 대위가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닉을 모방해 교과 과정을 개혁한 웨스트포인트나, 프랑스 중앙공예학교를 모방해 1831년 학제를 개편한 렌셀러 공대 모두 정계 실력자들의 개입과 후원을 통해 설립되고 교과 과정의 방향이 정해졌다.
그러나 미국 기준에서 가장 이론 지향적이었던 웨스트포인트조차 프랑스와 같은 심도 있고 체계적인 이론 교육은 이뤄지지 못했다. 반면, 실천을 중시한다는 렌셀러 공대의 운영과 교과 과정에는 당시의 일류 엘리트 과학자가 개입했다. 이는 수준이 낮은 미국 과학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과 공학의 관계, 나아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관계가 미국과 유럽에서 달리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862년 모릴 법에 따라 연방 정부의 엄청난 토지를 주립대학에 무상 공여함으로써, 특히나 변방에 위치한 주들이 많은 혜택을 입었다. 결과적으로, 모릴 법은 주들 간의 자부심 대결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변방의 농업 및 공업 대학을 한 세대 만에 거대한 종합대학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1870년대 이후에는 순수 연구를 강조하는 독일식 고등 교육이 이상적 모델로 여겨졌으며, 대학원의 세미나 수업과 연구 실험실에 관한 프로그램이 도입되기도 했다. 덕분에 남북전쟁 이후 미국 공대는 양질의 실험실 설비를 확보하고, 실험을 통한 발견과 작업장 실습을 통한 훈련을 강조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
근대 엔지니어 집단은 국가별ㆍ 업종별로 상당히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영국 사회에서는 노동 계급에 가깝고, 프랑스 사회에서는 경영 집단에 가까웠다. 테일러주의자로서 미국의 엔지니어는 미국 고유의 경영 문제, 노동력 부족, 영국적 스타일의 기술 통제권, 이질적인 이민자 노동력 등의 문제와 씨름했다.
프랑스의 엔지니어는 이 연구에서 다루는 4개국 중에서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았다. 그들은 국가 엔지니어로서 국가가 벌이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사실상 독점했으며,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서도 민간 기업에 들어가 경영진 혹은 그에 버금가는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 엔지니어와 경쟁하던 산업화 초기에 민간 엔지니어의 정체성과 위상은 엔지니어를 민간 부문의 산업 생산에 투입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체계적으로 유도한 결과, 상당 부분 국가가 제공한 새로운 기술교육 및 직업 모델을 통해 형성되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세 부류의 엔지니어가 존재했다. 첫째, 에콜 폴리테크닉과 응용학교 출신으로 공공사업 부문과 군대에서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과 소수의 산업체 근무자, 둘째로 중앙공예학교 출신으로 산업체의 고위직에 오른 엔지니어, 셋째로는 중급 관리자나 현장 기술자로 활약한 기술공예학교 출신들이 있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엔지니어 위계는 지식-노동, 이론-실기, 추상-구상, 순수과학-응용과학, 관리자-노동자라는 대립 쌍의 구체적 표현이었으며, 이러한 대립적 인식은 프랑스 공학 학교들 사이의 위계를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독일도 이성을 통한 진보의 개념에 대응하면서 활동적 엔지니어는 주로 교육(공과대학)을 통해 더 높은 지위를 꾀했다. 1824년 건축가 협회의 출현으로 독일의 근대 엔지니어는 기술 관료로서 자리매김해갔다. 폴리테크닉 학교 설립과 더불어 민간 분야 엔지니어가 출현해 기술 관료와는 약간 다른 이해를 갖고 있는 엔지니어 집단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독일 사회의 주역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전통 인문 지식과 더불어 실용적 지식 역시 ‘시민’이 갖추어야 할 지식임을 역설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이 전통 대학 출신의 엘리트인 법률가나 의사에 견줄 만함을 피력했다. 1860년대에 계속된 폴리테크닉 학교의 ‘고등기술학교’ 전환 운동은 이런 전문가적 위상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극소수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하층 계급 출신의 장인 배경을 가진 엔지니어에 의해 이루어졌다. 19세기 중엽까지 영국의 엔지니어는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던 자유방임주의와 자조(self-help)의 가치를 숭상했고, 체제의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전체 집단으로서 엔지니어 집단의 권익 보호나 사회적 요구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따라서 집단으로서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에 대한 단일한 상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신사-엔지니어’가 바람직한 상으로 제시되었다. 신사-엔지니어의 상은 존 스미턴으로 대표되는 초기 토목 엔지니어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상에 맞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엔지니어 집단은 산업혁명의 발전과 확산으로 위로는 토목 공사의 책임 엔지니어에서 아래로는 작은 기계 제작소에 고용된 기계 기술자까지 매우 다양한 사회적 위상과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 신사-엔지니어의 이상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도 영국의 엔지니어 사회는 상층의 신사-엔지니어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도제 출신 하층 엔지니어의 구분이 존재했다.
엔지니어로서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과정을 보면, 미국 엔지니어는 국가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리 운하 건설 사업(1817~1825) 같은 공공 토목 프로젝트가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공공사업의 감독자들이 엔지니어-관리자-공직자를 겸하는 계층으로 성장해 장인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엔지니어로 여겨졌다.
하지만 미국 엔지니어는 ‘독립적인 엘리트’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을 지닐 수 없었고, 전문적으로 집단의 진입을 제한해 엘리트로서의 특권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현장 경험을 존중하는 풍토 때문에 국가 엔지니어와 민간 엔지니어 간의 장벽도 없었으며, 학위증이 엔지니어의 지위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기능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토목 및 기계 공학에서 영국식(실무적 현장 교육)과 프랑스식(에콜 폴리테크닉) 패턴이 결합하거나 둘 사이에 다양한 긴장이 존재했다.

엔지니어 단체의 출현
18~19세기 프랑스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과정은 자율적 진화 과정이라기보다 국가의 정치적ㆍ 경제적 논리에 따른 시대적 산물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각종 공학 학교 출신의 엔지니어는 자신들의 정체성 및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동창회뿐만 아니라 폴리테크닉 협회, 프랑스 민간 엔지니어 협회 같은 다양한 이익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다양한 이익 집단의 출현은 엔지니어로서 정체성을 도모하고 위계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독일 또한 최초로 협회를 결성하고 집단적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한 엔지니어는 건축 및 토목 분야에서 일하던 기술 관료들이었다. 이들 협회 회원에게는 국가사업을 관리 감독한다는 공통된 자부심이 있었다. 한편 폴리테크닉 학교의 성장과 더불어 민간 산업체로 진출하는 엔지니어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협회가 등장했다. 베를린 실업학원 졸업생들이 주도한 이 협회는 1856년 전국 단위의 독일 엔지니어 협회(VDI)로 발전했다. 독일 엔지니어 협회는 건축 협회와 달리 공장장부터 하급 기술자까지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지향했다. 그러나 현장 경력보다는 위계 질서화한 교육 기관에서 체계적 훈련을 받았는지 여부가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독일 엔지니어 사회의 특징이었다.
영국에서는 정직성이나 신뢰성을 지닌 신사와 품질 좋은 인공물을 만들어내는 엔지니어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위상을 높이려는 엔지니어들에게 최선의 전략은 이익 단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의회로부터 특허장을 받은 이러한 직업 협회는 엄격한 가입 조건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내려 했다.
엔지니어 단체를 기준으로 보면 영국의 엔지니어 집단은 1771년 존 스미턴이 설립한 토목 엔지니어 단체(SCE)가 처음이지만 한층 대중적 조직인 토목 엔지니어 협회(ICE)가 출현한 1818년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산업이 발전하고 직종이 분화 및 성장하면서, 1847년에는 기계 엔지니어 협회(IME)가 등장해 엔지니어 사회 내부의 분화를 예고했다.
1870년까지 두 개의 공학 전문 단체, 곧 토목 엔지니어 협회와 기계 엔지니어 협회는 엔지니어 정체성이나 이해관계와 관련해 대체로 유사한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기계 엔지니어 협회는 먼저 설립되고 왕실 특허장을 가진 토목 엔지니어 협회의 운영 방식과 엔지니어 위상에 대한 견해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현장 중시 전통을 고수하고 엔지니어 이익 단체로서 기능하기보다는 지식 교류와 확산에 중점을 두는 과학자 단체와 유사한 기능을 주로 했다.
미국에서는 1867년 가장 먼저 ‘미국 토목 엔지니어 협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1871년 ‘미국 광산 엔지니어 협회’가 토목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단체를 구성했다. 1880년에는 ‘미국 기계 엔지니어 협회’, 1884년에는 ‘미국 전기 엔지니어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는 전국적 연결망을 갖춘 조직으로서 의제와 회의를 주도하고, 회원 자격 심사와 자격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엔지니어 엘리트 집단으로서 배타적 권리를 행사해 자기 이해관계만을 추구하고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비민주적 형태의 모임을 지속해나갔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 엔지니어들이 전문가 단체를 만들려 할 때 기업이 그들의 협회 결성을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기업주가 엔지니어를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피고용인으로 이해해 이익 단체를 만들려는 엔지니어의 활동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예컨대 특정 엔지니어 협회 내부에 ‘엔지니어-관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키워 그 협회가 강력한 이익 단체로서 공학 관련 협회가 되려는 것을 막았다. 이는 엔지니어로서 집단성을 특징짓는 미국적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원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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