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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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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쪽 | 규격外
ISBN-10 : 8994054529
ISBN-13 : 9788994054520
헤세의 문장론 중고
저자 헤르만 헤세 | 역자 홍성광 | 출판사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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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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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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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문장론: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는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의 책읽기와 글쓰기 방법을 담아낸 책이다.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수록되지 않은 것들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해 엮었다.

저자소개

저자 : 헤르만 헤세
저자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는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고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고 탑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질풍노도의 청춘기가 투영되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레바퀴 밑에』『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늑대』 등을 발표해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홍성광
역자 홍성광은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역서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환상동화집』 『잠 못 이루는 밤』, 뷔히너의 『보이체크·당통의 죽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니체의 『니체의 독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마의 산』『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중단편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카프카의 『성』 『소송』 중단편소설집 『변신』,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실러의 『빌헬름 텔·간계와 사랑』, 하이네의 『독일 겨울동화』 등이 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목차

머리말

1. 낭만주의와 신낭만주의
2. 책과의 교제
3. 미지의 보물
4. 값싼 책들
5. 번역
6. 책 읽기와 책 소유하기
7. 문필가에 관해
8. 기이한 소설들
9. 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젊은 시인의 편지
10. 휴가용 읽을거리
11. 독서에 대하여
12. ‘문학에서의 표현주의’에 대하여
13. 예술가와 정신 분석
14. 언어
15. 시에 대하여
16. 책 정리하기
17. 가을 저녁, 서재에서의 독서
18. 몇 권의 책에 대하여
19. 환상적인 책
20. 빌헬름 셰퍼의 주제에 대한 변주
21. 최근의 독일 문학
22. 책 읽기에 대하여
23. 오해받는 작가
24. 가을-자연과 문학
25. 시인의 고백
26. 글 쓰는 밤
27. 침대에서의 읽을거리
28.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29. 어느 젊은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
30. 책이 지닌 마력
31. 책 대청소
32.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
33. 세계 위기와 책
34. 즐겨 읽는 책
35. 노벨 문학상 수상에 즈음한 글
36. 일본의 어느 젊은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
37. 애송시
38. ‘빵’이란 단어에 대하여
39. 말
40. 글쓰기와 글씨

헤르만 헤세 연보

책 속으로

나는 어떤 책의 가치를 따질 때 그 책의 유명도나 인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에밀 슈트라우스의 놀라운 작품 『친구 하인』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좋은 작품인 그의 『천사장 주인』은 초판에 그치고 말았다. 완곡하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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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책의 가치를 따질 때 그 책의 유명도나 인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에밀 슈트라우스의 놀라운 작품 『친구 하인』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좋은 작품인 그의 『천사장 주인』은 초판에 그치고 말았다. 완곡하게 말하자면 창피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친구 하인』을 읽는 이유는 슈트라우스가 중요한 작가여서가 아니라 그의 이 책이 그의 다른 책들보다 우연히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란 최신 스포츠 뉴스나 강도 살인사건처럼 잠시 누구나에게 읽혀 가벼운 오락용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가 잊혀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조용하고 진지하게 향유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비로소 책은 자신의 가장 내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내보인다. -49쪽

의무감이나 호기심으로 단 한 번 읽은 것으로는 결코 진정한 기쁨이나 보다 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금방 잊히는 긴장을 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책을 처음 우연히 읽고 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얼마 뒤에 잊지 말고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책의 핵심이 드러나고, 순전히 표면적인 표현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내적인 삶의 가치, 서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두 번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값이 싸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도록 해야 한다. -51쪽

독서도 다른 모든 향유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보다 깊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책을 친구나 연인처럼 대우하고, 책마다 자신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며, 이런 독자성에 낯선 것은 아무것도 책에게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무렇게 아무 때나 너무 급히 또 너무 빨리 후닥닥 읽어서는 안 되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즉 여유 있고 유쾌한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섬세하고 동감이 가는 언어로 쓰인 사랑스런 책은 가끔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다. -59쪽

도서의 정리와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고 완성하는 데서 독특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가령 학술서와 문학 책, 옛날 문학과 현대 문학으로 나누고, 언어나 학문 분야에 따라 세분한 뒤칸마다 세심하고 주도면밀하게 정리한다. 대체로 저자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방법은 간단하고 확실하다. 내적인 원칙이나 동질성에 따른 분류, 가령 연대나 역사, 나름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분류는 더 섬세한 방법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수천 권의 소장 도서를 알파벳순이나 연대순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개인적 평가에 따라 전체 도서의 위치와 순서를 정하고 분류했다. 그런데도 그는 누가 어떤 책을 말하면 눈 감고도 쉽게 찾아낼 만큼 책이 꽂힌 자리를 잘 알고 있다. 전체가 그토록 유기적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소장자는 적지 않은 전체 도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다 해도 그렇게 차츰 생겨난 도서관이 사방 벽을 가득 채우고, 책을 사서 처음 읽던 날의 즐거운 기억이 새록새록 쌓이면, 감수성이 예민한 이의 가슴 속에는 책을 소장하는 기쁨이 날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전에는 이런 장서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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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에게서 배우는 책읽기와 글쓰기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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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에게서 배우는 책읽기와 글쓰기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의 시와 소설, 정치적이고 문화 비평적인 에세이는 전 세계에서 5천만 부 이상 보급되었으며, 그를 20세기에 미국, 일본과 한국 등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유럽 작가로 만들었다. 그의 글은 그 자신의 삶과 체험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헤세는 어떤 문필가보다도 책을 많이 읽은 다독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천 권의 책을 읽었고, 그 중 어떤 책들은 여러 번 읽기도 했다.
13세의 나이에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헤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매우 큰 서재에서 18세기 독일 문학과 철학 책을 읽으며 혼자 상당히 철저하고도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괴테, 겔러르트, 바이세, 하만, 장 파울과 헤트너의 문학사를 읽었고,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의 책 몇 권과 그 밖의 많은 책을 읽었다. 헤세는 16세부터 20세까지 많은 습작 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 세계 문학의 절반을 읽었으며, 예술사와 어학, 철학 공부에 끈기 있게 매진했다. 그 뒤 탑시계 공장에서 15개월 동안 견습공 생활을 했고, 그러면서 브라질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한 것이다.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에게서 배우는 책읽기와 글쓰기


헤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 하며, 그를 어떻게든 하나의 친구로 삼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개인마다 자신에게 친근하고 잘 이해되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의 목록이 있는 법이다.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 자신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독서의 질 자체이다.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하고, 보다 풍부한 힘을 얻기 위해 힘을 쏟는 것이 필요하다.
헤세는 작가란 추상적 사고를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지닐 수 없다거나, 사상적으로 철저히 관념론적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추상적인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냉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가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 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도 관련이 된다. -머리말 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부르크 주의 소도시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토마스 만의 도움을 받아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2년 8월 9일 스위스 루가노 근처의 몬타뇰라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와 소설, 정치적이고 문화 비평적인 에세이는 그동안 전 세계에서 5천만 부 이상 보급되었으며, 그를 20세기에 미국, 일본과 한국 등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유럽 작가로 만들었다. 그의 글은 그 자신의 삶과 체험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헤세는 어떤 문필가보다도 책을 많이 읽은 다독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천 권의 책을 읽었고, 그 중 어떤 책들은 여러 번 읽기도 했다.
13세의 나이에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헤세는 15세의 나이인 1892년 봄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달아났다가 퇴학당한다. 그 뒤 3월과 4월에 감화원에서 치료받았고 여름에 신경과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심지어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다가 그 해 가을 칸슈타트 김나지움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채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청춘은 아름다워라』라는 그의 소설 제목과는 달리 그의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김나지움에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자 그는 조그만 서점에서 견습생 생활을 하도록 에스링엔으로 보내졌다. 소도시에서의 견습생 생활에 따분해진 그는 3일 뒤 그곳에서도 다시 달아나버렸다. 그 후 부모의 손을 잡고 고향 칼프로 돌아간 그는 약 2년 간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보냈다. 하지만 헤세는 그 시기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매우 큰 서재에서 18세기 독일 문학과 철학 책을 읽으며 혼자 상당히 철저하고도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괴테, 겔러르트, 바이세, 하만, 장 파울과 헤트너의 문학사를 읽었고,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의 책 몇 권과 그 밖의 많은 책을 읽었다. 헤세는 16세부터 20세까지 많은 습작 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 세계 문학의 절반을 읽었으며, 예술사와 어학, 철학 공부에 끈기 있게 매진했다. 그 뒤 탑시계 공장에서 15개월 동안 견습공 생활을 했고, 그러면서 브라질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 다음 여러 곳의 서점과 고서점에 근무하며 틈틈이 습작을 하며 문학의 길을 걸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Gesammelte Werke in zw?lf B?nden)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Die Welt der B?cher』에서 보충한 것이다. 젊은 시절 헤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글은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자신의 피로 쓴 글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는 글귀였다. 그것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에 나오는 글을 불완전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자신의 피로 쓴 것만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 산에서 산으로 갈 때 가장 가까운 길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리가 길어야 한다. 잠언은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몸집이 크고 키가 껑충 큰 자라야 잠언을 알아들을 수 있다.”
헤세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라고 말한다.

책속으로 추가

기본적으로 모든 올바른 독자는 책 애호가이기도 하다. 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되도록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다시 읽고 소유하며, 언제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서 통독하고 되돌려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읽은 내용은 대부분 책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 못지않게 금방 없어진다. 매일 한 권의 책을 탐독할 수 있는 독자가 있다. 특히 할 일 없는 주부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결국 대여 도서관이 제격이다. 그들은 재물을 모으고 친구들을 얻거나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않고 다만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고트프리트 켈러가 언젠가 그들에 관한 훌륭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이런 종류의 독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하게 놔둘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독자에게는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고 하며, 그를 될 수 있는 한 친구로 삼으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게 되는 인물과 사건의 좁은 범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바라보는 시인, 그의 기질, 그의 내적인 모습, 급기야는 그의 필적, 그의 예술가적 수단, 그의 사고와 언어의 리듬이다. 책에 어떻게든 사로잡혀 있는 자, 저자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 그와의 관계를 얻은 자, 그런 자에게 이제야 비로소 책의 올바른 영향이 시작된다. 따라서 그는 책을 넘겨주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사서 간직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다시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책을 사는 자, 어조와 영혼에 언젠가 감동을 받은 책만 그때그때 취득하는 자는 곧 더 이상 아무 책이나 목표 없이 마구 탐독하지 않고, 그에게 기쁨과 깨달음을 주는 작품, 사정이야 어떻든 그의 손에 들어오는 것을 가리지 않고 우연히 읽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어떤 범위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작품을 점차 자기 주위에 모을 것이다. -85쪽

창작과 사고가 거의 같은 것이라는 견해, 세계관을 묘사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는 견해는 오류이다. 작가에게 추상적 사고는 위험 요소이며, 심지어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사고는 결과적으로 예술적 창작을 부정하고 망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지닐 수 없다거나, 사상적으로 철저히 관념론적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추상적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냉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가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 것이다. -101쪽

순전히 외적으로 보면 독서는 정신 집중을 위한 계기이자 필요성이다.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독서가 가장 그릇된 방법이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자는 결코 정신을 분산시키지 말고 집중시켜야 하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고 느끼든 간에 언제 어디서나 온힘을 다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독서를 할 때도 모든 적절한 책은 정신 집중, 즉 복잡한 일의 축소와 강도 높은 단순화를 나타내야 한다고 느껴야 한다. 아무리 짧은 시도 인간적 느낌의 단순화이자 농축이다. 책을 읽을 때 스스로 주의 깊게 함께 하고 함께 체험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나는 나쁜 독자이다. 그로써 내가 시나 소설에 가하는 부당함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쁜 독서를 통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한다. 나는 뭔가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곧 다시 잊어버리겠다고 미리 생각하는 일에 시력을 사용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내게 전혀 유익하지 않고, 내가 결코 소화하지 못할 인상들로 나의 뇌를 지치게 만든다. -119쪽

인생은 짧다. 저승에서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고 해로운 일이다. 내가 이때 염두에 두는 것은 나쁜 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서의 질 자체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발걸음이나 호흡에서 그러듯이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보다 풍부한 힘을 얻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보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잃어야 한다. 문학사를 읽어서 우리가 기쁨이나 위안, 힘이나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 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만약 내가 말한 대로 한다면 지금 읽히는 책의 10분의 1 정도밖에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열 배는 더 기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책이 전혀 팔리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열 배는 더 적게 글을 쓰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세상에 해가 되지 않으리라. 말할 것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이 독서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20쪽

우리도 모두 소년 시절엔 실러의 작품과 인디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저절로 생각이나 관점이 바뀌게 된다.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10년마다, 5년마다 한 번씩 읽으면 그때마다 다른 면이 보이고,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좋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 끌리는 대로 따라간다면, 완전히 새로운 문학의 리듬이 바뀌었다고 해서 낯설다고 당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인간적인 것’의 어떤 강령이 있어서, 또는 어떤 도덕에도 굴복해선 안 되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도덕이나 예술 사조에 왜 굴복해선 안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랑의 대상인 한에만 그렇게 하라. 어떤 도덕이나 예술 사조는 언제나 계기만 될 수 있을 뿐이지, 본질은 아니다. 우리 영혼에 본질적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이다. 이 불꽃은 우리에게 은총과 신의 아들임을 의미한다. 이 불꽃만이 우리에게 언제나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132쪽

작가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하게 시달리는 부족과 지상에서의 결손은 언어다. 작가는 때로 언어를 너무나 미워하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또는 오히려 이러한 궁색한 도구를 가지고 일하도록 태어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화가나 음악가를 생각하며 부러워한다. 화가의 언어(색채)가 북극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똑같이 이해되듯, 음악가의 음조 역시 만국의 언어로 말한다. 또 음악가는 단서의 선율에서부터 백 가지 성부의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호른에서 클라리넷에 이르기까지, 바이올린에서 하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새롭고 개별적이며 미묘한 차이가 나는 언어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143쪽

우리는 이 시대의 어떤 이상도 신뢰하지 못한다. 장군의 이상도 볼셰비키의 이상도, 교수의 이상도 공장주의 이상도 신뢰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불멸의 존재며, 인간의 온갖 왜곡된 상이 다시 회복되고 온갖 지옥에서 정화되어 떠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설명하고 낫게 하며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꿈과 우리의 고통을 드러내면서 시대에 영상의 세계, 영혼의 세계를 자꾸만 열어주려고 한다. 이러한 꿈은 부분적으로 고약한 악몽이고, 이러한 영상은 부분적으로 소름끼치는 도깨비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미화해서는 안 되고, 아무것도 거짓으로 속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시민들의 재미있는 ‘시인’들은 그 일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우리는 인류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고 나락에 가까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불멸성을 신뢰한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210쪽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 타고난 작가는 더욱 희귀하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합당한 자격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 재능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성실성과 용기, 인내심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재능에 만족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매혹적인 힘을 갖고 있고, 자연의 총아이며, 근면과 성실성, 훌륭한 신조로도 대체할 수 없는 천부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타고난 비평가는 타고난 작가보다 더 드물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비평 활동의 첫 번째 동인은 근면과 학식, 부지런함과 노력, 당파심이나 허영심, 악의가 아니라 은총, 타고난 명민함과 타고난 분석적 사고력, 진지한 문화적 책임감이다. 이러한 은총 받은 비평가도 자신의 재능을 꾸미거나 손상시키는 개인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는 자비로울 수도 악의적일 수도, 허영심이 있거나 겸손할 수도, 야심이 있거나 안일할 수도 있다. 또 자신의 재능을 가꾸거나 함부로 낭비할 수도 있다. 그는 그저 성실하기만 한 사람, 단지 학식만 쌓은 사람에 비해 창조성이란 은총에서 늘 앞설 것이다. 문학의 역사, 독일 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타고난 비평가보다는 타고난 작가를 더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청년 괴테와 가령 뫼리케나 고트프리트 켈러 사이의 시기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되는 진정한 작가의 이름을 댈 수 있다. 그러나 레싱과 가령 훔볼트 사이의 기간에는 비중 있는 이름으로 채우기가 더 힘들어진다. -227쪽

고귀한 정신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 과대평가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에게는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오늘날의 관습에 얽매여 산다는 것이 갑갑하고 끔찍한 일일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 역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횔덜린과 니체는 정신질환자에서 다시 천재의 자리로 복귀할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고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정신분석이 출현하기 이전의 지점에 다시 서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학을 발전시키려면 정신과학 고유의 방법과 체계를 가지고 추진시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247쪽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모든 아이는 학교 칠판에 처음으로 철자를 그려 넣고, 처음으로 읽기를 시도하면서 인위적이고 극히 복잡한 어떤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세계의 법칙과 놀이 규칙을 매우 잘 알고 완전히 익히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과 글,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조그만 공간, 즉 집 한 채나 방 한 칸에 인간정신의 역사를 집어넣어 소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책을 선택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 -255쪽

세계 문학의 영역 중 내가 살면서 가장 빈번히 들여다봤고,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의 백년, 즉 괴테가 중심이자 정점을 이룬 시절, 오늘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흡사 전설처럼 된 시절의 독일 문학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 아주 먼 과거와 먼 외국으로 돌아다니다가도 이젠 흥분도 실망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 영역, 즉 저 시인들, 서간 작가와 전기 작가들에게로 번번이 되돌아온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인문주의자들이면서도, 거의 모두 흙냄새와 민속적인 체취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런 책들은 특히 직접 내게 말을 건다. 그 책들에서는 풍경, 민족성과 언어가 내게 친숙하고, 어려서부터 고향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특별한 행복을 즐기고, 더없이 섬세한 뉘앙스, 매우 은밀한 암시, 매우 나직한 울림도 알아듣는다. -289쪽

하지만 문학에서도 피와 향토, 모국어가 전부는 아니다. 그런 걸 넘어서 인류가 있고, 더없이 멀고 낯선 곳에서 고향을 발견할 가능성, 얼핏 보아 굳게 닫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사랑하고 그것과 친숙해질 놀랍고도 즐거운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러한 사실은 내 인생의 전반부에 인도 정신과, 그런 뒤에는 중국 정신과의 만남을 통해 입증되었다. 인도에 이르는 길은 나의 경우 적어도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나의 부모와 조부모님께서 인도에 사셨기에, 인도의 여러 언어를 배우셨고, 인도의 정신을 약간 맛보셨다. 그러나 중국에는 놀라운 문학과 중국 특유의 인간성과 인간정신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내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걸 훨씬 넘어서서 나의 정신적 피난처이자 제2의 고향이 될 정도였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예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중국 문학이라 해봐야 뤼케르트가 번안한 『시경詩經』밖에 몰랐던 내가 리하르트 빌헬름 등의 번역을 통해 중국 문학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삶에 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은 바로 지혜와 선善이라는 도교의 이상이었다. 한 마디도 중국어를 할 줄 모르고, 중국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내게 2천 5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중국 고대 문학에서 내 자신의 예감을 확인받고, 어떤 정신적인 분위기와 고향을 발견하는 행운이 주어진 것이다. 이전엔 그런 것을 출생과 언어로 내게 할당된 세계 속에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
장자, 열자와 맹자가 이야기하는 중국의 스승과 현인은 격정가와는 반대였다. 그들은 놀랄 만치 소박했고, 민중이나 일상과 가까웠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속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은둔하고 자족하며 살았다. 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우리는 번번이 놀라움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노자의 위대한 맞수인 공자는 체계를 세우는 자이며 도덕주의자요, 법치주의자이며 윤리의 수호자이다. 그는 고대의 현인들 중 그나마 유일하게 격식을 차리는 자이다. 그는 예컨대 때로 이런 모습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 “그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던가?” -290쪽

우리의 언어는 모두 꽤 오래 되었지만, 그 어휘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중이다. 단어들은 병들 수 있고 죽을 수 있으며,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떤 언어든 날마다 새 단어가 옛 단어에 덧붙여진다. 그러나 모든 발전도 이러한 성장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일, 새로운 상황, 새로운 기능과 욕구를 위해 명칭을 생각해내는 언어의 능력에 경탄하며 놀라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 개의 새로워 보이는 단어들 중에서 아흔아홉 개는 옛 단어의 기계적인 조합에 불과하며, 즉 결코 실제적이고 진정한 단어가 아니라 단지 명칭과 임시변통에 불과함을 금방 알아채게 된다. 최근 2백 년 동안 독일어에서 늘어난 어휘 수는 엄청나고 놀랄 만하다. 그러나 무게와 표현력, 언어적 핵심, 아름다움과 진정한 금 함유량 면에서는 가련할 정도로 빈약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풍요로움은 일종의 인플레이션 같은 속임수다. -308쪽

모든 글을 잠시 후든 오랜 시간이 지난 후든, 수천 년이 지나서든 몇 분 지나서든 소멸하고 만다. 세계정신은 모든 글과 그 모든 글의 소멸을 읽으며 웃음 짓는다. 그것들 중 몇 개나마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린다면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다. 어떤 글에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내재해 있는 그 의미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나는 내 글에서 그 의미를 음미했으며, 그것을 약간 명료하게 하거나 또한 은폐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고, 또 새로운 것을 말하려 하지도 않았다. 많은 현인과 시인이 이미 여러 번 그런 말을 했다. 그때마다 약간 달라서, 매번 약간 더 명랑하거나 더 비탄에 젖을 때도, 약간 더 쓰디쓰거나 더 달콤할 때도 있었다. 어휘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고, 복문을 다르게 구성하거나 배치할 수도 있다. 팔레트 위의 색상을 다르게 배열해 사용할 수 있고, 딱딱한 연필을 쓰거나 부드러운 연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옛날 것, 가끔 말하고 시도한 것, 영원한 것이다. 모든 쇄신은 흥미롭다. 언어와 예술 속의 모든 혁신은 흥미진진하고, 예술가들의 온갖 유희는 매혹적이다. 이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할 가치가 있으나 결코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하나로 남아 있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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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정말 사랑하는 헤르만헤...
     
     
     
     
     
    정말 사랑하는 헤르만헤세의 문장론과 함께라면 내 글에 부족한 2%의 완숙미가 더해질 것 같았다.
    그의 거친 생애와 숱한 독서가 만들어낸 그만의 문장론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의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이 내 사춘기를 다독거려주었고 <유리알 유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듯
    그의 <문장론>은 내 삶에 또 하나의 반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여 이 책을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문장을 어떻게 쓰고 다듬어라"라든가 "좋은 문장은 이런 것이다."라든가 하는 헤세만의 문장 법칙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나는 어쩌면 그런 법칙들을 헤매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몇 장을 읽다가 그러한 문장 법칙이 나오지 않자 '음, 그 다음엔 그런 얘기가 나올거야, 이 다음에 나오겠지' 생각하며 읽다보니 어느덧 책을 다 읽었다.
    내 기대의 잘못은 두 가지다.
    첫 째, 문장을 쓰는 데 법칙이 있을 리 없는데 법칙을 배우고 싶었다.
    (문법이나 구조, 기능 등의 법칙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 나온 구절들이랄까. 번역을 읽는 주제에 나도 웃긴다.)
    둘 째, 그러한 법칙이 설령 있다해도 그건 그 사람만의 문장일 뿐 내 문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책에서 그러한 법칙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문장론>이냐, 하는 게 의문이다.
    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문장론"이란 "문장을 기본 대상으로 하여 문장의 구조나 기능, 문장의 구성 요소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문장론이 아니다. 오히려 "헤세의 과거 글 모음집"쯤이나 "헤세의 '책에 대하여'"쯤이 될 것이다.
     
    책 속에는 헤르만 헤세가 살아오면서 썼던 책과 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는 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책은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 값싼 기만적이고 대체적인 삶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책은 삶으로 이끌어가고 삶에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에만 하나의 가치를 지닌다."
    "약간의 힘, 되젊어지는 예감,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생기지 않으면 책을 읽는 시간은 모두 낭비되는 셈이다."
    "책을 처음 읽고 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얼마 뒤에 꼭 다시 읽어보라"
    등등.
    글세,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을 지 모르겠지만 익히들 하는 이야기를 굳이 "헤세가 이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해서 부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의 문학이 전달해주는 "깨어있음, 내면의 성숙, 자신과 마주치기" 같은 주제에 매료되었던 나에게 이번 책은 사실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그저 장황하기만 한 주장에 가까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번역투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목적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삶이 드러나는 에세이를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더욱 행복했으리라. 
    (게다가 헤세가 문장의 구조나 기능, 문장의 구성 요소 따위를 가르쳐주는 글이었다면 집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골라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남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전체와 활발히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 하나만을 기억하며 나는 책을 덮었다.
    처세를 위한, 점수를 위한, 지적 허영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나의 내면과, 타인과, 자연과, 세계와의 공명을 위한 책 읽기를 하겠노라는 내 생각을 굳히기 해보면서.
     
     
    + 이 서평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카페에서 서평단으로 뽑혀 책을 지원받은 후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   "헤세의 문장론"을 참으로 오랜만에 펴든다. 요즈음으로 치면 문제아라고 불리울만한 이력은 있지만 그래도 어떤...
     
    "헤세의 문장론"을 참으로 오랜만에 펴든다. 요즈음으로 치면 문제아라고 불리울만한 이력은 있지만 그래도 어떤 고집이 느껴지고 이것을 평생에 걸쳐 지속하는 정신력의 소유자 헤세는 "유리알 유희"를 통하여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역시, 해세의 짤막한 글들 속에서 마음에 잘 와닿는 것은 책읽기와 소장하기에 대한 글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 책과의 교제, 번역, 글씨는 밤, 책이 지닌 마력, 소설 한권을 읽으면서, "빵"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말, 글쓰기와 글씨 등을 읽어 내려가 본다.

    아마존의 인터넷 서점이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취가 있는 동네 서점의 몰락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존이 책을 읽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이전 보다 더 깊게 해주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리의 일상이 취업과 먹고 사는 일로 분주한 이 시기에 "헤세의 문장론"을 읽을 기회가 생긴 것이 소중하다. 특히, IT의 발전으로 뭇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책과의 대화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시절에 오랜 기억을 되짚어 내듯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대량생산 그리고 대량소비의 시절을 살고 있다. 출판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본다. 예전과는 달리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는 일이 그 어느때 보다 도 더 쉽고 간편해진 시기를 살고 있다. 그야말로, 책도 홍수처럼 넘쳐난다. 이란 책들 속에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다. 헤세의 말에 동감한다. 각자의 생각과 취향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최우수 도서목록"에 의존하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까지 말한다. 의무감이나 호기심으로 읽는 것보다는 한 두 번 읽어보고 만족스러운 책을 사서 읽어 보는 것을 그의 친구의 예를 들어 권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절이 아닌가(사실, 요즈음 같은 시기에는 서점에 가서 몇 번 읽어 보고 책을 구입하는 것은 시간 상 쉽지는 않다.) - 다른 사람들의 독후감이나 짤막하게 책을 쉽게 설명해주는 시절에 살게 되어 원하면 언제든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비록, 그란 책들이 헤세가 얘기하는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도록 철사가 아닌 실로 제본된 것 그라고 좋은 종이 여야 한다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닌 세상을 살고 있지만 독자는 가능한한 책을 가까이 두고 언제든지 다시 보고 싶을때 꺼내 보는 것을 선호한다.

    헤세는 책읽기의 유형을 세가지(단계)로 분류하며, 책이 이끌고 독자는 따라가는 식으로 작가의 세계관에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는 것에서 부터 아주 개성적이고 주관적인 상태, 읽을 거리에 완전히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그래서 재미나 교양을 쌓기 위하여 책을 읽는 것이 아닌 그저 출발점이고 자극일 뿐인 그런 단계를 말한다. 이 세 가지 단계가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끝으로, "말"에서는 문학잡지가 앞으로 화보잡지를 겸하겠다는 환영하고 오래 살아 남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언어의 한계라고 할까, 그 시대의 배경 상 독일어를 싫어 한다고 할까 아니면 소위 교양있는 계층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모종의 시험기간을 합격한 뒤에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는데, 요즘의 인터넷이 펼쳐 주는 SNS 세상을 헤세가 보았다면 아마도 놀라서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상상한 그 이상의 세계가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 헤세의 문장론 | me**7 | 2014.04.1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명작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까지 꽤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이 그 외의 책들...
    명작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까지 꽤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이 그 외의 책들에 비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이제까지 꽤 나쁜 책읽기를 해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지도도 없이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온 과거에 몇 권이나마 헤세의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명작이라고 분류되어 손에 들어오기 쉬운 분류 속에 그의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책들로 인해 감동과 감화를 받은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하면 책을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 드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얼마 안되는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 속에 명작이라 분류되는 이름난 책들도 꽤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받아들일 마음이 아닌 상태에서 읽으면 그저그런 지루한 책일 뿐이고, 세간에 평이 좋지 않은 책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어 읽는 이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면 읽는이에게 좋은 책이 아닐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 명작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평소 그런 자격지심이 있어서 이 책 <헤세의 문장론>이 더 읽고 싶은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장론을 알고 그의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전과는 좀더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의도로 접근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제법 재미있는 책읽기가 되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상을 쓴 글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도 헤세가 책장정리를 하는 부분이라든가, 요즘 읽고 있는 책에 관한 글이라던가 하는 내용이 꽤 재미있게 읽혔다. 읽던 중 조금 마음에 걸린 것은 책을 대여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이들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나또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경우가 더 많으니 헤세의 글이 비난으로 들리기도 했다. 물론, 두번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면 구입을 하고 책장에 꽂아 정리를 해두지만, 최근 들어서는 가벼운 소설류와 실용서 위주의 책읽기가 계속되다보니 실상 필요한 실용서정도만 시기에 맞춰 구입하게 되고 꼭 마음에 들어 책장에 갖춰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최근 나오는 sf전집밖에 없다는 게 조금 부끄럽다.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비교할 대상도 되지 않을 것이고, 그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나름 재미있는 책읽기였다. 
  • [서평]「헤세의 문장론」책에 대한 아름다운 이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갈 때는, 작가가 선택...

    [서평]「헤세의 문장론」책에 대한 아름다운 이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갈 때는, 작가가 선택한 소재나 말하고자 하는 주제, 구성, 표현 등 다양한 요소에서 나를 감탄시킬만한 무언가가 나왔을 때다. 나는 보통 작가의 문체에 감탄하고는 한다. 특히 문체는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그 빛을 발한다. 문체는 쉽게 말하자면 말투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떤 사람이 말하면 재밌고 어떤 사람이 말하면 재미 없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책 또한 역시 마찬가지다.  

     똑같은 소재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해도 어떤 사람의 책은 재밌고 어떤 사람의 책은 재미가 없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참 재밌게 쓰는구나 싶은 작가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헤르만 헤세다. 

     

     「헤세의 문장론」은 헤르만 헤세의 그야말로 아름다운 문체덕에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게다가 이야기에는 '별 것'이 많다. 문장론이라는 책 제목과는 달리 책과 작가, 독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인문 도서로 분류되고 있지만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헤르만 헤세의 세계에 구축되어 있는 책에 관한 이해는 문체만큼이나 아름답다. 의무적으로나 강제적으로, 교양을 위한 필수 과제물로 보는 책이 아닌, 인간적인 시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책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읽는 법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대체로 힘들지만 그래도 '교양'을 얻기 위한 불가피한 길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독서로 기껏해야 '교양'을 얻기도 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독서에 대해 시간을 허비하는 가벼운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루하지만 않으면 기본적으로 무엇을 읽든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P. 115 

     

     

     책을 읽는다는 건 곧 하나의 세계에 접속하는 것과 같다. 그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과정이다. 독서를 한다는 건 그 작가와 친해지는 것과 같다. 글을 솔직한 것이어서 그 사람이 쓴 글에는 그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헤세의 문장론」을 읽는 다는 건 책에 대해 이해하고 헤르만 헤세와 친해지는 아름다운 과정과도 같다. 

     

     

     책

     

     이 세상 모든 책이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아

     허나 몰래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이

    그대 자신 속에 있기 때문이지

     

     오랫동안 책에서 구하던 지혜

     이제 펼치는 책장마다

     환히 빛나리

     이제 그대의 것이니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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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기대와는 조금 다른 [헤세의 문장론] ​   이 책의 제목은 [헤세의 문장론]이다. 가제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고 씌어져 있다. “~론”으로 끝나는 말들은 참으로 많다. 베게너의 판구조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등. 이번에 새로운 “~론”이 탄생되었다. [허세의 문장론] ​   그런데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론”이라는 것은 언제 사용되는 것일까? 잠깐 옆길로 세어 보겠다. “~론”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지만 “~학”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된다. 의학, 구조역학, 동역학, 문학 등등. “~학”과 “~론”에 대해서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학 : 어떤 원리에 따라 조직된 지식의 체계.   론 : 그것에 관한 학문’ 또는 ‘학문 분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주장’ 또는 ‘이론’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내가 판단했을 때, 위에서 논한 “학”과 “론”에 대한 가장 큰 차이점은 집단과 개인이라는 점이다. “학”은 집단이고, “론”은 개인이다. “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 분야에 대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랜 기간 다수의 연구로 인해 누적되어 온 지식의 체계가 형성되면서 거대한 “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반면 “론”은 집단이기 이전에 개인의 힘이 더 크다. “학”을 연구하고 만들어나가는 많은 이 중에서 개개인에게는 그 나름의 성향과 취향이 존재한다. 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무수한 과학자가 존재하고, 문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무수한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 않은가. 각자가 연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각자가 글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들이 다르다. 즉, “론”은 한 개인의 생각과 지식이 응집되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   그렇다면 [허세의 문장론]이라고 하면, 헤르만 헤세가 그 동안 글을 써오면서 자신의 생각하는 문장론에 대하여 논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문체라던가, 이야기 전개의 방향성, 디테일한 인물 묘사의 방법, 등등. 거기다가 가제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다하여”라고 붙어 있으니, 그의 생각들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목차만 봐도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책 읽기와 책 소유하기”, “독서에 대하여”, “책 정리하기”,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문필가에 관해” 등등. ​   그런데 문제는 막상 책을 읽어 보면 우리가 원했던 내용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무언가 문장론이라고 하여 우리가 앞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음에 있어 황금 같은 팁을 얻고 싶었으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은 “글쎄올시다.”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나는 이 점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건데, 이 책은 “편역”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점에 있다. “편역(編譯)”이란 엮어서 옮겼다는 뜻입니다. 책 한 권을 그대로 번역한 게 아니라, 특별한 주제에 맞추어 여러 가지 책이나 자료에서 연관 있는 부분만 발췌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시중에 “편역”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   이 책은 1900년도부터 1960년까지 헤르만 헤세가 썼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하였던 베게너의 판구조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과는 차이가 있다. 베게너는 수년간 판구조에 대해 연구하여 판구조론을 내놓았고, 마르크스는 수년간 자본에 대해 연구하여 자본론을 내놓았다. 반면 헤르만 헤세는 수년간 문장에 대해 연구하여 문장론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저 수년간 작품 외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이곳저곳에 적어놓은 것이다. 그가 문장에 대해 고민하여 쓴 글인지,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인지는 알 수가 없다. ​   그 역할은 편역자의 역할이다. 작품 외적으로 쓴 헤르만 헤세의 수십 수천 수만 편의 글을 찾아 읽어보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 엮은 셈이다. 마치 헤르만 헤세가 문장에 대해 연구한 문장론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물론 편역자는 헤르만 헤세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많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헤르만 헤세를 잘 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편역을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이 책을 읽은 나한테는 특히 더 그렇다. 이야기는 중구난방이고,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뿐이었다. 어떤 파트는 너무 어렵고, 어떤 파트는 소제목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 제목이 없는 글에 편역자가 임의로 제목을 달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아직 책에 대한 깊이가 없고, 헤르만 헤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그렇다. 이젠 각자가 판단할 차례이다. ...
    처음 기대와는 조금 다른 [헤세의 문장론]
      이 책의 제목은 [헤세의 문장론]이다. 가제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고 씌어져 있다. “~으로 끝나는 말들은 참으로 많다. 베게너의 판구조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등. 이번에 새로운 “~이 탄생되었다. [허세의 문장론]
      그런데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이라는 것은 언제 사용되는 것일까? 잠깐 옆길로 세어 보겠다. “~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지만 “~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된다. 의학, 구조역학, 동역학, 문학 등등. “~“~에 대해서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어떤 원리에 따라 조직된 지식의 체계.
      론 : 그것에 관한 학문또는 학문 분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주장또는 이론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내가 판단했을 때, 위에서 논한 에 대한 가장 큰 차이점은 집단과 개인이라는 점이다. “은 집단이고, “은 개인이다. “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 분야에 대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랜 기간 다수의 연구로 인해 누적되어 온 지식의 체계가 형성되면서 거대한 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은 집단이기 이전에 개인의 힘이 더 크다. “을 연구하고 만들어나가는 많은 이 중에서 개개인에게는 그 나름의 성향과 취향이 존재한다. 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무수한 과학자가 존재하고, 문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무수한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 않은가. 각자가 연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각자가 글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들이 다르다. , “은 한 개인의 생각과 지식이 응집되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허세의 문장론]이라고 하면, 헤르만 헤세가 그 동안 글을 써오면서 자신의 생각하는 문장론에 대하여 논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문체라던가, 이야기 전개의 방향성, 디테일한 인물 묘사의 방법, 등등. 거기다가 가제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다하여라고 붙어 있으니, 그의 생각들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목차만 봐도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책 읽기와 책 소유하기”, “독서에 대하여”, “책 정리하기”,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문필가에 관해등등.
      그런데 문제는 막상 책을 읽어 보면 우리가 원했던 내용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무언가 문장론이라고 하여 우리가 앞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음에 있어 황금 같은 팁을 얻고 싶었으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은 글쎄올시다.”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이 점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건데, 이 책은 편역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점에 있다. “편역(編譯)”이란 엮어서 옮겼다는 뜻입니다. 책 한 권을 그대로 번역한 게 아니라, 특별한 주제에 맞추어 여러 가지 책이나 자료에서 연관 있는 부분만 발췌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시중에 편역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이 책은 1900년도부터 1960년까지 헤르만 헤세가 썼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하였던 베게너의 판구조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과는 차이가 있다. 베게너는 수년간 판구조에 대해 연구하여 판구조론을 내놓았고, 마르크스는 수년간 자본에 대해 연구하여 자본론을 내놓았다. 반면 헤르만 헤세는 수년간 문장에 대해 연구하여 문장론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저 수년간 작품 외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이곳저곳에 적어놓은 것이다. 그가 문장에 대해 고민하여 쓴 글인지,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역할은 편역자의 역할이다. 작품 외적으로 쓴 헤르만 헤세의 수십 수천 수만 편의 글을 찾아 읽어보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 엮은 셈이다. 마치 헤르만 헤세가 문장에 대해 연구한 문장론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물론 편역자는 헤르만 헤세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많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헤르만 헤세를 잘 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편역을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은 나한테는 특히 더 그렇다. 이야기는 중구난방이고,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뿐이었다. 어떤 파트는 너무 어렵고, 어떤 파트는 소제목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 제목이 없는 글에 편역자가 임의로 제목을 달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아직 책에 대한 깊이가 없고, 헤르만 헤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그렇다. 이젠 각자가 판단할 차례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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