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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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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쪽 | B6
ISBN-10 : 8952211669
ISBN-13 : 9788952211668
천년습작(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김탁환 | 출판사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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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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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미선택 제본불량 미선택 부록있음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090513, 판형 122x190, 쪽수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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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배송 고맙습니다 배송 고맙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tribu***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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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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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탁환이 말하는 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
"내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천년습작』.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 「혜초」,「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등 굵직한 장편을 써낸 소설가 김탁환이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글쓰기 기술이나 실용적인 방법을 소개하기 보다는 '따듯함'에 초점을 맞춘다. 글을 쓰는 이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잔재주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다.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라는 것. 그러므로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 책에서 독자는 소설가 김탁환이 말하는 소설가들을 만나게 된다. 「괴테와의 대화」,「발자크 평전」,「릴케의 로댕」에서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바라본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칼 같은 글쓰기」,「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서처럼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토로하는 용기 있는 작가들과 직접 만나기도 한다. 김탁환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창작의 고민과 구도에 대한 갈증, 작품 속에서 빌려온 주옥같은 문장들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양장본]

저자소개

김탁환
1968년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혜초』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허균, 최후의 19일』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압록강』 『독도평전』 등 치밀한 사상사적 연구가 바탕이 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이 밖에 소설집 『진해 벚꽃』, 문학비평집 『소설 중독』 『진정성 너머의 세계』 『한국 소설 창작 방법 연구』 『김탁환의 독서열전』 등을 출간했다.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목차

제1강 오리엔테이션: 인용들
―『괴테와의 대화』에 기대어

제2강 카프카의 불안과 빌어먹을 매혹
―『문학의 공간』에 기대어

제3강 사이에서 치열하게, 인터뷰!

제4강 작가의 방 1
―『발자크 평전』에 기대어

제5강 작가의 방 2
―『릴케의 로댕』에 기대어

제6강 이야기에 관한 어리석은 이야기

제7강 매체와 이야기의 변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 기대어

제8강 누구나 사랑할 만한 인간
―『남쪽으로 튀어!』에 기대어

제9강 견고한 ‘나’ 만들기 1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에 기대어

제10강 견고한 ‘나’ 만들기 2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 기대어

제11강 작가는 어이하여 떠돌까
―여행과 글쓰기

제12강 키워드 혹은 그물
―소설 『혜초』를 위해 고심하기

제13강 따듯하게 설화 품기
―물의 상상력

제14강 따듯하게 소설 품기
―『원미동 사람들』에 기대어

제15강 따듯하게 영화 품기
―<복수는 나의 것>과 <집으로>에 기대어

제16강 내 인생의 책은 죄가 없다
―『새로운 인생』에 기대어

강의를 마치며
―작가는 나무처럼

책 속으로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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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결코 정답이 아닙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지요. 하지만 적어도 진심을 가지고 글쓰기에 몰두한 이들을 엿보는 일은 또 때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은, 초발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지닌 채 습작에 매진하는 나날에 작지만 흔들림 없는 깃발이 될 수는 있으리라고 봅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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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소설가 김탁환이 말하는 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 『혜초』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허균, 최후의 19일』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등 굵직한 장편을 연거푸 쏟아놓은 소설가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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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탁환이 말하는 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

『혜초』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허균, 최후의 19일』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등 굵직한 장편을 연거푸 쏟아놓은 소설가 김탁환이 드디어 글쓰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천년습작』은 기존의 글쓰기 책들처럼 글쓰기의 기술이나 실용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함’에 초점을 맞추며, 글을 쓰는 이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세밀하게 파고든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바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집약된다. 요컨대 잔재주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글쓰기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천년의 습작’을 각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자들은 이 책 속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를 만나게 된다. 김탁환은 『괴테와의 대화』 『발자크 평전』 『릴케의 로댕』에서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바라본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는가 하면, 『칼 같은 글쓰기』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서처럼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토로하는 용기 있는 작가들과 직접 대면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와 장면들에는 소설가 김탁환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창작의 고민과 구도에 대한 갈증이 진하게 배어난다. 그가 영감을 받았던 작품에서 빌려온 고르고 고른 주옥같은 문장을 헤집고 나아가다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글쓰기에 대한 ‘눈’과 ‘손’과 ‘걸음걸이’뿐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되돌아보는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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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천년습작 | id**la | 2018.08.2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   단연코 이 책은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행여 "나도 글 쓰는 법 ...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

     

    단연코 이 책은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행여 "나도 글 쓰는 법 좀 배워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긴다면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것이다.

     

    이 책에는 글을 쓰기 위한 테크닉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문장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며 캐릭터들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어떤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야하는 지 
    작가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한 사람에게 연필을 다루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빛'에 대한 이먀기만 하듯이...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알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손놀림의 결과가 아닌 '빛'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을.

     

    김탁환 작가는 글을 쓰는 테크닉이 아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지세를 말하고 있다.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예술을 노동으로 받아들일것인가, 유희로 볼것인가 전문가(직업인)에게 있어서 예술은 노동이고,

    아마추어나 감상자에게 있어서 예술은 유희입니다.'(p71)

     

    글을 쓴다는 것이 노동 혹은 직업의 한 형태가 될 때 그것에는 의무가 수반된다. 
    글은 더 이상 작가 개인만의 결과물이 아닌것이다. 
    때문에 항상 진실되어야 하며 글을 위한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책의 제목이 '천년습작'임은 그 기나긴 시간만큼의 고뇌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글쓰기'
    쉽사리 글을 써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부담스러울것이다.
    '재미'보다 '진정성'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미보다 진정성의 측면에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지금까지 책쓰기외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해 가장 할 말이...

    지금까지 책쓰기외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은 아마도 소설가이지 싶다. 정작, 소설가가 쓴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해 알려주는 강의나 인터뷰나 책은 드물다. 책에 대해 이야기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도 정작 소설가가 쓴 책은 극히 드물다. 우리들이 흔히 작가라는 표현을 한다. 이들은 무엇인가 새롭게 창작한 사람을 일컫는다.

     

    저자는 한 분야에 권위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작가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저자라는 표현을 한다. 남들이 나에게 작가라는 표현하는 것을 지적할 수는 없어도 내 스스로는 저자라고 칭한다. 저자보다는 작가가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저자도 한 분야의 권위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보니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들이 고대로부터 가장 글에 있어서는 우리들이 떠오르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글을 쓴다고 할 때 대부분 떠올리는 인물은 작가다. 작가들이 점점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 예전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칭했고 작가들의 좋은 작품 하나를 발표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도 없었고 여러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그 자리를 저자들이 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고민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어떻게 이런 괴리감이 생겼는지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감히 논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예비작가들을 위해서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강의와 책도 있다. '천년습작'은 기술적인 면에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 작품을 대하는 관점과 글을 쓰는 본질에 대해 강의한 것을 책을 엮었다. 지금까지 책쓰기,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부담없이 가볍게 읽었다. 그에 반해 '천년습작'은 그럴 수 없었다. 책에서 다양한 책을 언급한다. 매 강의마다 새로운 책을 소개하고 책 내용을 알려주고 책에 나온 문구중에 몇몇 문구를 읽어준다.

     

    그 문구들이 결코 부담없이 쉽게 읽을 수 있지 않다. 이러다보니 책을 읽는 것이 약간 부담스러웠다. 평소처럼 부담없이 읽으려고 했는데 단순히 글쓰기와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생에 대해 논하고 철학에 대해 논하고 한 작가가 글을 쓴다는 의미와 글을 쓰는 작업의 어려움을 위대한 작가를 통해 소개하는 것이 낯설었다. 처음부터 이런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머리를 조정했을텐데 읽으면서 머리의 난이도를 조정(?)하느라 힘들었다.

     

     

     

    고백하자면 김탁환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어 본 적이 없다. 고로 김탁환이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글을 썼는지 알지 못한다.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작가에 대한 감이라도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읽다보니 주저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도 김탁환이 소설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호평을 받는 작가라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선택했다. 강의를 책을 펴 낸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호기심과 궁금증도 생겼고.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와 책쓰기 책들이 소프트 했다면 '천년습작'은 묵직했다. 분명히 작가의 소설도 묵직한 소설이 많을 것이라 예상되는데 역시나 쓴 소설의 제목부터가 '불멸의 이순신' '혁명' '밀림무정'처럼 역사소설이었고 남자들의 힘이 있는 소설이다. 다만, 책을 읽을 때 소설에서 맛깔스럽게 글을 쓰기 위해 다소 글을 풍성하게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굳이 분류하자면 실용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 문학이 아님 실용서적인 이분법적인 잣대 - 소설처럼 글이 써져있다. 멋을 너무 부렸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다. 게다가 욕심을 부리면 책을 쓸 수도 있다. 다만, 너무 기교와 형식에 얽매여 글을 쓰고 책을 쓰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들과 책이 많다. 글과 책을 쓰는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그저 자신을 뽑내려 하거나 기계적으로 좋은 문구나 사례들로 가득한 책을 쓴다. 이런 글과 책이 당장에는 인기를 끌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이런 글에 금방 지겨워 할 것이다.

     

    작가로서 '천년습작'은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이야기한다. 하루 중에 눈 뜨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글 쓰는 것에만 전념한 발자크의 사례나 아마추어가 아닌 전업작가로서 살아가는 생에서 글쓰기가 어떠한지도 설명한다. 소설가가 하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 그런지 일반인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독려하고 '너도 글을 쓸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무조건 심어주는 책은 결코 아니다. 글 쓰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해 '따뜻함'이 아닌 '따듯함'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웃으면서 설명하고 있지만 무서운 사감선생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글쓰기가 참 힘들구나'를 느끼며 각오를 다진다고 할까. 난 도저히 죽었다가 깨어나도 지금과 같은 종류의 글을 쓸 수 있어도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이 갖고 있는 의미와 묘미를 제대로 잘 살려 맛깔스럽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소설가의 글쓰기 강의를 읽고 어딘가 나와는 다른 영역의 글쓰기라 넘사벽으로 느끼며 읽기도 했지만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본질과 그 어려움을 공감하며 읽었다. 다시 생각해도 쉽게 이야기해도 되었을텐데 좀 어렵게 푼것이 아닐까 하는 아둔한 내 머리를 탓하게 된다. 하긴, 이 강의가 카이스트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니 넘사벽인 나에게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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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습작 | sm**399 | 2013.10.2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김탁환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68년생. 진해에서 태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창원시 옆이 바로 진해다. ...
     
    김탁환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68년생. 진해에서 태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창원시 옆이 바로 진해다. 낮고 아담하고 조용한 도시. 바다를 끼고 있어서 더 여유롭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진해 벚꽃>이란 제목에 이끌려 그의 책을 처음 접했다. 좋았다. 문학청년의 필체처럼 싱싱했다고나 할까. 살이 있었다는 느낌.
     
    이 책또한  제목에 더 매료되었다. 김탁환이란 작가의 이름도 어디선가 자주 본 것 같았다. 그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고 고향이 진해라서 더 눈여겨 봤던것이 생각났고 진해 벚꽃에 정감을 가졌고 밑줄을 그어서 옮겨 놓았던 문장도 생각났다. 장님의 손에 떨어지는 벚꽃이야기를 밑줄 그어서 필사해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매료되었다. <백년 습작>에는 달큰한 맛이 났다. 정제되고 품위가 느껴진다. 깊이와 밀도가 밀려온다. 그냥 기분이 좋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이런 순간이 그저 좋다. 괜스리 나도 품위가 더 생기는 것 같다고나 할까. 깍두기처럼 끼어서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이다. 되돌아가서 다시 읽게 되는 문장들이 많아진다. 아껴본다.
     
    '제가 지금부터 16강에 걸쳐 해보려는 것도 어찌 보면 '강의'이고 어찌 보면 '대화'이며 어찌 보면 먼저'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버린 선배의 주제넘는 '충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결코 정답이 아닙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지요. 하지만 적어도 진심을 가지고  글쓰기에 몰두한 이들을 엿보는 일은, 또 때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은 초발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지닌 채 습작에 매진하는 나날에 작지만 흔들림 없는 깃발이 될 수는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 강의 를 위해 다시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손바닥으로 쓸어보았습니다. 삐뚤삐뚤 그어놓은 많은 밑줄이 제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이 밑줄들이 만든 긴 흐름의 끝에 제가 서 있는 것이겠지요. 작가란 이렇듯 항상 밑즐 긋은 자이면서 밑즐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일 겁니다.' 16~17쪽
     
    가치전복은 고독의 본질이다. 매혹은 고독의 시선이다. 끊임없는 것과 그치지 않는 것의 시선이다. 그 안에서 눈멀음은 아직도 보는 것이며 이 또 다른 각도의 시선은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보지 않을 수 없는 불가능성이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영상 속에 언제까지고 집요하게 눈 앞에 보이는 불가능성인 것이다. 이것은 죽은 시선이다. 영원한 유령이 되어 버린 시선이다.
     
    매혹당한 자는 누구나 현실적인 물체나 현실적인 모습을 전혀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보는 것은 현실의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매혹이라는 불확실한 공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말하자면 절대적인 공간이다. 이 안에서 거리라는 것은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크기로 존재한다.왜냐하면 그것은 이미지의 배후에 있는 무제한적인 깊이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조작할 수도 없으며 주어진 것도 아닌 그 깊이는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물체들이  의미에서 이미지 속으로 무너져 내릴 때, 물체들은 바로 이 깊이 속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 매혹의 장소에서 우리가 보는 것, 그것은 시선을 붙들고 그 시선을 끊임없는 것으로 만든다. 여기서 시선은 빛이 되어 응결된다. 여기서 빛은 보지 않는 그러나 끊임없이 보지 않을 수 없는 눈의 절대적인 섬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울 속의 우리 자신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거울이라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며 매혹적인 공간인 것이다. 이 빛은 또한 심연이다. 우리는 그 속으로 이 빛 속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두려우면서도 우리를 매료시키는 빛 속으로.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리를 매혹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을 매혹의 순간이며  어린 시절은 그 자체가 매혹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라는 이 황금기가 찬란한 빛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 빛은 밝혀질 수 없는 것이며 밝힐 것도 없는 단순히 반사된 빛이며 단지 이미지에서 찬란하게 발산되는 광산일 뿐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얼굴이 지니는 힘은 매혹의 힘자체에서 그 빛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매혹의 끌어당기는 힘을 행사하는 것은 그녀는 어린아이가 온통 매혹된 시선으로 살 때 나타나 그녀 안에 마법적인 매혹의 모든 힘을 집약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매혹적인 것은 어린아이가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년기에 받는 모든 인상에는 무언가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점이 있다. 고정적인 불변성, 이것은 매혹에 속하는 것이다.
     
    그 누구이든 매혹당한 자가 보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즉각적인 인접한 거리에서 그것이 직접 그에게 손을 대는 것이다. 그가 그것과 굉장히 먼 거리에 있다 하여도 그것이 그를 붙들고 그를 독점하는 것이다. 매혹은 불투명하고 막연한 '우리'  얼굴 없는 거대한 누군가처럼 근본적으로 중성적인 비인칭의 존재와 연관되어 있다. 매혹은 시선이 유지하는 관계이다. 그 자체가 중성적이고 비인칭적인 관계이다. 무엇과의 관계인가? 시선도 둘레도 없는 깊이와의 관계, 우리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게 되는 부재와의 관계이다.
                                                                                <문학의 공간> 34~35면
     
    김윤식은 일찍이 이런 매혹을 '황홀경'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매혹의 대상은 그림일 수도 있고 춤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고 또 자연 그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매혹의 순간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객관적인 시공간을  뛰어넘게 되고 감탄하며 보면서도 주체적인 의미부여를 하지는 못하면서 또한 이다음에 무엇이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24쪽
     
    보통은 매혹당할 때 완전히 무장해제 상태에 놓입니다. 소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매혹 아래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블랑쇼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풉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혹의 위협이 있는 고독을 긍정하는 공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라는 위험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시간의 부재 속에는 끝없는 새로운 시작이 군림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되고 나와 관계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익명의 것이 되어 무한히 흩어진 가운데 무수히 반복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매혹 아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의해셔 언어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의해서 언어 안에서 절대적인 공간과의 접촉 아래 머무르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물은 이미지가 된다. 또한 거기서 어떤 형상을 암시하는 이미지는 형상이 없는 것에 대한 암시가 되고 부재 위에 그려진 형태의 이미지는 부재의 형태 없는 존재가 된다. 더 이상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아직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존재하는 것으로의 불투명하고 공허한 열림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왜 이러한 본질적인 고독, 그 속에서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 이 고독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문학의 공간> 36면을   <절대습작> 26쪽에서 재인용
     
    카프카는 자신이 쓴 <선고>를 수작이라고 생각했고, <변신>을 쓴 후에는 자신의 재능 없음에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문단의 평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글쓰기의 매혹과 글읽기의 매혹이 다른 까닭일 테지요. 카프카는 <선고>를 쓰며 매혹되었고 독자들은 <변신>을 읽으며 매혹당했으니까요. 29쪽
     
    문제는 카프카가 <선고>에서는 성공한 것을 <변신>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고>와<변신>의 작품성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을 없애고 글쟁이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는 조건을 살펴보려는 것이지요. 인용한 글이 마지막에 카프카는 <변신>의 실패를 "사업여행으로 방해를 받지 않았ㄷ라면 "이라고 변명합니다. 29쪽
     
     
    블랑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중략) 작품에의 의무에  "자기의 모든 시간"을 바친다 하더라도 "모든" 시간을 다 바친다 해도 그것은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문제는 작업에 시간을 바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의 시간을  글 쓰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작업도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에 돌입하는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문학의 공간> 75~76쪽  <천년습작> 31쪽에서 재인용
     
    문제는 외부적 시간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삶을 사는 이상 글을 쓰는 이에게 유리한 시간은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 해도 위대한 작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핵심은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으로 돌입하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문청은 매혹과 불안을 동시에 지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 속에서 무엇인가를  읽는 매혹에서부터 출발했다가 시간의 부재속에서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는 매혹으로 나아갑니다. 이 매혹은 예고 없이 순간순간 다가오지요. 단어 하나의 강렬함일 수도 있고 문단 하나의 아득함일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한 번 시간의 부재 속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할 수도 있겠지요. 카프카가 <선고>를 완성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 한 작품을 완성해서 이전보다 더욱 강한 매혹을  느낀 후에는 새로운 불안이 찾아옵니다. 강렬한 매혹을 느낀 후에는 새로운 불안이 찾아옵니다. 강렬한 매혹을 다시 얻지 못할까 하는 걱정 말입니다. <변신>을 써 놓고 악담을 늘어놓는  카프카의 마음이란,<선고>때의 매혹보다 <변신>을 집필할 때의 매혹이 훨씬 덜하다는 것에서 비롯된 불안이겠지요. 카프카는 이 불안을 더 많은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탓으로 돌립니다. 블랑쇼는 이 지점에서 카프카의 불안을 이해할 순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의 부재, 그 매혹속으로" 돌입하는 것이니까요. 32쪽
     
    작가들은 갈망합니다.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쓰는 내내 매혹되기를. 그 매혹에 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작가 나름대로 다양한 창작 방법을 지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또한 단순히 작업 중에서 작가들의 창작 방법만을 살피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살피면서 매혹에 돌입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아야겠지요. 작가들이 '일기'라는 완전한 작품도 아니고 그리고 또 그렇다고 쉽게 버리기에 아까운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도 기회 엿보기에 다름 아닙니다. 블랑쇼 역시 일기의 중요성을 지적합니다.
     
    작가는 무엇을 기억하려고 일기를 쓰는 것일까? 작가는 자기 자신을 기억해야 한다. 글을 쓰지 않을 때 일상생활을 할 때 죽어가며 진실을 잃을 때가 아니라 살아 진실할 때, 자기가 누구인가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문학이 공간> 29면 
    <천년 습작> 33쪽 재인용
     
    공부란 만남입니다. 책을 통하든 영상을 통하든 혹은 직접 이야기를 나누든 만나지 않고서는 의미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만남의 형식들이 정해져 있고 그 형식을 통해 내용만 채우는 것이 공부라하고 여겼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정석의 기본을 때고 정석의 실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정해진 길(형식)을 따라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고등학교때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받은 충격은 그 길(형식)의 복수성(複數性)이었습니다. 길은 하나가 아님은 물론 둘도 아니었고 여럿이었습니다. 어제의 길이었던 곳이 오늘은 폐허로 바뀌고 오늘은 폐허인 곳이 내일부터 길로 탈바꿈하기도 했습니다. 내용도 그 자체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따라 쉼 없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지요. 내용이란 형식과 형식이 서로 부딪혀 싸우는 대결의 장이었던 것입니다.36쪽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났습니다. 이들을 확실히 안다고 자신했던 적도 있지요. 그러나 이런 속단과 확신은 항상 많은 실수를 낳습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그 첫눈에 반한 것이 과연 상대의 본모습인가는 또 따로 따져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상대와 나 사이에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상대를 소위 말해 '총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이 '사이(inter)에서 무엇이 진(眞)'이고 무엇이 '가(假)' 인지를 가려 정리해야 하겠지요. (물론 이 진과 가 역시 맥락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36쪽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는 안다 앞에 '무엇을'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지요. 목적어를 채우는 놀이를 가끔 저 혼자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어를 어떻게 하여 얻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추적해 보지요. 거기엔 특별한 만남의 시간과 공간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 특별함들이 점점 쌓여 중층을 이룰 때, 총체성에 다가랄 가능성은 훨씬 높아지겠지요. 예술가들의 아내들이 남긴 글이 어느 비평가보다고 그 예술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들을 만날 때면 이 생각이 더 깊어집니다. 37쪽
     
     
     
     
  • 천년습작 | il**vm | 2013.04.0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글을 읽는 ‘행위’에는 어쩌면 글을 쓰고 싶다는 ‘행위’의 무의식적 반영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을까?   ...
     
    글을 읽는 행위에는 어쩌면 글을 쓰고 싶다는 행위의 무의식적 반영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베껴 쓴 시간들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는 김탁환의 고백은 나를 충분히 매혹시켰다.
     
    그의 말대로 글쓰기라는 행위는 누군가를 매혹시키는 일이며, 자신을 매혹시키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16강으로 구성된 이 강의가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다.
     
    다른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그런 글쓰기의 깊은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고나 할까?
     
    누군가의 작품을 비평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 내는 것은 더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김탁환의 말처럼 비평을 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글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꼭 작가가 아니면 어떤가?
     
    노트 하나 펴놓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꼭 글쓰기에 관해서가 아니라도, 작가가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
    .
    .
  • '천년습작' | ed**40 | 2011.11.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지인을 통하여 만나게 된 두번째 작품이었다. 평소에 읽기도 좋아하지만, 쓰기도 즐겨하고, 글을 잘 쓰고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
    지인을 통하여 만나게 된 두번째 작품이었다.
    평소에 읽기도 좋아하지만, 쓰기도 즐겨하고, 글을 잘 쓰고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었던터라 한 줄 한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초등저학년때 딸아이의 과제를 함께 만들면서 이것, 저것 조사하고 모방했던 경험이
    지금은 스스로 자료를 모으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 하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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