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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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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쪽 | A5
ISBN-10 : 8991510930
ISBN-13 : 9788991510937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양장] 중고
저자 한명기 | 출판사 푸른역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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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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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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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살펴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상처’로 점철된 조선 대외관계사의 내러티브를 파헤치다!


『정묘ㆍ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이 책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한ㆍ중ㆍ일을 아우르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과정,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정책과 인식 등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의 역사학계는 병자호란을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대외관계사 연구에 소극적이었던 학계 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정묘 병자호란이 일어난 시기, 급변하게 돌아갔던 17세기 정세를 둘러본다. 일본과의 관계, 명을 버리고 청으로 투항한 한족 출신의 이신들의 모습 등을 그리며 강국 사이에 끼여 있었던 약소국 조선이 생존하기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장본]

저자소개

지은이 한명기
196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한신대, 국민대, 가톨릭대 강사와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등이 있으며,〈광해군대의 대북세력과 정국의 동향〉,〈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유형〉,〈‘재조지은’과 조선후기 정치사〉등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동아시아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은 지은이는 첫 저서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목차

책머리에 / 서설

1장 정묘호란과 조선?후금관계
정묘호란의 성격과 원인 재론 / 정묘호란이 조선에
남긴 영향 / 정묘호란에서 후금이 얻은 것

2장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 과정
정묘화약의 균열 과정 / 명?후금관계의 변동과 조청관계의 파탄

3장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성하지맹 이후 청의 조선 통제책 / 청의 통제정책의 영향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에서 청이 얻은 것

4장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인조반정 직후 대일 접촉 양상과 인식의 변화 조짐 / 1629년 겐보의 상경과 그 파장

5장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 정책과 인식
병자호란 직전 ‘야나가와 이켄’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 시기 일본의 동향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 이후 청의 존재와 대일인식
6장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변화 조짐
병자호란 이전 전통적 ‘오랑캐’ 인식의 흐름 /
위기의식의 대두와 전통적 ‘오랑캐’ 인식의 변화 조짐 /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새로운 조짐

7장 병자호란 시기 조선인 피로인 문제 재론
전쟁 피해의 양상과 ‘피로인 문제’의 심각성 /
대규모 피로인 발생의 원인과 주회인 문제 /
피로인들의 고통 / 조선 정부의 ‘피로인 문제’ 대책과 귀결 /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8장 정묘?병자호란 시기 이신과 조청관계
이신 발생의 배경과 청의 활용 / 이신이 조선에 미친 영향

9장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대청 ‘순치’ 과정
‘찬탈’ 기사의 인지 내막과 인조?효종대의 대응 /
현종?숙종대의 변무 노력 / 영조대의 변무 노력과 그 귀결 / ‘변무 문제’가 조청관계에서 가지는 의미

참고문헌 / 영문초록 / 찾아보기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동아시아아의 관점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재구성 ‘상처’로 점철된 조선 대외관계사의 내러티브를 파헤치다 기억과 망각 속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특히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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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아의 관점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재구성
‘상처’로 점철된 조선 대외관계사의 내러티브를 파헤치다


기억과 망각 속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특히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병자호란 무렵 청군에게 붙잡힌 조선인 포로는 수십만을 헤아렸다. 1637년 2월, 청군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포로들을 심양으로 연행해 갔다. 끌려가는 도중 수많은 포로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지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청군에게 살해되었다. 여성 포로들의 비극은 특히 처절했다. 많은 여인들이 청군 장졸들의 첩이 되어 노리개 감으로 전락했다. 천신만고 끝에 심양에 도착한 뒤에도 이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조선 원정에 나섰던 남편이 조선 여인들을 첩으로 데려오자 만주족 본처들은 질투심에 몸을 떨었다. 본처들 가운데는 조선 여인에게 끓는 물을 퍼붓는 등 고문을 자행하는 자들도 있었다. 내용을 보고받은 청 태종 홍타이지조차 격분했다. “이렇게 잔인한 투기를 일삼는 여인들은 남편이 죽을 때 순사殉死시켜 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 같은 끔찍한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계는 병자호란을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역사학계는 대외관계사 연구 자체를 꺼려했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과 일본 사이에 치여, 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핍박의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해방 된 나라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식민사가植民史家들이 의도적으로 깔아뭉갰던 민족의 저력을 다시 탐구하는 것이 시급했던 상황에서 ‘상처’로 점철된 대외관계사를 언급해 봐야 별로 득 될 것이 없었다. 더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대전란을 겪었던 조선시대의 경우 그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동안 대외관계사 연구에 소극적이었던 학계 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미를 갖는 책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한명기, 푸른역사)가 출간되었다. 저자 한명기는 한중일을 아우르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과정,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정책과 인식,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변화 조짐, 병자호란 시기 조선인 피로인 문제 재론, 정묘?병자호란 시기 이신貳臣과 조청관계,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대청 ‘순치馴致’ 과정 등이 그것이다.

17세기 급변하는 동사이아 국제 정세 속 조선의 선택은?
주목되는 것은 정묘?병자호란이 기본적으로 조선과 청 사이의 전쟁이었음에도 저자의 시선이 일본과의 관계에까지 미치고 있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임진왜란을 도발하여 조선으로부터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원수[萬世不共之讐]’로 매도되었던 일본은 두 차례 호란을 계기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인다. 위기에 처한 조선에 ‘조총과 화약 등 무기를 원조하겠다’고 접근하는가 하면 조선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교묘히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려는 자세를 보인다.
이 책은 또한 17세기 초 명을 버리고 청으로 투항한 한족漢族 출신 이신貳臣들이 청군의 일원으로 병자호란에 가담하고, 전쟁 이후 청이 조선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밖에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복원한 것, 포로로 끌려간 지 각각 28년과 37년 만에 탈출해 돌아왔다가 다시 버림받았던 안추원安秋元과 안단安端의 사례를 발굴해 낸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한중일을 동시에 아우르는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이 조선을 향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방향을 사실상 확정한 것은 1633년 6월의 일이었다. 당시 청의 군신들은 조선을 언젠가는 정복하되, 명나라와 몽골을 복속시키기 전까지는 회유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즉 조선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청의 침략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할까?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척화파나 주화파 모두 총론總論에서는 그럴듯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지만 전쟁을 피하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각론各論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 한명기는 이 책을 통해 강국 사이에 끼여 있는 상대적인 약소국 조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지혜가 필수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의 역량이 너무 미약할 경우, 외교적 지혜를 통해 생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따라서 약체성弱體性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정권들에게 요구되는 절실한 과제이자 덕목임을 환기시킨다. 과거 정권에서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사실, 당장 지금도 남북문제를 포함한 외교정책 전반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진 메시지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관점, 다른 해석―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다
저자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병자호란 관련 역사 평설評說을 ≪서울신문≫에 매주 연재한 바 있다. 모두 104회에 걸쳐 원고지 2천매 분량으로 병자호란의 아픔과 교훈을 그려냈던 저자에게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제대로 쓰려면 그 주제와 관련된 학술 연구서를 먼저 쓴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저자에게 이 책은 대중서를 쓰기 위한 바탕이자 원천源泉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는 과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라는 학술서를 쓴 뒤, 그것을 바탕으로 ≪광해군≫이라는 대중서를 출간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라는 역작을 바탕으로 저자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대중서 ‘병자호란’은 어떤 모습을 지닐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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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전까지 나는 두 호란이 그저 인조와 서인의 무능력함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전까지 나는 두 호란이 그저 인조와 서인의 무능력함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광해군과 북인 정권이 중립 외교 정책을 통해 간신히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상황.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은 그들 반정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친명배금 정책을 성사시켜야 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서 명나라는 지는 태양, 후금(청)은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광해군 때와 달리 공공연히 저에게 반항하는 인조 정권을 청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루한 사대주의에 얽매여 있던 인조와 서인 정권 때문에 치욕적인 두 호란이 발발한 것이라고, 지금껏 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반정의 정당성을 입증키 위해 인조 정권은 '친명'의 기치는 보였으나, '배금'의 태도는 취하지 않았다. 이는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해 계속해서 조선에 원군을 요구했을 때, 인조 정권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명의 요청을 거절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즉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서술하듯, 단지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 때문에 두 호란이 발발했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본 책에 따르면, 실상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청나라와 명나라 가운데 미묘한 위치에 있던 조선이,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두 호란이 발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기 전에 배후를 안전히 하기 위함이었다. 만주족의 본거지인 만주는 조선과 맞닿아 있어,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사이 침략당할 위험이 컸다. 두 번째 이유는 명나라의 사기를 꺾어놓기 위함이었다. 조선은 그 건국부터 명나라에게 사대의 예를 표하며 공공연히 명나라의 제일 아군이 되어주었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마저 청나라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리고 명을 버린다면 명군의 사기가 꺾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조금 더 직접적인 연유다. 당시 조선의 북방에는 상당수의 명군이 주둔해 있었는데, 조선은 '친명'의 기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지못해 그들을 지원해주는 수밖에 없었다.(그들의 수탈이 굉장히 심했음에도) 청나라는 정묘화약 때 조선에게 명군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고 요구했지만, 명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도 조선은 쉽사리 그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원조가 멈추지 않자, 청은 조선이 정묘화약을 기만했다고 생각해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병자호란이었다.
     
    인조와 서인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 때문에 두 호란이 발발했다는 통상적인 생각과는 많이 다른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조가 공공의 지탄이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두 호란을 겪으면서 크게 손상된 민족적 자존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씨전의 내용을 보더라도,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병자호란의 굴욕과 그에 대한 분노가 만연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분노의 갈래는 물론 오랑캐인 청을 향할 것이고, 남겨진 한 갈래는 그 굴욕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왕과 벼슬아치들을 향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흔히 경기가 좋지 않을 때면 대통령과 여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지 않은가. 그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이유는 병자호란 이후 실망스런 인조의 행보에서 기인한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는 공공연히 '친청' 정책을 취하였다. 왕 스스로 반정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친청 정책을 편 이유는 다름아닌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청나라는 공물이 부족하거나, 혹은 인조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취할 때마다 소현세자를 들먹이며 인조의 왕위를 위협했다. 또한 청나라는 조선과 관계된 문건을 청에 인질로 잡혀온 소현세자와 상의하는 등 공공연히 인조를 무시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조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선 가급적 몸을 낮춘 채 청의 비위를 맞추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인조의 자세가 벼슬아치들이나 재야의 선비들의 눈에 맞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는 인조 반정에 대한 회의까지 일어날 정도였으니, 인조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컸을 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이런 상황에 맞물려, 고위 관직에 오른 이들은 자신의 아들을 청의 수도인 심양으로 보내야 하자 재야의 선비들 가운데선 점점 벼슬을 피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심지어는 벼슬을 세 번이나 거절하고 유배를 택하는 이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위로는 청나라가 계속해서 왕위를 위협하고, 아래로는 재야의 인사들과 관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니 인조로서도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인조는 백성들에게 '대국민 사과문'을 내릴 정도였는데, 왕이 백성들에게 그런 사죄를 한 것은 조선 역사상 인조가 처음이었다 한다.
     
    물론 인조는 결코 뛰어난 군주가 아니었다. 후에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 그들의 어린 자식들마저 죽인 일만 봐도 그가 결코 도량이 큰 군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두 호란의 굴욕을 모두 인조의 탓으로 돌리기엔, 당시 인조를 둘러싼 상황이 너무도 안좋지 않았나. 나는 인조에 대해 무어라 자세히 평할 수는 없다. 단지 내 생각에, 인조는 지독히도 불운했던 왕이 아니었나 싶다.
     
     
     
     
  • 역사란 특정인의 것이 아닌 민중들 전체의 삶의 총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책을 통해서, 최근엔 글을 잘 쓰지 않았다. ...


    역사란 특정인의 것이 아닌 민중들 전체의 삶의 총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책을 통해서,


    최근엔 글을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읽고 나선 안 쓸 수 가 없었다. 잘 몰랐던 역사, 그냥 겉 넘듯  알고 넘어갔던 우리 역사의 한 귀퉁이, 그 저 힘이 없으니 맨날 이 모양이지 하며 그냥 무감각했던 치욕스럽고 지우고 싶던 역사의 한페이지, 하지만 단지 그렇게 생각하기에만은 역사는 너무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이 글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상세한 이야기들과 정황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고 감정이입되듯 역사에 그렇게 되었다


    저자의 관련논문들을 묶고 확장하여 쓴 책이라 상당히 전문적이지만 글 흐름이 자연스럽고 명확해서 일반인들도 읽기에는무리가 없다.


    이 책의 주요내용은 정묘병자호란의 배경과 전개과정, 조선을 중심으로 명,청,일본과의 관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피로인의 실태, 명나라 이신들의 활동과 영향등이다. 모두들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양 호란을 국제정세속에서 넓게 볼수도 있고, 그 간에 별로 아려져 있지 않던 피로인의 규모와 처참했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최대 50만으로까지 추정하는 피로인이 왜 발생했을까? 청과 청의 용병으로 침공했던 몽골의 포로에 대한 욕심, 당시 조선의 미숙한 군사적 대응, 하지만 그 건 보이는 이유였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있을 것이다


    당시 끌려간 피로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였고, 그중 일부는 수십년이 지난 조국에 돌아오지만 다시 청국에 송환되어 처벌을 받거나, 고향에 정착하지 맛해 스스로 청국에 돌아가기도 한다. 이 사태와 관련 당시 인조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다. 피로인들의 발생과 재 송환에 대한 아픔과 무력감, 그리고 용서를 백성들에게 구한다. 조선왕조 500년 아니 우리역사에서 임금이 백성드에게 사죄한 기록은 아마 인조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얼마전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며 무언가 빠진듯한 답답한 느낌이 자꾸 들었었다. 그 건 남한산성이 병자호란의 주무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아주 작고 좁은 무대였을 뿐이다. 병자호란의 주무대는 청의 심양과, 의주, 그리고 명의 자금성과 가도, 일본,  경기도, 서울, 그리고 강화도로 넓혀야 하고, 당시 광해군이 있던 제주도 들어가야 한다.


    쇠퇴해가는 제국 명과 떠오르는 청, 그리고 항상 조선에서 이해를 따지는 일본 그 사이에서 조선의 최선의 선택은 과연 어떠해야 했을까?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깝게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지배, 해방, 공화국과 군부독재, 민주화, 경제발전과 폐해에 대해서도 알야하지만, 먼 역사중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양 호란에 대해서도 잘 알야야 한다


    모든 일에는 뿌리가 있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그 뿌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 호란기 조선이 할 수 잇는 최선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나 또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한가지 확실한 건
    역사에 대한 단순한 분노나 환희보다는 생생한 삶의 총체로서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그런 인식전환과 행동만이 그런 고통스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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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korea 케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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