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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 규격外
ISBN-10 : 8954638244
ISBN-13 : 9788954638241
해질 무렵 [양장] 중고
저자 황석영 |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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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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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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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쓸쓸하고도 먹먹한 이중주!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거장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 60대의 건축가 박민우의 목소리와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목소리를 교차 서술하며 우리의 지난날과 오늘날을 세밀하게 그려낸 짧은 경장편이다. 언제나 시대를 직시해왔던 저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아우르며 어느 장편소설보다 지평이 넓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강연장에 찾아온 낯선 여자가 건넨 쪽지 속에서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이름을 발견한다. 어느덧 옛사랑이 되어버린 이름, ‘차순아’. 그녀는 첫 통화 이후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고, 그저 메일로만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그 메일 안에는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 보낸 산동네의 풍경,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던 마음의 풍경이 비쳐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음식점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무대에 매달리는 정우희는 한때 연인처럼, 오누이처럼 지내던 남자 김민우의 어머니 차순아와 가까워진다. 김민우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이후 불과 몇 달 뒤에 차순아 또한 서둘러 아들을 뒤쫓아 가듯 홀로 죽음을 맞고, 정우희는 그녀가 남기고 떠난 수기들을 챙긴다.

잘 살아냈다고, 잘 견뎌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을 수기 속에는 젊은 시절 차순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수기 속에는 그녀의 마음이 한결같이 가리키던 이름 하나가 있다. ‘박민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정우희는 박민우의 강연장으로 찾아가 이제는 옛사랑이 되어버린, 한때는 마음 떨게 만들었던 첫사랑을 일깨우는 쪽지를 건네는데…….

저자소개

목차

해질 무렵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부처가 그랬지. 인간사 한 바퀴가 일륜인데 백 년 걸리지. 우리는 모두 한 바퀴도 못 돌고 내리는 셈이 아닌가. 백 년 뒤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일 것이다.(27쪽) 온 세상의 고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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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그랬지. 인간사 한 바퀴가 일륜인데 백 년 걸리지. 우리는 모두 한 바퀴도 못 돌고 내리는 셈이 아닌가.
백 년 뒤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일 것이다.(27쪽)

온 세상의 고향이 다 사라졌어요.
내 말에 김선배는 먼바다 쪽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다.
그거 다 느이들이 없애버렸잖아.(28쪽)

흔히들 첫사랑은 만나고 나면 후회한다는데 피차에 늙고 볼품없어져 만난다 해도 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실망할 처지가 아니다. 우리가 살았던 달골이 지상에서 이미 사라진 기억 속의 박제에 지나지 않듯이,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102쪽)

나는 이미 망가져서 더 망가질 것도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내 방식으로 그를 보내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거리에서 그와 헤어지고 나는 버스 타는 것도 잊고 몇 정류장인가를 그냥 걸었다. 울면서 걷는 나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힐끔힐끔 보면서 스쳐갔다. 나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잘 가라 박민우, 넌 나한테 짤렸어. 그날 나는 그렇게 그를 보냈다.(171쪽)

우리가 뭔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가냘프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아들이 일터에서 해고되고 각종 알바일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겨울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고 적고 있었다. 여기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 걸린 것 같다. 수십 년에 걸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나의 한 시간과 함께 과거 속으로 흘러갔다.(175쪽)

아, 잊었네요. 나는 내 아이의 이름을 민우라고 지었습니다. 김민우. 나는 그애가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176쪽)

컴퓨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새로운 주택 부지를 찾으며 맞춤한 곳에 집 짓는 상상을 하는 게 요즘의 내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함께할 가족이 없다.(195쪽)

나는 길 한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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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거리에 서면, 문득 주위가 적막에 잠기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물결처럼 흘러가고 나 혼자 여기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나는 무얼 바라고 왔는지, 쉴 새 없이 달려왔으나 돌아보니 걸어온 자리마다 폐허. 거장 황석영이...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거리에 서면, 문득 주위가 적막에 잠기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물결처럼 흘러가고 나 혼자 여기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나는 무얼 바라고 왔는지, 쉴 새 없이 달려왔으나 돌아보니 걸어온 자리마다 폐허.

거장 황석영이 신작 장편소설 『해질 무렵』으로 돌아왔다.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이다.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인생의 해질 무렵에 서서 길 위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돌아보며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본다. 더는 변화할 무엇도, 꿈꿀 무엇도 없을 것 같은 그의 일상에 ‘강아지풀’ 홀씨 하나가 날아든다. 그 작은 씨앗은 그가 소년시절를 보냈던 산동네 달골, 아스라한 그 시절 가슴 설레게 했던 소녀를 불러오고 달골에서 함께 부대끼던 재명이형, 째깐이, 토막이, 섭섭이형 같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산다. 그녀는 음식점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무대에 매달린다.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그럴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척박한 세상에 지쳐 젊은 날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검은 셔츠’...

이 소설은 짧은 경장편이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에 담긴 생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도저하고,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어느 장편소설보다 지평이 넓고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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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해질 무렵 | hy**13 | 2019.06.0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황석영 선생님의 <해질 무렵> 중 작가의 말에 쓰여졌듯이 이 이야기는  ...

    황석영 선생님의 <해질 무렵> 중 작가의 말에 쓰여졌듯이 이 이야기는 


    "개인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198p)"


    로 요약될 수 있는 소설입니다.


    고향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또 고향에서 벗어난 줄 알았으나 고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박민우와 정우희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번갈아 등장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해질 무렵'은 어떠할 지 상상하게 되네요.

     

    누구에게나 자신이 헤쳐나온 어려운 과거는 피눈물의 역사일 테지만 그걸 입 밖에 내어 자랑삼을 일은 못 된다. 

    젊은이들에게 너희는 보릿고개도 모르고 점심 굶은 아이가 찾는 학교 운동장의 수돗가를 알 리가 없다고 탄식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13p)

     

     

     

  • 해질 무렵 | ko**96 | 2019.05.2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김기영의 전시회에서 인사말)   `식민지 시대 우리의 건축은 일본이 유럽을 복사한 사이비 근대를 다시 복사한 것이었습니다. 중앙청이나 서울역 등이 모두 그런 모습이었지요. 전쟁이 끝나자 처참하게 부서진 폐허위에 부족한 자재와 자금으로 임시변통의 건물들이 들어섰고, 이것들은 거의 10년도 못 가서 재건축 되어야만 했습니다. 집장사가 지은 서민들의 집과 산동네 판자촌이 수많은 길과 골목을 만들어냈지요. 조금 살 만해지자 전통을 재해석한다고 콘크리트에 단청을 입히는 식이 됩니다. 여기까지의 선배 세대의 작업이었고 다음 세대는 재개발과 상자 같은 아파트의 시멘트 산을 만드는 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수많은 이웃들을 왜곡된 욕망의 공간으로 몰아넣거나 내쫓았습니다. 건축이란 기억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밑그림으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재조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같은 꿈을 이루어내는 일에 이미 많이 실패해버렸습니다.       (우희가 차순아의 기록을 박민우에게 메일로 보낸 내용중에서)      `나는 사진에서 늙은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이가 죽고서 참으로 오랜만에 잊고 있던 달골시장 자리에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살았던 기억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당신 부모님의 어묵가게, 공동수돗가, 재명이 오빠네 구두터, 영화관, 육교 등등. 우리가 살았던 곳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십여 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는지 참 빠르기도 하네요. 함께 살아오고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물결처럼 저 거리에 오고가는데…    아, 잊었네요. 나는 내 아이의 이름을 민우라고 지었습니다. 김민우. 나는 그애가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김기영의 전시회에서 인사말)   `식민지 시대 우리의 건축은 일본이 유럽을 복사한 사이비 근대를 다시 복사한 것이었습니다. 중앙청이나 서울역 등이 모두 그런 모습이었지요. 전쟁이 끝나자 처참하게 부서진 폐허위에 부족한 자재와 자금으로 임시변통의 건물들이 들어섰고, 이것들은 거의 10년도 못 가서 재건축 되어야만 했습니다. 집장사가 지은 서민들의 집과 산동네 판자촌이 수많은 길과 골목을 만들어냈지요. 조금 살 만해지자 전통을 재해석한다고 콘크리트에 단청을 입히는 식이 됩니다. 여기까지의 선배 세대의 작업이었고 다음 세대는 재개발과 상자 같은 아파트의 시멘트 산을 만드는 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수많은 이웃들을 왜곡된 욕망의 공간으로 몰아넣거나 내쫓았습니다. 건축이란 기억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밑그림으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재조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같은 꿈을 이루어내는 일에 이미 많이 실패해버렸습니다.      

    (우희가 차순아의 기록을 박민우에게 메일로 보낸 내용중에서)    

     `나는 사진에서 늙은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이가 죽고서 참으로 오랜만에 잊고 있던 달골시장 자리에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살았던 기억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당신 부모님의 어묵가게, 공동수돗가, 재명이 오빠네 구두터, 영화관, 육교 등등. 우리가 살았던 곳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십여 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는지 참 빠르기도 하네요. 함께 살아오고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물결처럼 저 거리에 오고가는데…    아, 잊었네요. 나는 내 아이의 이름을 민우라고 지었습니다. 김민우. 나는 그애가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o:p></o:p>

  • 해질무렵 | zi**37 | 2016.04.0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이 소설은 단편이라하기엔 좀 길고 중편이라고 하긴 짧은 소설이었고 실제로 읽으니까 순식간에 읽어버리기도 했다 해질 무렵이라는 ...
    이 소설은 단편이라하기엔 좀 길고 중편이라고 하긴 짧은 소설이었고 실제로 읽으니까 순식간에 읽어버리기도 했다
    해질 무렵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책장을 덮고나서도 먹먹해졌다
    주인공 건축사 박민우는 성공했다 자신의 사무실은 불경기에도 나름 잘해나가고있고 자식들도 잘키워냈다 그렇지만 아내는 딸이 있는 미국으로 가버렸고 .....
    그러던 어느날 첫사랑에게서 연락이오고 잊고지냈던 그 달동네의 기억이하나씩 떠오르기시작한다
    시골에서 야반도주하듯이 올라온 서울
    판자촌에서 어렵게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갔고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을 꿈꾸었다 그동네사람들 아이들과는 다르게 대학에 가고 가는길이 달라서 멀어졌지만
    그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었을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곳을 없앤사람이 자신과 같은 건축가였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 등장하는 정우희
    연극연출일을 하고있지만 그걸로는 생계유지가 되지않아서 편의점 알바로 근근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춘이있다
    꿈을 포기해야할지 계속 해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
    그러다 알게된 검은 셔츠의 남자와 그의 어머니
    마지막엔 그녀의 연출이었나 싶었지만 과연 그 연극을 계속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사자는 이미 없는데 박민우도 모든 사실을 알게된다면 글쎄.
    그렇지만 한편으론 누군가 알아주고 기억해줬으면 해서 그런게 아닐까
    너무나도 힘들고외로웠던 삶
    딱히 잘못하지않았지만 왜이리 삶은 힘들고 험난한건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고 그저 소설일뿐이야 라고하며 잊어버릴수있을까?
    과거의 기억은 과거라고 추억이라고 할수있겠지만 현재시점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네와 다르지않았다
    취업이 힘들고 꿈을 꿀 여유따위없이 그저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미래는보이지않는 막막함 더좋아진다는 희망은커녕 더나빠질거라는 절망가득함에 먹먹해졌다
    아마도 내가 박민우처럼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아닌 앞날이 막막한 세대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198p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위와 같이 쓰고 있다. 조은은 <침묵으로 지은 집>에서 3대에 걸쳐 한 집안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일을 사회학적으로 이야기 했다. 정수복은 <응답하는 사회학>에서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과 사회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황석영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로 이를 풀어내고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심히 잊거나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왜곡된 줄거리로 남아 제각각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다." 129p


      <해질 무렵>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기억을 공간에 대입하곤 한다. 공간은 기억의 문이다. 공간과 함께 그 속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산동네 '달골'을 갖은 노력 끝에 벗어났던 건축가 박민우와 끝내 '달골'을 벗어나지 못한 차순아가 있다. 박민우와 차순아에게 달골은 각각 어떤 의미일까. 소설속 현재에 달골은 없다. 재개발로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 곳에서 둘은 기억의 단절을 경험한다. "처음부터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만 같았다.", "우리가 살았던 곳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여기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 걸린 것 같다. 수십 년에 걸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나의 한 시간과 함께 과거 속으로 흘러갔다." 176p


      우리가 겪은 시간은 압축되어 기억된다. 뇌는 충격을 받은 강도에 따라 기억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알려진다. 죽음을 앞두고 뇌는 우리 인생을 얼마만큼이나 기억해낼까. 또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소설속 인물들의 기억은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강아지풀이었다. 나는 그것을 뽑아내려다가 내버려두었다. 일부러 심어놓은 화초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195p


      박민우의 선배 건축가 김기영은 말한다. "공간, 시간, 인간이라고? 우리 건축에 인간이 있었나? 인간이 있었으면 죽기 전에 후회라도 할 텐데. 현산 선생이나 너희들 모두 반성해야 돼." 이는 건축가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잃고 '돈'을 얻고 있다. 사는 동안 이를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돌아볼 여유없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이던가. 일시적인 '안도'일 뿐이다. 우린 그걸 한참 후에 깨닫는다. 생김새와 '신분'이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를 위해 함께 살아야 한다. 사회가 함께 기억을 만들어 갈 때, 서로 서로를 더 기억할 때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새로운 주택부지를 찾으며 맞춤한 곳에 집 짓는 상상을 하는 게 요즘의 내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함께할 가족이 없다. 나는 길 한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196p

     

    IMG_2935.JPG

  • 작고 사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동안 선이 굵은 작품에 빠져 있었거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를...

    작고 사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동안 선이 굵은 작품에 빠져 있었거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를테면 심리학이나 철학 등 소위 '형이상학적'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을 읽은 뒤끝이면 찾아오는 현상이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몇 번 손바뀜을 거치고 나면 훌쩍 일 년이 가곤 한다. 세월은 참으로 무자비한 구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는 세월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거나.

     

    황석영의 소설 <해질 무렵>을 읽었다. 황석영의 작품은 하도 오랜만이라 일견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장길산>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 대부분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일부러 피해왔었다. 소설의 소재가 비슷했다는 게 아니라 소설의 문체나 분위기가 어찌나 비슷하던지 이게 이것 같고 저게 저것 같아서 도통 분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저 소설의 제목만 간신히 기억하여 읽었다 안 읽었다를 가름할 뿐이었으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된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더이상 괜한 시간낭비는 하지 말자는 게 황석영의 작품을 피해왔던 나의 이유였다.

     

    소설은 등장하는 두 인물(박민우와 정우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약간의 답답함이 있더라도 감수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60대의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29살의 연극연출가 정우희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인연의 끈도 없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좀체 좁히지 못한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p.198 '작가의 말' 중에서)

     

    경남 영산 출신의 박민우는 맨주먹으로 상경한 그의 부모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너 나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칠십년대였다. 삶의 각축전일 수밖에 없었던 달동네에서 박민우는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 결심하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 동네에서 학생이 있는 집은 어묵튀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의 집과 국숫집, 단 두 집뿐이었다. 공동수돗가 근처의 국숫집에는 그보다 한 살 아래의 차순아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꼬마들을 데리고 구두닦이를 하는 재명이와 그의 가족이 살았다.

     

    "나는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살이의 치열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은 지옥이 저 바깥세상의 축소판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었고 어디론가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헤쳐나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이 무렵 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이 동네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세우고 대학 입시 공부에 매진했다." (p.75)

     

    얼굴이 예뻤던 차순아는 동네 남자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박민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민우가 유명 대학에 입학하여 마을을 떠난 후 차순아는 마을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대학 입학에도 실패하고 그녀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모녀만 남은 국숫집은 급격히 쇠락한다. 그들 모녀를 거두어 준 사람은 재명이였다. 그들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었지만 홍역으로 잃고 재명이마저 불법도박 혐으로 수감된다. 차순아는 책 외판원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하여 아들 한 명을 낳게 된다.

     

    반면 박민우는 대학생이 된 후 독립하여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 그가 자란 달동네와 거리를 두고 지낸다. 게다가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입주과외를 시작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연을 맺게 되고 졸업 후 유학과 함께 결혼도 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건축붐이 일었던 팔,구십년대에 그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아내가 미국에 있는 딸의 곁으로 떠난 후 그는 혼자가 된다.

     

    "이튿날 두통과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나자 머릿속이 텅 빈 백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더니 점차 바닷가, 언덕 위에서 본 노을, 말기 암 환자의 낙천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여자의 목소리 등등이 얼룩처럼 그 백지 위에 번져간다. 뒤죽박죽 이어진 꿈의 연장인 것만 같아서, 어서 돌아와야지, 머리를 몇 번 거세게 흔들었다."    (p.31)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우희와 김민우는 가까워진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줄곧 출구도 없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김민우는 차순아의 아들이다. 차순아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빚만 남기고 죽었다. 그 뒤로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정우희가 세들어 살던 반지하의 셋방이 물에 잠겼을 때 김민우는 그녀로 하여금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며칠 동안 신세를 지도록 한다. 그때 정우희는 차순아와 모녀처럼 가까워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가쁜 가난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던 때인 팔십년대를 거치면서 이 좌절과 체념은 일상이 되었고, 작은 상처에는 굳은살이 박여버렸다. 발가락의 티눈이 계속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뽑아내야 했는데,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약간의 이질감이 양말 속에서 간신히 자각될 뿐."    (p.112)

     

    정우희는 차순아의 일기 비슷한 수기를 읽은 후 박민우와의 만남을 주선하려 애쓰지만 아들이 자살한 후 차순아는 결국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p.144)

     

    황석영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든다. <해질 무렵>도 다르지 않았다. 산업화 초기의 혼란을 틈타, 제어장치도 없이 욕심을 채워갔던 기성세대의 탐욕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업보로 작용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들추어낸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탐욕의 속도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 줄 모른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 가슴속 응어리가 더 크고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만 같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위로하는 법이 없다. 돌덩이를 삼킨 듯 답답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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