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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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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쪽 | A5
ISBN-10 : 8934950331
ISBN-13 : 9788934950332
조선의 차 문화 [양장] 중고
저자 정민 | 출판사 김영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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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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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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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가 들려주는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 다산·추사·초의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최초의 차 저술인 <동다기>의 발굴을 계기로 차 문화에 흠뻑 빠진 정민 교수가 수많은 차 관련 자료와 사료들을 끈질긴 집념으로 발굴하여, 우리 차 문화사를 다시 썼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차 문화를 일으킨 다산과 초의, 추사를 중심으로 18~19세기 이후 새롭게 발흥한 조선의 차 문화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차에 관련된 서적인 <부풍향차보>, <동다기>, <다법수칙> 등 최초로 발굴한 1차 자료와 서간문과 논설문 등에 나와 있는 차 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풍성한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새로운 조선 후기의 차 문화사를 들려준다.

저자소개

저자 : 정민
저자 정민은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한문학 전공. 옛글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몰두해왔다.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사유를 확장 중이다. 최초의 차 저술인 『동다기』의 발굴을 계기로 차 문화 연구에 빠져들었다. 다산, 초의, 추사를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차 문화의 융성을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로 집대성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등의 책을 펴냈다. 『한시미학산책』,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 『꽃들의 웃음판』 등 한시 관련 저술과,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 청언 소품집을 펴냈다. 수필집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외에 연구서로 도교적 상상력을 다룬 『초월의 상상』, 새의 기호학적 의미를 문학과 회화 작품을 통해 읽어본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등을 출간하였다.

목차

머리말 4
서설 은성했던 차 문화의 기억을 찾아서 8

제1부. 잊혀진 차 문화의 기억을 깨우다

1. 일곱 가지 향차 이야기 :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 27
저자 이운해에 대하여ㅣ『부풍향차보』는 어떤 책인가?ㅣ『부풍향차보』와 향약차

2. 마침내 찾은 우리 차 문화 고전 : 이덕리와 『동다기』 41
「기다」인가 『동다기』인가?ㅣ이덕리는 누구인가?ㅣ『동다기』는 어떤 책인가?

3. 18세기 차 문화의 실상은 어땠나? : 『동다기』의 차 이해 55
18세기 조선의 차 문화 실상ㅣ 차의 산지와 채다ㅣ차의 별칭

4. 떡차 마시는 법과 우리 차의 우수성: 『동다기』의 떡차론과 차 효용론 71
떡차와 엽차ㅣ떡차 마시는 법ㅣ우리 차의 우수성과 차의 효능

5. 차 무역의 구상과 운용 계획 : 『동다기』의 차 무역론 85
『동다기』의 저술 목적ㅣ차 채취 방법과 예상 수익ㅣ차시 운영 방법과 수익금 활용 방안

제2부.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

6. 역대 중국의 차 전매제도 : 다산의 「각다고」론 103
전대의 각다 논의ㅣ「각다고」의 내용ㅣ역대 각다 정책에 대한 다산의 태도

7. 아홉 번 찌는 구증구포의 제다법 :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 119
다산이 마신 차는 떡차ㅣ다산의 떡차에 대한 다른 증언들ㅣ구증구포의 실체ㅣ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ㅣ일제강점기로 이어진 떡차 제법

8. 스님! 차 좀 보내주소 : 다산의 걸명 시문 139
다산의 초기 차 생활ㅣ다산과 혜장의 만남과 걸명시ㅣ다산의 「걸명소」

9. 우리 차 문화 중흥의 산실 : 다산초당과 다산의 차 생활 153
다산초당의 다조와 약천ㅣ새로 찾은 다산의 차시와 차 편지ㅣ다산의 소실 정씨 모녀와 자족적 차 생활

10. 주머니에 담아둔 찻잎 : 아암 혜장의 차시 175
다산과 혜장의 교유시ㅣ혜장의 걸명 답시ㅣ혜장의 차시

11. 차 맷돌을 빙글빙글 돌려 : 『육로산거영』에 보이는 차시 189
『육로산거영』의 구성과 차시ㅣ『육로산거영』에 수록된 석옥 화상의 차시ㅣ다산의 차시ㅣ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의 차시ㅣ철선 혜즙의 차시

12. 적막히 스님 하나 찾아오누나 : 다산과 초의 209
다산과 초의의 첫 만남ㅣ다산초당에서의 강학ㅣ다산의 가르침과 내면 갈등

제3부.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13. 풀옷 스님의 이름 내력 : 초의 명호고 229
출가와 법명 의순ㅣ초의란 이름의 연원ㅣ중부란 자의 의미

14. 나뭇가지 하나로도 편안하다네 : 일지암 이야기 243
‘일지’에 담긴 뜻ㅣ일지암 건립 경과ㅣ일지암의 공간 배치

15. 남녘 차의 짙은 향기 :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몽하편」 263
초의와의 첫 대면과 「남차병서」ㅣ초의의 「증교」시 화답과 박영보의 답시ㅣ「몽하편」에 얽힌 이야기

16. 차 끓여 박사 이름 얻으셨구려 : 초의와 신위 275
신위의 「원몽」 4수ㅣ자하의 「남차시 병서」ㅣ삼여탑과 초의차ㅣ초의의 단차와 신위의 음다법

17. 차의 역사를 말씀드립니다 : 『동다송』 다시 읽기 297
『동다송』의 창작 동기ㅣ『동다송』 새 풀이ㅣ『동다송』의 내용 구성과 의미

18. 찻일은 차와 물의 조화 : 『다신전』의 의미 311
『다신전』은 왜 베꼈나?ㅣ『다신전』과 초의의 제다법ㅣ다신의 정체

19. 찌든 속을 씻겨주오 : 초의와 황상 325
추사와 황상ㅣ초의와 황상의 만남ㅣ교유와 걸명시

20. 소나무 아래서 수벽탕을 달입니다 : 초의와 홍현주 341
초의와의 첫 만남ㅣ초의가 해거에게 보낸 편지와 『동다송』ㅣ초의의 금강산 여행과 수증시

21. 눈을 녹여 차를 끓였네 : 해거 홍현주의 차시와 차 생활 359
눈물로 끓인 보이차ㅣ해거의 걸차시와 명집ㅣ해거의 차시와 차 생활

제4부. 차 문화를 앞장서 이끈 추사

22. 차의 삼매경을 깨달았구려 : 추사와 초의 377
추사의 차 입문과 차 생활ㅣ초의와 추사의 첫 대면ㅣ걸명 편지와 초의차의 종류

23. 차로 인해 물맛을 알고 : 추사의 차 생활과 그 밖의 걸명 편지 393
초의에게 준 시문과 글씨ㅣ쌍계사 승려들에게 보낸 차 시문ㅣ역관 제자들과의 차 인연

24. 차 바구니를 온통 뒤져서라도 : 추사와 다선 향훈 407
추사의 편지와 향훈의 차ㅣ향훈에게 준 추사의 게송ㅣ향훈에게 보낸 편지와 ‘다선’의 호칭

25. 차를 반쯤 마시고 향을 사르다 : 다반향초론 419
‘다반향초’는 무슨 뜻인가?ㅣ신위와 북선원의 다반향초실ㅣ‘다반향초’를 노래한 한시들

26. 신필의 장한 기운 : 추사 「명선」 진안변 435
「명선」 위작설의 경과와 논거ㅣ「명선」에 얽힌 초의와 추사의 인연ㅣ「명선」의 필획, 과연 추사의 것이 아닌가?

제5부. 그 밖의 후원자들

27. 차 만드는 법을 논함 : 산천 김명희의 「다법수칙」 459
새 자료 「다법수칙」에 대하여ㅣ「다법수칙」의 채다법ㅣ「다법수칙」의 초다법

28. 어찌 이리 웅장한가? : 산천 김명희의 「사차」시와 초의의 제2다송 471
산천과 초의의 인연ㅣ산천의 「사차」시ㅣ제2의 다송, 초의의 답시

29. 반드시 스님이 만든 차라야 합니다 : 정학연의 차 편지와 호의의 장춘차 483
정학연의 차시와 차 관련 기록ㅣ호의의 장춘차ㅣ정학연의 차 청하는 편지

30. 포장을 열자마자 맑은 향기가 : 정학유의 차 편지와 두륜진차 501
정학유의 차시와 초의의 화답시ㅣ호의의 두륜진차ㅣ수제진품차의 효능

31. 차의 원류를 묻는다 : 이규경의 「도차변증설」고 515
‘도(?)’와 ‘차(茶)’의 관계ㅣ‘차’의 용례와 다품, 우리 차에 대한 논의ㅣ차씨를 뿌리고 심는 방법ㅣ대용 차에 관한 논의

32. 그 운치 참으로 얻기 어렵네 : 신헌과 초의 529
신헌과 초의의 교유ㅣ신헌과 초의의 시문 수창ㅣ신헌의 차시

33. 다품 중의 으뜸 : 신헌구의 「차설」과 초의차 545
신헌구와 대둔사 승려의 교유ㅣ신헌구의 「차설」ㅣ신헌구의 차시

34. 돌샘물로 반죽해서 진흙처럼 이겨서 : 백운동 별서와 월산작설차 559
백운동 별서의 공간 구성과 내력ㅣ다산의 『백운첩』과 초의의 「백운동도」ㅣ백운동과 월산작설차

35. 돌솥의 푸른 차 연기 : 우선 이상적의 차시와 차 생활 577
일상 속의 차시ㅣ차를 통한 삶의 성찰ㅣ우리 차와 외국 차에 대한 기록

36. 작은 용이 꿈틀꿈틀 서려 : 가야사 탑에서 나온 700년 된 용단승설차 597
이상적의 「기용단승설」ㅣ황현의 『매천야록』에 보이는 기록ㅣ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ㅣ가야사의 옛 모습

37. 내 다옥 나 홀로 좋아할밖에 : 이유원의 다옥과 차시 611
다옥을 짓고 차를 즐긴 차인ㅣ우리 차에 대한 애정과 감식안ㅣ중국차와 일본 차에 관한 기록

38. 참기 어려운 차 생각 : 범해 각안의 「차약설」과 「차가」 635
「차약설」의 차 효용론ㅣ「차가」의 차론ㅣ초의차에 대한 증언과 그 밖의 차시

에필로그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전망과 과제’ 649
부록 ‘조선 후기 차 문화 활동 연보’ 653
미주 665
참고문헌 731
찾아보기 737

책 속으로

조선 후기 차 문화는 다산과 초의, 추사에 의해 다시 일어났다. 이 책은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기록은 다산에서 출발하여 초의로 수렴된다. 그 사이에 추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초의차의 명성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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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차 문화는 다산과 초의, 추사에 의해 다시 일어났다. 이 책은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기록은 다산에서 출발하여 초의로 수렴된다. 그 사이에 추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초의차의 명성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탁월한 안목과 실천이 명맥이 다 끊어진 차 문화의 불씨를 되지펴놓았다.
이들이 마신 차는 대개 떡차였다. 잎차가 없지 않았지만 소량이었다.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식습관으로 인해, 차의 강한 성질을 눅이기 위해 구증구포 또는 삼증삼쇄의 제다법이 발달한 것도 새롭게 확인했다. 이들이 마신 차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녹차와는 다른 차다. 이런 것은 이 책 속에 수없이 많은 용례가 나오니, 옳다 그르다 시비할 일조차 못 된다.
이 책은 사적 계통과 맥락을 정연하게 갖춘 차 문화사가 아니다. 주제별로 분석하여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부풍향차보』와 『동다기』 외에 수많은 차 관련 1차 자료들을 발굴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한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편지글과 문집 자료로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빈 공간을 채워가는 과정은 괴롭고도 즐거웠다. 다산과 추사의 차 관련 친필 편지와 만난 기쁨, 박영보의 수십 권 문집과 마주했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그 밖에 초의와 황상, 신위와 신헌 등 주요 인물들의 글 속에서 차와 관련된 금싸라기 같은 정보를 얻게 될 때마다 신나고 기뻤다. _「머리말」 중에서

잊혀졌던 차 문화는 18세기로 접어들며 비로소 새롭게 되살아났다. 그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부안현감 이운해는 고창 선운사 차밭의 존재를 알고서, 이곳의 찻잎을 따와 7종 향차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방법을 『부풍향차보』란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것은 고창 사람 황윤석의 일기에 잠깐 기록되고 말았을 뿐 이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졌다. 그로부터 40년 뒤, 진도로 귀양 온 죄인 이덕리가 『동다기』를 지었다. 그는 역모에 관련된 죄인이었으므로, 저술을 남기고도 자기 이름 석 자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이후 이 책은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 실물도 없이 고전이 되었다.
이덕리가 『동다기』에서 펼친 차 무역 주장은 지금 안목으로 보더라도 참으로 놀랍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처럼 명쾌하고 실천 가능한 차 무역 주장은 누구에게서도 나온 적이 없다. 차 무역에 관한 논의는 우리에게서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나, 개화기 때 원세개 같은 중국인들의 입에서 늘 먼저 거론되었다. 이 좋은 자산을 왜 그저 썩히느냐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덕리의 이 참신한 주장도 한낱 유배 죄인의 반향 없는 메아리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의 차에 대한 이해는 지금에 와서 보면 충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차를 만들어 마셨고, 차의 효능과 가치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_「서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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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18, 19세기 조선의 학문ㆍ예술ㆍ문화 교류사를 종횡한 역작!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와 이덕리의 『동다기』 외에 수많은 차 관련 자료와 사료들을 끈질긴 집념으로 발굴, 학계에 최초로 소개하여 우리 차 문화사를 다시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18, 19세기 조선의 학문ㆍ예술ㆍ문화 교류사를 종횡한 역작!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와 이덕리의 『동다기』 외에 수많은 차 관련 자료와 사료들을 끈질긴 집념으로 발굴, 학계에 최초로 소개하여 우리 차 문화사를 다시 쓴 정민 교수! 정치(精緻)한 문헌 해석과 면밀한 검토, 정확한 의미 부여로 우리 차 문화를 집대성했다!
발굴 자료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여 후속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물꼬를 터놓는 한편, 한국과 중국의 각종 차 그림 명작 등 300여 컷의 자료를 실어 책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또한 그동안 답습 누적되어온 차에 관한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차계와 학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과 의문을 통쾌한 논거를 들어 마무리 지었다!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 정약용,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스님, 차에 대한 애호를 예술로 담아 보급시킨 추사 김정희! 「다법수칙」의 김명희, 「남차병서」시를 지은 박영보, 혜장, 신위, 신헌, 황상, 홍현주, 정학연, 정학유, 이상적 등 시서화 대가들이 펼치는 수려한 시와 정감 어린 편지 글에서부터 떡차론, 차 효용론, 제다법, 차 무역론에 이르기까지! 차향처럼 은은하고 정교하게 빚어낸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

우리 시대의 대표 인문학자 정민 교수, 잊혀진 우리 차 문화의 정신과 역사를 일깨우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18, 19세기 조선의 학문ㆍ예술ㆍ문화 교류사를 종횡한 역작!

다산이 마셨던 차는 떡차였을까 잎차였을까? 가야사 5층 석탑에서 발견된 700년 묵은 송나라 때의 용단승설차는 어떻게 고려 땅까지 건너와 탑 속에 봉안되었을까? 절집에서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던 차 문화의 전통은 누구에 의해 다시 융성했을까?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배웠을까, 초의가 다산에게 차를 배웠을까? 논란이 되고 있는 추사의 「명선」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글쓰기와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있는 정민 교수가 조선 시대 차 문화사를 들고 나타났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刊) 속에 녹아들어 있다. ‘다산, 초의, 추사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란 부제처럼, 이 책은 특히 18세기 이후 조선 시대를 풍미한 차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차에 관해 문외한이었던 정교수는 2006년 가을,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펴낼 당시, 자료를 보기 위해 강진을 찾았다가 초의의 『동다송』에 한 구절만 인용되었을 뿐 실물이 전하지 않던 『동다기(東茶記)』를 찾아냈다. 이 일을 계기로 차 문화 연구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책은 그때까지 다산의 저술로 잘못 알려졌고, 그나마 실물도 전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정교수는 『강심』에 실린 이 글이 다산이 지은 것이 아니라 진도에 유배 와 있던 죄인 이덕리(李德履)의 저술임을 밝혀냈다. 차계가 술렁였다.
이 일을 계기로 차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 시작되었다. 이후 정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와 각종 차 관련 저작 및 편지 등 수많은 사료들을 잇달아 발굴하여, 학계 최초로 소개하며 우리 차 문화사를 다시 썼다. 기존 연구 성과를 찬찬히 검토하여 수십 년째 답습 누적되고 있는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없다고 생각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후손가를 방문해 자료를 열람하고, 소장가를 만나 공개를 요청하고, 문집을 뒤져 감춰져 있던 기록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나갔다. 이러한 끈질긴 집념과 정치(精緻)한 문헌 해석, 정확한 의미 부여를 거쳐 은성했던 조선의 차 문화가 풍요롭고 향기롭게 되살아났다. 여러 해 동안 갖은 어려움 끝에 수집한 오리지널 자료 사진이 무려 300여 컷에 달한다. 해외의 자료까지 망라했다. 모든 원문을 수록하고 풀이하여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고, 쟁점과 의문을 낱낱이 파헤쳤다. 원본을 공개하여 향후 학자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집필의 과정에서 차 연구가들 사이에서 정민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로 큰 호응이 있었다. 정교수는 『다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통해 잊혀졌던 우리 차를 역사 밖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에서 거둔 성과는 우리 차사의 우뚝한 금자탑이다.

▶이 책의 의의
첫째,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종합적 전망을 제시했다. 18, 19세기 이후 새롭게 발흥한 조선의 차 문화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구체적 실상의 제시 없이 단순히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던 이전 차 문화사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실제 자료에 입각하여 차 문화의 비전을 제시했다.
둘째, 수많은 1차 자료의 발굴과 소개로, 차 문화의 깊이와 너비를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부풍향차보』, 『동다기』, 『다법수칙』 등 최초로 발굴한 1차 자료가 풍부하고, 서간문과 논설문 등 최초로 소개되는 내용이 대부분일 정도로, 풍성한 새 자료의 발굴과 소개가 이루어졌다.
셋째, 그간 차계의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아, 바른 안목을 제시했다. 그간 오역과 오독으로 점철된 읽기의 오류가 차 문화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편견을 낳았다. 이를 바로 잡아 차인들이 조선의 차 문화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게끔 안내했다.
넷째, 다산, 추사, 초의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지성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방대한 자료 섭렵과 발굴을 통해,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신위와 박영보, 홍현주, 신헌 등 당대 지식인의 차를 통한 네트워크를 밝혀냈다. 지성사와 문화사의 지평을 넓힌 쾌거다.
다섯째, 추사의 다반향초론 및 「명선」 관련 논의 등 여러 민감한 쟁점을 통쾌한 논거를 들어 마무리 지었다.
여섯째, 모든 발굴 자료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여 만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차계의 폐단 중 하나는 자료를 폐쇄적으로 활용할 뿐 공유하지 않아, 연구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을 든다. 이 책에서는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유해서 더 깊은 후속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물꼬를 터놓았다. 한국과 중국의 각종 차 그림 명작들도 책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차향처럼 은은하고 정교하게 빚어낸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

신라와 고려 때 흥성했던 우리 차 문화는 조선조로 접어들며 거의 멸절의 수준으로 내몰렸다. 차는 배탈이 났을 때 먹는 상비약이었을 뿐, 기호음료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역대 문집 속에 차에 관한 시문이 실려 있긴 해도, 연행 길에 사온 중국차를 마시는 호사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공물로 바쳐지는 차는 일반에게 차례가 돌아올 만큼 생산되지 않았다.
조선의 차 문화는 다산과 초의, 추사에 의해 다시 일어났다.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는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기록은 다산에서 출발하여 초의로 수렴된다. 그 사이에 추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초의차의 명성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탁월한 안목과 실천이 명맥이 다 끊어진 차 문화의 불씨를 되지펴놓았다.

1. 까맣게 잊혀진 차 문화의 재발견을 알리는 신호탄, 『부풍향차보』와 『동다기』
잊혀졌던 차 문화는 18세기로 접어들며 비로소 새롭게 되살아났다. 그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부안현감 이운해는 고창 선운사 차밭의 존재를 알고서, 이곳의 찻잎을 따와 7종향차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방법을 『부풍향차보』란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것은 고창 사람 황윤석의 일기에 잠깐 기록되고 말았을 뿐 이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졌다. 그로부터 40년 뒤, 진도로 귀양 온 죄인 이덕리가 『동다기』를 지었다. 그는 역모에 관련된 죄인이었으므로, 저술을 남기고도 자기 이름 석 자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이후 이 책은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 실물도 없이 고전이 되었다.
조선 후기 차 문화의 출발점은 『부풍향차보』에서『동다기』에 이르는 시기로 꼽는다. 이 두 저술의 존재는 까맣게 잊혀진 차 문화의 재발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선 후기 백과전서적 지식 경영의 열기는 웰빙의 흐름을 타고 차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여기에 다시 디딤돌을 놓아 차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운 이가 다산 정약용이었다.

2. 차 문화 중흥의 기폭제가 된 다산 정약용
귀양지의 척박한 환경에서 다산 정약용은 건강을 많이 상했다. 늘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생활은 신체 기능의 저하를 불러왔다. 답답한 현실로 울화가 쌓여 어쩌다 고기 몇 점만 먹어도 체증이 되었다. 부실한 영양 상태로 학질을 달고 살았다. 나중에는 빈혈과 중풍까지 왔다. 차를 마셔야만 해결될 문제였다.
기존의 논의에서 흔히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배웠다거나, 아암 혜장에게서 차를 배웠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다산은 귀양 오기 전에도 차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내려와서 병 때문에 차를 찾았다. 1805년 우연히 만덕산 백련사로 놀러 갔다가 주변에 야생 차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아암 혜장 등 백련사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암 혜장과 그 제자 수룡 색성 등이 다산이 일러준 제법에 따라 차를 만들어 다산께 드렸다. 이후 다산의 제다법은 백련사에서 보림사와 대둔사의 승려들에게까지 퍼져 나갔다. 이규경의 「도차변증설」, 이유원이 쓴 장시 「죽로차」와 『임하필기』 중의 「호남사종」 외 여러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다산이 마셨던 차는 어떤 형태였을까? 오늘날 마시는 녹차와는 전혀 달랐다. 다산차는 일반적으로 떡차였다. 1830년 다산이 제자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 떡차 만드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삼증삼쇄, 즉 찻잎을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 가루를 낸 후, 돌샘물에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크기의 떡차로 만들었다. 다산은 유배 이전에 지은 시에서 이미 차의 독한 성질을 눅게 하려고 구증구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증구포든 삼증삼쇄든 다산차가 찻잎을 쪄서 말리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차의 독성을 중화시키고, 가는 분말로 빻아 반죽해 말린 떡차였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사람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채식 위주의 담백한 식단이었다. 독한 차를 그대로 마시면 위장에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다산은 차의 독성을 눅여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게끔 구증구포 또는 삼증삼쇄의 떡차 제조법을 개발했다.

3.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스님
초의는 다산의 손때 묻은 제자다. 초의가 다산초당을 처음 찾은 것은 1809년이었다. 당시 다산이 48세, 초의가 24세였다. 초의가 차를 배운 것은 물론 다산에게서였다. 선지식을 찾아 참구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던 초의가 다산을 만나 급속도로 그 학문과 인품에 빨려들어가는 과정은 초의의 시집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초의가 초당을 드나들 당시, 다산은 이미 차를 만들고 있었으므로 그 제법이 초의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초의차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30년의 일이다. 그 이전 초의 관련 기록에서는 차와 관련된 언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초의는 1830년에 스승 완호의 사리탑 기문을 받기 위해 상경했다. 그때 예물로 준비한 것이 보림백모 떡차였다. 우연히 벗을 통해 이 차의 맛을 보게 된 박영보가 「남차병서」시를 지어 사귐을 청하고, 초의가 이에 화답함으로써 초의차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그의 스승 신위가 다시 「남차시」를 지어 그 차맛을 격찬하며 전다박사로 추켜세우자, 초의의 명성은 경향 간에 드높게 퍼져나갔다.
홍현주의 요청에 따라 초의가 「동다송」을 지으면서 우리 차는 이론 방면에서도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초의는 이 한 편의 장시에서 차의 역사와 우리 차의 효용, 그리고 차를 마시는 절차와 방법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에서 수없이 인용된 초의차에 관한 여러 사람의 시를 종합하면, 제다 방법뿐 아니라 포장법, 차 이름까지도 선명하게 복원된다.

4. 차에 대한 애호를 예술로 담아 보급시킨 추사 김정희
초의차가 경향 각지에 유명해진 데는 누구보다 추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초의차를 맛본 추사는 이 차에 깊이 매료되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는 차 이야기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다. 그는 끊임없이 회유하고 협박하고 구슬러서 초의에게서 차를 뺏어냈다. 차를 얻기 위해 글씨를 써주고 그림을 그려주었다. 호들갑스럽기까지 한 그 편지들을 읽다 보면 추사의 차 애호가 어떠했는지 절로 알게 된다. 당대 예단에서 추사가 차지한 비중 때문에 초의차의 명성 또한 덩달아 대단해졌다. 추사는 초의뿐 아니라 그의 제자 향훈과 지리산의 여러 승려들에게서도 차를 구해 마셨다.
제주도에 유배 가서 차가 떨어지자 빈랑 잎으로 황차를 만들어 마시기까지 했다. 초의에게는 제발 장마철에는 차를 보내지 말고, 보내더라도 항아리에 밀봉해서 보내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그가 마신 차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는 차에 대한 답례로 많은 글씨를 써서 선물했다. 추사가 이들 승려에게 써준 편지와 글씨는 우리 차 문화사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는 앞장서서 우리 차의 예찬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 박영보와 신위 등이 한몫 거들고, 정조의 외동사위였던 홍현주까지 가세하자, 초의차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5. 들불처럼 번져간 차에 대한 열기
초의뿐 아니라 호의나 향훈, 색성 같은 승려들도 차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다산의 두 아들이 호의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 또한 차에 관한 얘기를 빼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정학유는 자신이 먹는 차의 양이 1년에 수십 근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차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찻물이나 차도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좋은 물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 추사의 동생 김명희는 「다법수칙」 같은 글을 통해 제다법을 향후에게 귀띔해주었다. 초의와는 「사차」시를 주고 받으며 차에 대한 벽을 피력했다. 여기에 신헌과 신헌구, 이상적과 이유원 등이 가세했고, 범해 각안이 「차약설」과 「차가」를 짓는 등 실로 조선 후기 차 문화는 전에 없던 성황을 이룩했던 것이다.
이유원은 아예 다옥을 마련하고 차를 즐겼고, 보이차와 일본 차에 대해서도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이상적은 백두산에서 나는 백산차와 가야사 5층탑에서 나온 용단승설차에 관한 증언을 남겼다. 각 지역에서 나는 차와 샘물에 관한 기록도 이 시기에 이르러 부쩍 늘어난다.


옛글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에 몰두해온 정민 교수,
수십 년간 반복 누적되어온 학술적 오류를 바로잡다!

차 문화에 대한 기존 저술에서는 학술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발견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오류가 수십 년을 반복되며 누적되어가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 차 고전이라 할 「동다송」은 각 구절 밑에 해당 전거를 각주로 달아놓았다. 이것을 단락 표시로 착각하면서 17송이니 31송이니 하는 이상한 분절법이 생겨났다. 고작 40여 구에 불과한 한 편의 시를 수십 토막으로 잘라 읽는 독법이 지금도 바른 방법인 양 행세하고 있다.
흔히 다산의 말로 즐겨 인용되는 “차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음다흥국론 같은 것은 다산이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이다.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얘기가 오늘도 신화처럼 떠돌고 있다.
초의가 백운동에 갔다가 거기서 백학령(白鶴翎)이란 신품종의 국화를 보고 쓴 시가 있다. 그런데 첫 번역에서 이 백학령이 국화 품종의 이름인 것을 모르고 백학이 난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다음에 실린 ‘그 중의 한 그루를 나눠 화분에 심고’라는 시가 느닷없이 ‘차나무 한 그루를 화분에 심고’로 둔갑해버렸다. 나중에 이 시는 한국의 차시 속에 버젓이 포함되었다. 지금까지 십여 종의 『초의시집』의 번역이 나왔어도 이 오류는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동다기』에 ‘구방지상마(九方之相馬)’란 말이 나온다. 중국 고대에 천리마를 잘 알아보던 구방고란 사람이 말의 관상 보듯이, 차의 맛을 잘 감별해낸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정작 차 문화 강의 교재에는 ‘아홉 방향으로 서로 말을 타고’로 풀이되고 있다. 이런 식의 오역과 오류의 답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민 교수는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에서 차 문화에 대한 차학을 전공하는 전문인의 양성이 시급함을 이야기하며, 우리도 중국에서처럼 우리 차 문화사를 종합하는 전망을 수립할 때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차를 마시고 향을 사르며 인생의 정취를 음미했던 선인들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앞으로 한국의 차 문화사 전반으로 관심을 확대할 작정임을 비쳤다. 원문을 부록으로 실어 가독성을 높였고, 상세한 연표는 차 문화사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에게서 구한 다채로운 도판들이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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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술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차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고수는 안다. 다취(茶醉)가 주취(酒醉)보다 무섭다는 것을....
    술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차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고수는 안다. 다취(茶醉)가 주취(酒醉)보다 무섭다는 것을. 그러나 한국인 가운데 술에 취해본 이들은 모래알처럼 많아도 차에 취해 본 이들은 분명 극소수일 터. 나는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차 애호가로 다취가 주취보다 무섭다는 것을 일찍이 체감한 바 있다. 보이차와 녹차를 가장 즐기는데 한 두 잔이면 괜찮지만 서너 잔 이상 넘어간다면 빈 속에 보이차와 녹차는 금물이다. 반드시 다식을 곁들여가며 마실 것을 당부한다. 지금은 가볍게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름지기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관련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물이면 수집하게 되고, 문헌이면 살펴보게 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기호와 취미가 같은 이들끼리는 유유상종하게 된다. 나는 차를 좋아하고 하루라도 거른 적이 없다시피 하지만, 다기를 미친듯이 수집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녹차와 보이차를 구분지어 사용할  두 개의 다호뿐이었다. 몇 년간 사는 집 근처 찻집에서 주인장과 수다를 떨어가며 한 두시간 차를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주인장이 차밭에서 샘플로 가져온 햇차나 값비싼 시합차를 여러 다식과 곁들여 음미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고 보니 주변에 차를 즐기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인은 확실히 중국인과 일본인보다는 차를 적게 마시는 종족이다. 물론 커피는 예외.
     
    우리 조상들도 차를 그다지 즐기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조선 시대도 차는 기호음료가 아니라 배탈이나 체증을 다스리는 데 쓰이는 약용으로 가끔 활용되었다 한다. 비록 18세기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다산, 초의, 추사에 의해 차문화가 새로이 부흥했지만 역시 오늘날과 같은 기호식품은 아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간편한 티백차를 마시고 있지만 불가의 사찰에서는 전통적인 다문화가 여전히 주맥을 이어오고 있다.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스스로 겸손해하는 정민 교수가 조선 후기 차문화에 대한 야심찬 연구서인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2011)를 선보였다. 다산, 초의, 추사를 중심으로 18세기 조선 후기의 내로라하는 '다벽(茶癖)'의 소유자들의 차 문화 문헌들과 <육로산거영>과 자하 신위의 <남차시 병서>와 같은 다양한 차시(茶詩)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차 문화사에 있어서 '성지'라 할 수 있는 다산초당과 일지암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한다.
     
    머릿글은 저자가 <동다기(東茶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진도에 귀향 온 죄인 이덕리의 <동다기>는 초의의 <동다송(東茶頌)>에 인용되어 전해질 뿐 실전된 것으로 간주되던 문헌이다. <동다기>는 다산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져 왔는데 저자는 이를 처음으로 바로잡았다. 부안현감 필선 이운해가 지은 <부풍향차보(扶風鄉茶譜)>도 처음 소개되는데 이는 1775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다. '부풍'은 전북 부안의 옛 지명이다. 고창 선운사(禪雲寺) 인근의 차로 만든 7가지 향차의 제법을 기록한 글로, 원본은 전하지 않고 황윤석(1729-1791)의 일기 《이재난고》에 그림과 더불어 전해진다.  차 애호가로써 내가 차를 반기고 즐기는 심경은 아마도 다벽이 심한 박영보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영보가 <남차병서>에서 피력한 다벽과 차 예찬은 차 애호가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내 삶은 다벽(茶癖)에다 수액(水厄)을 더했는데
    나이들어 뼛속까지 삼시충(三尸蟲)이 박혔다네.
    열에 셋은 밥을 먹고 일곱은 차 마시니
    집에 담근 강초(薑椒)마냥 비쩍 말라 가련하다.
    이제껏 석 달이나 빈 찻잔 들고 있다
    송우성(松雨聲) 누워 듣자 군침이 흐르는구나.
    오늘 아침 한 탕관(湯灌)에 장과 위를 씻어내니
    방 가득 부슬부슬 초록 안개 서리누나."(267-8쪽)
  • 스무 해 넘게 피어오던 담배를 끊어버린 뒤로...
    스무 넘게 피어오던 담배를 끊어버린 뒤로
    도시 재미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술은 몸이 받아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커피를 재미 삼아 마실 수는 없었는데
    그럴 오래 전에 접어버린 차에 대한 부러움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부러웠으면서도 시도조차 헤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를 스스로 극복해내는 것이었다.
     
    삶이 그러하고 배우는 것이 그러하듯
    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차도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고 편하게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차에 대한 괜한 선입견들을 버리고
    격식 차리지 않는 자유스러운 마시기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마시기 시작한 ,
    선배를 두고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책을 보면서 모르는 것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마시기에서 맛을 종류가 십여 가지에 이르고
    마신 시간도 해를 지나 번째 해로 접어들었지만
    차의 맛에 대한 감각은 아직도 여전히 숙면 중이다.
    다만 동안의 노력으로 생긴 변화 가지,
    차에 대한 거부감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올해 들면서 차의 종류에 따라 몸에 맞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를
    겨우 알아챌만한 정도는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줄곧 마셔오던 차를 바꿨다.
    참고 마시면 몸에 익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지라는 것을
    비로소 알고 나서 취한 번째 조치였다.
    그러고 있을 책을 만났다.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믿고 책을 사고 읽었던 사람,
    정민이 차에 대한 책이었다.
     
    책을 읽고 보니 저자 역시 차와는 그리 오래 인연 맺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보다 관심은 차의 역사였고, 차에 대한 자료였고, 차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그가 차를 마실 때의 마음가짐이 어떠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차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만날 때마다 느꼈던 환희의 크기는 짐작할 있을 같았다.
     
    *****
    세종은 중국에서 역대로 각다법搉茶法을 시행한 것을 의아해했다. 우리는 대궐에서도 차를 마시지 않는데, 중국은 어째서 법으로 금하지 않으면 만큼 차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시강관 김빈은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기름진 음식을 차를 즐겨 마시는 이유로 들었다. 벌서 조선 초만 해도 고려 흥성했던 문화는 이렇듯 퇴조해버렸던 것이다. 글은 각다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중국에서 그토록 문화가 흥성한 대한 왕의 의문을 적고 있어, 당시 우리 문화의 실상을 증언한다.
    -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중에서, 104
     
    조선은 차에 관한 미개했고 무지했다.
    신라 이후 꽃피기 시작한 땅의 문화는
    조선의 바로 왕조였던 고려 때까지만 해도 흥성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조선왕국 개창과 함께 문화도 급작스러운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고
    국운이 바닥에 이르렀던 시기에 이르러 차는 거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기호로 마시는 차가 아니라 탈이 났을 마시는 약물로서의 용도만 남아있었다.
    그러는 동안 차나무는 덤불로 여겨져 땔감으로 쓰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럴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한 천재 다산 정약용의 귀양살이가
    남도 강진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버려진 차나무가 도처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다산은 그곳에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진 차나무를 만났고
    그의 인품과 학식에 마음을 빼앗긴 선비와 승려들을 만났으며
    빈사상태에 놓여있던 조선의 문화를 부흥시킬 초의를 만났다.
     
    조선 후기의 문화는 다산에게서 부흥의 싹이 트고
    초의에 의해 꽃을 피웠으며 추사에 이르러 명성이 나라 안에 퍼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롭게 쓰일 수도 있었던 조선의 문화 역사는
    그들 사람으로 끝이었다.
    짧았지만 화려했고 향기 또한 아까울 만큼 짙었다.
     
    승유억불의 험난한 세월을 살던 때였으면서도
    뜨이고 마음이 열린 조선의 승려들과 유생들은
    차를 매개로 스승과 제자가 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었다.
    차를 제조하는 승려에게 선비가 차를 구걸하는 글을 써서 보냈고
    문향 짙은 글을 밭은 승려는 따라 좋은 차를 싸서 선비들에게 보냈다.
    그들은 만나면 찻물을 끓이고 향을 사르고 시를 지었으며
    밤을 새워 마시고 노래하고 시를 읊었다.
    세상이 말하는 신분의 차이 따위는 그들에게 벽이랄 것도 없었다.
     
    보름 가까이 권을 갖고 끙끙대면서 읽은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문화랄 없는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 의해 피었던 시절의 문화를 만끽했고
    무엇보다 170 수에 달하는 우리 차시를 읽어볼 있었는데
    차시를 지은 선비와 승려 속에는 다산과 초의와 추사 말고도
    박영보, 신위, 홍현주, 김명희, 정학연과 학유 형제, 신헌과 이상적 등의 이름이 보였다.
    읽는 속도를 더디게 주범은 다른 아닌 한시였고,
    시를 지은 이들은 시인이자 차인이었다.
     
    차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 것은 책을 읽어 얻은 부수입이다.
    식은 차를 마시고 나서 까닭 없이 가래가 끓었던 이유와
    녹차를 마시고 나서 속이 아팠던 원인을 책을 읽으면서 알았고,
    다반향초多半香初 바른 뜻을 알게 되었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 말이 주인 없이 유행한 말인 것도 알았다.
     
    새로운 자료를 만날 때마다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즐거웠다는 저자의 고백이 무엇을 말하는지 있었다.
    잘못 인용된 한시 편은 옥에 정도로 봐주기로 했다.
    인터넷을 떠돌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잘못된 자료들이
    앞으로도 그의 발과 손과 머리를 통해 하나씩 고쳐지고 바로잡힐 있게 되기를
    변함없이 응원하고 기대할 테다.
     
    내게 차인의 호칭은 요원할 터이지만
    부러움을 갖고 산대도 별로 부끄러울 것은 없다.
    차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 차의 배릿하고 거짓말처럼 씀쓰름한 향기와 맛에 반해 직접 만든 다기와 시간을 들여 마음의 여유와 함께 제대로 즐기는 편이다. ...
    차의 배릿하고 거짓말처럼 씀쓰름한 향기와 맛에 반해 직접 만든 다기와 시간을 들여 마음의 여유와 함께 제대로 즐기는 편이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많이 망설인 편이다. 초의선사부터 지허스님과 여연스님이 쓴 책, 차의 선구자인 김명희..등 두루 섭렵하고 시행착오도 겪어 봤지만 호기심 때문에 결국 이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진짜 우리 차의 역사를 잘 보여줬다. 한문지식의 깊이와 탄탄한 배경을 바탕으로 저자는  정교하고 치밀한 문헌 해설과 자세하고 빈틈이 없는 정확한 의미로 면면히 이어온 우리 차의 맛과 멋의 실상을 정갈한 문장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강진으로 귀양간 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로부터 차를 배웠다는 것이 일반에 알려진 통설이지만 이 책은 그와 반대이면서 직접 발굴한 자료와 함께 그 동안 잘못 전해진 많은 사실들을 바로 잡으면서 사진과 함께 보는 기분은 차의 향기처럼 은은한 편이다. 그 동안 답습되어 오고 누적되어 사실을 무시하고 원리, 원칙만을 고집하는 태도인 차의 교조적 해석에 얽매어 차의 일상을 잃게 되는 폐단을 경계한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린다는 "구중구포"...가 우리나라 전통제다법이라는 절대의 비전인양 떠받드는 인식이 우리나라의 큰 문제이자 모순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끈덕이면서 차를 통해 사물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에 감탄했다. 다산의 글을 통해 다산이 차에 관한 전문지식이 상당히 깊었고 생활화한 음차습관과 차제조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음을  엿보았다.  추사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걸명편지가 익살스럽고 얌체같은 당부가 서슴치 않은 모습에 웃음이 터지면서 그외 차를 매개로 한 정깊은 옛 선인들의 교류와 차살이, 그 향기로운 흔적과 함께 차문화사의 알려지지 않는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고 차가 가르쳐주는 순리의 삶을 잘 보여줘 감동적이다. 추사가 초의를 위해 예서체로 써준 "일로향실" 편액 글씨가 보면 볼수록 매혹적이면서 추사의 대표적인 작품인 "명선"의 위작설에 관한 글에서 멈칫거렸다. 개인적으로 팬이자 존경하는 편인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님의 책을 거의 읽은 편이고  이 문제를 쟁점화한 책을 읽어 본적이 있어서 마음 속으로 갈등이다. 저자는 낱낱의 글자를 추사의 이미 검증된 작품 가운데서 하나하나 가려뽑아서 논리정연하게 설명했지만 한쪽으로 편든 주관적인 감정을 극복하지 못 해서 시간을 두고 더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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