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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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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3*224*31mm
ISBN-10 : 8960516813
ISBN-13 : 9788960516816
자본가의 탄생 중고
저자 그레그 스타인메츠 | 역자 노승영 | 출판사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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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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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최고입니다최고입니다 5점 만점에 5점 gotsla5*** 2019.11.10
54 새책처럼 깔끔하네요 잘 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legnag*** 2019.11.09
53 새책 처럼 ?끗한 책이에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kug0*** 2019.11.08
52 이쁜 새책같은 중고도서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wof*** 2019.10.16
51 아주 만족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mukga2***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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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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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자본가, 야코프 푸거의 파란만장한 삶! 격동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를 잘 담은 평전이자,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서 『자본가의 탄생』.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를 한 명만 꼽는다면 누구일까? 바로 야코프 푸거다. 교황과 황제까지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였던 그는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는 물론이고 영어권에서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영어권에서 푸거의 삶과 시대를 충실하게 소개했다는 평을 받으며 출간 당시 각종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차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됐는데, 모든 일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푸거가 역사에 남긴 것은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다.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 그레그 스타인메츠
미국 클리브랜드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콜게이트대학을 졸업했으며 노스웨스턴대학 메딜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5년 동안 《사라소타 해럴드 트리뷴》 《휴스턴 크로니클》 《뉴욕 뉴스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 독일 지사와 런던 지사의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현재는 뉴욕에 있는 자산관리사에서 증권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본가의 탄생》은 야코프 푸거가 그 중요성에 비해 영어권에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쓴 그의 첫 저서다. 그의 책은 야코프 푸거의 역사적 의의를 일반 독자에게 가장 잘 소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자 :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번역한 책으로는 《우리 몸 오류 보고서》 《이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 《바나나 제국의 몰락》 등 다수가 있으며,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다. 번역자가 만든 ‘통증 연대기 홈페이지’(http://socoop.net/)에서 독자와 소통하고자 한다.

목차

머리말 ― 9

1장 여정의 시작 ― 17
2장 황제에게 꼭 필요한 존재 ― 49
3장 사업의 확장 ― 75
4장 금융의 마술사 ― 111
5장 상인의 전투 ― 125
6장 대금업의 합법화 ― 143
7장 종교개혁의 불씨 ― 173
8장 황제 선거 ― 185
9장 승리 그리고 패배 ― 213
10장 자유의 바람 ― 239
11장 농민 전쟁 ― 271
12장 북소리가 그치다 ― 303

맺음말 ― 327
후기 ― 338
주 ― 343
참고문헌 ― 352
찾아보기 ― 379

책 속으로

카를은 농부의 손자인 푸거를 마음만 먹으면 불경죄로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푸거가 자신과 맞먹으려 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성공이 누구 덕분인지 상기시킴으로써 모욕감을 더한 사실에 경악했다. 푸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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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은 농부의 손자인 푸거를 마음만 먹으면 불경죄로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푸거가 자신과 맞먹으려 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성공이 누구 덕분인지 상기시킴으로써 모욕감을 더한 사실에 경악했다. 푸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신이 없었다면 폐하께서는 황제관을 쓰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빌려드린 돈에 이자까지 계산해 지체 없이 상환토록 명하소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기회를 포착하거나,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협상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 등이 있다. 푸거는 그 모든 일을 해냈을 뿐 아니라 한 가지 기질이 더 있었기에 보다 높이 오를 수 있었다. 푸거에게는 카를에게 독촉장을 보낼 정도의 배짱이 있었다.
_10쪽, <머리말>

막시밀리안이 멍청한 지기스문트를 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푸거의 판단은 정확했다. 막시밀리안은 티롤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을 실행에 옮겼다(기발함으로 보건대 푸거가 꾸몄을 수도 있다). 막시밀리안은 공작 영지를 담보로 지기스문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지기스문트가 3년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영지는 막시밀리안 차지가 될 터였다. 예상한 대로 지기스문트는 돈을 상환하지 못했다. 푸거가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면 빚을 갚을 수 있었겠지만, 푸거는 지기스문트보다 야심가 막시밀리안을 고객으로 더 선호했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푸거가 비열하게 처신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는 지기스문트가 젊고 유능한 막시밀리안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간파했다. 지기스문트를 후원하는 일은 의미 없는 충성이었을 것이다.
- 47쪽, <1장 여정의 시작>

푸거는 시장 정보를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가 무엇을 만들었느냐고? 바로 세계 최초의 뉴스 서비스다. 푸거는 통신원을 곳곳에 파견했다. 이들은 시장 정보, 정치 소식, 최신 풍문 등 푸거에게 이익이 되는 정보라면 무엇이든 가지고 아우크스부르크로 달려왔다.
- 60쪽, <2장 황제에게 꼭 필요한 존재>

푸거가 헝가리에서 은과 구리 광석을 가득 실은 수레를 안트베르펜으로 보내면 그곳에서 배에 실어 리스본으로 보냈다. 포르투갈은 후추로 값을 치렀기 때문에 푸거는 유럽 제일의 향신료 도매상이 될 수 있었다. 푸거가 폭리를 취한다거나 독점을 한다거나 (무엇보다) 유대인이라고 중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향신료 무역을 하면서는 ‘후추 자루’라는 별명도 생겼다. 푸거의 후추 거래는 광산업 활동보다 더 두드러졌으며, 많은 이들은 후추가 그의 주력 사업인 줄 알고 있었다.
- 91~92쪽, <3장 사업의 확장>

푸거는 오랫동안 이탈리아가 독점한 교황청 금융업에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둔 것은 칭크가 로마에 도착한 뒤였다. 칭크는 전임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따냈다. 그는 비용과 서비스 품질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뇌물과 선물로 교황청 고위급 인사들의 환심을 샀다. 그는 교황 선거 운동에 기부하고 메카우의 자금책이 되면서 바로 최상층에 연줄을 댔다. 칭크가 로마에 도착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푸거는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가가 되었다. 이는 칭크가 성사시킨 일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 122쪽, <4장 금융의 마술사>

푸거가 교황 레오에게 보낸 편지가 효력을 발휘했다. 레오는 토론회 장소에 대한 이의를 묵살했으며, 같은 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사상가들의 견해와는 정반대로 이자 부과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고리대금은 본성상 불모인 것에서 얻는 이익, 즉 노동이나 비용, 위험 없이 얻는 이익을 일컬을 뿐이다.” 돈은 소와 다르다거나 돈에서는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 노동, 비용, 위험이 결부되면 불모가 아니므로 이자를 부과하는 행위는 합법적이었다.
- 159쪽, <6장 대금업의 합법화>

사업을 물려받은 레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면죄부 자금 조달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는 12사도 중 한 명으로 교회를 세웠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인물이다. 그에게 걸맞은 안식처를 바친다는데 누가 거부하겠는가? 레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 면죄부를 공식 발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 면죄부는 푸거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교황과 푸거는 푸거 궁에서 돈을 나누기로 은밀히 모의하고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머지 절반은 푸거가 갖기로 했다.
- 179~180쪽, <7장 종교개혁의 불씨>

베르게스는 카를이 무조건 푸거에게 돈을 빌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베르게스는 “마마, 푸거로 말하자면 폐하께서는 좋든 싫든 그와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선거후들은 푸거 이외에는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카를이 처음부터 푸거를 활용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폐하의 이익과 사업 발전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방에서 카를을 압박했다. 선거 관리 위원들은 카를에게 쓴 글에서 선거후들이 “푸거 이외에는 어떤 상인도 신뢰하지 않으며, 편지와 인장도 받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 220쪽, <9장 승리 그리고 패배>

카를이 스물다섯 살이 된 2월 24일, 프랑수아는 기병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으나 포병대와의 거리가 너무 벌어지고 말았다. 한 세기 전 샤를 6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겪었는데, 공작 셋, 백작 여덟, 자작 하나, 주교 하나가 영국의 큰 활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파비아 전투는 전사자가 적었지만 황제군이 프랑수아를 사로잡아 더 치명적이었다. 가권정치로 보자면 외통장군을 부른 셈이었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푸거의 자금이 아니라 페스카라의 용맹이었다. 하지만 푸거가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전투 자체를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 266쪽, <10장 자유의 바람>

최후의 농민군은 2만 3000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들은 켐프텐의 스위스 국경 근처에 집결했다. 트루흐제스는 잉골슈타트에서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쳐 그곳으로 갔다.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농민 지휘관 2명을 매수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 2명의 배신자는 농민들에게 늪 뒤의 안전지대에서 나와 평지에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트루흐제스는 수천 명의 농민을 도륙했다. 푸거는 과거의 수많은 투자와 마찬가지로 트루흐제스에 대한 투자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 287쪽, <11장 농민 전쟁>

푸거가 묘비명에서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면에서 으뜸이요”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순자산이다. 금액은 202만 플로린에 이르렀다. 푸거 이전의 사업가가 유럽 표준 통화로 100만 이상의 가치를 보유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디치 가문이나 (적어도) 그들 은행의 재무제표가 사실이더라도 그 금액은 5만 6000플로린을 넘지 않았다. 따라서 푸거야말로 최초의 백만장자라고 할 수 있다.
- 315~316쪽, <12장 북소리가 그치다>

히틀러는 대리석 흉상을 덮은 나치스 깃발을 관료들이 걷어 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레겐스부르크는 체코 국경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프라하의 봄 1년 전인 1967년 발할라는 처음이자 유일한 사업가를 맞이함으로써 주위 공산국가들을 조롱했다. 야코프 푸거는 묘비명에서 자신이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면에서 으뜸이었”으며, 불멸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500년 가까이 걸리기는 했지만 관료들이 푸거의 흉상을 제막해 그를 독일 신들의 전당에 모심으로써 푸거의 선언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 337쪽,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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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통의 강자인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통의 강자인 프랑스를 밀어내고 스페인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가톨릭교회는 대금업 금지를 철폐했으며,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복식 부기가 확산되고 무역로가 바뀌면서 한자동맹이 붕괴하고 경제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서유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와 영주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야코프 푸거가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야코프 푸거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격동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를 잘 담은 평전이자,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다.

세계사의 궤도를 바꿔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를 한 명만 꼽는다면 누구일까?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메디치?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음모론의 단골손님 로스차일드? 석유왕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록펠러? 이들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부자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축적한 부로도, 역사에 끼친 영향으로도 이들을 넘어서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야코프 푸거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차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한 사업가가 있었으니 바로 야코프 푸거다. 야코프 푸거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는 물론이고 영어권에서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 푸거의 삶과 시대를 충실하게 소개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출간 당시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뉴요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등 각종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아 부를 쌓다
야코프 푸거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만 해도 푸거가는 직물 매매를 주력으로 삼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럽 최고의 부자로 거듭난 발판 중 하나는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푸거는 종종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았는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막대한 이익을 낳는 권리를 알아봐야 했다. 무역이 활발해지고 전쟁이 빈발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가치가 높은 권리가 무엇인지 푸거는 일찌감치 꿰뚫어보았다. 바로 은과 구리 광산의 채굴권과 소유권이었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 최대의 은광 도시는 슈바츠였다. 당시 이 지역은 흥청망청한 생활로 유명한 지기스문트 대공이 통치했는데, 그는 베네치아에 물어야 하는 배상금 때문에 막대한 금액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기존에 진 빚을 제대로 갚지 않고 있었던 탓에 누구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푸거는 이 상황을 이용했다. 그는 가문의 재산과 주변 지인들의 자금까지 합쳐서 배상금에 상응하는 금액을 빌려주는 모험을 택했다. 그 대신 상환할 때까지 슈바츠의 모든 수입을 갖기로 하는 등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지기스문트가 이 조건들을 지키면 푸거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높은 지위를 이용해 무시해버리면 파산할 터였다. 지기스문트는 이후에도 돈을 빌리기 위해서 조건을 지켰고 그 결과 푸거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다른 은행가들이 불공정 거래라며 계약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지기스문트는 이미 푸거의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38~43쪽).

거대 자본을 장기 투자하여 신사업을 개척하다
지기스문트에게 돈을 빌려주어 막대한 은을 손에 쥐게 된 푸거는 막대한 여유 자금을 확보했다. 어딘가에 이 돈을 투자해야 했다. 가장 간단한 일은 기존에 하던 직물 매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직물 매매는 경쟁이 심했고 부가가치도 많지 않았다. 푸거가 눈을 돌린 곳은 구리였다. 구리는 16세기 전쟁의 핵심인 대포와 소총의 주원료였기에 독점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누구도 이 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그만한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일단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갔다. 침수 광산을 복구하고 구리를 채굴하여 가공하려면 각종 시설과 공장이 필요했고, 용광로와 광산을 잇는 도로도 놓아야 했다. 이런 공사는 모두 시간이 오래 걸리니 당연히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규모가 큰 구리 광산이 주로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이 빈번한 헝가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건이 악화되면 삽시간에 사업이 망할 수도 있었다.
푸거는 독일왕 막시밀리안의 재능과 야심을 높게 사 그에게 많은 대출을 해준 상태였다. 막시밀리안은 푸거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빈을 수중에 넣고 헝가리까지 침공해 들어갔다. 푸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잇는 아르놀트슈타인을 매입하여 당시 가장 큰 구리 가공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막시밀리안이 독일 상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자 헝가리로 넘어가 구리 광산을 매입했다.
여기서 푸거는 투르조 야노시와 동업을 선택한다. 투르조는 침수 광산 복구와 은과 구리를 분리하는 공정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푸거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혈통과 인맥이었다. 투르조는 오스트리아인이었지만 조상이 헝가리 출신이라 현지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헝가리 국왕과도 관계가 원만했다. 푸거는 투르조와 수익을 반씩 나누기로 합의하였고 혼맥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했다(51~56쪽).
막시밀리안에게 해준 대출, 투르조와의 동업, 과감한 장기 투자로 푸거는 누구도 생각하기 힘들었던 규모의 구리 사업을 성사시켰고 그것이 가져다 준 부는 그를 교황과 황제까지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로 거듭나게 했다.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다
15세기까지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교회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누가복음 6장 35절)’ 같은 성경 구절에 근거해 이자를 물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고리대금을 금지했다. 물론 교황, 추기경, 주교, 왕 모두가 돈을 빌렸고 빌린 것보다 많은 돈을 갚고 있었으니 고리대금 금지법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푸거 같은 사업가들이 주도권을 쥐는 새로운 경제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이 고리대금 금지에 의존했다.
푸거를 견제하려는 사람들은 예금주에게 5퍼센트의 이윤을 약속하는 아우크스부르크 계약을 문제 삼고 있었다. 푸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작부터 후원하던 신학자들을 동원했다. 제바스티안 일중은 대부자가 차입자처럼 파산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계약이 유효하다고 주장했고, 젊은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는 대부자가 차입자에게 일부러 피해를 주려고 하는 경우는 고리대금이지만 정당한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푸거는 신학자들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를 직접 움직였다. 푸거는 레오 10세에게 알 수 없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고 얼마 후 교황은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고리대금은 본성상 불모인 것에서 얻는 이익, 즉 노동이나 비용, 위험 없이 얻는 이익을 일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줄 때 노동, 비용, 위험 없이 이자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제 금융은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149~160쪽). 왜 레오 10세는 푸거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레오 10세가 이탈리아 굴지의 금융가인 메디치 출신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대가 급변해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푸거가 교황, 주교, 신학자, 귀족들을 상대로 했던 막대한 로비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면죄부 판매의 배후가 되어 종교개혁을 촉발하다
역사 시간에 종교개혁을 배우면서 항상 듣는 말이 있다. 교황청의 부패, 성직자의 탐욕, 교회의 세속화 등에 분노한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의 뒤에도 푸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14년 우리엘 폰 게밍겐이 사망하면서 마인츠 대주교 자리를 놓고 경쟁이 붙었다. 마인츠 대주교 자리는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선거후 중 의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고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많았다. 팔츠의 선거후, 막시밀리안, 호엔촐레른 가문의 알브레히트가 각자의 후보를 내세우며 맞붙었다. 알브레히트는 자기 자신이 입후보했는데 객관적인 조건에서는 가장 승산이 없었다.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고 대학 학위도 없었으며 이미 할버슈타트의 주교여서 규정상으로도 부적격이었다. 푸거는 그런 알브레히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대금업을 합법화한 교황 레오 10세는 돈을 많이 쓰는 교황이었다. 호화로운 대관식을 거행해 교황청 금고를 거덜 냈고, 그가 주최한 파티에서는 매춘부가 추기경을 모시고 하인들이 금 쟁반에 음식을 날랐다. 그런 그에게 알브레히트가 마인츠 대주교 자리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은 때맞춰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알브레히트는 푸거에게 돈을 빌려 레오 10세의 임명 승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의 반대로 대주교 자리의 가격은 더 치솟았고, 교황은 교황청 계좌가 아니라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기를 원했다. 알브레히트는 푸거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 결국 대주교 자리를 따냈다.
알브레히트는 이제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면죄부 판매였다. 교황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신의 지상 대리인이었기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라틴어로 써서 교황인을 찍은 편지 하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 ‘편지’가 훗날 면죄부라 불리게 되는 것인데 알브레히트가 이를 돈을 받고 파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다. 교황은 당연히 좋아했다. 그러나 면죄부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푸거에게 갚는 것은 신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다.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교황과 푸거는 푸거 궁이라 불리는 그의 집에서 돈을 나누기로 모의하여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머지 절반은 푸거가 갖기로 했다(175~180쪽). 그 뒤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루터는 격분하여 95개조 반박문을 썼다. 루터는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그가 면죄부의 원흉임은 몰랐으리라.

르네상스 시대 왕좌의 게임을 좌지우지하다
신성로마제국의 헌법인 금인칙서에 따르면 황제 자리는 반드시 선거를 치러야 했지만 그간에는 유명무실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황제가 지명하여 물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1세가 군사적 재능과 푸거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위상을 높이자 상황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가 경선에 참여했다. 스페인 왕인 카를이 신성로마황제가 되면 여러모로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페인 왕과 프랑스 왕이 선거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이는 황제 선거에 표를 행사하는 선거후들에게는 한몫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카를이 이 선거를 이기려면 충분한 선거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간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원한 푸거는 좋은 거래 대상이었지만 카를이 도움을 받을 곳은 그 외에도 많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은행가들도 있었고, 아우크스부르크 경쟁자인 벨저 가문도 있었다. 그러나 푸거는 이 선거를 그냥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지었던 푸거 궁과 성 안나 교회의 푸거 예배당을 활용했다.
선거가 본궤도의 오른 시점에 이탈리아 추기경인 아라곤의 루이지가 8개국 48개 도시를 둘러보는 대장정의 일환으로 아우크스부르크를 향하고 있었다. 푸거는 루이지가 여행 중에 보고 들은 것을 카를에게 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왕족처럼 대접했다. 푸거 궁을 보여주고 푸거 예배당으로 안내했으며 만찬도 열어주었다. 푸거의 생각은 적중했다. 루이지의 서기 베아티스는 푸거의 재력을 칭송했다. 푸거의 재력과 홍보 전략은 그를 선거후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은행가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선거후들이 신뢰하는 은행가가 푸거였기에 선거에서 이기려면 푸거를 잡아야 했다. 푸거는 전령을 파리로 보내 프랑수아와도 거래할 의사가 있음을 카를에게 보여주었다. 프랑수아가 푸거에서 손을 내밀자 푸거는 그 조건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흘렸다. 카를이 푸거를 잡으려면 프랑수아보다 좋은 조건을 걸어야 했다. 카를은 선거후들의 압력에게 이기지 못하고 결국 푸거에게 돈을 빌렸다. 그 대가로 푸거는 여러 가지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인쇄기 통제권이었다. 언론의 자유가 푸거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200~207쪽, 215~225쪽).

역사의 행로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다
1525년 독일에서는 유럽 역사상 최대의 대중 봉기가 발발했다. 수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훗날 독일 농민 전쟁으로 불리게 되며 엥겔스는 이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전초전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농민 전쟁의 계기를 푸거가 제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대중의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유럽을 휩쓰는 급속한 변화에 진저리가 난 노동자들은 푸거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운영한 광산은 근무 조건이 열악하기로 유명했고, 울리히 폰 후텐 같은 문필가들이 푸거를 공격하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악감정은 더욱 깊어졌다. 슈바르츠발트 성에서 시작된 전쟁은 점차 확산되어 푸거의 근거지인 아우크스부르크와 그의 영지인 바이센호른까지 위협했다.
페르디난트 대공과 게오르크 폰 트루흐제스가 농민군에 맞섰지만 그들에게는 용병을 고용할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전황이 불리했기에 누구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푸거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트루흐제스가 반란 세력을 물리치지 못하면 자신의 사업은 물론이고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하여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트루흐제스는 능력 있는 지휘관이었고, 고용한 용병과 탁월한 계략으로 농민들을 격파해 나갔다.
농민 지도자 중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토마스 뮌처였다. 대부분의 농민 지도자들이 지역 문제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해 농민들을 결집했다. 트루흐제스는 서부에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동부에서 봉기한 뮌처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푸거의 고객이자 친구인 브란덴부르크의 게오르크 공작이었다. 푸거의 지원을 받은 게오르크는 다른 두 공작과 합세해 뮐하우젠에서 뮌처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273~285쪽). 독일인들이 푸거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는지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서독과 동독 정부가 보여준 행동에서 알 수 있다. 동독이 5마르크 지폐에 토마스 뮌처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을 때 서독은 푸거의 우표를 발행했다. 푸거를 공산주의의 파도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인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종교와 정치를 압도한 자본가의 탄생
푸거가 역사에 남긴 것은 앞에서 소개한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다.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가히 오늘날 자본가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와 정치 권력의 위세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던 시절에도 돈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이든, 황제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동등한 인간일 뿐이었다.
푸거는 오직 부를 추구한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과거의 가치와 제도들을 무너뜨리고 기존에는 불가능한 사업을 성사시키는 혁신가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성공했고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린 재능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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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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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가의 탄생 서평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

    자본가의 탄생 서평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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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역사, 경제 분야의 책으로 야코프 푸거라는 자본가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야코프 푸거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기에 어떤 일을 한 인물인지도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과, 역사를 함께 알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이 책이 역사 속 첫 번째 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푸거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자본가의 원형이라는 인물인 야코프 푸거의 삶이 정말 다채로웠던 것 같다. 다양한 일들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더 놀랍기도 하다. 책의 부제목인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다는 부분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그 시기의 상황을 보았을 때 푸거라는 인물의 등장도 놀라운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들이 딱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스토리가 있어서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내용들도 재미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푸거라는 인물에 주목해서 풀어가는 이야기가 이전까지 없었다고 보았는데 그가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 아니라 자본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살아왔던 수많은 역사속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그는 자본가이지만 역사와도 연결되어서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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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와 함께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아가게 된다. 역사이기에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인데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도 왠지 흥미롭다. 그 시기의 푸거의 이야기와 그 주변의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었는지도 궁금해지기도 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기에 자본가의 토대가 되었던 인물은 있었겠지만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또한 첫 번째 자본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전까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야코프 푸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라는 푸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 ‘자본가의 탄생이었다.

     

     

     

     

     

     

     

     

     

     

     

     

     

     

     

     

  • 자본가의 탄생 | ck**09 | 2019.01.2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이 책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에게 채무 상환을 요구한 ‘간 큰 채권자’로 알려진 야코...

     

    이 책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에게 채무 상환을 요구한 간 큰 채권자로 알려진 야코프 푸거(1459~1525)의 일생에 대한 전기라고 하겠습니다솔직히 저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인물이었습니다이 책은 크게 열두 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각 장은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야코프 푸거의 삶을 한 편의 소설처럼 풀어내고 있습니다.

     

    야코프 푸거는 르네상스시대의 활기와 흥분이 넘치던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1459년 태어났습니다푸거 가문은 옷감을 사들여 프랑크푸르트와 쾰른알프스산맥 너머 베네치아 교역소에 팔아 부자가 됐는데비록 신분은 가장 낮은 평민 출신이었지만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성직자로 키우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푸거는 어릴 적부터 수완이 남달라서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에 은과 구리 광산 채굴권과 소유권을 손에 넣으면서 사업적 도약을 하였고유럽 최대 은광 도시 슈바츠의 지기스문트 대공에게 돈을 빌려준 뒤 이권을 손에 넣었습니다막대한 은을 손에 넣은 그는 전쟁 무기인 대포와 소총에 사용되는 구리 사업에 눈을 돌려 독일왕 막시밀리안에게 대출을 해주고구리 전문가 투르조와 동업한 끝에 그는 교황과 황제도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당대 교회는 고리대금을 금지하고 죄악시했지만푸거는 뇌물과 선물로 교황청 고위급 인사들의 환심을 사서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가가 됩니다그는 메디치가문 출신인 교황 레오 10세를 설득해서 이자 부과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여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하는 교황 칙령을 얻어 냅니다.

     

    15~16세기 유럽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사실상 세계사 전체에 지금까지도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군소 가문에 머물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발호와 부상면죄부 판매와 종교 개혁복식 부기 발전과 전파자본가와 노동가 간 본격적 갈등 구도로 인한 농민 전쟁의 발발 그리고 세계 경제 판도 변화 등 15~16세기 유럽을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던 과정에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사건의 이면엔 푸거가 있었습니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에게는 적이 많았다사업상 동료 이외에는 친구도 거의 없었는데 유일한 자식은 사생아였고 그의 제국을 물려받은 조카들은 그를 실망시켰으며 임종 당시 아내는 애인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그는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면에서 으뜸이오라고 자기 묘비명을 직접 쓰고 죽었습니다가문의 부는 100년 이상 이어졌지만 결국 서서히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평민 출신에서 일약 제국백작의 작위에 오르게 된 유럽 최고의 부자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승계도 좌지우지할 정도였던 야코프 푸거어떻게 보면 오늘날 흑막에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자본가의 원형이라 할 그의 삶을 통해서 당대 유럽 세계의 모습과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비교적 생소한 인물의 일대기를 재미나게 읽으면서 유럽의 역사와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게 해주는 책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 책 제목이 잘못됐다 | pw**jang | 2019.01.1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영문제목은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인데, 번역하면서 "자본가의 탄생"이 됐다....
     영문제목은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인데, 번역하면서 "자본가의 탄생"이 됐다. 번역 제목만 본 나는 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본계층"의 출연에 대한 분석서적 같은 것인 줄 알고 봤다. 그런데 영문제목이 맞다. "야곱 푸거의 삶"으로 번역했어야 했다.
     아마도 야곱 푸거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내 기준에서는) 거의 안 알려져 있다보니, 번역하면서 뭔가 쌈빡하게 제목을 의역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을 구매한 나에게는, 좋게 말하면 마케팅 전략에 넘어간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뭔가 맹추 같이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자본가의 탄생"이라는 제목과는 좀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야곱 푸거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돈을 쫓았고, 돈을 많이 가졌다. 모든 것이 상업적 근거에 의해 판단을 내렸으며, 정치가를 뛰어 넘는 자본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내용으로는, 그가 특별히 "자본계층"을 탄생시키는데 뭔가 두드러지는 것을 했다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99%는 "야곱 푸거의 일대기"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책 제목에 당했다.
  • 야코프 푸거, 세계사 근대의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며 초기 자본주의 토대를 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자본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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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프 푸거, 세계사 근대의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며 초기 자본주의 토대를 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자본가이다.

    『자본가의 탄생 』은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를 통해 자본가의 탄생이 유럽 국가, 사회, 종교 다양한 방면에서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었는지를 다각도에 비추어 설명해 주는 책이다.

     

    무엇이 야코프 푸거를 세계 최고의 자본가라는 명칭을 만들게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저자 그레그 스타인메츠는 먼저 정치가들과의 결탁에서 찾는다. 선거에서 1 낙선하는 것만으로 가정의 경제가 흔들릴 있을 만큼 정치에서 자본은 없어서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많은 정치인들은 매년 후원을 부탁하고 기업가들은 배고픈 정치가들에게 온갖 뇌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푸거는 당시의 정치가, 황제들의 마음을 예금을 지원해주며 황제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구리독점사업을 할당 받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흔히 줄을 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푸거는 나라 전쟁이 잦았던 당시

    황제 막시밀리안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자금이 없이 황제가 전쟁을 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할 있도록 상황을 유도해 나간다. 가장 자금줄의 역할을 하지만 왕과 로마 교황 등의 교묘한 긴장의 줄다리기 사이에서도 자신의 정보통을 이용하여 상황을 판단하였던 푸거는 정치가들과의 결탁이 그의 사업에 필수 요소라는 것을 일찍이 알았다.

     

    유럽 중세와 근대 역사에서 교회는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본가의 탄생』에서 저자는 종교계의 타락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하지만 교회의 타락을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푸거였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돈장사를 하는 종교계와 로마 교회에 사무소를 차려 돈장사를 하며 자신이 빌려 돈을 받기 위해 성직판매라는 방법을 뒤에서 유도한 이가 바로 푸거였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당연히 성직판매에 강하게 반발한 루터의 강한 비난과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역할을 했지만 교황의 마음을 사며 이를 정치적 역학관계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있었던 푸거는 실로 노련한 사업가라고 있다.

    만약 종교계가 투명하였다면, 자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청정구역이였다면 과연 푸거는 자신의 사업을 이토록 성공할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황제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규정하며 당시 국에 정보통을 파견하여 최신 정보를 입수하여 황제들의 자금 요청이 있을 때마다 빠른 상황판단을 있었던 푸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아는 사업가였다.

    개인의 일대기라기에는 푸거의 일생을 통해 저자는 책의 부제처럼 푸거가 자본으로 정치와 종교를 압도하였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원인으로 부유한 자들이 자신의 부를 위해 움직이는 속도가 사회가 그들을 억제하는 능력보다 빨랐음을 말한다.

     

     

    계약에서 푸거가 승승장구한 가지 요인을 있다.

    그것은 사회가 자본주의를 억제하는 능력보다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랐다는 사실이다.

    상업은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으나 과도한 질주를 제어할 민주 제도는 그보다 느리게 진화하고 있었으므로 푸거처럼 연줄이 탄탄한 사람은 다른 사정이 어떻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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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과연 푸거의 시대에만 해당할까? 이는 현재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1% 부를 가진 이들을 규제할 있는 법을 제정하고 그들로부터 보호해달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의 움직임은 너무 느리다. 가지의 법률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다툼과 권력싸움 속에 시간은 차일피일 밀려간다. 최근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던 " 김용군 군의 사망 사건" 방지하기 위한 법률마저도 힘든 난관 끝에 겨우 제정될 있었다. 외주화로 인한 고용 불안정화, 정리해고 삼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한 보호가 절실하지만 아직도 사회는 그들을 보호해 방안 하나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사업가들은 자신의 부를 위해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매번 주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의 힘으로 축적한 자신의 정보망을 통해 빠른 상황 판단을 푸거는 황제를 만나거나 교황을 만나고 이도 여의치 않으면 돈으로 매수하는 방법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의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벌인사들이 최유라에게 말을 선물하는 것처럼...

    푸거의 일대기는 결코 개인의 일생이 아니였다. 그는 교회의 종교 개혁의 주요 원인이였으며 정치계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사회적으로는 농민 반란을 주도했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달되어 왔는지 그의 일대기를 통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자본가의 탄생』을 통해 세계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처럼 쉽고 재미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처럼 돈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푸거의 생애와 현실이 반복되는 사태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계사와 함께 설명해 준다.

    야코프 푸거, 그는 하나의 움직이는 세계사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라는 명칭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책을 통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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