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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 A5
ISBN-10 : 8937472031
ISBN-13 : 9788937472039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양장] 중고
저자 파블로 네루다 | 역자 박병규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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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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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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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자서전 문학상 수상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의 삶을 기술한 회고록이다. 낭만적인 연애 시인에서 위대한 민중 시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 중에서도 자신이 특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 사건, 사랑, 그리고 창작과 비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네루다는 젊은 시절 연애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낭만적인 보헤미안 청년에서 민중시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세 번의 결혼, 외교관 생활과 여행, 도피와 정치 망명을 겪어야 했다. 이 책에서는 네루다라는 한 시인의 걸어온 인생을 전해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인물을 회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평온한 유년기로부터 시작하여 보헤미안 생활을 하던 청년 시절과 동남아시아에서 보낸 영사 시절을 거쳐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념적 갈등, 칠레의 1970년대 정치 상황 등을 그리고 있다. 또한 군데군데 시의 창작과 비평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가르시아 로르카, 피카소, 에렌부르크, 네루, 엘뤼아르, 카르트로, 체 게바라, 아옌데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단상을 풍부한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준다.

저자소개

저자 : 파블로 네루다
저자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과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인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 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시집으로 위의 첫 시집 외에 『지상의 거처ⅠㆍⅡㆍⅢ』 ,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에스트라바라기오』, 『충만한 힘』 등이 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1 시골 소년
칠레의 숲 / 유년기와 시 / 비의 예술 / 데뷔작 / 미망인 셋이 사는 집 / 밀짚 속에서 나눈 사랑

2 도시의 방랑자
자취집 / 수줍음 / 학생연맹 / 알베르토 로하스 히메네스 / 겨울의 기인들 / 큰 사업 / 초기 시집 / 말

3 세계의 길
발파라이소의 방랑자 / 구멍에 파견된 칠레 영사 / 몽파르나스 / 동양 여행 / 알바로

4 빛나는 고독
밀림의 이미지 / 인도 국민회의 / 와불 / 불행한 인간 가족 / 홀아비의 탱고 / 아편 / 실론 / 콜롬보 생활 / 싱가포르 / 바타비아

5 가슴속의 스페인
가르시아 로르카 / 미겔 에르난데스 / 잡지 《초록 말》 / 그라나다의 범죄 / 스페인을 다룬 책 / 전쟁과 파리 / 낸시 큐나드 / 반파시즘 작가 대회 / 가면과 전쟁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한 길을 선택했다 / 라파엘 알베르티 / 칠레의 나치 / 이슬라네그라 / 스페인 사람들을 데려오시오 / 사악한 인물 / 장군과 시인 / 위니펙 호 / 긴 여행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멕시코 화가들 / 과테말라의 나폴레옹, 우비코 / 권총 선집 / 왜 네루다인가 / 진주만 공격의 전야 / 연체동물학자 / 잡지 《아라우카니아》/ 마술과 신비

8 암담한 조국
마추픽추 / 초석 산지 / 곤살레스 비델라 / 「찢겨진 육신」/ 원시림의 길 / 안데스 산맥 / 산마르틴 데 로스 안데스 / 파리 여행과 여권 / 뿌리

9 망명의 시작과 끝
소련 방문 / 다시 찾은 인도 / 첫 중국 방문 / 『대장의 노래』/ 망명의 끝 / 어설픈 해양학

10 여행과 귀환
우리 집 양 / 1952년 8월부터 1957년 4월까지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투옥되다 / 시와 경찰 / 다시 찾은 실론 / 두 번째 중국 방문 / 수후미의 원숭이 / 아르메니아 / 포도주와 전쟁 / 민중이 되찾은 궁전들 / 우주 비행사들의 시대

11 시는 직업이다
시의 힘 / 시 / 언어와 함께 살기 / 비평가도 고통을 당해 보라 / 단시와 장시 / 독창성 / 병 속의 범선과 선수상 / 책과 조개껍데기 / 깨진 유리창 / 아내 마틸데 우르티아 / 별을 발명하는 사람 / 거장 엘뤼아르 / 피에르 르베르디 / 예지 보레츠사 / 솜이오 되르디 / 살바토레 콰지모도 / 바예호는 살아 있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비센테 우이도브로 / 문단의 적 / 비평과 자평 / 또 한 해가 시작된다 / 노벨 문학상 / 칠레 치코 / 9월의 깃발 /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치스 / 비토리오 코도빌라 / 스탈린 / 순박함의 교훈 / 피델 카스트로 / 쿠바인들의 편지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극단주의와 스파이 / 공산주의자들 / 시와 정치 / 대통령 후보 / 아옌데 선거 운동 / 파리 주재 대사관 / 귀국 / 에두아르도 프레이 / 라도미로 토미크 /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연보
옮긴이의 글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꿈과 사랑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 ―정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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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꿈과 사랑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 ―정현종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그녀에게 던질 용기는 없었다.” 어깨에 망토를 두르고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칠레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낭만적인 시인 네루다. 젊은 시인은 지독한 수줍음에 시달렸지만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었다.” 그 시절 산티아고의 로맨스를 담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사랑에 빠진 전 세계 연인들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과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죽음은 네루다의 시를 바꾸었다.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어려운 미학적 향연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네루다가 도달한 곳은 바로 민중이다. 네루다는 “미래의 기쁨, 내일의 평화, 정의로운 세계를 위해 노래하고 투쟁했다.” 체 게바라는 밤마다 동료 게릴라들에게 네루다의 시를 읽어 주었다.

시인, 외교관, 망명자,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로서 그의 양심은 평안했고 그의 지성은 불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네루다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시인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8장 암담한 조국)

1904년 7월 12일 칠레 출생. 아버지는 기찻길을 사랑하는 철도원이었고, 어머니는 얼굴을 알아보기도 전에 일찍 여의었다. 열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며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명으로 시를 발표했고(1920년부터 썼던 필명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결국 정식 이름이 된다.) 한동네 살았던 시인 가브리엘 미스트랄의 서재에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찾아 탐독했다. 젊은 날 지독한 수줍음에 시달렸지만 연애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낭만적인 보헤미안 청년에서 민중시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세 번의 결혼, 빈궁한 외교관 생활과 여행, 도피와 정치 망명을 겪어야 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는 이 파란만장한 삶 중에서도 특히 시인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 사건, 사랑 그리고 창작과 비평에 관한 견해를 담았다. 또 이와 더불어 가르시아 로르카, 피카소, 에렌부르크, 네루, 엘뤼아르, 카스트로, 체 게바라, 아옌데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단상을 풍부한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내고 있다.

열여덟 살에 사범대학교 진학을 위해(불문학 전공) 산티아고로 상경한 네루다는 아버지의 철도원 망토를 두르고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쓰면서 문학에 파묻혀 살았다. 네루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4년 시적 웅대함을 포기하고 소박한 표현과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추구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부터다. 이 시절, 네루다가 기억하는 친구들 중에는 항상 소를 끌고 다니며 동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농부 시인, 프로레슬링 선수에게 도전했다가 비참하게 당하고 나서 시집 헌사에 “나를 죽이라고 고함쳤던 4만 명의 개자식들에게”라고 쓴 엉뚱한 철학자, 해표 가죽으로 큰돈을 벌겠다며 네루다를 사업에 끌어들인 가짜 시인 들이 있다.

1927년 한 부자 친구가 네루다를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보내야 한다며 외교관으로 추천했지만, 네루다의 첫 발령지는 듣도 보도 못한 랑군(지금의 미얀마)이었다. 영사가 된 것을 축하하러 모인 친구들 앞에서 네루다는 조금 전에 들은 자신의 부임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이렇게 외교관이 된 네루다는 아시아에서 귀족들과 외교관 사회에 신물을 느끼고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갔다. 1935년 이때 느낀 고독을 담은 『지상의 거처』는 또 한 번 시인의 저력을 보이는 수작이다.

육감적인 연애 시인에서 위대한 민중 시인으로 거듭나다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르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4장 빛나는 고독)

1936년 7월 19일 밤, 네루다의 친구 로르카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나에게 스페인 내전은 한 시인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내 시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네루다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바치는 송시」를 썼고, 이 시에서 로르카의 병원을 파랗게 칠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청색이 제일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로르카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어떤 자리든 얼굴만 내밀어도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네루다의 청색에는 그런 가르시아 로르카의 마술적인 힘이 담겨 있다. 네루다는 공화군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스페인주재 칠레 영사 직에서 잘렸다. 로르카의 죽음은 긴 내전 기간 네루다가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고, 내전 중에 어렵게 인쇄한 시집 『가슴속의 스페인』은 이제 몇 권 안 남았는데, 그중 한 권이 워싱턴 국회도서관의 20세기 희귀본 진열장에 놓여 있다. 네루다에게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의 네루다는 훨씬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더 이상 우울한 시는 쓸 수 없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우수에 찬 주관주의나 『지상의 거처』에 담긴 고통스러운 애상은 막을 내렸다. 나중에 칠레 정권이 진보적인 인민전선 정부로 바뀐 후에 새롭게 이민국 관리 담당 영사가 된 네루다는 공무원들의 온갖 훼방을 물리치고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들을 칠레로 망명시켜 주는 역사적인 일을 해낸다.

네루다는 특히 스페인 시인 라파엘 알베르티를 위대한 장인, 진정한 시인으로 여긴다. 알베르티는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다.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갖지 못한 시는 소리야 나겠지만 노래하지는 못한다. 알베르티 시는 항상 노래한다.” 네루다는 이제 휴머니즘으로 돌아선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는 이제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쓰기 시작한다.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의 시를 요동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 (5장 가슴속의 스페인)

1943년 스무 살 연상의 델리아 델 카릴과 재혼하는데, 그녀는 네루다의 정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탈리아 소설가 쿠르치오 말라파르테는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칠레 시인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아니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처럼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이 1945년 3월 네루다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했고, 네루다는 7월에 공산당에 가입했다.

당시 칠레 노동자들은 달나라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메마른 바위산에서 하얀 비료(초석)와 붉은 광물(구리)을 캐며 열악한 생활을 했다. 항상 더러운 물과 기름이 고여 있는 작업장 바닥에 고작 널빤지 하나 깔기 위해 노동자들은 8년 동안 열다섯 번 파업하고 일곱 명이 죽어 나가야 할 정도로 칠레의 노동 환경은 비참했다. 네루다는 칠레의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부터 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들의 궁벽한 삶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네루다는 노동자의 편에 서기 위해 공산주의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네루다에게 공산주의는 “시와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인본주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집회 때마다 청중은 네루다에게 시 낭송을 요청했고 그들이 네루다의 시를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간에 그들의 경청하는 자세만은 참으로 진지했다.

광부들의 얼굴은 사막을 닮았다. 피부는 햇볕에 검게 그을렸고, 검고 강렬한 눈동자에는 고독과 소외감이 서려 있었다. 사막에서 산악 지대로 올라가고, 가난한 집을 방문하고, 등골이 휘어지게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궁벽한 사람들의 희원을 안다고 해서 내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시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시 덕분에 고단한 삶을 사는 동포들과 한데 어울릴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둘도 없는 형제처럼 받아 주었다. (8장 암담한 조국)

네루다가 지원했던 비델라 대통령이 본색을 드러내고 독재자로 변절하자, 네루다는 도피와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평화의 시인이 살아갔던 세상은 너무나 위험천만했다. 과테말라에서는 나폴레옹을 꿈꾸던 독재자 우비코의 경찰총장이 겨누는 총구 앞에서 시 낭독회를 감행했다.

내 시와 경찰 사이의 거듭되는 대결에도 불구하고, 앞서 얘기했듯이 내가 경험한 황당한 일이나 이제는 얘기조차 못 하게 된 사람들이 겪은 수많은 고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류애라는 숭고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이 폭탄이 터지면 지구상에는 살아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내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이 위기의 순간에도, 이 전멸의 위협 속에서도 사태를 직시하면 서광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 어떤 시련도 이런 희망을 꺾을 수 없다. (10장 여행과 귀환)

“민중시인… 이것이 내가 받은 진짜 상이다.” ―파블로 네루다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4장 빛나는 고독)

도피와 망명 생활은 힘들었지만 이때 위대한 서사시 『모두의 노래』(1950)를 탈고한다. 1952년 칠레로 돌아와 마틸데 우루티아와 세 번째로 결혼하고, 다음해 레닌 평화상(스탈린 평화상)을 받는다. 네루다는 많은 상을 받았지만, 그에게 문학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었다. 네루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은 따로 있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노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8장 암담한 조국)

네루다는 결국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네루다가 이 회고록을 집필하기 시작한 때는 197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난 후다. 결국 다음 해, 네루다가 지지했던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10여 일 후인 9월 23일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루다가 거처했던 ‘이슬라네그라’, 산티아고의 ‘차스코나’, 발파라이소의 ‘세바스티아나’는 네그라가 수집한 독특한 선수상(船首像)과 조개껍데기들로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1963년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라디오에서는 내 이름이 스톡홀름에서 오르내리고 있으며,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라고 떠들어 댔다. 그래서 마틸데와 나는 방어 작전 3번에 돌입했다. 식량과 붉은 포도주를 여유 있게 비축하고, 이슬라 네그라에 있는 우리 집 대문에 큼직한 자물쇠를 채웠다. 언론의 포위 공격이 장기화될 때를 대비해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도 장만했다. (11장 시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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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1월 어느 오후, 비록 노트북 화면과 전화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지만, 여느 때와 다...
     2008년 11월 어느 오후, 비록 노트북 화면과 전화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세계와 소통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박병규 선생님께서 보내신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며칠 전 元祖 Tu y Yo, Nosotros 게시판에 글을 남겼는데, 황송하게도 선생님께서 답을 주신 것이다.

    내용인즉슨 책을 하나 부쳐주시겠다는 것. 12월에 안암동에서 뵈올 때 받겠다고 말씀드렸음데도 한사코 회사 주소를 물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두둥~ 외근 나갔다 온 사이 사무실 후배가 받아다 놓은 택배상자에 선생님의 존함이 씌여있었다.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황망한 마음에 급하게 상자를 열어보니, 나를 맞이하는 책은 바로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이었다. 그리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라는 원제 밑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박병규 옮김'이라는 문구......

    학창시절 강의시간에 간간히 듣던 책 제목이었는데, 선생님께서 고된 번역 작업을 거쳐서 얻어내신 산물을 직접 선사해주신 것이다. 물론 아직 네루다만큼 오랜 세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장돌뱅이 생활을 하는 제자에게 은사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선물이기에 전쟁터 같이 시끄럽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잠시나마 문학과 예술의 아늑한 품을 느낄 수 있었다.

    맨 뒤쪽의 연보를 제외하고도 500여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인지라 완독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때마침 일거리가 많아지는 시기여서 지난 1월말이 되어서야 겨우 책의 맨 끝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마음먹기를 몇 번... 이제서야 겨우 서평 몇 자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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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중남미의 民衆詩人'이라는 수식이 그를 대표하는 문구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의 死後 수십 년이 되어서야 그를 연구하는 문학도들에게는 『마추픽추 산정』이 수록된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를 비롯하여 『지상의 거처 Residencia en la Tierra』,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Veinte peo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등의 시를 쓴 시인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서 각국의 여러 시인들과 교류했음은 물론 칠레의 외교관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또한 동시에 평화를 추구하다가 고국의 정치적 핍박을 피해 세계를 돌아다녔던 망명자로서 세계를 품 안에 안았던 진정한 '世界人'이라 하겠다.

    다소 클리셰 Cliche한 서두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의 원제인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Confieso que he vivido'라는 문구로 정리된 네루다의 생애를 설명하기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눈에 거슬린다면 지금 당장 마우스 휠을 바로 맨 밑으로 내려 拙筆을 건너뛰어도 좋다. 다만 정식으로 등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마추어 문학도가 象牙塔 안에서 매끈한 글을 써내려가는 이른바 프로페셔널 학자들에게 느끼는 열등감이랄까, 뭐 그러한 감정을 스스로 해소코자 하는 낭비적인 발악 혹은 발악적인 낭비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요컨대, 네 마음대로 하시라.

    가뜩이나 도발적으로 시작했는데, 또 한 번 위대한 시인에게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칠순을 넘기고 눈을 감은 칠레 시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한 흔적에서 이제 막 삼십 대 중반의 문턱에 들어선 한국 청년은 자신의 삶의 궤적에서 永眠에 든 시인과 상통하는 면이 무척이나 많다고 여기게 됐다. 비록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했다'는 그의 삶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아니하나, 철저히 개인적인 편견으로는 그 틀에 조금이나마 끼워맞출 수 있는 구석을 상당히 많이 발견했다.

    처음으로 시를 쓴 기억을 더듬어보며 시인이 기억해낸 말은 "어디서 베꼈니?"(Pablo Neruda, 박병규 역,『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민음사: 2008, p.36)란다. 이어서 그는 그 당황스럽던 기억을 "그때 처음으로 무책임한 문학 비평의 쓴맛을 보았다"(앞의 책 p.36)라는 글귀로 간단하게 정리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군말없이 아버지를 따라 아침 일찍 동네 뒷산을 오르던 이 착한 소년은, 유난히 일찍 산에 오른 어느 날 아침 여태껏 보아왔던 중에 가장 아름다운 黎明을 보고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자 적었다"(앞의 책, p.36). 마침 그날 국어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시쓰기 수업을 진행하셨고, 소년은 문학적 흥분에 손을 부르르 떨며 단숨에 시를 써내려갔다. 一筆揮之의 소년시인은 자랑스럽게 생애 첫 시를 낭송했다. 불행하게도 최초의 비평가는 "음... 어디서 보고 쓴 거니? 정말 네가 쓴 것 맞니?"라는 한 마디로 소년시인의 詩心을 아주 간단하게 뭉개주었다.

    다 죽어가는 백조를 살려내어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려던 소년 파블로 네루다의 일화도 유년시절에서 또다른 기억을 끄집어내게 한다. 동네상가에서 십자매니 잉꼬니 새를 사다 키우는 것이 '중산층 가정의 표상'이라도 되는 것마냥 80년대 초반에는 새소리가 나는 집이 참 많았다. 우리 집 역시 '유행에 뒤질세라' 새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잉꼬 부부 한 쌍을 안아들고 돌아오던 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주 새끼를 까는 재미로는 십자매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치는 가게 주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 채 우리 가족은 잉꼬 한 쌍을 골랐다. 노란 바탕의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배 부분은 연두빛깔을 뽐내는 수컷과 온통 노란 깃털임에도 볼에는 살짝 흰 빛이 도는 암컷은 새장 속에 얌전히 앉아 '그들의 집'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는 길을 골똘히 지켜보고 있었다.

    잉꼬 부부가 우리집에서 지낸 기간은 3년이 넘었던 것 같다. 금슬 좋은 부부를 '잉꼬 부부'라 일컫는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이 녀석들은 매일같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 가족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물론 걱정거리는 있었다. 잉꼬가 아무리 새끼를 잘 안 낳는다 해도 보통 1년이 지나면 소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 녀석들은 2년이 넘도록 새끼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컷이 둥지 밖으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워낙 조류의 생태에 무지했던지라 그러한 杜門不出이 암컷이 부화한 알을 품고 있는 것인 줄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둥지 안에서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또 한 마리의 잉꼬 소리가 들리게 될 때까지는...... 하지만 잉꼬의 생태에 대한 무지는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요즘처럼 네이버 지식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앞둔 86년 12월 20일 밤, 아무 것도 모르던 우리 가족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을 맞게 되었다. 거실에 걸려있는 새장에서 유난히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나와보니 한참 동안 둥지가 흔들리다가 암컷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암컷이 피를 흘리며 늘어져있는 와중에 수컷 애비는 둥지 안으로 들어가 푸드덕대며 둥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하얀 면수건 위에 암컷을 올려놓고 지혈을 한다, 약을 바른다, 수선을 떨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넘었다. 하지만 하염없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컷 잉꼬는 새벽녘이 되자 가늘게 몸을 떨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날 아침 오리온 고래밥 상자에 죽은 암컷 잉꼬를 넣어 아파트 뒤편 잔디밭 눈을 헤쳐내고 땅에 묻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꼴도 보기 싫어서 돈 안 받고 그냥 주겠다며 남아있는 수컷 잉꼬 두 마리, 애비와 새끼를 새 파는 가게에 주고 오며, 가슴 치며 후회할 얘기를 들었다. 잉꼬가 수컷 새끼를 낳으면 새끼가 성년이 되기 전에 따로 새장을 만들어서 분가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컷 잉꼬 새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심해서 제 어미를 차지하기 위해서 애비와 싸우다가 어미를 쪼아 죽이는 경우가 빈번하단다. 때늦은 깨달음과 밀려드는 회한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은 더욱 비참했다. 그 후로 두 번 다시는 새를 키우지 않았다.

    "너무 조용하게 있었다. 나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백조를 안았다. 그 순간 리본이 풀어지는 느낌, 검은색 팔이 내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백조의 긴 목이 축 처진 것이다. 그때 백조는 죽을 때 노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앞의 책, p.34)

    서평이 아니라, 서평을 빙자한 회상록이 되어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또한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100배 즐기기'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시인들의 자서전이 원래 그런 편인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네루다는 통상적인 연대기적 회고를 남기지 않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특정 주제로 장을 열면, 독자가 책을 읽던 와중에 네루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로 참으로 두서 없어보이는 형식을 취했다. 떠오르는대로 옛 기억들을 가져와서 무작정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자유연상이 도를 넘을 지경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자칫 어지러워 보이는 와중에도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관통하여 흐르는 주제는 분명하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민중시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니 '민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네루다의 정치적 노선과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그의 인간적 약점을 간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는 '민중'이 아닌 '인간'을 사랑했다고 정리하고자 한다. 실제로 그의 청년 시절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치기어린 연애담과 다소 부르주아지적인 삶의 궤적-물론 투사나 지사적인 면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을 대할 때는 나 역시 헷갈리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네루다는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느낀 소회와 함께 그가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바예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비센테 우이도브로 등 저명한 문인들에 대한 추억과 비평부터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늙은 탐험가와 바르톨로메라는 괴짜의 이야기까지 네루다는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특히 그는 잠시 스쳐갔을 뿐인 사람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도 바로 엊그제 겪었던 일처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다못해 젊은 혈기로 끈적한 사랑을 나누었던 이름 모를 여인네에 대해서까지 세세한 기억을 풀어낸다.

    아마도 네루다는 살면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 대해 각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 물론 그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마카레나 Macarena」(스페인 출신의 남성 듀오 '로스 델리오 Los del Rio'가 1995년 발표한 곡. 60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고 14주 동안 정상을 차지했음. 특히 곡에 맞추어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마카레나춤은 1997년까지 2년여 동안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끎)류의 농담처럼 별 의미없이 쉽게 흘러간다. 하지만 네루다는 그 수많은 기억의 편린에 대해 하나하나 애정어린 시선을 놓지 않음으로써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을 의미있는 존재로 승화시킨다.

    과연 우리는 '만남'과 '인연'에 대해 얼마나 의미를 두는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을, 너무나 쉽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만남'과 '인연'에 가치를 두지 않게 된 것 같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한두 시간 수다 상대가 되어준 케이블 건너 저편의 사람은 단지 그 순간에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아니, 그 시간동안조차 의미가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끄러운 음악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클럽에서 만난 술취한 남녀는 그 순간의 欲精에 이끌려 이른바 '부비부비'를 하고나면 그뿐이다.

    하기야 피천득이 수필집 『인연 因緣』에서 담담하게 들려주었던 것처럼 열일곱 살에 동경에서 처음 만나 수십 년 동안 단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있는 아사코(朝子)마냥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란 무척 드문 일이다. 어쩌면 소소한 만남에조차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서로가 서로를 철저히 타자화하여 소외시키는 현대사회에서 감정의 낭비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의 짧은 스침에조차 의미를 부여한 네루다는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진실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아끼는 일이란 어쩌면 바로 그 감정의 소모일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네루다가 진정으로 '민중시인'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인간을 사랑했던 데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앞의 책, p.83)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대한 서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지, 네루다는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앞의 책, p.127)는 충고를 덧붙인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밀림에서 고장난 버스에 탄 채로 의심과 두려움에 떨던 그를 위해 악사와 무용수를 데려온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을 떨치지 못한 채 네루다는 매우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2008년 10월 인도 출장 중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뭄바이(Mumbai)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청사 밖으로 나온 시각은 자정.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주(Gujarat) 칸들라(Kandla)로 가는 다음 비행편은 아침 6시 30분이었다. 참으로 시간이 많이 비었고, 게다가 칸들라로 가는 비행편은 차로 30여분은 가야하는 국내선 공항에 따로 있었다. 문제는 나를 픽업할 차량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국제공항청사 출구 앞에는 택시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여러 차례 인도에 다녀왔지만, 언제나 지사에서 데리러 온 차량이나 호텔에서 보낸 차량에만 탑승했을 뿐이었다. 뭐, 원체 겁이 별로 없고 모험심도 강해서 한 번쯤 택시를 탈 만도 했지만, 정장 차림의 동양인-특히 한국인, 일본인-이 함부로 택시를 탔다가 봉변을 당한 사례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 오밤중에 선뜻 택시를 타기가 꺼려졌다. 또 솔직한 얘기로, 뭄바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그 오래된 피아트(Piat) 중고차량 택시는 나한테 돈을 주겠다고 해도 타기 싫다.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지사에서 차량이 올 때까지 공항 청사 앞에서 무작정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10월이면 아직도 뭄바이는 뜨거운 열대야라서 정장 상의를 벗어서 카트에 걸어놓았는데도 땀이 그치질 않았다. 그 때였다. 지나가던 청년 둘이 말을 걸어왔다. 길을 안내해주겠단다.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다짜고짜 내 카트를 밀고 가기 시작했다. 난리가 나도 이만저만한 난리가 난 것이 아니었다. '이국 땅 캄캄한 어둠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생겼다'(앞의 책, p.126)고 생각하며 캄보디아 밀림에서 벌벌 떨던 네루다의 심정이 딱 그 때 내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이십 분 후, 나는 그들과 레종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날이 밝을 때까지 뭄바이 국제공항 앞에서 담소를 꽃피웠다. 참고로 인도식 영어 리스닝 훈련은 대단히 고통스럽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튼 혼자 있었다면 힘들고 외로웠을 시간을 그들 덕분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고, 덤으로 그들이 수배해온 좋은 택시를 얻어타고 국내선 공항까지 갈 수 있었다.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앞의 책, p.127).

    네루다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각자의 사상과 노선에 따라 평가가 다를 터이므로 특정한 정파적인 시각에서의 분석은 삼가려 한다. 다만 스페인내전 와중에 시인 로르카의 죽음을 두고 공화파 진영에서 그가 느낀 분노만큼은 조금 길더라도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비록 스페인내전이라는 특정 사건을 거론했더라도 통시성이 떨어진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긴 내전 기간에 내가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스페인은 항상 검투사들의 경기장이었고, 무수한 피가 뿌려진 땅이었다. 잔혹하게 희생물을 죽이는 장면을 우아하고 화려하게 포장한 투우장에서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어둠과 빛 사이의 필사적인 투쟁이 반복되고 있다. // 프라이 루이스 데 레온은 종교재판을 받고 투옥되었고, 케베도는 지하 감방에서 고초를 당했으며, 콜럼버스는 발목에 쇠고랑을 차야만 했다.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납골당을 보라. 현재의 '전몰자 계곡'도 그렇지만, 백만 명이 죽고 무수한 사람들이 투옥되었는데도 십자가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앞의 책, p.190).

    실제로 네루다가 비판했던 것처럼 전쟁과 폭력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무참하게 짓밟는 행위임에도 여전히 오늘날까지 반복이 되고 있다. 그리고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떨어지는 바로 그 실제적인 전쟁 말고도, 사상과 노선 따위로 인해 벌어지는 정쟁(政箏)으로 인해 네루다 자신도 천신만고 끝에 고국을 탈출하여 오랜 세월 이국을 떠도는 망명자로 살아야만 했다.

    책의 말미에서 네루다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칠레 대통령 당선을 그의 조국 칠레의 승리라며 무척 들떠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한다. 실제로 정치학사에서 칠레 아옌데 정부의 등장은 세계 역사에서 최초로 평화적 선거를 통한 공산주의 정권으로의 교체라는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네루다는 이상하리만치 냉철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서술은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용감한 우리 공군이 폭격"(앞의 책, .515)한 아옌데 관저에 대한 마지막 울분을 터뜨리기 위함일는지 모르겠다.

    "불멸의 국민적 가치를 지니는 아옌데 정부의 정책과 업적은 칠레 해방을 원치 않는 적들의 분노를 샀으며, 그 비극적인 상징이 바로 대통령 궁 폭격으로 나타났다. 나치는 무방비 상태의 스페인, 영국, 러시아 도시를 전격적으로 공습했는데, 이제 칠레에서도 그런 범죄 행위가 일어나고 말았다. 칠레의 공군 조종사들은 180년 동안 민선 정부의 보금자리였던 대통령 궁에 급강하 공격을 퍼부었다"(앞의 책, p.516).

    네루다의 분노를 대하며 지금은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양반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일까? '미네르바'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혼쭐이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겁도 없이 정치성 발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하는 것이 스스로 영 마뜩치는 않다. 그러나 '봉하대군'을 옹호하려는 뜻은 없으니 컨텍스트(Context)를 잘 파악하기 바란다.

    민중의 폭넓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재력을 갖춘 소수 과두계급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에 대해 아옌데 정부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용감한 칠레공군'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목표로 포탄을 투하하러 날아오는 와중에도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 궁 옥상에서 기관총을 들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 민중의 손으로 선출된 민중의 대통령은, 그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싸워달라는 민중의 뜻을 끝까지 지켜준 것이다. 네루다는 그 점을 높이 샀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긴 시신"(앞의 책, p.517)과 끝까지 동행한 미망인의 비극에 대해 지극히 슬퍼하면서도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앞의 책, p.517)라는 처절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반면 한때 '우리의' 대통령이라 여겼던 '봉하대군'은 이른바 '의회 쿠데타'를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정면돌파했음에도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의 재임기간 통치 행위에 대해서는 세월이 좀더 흐룬 후 냉철하게 功過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칠레의 아옌데'와 달리 '한국의 노무현'은 결정적 기회를 만들어놓고도 후일의 안위를 위하여 그가 타도하고자 했던 바로 그 세력과 타협을 자청, 스스로 그 기회를 말살해버리고 말았다.

    잘 나가다 결국은 삼천포로 빠지면서 글을 맺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네루다 못지않게 정치인으로서의 네루다 역시 중요한 위상을 띤다고 여기므로 굳이 글을 수정코자 하지는 않으련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시인으로서의 네루다에 대해 '무릎팍 도사'만큼도 파헤치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랄까? 그러나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의 원제를 부족하게나마 나름의 깜냥으로 풀어보고자 한 데서 의의를 찾고 싶다.

    다만 파블로 네루다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라며 추켜세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의 찬사에 대해서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는, 아마추어 문학도의 '극장의 우상'을 반성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아울러, 바로 그 '극장의 우상'이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 Ernesto Che Guevra는 밤마다 "네루다를 읽었다"고 하는 진술을 출판사의 상술로 치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아비판을 해본다. 그로 인해 나온 질문이 바로 "정말로 체 게바라는 밤마다 네루다를 읽었을까요?"임을 마지막으로 밝혀둔다.


    2009.02.08.(일). 05:39 안준섭
  • 몇년도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두환이 국회청문회에 서기 전 날이었다. TV에서 특집영화를 하나 상영했는데 그 제목이 "산...

    몇년도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두환이 국회청문회에 서기 전 날이었다. TV에서 특집영화를 하나 상영했는데 그 제목이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 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루한 순정영화 정도로 보이는 제목에 피식 웃으며 이리저리 돌려대던 채널을 고정하게 된 건 이 영화가 뜻밖에도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구데타로 몰락해버린 칠레 아옌데 정권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영화에서 본 칠레의 모습. 피흘리는 지식인, 민중의 모습을 보면서 갖게된 칠레에 대한 관심의 끝에 네루다라는 이름을 알게되었다. 그리고는 잊었다. 녹녹치 않은 생존의 현실이 지구의 절반을 돌아가야 하는 곳. 물이 우리와는 반대로 배수된다는 그 꿈처럼 아득한 곳의 시인을 기억하고 있게끔 허락하지는 않은 탓이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골라든건 그 시절에 대한 향수였다. 엄혹한 시절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 때 그자리에서 내가 가졌던 부푼 희망에 대한 향수였다. 그의 시 한 편 읽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름 몇 자 기억하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싸구려 허위의식에 묻혀있는 내가 지난 시절의 향수가 아니면 굳이 이 두꺼운 책을 끼고 앉아 있을 일은 없으리라. 

     

    자서전의 해악 - 스스로에 대한 변명, 타인에 대한 비난, 상황의 왜곡 등등 - 을 익히 가감하고서라도 난 20대에 이 책을 읽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이렇게 늦게 번역되어 나온 것을 원망한다. 기억을 구술한 것이기에 때론 연보와 맞지 않고, 스스로의 부끄러운 행위도 시인의 치기어림 또는 열정으로 미화하는 그 기억들 너머에서 시인의 세상에 대한 열정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실천의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신면과 실천이 한 몸이 되어 서로 배신하지 않는 거장의 뜨거움이 전해진다. 칠레 민중에 대한 한 없는 신뢰와 경의가 느껴진다. 그저 단순히 자기가 여기에서 이렇게 살았음을 그리고 아주 잠깐씩 이렇게 생각했음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절반을 채 읽기도 전해 그가 머문 곳, 그가 지나다닌 행로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거장은 역시 다르다.

     

    물론 미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숨가쁘게 지나온 삶을 반추하다 뒤로 가면서 드러나는 시인으로서의 삶. 비평가에 대한 미움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호흡이 잦아든다. 시인도 아니고 전문적인 글쓰기꾼도 아닌 나에게 이 부분의 느린 호흡은 그 문장이 아무리 유려하더라도 조금은 지루했다. 물론 전문적인 아니 전문적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루하기 보다는 오히려 행복한 몇 페이지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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