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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규격外
ISBN-10 : 8932029083
ISBN-13 : 9788932029085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고
저자 허수경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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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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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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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이다.

저자소개

목차

1부
농담 한 송이
그 그림 속에서
이 가을의 무늬
이국의 호텔
베낀
포도나무를 태우며
네 잠의 눈썹
병풍

2부
딸기
레몬
포도
수박
자두
오렌지
호두
오이
포도메기
목련
라일락

3부
동백 여관
연필 한 자루
우연한 감염
문득,
너무 일찍 온 저녁
죽음의 관광객
내 손을 잡아줄래요?
나비그늘 라디오
온몸 도장
아침식사 됩니다
돌이킬 수 없었다
아사(餓死)
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게
우산을 만지작거리며

4부
수육 한 점
사진 속의 달
발이 부은 가을 저녁
방향
우리 브레멘으로 가는 거야
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매캐함 자욱함
운수 좋은 여름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유령들
빙하기의 역
가을 저녁과 밤 사이
너, 없이 희망과 함께
지구는 고아원
푸른 들판에서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
겨울 병원

5부

엄마와 나의 간격
네 말 속
지하철 입구에서
가짓빛 추억, 고아
설탕길
카프카 날씨 1
언제나 그러했듯 잠 속에서
카프카 날씨 2
카프카 날씨 3
밥빛
나는 춤추는 중

해설 |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 이광호(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 모든 시간의 ‘사이’를 둘러싼 상상력과 질문들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출판사서평 더 보기]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 모든 시간의 ‘사이’를 둘러싼 상상력과 질문들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를 출간했다.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물론 보다 아득한 세월이 시인과 함께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어느덧 시력 30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1992년에 독일로 건너가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햇수로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대부분 돌아오지 않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무참한 예감 속에, 대체 “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 다녀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눈」) 스스로 묻고 다녔던 이국의 거리와 광장과 역에서 씌어진 시들이다.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몸은커녕 삶도 추상화가 아니어서”(「오렌지」) 쓰리고 아린 고독의 시간들. 시집을 열면, 차마 “그냥, 세월이라”(「네 잠의 눈썹」) 하고 지나치기엔, 묻고 싶은 말들이 넘쳐 연신 쌓여가는 그 시간의 내력 속에 한 발 한 발 들이게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부분

“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시인의 말)은 어쩌면 내 삶에서조차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으로 우리 모두의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동(空洞)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한때 생생했던 그 모든 생과 기억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남아 있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내기란 영영 불가능할 터. 시인은 “토해놓은 사랑과 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 생에 대한 감각을 다시 시간의 감각으로 옮겨놓는다. 삶도, 사랑도, 기억도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지독한 봄날의 일/그리고 오래된 일”(「오래된 일」)이라고. 남은 우리는 그 ‘오래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름 불러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비추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눈앞에 타들어가는 포도나무를 바라보며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과 뼈아픈 시간에 대한 쓸쓸한 질문을 보태는 일이 ‘장례’와 ‘애도’ 그리고 ‘어루만짐’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전문

“잘 가, 라고 말하는 순간”
깊숙한 고요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영혼의 이름들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은 그의 실존적 몸과 영혼의 기억을 한껏 확장시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를 한데 불러 모은다. 그렇게 ‘내 속의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 계집아이와 고아’, 다시 ‘내 안의 노인과 신생아와 태아’의 중얼거림이 “고요한 연”처럼 이어지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며 “기별의 기척”을 건네고 헤어진다.(「빙하기의 역」)
시간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여러 겹의 계절을 소환하는 일도 허수경의 시에서는 독특한 이름과 무늬를 낳는다. 밤과 새벽의 틈새에서 열매 맺은 모든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딸기」), 시인은 ‘아주 영영 익어버린 환한 봄빛’을,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가는’ 지난여름의 꿈을(「레몬」),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으로 눈치채는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을(「자두」), 그리고 ‘그대 영혼 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한 욕망과 가을의 살빛’(「호두」)을 동시에 꿈꾼다.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앞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이 가을의 무늬」 전문

“아무도 그 심장을 거두지 않던 오후여”
삶의 지반을 뒤흔드는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한편, 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계속해서 ‘무엇이었을까’ 묻고, 살아남은 우리만이라도 쉬지 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넬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남자들은 울면서 밤하늘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릴 때 청년이 아직 가슴에 피를 흘리며 우주의 난민이 되어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죽음의 관광객」 부분

이 거리 처음 본다
이 건물들 본 적 없다
이 사람들 모른다

그들은 내가 여기에서 이십여 년째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 같다

국경을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
강도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천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을
내가 어제 폭파했다고 했다
그 수도원에는 이 지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언들을 모은 자료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말들을 함께 폭파한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집에만 있었는데!
천년을 살아도 낯선 내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
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다
- 「카프카 날씨 1」 부분

얼굴에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총 쏘기를 멈추지 않던 노인이여
붉은 양귀비꽃이 뒤덮인 드넓은 들판이여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터지던 지뢰여
종으로 팔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던 소녀들이여

이 이상하게 빠른
이 가벼워서 낯설디낯선 시간이여
-「카프카 날씨 2」 부분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일은, 남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서로를 베끼는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이 시작된다면, 그 상상력조차 이런 질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
위로는 불가능하지만, 불가능에 대한 노래는 다른 시간의 잠재성에 가닿는다. 시는 그 시간이 다시 올 거라고,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혹은 오래전 그 순간이 영원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저 뼈아픈 불가능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대면하게 한다. 영원성은 미리 주어져 있지 않으며, 시간을 지배하는 단일한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오래된 시간의 영혼은 시적인 이행의 순간 탄생한다. 또 다른 시적인 시간이 도래하는 그 순간,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애도는 시간의 고독을 둘러싼 미래가 된다.”
―이광호(문학평론가)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부분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며 이곳까지 왔네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꾼 꿈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낯선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얼굴에 켜지는 가로등을 다시 꺼내보는 저녁 무렵

슬픔이라는 조금은 슬픈 단어는 호텔 방 서랍 안 성경 밑에 숨겨둔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 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이국의 호텔」 부분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나는 춤추는 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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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인생이라는 기차길 위에 우리는 각자 다른 간이역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멈춰서서 간이역에 서 있는 기차의 그림자를 바라...

    인생이라는 기차길 위에 우리는 각자 다른 간이역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멈춰서서 간이역에 서 있는 기차의 그림자를 바라보게 된다.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간이역들은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가 바라보게 디고, 그들도 자신만의 간이역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눈에 보여지는 거대한 물리적인 기차는 출발역과 도착역이 확실하고, 각 기차역마다 도착하는 시간이 정확하다는게 그들의 암묵적인 규칙이라면, 인생이라는 기찻길 위를 지나가는 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차는 어떤 기차역에서 출발하며, 어떤 기차역에 도착할 지 알지 못한다다는 한계점이 있다. 인생이라는 기찻길 위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고 있다. 한 권의 시 , 시인 허수경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의 '역'은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자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새로운 기찻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어설픈 연인아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달, 이 어린 비, 이 어린 밤동안 어제의 흉터 같은 이불을 폈는지. (네 잠의 눈썹 본문에서), 연인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의 편린 속에서 ,우리는 흉터를 얻어가고, 그 흉터를 어루민지면서 살아가게 된다.깊은 바다에서 갯벌위를 지나가는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서 소금이 형성되어지듯이,우리 삶에 밀물과 썰물은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아픔이라는 썰물과 기쁨이라는 밀물이 교차되면서, 하나의 인간은 깊은 인생길 위해서 완성되어졌다.


    가난하고도 즐거워 오랫동안 마음의 파랑 같을 점심 식사를 나누던 빛 속, 누군가 그 점심에 우리의 불우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린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우린 그냥 우리의 가슴이에요. (레몬 본문) 가난이라는 씨앗은 우리에게 남다른 인생을 걸어가는 주춧돌이었다. 인생길 위해 놓여진 삶과 죽음의 사이 사이에서 가난은 나의 또다른 한계를 마주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어둠과 같은 가난이 나에게 있었기에 바윗 돌 틈 사이에 태양이 비추는 빛의 향연의 소중한 가치들을 알알히 느낄 수 있다. 지나고 보면 가난은 나에게 지혜의 씨엇이었고, 성장의 씨앗이 되었다.그 순간 순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은 지나고 보면 ,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던 거다.


    없다,새는 고양이가 금방 다녀갔나.
    없다.온몸 도장은 있다.
    없다. 유리창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제삼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새는 온몸 도장을 찍었나. (온몸 도장 본문)

    체험은 시를 쓰는데 있어서 공감과 이해, 진정성이 알알히 맺히는 이유였다. 타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교차되는 '온몸 도장'은 나에게도 현존했던 경험이다. 새가 남겨 놓은 날개 깃털이 유리창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지만, 새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새가 온몸으로 유리창에 남겨놓은 소리의 흔적은 우리에게 또다른 인생의 상징적인 요소였다.그럴 때면 인생의 걸음 걸음 속에는 누군가 남겨 놓은 그 흔적들의 씨앗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그 흔적들만 보았지, 그 흔적 되에 누군가의 노력을 살펴보지 않는다.새가 남겨놓은 흔적을 보며, 새의 사체를 살펴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루마니어로 하는 욕은 비만큼 낯설어 칠십년 전 이 광장에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만큼 낯설어 그 와중에 죽은 시인을 떠올리는 나도 낯설어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낯선 역사적인 존재들 비느 오고 우리는 젖고 욕도 젖고.(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본문)


    언어는 달라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이 욕을 하는지 욕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언어적인 인식의 힘보다 직감의 힘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서로가 다른 언어를 쓰면서 ,이해하기 힘든 이질적인 언어를 쓰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동질감을 얻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서로의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으려는 걸음걸음들이 생존이라느 본능에서 비롯된,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된다. 비라는 인생의 매개체 속에서 서로의 경험은 교차되고, 기억도 겹쳐지게 된다.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무언의 욕은 생존에 대한 집착이었으며, 타인에에게서 느껴지는 생존을 감지하는 그 순간 우리는 멈칫하게 된다 그 멈칫은 연민이었으며, 서로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이 찾아왔기 때문니다.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살아야 할 것인가, 죽어야 할 것인가, 삶 속에서 우리가 몸부림 치는 그 순간, 누군가 내미는 손은 나에게 살아야 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삶에 대한 짙은 기억들이 알알이 맺히듯이,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의 시인 허수경의 짙은 기억의 향수를 감지하게 된다.그 기억은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의미가 되어졌다.

  • - 이 가을의 무늬 :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 여름...

    - 이 가을의 무늬 :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 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 포도나무를 태우며: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 목련 : 뭐 해요?/ 없는 길 보고 있어요/ 그럼 눈이 많이 시리겠어요/ , 눈이 시려설랑 없는 세계가 보일 지경이에요/ 없는 세계는 없고 그 뒤안에는/ 나비들이 장만한 한 보따리 날개의 안개만 남았네요 뭐 해요?/ , 여적 그러고 있어요/ 목련, 가네요

  •   이국의 호텔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
     

    이국의 호텔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호텔 건너편 발코니에는 빨래가 노을을 흠뻑 머금고 붉은 종잇장처럼 흔들리고 르누아르를 흉내낸 그림 속에는 소녀가 발레복을 입고 백합처럼 죽어 가는데


    호텔 앞에는 병이 들고도 꽃을 피우는 장미가 서있으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장미에 든 병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앓게 하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며 이곳까지 왔네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꾼 꿈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낯선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얼굴에 켜지는 가로등을 다시 꺼내보는 저녁 무렵


    슬픔이라는 조금은 슬픈 단어는 호텔 방 서랍 안 성경 밑에 숨겨둔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칼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 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고국을 떠나 살지만 그 어떤 시인보다 모국어를 잘 살려 쓰는 허수경 시인. 독일에서 고대 근동고고학을 공부하며 지도교수와 결혼까지 했으니 귀국은 더 멀어질 거라 여겼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 년 전 시인을 찾아간 적이 있다.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는데 독자의 한 사람으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2011년 1월 24일 산울림소극장에서 “국제 거리의 미아가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이 있어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어찌 독자들뿐이랴. 여기서의 독자란 시인의 시집을 읽는 실제 독자만 지칭하는 게 아니라 모국어, 고향을 포괄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독일 생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시인의 의식은 호텔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호텔에서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라고 주문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허수경 시인은 가장 젊은 시인이다. 그 어떤 시인보다 늙었고 그 어떤 시인보다 젊다. 모국어의 치열한 한 정점을 보여 준다. 아직도 길 위에서 떠돌고 있기 때문일까. 시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시인의 말」)라고 하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돌이킬 수 없었다」)라고 쓰고 있다. 독일로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어도 마음이 정착하지 못하나 보다. 게다가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국제 거리의 미아보다 더한 상태일까. 시인이여, 부디, 영원히 젊은 현역 시인으로 모국어로 된 새 시를 들고 독자들과 계속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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