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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이 좋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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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쪽 | A5
ISBN-10 : 8959136301
ISBN-13 : 9788959136308
너 같이 좋은 선물 중고
저자 박 불케리아 | 출판사 예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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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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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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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감동의 성장 이야기!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곁을 지켜온 박 불케리아 수녀의 에세이 『너 같이 좋은 선물』. 이 책은 1979년 미사 반주를 위해 창설되어 2010년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 올라 전 세계인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 부산 소년의 집 알로이시오 관현악단과 자상한 엄마로, 엄격한 스승으로 아이들을 지지해준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이자 책임자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뜻에 따라 1991년 처음으로 자선연주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한 오케스트라는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가족이자 가장 치열한 사회가 되어주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음악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는 정명훈, 정민 부자와의 인연, 사라 장과의 추억, 연주복 변천사와 카네기홀에 가기까지의 에피소드 등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가 이룬 기적의 나날들을 회고하며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박 불케리아
저자 박 불케리아는 1972년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하여 40년 가까이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의 엄마 수녀로 살아가고 있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인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소년의 집 모든 출신들의 관리ㆍ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정리 : 윤진호
「말아톤」, 「마이 파더」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2003년부터 부산 소년의 집을 찾아 아이들과 인연을 맺어왔으며 현재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영화화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_운명의 힘, 서곡

입회
스물넷, 누나 이모 혹은 엄마
얼떨결에 합주부 담당 수녀가 되다
합주부의 새로운 시작, 제1회 자선연주회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 신부님의 마지막 호소
합주부, 날개를 달다
세상에서 사라진 아이를 위해 불법 여권을 만들다
사라 장이 온다고요? 싫다고 하세요
고난의 시절, 성장기
손가락에 금이 가도, 나는 문제없어
어둠 속에서도 연주는 멈추지 않는다
정명훈, 정민 부자와의 소중한 인연
파란만장 연주복 변천사
수녀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한밤중의 바자회 습격 사건
26기의 지울 수 없는 상처
대성이의 작은 방
악몽이 될 뻔했던 꿈, 카네기홀에 서기까지
폭설에 갇힌 뉴욕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축복이었네
카네기홀 공연 그 뒷이야기
엄마의 길, 수도자의 길

에필로그_오늘도 텃밭을 가꾸며
『너같이 좋은 선물』이 나오기까지

책 속으로

산모퉁이 어디에 아이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땅에서 뭔가를 파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건 진흙이었다. 밥을 놔두고 진흙을 파먹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은 사색이 된 나를 보고 겸연쩍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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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어디에 아이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땅에서 뭔가를 파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건 진흙이었다. 밥을 놔두고 진흙을 파먹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은 사색이 된 나를 보고 겸연쩍었는지 ‘쫀드기(황토)’ 맛만 보고 금방 가려고 했다고 어물거렸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아이들이라 먹을 게 생기면 아무거나 입에 넣고 보았다. 황토도 아마 그렇게 먹기 시작한 것일 게다. 아이들에겐 그게 일종의 별미였던 모양이다. 희한한 건 진흙을 먹고 탈이 난 애들을 한 명도 못 봤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앞세워 식당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난 이런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아니, 이 아이들에게 진짜 ‘뭉치’가 되어줘야 한다. 그렇게 되길 기도했다. 내 나이 스물넷, 그해 여름에.
-33쪽, 「스물넷, 누나 이모 혹은 엄마」

그런데 순간 팍, 하고 불이 나갔다. 원래 빛이 없는 곳이어서 사방은 일시에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부대장님부터 공연을 지켜보던 군인들이 다들 웅성거렸다.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곧 잦아들었다. 합주부의 연주가 어둠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휘몰아치는 선율이 어둠을 가르고 달려와 우리를 휘감았다. 하늘에는 아까 조명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별빛이 반짝거렸다. 순간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마치 축복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우리 합주부라서가 아니라 이건 정말 천상의 소리였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최고의 연주를 낳은 밤이었다. -133~134쪽, 「어둠 속에서도 연주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내가 나타나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침방 입구에 악장인 대희가 보였다. 나는 대희에게 어떻게 이 시간에 침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말투가 다정하고 차분할 리 없었다.
대희는 나를 노려보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수녀님 아들들이 우리한테 덤비잖아요.”
순간 내 머릿속 필라멘트가 탁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성을 밝혀주는 인자가 망가지자 눈앞이 깜깜해졌고 평정심은 수챗구멍에 쏟아진 물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189~190쪽, 「26기의 지울 수 없는 상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조율 그리고 하모니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오케스트라다.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도 있고 선후배간에 날카로워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한 무대에 서야 할 사람들이다. 준비할 때는 치열해도 무대에 오를 땐 서로를 신뢰하고 격려하며 의지가 돼주어야 한다. 그건 어쩌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삶의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후배의 넥타이를 매주는 선배의 손길이나 선배의 머리 모양을 봐주는 후배의 눈길에서는 그런 동료애가 배어 있었다. 오늘 연주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70~271쪽,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축복이었네」

그렇게 개인적인 어려움을 뒤로하고 다녀온 카네기홀 공연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오랜 세월 합주부와 함께 생활을 해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그곳에서 보여준 연주는 최고였다.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내가 합주부를 맡은 이래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의 마음가짐을 기억하는 한, 삶을 허투루 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어떻게 그런 연주가 가능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자기를 한 줌씩 덜어놓을 수 있어서 우린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라고.
-281~282 「카네기홀 공연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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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수녀님과 소년들 서로가 서로에게 소박한 기적이 되어준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 “우리가 이 아이들보다 많은 걸 가졌을지는 몰라도 이 아이들만큼 치열하고 빛나는 청춘을 보내진 못했을 것입니다.”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이 이뤄낸 기적의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수녀님과 소년들 서로가 서로에게 소박한 기적이 되어준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
“우리가 이 아이들보다 많은 걸 가졌을지는 몰라도
이 아이들만큼 치열하고 빛나는 청춘을 보내진 못했을 것입니다.”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이 이뤄낸 기적의 오케스트라 이야기

부모가 없다는 것 빼고는 여느 집 아이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들, 이 아이들이 대형 사고를 쳤다. 1979년 미사 반주를 위해 창설되어 소년의 집 운영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연주회를 시작으로 점차 오케스트라의 면모를 갖춰간 이들이 2010년 모든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 올라 전 세계인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비록 뒷바라지해주는 친부모는 없지만 때로는 자상한 엄마로, 때로는 엄격한 스승으로 이들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지해주는 엄마 수녀님들과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9년 미사 반주를 위한 소규모 현악합주단으로 시작하여 2010년 카네기홀 공연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 『너같이 좋은 선물』이 출간되었다. 합주부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언제나 아이들의 곁을 지켜온 박 불케리아 수녀님의 애정어린 회고는 글의 감동과 재미를 더해준다.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된 소년들의 감동의 성장 드라마 『너같이 좋은 선물』! 이 책은 숨막히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 감성이 메말라버린 사람들에게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아름다운 감동을 선물해줄 것이다.

수녀님과 오케스트라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산 소년의 집 합주부의 연습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소리가 울리기 좋은 교실 한 칸을 비워서 합주실로 쓰는 게 고작이었다. 교실과 복도는 아이들의 뒤엉킨 악기 소리와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장난으로 치고받는 것이 주먹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다반사인 중1부터 고3까지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이 엄격한 서열 아래에서 때로는 배우고 때로는 가르치는 입장으로 엉켜 있다 보니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들도 생겨났다.
그뿐인가. 합주부 아이들은 고3 여름방학 때까지 공연을 준비해야 하기에 일찌감치 마감되는 대기업 채용에 원서를 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고등학교만 마치면 소년의 집을 떠나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이 아이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희생이다. 그럼에도 악기를 놓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취업의 기회를 뒤로하고 고된 연습을 버티면서까지 악기를 선택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4년 멕시코 공연 첫날 시글로21극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의 1악장을 연주하는데 갑자기 공연장 내 전등이 모두 나가버렸다. 연주회장은 암흑천지가 되었고 관객들은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조용해졌다. 악보는커녕 옆 사람 얼굴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운명」의 선율이 멈추지 않고 흘렀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난 후 극장에 불이 밝혀졌을 때 예기치 않은 사건에 놀란 관객들의 얼굴과는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는 ‘해냈다’라는 자신감과 뿌듯함,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가득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해 가슴에 안고 있는 크고 깊은 상처를 치유받았고 고된 연습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깨달았다. 순간순간 예기치 않은 위기를 겪으며 자신들에게 그걸 돌파할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만큼 이 아이들에게 값진 선물이 또 있을까.
이처럼 값진 선물을 중심으로 모인 오케스트라는 아이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가족이자 가장 치열한 사회이다. 공연을 준비할 때는 긴장 관계이지만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격려하며 의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특별한 감동이 담겨 있다. 분명 각각의 연주는 아마추어 수준인데 합주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아이들의 합주에는 음악이 자신에게 그러했듯 이제는 자신들이 이 세상에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는 선물이 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함께 꾼 꿈이기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힘겨운 연습과 엄격한 선후배 관계에 지쳐 무단외박을 하기도 하고, 소년의 집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해하기 어려운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끝까지 악기를 놓지 않고 꿈을 연주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아이들. 이들의 뒤에는 엄마 수녀님들의 따스한 사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격려와 관심, 악기와 연주복, 재능 기부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특히 정명훈과의 인연은 마에스트로의 막내아들 정민으로 이어졌고 2010년 카네기홀 공연을 함께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물론 아름답고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선한 의도로 많은 시간과 경비를 지원했지만 아이들에게 상처만 남기는 경우도 있고, 단순한 동정심이 실망을 안겨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30여 년간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를 후원했던 분들 모두 자신들이 지불한 시간과 돈, 재능 이상의 감동을 선물로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기적의 역사는 사랑과 감동을 나눈 이들이 함께 꾼 꿈이기에 이루어진 값진 선물이 아닐까.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알로이시오 관현악단) 연혁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1979년 미사 반주를 위해 중학생 중심의 현악합주단으로 창설되었다. 창단 2년 만인 1981년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현악부 우수상을 받고 개천예술제에서 현악합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1년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뜻에 따라 제1회 자선연주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수많은 연주회를 치르며 오케스트라의 면모를 갖춰갔다. 1995년 미야자키로터리클럽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순회 공연을 가졌고, 1999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유진 박과의 협연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알렸으며, 2004년에는 멕시코 대통령궁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은 2007년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인연을 맺어 소년의 집 기금마련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명실공히 최고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0년 모든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 무대에서 공연함으로써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추천의 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의 선물이 되어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아낌없는 정성과 눈물 어린 기도로 이들을 받쳐주는 엄마 수녀님들의 존재를 찬미하며 이렇게 읊조려봅니다. “좋은 사람, 좋은 마음, 좋은 선물은 바로 당신들입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아이들은 음악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어요. -정명훈(지휘자)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실력도 대단했지만 음악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보통이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들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연주에 그대로 배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사라 장(바이올리니스트)

예술의 전당에서, 카네기홀에서 공연해봤다고 이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내동댕이친 운명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교향악단이 길고 긴 불협화음 속에서 찾아낸 자신들만의 소중한 음악을 들려줄 때, 우리는 이들이 인생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명하는 기쁨을 깨달았음을 느낄 수 있다. -정윤철(영화 「말아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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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2012년 영화화 전격 결정!  축하드려요 부모와 살지 못하는 제각각의 사연은 접어두고(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2012년 영화화 전격 결정!  축하드려요 
    부모와 살지 못하는 제각각의 사연은 접어두고(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소년의 집에
    모여 살면서  악기를 배우며 음악과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대견스럽네요
    생활하면서 부모와 사회에 대한 원망도 있겠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느끼지
    못할 슬픔도 겪어야 하고  아이들의 가슴앓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일찍이 철들고 사회에 나와  자신의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경제적면
    뿐만아니라 심리적 부담감 또한  얼마나 컸을지 생각만 해도 안쓰럽네요
    소년의 집이 시설이나 운영체계가  계속 나아지고 있는 소식이 아무 연관없는
    저로서도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데  위안이 되네요 
     
    고등학생때까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또 결혼을 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하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 세태에
    삶의 방식을  고찰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보통의 집에서 혼자인 경우가 많은데요 소년의 집 모든 아이들이 다 형제라고 여기고
    우애를 쌓으며 돈독하게 지냈으면하는 바람이 간절했어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생활만으로도 버겁고 벅찬게 오늘날 학생들의 일과있데
    대학으로 진학을 하거나 직업인으로 사회로 진출하거나 하기 위한 공부에 병행하여
    저마다 악기 연습을 충실히하고 국내 해외의 수많은 연주회를 소화해 내는 그동안의
    활동을 보니까요 또한번 내 자식처럼 자랑스럽고 기특해요
    오케스트라 활동과정에  악기문제 레슨문제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것또한
    오케스트라단원들이 한단계 성숙해지는 단련과정으로 넘겼으면 해요
    말이야 쉽게 할수 있겠지만 그래도요
    소년의 집을 떠나 진학과 취업으로 대학교와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루어 가는
    길에 어찌 순탄만 하겠어요 일반 가정집에서도 힘든 세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연주자가 되지 않아도 악기를 손에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뭉클해지대요 
    생계를 꾸려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에 짠해지구요 
    때가 되어 소년의 집을 떠난 후에도 계속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어  그곳이
    단순한 시설이 아닌 아이들의 집이었구나 느껴지더군요
     
    반듯하게 성장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이들이 귀감이 되어 소년의 집 아이들과
    다른 모든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계속 울려
    퍼져  희망을 전해주었으면 바랍니다
     
    인자하신 수녀님을 뵈오니  심란했던 마음이 편해지네요  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세요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낫게 해주시는 태평양처럼 넓은 품을
    가진 엄마로요 건강을 빕니다 
     
    해외봉사활동을 하는 분들 보며 우리나라도 어려운데 무슨 해외봉사냐며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편협된 생각을 싹 바꿔주는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유명인들이 재능을 나눔해주고
    단체나 개인이 악기와 의상을 마련하게 지원해주고 연주회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훈훈한 소식에 살만한 세상임을 보았답니다 







  • 너같이 좋은 선물 | do**50 | 2011.09.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제목만 얼핏 들었을 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혹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
    제목만 얼핏 들었을 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혹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는 부모님들이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려니 했다.
    언젠가 나이 많은 언니가 한 말에 자식이란 그 이름만으로 선물 그 자체이다.
    나아서 기르면서 힘든 걸 생각하고 애물단지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지 낳은 그 순간부터
    선물이라 여겨야 한다고 했던말...
     
    바로 박 불케리아 수녀님도 그런 선물을 아주 많이 간직하신 분이다.
    비록 제 속으로 낳은 친 자식들이 아니지만 그 보다도 더 끈끈한 탯줄로 이어진 선물들...
     
    아직 어린 20대 처자가 수녀님이 되려고 했을 때 어찌 그녀의 부모님들은 좋기만 했을까?
    수녀님도 수녀님의 부모님들에겐 틀림없이 소중한 선물이었을텐데...
    그런 수녀님이 시집도 안가고 ..... 수녀님의 부모님들도 아주 좋은 선물을 가지신 분임에
    틀림없다.
     
    부모와 같이 살지 못하는 많은 사연을 가진 아이들 -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너무 많아서..되려 그 상처가 숙성되어 상처마저 아름다운 향기로 혹은,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
     
    포기할 수 없는 짜여진 공연을 위해, 재학생들로만 구성이 준비되지 않을 때, 객원으로
    참가를 해줘야하는 졸업한 선배들...하지만 직장인들이라면 알것이다.
    공연을 위해서 회사를 일주일씩이나 월차를 낼 수 있는 직장인들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소년원 집 친구들은 공고 출신이라 거의 힘든 직장 -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동료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두 배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그런 직장 - 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였기에....
     
    그네들이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선물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네들이 정명훈 선생님같은 유명한 지휘자와 함께 공연을 했기에 선물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네들은 그 자체로 선물이다.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의 추천글을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음악에도 순서가 있어요. 맨 먼저 음악과 사랑에 빠지고, 다음에 깊이와 의미를 찾게 되죠.
    성공 여부는 그다음입니다"
  •   부산 소년의 집이라면 내가 사는 옆 동네이다. 중학교 시절 봉사 활동을 마리아 영아원에서 했었기 때문에 그곳의 상...
      부산 소년의 집이라면 내가 사는 옆 동네이다. 중학교 시절 봉사 활동을 마리아 영아원에서 했었기 때문에 그곳의 상황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간혹 언론 매체를 통해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책 시작은 박 볼케리아 수녀님이 수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아이들의 엄마로 40년을 살아오셨다.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도 힘든 일인데 가슴 속에 아픔을 가진 아들들을 키우는데에는 몇 배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때로는 강하게 야단치시면서 그들의 든든한 엄마의 역할 해 오셨던 것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난다.
     
      1979년 미사 반주를 위해 구성된 현악 합주단을 시작으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가 카네기 홀에 서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처음 합주단을 구성했을 때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 알았을까?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뜻에 따라 자선 연주회를 시작으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면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는 연습용 중에서도 최저가의 악기로 쇠소리가 섞여서 나지만 아름다운 선율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들의 연주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후원이 이어지고 다른 무대에도 설 수 있게 되었다. 사라 장과의 인연도 너무나도 감동적이였다. 세계적인 명성과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인연이 되어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와의 연주, 그의 셋째 아들 정민씨와 카네기 홀에서 연주까지 결과만 본다면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책을 통해 그 결과가 있기까지 노력과 희생을 감수한 아이들을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짠했다. 그들이 카네기 홀에 선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였다. 여전히 소년의 집에서의 생활이 있었고 졸업한 학생들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야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카네기 홀의 연주에 참석하기 위해 5명의 아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참여하였다. 그만큼 시간의 편의를 봐주는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개인 사생활이 없이 연습에만 매달렸다. 학업만으로도 벅찰 시기인데 묵묵히 연습하고 열의를 보이는 아이들을 통해서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는 내 모습에 반성이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나가서도 고아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선뜻 소년의 집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내키지 않다는 그들의 말 속에서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한 직장은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사고로 인해 죽음에 이른 대성의 이야기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수녀님과 동료와 선후배의 마음은 어땠을까?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 동네에 살면서도 참 몰랐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항상 보기는 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부산 소년의 집을 방문한다면 박 볼케리아 수녀님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볼 수 있을까? 오케스트라 단원이 이루어낸 성과들도 놀랍지만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과 수녀님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로 만들어 진다니 어떻게 영상화가 될 지 기대가 된다. 앞으로도 그들이 이룰 행보에 건투를 빈다. 
  • 너같이 좋은 선물을 읽고 | my**3 | 2011.07.2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너같이 좋은 선물』을 읽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와 똑같은데도 어느 한 ...
     
    『너같이 좋은 선물』을 읽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와 똑같은데도 어느 한 가지 다르다는 사실로 더 힘들게 생활해 나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은 것 같다. 특히 각종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아원, 소년의 집, 경로원, 재활원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모두 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도 더 어려운 조건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그 주변을 지나가거나 걷다가 장애인 등의 어려운 사람들을 스치면서도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면서도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에 적극 동참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이 책의 주인공들도 바로 부산에 있는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이다. 부모가 없어 이곳에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 빼고는 어는 것 하나 다를 것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감동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감동이 있기까지는 소년들의 꿈과 슬픔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품어 안은 엄격한 스승이자 자상하신 엄마의 얼굴을 닮은 수녀님이 있었던 것이다. 박볼케리아 수녀님이다. 1972년에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하여 40년 가까이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의 엄마 수녀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1984년부터는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인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을 직접 맡고 있다. 그 엄마 수녀님의 헌신적인 지도 아래 단원들인 소년 개개인의 실력은 프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열정만큼은 그 어디에 들춰 보여도 모자람 없는 것이다. 연주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는 모습과 자신도 모르게 넘치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전율(戰慄)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 가졌을지는 몰라도 이 아이들만큼 치열하고 빛나는 청춘을 보냈다고 그 누가 큰 소리 칠 사람이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의 선물이 되어 준 부산 소년의 집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와 엄마 수녀님들의 이야기는 삭막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우리들에게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마음과 좋은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런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흐뭇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연주와 함께 헌신적인 수녀님들의 일심동체의 모습에서 얼마든지 큰 교훈으로 삼고 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면 더 멋진 환희가 반드시 있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들이 서로 돕고 배려해 나가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 만큼 더욱 살기 좋은 모습으로 변하리라 확신한다. 바로 이 책에서 그런 헌신적인 사랑과 함께 열정적인 모습의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배려와 화합하는 마음과 희망을 품고 훈훈한 향기를 풍기는 연주가 이어졌으면 한다.
  • 이 책의 저자 박 볼케리아는 1972년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하여 40년 가까이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 수녀이다. ...
    이 책의 저자 박 볼케리아는 1972년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하여 40년 가까이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 수녀이다. 또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인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는 소년의 집 모든 출신들의 관리와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저자의 구술을 원고로 정리한 윤진호 씨는 '말아톤', '마이 파더' 등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다. 현재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영화화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10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영세를 받고 동네 친구들과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는데, 회비를 매월 꼬박 꼬박 거두자 돈에 부담을 느껴 성당에 발길을 끊고 있었다. 1960년대 촌동네에 살고있는 집안 형편으론 눈치가 보여서다. 태어나 고향인 경남 거창을 떠난 적이 없었던 저자는 22살에 경북 상주에 소재하는 '대한생사조선견직'에 취직했다. 이후 다니던 성당 사무실에 비치된 잡지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수녀회'라는 문구와 함께 '마리아수녀회'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에 마음이 끌렸다.
     
    1971년 여름 3일간의 휴가를 얻어 수녀회가 있는 부산 송도를 찾았다. 입회를 원한다면 면접후 한 달간 함께 생활을 해야한다고 했다. 다시 상주로 돌아가서 준비하여 한 달 뒤 정식면접을 신청했다. 여전히 면접대기자가 많았다. 최종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과 대면했다. 합격이었다. 6개월 진행된 면접에서 최종 12 명이 선택되었다. 직장을 사직하고 입회 허락을 받았다.
     
    "이제 집에 가자......" (28 쪽)
     
    부모님의 동의는 어려웠다. 결국 부모님 허락없이 수녀원에 입소했다. 한 달째 첫 면회에 아버지가 찾아 오셨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안된다고 부인하자 그냥 면회실을 떠났다. 지원기 1년, 청원기 1년, 수련기 2년을 거쳐야 정식 수녀가 된다. 입회하고 한달 쯤 지나자, 원장 수녀님이 아이를 돌보는 지원자를 찾았다. 손을 들어 자원했다. 거리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자기들만 사용하는 은어도 이해가 어려웠고 심지어 툭하면 이탈하곤 했다.
     
    처음엔 미사 반주를 위해 합주부가 만들어졌다. 당장 아이들의 악기 지도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이 때부터 안유경 선생님을 모셨다. 그녀는 당시 부산 시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1979년 3월 미사 시간에 처음으로 현악기가 등장했다. 아직은 서툰 솜씨였지만 바이올린부터 베이스까지 현악기의 선율이 미사 시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초기엔 중학생 중심의 현악합주단의 형태였다. 1996년 관악기를 포함하는 정식 관현악단이 되었다. 합주부는 미사 반주가 주목적이었기에 레슨도 주 1회 정도였다. 그런데도 합주부는 창단 2년 만인 1981년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현악부 우수상을 받고, 개천예술제에서도 현악합주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초, 전임 수녀님이 필리핀으로 소임처가 발령나면서 얼떨결에 저자가 합주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미 340 명의 아이들을 맡고 있었기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1988년~1990년까지 내리 3년간 부산복지시설 음악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자 이 대회가 없어지는 해프닝도 생겼다. 다른 팀들이 들러리만 선다고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합주부의 변신이 요구되었다.
     
    이쯤되니까,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생각났다. 1975년, 총소리만 난무했던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했다. 이 음악교실은 이후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11명이었던 회원이 무려 30만 명에 이르렀다. 마약과 폭력으로 물들었던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엘 시스테마'였다. 국내에서 영화도 상영되었고, 금년 3월엔 예술의 전당에서 내한 공연도 했다.
     
     
    1991년 자선연주회를 시작했다. 부산 소년의 집의 정신적 지주격인 소 신부님이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신부님이 수녀회에 실내수영장 건축이라는 숙제를 주었다. 재원 확보를 위한 아이디어가 바로 자선연주회였다. 전문 공연 기획사의 도움을 받아 연주회 장소의 대관부터 팜플릿 제작까지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일을 보면서 하나씩 일들을 배워 나갔다. 
     
    후원자를 모집하는 공연이므로 레퍼토리를 늘려야 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모짜르트의 세레나데 중 13번,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 비제의 카르멘 서곡 등을 준비했다. 연습 시간이 배 이상으로 늘자, 중도에 탈락하는 중학생의 자리는 졸업생이 대신했다. 티겟판매는 수녀들의 몫이었다. 막상 공연일이 다가오자 불안하여 관람석 빈자리는 학생들이 채운다는 계획까지 짰다.1991년 6월 9일, 우려와 달리 시민회관 대강당은 대만원이었다. 소 신부님은 필리핀에 계셔서 공연 참관을 하지 못했다.
     
    1992년 3월 16일, 소 신부님은 선종하셨다. 신부님은 1957년 사제 서품을 받고 부산 송도에서 보육원으로 출발하여 이후 부산 소년의 집, 부산 구호병원, 부산 마리아구호소, 서울 은평 마을사업, 서울 소년의 집, 서울 도티기념병원 등을 일구어 냈다. 1985년부터는 필리핀을 시작으로 멕시코, 콰테말라, 브라질 등 해외 구호 사업에도 나섰다.
     
    1993년 제 3회 자선연주회는 두 달 보름에 걸쳐 서울, 부산, 창원, 진주, 대구 등 무려 5개 도시를 돌며 연주했다. 당초 대구는 계획에 없었는데, 진주 행사가 끝난 후 우리를 후원하는 자매님이 대구 MBC 편성국장님을 소개하면서 성사되었다. 대구 행사에서 효성여자대학교 음악대학장을 역임한 홍춘성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1994년 홍춘성 교수님이 지도하는 대구여성가톨릭합창단과 부산 소년의 집 합주부와 협연을 가졌다. 이듬 해에는 부산에서 동일한 형식으로 연주했다. 두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금에 사비를 보태어 관악기 2 관씩 구매했다. 드디어 합주부가 관현악단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부산로터리클럽 제 3660지구로부터 현악기 40여 점을 기증받기도 했다.
     
     
    1999년 3월 초, MBC 이채훈 PD 한테서 연락이 왔다. 부산에 연주하러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가는데, 부산 소년의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그리고 사라 장이 합주를 원하는 악보를 보내왔다.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곡이라 어렵다고 투덜댔다. 이 사실을 전하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곡을 알려 달래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마이 웨이', 그리고 노사연의 '만남'을 선택했다. 드디어 사라 장이 MBC '생방송 화제집중'팀과 함께 학교로 왔다. 열렬한 환호속에 체육관에서 합주부와 함께 세 곡을 연주했다. 사라 장의 아버지의 즉석 제안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들을 사라 장과 함께 연주했다. 이런 인연으로 예술의 전당(2000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2001,2002년)에서 공연을 가지면서 아이들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2004년 멕시코 공연 일정이 잡혔다. 8월 18일 출국하여 9월 3일 입국하는 스케쥴이었다. 인솔자를 포함하여 총 125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궁 공연을 포함하여 총 다섯 번의 연주회를 가졌다. 멕시코 일정 중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 버스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악기며 짐을 모두 다른 버스로 옮겨야 하는 해프닝을 겪으면서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선생님이 우리 합주부를 위해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07년 기금마련음악회였다. 그렇지만 그 인연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내한 공연 뒤 서울 소년의 집 합주반 아이들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해준다며 부산에서도 참여하면 좋겠다고 연락와서 첼로 파트 4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적이 있다. 이 공연은 CMI에서 기획했는데, 이 회사의 대표가 바로 정명훈 선생님의 큰 형인 정명근 사장이었다.
     
    그 해 8월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년의 집 기금마련연주회를 가졌다. 1부는 정명훈 선생님의 지휘로 베토벤의 고향곡 '운명'을, 2부는 정명훈 선생님의 아들인 정민 씨가 지휘를 맡고 정명훈 선생님은 피아노를 첼리스트 송영훈 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씨와 함께 베토벤의 '3중 협주곡 Op.56'을 연주했다. 이들 부자와의 인연은 2010년 카네기홀 공연으로 이어졌다.
     
    2010년 2월 8일 저녁 8시 비행기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현지시간으로 8일 저녁 8시 조금 못 되어 뉴욕 JFK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재학생 42 명, 졸업생 54 명, 객원 연주자 15 명, 수녀 5 명, 사무실 직원 5 명 등 123 명의 대이동이었다. 도착하여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19기 졸업생 성철이가 유럽에서 날라왔던 것이다. 그는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가졌는데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동유럽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벨기에의 한 교향악단에 단원으로 활동 중이란다.
     
    뉴욕의 겨울이 유명한 것은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 때문이었다. 바로 폭설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이미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 들어 눈이 잦아들었지만 당장 내일이 공연인데 당사자인 우리도 우리도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관객들이 찾아 오는데 불편한 것 같아 큰 걱정이었다. 오후가 되자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센트랄파크에 놀러갔다. 누군가 눈뭉치를 만들어 던지자 우리 일행은 삽시간에 눈싸움으로 번졌다.
     
    2010년 2월 11일 카네기홀 공연이다. 하늘은 새파랗고 날씨는 따뜻했다. 나들이에 무척 좋은 봄 날씨였다. 어제만 해도 카네기홀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었는데 딴 나라 이야기 같았다. 오후 3시부터 리허설을 가졌다. 주어진 시간에서 단 1분만 초과해도 추가비용을 받을 정도로 엄격하다. 공연 전 호른을 부는 준호가 마우스피스를 조이는 나사를 분실하여 이를 찾느라고 한바탕 해프닝을 벌였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며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윤진호 작가님이 이번에 함께 동행했는데
    리허설하는 모습을 캠코더로 담다가 쫓겨날 뻔하기도 했다" (265 쪽)
     
    공연장을 찾은 분들은 대개 근거리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그들의 미국인 지인들 같았다. 알로이시오 신부님 가족 중에는 누님과 그 자녀들이 찾아왔다. 서울 도티기념병원을 기증하신 도티 씨 가족도 항공편이 없어 참석을 못했다. 꼭 참석해야 할 분들이 폭설오 인해 참석하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정민 씨가 지휘를 맡았다. 첫 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서곡이었다. 1부는 베르디의 특집 같았다. 2부의 연주곡은 차이콥스키 고향곡 5번이었다. 안단테로 시작한 1악장부터 장엄하고 화려한 4악장 피날레까지 거침없이 연주했다. 관객들이 기립했다. 터져나오는 함성, '브라보! 브라보!'로 장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수녀님들의 눈시울이 모두 붉게 물들었다.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출처:Joins.com
     
    1960년대 부산의 거리는 넝마를 줍거나 구걸을 하거나 병들어 떠도는 고아들 천지였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소년의 집을 짓고 학교를 세워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쳤다. 축구부, 육상부, 스키부 등을 만든 것도 모두 자립심 강한 동량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합주부를 지도하시는 안유경 선생님은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셨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러 시설의 피고용인들을 채용할 때 '아이들 중심'이라는 원칙에 충실했기에 종교를 따지지 않았다. 의료진의 선발도 개원 당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면서 실력있는 의사와 직원을 채용했다.
     
    올해 초, 대우증권에서 보내온 초청장
     
    고故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과의 만남은 평범한 20대 직장녀를 수도자의 길로 걷게 만든 계기였다. 아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를 뿌리치고 '엄마 수녀'의 길을 선택한 박 볼케리아 수녀는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요즈음 조그마한 텃밭에 감자, 고구마, 무우, 배추, 생강, 벼 등 다양한 작물을 키우다보니 수녀님들 사이에는 농사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오늘도 텃밭을 가꾸며 아이들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엔 이들이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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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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