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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320쪽 | 규격外
ISBN-10 : 8970138692
ISBN-13 : 9788970138695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중고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 | 역자 이재형 | 출판사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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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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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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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라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색! ‘걷기’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랑스 파리12대학의 철학 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에서 ‘걷기’라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한다. ‘걷기’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걷기 위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살핀다.

특히, 저자는 끔찍한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알프스의 질스마리아를 걷고 또 걸었던 니체와 프랑스 샤를빌과 파리, 아프리카 사막 등지를 쉴 새 없이 오간 시인 랭보 등 걷고 사색하며 얻은 통찰력과 감수성,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작품 세계를 형성해나간 철학자와 작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걷기가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임을 호소력 있게 주장하고 나아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소개

저자 : 프레데리크 그로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프랑스의 철학자. 파리12대학과 파리정치연구소의 정치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셸 푸코 연구자로서,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의 강의록을 편집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미셸 푸코Michel Foucault》,《푸코와 광기Foucault et la folie》,《그리고 그것은 정의가 되리라 : 민주주의에서의 처벌Et ce sera justice : Punir en democratie》,《푸코 : 진실의 용기Foucault : Le courage de la verite》,《폭력의 국가들 : 전쟁종말론Etats de violence : Essai sur la fin de la guerre》,《안전의 원칙Le Principe Securite》,《걷는 사람의 작은 도서관Petite bibliotheque du marcheur》이 있다.

역자 : 이재형
역자 이재형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꾸뻬 씨의 사랑 여행》,《사회계약론》,《시티 오브 조이》,《군중심리》,《마법의 백과사전》,《지구는 우리의 조국》,《밤의 노예》,《말빌》,《세월의 거품》,《신혼여행》,《레이스 뜨는 여자》,《눈 이야기》등이 있다.

목차

1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2 자유 ― 비트 제너레이션
3 나는 왜 이렇게 잘 걷는 사람이 되었나 ― 프리드리히 니체
4 바깥
5 느림
6 도피의 열정 ― 아르튀르 랭보
7 고독
8 침묵
9 산책자의 백일몽 ― 장 자크 루소
10 영원
11 야생의 정복 ― 헨리 데이비드 소로
12 에너지
13 순례
14 재생과 현존
15 견유주의자의 발걸음
16 평안한 상태
17 우울한 방황 ― 제라르 드 네르발
18 일상적인 외출 ― 이마누엘 칸트
19 산책 ― 마르셀 프루스트
20 공원
21 도시의 소요자 ― 발터 벤야민
22 중력
23 기본적인 것
24 신비론과 정치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25 반복
26 신의 은신처를 걷다 ― 프리드리히 횔덜린
27 세상의 종말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 나는 걷는다, 고로 철학한다 고통의 순간에 오로지 걷고 또 걸은 니체 바람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 랭보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자본주의의 아케이드를 거닌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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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고로 철학한다
고통의 순간에 오로지 걷고 또 걸은 니체
바람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 랭보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자본주의의 아케이드를 거닌 벤야민……
느리게 걷고 깊이 사유하며 자유롭게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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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인 ‘걷기’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느리게 가는 데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일찍이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체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 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10쪽)

걷기는 단지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내딛는, 일상적인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 하나 되는 데서 오는 일치감과 충만함을 줄 뿐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두루 자극하고 머릿속을 신선하게 일깨워주는 걷기를 계속하다 보면 걷기는 하나의 삶의 자세, 하나의 철학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돈이 필요 없고 몸과 공간, 시간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걷기는 ‘속도의 시대’에도 그 느림의 미학과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프랑스 파리12대학 철학 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잘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에서 ‘걷기’라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보여준다. 그는 걷기를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이라고 보고, 걷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걸으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해나간다.
특히 이 책은 걸으며 사색하며 얻은 통찰력과 감수성,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작품 세계를 형성해나간 철학자와 작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만성적인 두통과 구토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알프스의 질스마리아를 걷고 또 걸으며 ‘차라투스트라’와 ‘영원회귀’의 착상을 떠올린 니체, 프랑스 샤를빌과 파리, 마르세유와 아프리카 사막 등지를 쉴 새 없이 오가며 ‘바람구두를 신은 인간’으로 불렸던 시인 랭보, 걸어야만 진정으로 생각하고 구상할 수 있다고 믿었던 루소,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산책에 나섰던 칸트, 우울과 광기 어린 걷기를 통해 비범한 작품을 창조해낸 네르발과 횔덜린 등 사상사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삶에 걷기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프루스트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보여주었듯 어른이 된 후로도 삶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는 어린 시절의 산책, 발터 벤야민이 주목했던 대도시 파리의 아케이드를 거니는 소요逍遙, 성인聖人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를 통해 믿음을 확고히 다지는 성지 순례 등 걷기가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실로 다종다양한 행위를 아우른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걷기가 자연에서 얻는 충족감, 신선한 자극, 깨달음, 희열, 고통, 고독, 우울 등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시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걷기가 사유의 근육을 키워주는 하나의 철학임을 호소력 있게 주장한다.

니체와 루소, 걷기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우리는 책 사이에서만,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사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외에서, 특히 길 자체가 사색을 열어주는 고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생각하고, 걷고, 뛰어오르고, 산을 오르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즐거운 학문》§366 (32~33쪽)

나만의 도보 여행에서만큼 많이 생각하고 많이 존재하고 많이 체험한 적은 결코 없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여행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장 자크 루소,《고백》제4권 (108쪽)

춤추는 건각健脚 니체, 바람구두를 신은 랭보,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철학자의 길’을 거닌 칸트, 자본주의의 아케이드를 통과한 벤야민……. 이들은 모두 ‘걷는 사람’이자 ‘걷는 철학자’, ‘걷는 작가’였다. 이 책은 걷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일대기를 풍부히 제시한다. 이들이 어떻게 걸었는지, 걷기를 매개로 또는 걷기에 대하여 어떻게 사유하고 어떤 저작을 남겼는지를 통해 ‘걷기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평생에 걸쳐 걷고 또 걸은 철학자 니체와 루소는 걷기를 통해 깊고 넓게 사유하며 독특한 사상 체계를 구축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근대성을 뛰어넘는 사유를 시도했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젊은 시절 대학 교수로 일했으나 끔찍한 두통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알프스의 산들과 호숫가 등지를 오랫동안 걷곤 했다. 이로써 고통을 잠시나마 잊는 한편, 자연 속에서 구상하고 상상하고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걷기로 점철된 10년 동안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즐거운 학문》등의 대표작들을 집필했다. 저자는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며 니체의 사유에서는 오랜 걷기를 통해 체현된 “육체의 유연성과 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이후 재차 몸 상태가 악화되어 예전처럼 걷기 힘들었던 니체는 한동안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이탈리아의 도시 토리노를 발견하고는, 그곳 강변을 따라 오랫동안 걸으며 샘솟은 영감으로 다시금 집필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내 광기에 사로잡힌 그는 마부에게 맞은 말의 목에 매달린 채 눈물을 흘리거나 횡설수설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말년에는 쇠약해진 채 어머니와 여동생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와중에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늦은 오후 오랜 산책을 하며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문명과 인위적인 사회 제도에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설파한 루소는 인생의 청춘기와 절정기, 황혼기에 세 번의 위대한 걷기를 체험했다. 흥분과 열정으로 충만하여 유럽 전역을 떠돌며 견문을 쌓았던 청춘기의 걷기는, 문명과 허위에서 벗어난 원초적 인간을 발견하여《인간 불평등 기원론》,《에밀》등의 파격적인 저작을 쓰도록 영감을 준 절정기의 걷기로 이어진다. 이 주요 저작들을 통해 펼친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된 루소는 인생의 황혼기에 숲 속을 산책하고 식물을 채집하며 위안을 얻고 당시의 심정을 유고작《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담담히 밝힌다. 이처럼 루소는 평생을 걸으며 문화와 교육, 예술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자연인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니체와 루소 외에도 자본주의와 몰인간성을 경멸하고 안전한 집 안을 벗어나 길 위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던 비트 제너레이션의 작가 케루악·스나이더·긴즈버그·버로스, 매일 산책하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삶에 대해 성찰한 자연 문학가이자 시민의 자유를 옹호한 실천적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바깥을 떠돌며 원초적이고도 자족적인 삶을 살면서 ‘날것’의 사유를 펼쳤던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 철학자 등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걷기 ― 산책, 소요, 일주, 탐험, 방랑, 성지 순례, 행진……

걷는다는 것이 단지 정처 없는 산책이나 외로운 방황인 것만은 아니다. 걷기는 역사 속에서 형태를 갖추며 체계화되었고, 이 형태는 그것의 전개와 기한, 목표를 결정했다. 순례는 이 문화적 형태들의 일부를 이룬다. (161쪽)

간디가 생각하는 걷기는 인내가 필요한 느린 에너지다. 걷는 동안에는 눈부신 활동이나 뛰어난 공로, 공적에서 멀어진다. 걷기는 간디가 좋아하는 겸허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상기하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곧 가난한 자의 상황이다. 우리의 유한성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282쪽)

걷는다는 것은 실로 다종다양한 행위를 아우른다. 집이나 학교, 회사 등 단순히 어느 ‘안’에서 다른 ‘안’으로 건너가기 위한 일상적인 걷기가 있는가 하면, 피로와 위험을 감수하며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몇날 며칠을 걷는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걷기도 있다. 자신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이 온갖 위험 부담을 안고 로마나 산티아고,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들의 걷기가 바로 그러하다. 순례자들은 신앙심을 한층 더 돈독히 하고, 자신이 믿음에 충실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먼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혹은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나 가족, 친구가 중병에 걸렸을 때 성인에게 완쾌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안고 걷기도 했다.
인도의 정치가이자 민족운동 지도자 간디의 삶에서 보듯, ‘저항’ 혹은 ‘평화’를 의미하는 정치적인 걷기도 있다. 그는 대영제국이 소금 수확권을 독점하려고 부과한 ‘소금세’에 맞서 단순한 시위를 벌이는 대신 대규모 ‘소금 행진’을 조직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실행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은, 이 집단적이고 평온한 불복종운동은 오히려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성공을 거두었다. 간소함과 겸허함, 청빈함을 구현한 걷기, 단호함과 의지를 결연히 담은 걷기는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과 비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힌두교 광신도에게 암살당하기 전까지 간디는 말년에도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는 벗어났으나 종교 갈등으로 분열된 조국의 지역 곳곳을 걸어 돌아다니며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책은 성지 순례나 정치적 행진처럼 뚜렷한 목적을 지닌, 일종의 고행과도 같은 걷기 외에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혹은 감미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걷는 파리 튈르리 공원에서의 걷기, 대자연 혹은 도시 속을 거닐며 주변 풍경을 오감五感으로 받아들이는 산책과 소요 등, 걷기의 다양한 양상을 제시하고 그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걷는다는 행위가 복합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갖가지 감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걷기

천천히 걸어야 할 날들은 무척 길다. 이런 날들은 걷는 사람을 더 오래 살게 만든다. 매시간을, 매분을, 매초를 억지로 서로 잇고 가득 채우는 대신에 그것들이 숨을 내쉬도록, 더욱 심오해지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59쪽)

걷기는 우리의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고양시키거나 중력을 속이거나 속도나 고양에 의해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조건에 환상을 품는 것이 아니라, 지면의 단단함과 육체의 허약함을 깨닫고 땅에 발을 내딛는 느린 동작으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조건을 실현하는 것이다. (265쪽)

두 발로 대지를 거닐 때,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어떤 감각과 감정이 깨어나는가? 걸을 때 촉발되는 갖가지 감각과 감정에 주목한 이 책은 ‘걷기의 감각학·감정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걷기는 우선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멈춤’의 자유를 주고 사회적 의무를 잊게 하여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한다. 또 며칠 동안 걷다 보면 ‘안’과 ‘밖’이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고 뒤섞이며, 풍경 속에 살고 그 풍경을 천천히 소유하는 것처럼 느끼는 순간이 온다. 걷기가 우리의 공간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 걷기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혼자 걸어야 한다. “우리는 걷기 시작하자마자 즉시 둘이 된다. 심지어 혼자 걸을 때에도 육체와 영혼이 대화를 나눈다.” 걷기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활발히 대화하도록 격려하고, 결국에는 둘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고된 걷기 체험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티베트의 웅장한 얼음산으로, ‘우주의 중심’으로 불리는 카일라스 산을 순례하는 사람은 갖은 고생 끝에 그 압도적인 광경을 마침내 목도하면 탈진과 도취 상태를 연이어 겪으며 다시 태어나는 듯한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걷기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기쁨과 즐거움, 충만함, 행복, 평정 등 어찌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감정들을 이 책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세밀하게 구분하고 정의한다. 다양한 종류의 걷기를 일상적으로 행해오고 걷기를 끊임없이 예찬해온 저자 특유의 경험과 감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철학 교수로서 학자의 길을 줄곧 걷고 있는 저자는 도서관에 틀어박힌 채 남들이 쓴 책들만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책상물림’ 학자들의 자세를 비판하고 밖으로 나와 걸으며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이며 사유해야만 얽매인 데 없이 자유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바깥에서 자연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걷고 보고 느끼고 생각할 것을 권유하는 저자의 일관된 목소리는 집 안에, 사무실 안에 갇힌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을 밖으로 불러내어 어느새 걷기 시작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구제 불능의 칩거자들도 매료시킬 놀라운 작은 책.
- Le monde des livres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생각들을 펼쳐 보여주는 분류 불가능한 책.
- L’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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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마다 도봉산이나 수락산으로 갈 수 있는 7호선을 타노라면 등산객으로 가득차 있는 걸 보게 된다. 어떤...

      주말마다 도봉산이나 수락산으로 갈 수 있는 7호선을 타노라면 등산객으로 가득차 있는 걸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정말 많아서 평일 아침 출근길 못지않다. 등산 열풍이 불어닥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만 아직도 그 위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내의 등산 인구만 해도 무려 1800만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바야흐로 '걷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생각해보면 걷기는 유일하게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걷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유는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상적 행동이라 미처 사유의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공기와 물이 너무도 흔하기에 우리들이 그 소중한 가치를 자주 잊어버리듯이.

     

     하지만 이제 한 권의 책이 있어 거기에 깊은 탐사등을 비추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가 집필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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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까지만 해도 산책은 서양의 귀족이나 시민 계급이 교양을 쌓고 나타내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산책은 급속도로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 현대인들에게 걸음은 이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도시인의 걸음 속도가 얼마나 빠른 지를 상기해 보라. 또 조금만 더 걷게 되어도 이내 짜증을 내는 이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지도. 그만큼 걸음은 근대의 중요한 경험과 대화의 통로에서 그저 귀찮은 짐이요 없애야 할 장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 해도 1800만이나 되는 인구들이 주말이면 일상의 걷기 보다 더욱 힘든 등산을 하고 먼나라에서까지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서는 트래킹을 하기도 한다. 등산이나 트래킹은 일상의 걸음이 스포츠라는 형태로 소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걸음은 어떻게든 부담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짐으로 여기면서도 스포츠화된 걸음은 일부러라도 애써 하려들고 있으니 어째 좀 모순으로 보인다. 왜 이런 것일까? 왜 일상의 걸음은 즐기지 않으면서도 스포츠화된 걸음은 그토록 즐기려는 것일까?


     사람들은 등산이나 트래킹에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꽉 막힌 일상에 창문을 내듯 뭔가 탁 트인 듯한 기분을 가져다 준다고. 그 해방감이 자신을 그 쪽으로 이끈다고 한다. 넓은 세계와 마주하며 자신의 크기를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하지만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의 첫 문장에서 단언한다. 걷기는 절대 스포츠가 아니라고.

     등산이나 트래킹은 진정한 걷기가 아니다. 그로는 거듭 강조한다. 진정한 걷기는 등산과 트래킹과 달리 목적이 없다. 그건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하는 움직임이 아니다. 진정한 걷기는 그저 움직임이다. 새가 날아오르듯이 훌쩍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는 것. 그렇다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게 아니다. 그저 걷는 것 자체가 주어진 일상에서 한 발 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 준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객관적인 거리를 만들어준다. 걷기는 달리 보게 만드는 움직임이다.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러한 걷기의 진정한 가치를 꾸준하게 걷기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 온 서양의 지식인들을 통해 설득력있게 들려준다. 거기엔 우리들이 잘 아는 니체도 있고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던 시인 랭보도 있으며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루소 '윌든'을 쓴 소로도 있고 '순수이성비판'의 칸트 그리고 보들레르를 통해 현대 지식인들은 모두 산책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던 발터 벤야민도 있다.

     

     그로를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만나다보면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는 지적 형성 여정에서 걷기가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그로는 그 중요성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실증하는데 그것으로 부터 우리는 두번째의 것을 아울러 알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걷기 또한 그들의 걷기 만큼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특히 발터 벤야민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터 벤야민은 주로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걷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천착했다. 그에게 자본주의 시대란 무엇보다 뭐든지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정의된다. 인간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소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 바라보는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인간은 그저 팔리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란 사실 보다 비싼 가격으로 자신을 팔도록 하는 노력에 다름아닌 것이다.


     한 마디로 보편적 매춘의 시대다. 모두가 자신을 팔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하여 '군중'을 이룬다. 모두 자신을 팔려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군중은 그 때문에 개인에겐 짜증과 기피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군중은 타인을 즉시 경쟁자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일상의 걸음을 귀찮아하는 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우리 대부분은 늘 군중 속에 섞어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군중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경쟁 뿐이다. 빨리 걷지 않으면 뒤처지게 만드는 경쟁자들. 마치 속도전을 치르기라도 하듯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걸어가려고 안달한다.

    목적이 분명한 걸음이다. 이기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하고 나 빼고 군중 속의 모든 사람은 다 경쟁자라 숨이 막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등산이나 트래킹에서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느끼는 것도 정말은 그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그러한 군중에게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말이다.

     

     그로에 따르면 벤야민은 군중의 걸음을 바꾸려 했다벤야민은 전혀 다른 걷기를 제안했는데 그로에 따르면 '소요'다. '소요'는 목적 없는 걸음이다. 그저 걷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걷기. 그게 바로 소요다. 이 소요는 그대로 장자의 구속 없는 걸음을 뜻했던 '소요유'와도 이어진다. 물론 벤야민이 장자에게서 그 개념을 빌려왔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정처없이 걷기'가 벤야민에게는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키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소요자는 전복적이다. 그는 군중과 상품, 도시 그리고 그것들의 가치를 전복시킨다. (...) 소요자의 걷는 행위는 그 의미가 더 불분명하고, 현대성에 대한 저항도 양면적이다. 전복이라는 것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고 방향을 바꾸고 변할 때까지 과장하고 추월할 때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요자는 고독과 속도, 투기욕, 소비를 전복시킨다. (p. 254)


     걷기는 그에게 달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 매몰되어 있던 사회의 가치로 부터 훌쩍 벗어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가늠하게 만들고 자기만의 시야로 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준다. 그러기에 그는 소비하지도 소비되지도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자신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군중을 가로지르는 걷기는 그에게 있어 오로지 창조의 여정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놓치기 쉬웠던 걷기의 철학적 의미나 사회적 의미를 되찾아 준다. 분명 이 책을 읽고나면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걷기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이다.


     큰 나무 밑의 작은 초목들 사이로 흔적만 남아 있는 오솔길을 한없이 걷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길을 잃어야만 자신의 마음에 더 잘 귀 기울이고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원초적 인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나면 자기 자신과 더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숭배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게만 된다. 다른 사람들과도 더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진심으로 동정하게 된다. 지친 태양의 고요함과 땅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낙엽의 감미로움, 자연의 크고 느린 호흡으로 에워싸인 이 산책길에서는 문명화된 세계, 그 자체의 공포와 거짓된 위대함, 열광적인 행복, 분노 등을 가진 그 사회가, 그 모든 것들이 나무들이 이룬 부드러운 가림막 뒤로 흔들리면서 이제는 오랜 재앙으로 보일 뿐이다.(p. 116 ~ 117)

      이런 이유로 등산은 진정한 걷기가 될 수 없다.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걷는 트래킹도 마찬가지다. 등산은 힘들게 올라온 가파른 비탈길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트래킹은 자신이 거쳐온 머나먼 길을 뿌듯하게 뒤돌아본다. 그런 시선 속에서 걷기에 들인 거리와 시간이 수량화 되면서 만족감이 빚어진다. 걷기가 수치화 될 때, 그것은 경쟁이 되어 버린다. 높이와의 경쟁, 거리와의 경쟁, 기록과의 경쟁. 결국 걷기가 가져오는 것은 자기도취적인 만족감뿐이다. 등산이든 트래킹이든 캠핑이든, 사람들이 그것을 하고 있을 때조차 남이 얼마나 고가의 의류와 장비를 가지고 있는가에 신경 쓰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거기에서 걷기는 '좀 더 비싼 가격의 나'가 되었다는 자긍심 밖에는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걷기란 걸을 때마다 나를 더 쌓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내버리는 것이다그리고 그만큼 달리 될 수 있는 변화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걷기의 의미를 이 책은 독자들에게 깊이 깨닫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상가가 인용된다고 해서 부담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그로의 문장은 탁월하며 번역 또한 매끄럽다. 오늘같이 좋은 봄날, 목적 없이 거닐며 들고 다니다 아무 곳이나 쉼 삼아서 앉아 읽어도 무리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어떤 문장은 새가 달콤한 자장가를 지저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파랑새가 생각난다. 한없이 저 멀리에 있는 줄 알았던 파랑새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바로 곁에 있었다. 걷기가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제 목적에 쩔어버린 운동화의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 새로운 기분으로 종횡무진의 자유를 만끽하는 걷기를 해 보자. 프레데리크 그로의 이 책은 그럴 때 아주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 걷기 좋은 날이 있다. 그날은 사실 뭘 해도 좋은 날이다. 집문 밖을 나가 산책이나 등산을 즐겨도 좋고,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걷기 좋은 날이 있다. 그날은 사실 뭘 해도 좋은 날이다. 집문 밖을 나가 산책이나 등산을 즐겨도 좋고,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은 날이다. 땅을 딛고 걸어가는 일은 매우 인간적인 행위다. 단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길을 걷는 이가 누리는 자유는 크게 세 가지다. 멈춤의 자유, 반항과 일탈의 자유,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자의 자유가 그것이다. 

    첫째, 멈춤의 자유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자유, 소박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일시적인 단절을 누리다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자유다. 최근에 다시 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안경>이 바로 그런 멈춤의 자유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간접적인 방식이지만 '젖어들기' 쉬운 이가 바로 길을 걷는 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둘째, 반항과 일탈의 자유는 시원적 동물로서 존재할 자유, 나를 넘어서는 반항적인 자연의 자기 초월로서의 자유다. 가령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고독한 산책자 루소는 야생의 순수한 원초적 인간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 걸었다. 

    셋째,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자의 자유는 포기의 자유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이 풍성하게 주어진다." 하늘의 큰곰자리 별들을 여인숙 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이는 진정한 영성인이다. 
    프랑스 인문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느리게 걷고 깊이 사유하며 자유롭게 살다"간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걷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나와 같은 부류, 즉 나의 동료들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걷기가 스포츠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걷기는 기술과 규칙, 점수를 따지는 경쟁의 행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가 보기에 걷는 인간은 '잘 젖어드는 사람들'이다. 
     
    홀로 걷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있고 더불어 걷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있다. 니체, 소로, 루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전자에 해당한다. 스티븐슨은 『당나귀를 타고 세벤 지방을 여행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대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혼자 도보 여행을 해야만 한다. 여러 명이 함께, 혹은 심지어는 두 명이 함께 도보 여행을 할 경우 도보 여행은 이름만 도보 여행이 되고 만다. 그것은 도보 여행과는 다른 무엇으로, 오히려 소풍에 가깝다. 도보 여행은 혼자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멈춰 서기도 하고, 계속 길을 가기도 하고, 이쪽 길이나 저쪽 길을 따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리듬대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 최근 몇달째 Personal Study를 하면서 Public Library를 걸어다니고 있는데, 걷는 동안 공공도서관...

    최근 몇달째 Personal Study를 하면서 Public Library를 걸어다니고 있는데, 걷는 동안 공공도서관에서의 사색보다 더 큰 경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책을 읽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알 수 없듯이(물론 책을 읽지 않고 생각만 하면 위험한 상상에 빠질 수도 있다.) 걸으면서 책 속의 내용을 다시금  되뇌이곤 한다. 곧 걷는 시간이 사유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두 발로 사유하는 걷기라 감히 말하고 싶다.

  •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개짓하고, 인간은 걷기 때문에 개인적 일상에서 작업이 막히거나 책이 솔솔 안 읽어지거나 신경이 날카...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개짓하고, 인간은 걷기 때문에 개인적 일상에서 작업이 막히거나 책이 솔솔 안 읽어지거나 신경이 날카로우면 남한테 화살 날리기 전에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동네나 공원 한바퀴 돌고 돈다. 칼로 깍은 듯이도 살 필요 없고 마음의 힘을 빼 꿈틀꿈틀 유연하게 흘러가는 주변을 바라보면서 걸으며 어느 새 흙처럼 순해진 몸과 마음을 발견한다. 이 책은 "걷기"란 키워드로 자신의 운명과 수직을 이루어 걷은 니체부터 간디, 루소와 랭보...등 위대한 사상가와 시인들이 느리게 걷고  또 걸으면서 깊이 사유하며 자유롭게 살다 간 경험을 보여주면서  걷기의 다양한 성찰이 깊이 와닿는다. 저자는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고 한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디는 것정도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를 만나도 경쟁보다 걷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길을 걸어왔는지  어느 선택 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지 어떤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안다고 한다. "잭 케루악과 개리 스나이더"작가의 작품들에는 위반하라고 하는 소리와 집 밖 드넓은 곳으로 나가라고 외친다. 어리석은 관습과  벽 안의 지루한 안전, 똑같은 것의 권태로움과 반복으로 인한 마멸,모든 걸 다 가진 자들의 소심함을 그리고  변화에 대한 반감을 깊이 버리라는 글에 머리가 절로 끈덕인다.

     

    저자는 그냥 산책만해도 우선 멈춤의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안겨주는 부담을 털고 잠시나마 일을 잊을 수 있고 나가서 한가롭고 여유롭게 걸으며  일탈의 움직임이 한층 더 강해지고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습관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통증에 맞서기 위해 걷고 많이 , 멀리 걷고 깊은 고독에 빠지기도 했던 니체는 늘 고통의 시간으로써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세상의 혼란과 외압, 혼잡함을 피해 달아나 알프스를 거닐면서 짜라스투스트라와 영원회귀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루소는 자기가 걸어야만 정말로 생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단언하면서 걷는다는 것은 모든 아무소리 내지 않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겸허한 태도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줌으로써 다양한 기회를 통해 여러가지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누군가와 동행하면 어쩔 수 없이 부딪치고 방해하고 헛걸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걷기 여행은 혼자하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우너하는대로 자유롭게 멈춰 서기도 하고 계속 길을 가기도 하고 이쪽길이나 저쪽 길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글에 개인적으로 깊이 공감한다. 고른 호흡 뒤에 얻는 평온한 상태는 걷기를 통해 얻는 자유이기 때문에 혼자 걷는게 좋기 때문이다.

  • 근래들어 걷기 예찬론과 같은 걷기를 삶에 있어 생활자와 같은 의미로의 예찬론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음에 그러한 범주...
    근래들어 걷기 예찬론과 같은 걷기를 삶에 있어 생활자와 같은 의미로의 예찬론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음에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또 하나의 책이려니 생각했던 터였다.
    물론 걷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것을 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지만 꼭 예찬론만이 팽배해
    있는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 느낌으로 다가왔고 걸음으로서, 두발로 행하는 행위에서 사유를
    논하는 철학적 색채가 뚜렷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걷기가 뭐 그리 대단할까, 활기 없고 반복적이고 단조롭기까지 한 단순행위가 말이다.
     
    니체와 랭보의 걷기는 그들에게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
    걸으면서 사유하기,사유하면서 걷기라는 정의를 내린 니체의 걷기는 자신의 육체에 사유를 
    불러 일으키는 것들을 갈구했고,자신의 지병을 위한 간곡한 기도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르튀르 랭보의 걷기는 방황과 일탈의 변주곡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왔으며 
    사막의 대상과의 동행을 통해 '난 그저 걸어다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라는 자기 존재의 성찰을 오롯히 해내고 삶의 마지막까지를 길위에서 향유하다 홀연히 
    떠난다.
    길위를 걸으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들판,모든 집,모든 숲과 오솔길, 이 모든 것들은 온전히 
    걷는자 우리를 위한 것이고 우리는 온전히 그것들의 주인이 된다.바로 지배자가 된다는 말
    이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것이 걸음으로서 다 자기 것인데 그 누가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끼
    겠는가 말이다.
    모든것을 지배하거나 바라보거나 하는 것은 바로 소유하는것과 동일한 것이다.
    내 눈 안에 들어 오는 모든것이 다 나의 소유이므로 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다.
    홀로 걸음을 통해 모든 사물의 존재가 내 눈안에 들어옴을 인식하고 나의 소유이며 지배자
    로서의 시발로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역설적인 사유의 체계는 신선하고도 이채롭다.
     
    장자크 루소의 걷기는 어떠한가? 그의 걷기는 완전한 정체성을 되 찾기 위해 걷는 것도 아니고,
    위장된 단독성을 재발견 하기 위한것도 아니고, 얼굴에 다시 가면을 쓰기위해 걷는 것도 
    아니다.루소는 걷기가 자신속에 갖혀있는 원초적 인간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걷는다고 했다.
    즉 자연의 품에서 나온 원시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걷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루소의 경우처럼 걷기를 하면서 원시적 인간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가 묻는다.
    인간사회의 덧씌워진 가면들이 걸음으로서 그속의 때묻은 나를 던저내고 온전히 나를 찾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루소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내안의 원초적인 인간을 발견하고 또 발견해야 한다고,
    끝없이 채찍질하며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같은 사유의 체계속에서 사회적 인간을 원시적 
    인간과 편견 없이 비교해 보라는 질타를 한다.그리고 할 수 있다면 사회적 인간이 그의 악의와
    욕구, 불행 외에도 고통과 죽음으로 통하는 새로운 문들을 얼마나 많이 열어 놓았는지 알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걷기는 마음속으로 늘어 놓는 끝없는 수다의 중단을 가져오고 어리석은 만족, 손쉬운 복수와 
    같은 사념들을 없애준다.
    '저기 있군.저것들은 오래전 부터 나를 기다리지 않고 오래 전부터 저기 있었어. 저것들은 나를
    한없이 앞서 갔고, 내가 가고 난 뒤에도 계속될거야' -126page
    이는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부동의 영원성과 같음이다.
    존재는 그 자리에서 진동하는 고유의 힘이고 진동이며 불변하는 영원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와
    다를바가 없다.
     
    걸을때의 즐거움을 통주저음(通奏低音), 계속해서 나는 은은한 소리와 같다고 하며 통주저음은
    우리의 걸음이 우리 몸과 얼마나 잘 맞추어져 있는지를, 내딛는 걸음에서 다음 발걸음에서 
    잠재성을 발견해 내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걷기 행위의 너머엔 충만감으로 이해되는 존재의 즐거움도 있다.
    산다는것의 즐거움, 자기의 현존과 세계의 현존이 이루는 조화를 맛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다.
    그런가 하면 걷기가 즐거움만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제라르 드 네르발과 같이 한 여인을 열렬히 욕망했음에도 이룰수 없었던 사랑의 아픔을 그는 
    틈틈히 산책하고 방황을 통해 달래었다.
    그의 걷기는 몽상가적 우울의 표상들이 들어나는 걷기의 의미가 발견된다.
    바로 정신착란과 고독을 완전히 정복하려는 것과 같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그를
    볼 수 있음이 안타깝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자신의 존재, 정체성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며 숨쉬기 조차 버거운 삶을 지고 달려 가면서도 일에 목메어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일이다.
    다양한 일들을 하고, 무언가를 보러 다니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 등은 모두 사회적 속박이고 
    문화적 유행이자 인간을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존재'에 대해서는 나중으로 미뤄둔다.
    더 낳은 일,더 급한 일,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때문에 그렇다.
    내일이면 또 같은 일이 되풀이 되고, 정작 내일이 되면 다시 모래 할 일이 그렇게 영원처럼 지속되는
    것이다. 끝없는 터널과 같은 일의 연속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런 삶을 깨고 존재의 있음을 확인하고 자연 속에서 진정한 삶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명징한
    방법으로 걷기는 최적이고, 최고이며, 사유하는 삶을 살게 해준다는데 그 의의를 두어야 하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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