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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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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쪽 | B6
ISBN-10 : 8956251622
ISBN-13 : 9788956251622
흑산 중고
저자 김훈 | 출판사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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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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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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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지식인들과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훈의 역사소설 『흑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루고 있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천주교 순교자인 황사영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여기에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여러 계층의 생생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엮어냈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한다. 정약전은 막막한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그곳에서의 새 삶을 기약한다. 그 시기, 정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은 바다 너머 새 세상의 소식을 꿈꾸고 있었는데….

저자소개

저자 : 김훈
저자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저널, 한겨레신문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소설가 겸 자전거 레이서다. 에세이 『풍경과 상처』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문학기행 1, 2』(공저) 『원형의 섬 진도』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등이 있고,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강산무진』 『남한산성』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이 있다. 2001년 동인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선비 007
사행 032
마노리 038
사공 049
손 싸개 056
박차돌 071
섬 080
육손이 091
하얀 바다 110
방울 세 개 118
게 다리 127
감옥 133
제 갈 길 137
백도라지 142
새우젓 가게 154
마부 164
흙떡 175
날치 183
고등어 189
여기서 197
참언 204
수유리 211
오빠 218
황사경 241
주교 256
항로 267
염탐 285
집짓기 294
토굴 305
네 여자 309
풀벌레 소리 323
자산 332
은화 344
잠적 356
비단 글 362
뱉은 말 366
형장 370
닭 울음 380

후기 385
참고 문헌 388
연대기 391
낱말 풀이 399

책 속으로

백성은 말한다 이 작은 마을에 지난 일 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수령의 행차를 보내고 또 맞느라고 마을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두 발로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또 현감이 바뀌어서, 갈 때 세우는 송덕비를, 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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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말한다
이 작은 마을에 지난 일 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수령의 행차를 보내고 또 맞느라고 마을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두 발로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또 현감이 바뀌어서, 갈 때 세우는 송덕비를, 갈 사람과 올 사람을 합쳐서 두 개를 한꺼번에 세우게 되니 끼니거리도 없는 마을 어귀에 송덕비 스무 개가 즐비하게 들어섰습니다. 백성들이 버리고 떠난 마을에서 신관 사또는 송덕비를 상대로 수령 노릇을 하시렵니까.
바라옵건대 백성의 가냘픈 팔목을 비틀어 손에 쥔 밥을 빼앗지 마시옵고, 선정인지 악정인지는 소인들이 입에 담을 바 못되오니 신관 사또가 오래 머물도록 하여 주십시오……. 소인들이 글월을 올린 일을 소란스럽다 하여 벌하신다면 가랑잎같이 메마른 소인들은 곤장 한 대에 바스러져버릴 뿐입니다. (22쪽, 구례 강마을 백성들이 관찰사 앞으로 올린 소장)

신하는 아뢴다
저 하천下賤들을 살려내도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요, 관곡을 풀어서 거두어 먹인다 해도 강물에 좁쌀 한 줌이요 산불에 물 한 바가지니 곡식만 축내다가 결국은 죽을 것이옵니다……. 인피를 쓰고 태어난 것들을 구태여 없애는 것은 왕정王政이 아니로되, 스스로 죽어 없어지려 할 때 그 가랑잎 같은 목숨들을 가엾이 여길 수는 있으나 애써 구할 까닭도 없는 것이옵니다……. (28쪽, 비변사 당상관들이 어전에 올리는 말)

대비는 명한다
아, 백성들아, 떠도는 지아비와 지어미들아, 그 어린 자식들아, 너희들은 나에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 가서 땅에 붙어서 살아라. 큰물이 지면 지아비는 도랑을 파서 물을 빼고 가물면 물을 가두어서 논밭을 축여라. 지어미는 천을 짜서 늙은이를 덮어주고 밤에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아름답지 않겠느냐. 해와 달의 운행이 곡식을 빚어내니, 모자라면 또 다음 해에 갚아주는 이치는 어찌 모르느냐. 떠도는 길은 죽을 길이고 돌아가서 서로 거두고 돌보는 것만이 살길임을 알아라. (121쪽, 대왕대비가 백성들에게 내린 자교)

정약전은 생각한다
웃으면서 목이 잘린 동생 정약종의 죽음은 몇 달 전의 일이었지만, 전생의 꿈처럼 멀어졌고 멀수록 더욱 선명했다. 한때의 황홀했던 생각들을 버리고, 남을 끌어들여서 보존한 나의 목숨으로 이 세속의 땅 위에서 좀 더 머무는 것은 천주를 배반하는 것인가. 어째서 배반으로서만 삶은 가능한 것인가. 죽은 약종이 말했듯이, 나에게는 애초에 믿음이 없었으니 배반도 없는 것인가. 그런가, 아닌가. (18쪽, 정약전이 정약종의 죽음을 회고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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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

[출판사서평 더 보기]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작가의 말

새 역사 소설로 돌아온 김훈,
신작 장편 『흑산』은 어떤 소설인가?


『남한산성』 이후 4년
김훈, 세상의 마지막 섬 흑산도로 가다

2011년 김훈의 새로운 역사 소설 『흑산』이 출간됐다. 2001년 출렁거리는 휘모리 문체로 허무주의적 영웅의 내면을 그린 『칼의 노래』(100만 부 판매)로 ‘한국 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으로 불렸던 김훈. 그는 2007년 병자호란의 참담했던 역사를 다룬 『남한산성』(60만 부)으로 또 한 번 평단의 상찬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역사 소설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한다. 1636년 조국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던 남한산성의 겨울은 고 박완서 작가로 하여금 “김훈의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살갗을 저몄다”며 감기 몸살을 앓게 했고 한미 FTA 협정 등 당대의 사회적 이슈와 결부되며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남한산성』의 대중적 성공은 역사 소설에 강한 김훈 문학의 본령을 확인하게 했다.

천주교에 매혹된 조선 지식인들
19세기 조선을 뒤흔들다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그는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황사영은 세상 너머의 구원을 위해 온몸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이념에 맞섰다. 조정의 체포망을 피해 숨은 제천 배론 산골에서 그는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북경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단 폭에 일만 삼천삼백여 글자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낡은 조선을 쓰러뜨릴 새로운 천주의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801년 11월 배론 토굴에서 사로잡힌 그는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된다.

『흑산』, 20여 명의 등장인물
얽히고설킨 삶과 인연의 고리를 이루다

『흑산』을 쓰기 위해 김훈 작가는 집을 떠나 올해 4월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들어갔고, 칩거 5개월 만에 원고지 1,135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이제까지 펴낸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이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밀어내며 쓴 지난한 과정 가운데 틈틈이 흑산도, 경기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 충북 제천시 배론 성지 등을 답사했다.『비변사등록』등 사료와 천주교사 연구서 등 책 뒤에 붙은 참고 문헌은 작가가 당시를 그리기 위해 쏟은 고투를 보여준다.
『흑산』의 등장인물들은 20여 명이 넘는다. 이 또한 김훈 소설 가운데 최다 등장인물이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각 계층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흑산』의 장관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천주교도들을 도륙하라며 다급히 자교를 내리는 대왕대비 김씨, 황사영을 체포하기 위해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을 이용하는 우포도대장 이판수, 유배지 흑산에서 왕과도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수군진 별장 오칠구 등이 전통과 근왕주의적 질서를 지탱하려는 인물이다. 반면 어부 장팔수를 비롯해 조 풍헌,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 집안의 면천 노비로서 황사영을 돕는 김개동과 육손이 등은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해체상과 혼돈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실제 천주교 탄압의 빌미가 되기도 했던 여신도들의 활약은 소설 속에서 길갈녀와 강사녀 등의 헌신으로 형상화된다.
특히 마부 마노리는 북경 사행을 따른 길잡이의 경험으로 북경 교회와 황사영을 잇는 밀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배교한 천주교도이자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이 이중 첩자로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를 오가며 벌이는 역할과 여동생 박한녀와의 비극적인 해후와 이별은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소설적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다. 이렇듯 흑산은 마치 대하소설의 스케일을 방불케 하는 높은 완성도와 서사 구조로 독자들의 이목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다.

백성들의 살을 바르는 박민剝民의 참상과
참위설에 기대 말세를 노래하는 민초들

작가 김훈은 『흑산』의 조선 민초들의 참상을 소름끼치는 묘사력으로 그려낸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수령을 위해 송덕비를 세우다 농사를 작파하게 된 백성들의 상소(22쪽), 흙떡을 쪄먹고 공납을 피해 어린 소나무 뿌리를 뽑아 던지는 흑산 주민 장팔수의 절규(196쪽),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본문 58쪽)라고 기도하는 오동희의 언문 기도문에서 조선의 민초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한 삶을 견뎌간다. 『흑산』의 곳곳에서 말세와 새로운 세상을 노래하는 『정감록』 등 도참의 주문이 천주교의 구원과 지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겹쳐지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 줄거리
배반의 삶을 감당하는 자, 정약전
구원을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가는 자, 황사영


1801년, 장판杖板 위의 지옥에서 헤어진 형제들
1800년 정조의 죽음은 노론 벽파의 득세를 가져왔다. 그들은 나이 어린 순조의 섭정을 맡은 대왕대비 김씨를 부추겨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 이가환 등의 남인 세력을 몰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이 천주학을 받아들여 국본을 뒤흔들었다며 천주학에 물든 ‘사학죄인’으로 몰았다. 의금부 국청 마당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지옥이 되었다. 의금부 장대에 묶인 정약용은 천주교를 서슴없이 배반했다. 그는 조카사위 황사영을 밀고했고 천주교도 색출을 위한 방도까지 일러주었다.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약종의 죽음은 나머지 형제들의 죽음을 면해주었다.

정약전, 왜 삶은 배반으로써만 가능한가?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한다. 약전은 막막한 흑산 바다 앞에서 “여기서 살자, 고등어와 더불어…… 섬에서 살자”(200쪽)고 되뇌며 창대 소년과 함께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순매와 살림을 차린다. 함께 천주 교리를 공부하며 세상 너머를 엿보았지만 정약전은 두 동생처럼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세상 너머로 간 약종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약용, 그리고 조카사위 황사영을 생각하며 기진맥진할 뿐이었다. 그가 들여다본 물고기들의 이름과 행태는 『자산어보』라는 책이 될 것이다.

황사영, 세상 너머를 꿈꾸며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다
정약전이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여기의 새 삶을 기약할 때, 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은 바다 너머 새 세상의 소식을 꿈꾸고 있었다. ‘사학의 거흉’으로 지목된 후 체포망이 좁혀오자 황사영은 제천 배론 마을의 토굴로 피신한다. 황사영은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정조가 친히 등용을 약조할 만큼 앞길이 창창한 인물이었다. 정조가 잡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았던 황사영은 하얀 비단을 풀어 박해의 전말과 박해자들을 물리칠 큰 배에 대해 써내려간다. 배교한 유의儒醫 이한직의 소개로 황사영의 밀사가 된 마부 마노리가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베아 주교에게 영세를 받고 황사영을 만나러 오던 마노리가 의주에서 체포됨으로써 황사영 또한 발각되고 만다. 소설은 절해고도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 관련 자료
황사영과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은 1791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정조는 그를 친히 궁으로 불러 손목을 어루만지며 치하했고 황사영은 어수가 닿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사영은 당대의 석학들을 만나 학문을 넓히던 중 다산 정약용 일가를 만나고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가 된다. 처가인 마재 정씨 집안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해 전해들은 황사영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조선 천주교회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고난의 길을 걷는다.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을 빠져 나와 충청도 제천 산골 배론으로 숨어든다. 교도들에 대한 탄압과 주문모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그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하지만 백서(비단에 쓰였기에 ‘백서帛書’로 불린다)를 품고 북경으로 향하던 황심이 붙잡히고 황사영도 대역 죄인으로 능지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이때가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 사건으로 그의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 정명련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된다.
백서의 원본은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백서는 하얀 비단에 가로 62센티미터, 세로 38센티미터 크기이며, 122줄 13,384자가 극세필로 깨알처럼 작고 단정하게 쓰였다. 그 내용은 대략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당시의 천주교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활동, 신유박해 사실과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사실, 끝으로 당시 조선 국내의 실정과 이후 포교하는 데 필요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황사영 백서’는 민족 감정에서 나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한편 교회의 평등주의라는 원칙과 당시 조선사회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신유박해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펴왔던 정조가 죽자 1801년(순조 1) 대왕대비 김씨는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해 역률로 다스리라는 금교령을 내린다. 이때 정약종이 천주교 서적을 옮기다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은 대대적인 박해의 도화선이 되었다.
중국인 신부로서 조선에 잠입해 전도하던 주문모 신부가 이해 5월 참수되었고 11월 황사영 등이 체포되고 12월에 처형됨으로써 박해는 일단락된다. 신유박해라 불리는 이 최초의 대규모 천주교도 박해 사건은 성리학적 질서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사회를 열망한 민중과 지식인의 충돌이었다. 이 사건으로 위축된 천주교 세력은 지식인 중심에서 중인과 선교사 중심의 포교로 재편되고 향후 더 큰 대규모 박해를 예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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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黑山 , 너무 깜깜한... | iv**79 | 2013.07.19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잡히질 않는다.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 깊었다. 자신만의 ...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잡히질 않는다.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 깊었다. 자신만의 감정속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그토록 두려워했던 말의 세계의 빠져버린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는 건 왜일까?  한강을 끼고 자전거길을 달리며 바라봐야 했다던 절두산성지. 그 절두산성지에 관한 이야기 한토막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속에 담겨있는 아픔과 고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건 어렵다. 이미 지나간 시절속에 머무는 한장의 사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저리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구나 싶어 못내 안타까웠다. 작가는 아마도 그 절절함을 글로 뱉어내고 싶었을거라고, 그리하여 이 책이 탄생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속에서 참담하게 펼쳐지는 민초들의 고통이 내게로 전이되어지는, 그리하여 전작과 같은 어느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작품에 손이 가는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사는 권력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소소한 민초들의 이야기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큰 물줄기를 따라 흐르자면 조선 후기의 천주교박해를 다루고 있다. 중요인물들의 이름쯤이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황사영과 정약용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숨어다니는 황사영과 유배자 정약전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흔들린다. 그리고 끝내 비단 글로 표현되어지는 백서사건에 이르게 되니 그쯤이면 황사영의 죽음과 흑산도에서의 정약전이 어떤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신유박해때 충북 제천 배론의 산중으로 피신하여 토굴에서 백서를 썼다는 황사영의 여정은 거기에서 끝이 난다. 黑山보다는 玆山이 그래도 한줄기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이름이기에 玆山으로 바꾸노라던, 정약전의 말 한마디에 베인 처절함속에서 玆山魚譜는 탄생되어진다. 황사영의 죽음과 玆山魚譜의 탄생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어디에서나 환상처럼 떠오르는 황사영의 이미지가 안고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길은 애달프다.
     
    민초들이 바랐던 건 큰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작은 것마저도 빼앗겨야 했음에 그들은 허덕였다.  논이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곡식과 바꾸는 섬에도 세금과 신역은 쌓였다. 보리밭과 대밭에는 소출에 관계없이 면적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보리밭 두렁에 심은 콩은 모종 수를 헤아려 세금을 매겼다. 어디 섬뿐이었을까? 가는 곳마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민란이 일어나고 유랑하는 백성이 늘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그래서 그들 가슴속에 이미 와 있었던 존재처럼 가만히 들어와 앉았을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따로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에게는 습성처럼 자리했을 진리였을 것이다. 살고 싶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살기 위해서 그들은 배교를 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바로 삶이었기에.
     
    남양의 성모성지를 찾아가고, 배론성지 같은 사학죄인들의 유배지나 피 흘린 자리를 답사했다던 작가의 여정을 생각한다. 물고기를 들여다보던 유배객의 자취가 풀에 덮였다던 그 풍경을 생각한다.  왜일까?  을씨년스러웠을 작가의 마음이 더 아프게 다가왔던 까닭은. 소설보다 작가의 마음이 더 아리게 다가오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오래전 어느날, 남양의 성모성지를 찾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내 모든 것이 차분하게 내려앉던 그 날의 기억. 묵주기도의 길, 십자가의 길.... 한걸음 한걸음 옮기며 거기에 두고 온 내 마음 한조각, 잘 있는지... /아이비생각
     
  • 흑산 | ba**grin | 2013.07.1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비릿한 갯내음이 났다. 이 책을 통해 김훈은 비릿한 생명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책을 다 읽...
    비릿한 갯내음이 났다.
    이 책을 통해 김훈은 비릿한 생명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책을 다 읽고 마음을 정리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저려서 이 책을 다 읽지 못하겠다는 친구에게
    '흑산'을 빌렸는데 나도 선뜻 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지는 못했다.
    소재도 소재려니와 고해성사를 보듯 그의 소설은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가시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민초인 듯도 하고 내 흥에 겨운 어느 박해자인 듯도 하고
    어쩌면 배교자가 되어 여기저기 염탐을 하고 다닌 듯도 하고,
    마음을 갯벌에 내놓은 것만 같은 스산함이 일었다.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지상에 남는 자와 천상으로 떠나는 자를 
    이 땅 어딘가에 데려다 놓은 이 책은 정약전과 그의 형제들, 황사영과 정명련,
    박해와 순교 또는 배교라는 상황들 안에 각자의 절실한 생명의 이야기를 빚어내고 있다. 
    박차돌, 강사녀, 마노리, 김개동, 육손이, 아리, 창대, 조풍헌, 순매, ...  
    어느 하나 이해되지 않을 삶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다급한 말이 앞서는 정순왕후마저도.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서부터 죽음일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듯 현실과 허구의 경계 또한 또렷하지 않은
    이야기들 안에서 절실한 이들의 필요가 넘쳐 작가의 필치가 간결명료하면서도 핍진해있어
    흑산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마재 앞을 흐르는 강물에서도 한강이 바라보이는 절두산 아래서도
    마냥 갈증이 내 안에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있어 신앙이란 무엇일까.
    삶에의 강한 애착이 배교였다면 그보다 강한 애착은 순교였을까.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는 작가가 살려낸 이들의 삶이 
    강한 칼날로 오랫동안 가슴을 헤집을 것 같다.
      
  • 천주교 전래과정상의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배론성지에서 쓰여진 백서를 중심 양대축...
    천주교 전래과정상의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배론성지에서 쓰여진 백서를 중심 양대축으로 구성되었다.
    정약현(사위 황사영,두물머리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냄), 정약전(배교, 흑산도 유배), 정약종(순교), 정약용(배교, 전남 강진 유배) 형제들의 이야기.
    정약전과 정약용은 배교하며 황사영(조카사위)을 발고하게 된다.골육을 발고해야하는 고통이 오죽하였을까...정약종은 끝내 순교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한 믿는자들의 아픔을 잘 그려낸 작품.
  • 흑산-김훈 | an**hysi | 2012.07.1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가난한 백성들 지식인들, 그리고 서학이 들어오고 서학을 탄압하는 조선의 왕조에...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가난한 백성들 지식인들, 그리고 서학이 들어오고 서학을 탄압하는 조선의 왕조에 대한 소설이다. 왜 천주교가 조선에 퍼지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답이 되는듯한 내용이 들어 있다. 짐승만한 대접도 받지 못하던 민초들에겐 서학, 천주교는 새로운 희망이며 나아갈길이 었을것이었다. 서학을 접한 지식인들과 백성들은 그것이 희망이 었을것인데. 정권을 붙잡기 위한 왕실에서는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것이다, 처음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는 조상의 위패를 불사르며,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하는 패륜적이며 반인륜적인 학문이었을것이다. 그러나 민초들에겐 그들의 힘든 삶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희망이었을것이다. 책내용의 많은 부분이 정약전의 유배생활과 천주학쟁이들의 고문과 억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힘든 삶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그들에게 과연 서학은 어떤 학문이었는지 ......................
  • 흑산-역사의 공간. | hj**766 | 2012.06.2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1
                &...
     
                                                                         1.

      19세기 벽두(劈頭) 순조1년(1801년) 음력2월 신유박해가 시작된다. 사학(邪學)으로 지목받아온 천주교를 뿌리 뽑아 정학(正學)인 성리학을 바로 세우자는 명분이었다. 명분만 그렇지 실제로 천주교에 연루된 남인(南人)들의 정치적 몰락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남인들이 천주교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선대 정조(正祖)에 의해 위축된 노론벽파의 정치적 회복을 위한-묘책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대왕대비 정순왕후와 노론벽파가 다정히 손잡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시작하였다. 이미 기운 게임이었다. 노론벽파 입장에서 보면 명분도 살리고 정치적 잇속도 챙기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들에게 국시(國是)가 유교인 조선에서 천주교가 척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흑산>은 이런 신유박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실제 인물들과 가공 인물들을 가로세로로 얽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꾸는-너무나 유명한 작품 <침묵>, <여자의 일생>, <위대한 몰락>을 통해-일본 천주교 박해사를 가슴으로 다루고 있다. 위의 책들을 대할 때, 나는 우리나라도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소설이 등장하기를 바랬다. 내가 비록 천주교 박해사를 안다 해도 소설로서 창작한 박해사를 가슴으로 읽고 싶은 소망은 간절했다. 물론 기독교선교사를 다룬 역사소설이 국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연희의 <양화진>이 그렇다. 구한말 개신교 외국인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다룬 이야기다. 그러나 그 책은 나에게는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2.

       역사적 사실이었던 천주교 박해사와 소설을 통해 다시 드러나는 박해사는 분명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왜냐하면 역사와 소설은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촉감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크게 얽매이지도 않으면서도 정감있게 역사를 다시 살려내는 묘미가 있다.
       사실 수많은 역사소설은 기전체나 편년체 양식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에 주력한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작품도 역사소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은 인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떤 감동을 주기에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감동과 더불어 뭔가가 결여된 허(虛)를 동반하여 항상 독자들에게 공(空)을 남긴다. 이런 책들은 내가 보기에 대체로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들의 결합을 위해 이런 저런 구석들을 뜯어내고 새로운 조합으로 결합하는 수고로움이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그 차이는 작가의 역량이다.

       <흑산>의 저자 김훈 선생은 영조, 정조, 순조시대를 아우르고 버무리며 공동으로 가질 수 있는 이쪽저쪽을  찾아내고, 공동이 아닌 이것저것도 새롭게 버무려낸다. 보기 좋고 먹음직스런 한정식 같다.
       저자는 <흑산>이라는 소설이 ‘온전한 실존인물이 아니다.’, ‘허구성 또한 온전하지 않다.’, ‘배경의 시대성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흑산>은 실제적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흑산>이라는 공간을 통해 함께 살을 맞대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만나 <흑산>이라는 또 다른 사실을 만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배경 역시 온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흑산>안에서 온전한 사실로서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건을 영원히 연결해주는 매체다.

                                                             3.

       기득권자들은 변혁을 혐오한다. 오히려 두려워한다. 변혁은 그들에게 실리를 잃게 하든가 포기해야하는 경우를 많이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인 물인 기득권자와 그의 주변은 항상 부패하기 마련이다.
       조선후기에 다다르자 부패한 왕조사회의 가망 없는 현실에서 오는 백성들의 절망감은 하늘에 계신 천주에 대한 희망으로 피어났다. 체념 속에 피어나는 희망은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위로받기를 원하던 백성들에게 천주교는 물먹은 스펀지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던 젊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달되었다. 소수자이며 아웃사이더로 오랜 세월을 보냈던 남인들에게 서학과 함께 천주학은 새 지평선이 되었다. 밤바다를 여는 등불이었다.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역사의 용납은 거기까지였다. 영조(英祖)가 노망(?)이 들어 환갑이 지난 나이에 이팔청춘의 각시를 얻었으니 그녀가 정순왕후다. 정조 사후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가 대리(代理)청정(聽政)한다. 세상의 권력은 기득권이었던 노론벽파에게로 다시 돌아가자 천주학으로 대표되던 요망한 무리들은 철퇴를 맞아야했다. 세상은 가던 방향에서 되돌아가면 돌아간 방향으로 가속도가 거칠게 붙기 마련이다. 뉴턴의 가속도의 법칙 저리가라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정약전, 정약용 형제들은 거친 가속도에 깔려 질식했고, 황사영은 백서(帛書)로서 투쟁하려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천주의 뜻인지 하느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시며 수구파(守舊派)들의 손을 들어주신다.

       <흑산>은 장렬하게 살다간 순교자들의 발자취이며, 조선후기를 살았던 비참한 백성들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고발문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흑산>은 암울한 시대적 공간 속에 신앙을 증거하며 살다간 순교자와 기교자(棄敎者), 배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증거(證據)하는 이야기다.
       비록 시대가 기교자나 배교자를 낳았다 한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리요. 그것은 하느님 앞에 미진한 백성으로서 선택일 뿐이고, 침묵하시는 하느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고통이 눈앞에 어른거려 많은 생각에 잠겼다. 신앙의 자유가 국법으로 보장된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은 마치 느끼지 못하는  공기가 나를 살려주는 것과 같다.
       저자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흑산>을 통해 만난 저자의 숨결로 인해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 나의 눈길이 갈 것이다.

        <흑산>에서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과 허구적 인물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대하소설로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풍부한 주제거리라 생각한다. 내심 이 소설이 대하소설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독자로서 가질 수 있는 소박한 욕심이다. 이 욕심을 접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4. 이 소설과 연관된 역사적 배경.

    1). 조선의 천주교가 정치적으로 비화(悲話)된 요인.
       중국보다 더 중국적이길 원했던 서인들의 후예 노론들은 성리학을 교조(敎條)화하여 성리학 이외는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간주했다. 이 과정에서 숙종은 남인의 거두 윤휴에게 사약을 내림으로서 남인들의 몰락을 지원했다. 비록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하고자 했으나 이인좌의 난과 나주벽서사건으로 남인 등용의 뜻을 접어야 했다. 남인이 입조하기란 콩밥 속에 들어간 콩의 숫자와 쌀의 숫자를 비교하는 것과 같았다. 정조가 정치적으로 남인을 양성하였지만 그 시대에도 주도권은 여전히 노론이었다.  
    2).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몸소 겪은 불운한 남인들은 새로운 학문적 지평으로 서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공교롭게도 천주교 신봉자들이 노론의 정적인 남인들이라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일부 몽매한 남인들에 의해 유교국가에서 조상의 제사를 폐지하고 위패(位牌)를 불 지르는 과격한 행위로 천주교의 실체를 드러냈다. 현대로 말하자면 부모를 살해한 패륜(悖倫)적 행위와 같은 짓이다. 정치적 소수가 비록 힘이 약하다고 동정을 받는다하더라도 행위가 과격하면 외면의 대상이 된다. 과거나 현재나 다르지 않다.
    3). 파리외방선교회인 예수회는 중국선교를 위해 제사를 미풍양속으로 보고 교황을 설득하려했으나, 적대관계에 있었던 프란체스코파와 도미니크파는 제사를 사교행위로 본다. 이들은 교황에게 제사 금지를 요청한다. 결과적으로 예수회의 입지는 좁아지고 제사는 사교행위라고 결말을 내린다. 이는 교황청내 계파간 분쟁의 결과였다. 로마교황청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대륙간의 문화적 문명적 차이점을 보지 못했다. 결국 1784년 청나라 천주교박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제사를 사교행위로 본데서 출발한다. 모세의 십계명 중 우상숭배금지의 해석범위가 그 후에도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비로소 일단락 짓게 된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생긴 이런 판단은 하느님을 믿으려는 거룩한 백성들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거둬들이게 하였다. 동양이라는 어마어마한 땅에 천주교선교 사업이 한동안 갈 길을 잃고 만다.

                                            5. 다산(茶山) 정약용의 가계.

       정약용의 부 장재원은 나주 정씨로 첫 부인 남씨에게서 장자 정약현을 낳았다. 정약현은 이상하게도 천주교에 발을 들이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당시 서학의 선봉장이며 천주학을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경주 이씨 이벽(李蘗)의 누이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정조 19년에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딸 명련이 황사영과 혼인한다. 황사영은 백서사건으로 능지처참 당하고 명련은 관노로 전락했다.
       이어 부 장재원은 윤선도의 집안이며 윤두서의 손녀인 해남 윤씨를 후취로 맞아드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누이 정씨를 낳는다. 이런 과정에서 정약용의 집안은 자연히 남인 집안의 초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정약전은 정조 14년에 형 약현보다 먼저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격은 자유분방했다고 한다. 벼슬은 병조좌랑에 이른다. 아들 학초를 두었다. 소설 속에서처럼 술을 즐겼다고 한다.
      소설 <흑산>의 주인공이며 흑산도에서 어부들과 교감하며 살았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창대는 장덕순으로(張德順) 그와 함께 <자산어보>를 저술한다.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학연구서로 현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서당, 복성제(復性齊)를 지어 향리의 동몽들을 가르친다. 
       소설 속 순매와 흑산도에서 혼인한다. 기록에는 몰락 양반의 피를 받은 흑산도 천출(賤出)출신의 여(女)로 기록되어 있으며 둘 사이에 아들 학소와 학매를 두었다. 본처 소생 학초가 죽자 동생 약용이 학소를 장자로 입적하도록 하였으나 정작 정약전 본인은 본처가 아직 살아있고 천출이라 입적을 반대했다. 그 외 흑산도의 소나무 정책을 보면서 조선의 소나무정책을 비판하는 저서 <송정사의(松政私議)>를 지었다. <자산어보>와 <송정사의>는 실사구시를 탐구하는 실학사상을 대표하는 저작물로 자리 매김을 한다.

       정약종은 배교를 포기하고 순교하여 참수형에 처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박해가 일어나기 전부터 신앙문제로 형제들과 외떨어져 지냈다. 신유박해 때 장자 정철상과 동시에 참수형을 당했고, 1839년 기해박해 때 부인 유씨 차자 하상 딸 정혜 모두 순교했다. 가족 8명 모두 순교했다. 부인 유 체실리아, 아들 정하상 바오로, 딸 정정혜 엘리사벳이 한국 순교성인 103위에 올라있다. 

      조선의 르네상스 인간이라 불리는 정약용은 정조15년 (1791년) 진산사건으로 배교한다. 진산사건이란 천주교 신자인 정약용의 외6촌인 진사 윤지충과 내외종 사촌 권상연이 제사를 폐지하고 위패를 불태운 사건을 말한다.
      정약용은 정조21년(1797년) 동부승지로 하교받자 동부승지사양상소문을 올려 다시 한 번 천주교와 결별했음을 밝힌다. 그래서 <흑산>의 저자는 그를 배교자가 아닌 기교자(棄敎者)라 했다. 그러나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국문(鞠問)시 황사영을 비난하고 사학의 소굴인 천주교 소굴을 찾는 법을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이것은 그의 목숨과 맞바꾼 행위였다. 지금 우리는 그를 배교자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서 배교와 순교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장자 학연과 차자 학류를 두었고 차자는 <농가월령가>를 저술했다.
      
      누이 정씨는 이승훈의 부인이었고 신유박해 때 사형 당한다. 이승훈의 집안은 4대에 걸쳐 순교한다.

      소설 속에서 황사영에게 도망가기 편하게 상복을 지어준 여인은 최설애와 김한빈의 여식 성단이다. 이들이 만들어준 상복을 입고 덕소에서 김한빈을 만나 여주와 원주를 거쳐 소설 속 김개동인 배론의 김귀동의 집으로 도피한다. 비록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편입하고, 대포로 무장한 서양 선박에 정병 파병을 요청하여 조선을 강제개국하려는 열망이 역모(逆謀)로 큰 문제가 됐지만, 황사영의 백서는 조선에 천주교 국가를 건설하여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소설 속 여인 길가녀와 강사녀에게서 최초의 여신도 회장인 강완숙의 삶과 겹쳐진다.  

       <흑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관찰하다보면 삶과 죽음 그리고 화(禍)와 복(福)은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하느님은 운명의 장난을 침묵으로만 지켜보시는 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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