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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4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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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쪽 | A5
ISBN-10 : 8970126244
ISBN-13 : 9788970126241
화장(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4년도) 중고
저자 김훈 | 출판사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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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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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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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 특별상 수상작인 문순태의 '플라나리아' 외에 구효서, 김승희, 전성태, 고은주, 하성란, 정미경, 박민규 등의 추천 우수작 8편의 단편소설과 수상자의 당선소감, 자전적 에세이, 심사평 및 작품론을 수록하였다. 대상 수상작 '화장'은 주인공이 아내의 화장(火葬)과 은근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젊은 여인의 화장(化粧)을 절묘한 표현기법으로 오버랩시키면서, 모든 소멸해 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 의미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추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저자소개

저자 :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하고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문학기행1, 2』,『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내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목차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제28회 이상문학상 특별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대상 수상작
김훈: 화장

대상 작가 자선 대표작
김훈: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가까운 숲이 신선하다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특별상 수상작
문순태: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수상소감: 그리움 것들은 등 뒤에 있다

우수작(등단년도순)
구효서: 밤이 지나다
김승희: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
전성태: 존재의 숲
고은주: 칵테일 슈가
하성란: 그림자 아이
정미경: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다
박민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제28회 이상문학상 선정 경위와 총평

각 심사위원들의 중점적 심사평
이어령: 두 여체의 대위법과 생명의 심연 넘기
김윤식: 어떤 신석기인의 세 단계 글쓰기론
서영은: 수상 작품 8편의 8인 8색 다양성
윤후명: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승화
권택영: 문순태의 특별상 작품에 보내는 찬사
권영민: 육체의 담론과 소멸의 미학 그린 획기적 작품
김성곤: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의 심오함과 묘사의 탁월성

대상 수상자 김훈의 수상 소감과 자전적 에세이
수상 소감: 스스로 두려운 마음으로 늘 신인으로 살고 싶다
자전적 에세이: 가건물의 시대 속에서

김훈의 작품세계와 작가 김훈을 말하다
작품론: 신들의 황혼-김인환
작가론: 여성 작가들의 꽃밭에 뛰어든 맹수의 포효-박철화

'이상문학상'의 취지와 선정 방법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2004년도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드디어 출간됐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중/단편만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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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드디어 출간됐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중/단편만을 모아 싣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 공정성과 탁월한 작품성으로 인해 문학인들 사이에서 가장 정평 있는 문학교과서로 꼽힌다. 올해의 작품집에는 대상을 수상한 김훈의 [화장]과 작가가 직접 선정한 대표 에세이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외 2편,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가건물(假建物)의 시대 속에서]가 실려 있다. 김훈은 우리나라의 문인들 중 보기 드물게 서사성과 서정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작가, 날카롭게 벼려진 통찰을 자신의 문체 안에 서정의 힘으로 녹여내는 작가라고 불려져 왔다. 특히 모든 소멸해 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존재 의미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추구한 대작인 [화장]은 모든 심사위원들에게서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은 명작이다. 또한 2004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는 구효서의 [밤이 지나다], 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 등 중진 작가들의 깊이 있는 작품들과 함께,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등 신예급 작가들의 톡톡 튀는 문장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고루 포진해, 읽는 재미와 맛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김훈의 [화장]이 선정되기까지 제28회 이상문학상 심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문학평론가, 문학전공 대학교수, 작가, 문예지 편집자, 문학기자와 독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의뢰한 앙케이트 추천을 종합하는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김성곤 편집주간 주재 하에 주관사 편집진이 수개월에 걸쳐 광범위한 각계 의견을 종합하여 예비심사를 마쳤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모두 16편이었으며,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7인의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이 위촉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각자 5, 6편의 작품들을 구두 추천한 다음, 그 중 가장 많이 추천된 작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무기명 투표보다는 토론을 통해 대상작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모으고 각각의 공통점을 발견하여 수상작을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놓고 긴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 김훈의 [화장]이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줄거리♣ 화장품 회사의 상무로 근무하고 있는 나는 2년 동안 뇌종양을 앓고 있는 아내를 간병해 왔다. 그러는 한편 한 회사에 근무하는 추은주(秋殷周)라는 부하 직원을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는 상태. 결국 아내는 생명의 줄을 놓고야 말고, 전립선염을 앓고 있는 나는 아내의 임종을 지키는 순간에도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 있어야 했다. 죽음과 소멸을 상징하는 화장(火葬)과, 아름다움과 소생을 의미하는 화장(化粧)은 서로 환치될 수 있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아내의 장례 절차와 화장터의 모습, 그리고 화장품 회사의 치열한 광고 전략. 즉 아내의 화장(火葬)과 여성들의 화장(化粧)의 이중적 소재가 적절히 배합되어 그려지고 있으며, 삶과 죽음의 운명적 변주를 죽어가는 아내와 추은주 두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성의 심리를 통해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소설적 정황으로 탁월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의 격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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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영화 같은 이야기 | lu**momo | 2015.09.1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지극히 사실적이고 감정하나 없는 객관적인 문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죽어 가는 아내에 대한 처절하고 눈으로 보...

    지극히 사실적이고 감정하나 없는 객관적인 문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죽어 가는 아내에 대한 처절하고 눈으로 보기도 힘든 투병생활을 글로 서술한 문체를 보면서,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처절한 문체가 느껴졌다.

    그리고 죽어가는 아내와 대조 되는, 화자가 사랑하는,  추은주 그 이름만으로 벅차오르는 그의 감정을 드러낼 법도 한데, 그 이름에 대한 부른다는 언급만 할 뿐이었다.

    추은주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살아있는 갓 잡아오른 등푸른 생선 처럼 활기를 띄는 여인으로 표현 하였고 글의 문체만 봐도 누가 봐도 매력적인 여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아내는 개밥을 걱정하고, 그의 아내를 바라보면서도 화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추은주를 생각하게 된다.

    추은주가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출장을 가게 된 사실에 오히려 감사해 하고 출장을 가서 움직이는 시간과 하고 있는 일에 오버랩 되게 추은주의 상황이 어떤지 묘사하고 있다.


    사실적인 글, 오로지 그 상황에 대한 묘사와 대사, 형용사 하나 없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몰입하여서 숨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가 죽었고,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지극히 대비되는 상황에서도 어떤 감정이나 미사여구가 붙지 않는다.

    그냥 그 상황을 표현하고 설명할 뿐이었다. 그런 글 속에서 오히려 독자로서 나의 감정은 더 극대화 되는 느낌이 들었다.


    화자가 보는 화자의 병투병 생활, 요도염에 대한 객관적이고 처절하게 사실적인 묘사는 읽을 떄 조금 거북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슬프고 안타깝기도 했다.


    짧은 단편이었지만, 대비되는 단어와 글들이 많았다. 그런 모든 것들이 삶과 죽음을 뜻하는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에는 아주 허무하고 해탈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면여행과 가벼움

    화장(죽을때화장)과 화장(화장품)

    아내와 추은주


    지극히 극적이고 슬픈 장면에서도 아주 객관적이고 감정이 전혀 없는 그런 표현들로 영화로 재탄생되었다는게 정말 궁금증을 자극하였다.

    안성기과 김규리가 나왔다는 영화,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책에서 나오는 글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될법한 시나리오 같은 사실적인 문체 덕분에 책 읽는 내내 내 상상력은 자극 되었고 마치 영화 한편을 본 느낌 마저 들었다.

    그의 몰입감과 강한 필력감은 언제나 강력했고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일을 그저 묘사와 사실로만 표현하는 문체에 허무함이 들기도 했다.


  • 화장 | pe**kw | 2010.10.2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2004년 단편소설 이상문학상 당선작 모음이다.김훈의 작품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이상문학상이라 이상을 닮았는지 모두...
    2004년 단편소설 이상문학상 당선작 모음이다.
    김훈의 작품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상문학상이라 이상을 닮았는지 모두 내용이 우울했다. 그래서 읽는 나도 우울했다.
    근데...사실...생각해보니... 그동안의 문학작품은 대부분 우울한게 많았던것 같다.
    글자라는 것 자체가 원래 침착한 성질을 가져서일까.
    아님 인생이란게 원래 대부분 슬픈 것이여서일까.

    대상을 거머쥔 작품답게 역시 김훈의 <화장>이 그중 제일 좋았다.
    고통스럽고 슬프고 아름답고 단백하고 열정적이고....
    암튼....무게감이 있으면서도 감수성이 대단하다.
    아내에 대한 병수발을 하나하나 묘사하는걸 읽으며 같은 여자입장에서 왜 그렇게 슬픈지.
    난 죽으면 병치레없이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고
    남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이 싫어서 이런 유언을 남기고 죽고싶어졌다.--> 화장을 하되 '염'은 절대 하지 말라 고.
    남자가 추은주를 멀리서 바라보는 단백한 시선도 참 좋았다.
    특히 '목걸이 구슬마다 해는 저물었다' 고 하는 표현은 감동이었다.
    추은주를 향한 남자의 시선은 어쩜
    아내의 젊은 시절 더 나아가 인간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선이 아니었을까.

    뒷장에 있는 김훈의 수상소감도 감동깊다.
    50이 넘은 나이에 겨우(겨우?)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겸손함도 감동이다.
    대상의 특혜로 더 실린 김훈의 단편 (김훈;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을 제외하고
    모든 수상작에만 나도 독자로서 점수를 준다면 다음과 같다.
     
    ****** 김훈   : 화장 
    **       문순태 :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       구효서 : 밤이 지나다
    **       김승희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
    **       전성태 : 존재의 숲
    ****    고은주 : 칵테일 슈가
    **       하성란 : 그림자 아이
    ****    정미경 :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박민규 :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와..삼미슈퍼스타즈의마지막팬클럽의 그 박민규네)
     
     


    [발췌]
     
    * 화장 :
     ======

    뇌종양은 암의 계통이다. 인간의 두개골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종양은 130여 종류다. 조직 내의 모든 신생물이 종양이다. 종양은 어떤 신체조직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종양이 발생하게 되는 환경과 조건은 알 수 없다. 종양은 생명 속에서만 발생하는 또 다른 생명이다. 죽은 조직 안에서 종양은 발생하지 않는다. 종양의 발생과 팽창은 생명현상이다. 생명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하고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 현상은 생명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종양과 생명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치료가 어렵다. 고생할 각오를 하고 환자의 마음을 준비시켜라.
    그때, 나는 의사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비어 있었다. 뻔한 소리였고, 하나 마나 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때 그의 뻔한 소리의 그 뻔함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그저 무덤덤했다. 그의 설명은 뻔할수록 속수무책이었다.
     
    ...알리는 일은 회사 비서실에서 오전 중에 처리할 것이었다. 장례용품과 상복, 육개장을 국물로 주는 접대용 식사와 음료수까지 모두 병원 영안실에 준비되어 있었고, 영안실 직원은 진단서를 첨부해서 사망신고를 제출하는 일과 시립 화장장에 연락해서 화장 순번을 받아내는 일을 맡아주었다. 운구용 버스를 예약하고, 납골함을 구입하고, 납골당의 자리를 교섭하는 일까지도 영안실 직원은 전화 몇 번으로 끝냈다. 아내의 죽음을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람은 나였지만, 아내의 장례일정 속에서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자정께 아내는 다시 두통 발작을 일으켰고, 진통제와 수면제 주사를 맞고 잠들었습니다. 아내가 깊이 잠들어서, 아내의 의식이나 수치심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간에 저는 안도했습니다. 아내가 잠든 뒤 저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서, 저의 손에 밴 악취를 비누로 닦아냈습니다. 악취는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복도로 나와서 담배를 피웠지요. 새벽 두 시였습니다.
     
    여자인 당신, 당신의 깊은 몸속의 나라, 그 나라의 새벽 무렵에 당신의 체액에 젖은 노을빛 살들, 그 살들이 빚어내는 풋것의 시간들을 저는 생각했고, 그 나라의 경계 안으로 제 생각의 끄트머리를 들이밀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흰 블라우스 위로 구슬이 많은 호박 목걸이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비구름이 갈라지고, 빌딩의 옥상 간판들 사이로 내려앉는 저녁 해가 당신의 목걸이에 비쳐, 목걸이 구슬마다 해는 저물었습니다.사위는 잔광 한줌씩을 거두어가면서 구슬 속으로 저무는 일몰은 위태로웠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생애가 하얗게 지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지체 없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당신이 당신의 몸속의 노을빛 살 속으로, 내가 닿을 수 없는 살의 오지 속으로 영영 저물어버릴 것 같은 조바심으로 나는 졸아들었고, 분기 말의 저녁마다 당신의 어깨는 저무는 날의 위태로운 노을로 내 앞에 번져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 박철화가 김훈의 다른 글에 대해 한 평론 中 :
    --------------------------------------------------
    그의 비유를 조금 바꿔 표현하자면, 밥벌이는 분명 지겨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물겹게 애쓰며 일해서, 결국 밥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밥이 애초부터 아름답거나 추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삶과 현실은 그것 자체로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아름답게도, 또 추하게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밥 없이는 살 수가 없듯이, 누구도 일상과 현실을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이순신의 칼에는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는구나"라는 검명이 새겨져 있다. '물들일 염染'
    자의 공업적 이미지는 이순신의 무인다운 내면의 본질이라고 할 만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은 펜을 쥔 자들의 엄살이거나 자기기만이기 십상이다. 그 말은 정치적이다. 칼을 쥔 자들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文은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으로서의 무武를 동경한다는 편이 오히려 정직하다.
    이순신의 칼은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치 않는 칼이었고, 정치적 대안을 성정하지 않는 칼이었다. 그의 칼은 다만 조국의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위한 칼이었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 삼엄한 단순성에는 굴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멸적 정서가 깔려 있다. 그는 당대 현실 속에서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
    나는 호미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손때 먹은 자루에서는 시지근한 땀 냄새가 났고 녹슨 날에서는 비릿한 녹내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보따리에서는 고리고리한 새우젓국 냄새를 비롯해서 짭조름한 간고등어 냄새, 시큼한 쇠꽃 냄새, 비리척지근한 멸치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묘한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냄새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치장을 하고 소리를 내며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 냄새들이 아우성치며 내 뼛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냄새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나는 그 냄새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거부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나는 그때서야 어머니 냄새의 진원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밤이 지나다: (천체관찰과 낯선 남자에 대한)
    ------------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부터 스페인 서안의 산티아고까지 1천 킬로미터의 순례의 길, 언제가 보았던 그곳 사진 중의 하나엔 '해바라기의 바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 하늘과 노란 해바라기뿐이었다.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  (IMF실직,전화방...)
    ---------------------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거의 말을 안 해. 말을 하게 되면 남편과 나처럼, 나하고 외할머니처럼, 안드로메다하고 그 아들처럼 난폭하게 싸울까 봐 그러는 것 같아. 자기 둘이 이야기를 할 때면 수화를 한다? 얼마나 예쁜지 몰라. 수화를 하면서 차차로 얼굴이 환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면 정말이지 나도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는 지 몰라. 열 손가락을 확 펼쳐서 머리 위에 사슴뿔처럼 올려놓는다든가 오른쪽 손바닥을 활짝 펼쳐서 왼편 가슴 위에 사룻 얹는다든가 열 개의 손가락을 서로 맞물리게 해서 가슴 위에 살풋 걸쳐놓을 때나 한 개의 손가락을 곧게 세워서 왼쪽 뺨 위에 살짝 얹을 때의 그 순결하고 고혹스러운 모습이라니 나는 정말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사과처럼 한입 물어보고 싶다니까.
     
    *존재의 숲:(개그맨이 시골에 내려가 요양하며)
    ---------
    골짜기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물상이 있다면 그건 옥수수 밭이었다. 옥수수나무는 더위에 가장 먼저 지쳤다. 잎들은 시르죽은 듯 늘어져서 밭에서 여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소나기라도 두둑이고 지나가면 어제 그랬냐는 듯 빳빳하게 생기가 올라 골짜기를 한결 녹음 깊게 가라앉혔다. 달밤에는 달빛 한 낱 한 낱이 옥수수 밭에 칼처럼 꽂혀서 밤새 나가 주울 것도 같았다.
     
    *칵테일 슈가: (칵테일 슈가를 건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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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빛 아래에서 확인한 그것은 단순한 설탕 덩어리에 불과했다.
    얼음사탕의 조각을 모아놓은 듯한, 혹은 무색의 커피 슈가를 뭉쳐놓은 듯한.칵테일 슈가. 슈가 스틱.
    "이거, 모양이 느낌표를 닮았지? 느낌표의 달콤함만 즐겨봐. 심각한 물음표는 만들지 말고."
    여자의 눈을 찌르고 내던져진 나무막대는 그 동그란 나무 장식으로 지저분한 궤적을 만들면서 어딘가로 열심히 굴러 가고 있다.
     
    *그림자 아이:(교통사고,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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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주먹 쥔 손이 손아귀 안에 쏙 들어왔다. 택시에 아이의 몸이 들어가면서 남자의 손에 있던 아이의 손이 물처럼 새어 나갔다. 택시가 떠난 뒤에도 남자는 한동안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이 기억하고 있는 게 꼭 아이의 손인 것만 같았다. 남자는 하루 종일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복도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속삭였다. 어머니는 여전히 기억해서 좋은 게 없다고 했고 아내는 정말 하나뿐인 아들을 망칠 셈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이 잡았던 아이의 손을 떠올렸다. 대체 아이의 손은 어디서 놓아버린 것일까. 어머니와 아내는 아이에 대해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기러기아빠,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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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램차우더 수프라면 거기보단 못하지만 괜찮게 하는 델 알고 있어. 내가 언제 한번 사주지. 그래요. 선선히 대답하지만 재이는 알고 있다. 이 남자와 굳이 바깥에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건 이 작고 익숙한 공간 속에 모두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쯤 그가 여기로 와서 일용할 양식처럼 섹스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은닉된 삶의 한 조각씩을 이토록 풍요롭게 이토록 인색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은 원하는 게 없으니까.
     
    실내에 브람스가 흐르고 있는 걸 그때야 알았다. 음악이 없었다면 이 침묵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나는 아내의 고백을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술을 마시고 아무 데나 토한 거라든가, 새로 산 리넨 시트에 담뱃재를 떨어뜨린 일이라든가, 아내의 배 위에서 트림을 한 일, 또 함부로 방귀를 뀌는 따위, 아내가 늘 화를 내던 일에 대해 못 견디겠다고 그랬다면 그토록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르마라니, 내가 웃고 있을 때조차 마음속으로 견딜 수 없어, 중얼거려야 했다니, 아내의 진술은 충격이었다.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점들은 모두 변경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뿐이었다. 헤어져 있는 시간. 그렇게 생각하지 6개월의 시간이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처럼 절실해졌다. 나는 나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아내의 입술을 바라보며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다. 끝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며 모양을 바꾸어가는 것들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굳건한 어떤 것들의 범주 속에 분류해 놓은 것이 한순간 어이없이 무너짐을 보면서, 내 껍데기의 표정만이라도 굳세게 붙들고 있어야 했다. 거목의 뿌리가 헤집어도 와해되지 않는 돌의 사원처럼 굳센 껍데기 말이다. 나는 이후로 브람스를 다시는 듣지 않았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회사,너구리,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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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는 아예 움직이지 않아, 마치 긴 못 하나가 수면에 박혀 있는 모습이다. 저러다 녹슬지. 녹슬어. 쇠로 치자면 녹이 슬 만큼 B와 나는 오랜 친구다. B가 두 살이 더 많지만,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오리엔테이션 현장이었는데 교수인지 교직원인지가 올라와 가물가물 뭔가를 한참 얘기하던 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엔 늘 만사가 짜증스러웠다. 물론 그래서, 별 얘기가 아닌데도, 아무튼 나는, 닥쳐 개새끼야! 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래서 엉망이 된 행사가 끝이 날 무렵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개새끼>가 누구야? 누가 한거지? 몇몇 아이들이 눈빛으로 나를 지목하자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같이 밴드를 해보지 않을래? 그것이 B였다.
  • 화장 | ri**31 | 2009.08.1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2
    이상문학상 작품집 제일 첫 작품, 대상작 50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태풍이 달려와 마구 내뱉는 저 거친 소나기보다 ...

    이상문학상 작품집 제일 첫 작품, 대상작 50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태풍이 달려와 마구 내뱉는 저 거친 소나기보다 마음이 더 무겁고 먹먹하다. 아니, 슬프다. 참담하게 슬프다. 이 작품이 왜 그 해, 대상작으로 뽑혔는지 충분히 알겠지만 안 뽑혔더라면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안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슬프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걸 절감한다. 신경숙의 <그가 모르는 장소>를 읽고 난 후 '이런 게 인생인거야?' '이런 게 인생인거야.' 답해주는 것 같다고 썼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게 인생인거야?' 라고 물었을 때, '이런 게 인생인거야.' 라고 답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살이 떨리도록 에리고 날카로운, 현실의 해부학같은 당신의 이야기는 만 하루가 지나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 어제 책을 덮자마자 누군가 머리통을 힘차게 갈겨버린 듯한 충격 속에 빠졌더랬지. 인생에 대한 길고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아파오는데, 문득 문자 메시지가 오면 한 번만 울리게 돼 있는 휴대전화 생각이 난다. 아, 아까 문자가 왔었는데... 뭐였지?

    '오늘 저녁 집에서 삼겹살 구워먹자'

    이 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순간적인 교차상태는 내 삶에서도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둘의 간극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 내 슬픔의 깊이도 달라지겠지만.

     

    책의 제목은 <화장>이다. 시신을 태워 소각하는 화장(火葬)은 화장(化裝)품 회사에서 상무직을 맡고 있는 주인공남자의 부인 이야기다. 시신경이 교란되어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죽음의 끝자락에 이제 막 닿으려고 하는 비참한 상태에서도 '여보, 미안해요...'라고 공손하게 말하는 그 여자는 왠지 정이 많고 사근사근한,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녀는 뇌종양으로 인한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일반인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항암제 투병으로 인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게 차츰차츰 그녀 곁을 떠나간다. 괄약근이 벌어져서 수시로 똥물을 싸지르면서도 제 손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수치심으로 몸을 떨어보지만 그래봤자 거죽만 남은 마네킹마냥 창피함과는 상관 없이 벅벅 씻겨져야만 하는, 생명인 것도 생명이 아닌 것도 아닌, 뼈와 가죽과 똥과 오줌과 눈물과 고통과 개밥과 수치심과 건초처럼 으스러지는 헤어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남편은 그녀를 씻기며 그들이 살아왔던 나날들이 다 환상인 것만 같다. 꿈인 것만 같다. 고목처럼 시커멓게 말리 비틀어진 아내란 사람을 바라보며 그는 꿈을 꾼다. 추은주(秋殷周), '지층 밑에 묻혀버린 고대국가'처럼 빛나고 빛나는 환영처럼 존재하는 사람. 전립선염으로 관을 넣어서야 겨우 소변을 해결하는 남자는 추은주, 당신에게 경어체를 써가며 상상 속에서만 말을 건넨다. 그 말들은 마치 동화에서 요정이 요정봉을 흔들 때 '따라라라란' 하는 효과음이 덧붙여진 것 같고, 그래서 추은주 당신이 일상 속에서 하는 모든 일들 마저도 성녀(聖女)가 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정상적인 성적활동은 차치하고라도, 배설기능조차 원활하지 못한 그 남자. 그는 바싹말라 검버섯만 살갗을 뒤덮고 있는 아내를 병원 샤워실에서 씻기고 나서, 추은주 그녀의 살을 생각한다. 하이얀 그녀의 속살, 푸른 정맥, 그리고 고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그녀의 자궁과 산도(産道). 그 곳은 그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아득해  마치 관세음보살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은 너무나 순결해서 '불륜'이란 주홍글씨를 달아야 한다는 마음마저 사라지게 만들 정도다.

     

    우연찮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에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읽고 있었다. 열대야에 잠을 못 이룬 탓인지 독서를 시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져내렸다. (그 다음 안 되겠다 싶어 고른 책이 <화장>이었다.) '황야의 이리' 하리 할러는 그의 수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폐허 위에서 흩어져 사라져가는 의미를 찾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에 괴로워하고 광인처럼 살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최후의 카오스 속에서도 계시와 신성(神性)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는 또 누구인가?"

     하리 할러는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교차할 때만이 인간의 삶이 지옥으로 변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화장>의 주인공 남자의 삶은 지옥은 아니다. 물론 우리의 삶도 지옥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 깊은 슬픔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다 황야의 이리를 떠올리니 답은 조금 더 명확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네 삶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고자 한다. 좀 더 도덕적인 삶, 좀 더 종교적으로 신의 뜻에 부합하는 삶, 좀 더 이상적인 삶 등등.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매번 우리의 고상한 의지를 깨부순다. 책을 읽은 후 깊은 슬픔에 침잠해 있을 때 나를 그 안에서 꺼내어준 것은 '삼겹살(이나) 먹자'는 문자 메시지였다. 기도회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열심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후에도, 꼬르륵 거리는 위장의 신호에 화답하기 위해 짜장면을 먹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염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심지어 염을 해준 사람도) 엉엉 울었다. 염을 마친 후, 우리는 허기가 지고 배가 고파 떡이랑 과일을 먹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느니라' 는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난다. 정신과 영혼이 살아 담겨있는 곳이 우리의 육체. 육체를 떼어놓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더 높고 더 고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부딪혀 내 자신을 100% 내던지고 싶어도 그리 될 수 없는 것은  '형이하학'이라 이름 붙힌 것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들을 '하찮은 것, 나를 옭매이는 것' 또는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미워하고 경멸하려 해도 우리는 그 울타리 너머로 빠져 나갈 수 없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터전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에.

     

    기쁘고 만족스럽게 일상을 탐험하며 즐겁게 살아가려 하던 나에게 이 책은 다시금 '일상'과 '인생'의 잔혹함에 대해 눈을 띄워준다. 네가 그렇게 파스텔톤으로 꿈꾸며 그리던 일상, 인간의 삶이란 사실은 엄청난 대립으로 점철된 곳이야. 네가 머릿 속에 바라는 그런 삶은 없어. 네 머릿속에선 그런 삶이 가능할 것 같아도, 봐, 너는 왜 슬퍼하고 있어? 너는 왜 때로 끔찍하게 우는건데? 그렇게 하나하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렇다. '두 시대'까지는 아니어도, 매 순간 두 세계가 내 안에서 늘상 맞부딪힌다. 내가 슬퍼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그리는 이상향은 추은주보다도 더 멀리 있는 천상의 세계. 그러나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먹고 마시는 현실이 이상향과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비통함은 커져만 간다. 내 안에서 두 세계가 찰나마다 극적으로 교차될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고 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 같아 미치도록 우울하다. 이 소설을 통해 정신의 내장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 충격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는다. 천재 작가, 천재 화가 같은 예술가들이 예민하고 발작적인 광기로 요절하는 이유도 어쩌면 내면의 두 세계 간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코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주인공 남자회사의 사장같은 족속들이 못 된다. 그 회사 사장은 여성들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들쑤셔 갖가지 화장품을 사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의 사장실은 불상이 모셔져 있는 대웅전같은 곳이다. 그렇게 사장은 두 세계를 하나로 잇고 산다는 생각 속에 편안히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해도 A 세계와 B 세계 사이의 교집합이 0(zero)인 사람들은 그저 우울하게 이 세상을 애드벌룬처럼 살아내야 한다.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본다. 추접하고 비참하고 더러운 것도 세상이고, 밝고 기쁘고 감사한 곳도 이 세상이다. 그 안에 속한 우리도 마찬가지. 결국엔 우울해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기운내서  변증법적 논리로  좋게 좋게 귀결시키는 것이 이론상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단층처럼 어긋난(혹은 그렇게 보이는) 내 안팎의 두 세계를 바라보며 느낀, 앞으로 느낄, 마음 속 저릿함은 앞으로도 오래 지워지진 않을 것 같다.

     

     

     

  •  한 때,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내게 필독서였던 시기가 있었다. 기억이 가물 가물한 역대 수상작들. 얼마 전에 만난 김...
     한 때,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내게 필독서였던 시기가 있었다. 기억이 가물 가물한 역대 수상작들. 얼마 전에 만난 김훈의 에서이 <바다의 기별>이 아니었다면 기실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많은 문학상들이 수상작을 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하게 이상문학상은 문학계에서 귄위가 있지 않나 싶다.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을 비롯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내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김훈의 <화장>에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火葬)과 대조적으로 젊은 여직원의 생동감있는(化粧)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메마르고 건조한 아내의 육체, 싱그러운 여직원에 대해 감춰둔 욕망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 남성적이라서 그런지 소설은 애잔함보다는 사실적 기술이 많다. 죽은 아내를 화장시키는 내내 화자가 근무하는 화장품 회사에서는 두 개의 광고 카피에 대한 언급이 계속된다. <여자의 내면여행>,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라는 두 개의 문구는 죽은 아내와 여직원으로 연결된다. 결국 <가벼워진다>라는 것이 선택됨과 동시에 나는 자꾸만 죽은 아내가 떠오른다. 삶과 죽음, 삶이라는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세상으로의 여행이 삶이 아닐까.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글, 김훈의 글이 가진 특징을 잘 살린 소설이 아닐까 싶다.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제목처럼 어머니가 가진 향기에 대한 이야기다. 늙은 어머니, 그녀에게서는 고약한 냄사가 난다. 아무리 환기를 시키고 집 안 가득 향수를 뿌려도 그 냄새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은 시작되고 그 사이에서 있는 아들은 어머니의 잠시 동생에게 부탁한다. 어머니의 방을 청소하면서 발견한 어머님의 물건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새우젓을 팔던 젓국자, 냄새의 시작은 그것들이었다. 어머니의 냄새는 나를 만든 냄새였건만.  문득, 내 어머니의 냄새는 어땠던가, 코를 킁킁거려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슬픈 소설이었다. 늙는다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산다. 내 어머니의 모습은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7편의 우수상 수상작들중에서 특히 좋았던 소설은 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과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 였다. 김승희 작가의 단편은 처음 만난 것이다.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의 여성 주인공들의 독백, 대화 형식으로 독특하다. IMF를 겪고 힘들어진 생활을 위해 여자들은 전화방에서 일을 한다. 각각의 힘든 가정사를 독백으로 털어 놓는다. 우리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진흙 파이잖아. 물기가 없어 버석버석하긴 하지만 울면 진흙이 흘러내려. 진흙이 마구 흘러내리면 우리는 자신을 잃게 되잖아. 굽자, 굽자, 또 굽자. 흘러내리려는 내 몸을 굽기 위해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거는 거야. p145 그녀들은 모두 진흙 파이로 묘사된다. 부서질 듯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절망하지 않고 삶을 지탱하는 그녀들.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는 점진적으로 소설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남자는 요양원 창 밖의 자전거만을 주시한다. 사실을 알리려는 아내, 사실을 숨기려는 어머니. 그 사실속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남자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것은 손 안에 무언가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손을 맞잡은 것은 바로 아이의 손이었다. 트럭이 아이를 치었고 남자는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하성란은 차갑고 차분하게 그 슬픔을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작가, 알고 있었던 작가의 새로운 단편을 읽는 즐거움과 동시에 소설들이 갖는 의미를 평하는 작품 해설을 이해하기에는 한계를 느낀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글이 있어 소개해 본다.<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의 작가 문순태의 글이다. 진정 문학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작가의 노력과 문학을 저버리지 않는 독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세상에는 낡지 않은 것도 새롭지 않은 것도 없다. 축적된 전통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최첨단 과학 안에서도 낡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실험정신도 중요하지만
    옛것 안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가꾸는 노력도 작가는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실험적 의식이나 새로움만을 찾으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보편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108 작가의 수상소감 
  • 이상문학상 수상집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이상문학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탄탄한 스토리 구성, 작가들의 색깔들.... 그...
    이상문학상 수상집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이상문학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탄탄한 스토리 구성, 작가들의 색깔들....
    그러한 부분들이 이상문학상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적절히 조화되어 담겨진 듯한 느낌.
    무엇보다 대상을 받은 김 훈 작가의 '화장'은 대상을 받을만하니까 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구성이다.
    이전에도 계속 그래왓듯이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보면, 책 한권으로 열권이상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색깔있는 작가들의 글들을 읽으며, 그 작가들의 사고방식을 파고 들고 싶은 충동까지 갖게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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