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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748쪽 | A5
ISBN-10 : 893496491X
ISBN-13 : 9788934964919
진시황 강의 중고
저자 왕리췬 | 역자 홍순도 | 출판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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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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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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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황제일까, 포악한 군주일까. 역사학자 왕리췬 교수가 전하는 진시황의 모든 것! 『진시황 강의』는 《사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왕리췬 교수가 치밀한 고증, 탁월한 통찰, 현대적 해석으로 밝힌 진시황의 강력한 통치력에 숨겨진 비밀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2006년부터 중국 국영방송 CCTV에서 기획한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중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재조명한 [왕리췬이 사기를 읽고]에 출연하였고, 이 중 진시황 편을 바탕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다. 영웅적 리더십, 빼어난 지략, 강력한 국가경영 전략으로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 그러나 천하를 얻는 법은 알았으나 지키는 법을 몰랐던 진시황의 일대기를 재조명하였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다민족 통일 봉건 국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러한 통일제국을 건설한 주인공 진시황은 기원전 230년부터 221년까지 동방 육국을 차례로 멸망시켰고, 그의 집안도 오래전부터 노력과 분투를 통해 진시황의 업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진시황은 뛰어난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지만 만리장성이라는 중국문명의 상징이 폭정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시경’과 ‘서경’을 불태우는 분서 사건, 아방궁과 황릉의 축조를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제왕적 리더십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왕리췬
저자 왕리췬은 세계에서 손꼽히는《사기》 연구가인 왕리췬은 각 분야의 학술 전문가에서부터 일반 대중에게까지 열렬히 사랑받는 중국의 국보급 학자이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고급지식의 대중화’를 모토로 야심차게 기획한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사기》를 강의한 그는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력, 유려한 말솜씨로 대중들을 사로잡으며, 중국 사학계의 독보적 연구가로 칭송받았다.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130권의 방대한 사서인 《사기》를 40여 년간의 치밀한 학문적 고증과 풍부한 원전 해석을 거쳐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낸 그의 ‘사기 강의’는 기존의 어떤 판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통찰력과 권위 있는 해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왕리췬은 1945년 안후이성 루아시 훠산현에서 태어났으며 허난대학교에서 중국고대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허난대학교 문학원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중국 《사기》 연구회 고문이자, 중국‘문선’학회 부회장으로, 허난성 우수교수상(2006)을 수상했다. 2006년 1월부터 《백가강단》에서 ‘왕리췬이 사기를 읽고-한무제’ 강의를 시작으로 항우, 진시황 등 중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인간학의 보고라 불리는 《사기》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역자 : 홍순도
역자 홍순도는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보쿰대학교 중국정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매일경제신문 국제부,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로 근무한 후 1997년부터 9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중소기업 부사장과 인민일보 해외판 한국대표처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 《따꺼 1,2》《황혼의 상하이탄》을 비롯해《시진핑》《베이징 특파원 중국 경제를 말하다》《베이징 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베이징 특파원 중국CEO를 말하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화폐전쟁 2,3,4》《자본전쟁》《중국 그 거대한 행보》《삼국지 강의 2》《디테일의 힘 2》《한무제 강의》《항우 강의》《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등이 있다.

역자 : 홍광훈
역자 홍광훈은 단국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 중문연구소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신문사 기자와 진주보건대학 관광중국어통역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있다. 옮긴 책으로《국부책》《중국의 남자와 여자》《황천건 사람들》《한무제 강의》《항우 강의》《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_살아서도 죽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왕,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

1부_진나라의 부상
1강 진시황 암살 프로젝트 | 2강 양공, 진나라를 세우다 | 3강 중원의 패주를 꿈꾸다 | 4강 효공의 변법 | 5강 진나라에 맞선 육국의 생존 전략, 합종연횡 | 6강 패주를 자처한 소양왕
7강 왕을 만드는 자는 누구인가

2부_진시황, 황제가 되다
8강 생부의 미스터리 | 9강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희 | 10강 여불위의 죽음 | 11강 이사, 정치 일선에 나서다 | 12강 영웅적인 대 전략

3부_천하통일을 이루다
13강 가장 강력한 장애물 진晉나라 | 14강 진나라가 세 개로 나뉘다 | 15강 한나라의 멸망 | 16강 진나라와 조나라의 전쟁 | 17강 장평의 전쟁 | 18강 한단의 전쟁 | 19강 조나라의 멸망 | 20강 위나라를 수공으로 공략하다 | 21강 연나라의 멸망 | 22강 초나라의 멸망 | 23강 싸우지 않고 항복하다

4부_진시황, 국가를 다스리다
24강 육대에 걸친 선조들이 남긴 공적 | 25강 전권을 한 손에 쥔 황제 | 26강 제도의 통일 | 27강 만리장성 | 28강 불로장생을 향한 꿈과 현실 | 29강 분서갱유 | 30강 진시황의 죽음

5부_진나라의 멸망
31강 장례를 미뤄 죽음을 비밀에 붙이다 | 32강 이사의 변절 | 33강 이세, 세상을 속이고 즉위하다 | 34강 지위를 공고히 하다 | 35강 이사의 죽음 | 36강 지록위마 | 37강 조고의 죽음 | 38강 자영이 뒤집어쓴 망국의 군주 오명

6부_어떻게 진시황을 평가할 것인가?
39강 황릉의 미스터리 | 40강 한나라 유학자들이 평가한 진나라 | 41강 당나라 사람들의 진나라 평가 | 42강 천고일제 | 43강 굿바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영원한 테마 진시황

에필로그_영원히 살아 있는 황제, 진시황

책 속으로

혹자들은 여불위가 권력을 얻는 데에는 뛰어났으나 언제 이를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게 수많은 정계 엘리트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이기도 합니다. (…) 여불위는 영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바로 정권을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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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여불위가 권력을 얻는 데에는 뛰어났으나 언제 이를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게 수많은 정계 엘리트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이기도 합니다. (…) 여불위는 영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바로 정권을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적절한 때를 노려 은퇴 역시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몸을 굽혀야 했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은인자중하는 것이 그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190p)

마지막으로 도량도 거론해야 하겠습니다. 명령을 철회하는 것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정은 천하를 통일해 역사에 영원히 남을 제왕이 되고자 했던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체면만 생각하는 도량이 좁은 군주였다면 아마도 그의 야심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이때 영정의 머리가 얼마나 깨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품고 있던 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207p)

진시황은 정권을 한 손에 거머쥔 강력한 전제 군주, 삽질 군주이기도 했으나 중국 역사상에서 유명한 문제 황제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전에 건설한 만리장성으로 인해 21세기 사람들에게도 떠들썩한 난상토론을 자주 촉발시키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일부 학자들은 장성이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중국 봉건 사회를 상징하는 괴물이라고 주장합니다. (477p)

역사는 종종 통치자의 간절한 열망과는 반대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시황 역시 처음에는 하늘을 덮을 대단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유가의 일부 경전을 불태우고 술사들을 파묻으면서 문화 독재와 우민화 정책을 추진한 것은 다 이런 열망의 결과였습니다. 진나라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그의 생각과는 달리 진나라에 대립각을 확실히 세운 것입니다. (5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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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중국 CCTV 《백가강단》의 국보급 석학 왕리췬 교수가 완성한 ‘불멸의 황제 진시황’의 모든 것! “이보다 재미있는 제왕학 강의는 없다!” 《사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왕리췬 교수가 치밀한 고증, 탁월한 통찰, 현대적 해석으로 밝힌 진시황의 강력...

[출판사서평 더 보기]

중국 CCTV 《백가강단》의 국보급 석학 왕리췬 교수가 완성한 ‘불멸의 황제 진시황’의 모든 것!
“이보다 재미있는 제왕학 강의는 없다!”

《사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왕리췬 교수가 치밀한 고증, 탁월한 통찰, 현대적 해석으로 밝힌 진시황의 강력한 통치력에 숨겨진 비밀. 동양 최초의 사서이자 인간학의 보고인 《사기》의 ‘진시황 편’을 바탕으로 풀어낸 가장 정통하고 가장 핵심적인 진시황 강의가 펼쳐진다. 영웅적 리더십, 빼어난 지략, 강력한 국가경영 전략으로 통일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군주 진시황의 일대기를 완벽하게 재조명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의 탄생에서 전례가 없는 절대군주의 등장, 그리고 진나라의 쇠망에 숨겨진 미스터리까지. 천하를 얻는 법은 알았으나 지키는 법은 몰랐던 진시황, 그가 보여준 제왕적 리더십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불멸의 황제 진시황에게서 단절과 분열의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리더의 조건을 배운다.

《사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왕리췬 교수가 치밀한 고증, 탁월한 통찰, 현대적 해석으로 밝힌
진시황의 강력한 통치력에 숨겨진 비밀!

13억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 세계에 《사기》 열풍을 몰고 온 중국 역사학의 거장 왕리췬 교수의 《진시황 강의》가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130권의 방대한 사서인 《사기》를 40여 년간의 치밀한 학문적 고증과 풍부한 원전 해석을 거쳐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낸 그의 ‘사기 강의’는 기존의 어떤 판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통찰력과 귄위 있는 해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왕리췬 교수는 2006년 1월부터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고급지식의 대중화’를 모토로 야심차게 기획한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왕리췬이 사기를 읽고》 ‘한무제 편’을 시작으로 ‘항우 편’을 거쳐 ‘진시황 편’까지 중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재조명했다. 그 결과로 《항우 강의》, 《한무제 강의》에 이어 《진시황 강의》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출간 즉시 중국 독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사기’ 열풍을 일으켰다.
《사기》는 전설의 황제 시대부터 한무제에 이르는 2천여 년의 역사를 기록한 53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사서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인물에 대한 품평, 상황의 묘사, 사건의 기술 등에서 탁월한 능력과 다양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고전의 대중화’라는 《백가강단》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왕리췬 교수의 강의는 어휘가 현대적이며,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설명이 일품이다. 그러면서도 《사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문학적인 감성으로 무장하여 학술적 가치 또한 겸비하고 있다.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 인간경영의 지침서!
단절과 분열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조건, 진시황이 답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스타학자 이중텐 교수의 ‘삼국지’ 강의에 이어 왕리친 교수의 ‘사기’ 강의는 제2의 고전 열풍을 만들었다. 그가 학계의 전문 연구자부터 일반 대중에게까지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물을 통해 역사를 읽고, 역사 속에서 지혜를 발굴하는 왕 교수의 강의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함은 물론, 역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선사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해답도 다양한 시각에서 폭넓게 제시한다.
이 책 《진시황 강의》는 동양 최초의 사서이자 인간학의 보고인 《사기》의 ‘진시황 편’을 바탕으로 풀어낸 가장 정통하고 가장 핵심적인 진시황 강의이다. 영웅적 리더십, 빼어난 지략, 강력한 국가경영 전략으로 통일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군주 진시황의 일대기를 완벽하게 재조명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의 탄생에서 전례가 없는 절대군주의 등장, 그리고 진나라의 쇠망에 숨겨진 미스터리까지.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불멸의 황제 진시황의 제왕적 리더십을 생생하게 만난다.
천하를 얻는 법은 알았으나 지키는 법은 몰랐던 진시황, 그가 보여준 제왕적 리더십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서 단절과 분열의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리더의 조건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의 통치 역정과 그와 함께 시대를 개척한 인물들을 통해 살펴본 삶의 처세와 인간경영의 해법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시황의 통일제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기회를 잡는 자는 승승장구하고, 기회를 잃는 자는 쇠퇴한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다민족 통일 봉건 국가로 역사에 그 찬란한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있다. 이 통일제국을 세운 주인공은 주지하다시피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30년부터 221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에 걸쳐 한, 조, 위, 초, 연, 제나라 등의 동방 육국을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의 집안은 이 목표를 위해 무려 600여 년 동안이나 노력을 기울였다. 진시황의 휘황찬란한 업적을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하나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과 분투 역시 역사는 평가해야 한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왕의 자리를 잇기까지 진나라에는 무려 35명의 군주들이 있었다. 진시황은 진나라 왕으로는 36번째가 된다. 장공에서부터 진시황에 이르는 600년은 중국의 서주와 동주 시기와도 일치한다.
서쪽 변두리의 작은 나라였던 진나라는 주변국들에 맞서며 동으로 동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간다. 결국 이웃의 강력한 나라였던 진晉나라를 패퇴시키고 중원의 패주가 된다. 진나라에 맞서는 육국의 강력한 합종 정책도 와해시키며 천하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 나간다. 진시황의 지략과 리더십이 훌륭했다고는 하나 선조들의 노력이 없고서는 통일이란 어려웠을 것이다. 진시황은 선조들이 이룩한 기틀 아래 통일 제국의 완성을 향해 박차를 가한다.
“진나라는 나라를 세운 이후 35명에 이르렀던 군군의 노력을 통해 점점 강대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소양왕이 재위했을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이어 혜문왕과 장양왕의 국정 운영을 통해서는 국력을 더욱 키워갔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강대해진 것입니다. 영정이 정권을 완전히 이어받은 다음에는 아예 독보적이었습니다. 하늘 가운데에 떠 있는 해가 따로 없었습니다. 이때 진나라는 어떻게 육국에 대한 통일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먼저 어느 나라를 공격했을까요? 전쟁은 언제 발동했을까요? 이들 문제들은 모두 육국을 통일하기 위한 진나라의 영웅적인 대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208p)

황제가 된 진시황, 천하통일을 이루다.
뛰어난 선견지명, 과감한 결단력으로 천하를 평정한 철완의 정치가!

진시황의 아버지인 장양왕은 왕위에 오를 첫째 아들이 아니었다. 그것도 서열이 중간쯤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는 ‘여불위’라는 뛰어난 지략가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물론 3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아들인 진시황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만다. 여기서 진시황의 생부에 대한 미스터리가 제기된다. 그의 아버지가 장양왕이냐 여불위냐는 이야기가 여러 사료에 나오고 있다. 여불위의 애첩인 조희가 장양왕의 부인이 되었으며, 장양왕 사후 조희가 여불위와 다시 만남을 가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혹이 제기된다. 어쨌든 아버지가 누구이든 진시황은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었으며, 관례를 올린 22세 이후 파죽지세의 기세로 통일의 깃발을 올린다. 이후 10년 동안 진시황은 한, 조, 위, 초, 조, 연나라를 평정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은 중국 역사상의 대 사건이었다. 진시황은 제일 먼저 한때는 강력한 방해물이었으나 세 개로 나뉘어 퇴락의 길을 걷던 진晉나라의 멸망에 나선다. 이후 재위 16년인 기원전 231년 육국 통일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대군을 휘몰아 한나라를 공격한다. 이후 최대 장애물이었던 조나라를 전 국력을 총동원해 공격해 들어간다. 중국 역사상 큰 전쟁으로 꼽히는 장평의 전쟁과 한단의 전쟁이 이 과정에서 발발한다. 조나라를 멸한 이후 거칠 것이 없어진 진시황은 그 기세를 몰아 위나라를 향한다. 이후 연나라를, 그다음에는 초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린다. 진시황의 칼끝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제나라는 진나라 대군이 쳐들어오자 싸워보지도 않고 온 나라가 항복을 해버렸다. 이로서 진시황의 통일 대업이 완수된다.
“영정은 기원전 230년부터 통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통일에는 10년의 세월을 바쳤습니다. 대단한 업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실 전국시대 후기의 전국칠웅 중에서 그 어떤 나라에게도 진나라와 같은 가능성과 기회는 주어져 있었습니다. (…) 과연 진나라의 천하 통일은 역사와 필연이었을까요, 또는 일시적인 우연이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아무래도 무엇이 역사 발전의 대 추세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432p)

위대한 황제인가, 포악한 군주인가?
천하를 얻는 군주와 천하를 지키는 군주는 다르다!

중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한 페이지를 연 진시황은 왕이라는 칭호를 폐하고 자신의 나라가 만세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스로를 시황제라 칭한다. 이후 분봉을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향한 여러 제도들을 시행한다. 문자와 도량형, 거궤, 화폐를 통일하는 등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 그러나 무려 1만 리나 면연하게 이어지는 만리장성의 축조에 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혹자는 만리장성을 중국 문명의 상징이라 극찬하고, 반대편에서는 그가 행한 폭정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성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장악한 진시황에게도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죽음이었다.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그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여러 방사들에게 많은 돈을 썼다. 그러나 방사들의 말이 모두 사기인 것을 아는 순간 갱유 사건을 일으켜 후세인들의 질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시경》과 《서경》을 불태우는 분서 사건을 자행했으며, 아방궁과 황릉의 축조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았다. 영원히 살기를 꿈꿨던 진시황이지만 50세의 나이에 순유 도중 사망하게 된다. 진나라 또한 만세까지 가지 못하고 이세에 그치고 만다. 통일 제국을 탄생시키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며 최고 권력을 누렸으나 강하게 타올랐다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불꽃과도 같은 세상을 살다간 왕이 되고 말았다.
“진시황은 자신을 신격화, 신성화했습니다. 각종 방법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마음껏 과시했습니다. 목적은 진 제국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자신이 무력으로 정권을 강탈한 데 대한 핑계도 찾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권위를 극도로 고양시키고 싶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진시황은 합법성을 획득한 이후에는 어떤 위대하고도 원대한 계획을 실천에 옮겼을까요? (457p)

존경받는 지도자, 참된 군주의 덕목은 무엇인가?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와 핵심은 무엇인가?

기원전 210년 50년 인생의 막을 허무하게 내린 대 진나라의 진시황은 영원히 굿바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황제이다. 후세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최근 수년 동안 중국 역사와 세계 역사에 영향을 준 유명 인물로 손꼽히고 있으며, 세계 역사에 영향을 준 100명의 인물 속에도 당당하게 포함돼 있다. 영화, 오페라, 소설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도 그의 삶과 그의 제국을 다루고 있다.
진시황은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황제이며 논쟁을 피할 수 없는 황제이다.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황제이다. 이런 황제는 중국 역사에서도 세계 역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렇게 고작 50년밖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진시황은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히 살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제도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상입니다. 진나라는 정말 이게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통치 사상은 통치를 공고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진시황 역시 시종일관 자신에게 적합한 이 사상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법가 사상에 천착하게 됩니다. 군왕의 독제 시스템을 강조하는 사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사상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군왕의 독재를 제어할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황제가 일단 큰 실수로 연결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나라의 장기적 안정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7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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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상 최초의 황제이며 수천 년이 지나도 폭군의 전형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제.   지금까...
      역사상 최초의 황제이며 수천 년이 지나도 폭군의 전형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제.
      지금까지 진시황제를 떠올리면 만리장성, 병마용, 분서갱유, 아방궁 등이었다. 그런데, 아방궁은 진시황제가 완성한 궁전이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부정적인 이미지에 치우쳐 있던 진시황제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꾸게 했다.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아니다. 좀 더 편견 없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는 말이다.
      진시황제가 주요한 인물이지만 이 책은 진시황제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 중국 춘추전국시대(특히, 전국 시대의 진, 조, 위, 한, 제, 연, 초)의 패권국들 간의 연합과 갈등, 그 속에서 활약한 역사의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고대 중국의 역사의 한 부분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대륙의 서쪽에 치우쳐 있던 변방국에 불과했던 진(秦)국은 주(周)국과 수많은 제후국들의 패권 투쟁이 지루하리만치 지속되었던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그리고 그 통일 왕조의 최초의 황제가 진왕 영정, 즉 진시황제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업적은 진시황제 개인의 업적이면서 그의 선대 진나라 왕들의 업적이기도 하다.
      진시황제의 5대조 선조인 진 효공(孝公)은 위(衛)나라의 상앙을 중용하여 두 번의 변법을 단행하여 국력을 신장시켰고 진나라는 비로소 강대국으로써 발돋움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진시황제의 고조부인 혜문왕(惠文王)은 왕호를 사용하였고 연횡책을 주장하는 장의를 중용하여 6국(조(趙), 위(魏), 한(韓), 제(齊), 연(燕), 초(楚))의 합종책을 깨뜨려 다른 국가들의 연합을 분쇄하였다. 진의 파촉을 정벌하여 영토를 넓혔다.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주나라의 도읍인 낙양으로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진시황제의 증조부이며 무왕의 이복동생인 소양왕(昭襄王)은 가장 위협적인 경쟁국이었던 조나라를 장평 전투에서 참패시켰고, 지속적인 동진 정책으로 진나라를 최강대국으로 올려놓았고 장차 통일 왕조를 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선조들의 업적이 없었다면 진왕 영정이 진시황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다른 6국과 비교하여 역대 진왕들이 재위 기간 동안 진왕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졌던 과제들, 즉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진왕들 각각의 시대에 꼭 성취해야했던 역사적 과제들을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진왕들도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실수도 했고 쓸데없는 호기로 실패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거침없이 강성해지는 진나라의 행로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6국은 진나라의 위협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6국도 변법을 단행했다(단, 초나라만 변법이 없었다.). 변법을 성공한 국가는 진나라뿐이었다.
      6국에도 훌륭한 군왕도 존재했으나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이 그들에게 행운을 주지 않았다. 성군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암군으로 바뀌어 국가 내정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고 연이어 무능한 암군들이 등장하여 잘못된 판단을 거듭한 끝에 충신들의 충언을 무시하여 국력을 쇠퇴시키거나 충신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고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했다. 조나라의 명장군 염파, 장군 이목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다. 또는, 공자들과 신하들의 내부 다툼과 암투가 국력 쇠퇴를 불러오기도 했다.
      반대로 진나라에서는 저리질, 백기, 왕전, 몽염 같은 명장군들이 연이어 배출되었고 다른 국가 출신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인물들이 상앙, 장의, 범수, 이사다. 그와 반대로 6국은 인재들이 있음에도 이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웃의 진나라로 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선대의 업적이 크더라도 만약 진시황제가 될 진왕 영정이 무능한 인물이었다면 진나라가 통일 왕조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진왕 시절의 진시황제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과감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하루에 30kg 가까운 분량의 죽간을 일일이 살펴보았고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었다. 진왕 시절의 영정은 총명하고 의지가 강했으며 비판적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성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폭군의 이미지는 아마 황제가 된 뒤의 영정의 모습일 것이다.
     
      진시황제를 거론할 때 가장 유명한 건 그의 생부가 누구인가 하는 미스터리였다. 장양왕 영이인(영자초)인가, 여불위인가의 논란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장양왕이 생부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다.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분서갱유에 대한 것이다. 엄격한 법가 사상을 통치에 이용한 진시황제가 유학을 탄압하여 유학자들을 생매장하고 책을 불태운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분서갱유인데, 약간 과장되어 왜곡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봉건제와 군현제 중 어느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대신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군현제를 지지하는 승상 이사는 제국의 통치를 위해서 법가 사상에 반대적인 입장에 있던 유가등 다른 사상을 담은 책들을 없애자는 주청을 했다. 결국 농경, 의술, 진나라의 역사를 적은 책들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을 태운 분서, 불로장생약을 가져오지 못하고 도망친 방사에 화가 난 진시황제가 명령하여 수백 명의 방사들을 잡아들여 생매장시킨 일이 갱유이다. 이 일에 대해 간언했던 진시황제의 장자인 부소는 황제의 분노를 사서 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고 흉노를 감시하던 대장군 몽염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아방궁과 자신의 능묘를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수십만의 백성들을 동원한 것이다. 노역에 시달린 백성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원성이 자자했다는 점이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제 덕분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의 획기적인 전매특허는 아니었다고 한다. (중국의 관점에서)북쪽의 오랑캐와 국경이 가까웠던 조나라나 제나라 등이 북쪽의 흉노를 막기 위해서 조금씩 쌓았던 장성들을 연결한 것이라는 부분도 있었고 새로이 쌓은 부분도 있었던 듯하다. 맹강녀 전설은 유명한데 이것은 진시황제의 폭정을 상징하는 민간 설화이나 그 확실한 출처는 애매하다고 한다. 아방궁도 약간의 오해가 있는데, 짓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제이지만 궁을 완성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백성들을 혹독하게 동원한 건 2대 황제인 호해라고 한다. 진시황제는 아방궁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오해와 애매한 점이 있다고 해도 어찌되었든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진시황제에게 있었으니 백성들의 분노와 한탄이 어느 정도였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진시황제의 지나친 권력 독점과 신격화, 독선적 통치는 황제 자신을 고립시켰다. 아무도 그에게 간언을 할 수 없었고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는 이미 무너져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황제의 곁에는 환관 조고가 있었다. 조고는 일처리가 빠르고 영리하여 진시황제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순행 길에 병이 위독해진 진시황제는 장자인 부소에게 보위를 잇게 한다는 교지를 내렸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환관 조고는 교지를 위조하고 호해(胡亥)를 황제에 앉힌다. 승상인 이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부소에게 자결을 명하는 가짜 조서를 내리고 진나라에 커다란 공을 세운 몽염과 몽의 형제도 죽이려고 한다. 몽씨 가문은 몰살당하고 2대 황제인 호해는 사실상 허수아비였다. 조고는 호해와 짜고 진시황제의 자손들도 몰살시키는 일을 실행했다. 2대 황제인 호해는 자신들의 힘이 되어주고 보좌해줄 형과 누나들인 혈육들을 몰살시켰고 그 대가는 조고의 하수인과 마찬가지로 전락한 초라한 황제의 모습이었다. 조고는 용의주도하게 승상인 이사에게도 죄를 물어 처형하고 황제인 호해까지도 죽였다. 조고 자신도 자신이 천거한 3대 황제인 자영(子嬰)의 손에 살해된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설을 생각한다.
      만약, 진시황제가 선정을 베풀었다면, 불사의 유혹을 떨치고 충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장자인 부소를 일찍이 황태자로 세웠다면, 아방궁과 같은 토목공사를 벌이지 않았다면? 승상인 이사가 환관 조고와 손을 잡지 않았다면? 장자인 부소가 좀 더 현명하게 장군 몽염의 충고를 들었다면?
       진제국의 영광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진시황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진시황제가 이룬 역사적 업적도 있다.
      통일 왕조를 세웠다는 점, 제국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서 각 국마다 제각각이었던 화폐와 도량형, 문자를 통일시키고, 교통 체계를 개편하는 직도를 건설했다. 진시황제가 추진했던 화폐 통일은 그 후로 계속 중국 화폐의 기본적 모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진시황제가 역사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무엇인가?
     저자가 말하길, 황제 제도이다.
      수천 년의 시간동안 진시황제가 도입한 황제 제도는 이후로 변함없이 중국 대륙에 존속했다. 중국의 신해혁명이 있기 전까지 그 틀을 유지했다.
      진시황제는 최초의 황제였기에 중국 왕조의 역사가 바뀌어도 후대의 황제들은 그를 기준으로 삼았다. 진시황제의 폭정을 모델로 삼아 그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후대의 황제들은 노력했다. 역사상 훌륭한 황제로 기록되는 대표적인 인물이 '정관의 치'로 일컬어지는 당태종 이세민이다.
      불사의 삶을 꿈꾸었던 진시황제는 수천 년간 병마용들이 지키는 거대한 능묘의 깊숙한, 수은의 강이 흐르는 장소에 묻혀있지만 역사적으로 수천 년간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힌 적 없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진시황제는 역사상 최초의 황제, 시황제(始皇帝)다. "최초"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앞으로도 역사에 이름이 남아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 진시황 강의 | cu**t | 2014.03.09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종식한 진나라 영정(진시황)에 대한 책. 그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전국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20여년이 ...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종식한 진나라 영정(진시황)에 대한 책. 그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전국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20여년이 되기 전에 멸망하게 되는 진시황과 진나라에 대한 책이다. 진나라의 탄생에서부터 발전 배경, 주변국의 정세를 비롯하여, 시황 영정의 사람들과 정책 탄생의 배경, 결과 그리고 평가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이 한 권만으로 진나라를 중심으로한 춘추와 전국 시대에 대한 개요를 확인할 수 있으며, 진시황의 통일 정책, 통일 후 정책들, 진나라 멸망의 이유들을 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진시황의 시대에 처음 다가가고자 하는 이에게는 좋은 책.
    두가지 아쉬운 점. 하나는 번역상에 아쉬움이다. 표준어이긴 하지만, 좀 더 매끄럽거나, 상황에 적합한 단어의 선택이 부족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TV강의를 책으로 옮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분량 늘어나기. 읽다보면 동어 반복과 같은 맥락의 반복이 너무 많다. 적절하게 정리했으면 왠만한 대학 전공서적의 분량(749쪽)의 70~80% 정도로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 진시황 강의 | ru**sylph | 2013.11.2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한때는 우주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의 인공구조물이라고 알려져 있던 만리장성. 사실 그 말을 너무나 당연하듯이 믿을 수...
    한때는 우주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의 인공구조물이라고 알려져 있던 만리장성. 사실 그 말을 너무나 당연하듯이 믿을 수 밖에 없는 위용을 자랑하는 만리 장성하면 바로 진시황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의 만리장성이 시황제 때의 그것이 아니라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면서도 그러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시황이란 그런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인물로서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정립시켰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만리장성, 아방궁, 불로장생, 진시황릉 같은 단편적인 것들과 함께 폭군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통일 이후 그의 행보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한 절대군주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우주에서는 만리장성이 보일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게 된 <진시황 강의>는 진시황의 다양한 면모를 접할 수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어갈 수 있었다. 진 나라의 건국과 멸망에 이르는 시간을 약 700여 페이지의 책으로 엮어내었는데 그 분량에 비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역사학의 거장 왕리췬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사실 역사가가 아닌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하나이다. 과거의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해석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왕리췬은 그런 면에서 역사가로서의 뛰어난 통찰력, 해박한 지식, 유려한 말솜씨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나 이 책은  중국 국영방송 CCTV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진행된 진시황 강의를 엮은 것으로 방송을 통해서 챙겨본 적이 있어서인지 그가 직접 내 눈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진시황 강의>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로 진시황의 암살 프로젝트이다. 영웅의 실제 모델이라고 하는 자객 형가가 등장하는데, 왕리췬은 여기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럼 만약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에는 만약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참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그만큼 진시황은 논란의 여지가 참 많은 인물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하지만 본인의 기대와는 다르게 만세를 이어나갈 제국이 되지 못했던 진나라. 거기다 내가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와 참 동떨어져 있던 한비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수렴하게 된다. 어린 시절 <정관정요>를 읽으면서 마치 리더십의 교본처럼 느꼈다면, 이 책은 리더가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꾸밈없이 비춰내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 난이도 : ★★ 1. 사기의 추억 10년 전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를 읽었을 땐, 그저 혼란...

    난이도 : ★

     

    1. 사기의 추억

     

    10년 전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를 읽었을 땐, 그저 혼란스러움 뿐이었다. 열전이라는 형식으로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이 등장하고... 어느 시대 어떤 배경의 사람인지도 모를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 돌릴 새도 없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기억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 그 책을 가져와서 훑어보니 책의 소개에 인쇄된 기전체라는 단어가 유난히 도드라지는데, 그때는 그 단어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전체 : 본기, 열전, 지 등으로 나눠 짜서 서술하는 역사 서술방식.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서술되며 왕과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경제 실태, 자연현상을 두루 다룬다. 

     

    2. 왕리췬의 <진시황 강의> 

     

    이 책은 사기가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고 지나쳤던 부분을 훨씬 자세하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어판 제목이 진시황 강의이기 때문에 모든 중심은 진나라의 건국과 망국의 흐름에 쏠려있다. 진나라 일족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의 혜택을 받은 제후가 아니라. 지위가 낮은 호족이었지만 영토확장의 공을 세워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 이후로부터 상앙의 법치제도를 받아들여서 진나라는 빠르게 발전한다. 

     

    그리고 육국을 하나씩 병탄했던 뛰어난 진나라의 왕과 신하(사기에서 서술되었던 여러 제후국의 이야기.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었던 이들이 합종연횡 전략을 맺어 강력해지는 진나라를 견제했고, 그것을 부순 진나라의 원교근공책까지. 전국시대의 유세객들의 피 말리는 싸움도 볼만했다.)들의 활약상이 다뤄진다. 

     

    천하를 통일한 후. 군현제를 확립하여 자신을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짐으로 부르며, 나중에는 진인으로 불렀던 진시황의 이야기(군현제 확립, 문자, 화폐, 도량형, 거궤 통일)와 진시황과 이세의 학정(진시황의 불로장생의 꿈과 분서갱유사태, 아방궁과 진시황릉 건립, 만리장성 축조)으로 인해서 진나라가 망하게 되는 시간까지 아울러서 다루고 있었다.  

     

    3. 정치술

     

    이 책은 현재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주위의 인간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술을 향상힐 목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기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읽으면 훌륭한 길잡이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꺼운 책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위기와 극복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의 교훈은 간단하다. 유능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반간계를 쓰는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모함이 들어오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까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비난이 쏠리는 것은 능력에 대한 고의적인 시기일 수 있고, 아니면 자신이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선택의 방식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시를 극복할 수 있는 완벽함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상항에서 오히려 그에 대한 공을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넘겨주고 동질감을 키움으로써 자연적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반간계를 걷어낼 것인지. 라는 두 가지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정치술에서 더 나아가서 연나라가 제나라의 복수를 위해 부득이하게 진나라에게 어부지리를 제공하고 힘없이 멸망했던 역사. 진나라와 가장 멀리 위치한 초나라가 쇠락해져서 진나라에게 고스란히 나라를 갖다 바친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눈 앞의 상황이 아니라 그 이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이 지금은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훗날 마주칠 때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4. 멸망의 공통점

     

    <진시황 강의>에 등장한 많은 나라들은 이미 멸망했다. 그들은 왜 멸망했을까? 라는 질문에서 강제로 단합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한 부작용들이 엿보인다. 사회통합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회통합이라면 통합 이후의 시간은 통치자의 눈치를 보는 시간. 통치자의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시황의 통치 이래로 반대 의견은 입 밖으로 새어나올 수 없었으며, 진시황의 앞에는 불로장생의 꿈을 간질여주는 간신배들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진시황은 그들을 믿고, 여러 차례 그들의 활동을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진시황을 속였음을 안 이후에는 전국의 술사들을 분서갱유 시키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정책은 진시황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게끔 만들었고, 자신의 화려한 궁 안에서 머물던 진시황. 때로는 순유의 여흥을 만끽하던 진시황이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게 만들게 되어. 전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명맥을 이어가던 육국의 후손들이 일어나고, 백성들이 그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결과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5. 분서갱유에 대한 변명

     

    이 책은 기존에 알려진 분서갱유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는 진나라의 법치. 진시황 자신의 통치술을 위해서 자신이 내놓은 군현제에 반대했던 유가의 책들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묻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원래는 분서갱유라고 부르는 사건으로 희생된 이는 진시황에게 들러붙어서 불로불사의 사상을 전파하던 술사 400여 명 정도고. 진시황은 이들을 홧김에 일회성으로 파묻었다고 주장한다. 시경이나 서경같은 유학자의 책. 그리고 다른 사상가들의 책을 불태운 것은 씨를 말릴 정도가 아니라 진시황의 집권 이전부터 법치가 확립됨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는 용인해 왔던 관습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진시황은 근 2000년 동안 중국 대륙을 다스려왔던 황제들에게 잘못된 통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려주는 반면교사로서 최악의 왕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나라가 멸망하고, 전국 각지에 제후가 일어난 상황에서 그것을 통일하는 자연적인 절차를 통해 탄생한 필연적인 왕이었기 때문에. 최악이라는 구덩이에 모든 악을 덮어씌우는 것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 진시황 강의 | ce**1 | 2013.11.0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은 "중국 사학계의 독보적 연구가로 칭송받"고 있는 저자 '왕리췬'이 "<사기...
     
     
    이 책은 "중국 사학계의 독보적 연구가로 칭송받"고 있는 저자 '왕리췬'이 "<사기>의 '진시황 편'을 바탕으로 풀어낸" <진시황 강의>입니다. 저자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왕"이라고 평한 진시황. 누구든지 그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인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한 중국 최초의 황제이자, 전례가 없는 절대군주였으며, 만리장성과 진시황릉이라는 엄청난 문화유산을 남긴 장본인이 바로 진시황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진시황 강의>는 진시황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며 제왕학을 강의합니다. 그러나 진시황의 생애에 머물지 않고 진시황이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기까지 그 기초를 마련한 6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시황의 한, 조, 위, 연, 초, 제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며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는 1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그가 황제가 되기까지 그 씨앗이 뿌려지고 잉태된 시간은 무려 60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진시황 강의>를 읽으며 처음 생각해보게 된 역사적 관점은 중국 최초의 황제이자 절대군주로 군림한 진시황의 '위대함'이 아니라, 어찌하여 그의 열망과 달리 그의 나라는 100년도 가지 못하여 멸망하고 말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통일제국을 탄생시키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며 최고 권력을 누렸던 진시황은 강하게 타올랐다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불꿏과도 같은 왕이 되고 말았"다고 평가합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었던 절대군주가 단 하나 두려워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죽음이었고, 불로장생을 꿈꾸었으나 결국 천하 제일의 군주도 50세로 생을 마감하고, 만세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제국은 이세 3년, 자영 46일이라는 짧은 통치기간을 끝으로 빠르게 멸망하고 맙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다양한 역사적 관점과 객관적인 평가를 견지하는 저자는 "천하를 얻는 방법은 알았으나 지키는 법은 몰랐던 진시황"이라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진나라가 이토록 빨리 망한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는 진시황의 통치 사상입니다. 다음은 진나라 귀족들의 부정부부패가 되겠습니다. 세 번째는 후계가 인선의 실수입니다"(741). 이중에서 마음에 크게 깨우침을 주는 역사적 교훈은 바로 통치자의 사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통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한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제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사상인데 진나라는 정말 이게 너무나도 부족했다고 설명합니다. 진시황이 열심히 찾아 헤맨 끝에 천착하게 된 통치 사상은 법가 사상이었는데, 이것은 형벌을 위주로 나라를 다스리며, 군왕의 독재 시스템을 강조하는 사상이었습니다.
     
    <진시황 강의>는 쉽고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듯 읽히는 짧고 간졀한 문장들은 저자가 이야기에 아주 탁월한 분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사랑하는 포사를 웃게 하려고 봉화대에 불을 붙여 제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장난(?)을 즐겼던 유왕은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되어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풀어가고, 왕들이 노래와 춤, 여색에 빠져 나랏일에 태만하면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재를 사랑하는 나라가 부강하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 뿐만 아니라, 진시황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등을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만리장성이나 황릉에 얽힌 유명한 미스터리 뿐 아니라, 진시황의 아버지가 장양왕이냐 여불위냐 하는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도 결국은 사소해보이는 어떤 일이나 만남이 빌미가 되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만일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일 그때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다면, 만일 그때 그 일이 조금만 늦었더라면'이라는 많은 가정을 해보기도 합니다. <진시황 강의>는 그런 가정과 질문들을 사용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힘을 키워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위대한 제왕이라 해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통치자는 그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제왕학 강의이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충언하는 신하가 없는 리더, 또 충언을 들을 귀가 없는 리더, 인재를 알아보고 키울 줄 모르는 리더, 특히 통치 철학이 바르지 못한 리더는 결국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사소해 보이는 한 문장을 인용해보는 것으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볼까 합니다.
     
    "백성들이 말을 못하게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강물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하면 결국 제방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무수하게 생기게 됩니다. 백성들이 입을 막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때는 왕께서 아무리 후회해도 아마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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