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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 스티브 잡스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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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쪽 | 40.64 * 60.96 * 10.16 (cm)
ISBN-10 : 1451648537
ISBN-13 : 9781451648539
Steve Jobs - 스티브 잡스 자서전 [Hardcover] 중고
저자 Isaacson, Walter | 출판사 Simon &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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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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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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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가족, 친구, 경쟁자, 동료 등의 40건의 인터뷰를 기초로 Walter Isaacson 이 기술한 롤러코스터 인생, 강렬한 열정을 가진 창조적인 사업가 이야기 벤자민 프랭클린, 앨버트 아인슈타인 등의 베스트셀러 전기를 저술한 저자의 신간, 스티브 잡스 자서전 출간!
PC,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핸드폰, 태블릿 PC, 그리고 전자출판 등 6가지 분야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온 스티브 잡스


FROM THE AUTHOR OF THE BESTSELLING BIOGRAPHIES OF BENJAMIN FRANKLIN AND ALBERT EINSTEIN, THIS IS THE EXCLUSIVE BIOGRAPHY OF STEVE JOBS.
Based on more than forty interviews with Jobs conducted over two years as well as interviews with more than a hundred family members, friends, adversaries, competitors, and colleagues

Walter Isaacson has written a riveting story of the roller-coaster life and searingly intense personality of a creative entrepreneur whose passion for perfection and ferocious drive revolutionized six industries: personal computers, animated movies, music, phones, tablet computing, and digital publishing.

At a time when America is seeking ways to sustain its innovative edge, and when societies around the world are trying to build digital-age economies, Jobs stands as the ultimate icon of inventiveness and applied imagination. He knew that the best way to create value in the twenty-first century was to connect creativity with technology. He built a company where leaps of the imagination were combined with remarkable feats of engineering.

Although Jobs cooperated with this book, he asked for no control over what was written nor even the right to read it before it was published. He put nothing off-limits. He encouraged the people he knew to speak honestly. And Jobs speaks candidly, sometimes brutally so, about the people he worked with and competed against. His friends, foes, and colleagues provide an unvarnished view of the passions, perfectionism, obsessions, artistry, devilry, and compulsion for control that shaped his approach to business and the innovative products that resulted.

Driven by demons, Jobs could drive those around him to fury and despair. But his personality and products were interrelated, just as Apple’s hardware and software tended to be, as if part of an integrated system. His tale is instructive and cautionary, filled with lessons about innovation, character, leadership, and values.

『스티브 잡스』 추모 동영상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저자소개

저자 : Isaacson, Walter
1952년 5월 20일 미국 출생. 아스펜 연구소 소장. CNN의 CEO와 '타임'지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키신저 전기 Kissinger: A Biography>, <현자: 여섯 명의 친구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 The Wise Men: Six Friends and the World They Made> 등이 있다.

Walter Isaacson, University Professor of History at Tulane, has been CEO of the Aspen Institute, chairman of CNN, and editor of Time magazine. He is the author of Leonardo da Vinci; The Innovators; Steve Jobs; Einstein: His Life and Universe; Benjamin Franklin: An American Life; and Kissinger: A Biography, and the coauthor of The Wise Men: Six Friends and the World They Made. Facebook: Walter Isaacson, Twitter: @WalterIsaacson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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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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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판 20은 영어판 20, 21로 구성되어 있고 약간의 text의 차이가 나타난다.   1. ...
     
    한글판 20은 영어판 20, 21로 구성되어 있고 약간의 text의 차이가 나타난다.
     
    1. Joanne Schieble의 아버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딸의 이성교제에 엄격하였다. 그녀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무슬림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기도, 낙태하기도 쉽지않았다. 그녀는 결국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모에게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첫 대상자는 변호사 부부였지만 곧 거절되었다. 잡스가 변호사의 양자가 되었다면 어쩌면 스마트폰도, SNS도 박원순 서울시장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잡스의 가방끈이 짧은 양부모는 대학에 꼭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입양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양부모는 어린 잡스가 그 때문에 놀림을 받고 울며 들어올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We specifically picked you out.)"
     
    잡스는 자동차정비도사인 아버지를 통해 전자공학을 배웠다. 잡스는 초딩4학년때 이미 고2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월반했지만 오히려 외톨이가 되어 괴롭힘을 당하자 떼를 써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운좋게 그 집은 차고가 있는 집이었다. 고동학교 시절엔 Larry Lang을 통해 컴퓨터를 만날 수 있었고 Hemigway를 닮은 선생님을 통해 인문학의 깊은 맛을 볼 수 있었다.
     
    2.McCollum선생에게 수업을 듣던 시절 잡스는 Stephen Wozniak이라는 졸업생 선배와 친구가 된다. 여학생보다 트랜지스터가 더 친밀한 워즈는 Bill Fernandez의 차고에서 함께 컴퓨터를 완성시키고 잡스의 이름은 소개받는다. 만나자마자 동질성을 느낀 둘은 컴퓨터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다. 둘은 장난을 통해 전자공학에 대한 내공을 쌓아가다 블루박스를 만들어 무료장거리통화를 시도해 성공한다. 키신저를 흉내내 교황청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만약 블루박스가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겁니다.(If it hadn't been for the Blue Boxes, there wouldn't have been an Apple.)"고 잡스를 회상했다. (2011.12.02)
     
    3.잡스는 고교3학년때 LSD를 시작했고 히피성향의 여친 Chrisann Brennan에게도 권했다. 양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오두막에서 동거하였다. Joanne Schieble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학진학을 양부모가 권하자 처음에는 거부하다 가장 등록금이 비싼 Reed대학을 선택했다. 입학식 때는 반항심 때문에 부모가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채식주의와 선불교, 명상과 약물 환각과 록 음악 사이를 넘나들었다. 잡스는 현금을 얻기위해 타자기를 팔려다 Robert Friedland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서 수줍음을 타던 잡스가 세일즈하는 법 상황을 오픈하고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친구 Kottke가 말했다. 나중에 억만장자 광산업자가 된 그를 “젊은 시절에 영적 귀감으로 삼았던 인물이 나중에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광산업자로 변한 모습을 접하는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아시겠어요(It was a strange thing to have one of the spiritual people in your young life turn out to be, symbolically and in reality a gold miner.)고 잡스는 말했다.
     
    잡스는 필수과목 수강에 대한 불만과 대학학비부담을 이유로 대학을 자퇴했다. Reed대학이 수업청강을 허용해준 덕분에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Mac의 다양한 활자체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4. 1974년 2월 잡스는 비디오게임 제조사인 Atari에 입사했다. 잡스의 태도를 본 담당관은 상사에게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면 들어오게 할까요?”물었다고 한다. Alcon은 그 친구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들의 반발을 혼자 야간근무를 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스티브는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철학적이었습니다.”창업자 Bushnell의 말이다.
     
    잡스는 인도에 다녀왔고 그 후에도 명상수련회에 계속 참석했다. 인도에서 돌아와 Atari에 재입사했을때 Bushnell은 게임프로그램 설계를 지시했다. 잡스보다 위즈의 능력을 기대한 것이다. 위즈는 다른 전문가들이 예상한 2~3개월 짜리 설계도를 사흘 안에 마무리했다. 하지만 잡스는 수입은 제멋대로 배분했다. Atari에서의 경험은 잡스가 사업과 설계에 대한 접근방식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Bushnell은 잡스에게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Pretend to be completely in control and people will assume that you are.)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5. 반문화 운동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컴퓨터를 인간성 말살을 암시하는 불길한 기계로 Pentagon이나 권력자들이 이용할 도구로 보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결국 스티브 같은 서부의 히피들이었다. 그들은 다르게 사고할 줄 알았다. 미국의 동부, 영국,독일, 일본은 다른 사고방식을 장려하지 않았다. 1960년대의 무정부주의적 사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잡스는 아침마다 명상을 했고 Stanford대학에서 물리학 수업을 청강했으며 밤이면 Atari에서 일하며 자기 사업을 꿈꿨다.
     
    Homebrew Computer Club에 가입한 워즈는 1975년 6월 29일 키보드의 글자를 쳐서 화면에 띄우는데 성공했다. 잡스는 흥분했다. 잡스는 Ron Wayne을 시켜 워즈를 설득하여 1976년 4월 1일 Apple사 설립계약서를 작성했다. 잡스는 Paul Terrell 의 주문을 받고 Creamer Electronics 부품상에서 외상으로 부품을 받아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남겼다. 그들은 1976년 노동절 제1회 개인용 컴퓨터 축제에 AppleⅠ을 안고 참석했다. AppleⅠ은 그것을 만든 두 스티브 만큼이나 애송이처럼 느껴졌다. (The AppleⅠ, on the other hand, appeared as scruffy as its creators.)
     
    6.Atlantic City의 PC축제기간에도 워즈는 AppleⅡ를 연구하고 있었다.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잡스는 Mike Markkula를 소개받았다. Markkula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3가지로 정리했다. 공감, 집중, 인상이었다. 1977년 1월 3일 the Apple Computer Co.가 공식출범했다. AppleⅡ는 향후 16년간 600만 대 가까이 판매되었다. Regis McKenna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워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있었을 겁니다.(Woz designed a great machine, but it would be sitting in hobby shops today were it not for Steve Jobs.)
     
    7. Chrisann Brennan은 애인에서 친구로 다시 친구의 애인으로 관계가 변해갔다. 1975년 Brennan은
    Greg Calhoun과 인도여행을 함께 떠나 각기 돌아왔다. Brennan은 잡스와 Kottke가 사는 집에서 함께 지내더니 몇 달 후 임신을 하였다. 잡스는 방관자의 태도를 보였다. 잡스와 Brennan이 23살 때의 일이었다. San Mateo 법원의 소송으로 친자확인검사를 하였다. “친부일 가능성...94.41%(Probability of paternity...is 94.41%)"로 판정되었다.
     
    8.Apple의 판매량은 1977년 2500대에서 1981년 21만대로 급증했다. 그러나 잡스는 ‘잡스의 컴퓨터“를 원했다. 하지만 AppleⅢ는 실패했고 LISA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1977년 Xerox는 Apple에 투자의사를 보였다. 잡스는 PARC의 신기술을 보여주는 조건을 제시했다. 상호간의 눈치작전 끝에 잡스는 설명회에서 3가지를 알아냈다. 네트워크 시스템의 가능성.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작동방식 그리고 graphical interface와 bitmapped screen이었다. Apple이 PARC의 기술을 도둑질한 것을 잡스는 이렇게 변호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발명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과 말했습니다.”(“Picasso had a saying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sl')
     
    9.1977년 1월 출범 당시 Raskin사의 가치는 5309달러였으나 1980년 12월 기업 공개시 17억 9000만달러가 되었다. 25세의 스티브 잡스는 2억 5600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다. 1981년 10월에는 <아이언시>잡지의 표지모델로 나오면서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꿔놓은 인물’로 소개되었다. 부와 명예의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잡스는 여전히 스스로를 반문화 히피로 여겼다. 그는 “1960년대를 휩쓸었던 이상주의 바람은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The idealistic wind of the sixties is still at our backs.")라고 말했다.
     
    10.1000달러 이하의 제품을 구상한 Jef Raskin과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잇는 제품을 만들려는 잡스는 충돌했다. 결국 Raskin은 Apple을 떠나고 그 자리에 Andy Hertzfeld를 앉혔다. 1981년 봄 무렵 잡스가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제품에 대한 강력한 열정이 있는 지 여부였다.(Job's primary test for recruiting people in the spring of 1981 to be part of his merry band of pirate was they had a passion for the product.) 잡스는 Raskin에 이어 Mike Scott도 사장직에서 몰아내고 강력한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11.Debi Coleman은 “한마디로 자기 충족적 예곡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내도록 만들었으니까요.”(It was a self-fulfilling distortion, she claimed, You did the impossible because you didn't realize it was impossible.)
     
    Hoffman은 “그는 사람들의 약점이 뭔지, 그들을 위축되고 움츠러들게 만드는게 뭔지 알아내는데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Mac팀은 1981년부터 매년 잡스에게 가장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상을 수여했다.
     
    12.Eichler주택에서 성장하면서 독특하게도 잡스는 단순하고 깔끔한 modernism을 이해했다. 아버지에게서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즐겨들었었다. 1983년 잡스는 앞으로 sony style은 지고 단순성을 강조하는 Bauhaus 스타일이 뜰 것을 예측했다. 그는 Apple의 제품이 깔끔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디자인의 주안점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하여 그는 수도없이 Mac 팀을 들볶았고, 소리를 지렀고, 토론했다.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잡스는 Mac 팀을 모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Real artists sign their work.)”그가 말했다. 사인을 하며 그들은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를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13.잡스는 Apple의 이미지를 골리앗 IBM과 싸우는 반항아로 설정했다. Apple내에서도 Mac을 LISA와의 경쟁관계로 설정했다. Apple은 잡스를 통제할 수 없었다. 잡스의 독단은 1982년말
     
    잡스는 무능한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했지만 주관이 있는 부하는 마음 속 깊이 인정해 주었다.
     
    14. 잡스는 Apple의 사장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고 평가되었다. 잡스는 John Scully에 주목했다. 잡스의 집요한 구애작전이 계속되었다. 서로 탐색과 협상이 교차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잡스는
     
    Scully를 도발했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Do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selling sugared water, or you want s chance to change the world)”
     
    결국 Scully는 연봉 50만 달러와 보너스 50만 달러의 조건으로 Apple에 영입되었다.
     
    15. 1984년 1월 16일 Mac팀은 Macintosh를 위한 code작업을 완료해야 했다. 1주일을 남기고 팀원들에게 bug가 발견되었다. 팀장은 잡스에게 전화를 해서 2주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잡스는 16일까지 할 수 있으니 하라고 명령했고 팀원들은 결국 해냈다. 잡스의 현실왜곡장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잡스는 광고 에이전시 Chiat/Day의 Lee Clow와 George Orwell에서 모티브를 삼아 “왜 1984년은 ‘1984년’과 다른가”를 컨셉으로 잡고 있었다. Macintosh를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용감한 전사로 만드는 광고를 만들었다.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이사회에서는 최악의 광고로 평가하고 반대했다. 결국 이 광고는 이 시대 최고의 광고로 선정된다.
     
    Macintosh의 출시는 1월 24일 De Anza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청중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있었다. 기자가 잡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했느냐고 물었다. 잡슨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삭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Did Alexander Graham Bell do any market research before he invented the telephone?)”
     
    16. 1984년 Apple의 연매출은 15억 달러에 달했지만 Microsoft는 고작 1억 달러였다. 당시에는 잡스가 왕이었고 게이츠는 신하였다. 잡스는 Microsoft에게 2년간 Excel을 오로지 Macintosh에만 독점공급하고 IBM PC버전을 만들지 않는다면 Apple에서 BASIC의 Macintosh버전을 개발하는 팀을 없애고 Microsoft의 BASIC에 대한 무기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자고 비밀협상을 했다. 이후 각종 협상에서 Microsoft가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그 후 게이츠가 독자적으로 GUI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게이츠와 잡스는 충돌했다. 게이츠는 잡스에게 재치있게 반박했다. “글세요.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둘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칩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I think it's more like we had this rich neighor named Xerox and I broke into his house to steal the TV set and found out that you had already stolen it.)”
     
    17. 1984년 5월 Scully가 합류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잡스는 감동적인 축하연을 벌였다. 1985년 2월 잡스는 서른 살의 생일잔치를 1000명을 초대해서 성대하게 치렀다. 하지만 그 당시 LISA의 매출은 전무했고 Macintosh는 월 1만 대 이하로 떨어졌다. Andy Hertzfeld가 휴직계를 냈고 Burrell Smith, Bruce Horn, 그리고 Steve Wozniak이 Apple을 떠났다. Mike Murray는 잡스 본인에게 그의 태도와 ‘인격말살식 경영방식’을 비난했다.
     
    Scully와 잡스는 회사개편안을 놓고 충돌했다. 임원회의는 Scully를 선택했다. 이제는 반란군 지휘관이 아닌 순종적인 병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There was no option left other than to play the good soldier rather than the renegade commander.)
     
    18. 1985년 9월 17일 잡스는 Apple에 편지를 보내 사임을 통보했다. 그리고 5명의 해적들과ㅏ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는 10만 달러를 들여 NeXT의 로고를 만들었다. 잡스에게 NeXT라는 이름과 로고는 세계적 수준의 감각과 정체성을 가진 사업체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But for Jobs it meant that NeXT was starting with a world-class feel and identity, even if it hadn't yet designed its first product.)
     
    얼마 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잡스에게 Ross Perot가 나타났다. Perot는 자금과 신뢰도, 인맥을 연결해주었다. 빌 게이츠와는 경쟁관계였다. 잡스는 IBM의 CEO John Akers를 설득해 합작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1988년 10월 12일 NeXT의 새 컴퓨터를 멋지게 세상에 선보였다. 공장은 월 1만대의 생산준비를 갖춰 둔 상태였으나 한 달에 100대 수준으로 판매되었다.
     
    19. 1986년 1월 잡스는 Pixar를 인수했다. 1000만 달러를 투자해 회사의 70%를 소유했다. 한 동안은 Ed Catmull과 Alvy Ray Smith가 운영하게 놔두었으나 곧 자신의 역할을 확대했다. John Lasseter는 잡스와 죽이 잘맞았다. Lasseter가 만든 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Pixar가 노력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콘텐츠 세 영역 모두 손해가 나고 있었다.
     
    Lasseter가 만든 는 1988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Lasseter가 잡스에게 축배를 건넸다. “위대한 영화를 만들라는게 당신의 유일한 부탁이었습니다.(All you asked is that we make s great movie.)"
     
    20. 잡스는 생모 Joanne Schieble을 찾아 만났지만 생부 Abdulfattah 'John' Jandali는 만나려하지 않았다. 친동생 Mona Simpson은 소설가였다. 친딸 Risa Brennan과의 사이는 변덕스러웠다. 잡스는 1982년 포크송 가수 John Baez와 만나 사귀다가 대학생 Jennifer Eagn과 사귀기도 했다. 만난 여인 중 가장 아름다웠던 Tina Redse에 대한 애정 표현은 열정적이었으며 1985년 Apple에서 물러났을 때 유럽 여행 중에 그냥 프랑스에 머물까하는 환상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그는 야심까지 버릴수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정의되는 거야,(I am a reflection of what I do.)"
     
    21. 잡스의 이상형을 데이터로 분석한다면 똑똑하고 가식이 없고 당당하고 평온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독립심이 강하지만 양보할 준비도 돼 있어야 했다. 털털하면서도 천사같고 그를 다룰 줄도 알고 안정적 이어야하고 팔다리가 길고 금발에 유머감각이 있고 채식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1989년 10월 그런 여인이 나타났다. Laurence Powell이라는 여인이었다. 그 둘은 1991년 3월 18일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후 태어난 Reed와 95년생 Erin, 막내 Eve는 98년에 태어났다.
     
    잡스는 부를 과시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불교에 몰입하던 시절 잡스가 배운 교훈은 물질적 소유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방해한다는 사실이었다.(The lesson Jobs learned from his Buddhist days was that materina possessions often cluttered life rather than enriched it.)
     
    22. Pixar의 잡스와 디즈니의 Jeffrey Katzenberg는 기질이 비슷했다. John Lasseter의 를 만드는 과정에서 Katzenberg의 입김이 강했으나 결과물은 실망스러워갔다. Lasseter는 자기 식으로 대본을 다시 수정해서 완성시켰다. 는 상업성, 예술성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Pixar는 개봉 일주일 후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잡스의 주식가치는 20배 이상 늘어나 12억 달러가 되었다. 잡스는 디즈니와 재협상을 완결지었다. 이제 잡스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기업 두 개 즉 Apple과 Pixar를 탄생시킨 인물이 되었다.(And he created two of the best of his era: Apple and Pixar.)
     
    23. 1988년 NeXT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곧 식어버렸다. 잡스는 몇 년 후 고통스럽지만 hardware개발을 포기했다. 잡스를 퇴출시킨 Apple의 주가도 1991년 70달러에서 14달러까지 떨어졌다. 1996년 위기에 처한 Apple의 CEO인 Gil Amelio는 Jean-Louis Gasse와 스티브 잡스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Amelio는 잡스를 선택했다.
     
    다음날 잡스는 Pixar를 찾아와 Lasseter에게 자신을 설명했다. “내가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유일한 이유는 애플이 죽지 않아야 세상이 더 살기좋은 곳이 되기 때문이야.(But the only reason I want to do it is that the world will be better place with Apple in it.)”
     
    24. 잡스는 Larry Ellison에게 Apple에 복귀하가 위한 전략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욕심이 있었다. 위대한 제품과 영구히 지속하는 회사설립이었다. 잡스는 결국 Amelio를 몰아냈다. 하지만 바로 승리의 잔을 마시기보다는 서서히 이사회를 장악해 나갔다. 그는 Milk Markkula를 퇴진시키며 조언을 구했다. Markkula는 “회사를 재창조해서 다른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해......나비처럼 탈바꿈하는 그런 조직이 돼야해(You've got to reinvent the company to do some other thing,.....You've got to be a butterfly and have a metamorphosis.)”라고 조언했다.
     
    잡스는 Microsoft와 타협점을 찾았다. Mac을 위한 software개발과 Apple에 대한 투자 두 가지였다. Apple의 주가는 26.31달러로 상승했다.
     
    25. 1997년 7월초 잡스는 Chiat/Day의 creative director인 Lee Clow에게 전화를 했다. 잡스의 간청에 Clow는 아이디어와 함께 나타났다. “Think Different"라는 구절이 잡스를 사로잡았다.
     
    잡스는 공석이 된 Apple의 CEO를 찾고 있었지만 공백이 길어질수록 임시직이었던 잡스의 위치는 영구직이 되어버렸다. 잡스는 Mac 호환제품생산을 중단시키고 end-to-end로 복귀시겼다. 잡스는 제품 종류의 70%를 없애고 직원을 3000명이상 해고했다. 잡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Deciding what not to do is as important as deciding what to do.).”라고 말했다.
     
    26. 영국의 Ive는 Apple의 디자인 팀장으로 있었다. Amelio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에 실망해 사직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디자인을 중시하던 잡스는 외부에 눈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으나 어느날 Ive와 대화를 나누고 의기투합했다. Ive와 잡스는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잡스와 Ive는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할 때마다 그것을 어느 정도로 단순화할 수 있는가를 놓고 씨름했다.(Jobs and Ive wrestled with each new design to see how much they could simply it.)
     
    27. 1998년 5월에 등장한 iMac은 가정 소비자시장을 노린 컴퓨터였다. disk drive가 장착되고 floppy disk drive는 제거되었다. Ive와 Coster가 스케치한 흥미로운 디자인은 단순성을 표현한 동시에 진정한 단순성이 수반하는 깊이까지 드러냈다.
     
    Ive의 팀은 Apple의 한국제조업체와 협력하여 케이스 생산공정에 완벽을 기했다.(Ive and his team worked with Apple's Korean manufacturers to perfect the process of making the case.)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온 부분이었다.
    iMac은 1998년 처음 6주 동안 27만 8000대 그해 말까지 80만대가 팔리며 Apple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가 되었다.
     
    28.Apple의 운영본부장을 맡은 인물은 Tim Cook이었다. 재직 초기 중국 공급업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그는 담당 간부에게 출장을 지시했다. 그 간부는 짐을 꾸릴 틈도 없이 곧장 San Francisco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는 Cook의 심복이 되었다.
    잡스는 그의 목표가 ‘머저리가 급증하지 않도록’ 즉 회사에 이류 인재가 넘치지 않도록 경계했다. “저는 A급 선수들은 A급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But I realized that A players like to work with A players.)
     
    29. 잡스는 고객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 모두를 통제하고 싶어했다. 1999년 말 소매업전문가 Ron Johnson을 채용하여 직접 고객과 접하게 만드는 매장을 구상했다. Apple store를 만들자는 잡스의 제안에 이사회에서는 Drexler만이 지지했다.
    2001년 5월 19일 첫 번째 Apple store가 개점한 뒤 10년 사이에 317개가 오픈했다. 매장 한 곳당 평균 방문자 수는 일주일에 1만 7600명이고 평균 수입은 340만 달러이다.
     
    잡스의 아이디어를 Apple의 전 CFO였던 Joseph Graziano는 이렇게 비판했었다. “Apple의 문제는 치즈와 크래커에 충분히 만족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캐비어를 대접하는 것이 성장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Apple‘s problem is it still believes the way to grow is serving cavier in a world that seems pretty content with cheese and crackers.)"
     
    30. 잡스가 새로운 디지털 혁명을 구상할 수 있는 이유 4가지를 들 수 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대가, 완벽주의, 단순미를 추구하는 본능, 승부사기질. 잡스는 컴퓨터가 디지털 허브로 진화한다는 비전을 품었다. Apple만이 hardware software 운영체제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잡스는 2000년 가을부터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을 추진했다. Jon Rubinstein은 Tony Fadell이란 인물을 찾아냈다. 2001년 10월 23일 잡스는 iPod을 처음 공개했다.
     
    잡스는 “만약 누군가가 애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제품을 보이겠습니다.(If anybody was ever wondering why Apple is on the earth, I would hold up this as a good example.)“라고 말했다.
     
    31. 2002년 Apple은 불법 다운로드 문제에 봉착했다. 하지만 Apple은 극적으로 음반회사와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음악산업의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2003년 4월 28일 iTunes Store를 처음 선보였다. 2003년 10월에는 윈도용 iTunes의 출시를 발표했다. 소니는 자기 잠식 효과를 두려워했으나 잡스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iPone이 iPod의 매출을 잠식하고 iPad가 lantop의 매출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잡스가 계획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2007년 1월 iPod의 매출로 발생한 수익이 Apple 전체 수입의 절반에 달했다.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준이 시시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The Zune was crppy because the people at Microsoft don't really love music or art the way we do.)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논어(論語)의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새 버전인 듯하다.
     
    32. 2005년 초 이후 하얀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iPod에는 무슨 노래가 들어있지요.(What's on your iPod)?
     
    이제 iPod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잡스의 iPod 역시 마찬가지였다. 잡스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음악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Bob Dylan을 만나고 얼어붙은 잡스, The Beatles를 흠모하는 잡스가 담겨져 있었다. Bono와의 합의도 그런 바탕 위에서였다. 잡스는 Yo-Yo Ma를 설득해서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33. 1996년 초 Dream Works가 개미를 주제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재작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Lasseter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Antz' 때문에 Katzenberg와 잡스는 충돌했다. 결과는 Antz는 1억 7200만 달러, Pixar의 A Bug's Life는 그 두 배의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즈니의 Eisner와 충돌했던 잡스는 Bob Iger가 디즈니의 수장이 되어 제의한 인수합병을 수락했다. Lasseter와 Catmull의 찬성을 얻고 계약은 성립되었다. 잡스는 “나의 목표는 언제나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위대한 회사를 세우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My goal has always been not only to made great products, but to build great companies.)”고 말했다.
     
    34. 2000년 출시된 Power Mac G4 Cube의 디자인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품에 선정될 정도로 매혹적이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60$에 이르던 Apple의 주가는 15$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잡스는 특이한 디자인을 추구해나갔다.
     
    잡스는 기꺼이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의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했다. (He wanted to be seen as someone willing to work for $1 a year, but he also wanted to have huge stock grants bestowed upon him.)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희생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35. 2003년 10월 그의 여의사가 CT촬영을 권했다. 검사결과 암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잡스가 가진 ‘마법적 사고방식’도 암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았다. 수술을 하였지만 이미 전이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그는 Stanford 대학에서 연설할 것을 수락했다. 그는 자신의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중퇴, 애풀에서의 해고, 암선고로 인한 깨달음
     
    Apple의 Rubinstein과 Ive는 계속 충돌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잡스는 Ive를 선택했다. 잡스는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직원은 아웃시켰다. “그는 일부러 논쟁시키려고 반대 입장을 취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오니까요. 그러니까 의견충돌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절대 살아남지 못하는 겁니다.”(He takes contrary positions to create more discussion, because it may lend to a better result. So if you don't feel comfortable disagreeing, then you'll never survive.)
     
    하지만 문제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그의 성격을 나타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36. 잡스는 Microsoft의 엔지니어에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tablet 컴퓨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Ive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다. 결국 widescreen iPod와 mobile phone 인터넷 통신기기를 하나로 결합한 iPhone을 2007년 1월 공개했다.
     
    2010년 말까지 Apple은 iPhone을 무려 9000만 대나 판매해서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창출된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거둬들였다.
     
    “스티브는 욕구를 이해하는 사람입니다.(Steve understands desire.)" Alan Kay의 말이다.
     
    37. 2008년 초 잡스의 암이 다시 퍼지고 있었다. 잡스는 건강 문제를 공개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잡스의 체중감소는 Apple의 주가를 2008년 6월의 188$에서 10월 초 97$까지 하락했다. 잡스도 결국 간이식에 동의했다. 2009년 3월 21일 교통사고가 난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의 장기를 이식받았다. 잡스는 그 와중에도 병원마스크의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Though barely able
    to speak, he ordered them to bring five different option for the work and he would pick a design he liked.)
     
    38.태블릿 PC를 기획하면서 처음에는 인텔과의 공동 진행을 추진했다. 하자만 Tony Fadell이 사직을 거론하면서 반대했다. 결국 Apple은 P. A. Semi사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칩을 개발토록하고 South Korea의 삼성에서 제조하였다.( 두 번째 나온 Korea 단어이다.)
     
    2010년 1월 27일 열린 iPad 발표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했다. iPhone에서 apps의 허용을 반대하던 잡스는 결국 생각을 바꾸었다. 결국 iPhone앱스토어는 2008년 7월 iTunes에 문을 열었고 그로부터 9개월 후에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이루어졌다.
     
    잡스는 iPod으로 음악 산업을 변화시키고 iPad와 앱스토어로 출판, 저널리즘, 텔레비전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디어에 변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With the iPod, Jobs had transformed the music business. With the iPad and its App Store, he began to transform all media, from publishing to journalism to television and movies.)
     
    39. Google의 Android가 ‘개방형’ 플랫폼인데 반해 잡스는 통합형을 고집했다. Mark Fiore의 풍자 애니메이션 앱을 거부하고 포르노물도 거부하면서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로 보일 위험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10년 6월에 출시된 아이폰 4는 안테나에 작은 틈이 막히는 결함을 간과하였다. 안테나 문제가 확대디자 잡스는 4개 문장으로 이를 표현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는 완벽하지 않지요. 우리 모두 그걸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자들을 만족시켜드리고 싶습니다.(We're not perfect. Phone are not perfect. We all knew that. But we want to make our users happy.)”
     
    40. 잡스는 병가중이었지만 2011년 3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Pad2 출시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는 또 한 번 인문학 거리와 과학 기술 거리의 교차로를 보여주는 슬라이드로 프리젠테이션을 마무리했다.
     
    그는결혼 20주년을 맞아 깜짝 파티를 계획했다. 예전에 묶었던 스위트룸을 비용에 상관없이 양보해달라고 청했다. 선약자는 흔쾌히 양보해 주었다. 그는 펀지를 낭독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My feet have never returned to the ground.)
     
    그는 iCloud를 기획하고 본사 건물의 설계도를 꼼꼼하게 마무리했다.
     
    41. 잡스는 2010년 6월에 있을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꼭 가야한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신께 간청했다고 말했다. Reed는 잡스와 소름끼치도록 닮았고 잡스의 표정이 밝아지는 유일한 순간은 Reed가 들어올 때 뿐이었다.
     
    잡스는 Obama대통령에게 미국의 과제를 토론하기위한 미팅을 제안했고 이루어졌다.
     
    2011년 7월 암이 뼈와 다른 부분까지 퍼졌다. 8월 24일 그는 CEO직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는 편지로 자신의 사임을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그 날이 왔습니다.( Unfortunately, that day has come.)"
     
    42. 내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We try to use the talents we do have to express our deep feelings to show our appreciation of all the contributions that came before us, and to add something to that flow.)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 세상을 바꾼 사람의 책 | bl**jim | 2011.12.2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CNN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월터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CNN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월터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세상에 나온 책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그리고 저자의 관점이 담겨 있다. 스티브 잡스 본인은 정작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지난 10월5일 세상을 떠났다. 자서전이라면 더욱 좋았지만, 그나마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다른 서평에 구구절절 표현되어 있으므로 생략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이 책 자체에 대해서는 기록해두고 싶다. 일단 표지에는 스티브 잡스 얼굴 흑백사진이 있다. 제목은 작은 글씨로 쓰여 있고 나머지는 여백이다. 한마디로 단순하다. 


    단순함이란 스티브 잡스가 평생 주창한 것 중의 하나다. 디자인과 기능을 단순하게 만들면 소비자가 편리하다. 소비자가 편리하려면 개발자가 힘들어야 한다. 복잡한 기능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 중심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발자들을 닦달했다. 이는 이 책에 여러 차례 강조되어 있다. 


    또 책에는 스티브 잡스의 개인사도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10여년 동안 모른 체했던 일, 여러 여성을 사귄 연애스토리, 결혼 후 낳은 아이들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은 독선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환영받을만한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친족, 가족,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 돈을 밝혔고, 기부에도 인색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 신념은 세상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컴퓨터, 아이팟, 휴대전화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TV 사업도 추진 중이었다. 아이팟과 휴대전화로 세계적인 전자 회사와 휴대전화 기업이 충격을 받았다. 아마 애플이 TV를 내놓았다면 세계적인 TV 제조사들도 긴장했을 터이다. 


    이 책이 한 기업인의 스토리 이상이라고 평가받은 이유이다. 이 책의 미국판은 600페이지, 한국판은 900페이지가 넘는다. 그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이 책은 또 한 번 세상을 변화시키는 촉진제임에 틀림없다. 


    (책 내용 중에서)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167쪽)


    "이윤을 많이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좋은 부품들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178쪽)


    "그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기꺼이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의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 했다." (712쪽)


    "잡스는 그게 사실이라면 오바마가 전화해서 직접 만나 달라고 해야 한다고 대꾸했다." (851쪽)


    "어느 분석가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사용하다 실수하자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잔소리를 하며 애플의 키노트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가 더 나은 이유를 설명했다." (859쪽)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861쪽)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스컬리는 이러한 우선순위를 뒤집어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어떤 사람들을 고용하는가, 누구를 승진시키는가, 미팅에서 무엇을 논의하는가 등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8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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