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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1판 5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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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쪽 | A5
ISBN-10 : 8954615201
ISBN-13 : 9788954615204
십자군 이야기. 1 1판 5쇄 중고
저자 시오노 나나미 | 역자 송태욱 | 출판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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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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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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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필생의 역작『십자군 이야기』제1권. 시오노 나나미가 현재까지 집필중인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중 제1권으로,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200여 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십자군 전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는 십자군 전쟁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전쟁의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세계와 역사, 그 장대한 물결의 흐름을 바꿨던 십자군 전쟁을 보면서 독자들은 중세와 십자군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과 권력에 대한 통찰력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시오노 나나미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 7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발표했다. 첫 단행본인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에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70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 1983년 기쿠치 간 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로마제국 흥망의 역사를 그린 『로마인 이야기』(전15권)에 몰두하여 1년에 한 권씩 집필했다. 1993년 『로마인 이야기 1』로 신초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했다. 2001년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전7권)을 간행했다. 2002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2006년 『로마인 이야기 15』를 끝으로 이 시리즈를 완결했다. 2007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 2008~2009년에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전2권)를 간행했다. 2010년부터는 『십자군 이야기』(전3권) 시리즈에 몰두하고 있다.

역자 : 송태욱
역자 송태욱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 대학원 연구원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사랑의 갈증』『비틀거리는 여인』『세설』『만년』『환상의 빛』『형태의 탄생』『포스트콜로니얼』『천천히 읽기를 권함』『번역과 번역가들』『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매혹의 인문학 사전』『안도 다다오』『빈곤론』『유럽 근대 문학의 태동』 등이 있다.

감수 : 차용구
감수 차용구는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중세 유럽 여성의 발견』이, 옮긴 책으로 『중세의 빛과 그림자』가 있고 「중세 문화 속의 그리스 신화」「필립 아리에스의 죽음관에 대한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제1장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카노사의 굴욕
성전을 호소하다
십자군의 탄생
은자 페에르
민중 십자군
제후들
툴루즈 백작 레몽 드 생질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드 부용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디 알타빌라

제2장 우선 콘스탄티노플로
'민중 십자군'의 운명
제후들, 속속 도착하다
황제 알렉시우스의 음모

제3장 안티오키아로 가는 긴 여정
프랑크인
니케아 공략
도릴라이움 전투
타우루스 산맥
에데사 탈취
교황 우르바누스의 설욕

제4장 안티오키아 공방전
이슬람ㆍ시리아의 영주들
십자군의 도착과 포진
식량 부족
이집트에서 온 사절
셀주크투르크, 일어나다
보에몬드의 계략
안티오키아 함락
투르크군의 도착과 포위
성스러운 창
십자군 대 투르크의 전투
안티오키아는 누구 손에?
아데마르 주교의 죽음
인육 사건

제5장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시리아에서 팔레스티나로
불의 시련
십자군 합류
당시의 팔레스티나

제6장 성도 예루살렘
성도를 둘러싼 공방
물 부족
공성용 탑
그리스의 불
예루살렘 해방
성묘의 수호자
이집트군의 접근
교황의 새로운 대리인이 오다
보에몬드과 보두앵, 성지순례에 오르다
탄크레디의 활약
고드프루아의 정복
이탈리아의 경제인들
고드프루아의 죽음
보에몬드, 붙잡히다

제7장 십자군 국가의 성립
보두앵, 예루살렘 왕이 되다
십자군의 젊은 세대
보에몬드의 복귀
레몽의 건투
보에몬드, 유럽으로 가다
함정
기묘한 전투
젊은 죽음
보두앵의 죽음
십자군 제1세대의 퇴장

도판출처

책 속으로

카노사의 굴욕 1077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카노사의 굴욕’이 알려지자 서유럽 전역의 선남선녀들은 경악한다. 황제가 행한 인사(人事)에 교황이 반대한 것이 발단이었는데, 교황은 자신의 반대를 무시한 황제를 곧바로 파문에 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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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1077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카노사의 굴욕’이 알려지자 서유럽 전역의 선남선녀들은 경악한다. 황제가 행한 인사(人事)에 교황이 반대한 것이 발단이었는데, 교황은 자신의 반대를 무시한 황제를 곧바로 파문에 처한 것이다.
파문의 위력은, 파문당한 자와 관계를 지속하면 그 사람도 파문당해 그리스도교의 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중세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었다. 당연히 가신과 병사들은 파문당한 주인을 떠난다. 즉 파문이란 사회로부터 전면적인 추방을 의미했던 것이다.

젊고 혈기가 드센 하인리히도 한동안은 버텼지만 끝내 항복한다.
독일에서 비밀리에 이탈리아로 들어온 황제는 교황이 체재중인 카노사 성 앞에 섰다.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자답게 얇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줄기차게 쏟아지는 1월의 눈을 맞으며 내내 맨발로 서 있었다.
카노사 성은 이탈리아 중부에 광대한 영지를 갖고 있으며 개혁파의 지지자로 알려진 마틸데 백작부인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성 안, 큼직한 난로에서 불이 기세 좋게 타오르는 따뜻한 거실에서 승리감을 만끽하는 쉰일곱 살의 교황. 한편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눈 속에 홀로 서 있는 스물일곱 살의 황제.
‘카노사의 굴욕’은 서유럽 전역의 그리스도교도에게 교황의 권위와 권력을 일깨운 일대 사건이 되었다. 파문은 풀렸으나 교황의 완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은 세계사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데, 그후 8년 동안 황제 하인리히는 교황 그레고리우스를 바싹 궁지로 몰아넣는다. 젊고 혈기가 드센 남자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주고 치욕을 안기는 일은 현명한 방식이 아닌데,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강단은 있었으나 정치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나중에 로마 교회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만, 그가 죽은 곳은 그의 거처인 로마가 아니라 도피처였던 살레르노였다.
“나는 정의를 사랑하고 정의 아닌 것을 증오했다. 그래서 추방된 몸으로 죽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지만 그레고리우스가 말한 ‘정의’는 어디까지나 로마 교회와 로마 교황이 모든 것 위에 있다는 생각과 다름없었다.
이 그레고리우스의 뒤를 이은 사람은 온후한 성격의 빅토르 3세였으나, 그는 황제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채 2년 만에 죽는다. 그 뒤를 이어 교황에 선출된 사람이 우르바누스 2세다. 1088년 봄, 젊은 수도사였던 그도 이제 마흔여섯 살이었다.
(…)
그레고리우스가 죽은 곳은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였는데, 우르바누스가 교황으로 선출된 곳도 그 근처 도시인 테라치나였다. 이 시기의 교황들에게는, 죽는 것도 교황이 되는 것도 로마 밖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황제 하인리히는 아직 서른여덟 살. 카노사에서 당한 굴욕을 잊지 않은 황제는 군사력으로 교황을 몰아붙임과 동시에 교회 내부를 분열시킴으로써 대립교황을 선출하게 했다. 로마 교황이 지닌 권위를 뿌리째 무너뜨리는 책략을 부린 것이다.
(…)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증한 이래, 8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로마 교황의 거처였던 라테라노 궁전에조차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교황. 이것이 프랑스 땅에서 십자군을 제창하기 전 우르바누스 2세가 처해 있던 실상이었다. 즉 교황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신성로마제국이 지닌 강대한 힘으로부터 어떻게 로마 교황의 권위를 지켜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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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대가 공유하는 신념이 역사 위에 펼쳐놓는 광기는 장관이다. 그 광기를 들추어내는 시오노 나나미의 문장은 서늘하다. _김훈(소설가) 이 책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이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시대가 공유하는 신념이 역사 위에 펼쳐놓는 광기는 장관이다.
그 광기를 들추어내는 시오노 나나미의 문장은 서늘하다.
_김훈(소설가)

이 책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이다.
_시오노 나나미

욕망과 의지, 빛과 어둠의 실로 짜인 인간 드라마
십자군 전쟁의 막이 오르다

이제 새로운 차원의 지적 쾌락과 전율의 책읽기가 시작된다!


세계와 역사, 그 장대한 물결의 흐름을 바꿨던
그 최초의 번뜩임을 목격할 수 있는 시간.

그 순간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박진감 넘치는 묘사,
인간과 권력에 대한 통찰,
서슴없이 핵심을 파고드는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문장…

그 어떤 누구도 중세를, 십자군을, 십자군 전쟁을
이처럼 생동감 있게, 박력 있게,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은 인류 역사상 200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인류 역사의 대사건으로, 세계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장 문제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과연 십자군 전쟁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위력적인 한 마디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은,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왕과 봉건 제후, 교황과 주교, 수도사, 기사와 빈민 등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그 각자의 독특하고도 다른 개성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거나 어떤 국면을 만들고 또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하면서 만들어낸 역사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바로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그 시대 속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상과 욕망, 성공과 좌절의 명암을 통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를 소위 ‘카노사의 굴욕’이라 알려진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카노사의 굴욕’. 1077년 주교서임권을 두고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내린 파문에,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사흘 밤낮을 눈밭에 맨발로 서서 파문을 풀어달라고 빈다. 이 사건은 왕이라는 세속 권력의 위에 있는 중세시대 종교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카노사의 굴욕’ 이후의 일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카노사의 굴욕’ 자체는 교황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이것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온 최초의 바람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역사라는 무대의 막과 막 사이에서 인간들이 어떤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어떤 정치적 판단을 하며 움직이는지를 인간 내면을 꿰뚫는 특유의 직관력으로 포착하여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르바누스는 그레고리우스에 비해 꽤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상대가 가진 힘(군사력)에 대항하는 데 다른 군주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힘, 즉 교황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제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해도 황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으니까. (21쪽)

‘카노사의 굴욕’ 이후 황제 하인리히의 반격은 강력하고 집요했다. 카노사의 승리자인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에서 ?겨나 죽을 때까지 로마 땅을 밟지 못한다. 후임 교황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궁지에 몰려 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1095년)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함으로써 하인리히에 대한 반격을 시작하고 1차 십자군이 구성된다.

우르바누스 2세는 대담한 승부를 건 것이다. 선임자인 그레고리우스 7세는 황제를 사흘 밤낮 눈 속에 세워둠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했지만, 그 강경책의 결과를 직접 경험한 우르바누스 2세는 로마 교황의 권위, 즉 세상의 모든 군주를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로마 교황이라는 것을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동방에 보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탈환함으로써 보여주려 한 것이다. (28쪽)

『십자군 이야기 1』에서는 이들이 1096년 유럽을 출발해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를 거쳐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까지,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이후 18년 동안 확립해 나간 십자군 국가의 성립과, 보두앵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십자군 제1세대가 역사에서 모두 퇴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의 한 생애에서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각각의 명암이 다른 매력을 발견할 줄 안다. 각각의 시기 속에 마치 맹아처럼 숨겨져 있는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하여 생생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 매력이 비열함이나 야망일수도 있고, 용맹이나 이상의 힘을 믿는 무모함일 수도 있고, 상황과 인물에 대한 통찰력일 수도 있다.
저자가 그려내는 1차 십자군의 중심인물들은 마치 중세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석관의 부조에서 먼지를 털며 떨쳐 일어난 듯 활기차게 살아 숨쉬며 저마다의 개성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 인물들은 중세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어두운 빛이 아니라 드넓은 평원에 내리쬐는 태양광을 광원으로 삼아 찬란하게 빛나며 독자들을 매혹한다.
역사가들은 십자군 전쟁에서 광기와 사망자 수, 증오와 원한에 찬 비극의 기원을 발견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장대한 드라마를 발견하고, 그 빛과 어둠 속에서 매혹적인 인간 군상의 생생한 이야기를 압도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중세시대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성큼 벗어나 있어 편향된 시각을 찾아보기 어렵다.

승리한 직후 그리스도교측이 전사한 투르크 병사 2천 명의 머리를 잘라, 천 급(級)은 니케아의 성벽 안으로 던져넣고 나머지 천 급은 자루에 담아 황제 알렉시우스에게 보냈다는 에피소드가 그후 서유럽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이 비참하고 잔혹한 에피소드에 대해 근현대의 서유럽 연구자들은, 몇 급을 성벽 안에 던져넣은 것은 인정하지만, 그 수가 천 급이라거나 절반을 황제에게 보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측 사료에는 이 참사 자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이것도 이런 유의 사건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는 승자 쪽이 너무 기쁜 나머지 숫자를 과장해서 남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패자가 남기는 경우에는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가 반드시 직면하는 문제인데, 이 사료들 사이를 통과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양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가 남긴 기술이 존재할 것.
그러나 십자군의 역사에는 이런 제삼자가 없었다.
둘째, 정확성을 기하는 것이 습관이자 전통인 민족이 남긴 기록을 참고할 수 있을 것.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바, 그 경우에 해당하는 나라는 둘밖에 없다. 중세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공화국과 고대 로마제국이다. (90~91쪽)

이 에피소드를 기술한 이슬람측 기록은 분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집안싸움만 벌인 것이 원인이다, 즉 프랑크인의 성공은 이슬람측이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안싸움은 그리스도교도측에도 많았다. 다만 제1차 십자군의 주역이었던 제후들은 궁극적인 목표 앞에서는 다른 걸 잊었던 것뿐이다. 물론 그것도 일시적이었고 위급한 상황이 지나자마자 다시 싸우긴 했지만.
이슬람측이 이 시기에 열세였던 것은 단지 궁극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은 홈에서 싸우면서도, 어웨이에서 싸우는 불리함을 안고 있던 십자군에게 성공을 허락했던 것이다. 이슬람측이 이 궁극적인 목표의 중요성을 깨달으려면,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활용하려면 살라딘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269쪽)

또한 십자군 원정이 가능했던 중세 시대의 물적 토대와 구조에 대한 분석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봉건제와 장원, 농노, 왕과 봉건 제후의 관계, 기사도, 비잔틴제국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회의 갈등 등에 힘을 빼지 않는다. 가능한 한 인간과 그들을 강하게 하거나 약하게 하는 내적 요인과 외적 조건에만 집중하여 박진감 있게 드라마를 진행시켜 나감으로써 이야기에 압도적으로 빨려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는 인간들은 중세의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욕망을 가진 현대적인 인간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적재적소에 저자 특유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한 평설을 풀어 놓음으로써 지적인 호기심이 만족감으로 바뀔 수 있게 하며, 그를 통해 더 큰 지적 쾌락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연구자 중에는 제후들 가운데 이 고드프루아만은 왜 십자군에 참가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즉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볼 나이이기도 한 것이다.
그때까지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의 반생은, 그레고리우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교황을 몰아붙일 생각밖에 머릿속에 없던 황제의 뜻에 따라, 그레고리우스를 산탄젤로 성에 가두고, 교황이 된 우르바누스가 로마의 땅을 밟을 수 없게 하는 데 허비되어왔다.
만약 자신의 이 반생을 돌아본 고드프루아가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리고 우르바누스의 클레르몽 연설을 전해듣고 그런 마음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면? (46~48쪽)

후세의 역사가들은, 예루살렘을 해방한 후 유럽으로 돌아간 장수들을 영토 욕심이 없고 신앙심으로만 뭉친 기사들이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책임감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만으로는 신앙조차 지킬 수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현실이니까. (253쪽)

저자의 전작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 시대와 로마인에 대한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들을 중심에 놓은 새로운 역사서로 읽혀 큰 공감과 반향을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군 이야기』 역시 중세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뛰어난 역사서임에 틀림 없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 누구도 저자만큼 십자군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박진감 넘치게, 생생하게 쓰지 못할 것이다. 독자들은 중세와 십자군의 역사,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됨은 물론이고, 현재의 다양한 문화산업에서 변형되어 재생산되는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중세와 십자군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그러나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의 한복판에 살면서 황제나 왕, 제후 등 누구보다 더 광범위한 정보를 꿰뚫고 있던 사람은 로마 교황이었다. 신도가 사는 땅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사제. 그런 그들을 통솔하는 주교. 군주들 가까이에 반드시 대기하고 있는 고해신부. 그리고 각 지방을 담당하는 주교를 통하지 않고 로마 교황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수도원. 이 수도원들은 그 지방의 생산기지이자 경제기지였다.
비록 로마에 있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이러한 정보원들로부터 온갖 종류의 정보가 교황에게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상인과 성직자라고 해도 좋은 시대였다. 더군다나 상인과 성직자의 관계는 의외로 밀접했다. 자주 입장이 바뀌었지만 상인과 성직자는 매도자와 매수자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로마 교황은 폭넓은 시야로 책략을 세우는 데 누구보다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또한 세속의 군주들에 비해 ‘학식’ 있는 이가 많았다.
우르바누스 2세는 교황에 취임한 해부터 프랑스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하기까지 7년 동안 로마에 거의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가 서른여덟 살부터 마흔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여전히 교황에게 적대적인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이탈리아 각지를 전전하면서도 정보에는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명석한 두뇌의 그리스도교 세계 개혁론자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 당시의 군주들이 자기 영토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으로 말하면 글로벌한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로마 교황이었을 테니까.
(…)
교황과 황제의 권력 범위를 어디서 어떻게 선을 그어 구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직후 시작된 황제 하인리히의 반격 기간과, 교황이면서도 로마에 있을 수 없었던 세월까지 총 15년 동안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르바누스는 그레고리우스에 비해 꽤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상대가 가진 힘(군사력)에 대항하는 데 다른 군주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힘, 즉 교황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제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해도 황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으니까.
(…)

성전을 호소하다
(…)
1095년 11월 클레르몽에서 개최된 공의회의 주요 무대는 실내가 아니라 실외였다. 우르바누스 2세는 대성당 앞의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때 했던 연설의 정확한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연대기 작가가 남긴 기록을 참조하면 교황의 ‘호소’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진행됐던 것 같다. 이제 쉰세 살이 된 옛 클뤼니 수도원의 수도사는, 그에게 인생의 승부처인 이 클레르몽에서 모든 청중을 향해 강력하게 설파한다.

먼저 전반부에서는 현재 그리스도교 세계를 뒤덮고 있는 윤리의 타락을 개탄한다.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횡행하고 있는 현 상황을 규탄하고, 이대로 방치하면 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고 질책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를 막는 수단으로 ‘신의 휴전’을 제창했다. 같은 그리스도교도들이므로, 영토의 보존을 위해서든 확장을 위해서든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교황은 연설 전반부에서 그리스도교도를 비난했지만, 후반부에서는 그 공격의 화살을 이교도에게 돌린다.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 ‘휴전’이 실현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며 말을 이었다. 동방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청하고 있는 ‘형제’에게 달려가, 이 신앙의 동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그리고 왜냐하면, 이라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이슬람교도는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해 너희 형제를 공격하고, 죽이고, 납치해 노예로 삼고, 교회를 파괴하고, 파괴하지 않은 곳은 모스크로 바꾸고 있다. 그들의 폭력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맞서 일어설 때다.” 그리고 한층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어제까지 도적이었던 자가 그리스도 전사가 되고, 형제나 친지와 다투던 자가 이교도와의 정당한 싸움터에서 그 분노와 원한을 풀 날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푼돈을 받고 하찮은 일을 하며 세월을 보내던 자도, 이제부터는 신이 바라시는 사업에 참가하여 영원한 보수를 받게 될 것이다.
출발을 미뤄서는 안 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곧장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대로 동방을 향한 진군을 시작한다. 신이 바라시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감동했다. 군중 사이에서 자연스레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라는 함성이 터져나왔고, 그 커다란 함성 속에서 한 사람이 막 연설을 끝낸 교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원정에 참가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
_ 본문 1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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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송범종 님 2011.09.16

    신권과 왕권의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

  • 문장길 님 2011.08.09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회원리뷰

  • Good~^^ | yo**gduke | 2014.08.21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좋음. 로마인 이야기 만큼 공력은 아니지만, 로마인 이야기 보다 쉽게 읽힘. 좋아요~~^^

    좋음. 로마인 이야기 만큼 공력은 아니지만,

    로마인 이야기 보다 쉽게 읽힘.

    좋아요~~^^

  • 십자군 이야기 1권 | ok**h | 2013.06.2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국내에 발간된 책은 제가 아는 수준에서는 다 읽었고, 로마...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국내에 발간된 책은 제가 아는 수준에서는 다 읽었고, 로마인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저작들은 상당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십자군 이야기>는 출간 된지 거의 만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첫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시리즈가 완결 되기를 기다렸던 탓도 있지만 그 이전까지 자주 가는 시립 도서관에서는 항상 대출중인지라 빌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유가 가장 컷습니다. 물론 예약을 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기다렸으면 일찍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언제고 기회가 되면 만나지...'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그게 지금이더라 하는 겁니다. 그레서인지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드디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군요.
     
    어떤 사건을 대할 때면 규모나 의미 면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갖지만 본질을 보면 별 게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신이 그것을 원하셨다'고 요약되는 십자군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단지 그만두자고 주창하는 것만으로 중지된 적이 없다. 그러한 인간세계에서 군주들 사이의 휴전을 실현하려면, 지금 서방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는 힘과 에너지를 다른 데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동방을 그 목표로 삼은 것인, 동방으로 향하면 같은 휴전이라도 '신(神)의' 라는 말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대의'이자 '명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7 페이지)
     
    하지만 이 십자군에 최고사령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최고사령관을 정하자고 말을 꺼낸 사람조차 없었다. 그 때문에 지휘계통의 일원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5만명의 군대가 유기적으로 활용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56 페이지)
     
    재미있는 것은, 상대편에서도 항상 이런 본질을 보기보다는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대처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매번 반복되는 듯하면서도 디테일은 조금씩 다른, 흥미로운 양상을 띄는 것이기도 하겠죠.  
     
    그것은 제2차 신자군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는, 십자군이 종교를 기치로 내건 군대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한 동안은 늘 그렇듯이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고용한 용병부대라고만 생각했다. 소아시아에서 십자군과 싸운 이슬람 교도인 셀주크투르크의 영주들도, 이들이 비잔틴 제국의 활제가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고용한 용병이라고 믿었으므로... (109 페이지)
     
    모든 것은 영토의 문제이지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십자군이 신의 깃발 아래 모인 군대이고 십자군 원정의 목적이 이슬람을 격퇴하고 그 땅에 십자군 국가를 세우는 데 있다는 것을 이슬람측이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인, 이 시기로부터 무려 80년이나 지난 후에 등장하는 살라딘에 의해서다. (110 페이지)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이, 제3자의 개입입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대결 구도에서 자칫하면  이 사건을 너무 편협하게 단순화 시켜서 접근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 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베네치아인은, 이들이 과연 같은 이탈리아인인가 하고 놀랄 정도로 다르다. 베네치아의 통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베네치아인을 '베네치아 주식회사'의 사원이라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항상 한데 뭉쳐 진출했다. 그러므로 시작은 피사나 제노바에 뒤처졌지만, 일단 마음 먹으면 철저하게 할 뿐더러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베네치아인의 일관된 행동방식이었다. 경제인 중에서도 최고인 '이코노믹 애니멀'이었던 것이다. (277 페이지)
     
    1권은 전적으로 십자군의 발생과 1차 십자군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작이 그리 산뜻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해방'과 그 주변의 항구 도시들을 모두 정복하는데 성공하고 스스로도 출정 당시 약속했던 내용에 따라 구원 받을 자격을 획득합니다. 이에 반해 이슬람 세력들은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격파를 당하죠.
     
    십자군을 위험에서 구해준 것은 셀주크투르크측의 변함없는 내부 분열과 영지 쟁탈전, 적대의식, 그리고 그들의 탐욕이었다. 보에몬드를 석방하면서 받은 막대한 몸 값으로, 이슬람 영주들은 그리스도교측 중요인물을 붙잡으면 한 몫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311 페이지)
     
    그 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이 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였던 이슬람측 영주들과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345 페이지)
     
    이걸 가지고 이제는 서방의 우수성이니, 이슬람 사람들의 미개함, 단결력 부족 같은 것들을 언급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슬람 입장에서 1차 십자군을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은 물론, 서유럽의 군대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 각 영주의 이기심이 특히 강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십자군의 본질적인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역시 재미있습니다만, 전 사실 로마인 이야기 후반부부터 긴장감이나 몰입도가 점차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카이사르나 한니발 같은 영웅의 이야기는 사랑과 애정을 담아 거침없이 풀어가지만 상대적으로 찌질한 보통 남자들의 이야기는 저자 자신도 몰입도가 낮은 가운데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전부터 해 왔거든요.
     
    특히, 엄청나 비판을 받기도 하지지만, 그의 글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군데군데 들어간 작가의 추측 부분인데, 십자군 이야기에서 보이는 대목들은 조금씩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때 보에몬드가 취한 기묘한 행동의 이유는 기록에 없으므로 상상할 수 밖에 없는데, 보헤몬드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조카 탄크레디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보두앵이 석방되지 않으면 에데사는 계속 너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티오키아 공작령과 에데사 백작령 둘 다 우리 일가의 영유가 될 것이다, 라고. (312 페이지)
     
    굉장히 나쁜 버릇이긴 한데, 이 시리즈에 대해서 한가지 예측을 해 볼께요. 십자군 이야기의 절정은 살라딘이 나오는 다음 부분일테고, 이후는 아마 시리즈를 완주하겠다는 일념으로 글자를 따라가면서 의미를 파악하는 수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래도 다 읽을 생각이지만요.
     
    PS
    여담으로 대주교가 왕에게 예루살렘과 주변지역을 신의 소유로 할 것을 요구하자 왕인 고드프루아는 '죽은 후'라고 약속했다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하고 있네요. 재미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교 세계, 특히 카톨릭 국가에서는 '죽은 후'라는 약속은 안 하는게 좋다는 것이 서민의 지혜다. 왜냐하면 신은 친절한 분이므로, 그렇다면 이런 고생스러운 삶이 아니라 즐거움만 있는 죽음의 세게로 보내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이것을 그들은 '신의 손'이라고 보른다. 좀더 고상한 말로 하자면 '신의 은총(프로비덴티아)'이다. 따라서 서민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고드프루아에게, '죽은 후에' 같은 말을 그리 가볍게 하지 말지 그랬느냐고 했을지 모른다. 그 약속을 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고드프루아 죽었을 때, 교황의 대리인 다임베르트도 속으로 이거야 말로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니. (281 페이지)
  • 성전(聖戰)의 이면 | YO**IK | 2013.06.1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4
              역사서를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사건을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역사대하소설은 흥미진진할 때가 많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을 왜곡한 역사대하소설이 더 많은 것이 문제지만……. 역사대하소설의 형식을 가미한 역사해설자로서 시오노 나나미의 글쓰기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중세를 다룬『십자군 이야기』에서도 다시 한번 그 매혹에 빠져들 수 있을까? ...
     
     
     
     
     
    역사서를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사건을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역사대하소설은 흥미진진할 때가 많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을 왜곡한 역사대하소설이 많은 것이 문제지만……. 역사대하소설의 형식을 가미한 역사해설자로서 시오노 나나미의 글쓰기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은 드문 같다. 중세를 다룬『십자군 이야기』에서도 다시 한번 매혹에 빠져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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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문장부터 도발적이다. ‘인간 권력자 치환하면 의미가 더욱 명쾌해진다. 전쟁은 권력자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북한의 수위 높은 전쟁 위협으로 한동안 뒤숭숭했다. 북조선 김씨 왕조의 삼대 세습자 정은 어떤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었던 것일까?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은 당시의 청중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리라. 과연 신이 전쟁을 바라셨을까? 아무리 성지(聖地) 탈환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구호가 아름다울수록, 이면에는 권력자의 거대한 욕심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사건의 배경에는 카사노의 굴욕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성직자들을 임명하자, 교황은 황제를 파문에 처했다. 1077, 맨발의 황제는 카노사 앞에서 사흘 밤낮 눈을 맞으며 교황에게 용서를 빌었다. 황제 나이가 27살이니, 한참 혈기가 팔팔할 때가 아니던가! 황제의 핍박으로 교황은 로마의 거처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피처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다. 과정을 너무도 알고 있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강대한 힘으로부터 교황의 권위를 지켜낼 있는 방도를 찾아내야만 했다.
     
    때맞춰 등장한 이가 은자 피에르이다. “은자(隱者) 번역한 에레미타(rmita)’, 수도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신앙에 정진하는 수도사(frater)와는 달리, ()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나 사막 한가운데의 동굴에서 혼자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때문에 그들은 인간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불상사에도 과도한 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었다.”『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보충설명을 달았다. 혼자 수행하다가 보면 성격이 외골수로 변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외골수 성격 때문에 수도원에서 공동생활을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성지 순례에 나섰던 피에르는 유럽으로 돌아와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박해를 막기 위해서는 성지를 정복하는 밖에 없다고 분개하며 돌아다녔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이런 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1095,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오리엔트 원정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성전의 참가자는 가슴이나 등에 붉은 천의 십자 표시를 붙여야 했기에 십자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십자군 참가자에게는 완전 면죄가 주어졌다. 천국 예약 0순위! 지금으로서는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겠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보상이 아니었을까?
     
    십자군 출정이 확정되자마자, 엉뚱하게도 가장 먼저 움직인 무리는 은자 피에르의 선동에 감동한 하층계층민들이었다. 10 정도가 식량마저도 준비하지 않은 , 신의 가호만 믿고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민중 십자군 극심한 민폐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사는 헝가리에서조차 무력으로 막았으니……. 소아시아에 상륙하자마자 2 명이 투르크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도 언제인지 모르게 스러져, 성지 가까이 가지도 못한 소멸되고 말았다. 제후들의 십자군에 끼어들게 은자 피에르는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탈주하다가 붙잡히기도 한다. 종교적 광기에 휩싸여 선동에는 소질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참으로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람이다. 요즘에도 이런 성직자들이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이성은 그다지 믿을 것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유럽을 떠난 3 만인 1099 7 15, 성지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함락되었다. 은자 피에르 본인으로서야 감격에 겨웠겠지만, 그를 따르다가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영령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있었을까? 성지 해방 2 ,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로마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의 늦은 정보 전달 체계로 인해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 이것도 신이 바라신 것이었을까?
     
     
     
     
    <예루살렘 성채>
     
     
     
    *
    여자란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 있고 신뢰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도 미워할 없는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다.”  <055>
     
    노르만계이면서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공작인 보에몬드는 나쁜 남자 전형이 아닐까? 47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오리엔트 여자들의 마음까지 녹였다고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쁜 남자’ ‘배드 (bad girl)’ 치명적인 유혹에 대항할 있는 백신은 없는 같다. 냉정하면서도 교활한 그는 안티오키아 정복에 가장 공로를 세웠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공작령으로 만들어버렸다.
     
    1 십자군 총대장 격인 신성로마제국의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부용은 좋은 남자 계열에 속하지 않을까? 신성로마제국에서 교황을 박해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가 십자군에 참여한 자체가 극적 반전이었다. 성지 탈환 직후 39살의 젊은 나이로 성묘의 수호자 예루살렘 왕에 추대되었다. 적인 아랍인 태수들조차도 그의 검소한 생활습성과 순수한 마음에 탄복했다고 하니…….
     
     

     

     
     
     
    *
    그다지 많지 않은 군사로 적지를 원정한 십자군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사들의 용맹성을 가장 먼저 뽑아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그토록 용맹한 이유는 깊은 신앙심으로 무장된 정신력에 있었겠지만 개인장비도 하지 않았을까?
     
    작은 철제 고리로 짜서 만든 호비크위에 강철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왼손에 방패를 오른손에는 창을 들었다. 중세유럽의 투구는 기사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다. 사람보다 로봇에 가까운 섬뜩함을 풍겼을 것이다. 엄청난 화살을 쏟아 부어도 모두 튕겨나갔고, 창과 칼도 여간해서는 효력을 발휘할 없었다. 경무장한 투르크군이 느끼는 공포심이란! 옛날 옛적에 투르크(돌궐)인들이 고구려의 이웃에 살았다. 혈통적으로 또한 언어적으로 유사점이 많아서일까? 그들의 전율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  이전에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등 두어권의 책을 읽은 바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책들의 연장선상으로 십자군...
     이전에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등 두어권의 책을 읽은 바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책들의 연장선상으로 십자군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한다.
     
    아니 사실은 이 책만 읽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보여진다.
    실제 침공을 당한, 당시의 아랍인들의 입장에서의 십자군도 살펴봐야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십자군 전쟁이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며,
    중세의 시대에 그러했듯이 현재에도 아랍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랍은 여전히 분열 중이다.
     
    아래는 이전에 써 뒀던 감상문..ㅎㅎㅎ
     
    학교 댕길 때 들었던 "카노사의 굴욕" 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교황 요 녀석이 "카노사" 성 앞에서 얇은 옷차림에 맨발로 사죄를 하러온 황제를 무려 3일 밤낮동안 세워두었다는 것이지.
    게다가 1월달이고. 결국 이 사건으로 교황의 권위가 황권을 눌렀다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처럼 힘으로 내리 눌렀으니 
    교황 요 녀석의 훗날도 결코 좋지 않았다. 쉰 아홉살의 교황은, 당시 스물 아홉살의 황제가 앙심을 품고, 대립 교황을 세워서 
    괴롭힌 결과 한시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밖으로 떠돌다가 쓸쓸하게 죽고 말았지.
    "카노사의 굴욕" 이라는 책에 나오는 역사보다는 이런 뒷 이야기가 훨씬 교훈이 되지 않은가!
     
  •    고등학교 세계사 기간에 중세유럽에 대해 배울때 십자군 전쟁 - 십자군 원정이라고도 배웠다 - 은 교과서...
       고등학교 세계사 기간에 중세유럽에 대해 배울때 십자군 전쟁 - 십자군 원정이라고도 배웠다 - 은 교과서의 몇 페이지를 장식하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전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눈밭에서 3일 밤낮으로 교황에게 빌어 파문을 면제 받는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에 대해서만 간략히 배웠다. 그토록 강성했던 교황의 권위가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추락하게 되고 다시 황제의 권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교의 선진 문물을 받아 들이게 되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또한 십자군 전쟁에 대해 황제,교황, 성직자,귀족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달달 외워야 했다. 객관식 시험 문제로 출제한다면 정답이 명확히 나눠지므로 채점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무려 200년간 7차례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4시 선다형 객관식 문제 맞추기 위해 암기를 해야만 했던 나에게 십자군 이야기와 같은 작품을 접한다는 것은 사치였을지 아니면 내신에서 비중이 낮음에도 먼 미래를 바라보고 세계사에 빠져들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을지 그 시절로 [십자군 이야기]를 들고 돌아갈 수 없기에 상상에 맡겨야 할 것이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이기에 죽어서 천당에 간다거나 혹은 환생이니 하는 말은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신의 가호를 바란다거나 기도를 한다는 것 조차 이해가 되지않는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기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물어본다면 반박할 말도 없지만 말이다. 이런 나에게 종교는 믿음이라기 보다 하나의 학문에 불과하다. 특정 종교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종교에 열광하는지 궁금하고 종교 전쟁이 발발하게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고 싶고 인물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이미 고인이 되었더라도 현재의 나의 멘토로 삼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십자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내가 닮고 싶고 또는 나의 성향과 비슷한 멘토들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만나게 되었다. 이런 역사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마치 내가 전장에서 함께 피를 흘리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나 제후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에 빗대어 상상해 보건데 평범한 병사나 농사꾼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왜 그랬을까?'라는 아쉬움을 금치 못할때도 있다. 필자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살아 숨쉬는 듯한 문장이 나를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란 항상 승리한 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패자라고 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과장되고 통쾌하게 표현하고 싶어하고 패자는 피해에 대해서는 축소를 하고 상대방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과장하고 싶어할 것이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예루살렘 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Away에서 우승한 십자군들이 승자이고 Home이라는 유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단결하지 못해 패전을 거듭했던 이슬람 세계가 패자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십자군의 승리 위주로 이슬람 세계의 집안 싸움에 대해 강조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 하나의 지휘체계를 유지하지 못한 십자군에 맞서 이슬람 세계가 하나로 똘똘 뭉쳤더라면 성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많은 주민들이 이교도라는 이유로 살육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나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든 정복에 대한 욕심이든 그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욕심없는 인간은 없는 것이다. 신의 이름을 빌어 전쟁을 일의켰다고는 하지만 지배와 소유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세의 기사들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명예로는 죽음을 택하고 주교들은 순례자들을 신에게로 가는 길을 인도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가문을 위하고 종교를 위해 한몸 바치는 것이니 욕심이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탐욕들이 바탕으로 200년에 걸쳐 십자가와 초생달의 대결이 이루어졌는데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므로 자신이 속한 종교가 아니고서는 모두 이교도들이니 개종을 강요하지 못할 바에는 후한을 없애기 위해 모두 살육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장거리 원정길에 오르고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고통을 견디며 전쟁을 해야하였기에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있던 광기가 밖으로 분출되었을 수도 있겠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신의를 져버리거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을 버리고 나몰라라 제후들, 자신의 주군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름없는 기사들과 병사들, 출신성분은 좋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에 교활함을 앞세워 스스로의 복을 차버리는 실수를 거듭하여 후세들로 죽어서까지혹평을 받는 황제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산출물일 것이다. 종교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태고적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눠지면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종교나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십자군 전쟁을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이 만들어낸 전쟁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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