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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4인 석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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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쪽 | A5
ISBN-10 : 8992382030
ISBN-13 : 9788992382038
민족대표 34인 석호필 중고
저자 이장락 | 출판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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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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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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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는 캐나다 선교사 출신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전기.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세균학 교수로 부임한 스코필드는 3ㆍ1운동 이후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동참하였으며,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사건이 일어나자 감시의 눈을 피해 현장을 사진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1958년부터는 한국에 영구 정착하여 보육원 후원과 젊은 지도자들의 양성에 온힘을 쏟았다.

이 책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생애,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스코필드가 아직 살아있던 1962년에 펴낸「우리의 벗, 스코필드」와 그의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펴낸「길이 우리의 벗이어라, 스코필드」를 현대에 맞게 정리하고 새로운 글들을 추가하였다.

저자소개

지은이 이장락은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1952년부터 서울대 수의학과에 재직했으며, 덴마크왕립 수의과농과대학 객원교수,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스코필드가 서울대에 부임해서 강의하는 동안 교수로 같이 근무했다.

목차

대한민국을 치료한 의사, 닥터 스코필드 석호필 할아버지 - 정운찬
나의 은인이자 스승인 스코필드 박사 - 이삼열
시작하는 글

제1부 <우리의 벗, 스코필드>
1장 코리아와의 인연
2장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가다
3장 3․1운동의 임무를 맡다
4장 민족대표 제34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5장 제암리를 가슴에 품다
6장 서대문 형무소
7장 탄압이 시작되다
8장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9장 민족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10장 끌 수 없는 불꽃
11장 교포들과 함께

제2부 <장애를 넘어>
12장 장난꾸러기 프랭크
13장 꿈을 찾아 캐나다로
14장 고학에서 박사까지
15장 그리던 한국을 다시 찾다
16장 세계적 학자이자 다정한 스승

제3부 <대한민국을 치료한 의사>
17장 대한민국 국빈으로 돌아오다
18장 다시 한국을 위하여
19장 새로운 탄압을 맞이하다
20장 외국인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다
21장 교육이 살길이다
22장 우리의 벗, 스코필드
23장 한국 땅에 묻히리라
24장 연인 매러
2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26장 인간 스코필드

부록 1. 기고문과 연설문 모음
부록 2. 관련 언론보도 모음
부록 3. <우리의 벗, 스코필드> 서문
부록 4. <우리의 벗, 스코필드> 서문에서 밝힌 스코필드의 당부의 말
부록 5. 스코필드 박사 생활신조
부록 6. 연보

책 속으로

기미년 3월 1일 오후 2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던 스코필드는 자기가 할 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부터 탑골공원 먼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깨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고, 그는 가끔 그것을 매만지기도 했다. 이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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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월 1일 오후 2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던 스코필드는 자기가 할 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부터 탑골공원 먼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깨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고, 그는 가끔 그것을 매만지기도 했다. 이윽고 공원 안으로부터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스코필드는 재빨리 공원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태극기의 대열은 노도와 같이 공원 정문을 박차고 밀려 나왔다. 그는 태극기와 함성의 대열을 향해 쉴 새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스코필드는 광화문 쪽으로 굽어가는 그 물결을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낯익은 학생들이 여기저기에 끼어 있었고, 그들은 모두 태극기를 높이 들고 힘을 다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스코필드는 신이 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 김성국이 두 팔을 휘두르면서 그 대열의 앞장을 서고 있음을 보았을 때, 스코필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높이 흔들면서 같이 만세를 불렀다. <4장 민족대표 34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52쪽>

<수원사건>의 진상이 널리 보도되는 것을, 특히 국외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두려워한 총독부는 타지방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건 현장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경찰과 헌병이 심문하는 것을 보고, 사태를 눈치 챈 스코필드는 사건현장과 반대 방향인 수원시내 쪽으로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역시 조금 뒤떨어져서 뒤를 쫓는 일본 헌병이 보였다. 스코필드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동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중략)
그 때 현장에는 경찰이나 헌병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재빨리 카메라에 손을 대려는데 뒤에서 무엇인지 말소리가 들려 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뜻밖에도 한 사람의 서양 사람과 일본 경찰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코필드는 재빠르게 카메라를 옷 사이에 감추었다.
‘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중략)
스코필드는 번개같이 카메라를 꺼내어 들었다. 양복저고리로 카메라를 가리면서 교회를 향해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이야기만 주고받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묻힐 뻔했던 <제암리만행>이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이 스냅사진은 그 후 그의 손으로 널리 국외에 소개되었으며 일본의 포악상을 폭로함에 있어서 실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5장 제암리를 가슴에 품다, 6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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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대한민국을 치료한 의사, 닥터 스코필드 석호필 할아버지-정운찬(전 서울대 총장) 스코필드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1960년 4월, 내 나이 열세 살 때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970년 4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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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치료한 의사, 닥터 스코필드 석호필 할아버지-정운찬(전 서울대 총장)
스코필드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1960년 4월, 내 나이 열세 살 때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970년 4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그 10년 동안 나와 스코필드는 동행했고, 그 시절 나는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의 대부분을 배웠다.
스코필드는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더하여 ‘제34인’으로 불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이다. 1916년 세브란스 의학교수로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딘 그는 일생 동안 선교와 장학사업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발전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에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여 이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독립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까지 지었다.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지극했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한결같았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경기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작됐다. 당시 우리 집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학비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초등학교 때 친구 아버지의 주선으로 나는 스코필드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나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지주로서 나의 가치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는 영어성경반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것 못지않게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에는 고양이라도 웃길 정도로 익살스러우면서도 우리가 지각한 이유를 둘러댈라치면 “핑계대지 마시오!”라고 또박또박 우리말로 꾸짖으셨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나에게 친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나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던 그의 숙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할아버지는 사슴처럼 선한 얼굴로 나를 “운찬~” 하고 부르곤 했는데, 손자뻘인 나에게 한 번도 존칭을 생략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예의와 품격을 갖추었던 분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꼭 엽서나 편지로 내게 안부를 전했을 만큼 자상한 분이기도 했다. 몇 달씩 외국에 나갔다 돌아오는 그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었다.
특히 내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린 것은 그분의 철학적 신념이었다. 나는 보행이 불편한 그를 부축하며, 대학로를 산책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약자에게는 비둘기 같은 자애로움으로, 강자에게는 호랑이 같은 엄격함으로” 대할 것을 강조했다. 항상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특히 건설적 비판정신을 기르라고 강조했다.
스코필드의 이런 가르침은 훗날 내가 1986년 “체육관 선거를 종식하고 국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교수 서명운동을 준비하도록 한 원동력이 됐고, 아직도 내 신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올곧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1960년대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눈꼽만큼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개탄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공동체가 보살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그런 이유로 내가 대학을 진학할 때도 경제학을 선택하도록 종용했다. 나는 그를 통해 사회 속에 몸담은 지식인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익히고 배웠다.
1970년 4월 12일 오후, 스코필드는 지금의 국립의료원 별관 32병동 5호실 병상에서 운명했다. 임종 며칠 전에도 나는 병상을 지켰는데,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던 모습이 아직까지 선하다. 그는 끝까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마지막 책 한 권, 구두 한 켤레까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재산을 모두 보육원과 YMCA에 헌납하고 떠났다. 그리고 빈 몸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돌이켜보면 백발이 성성한 70대 할아버지와 철없는 열세 살배기 꼬마의 만남이었거늘, 그는 나를 한결같이 성숙한 인격체로 대했다. 그를 만난 것은 내 생의 축복이자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스코필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를 채찍질한다.
양지바른 서울 동작동 애국지사 묘역에 잠든 할아버지는 오늘도 그 자애로운 미소로 내게 말을 건네시는 듯하다. 더 부지런하게, 더 정직하게, 더 정의롭게 사랑하며 살라고….

‘한국 땅에 묻히리라’던 스코필드 박사의 깊은 한국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그 사랑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품었던 희망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에 대한 그 큰 사랑과 희망을 읽으며 우리에 대한 사랑,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국회의원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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