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금/토/일 주말특가
샤랄라 견과 선물 증정
[고정]e캐시 더드림 이벤트
교보문고 북데이
  • 교보 손글씨 2019 무료 폰트
  • 교보아트스페이스 5-6월 전시
  • 손글씨스타
  • 손글쓰기캠페인 메인
  • 손글씨풍경
로마인 이야기. 14: 그리스도의 승리 /한길사 / 3-090800/정가:12000원/책등약간색바램
* 중고장터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우측의 제품상태와 하단의 상품상세를 꼭 확인하신 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401쪽 | A5
ISBN-10 : 8935654876
ISBN-13 : 9788935654871
로마인 이야기. 14: 그리스도의 승리 /한길사 / 3-090800/정가:12000원/책등약간색바램 중고
저자 시오노 나나미 | 역자 김석희 | 출판사 한길사
정가
14,500원
판매가
6,000원 [59%↓, 8,500원 할인]
배송비
2,500원 (판매자 직접배송)
25,000원 이상 결제 시 무료배송
지금 주문하시면 4일 이내 출고 가능합니다.
더보기
2009년 8월 20일 출간
제품상태
상태 최상 외형 상급 내형 최상
이 상품 최저가
11,000원 다른가격더보기
새 상품
13,050원 [10%↓, 1,450원 할인] 새상품 바로가기
안내 :

중고장터에 등록된 판매 상품과 제품의 상태는 개별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등록, 판매하는 것으로 중개 시스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보문고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직거래로 인한 피해 발생시, 교보문고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 상품 소개

※ 해당 상품은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여 안내하는 상품으로제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신 후 구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판매자 배송 정책

  • 토,일요일 주문건은 다음주 월요일 이후 발송 됩니다. 이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주문건의 운송장번호를 CJ사이트에 입력하셔야 조회 가능합니다.

더보기

구매후기 목록
NO 구매후기 구매만족도 ID 등록일
2,800 좋은책 빠른배송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pashi*** 2020.06.05
2,799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ssk7*** 2020.06.02
2,798 잘 받았습니다. 만족스럽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chca*** 2020.06.02
2,797 깔끔한 배송 감사드립니다 5점 만점에 5점 hjh48*** 2020.05.30
2,796 도서 괜찮습니다.빠른배송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lloves*** 2020.05.27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상품구성 목록

시공을 관통한 고대 1천년의 흥망성쇠를 통해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근원적 좌표를 낱낱이 주시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4권. 이 책에서는 황제조차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기독교 세력과의 힘 겨루기 끝에 마침내 국교로 자리 잡는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정ㆍ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간여하는 모양이 된 국가체제가 자초하게 되는 위험성을 친기독교적, 반기독교적 대표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기독교 대세라는 흐름을 탈 것인지, 흐름을 거스를 것인지,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인지, 여기에 속한 다양한 인간들의 명암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제1부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은 뒤, 피비린내나는 친족 숙청의 바람으로 대권을 잡은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2부에서는 반기독교 정책으로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힌 율리아누스 황제의 매력적인 행보를 따라간다. 제3부에서는 기독교 쪽에서 보면 군계일학과도 같은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활동을 그린다.

저자소개

저자 : 시오노 나나미
1937년 7월 7일 도쿄에서 태어나 학습원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어떤 공식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공부했다.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목차

독자들에게

제1부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 (서기 337~361년)
방해가 되는 자는 죽여라
제국 삼분
한 사람의 퇴장
부제 갈루스
적장 마그넨티우스
형과 아우
부제의 처형
율리아누스, 부제가 되다
콘스탄티우스와 기독교
갈리아의 율리아누스
적극전법
게르만족
스트라스부르의 승리
로마에서 거행된 마지막 개선식
갈리아의 부흥

제2부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 (서기 361~363년)
고대의 오리엔트
사산조 페르시아
율리아누스, 일어나다
내전을 무릎쓰고
구조조정 대작전
'배교자' 율리아누스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
안티오키아
페르시아 전쟁
수도 크테시폰
티그리스 북상
요절
율리아누스 이후
강화 체결
율리아누스 황제의 삶과 죽음

제3부 암브로시우스 주교 (서기 374~397년)
야만족 출신 황제
훈족 등장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당한 참패
테오도시우스 황제
야만족의 이주를 공인하다
친기독교 노선의 부활
'이교'와 '이단'
'이단' 배척
'이교' 배척
논전
그리스도의 승리 (이교에 대하여)
기독교,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다
그리스도의 승리 (황제에 대하여)
동서 분할

연표
참고문헌
그림 출전 일람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황제라 해도 이제 한 마리 양일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역사라는 시료 용액이 담긴 비커에 몰락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뷰렛 속의 용액을 지금까지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실험을 해왔다. 물론 뷰렛 속의 용액은 매번 여러 가지로 달리하며...

[출판사서평 더 보기]

황제라 해도 이제 한 마리 양일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역사라는 시료 용액이 담긴 비커에 몰락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뷰렛 속의 용액을 지금까지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실험을 해왔다. 물론 뷰렛 속의 용액은 매번 여러 가지로 달리하며 실험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확보했다. 그런데 지금 막 가장 중요한 '몰락반응'의 종말점이 찾아온 듯하다. 눈으로도 분명히 변색된 것을 확인하는 적정 포인트다. 바람 앞에 휘청이는 나무처럼 위기와 극복을 거듭하던 로마가 마침내 태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로마인 이야기' 제 14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는 강한 인상이다. 종교가 몰락의 큰 원인이라도 되듯 제목에서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승리'라고 명명했으니 반대쪽은 패배일 수 밖에 없다. 제목이 작가의 생각과 판단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듯히다. 그러나 시오노는 "로마인이 기독교도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로마인이 기독교도가 되어버렸기 때문"(326쪽)이라고 말한다. 4세기 로마인들이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적어도 종교 면에서 '용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한다. 그 시대 기독교화는 분명 시대의 대세였다. 표지사진의 인물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 시오노는 권마다 그 시대 로마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사진을 실었는데, 모두 민중들의 소망이 반영된 지도자상이었다. 이를테면 제1권 브루투스, 제2권 스키피오, 제4~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는 식이다. 그러나 14권에서 선택된 인물은 율리아누스 황제도 테오도시우스 대제도 아닌, 바로 밀라노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이다. 로마의 최고 책임자라는 권위가 황제에서 주교로 옮겨간 느낌이다. 시오노는 이 책 전제를 지배하는 말로 이 둘의 특별한 관계를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일단 기독교도가 되면, 황제라 해도 한 마리 양일 뿐이다." '양'과 '양치기'의 승부는 뻔하다.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기독교와 세속 권력의 관계를 참으로 정확하게 팡가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 지위에 앉는 것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신이 인정했기 때문이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것이 주교로 되어 있는 이상, 아무리 황제라 해도 주교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다. 이것이 양자 관계의 진실이라는 것을"(380쪽) 기독교가 대세! 흐름을 탈 것이냐, 거스를 것이냐, 발을 뺄 것이냐 '3세기 로마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페르시아 왕 샤푸르에게 무릎을 꿇는 로마 황제의 모습이었다면 '4세기 로마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주교의 '어린양'(세례를 받는 행위)이 된 황제의 모습이다. 기독교를 공인해주었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세례 받기를 미룸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얻으면서도 주교(기독교)보다 우위에 섰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13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확실히 이동했다.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는 황제조차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기독교 세력과의 한판 힘 겨루기 끝에 마침내 국교로 자리 잡는 얏아을 그리고 있다. 서기 388년 41세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원로원을 방문해 의원들에게 그리스도를 강요한 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로마인들이 최고신으로 경배해온 유피테르에 대한 유죄선고요 사망선고 였다. 작가 시오노는 제14권에서 정.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관여하는 꼴이 된 국가체제가 자초하게 되는 위험성을 친기독교적, 반기독교적 대표 인물들의 행동원리를 통해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야말로 기독교 대세라는 흐름을 탈 것이냐, 흐름을 거스를 것이냐,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이냐, 그 어딘가에 속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명암이 다채롭게 교차한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vs 성 암브로시우스 제1부의 이야기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은 뒤, 피비린내나는 친족 숙청의 회오리바람으로 대권을 잡은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다. 타고난 성정이 폐쇄적이고 내성적인 그는 늘 마음속에 불안을 품고 살았으며, 그런 이유로 로마 역사상 찾아볼 수 없었던 동방의 전제 군주 같은 참으로 기이한 '환관 정리'를 만개시켰다. 이른바 '에우노코스'라 불리는 환관들이 정치에 관여했고, 그들은 황제의 최측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염탐하는 등 항상 음습한 일을 진행했다. 이제 황제가 귀에 대고 소근거리는 환관들의 말만 믿으면, 제국에 유익한 존재도 어느 새 처형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제2부에서는 반기독교 정책으로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힌 율라아누스 황제의 참으로 매력적인 행보가 펼쳐진다. 사촌 형 콘스탄티우스의 눈총과 경계로 20여 년 동안 유폐되어야 했던 그가 스물 네 살에 군대를 이끌고 라인 방어선을 회복하며 병사와 민중들의 지지를 얻었을 때 느꼈던 그 정신적 고양감과 성취감은 4세기 로마 위기에 잠깐 동안 비쳤던 무지갯빛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사명감에 쫓겨 마음이 급했다. 짧은 기간에 옛 로마의 영광을 부르짖으며 많은 반기독교적 개혁을 단행한 만큼 기득권층의 강경한 반대에 부닥쳤다. 시오노는 31세에 요절한 율리아누스의 치세가 19개월이 아니라 19년이었다면 시대의 흐름이 바뀔 수 있었다고 전망한다. 그는 31세에 요절했다. 시오노는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종교가 현세까지 지배하는 데 반대한 율리아누스는 고대에는 유일하게 일신교의 폐해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었을까"(286쪽).그래서 '배교자'라는 경멸 섞인 별칭은 어쩌면 그에게 가장 빛나는 시호일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속내를 슬쩍 드러내며 기독교를 비난한다. "고대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이다."(287쪽) 제3부에서는 명석한 두뇌, 세련된 말의 구사 능력 등 기독교 쪽에서 보면 어느 모로 보나 군계일학과도 같은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활동상을 그린다. 로마 황제들을 좌지우지 하며 기독교의 반석을 다져나가는 그의 용의주도함의 전모가 드러난다. 그는 양치기가 되어 자신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도가 된 테오도시우스 황제라는 순한 양을 부리며 로마 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나갔던 것이다. 이제 "주교는 마음만 먹으면 신의 뜻이라는 이유로 황제를 갈아치울 수 있었다"(335쪽). 한편 기독교회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의 창안자인 콘스탄티누스에게 준 '대제'라는 존칭을 테오도시우스에게도 준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의미한 '이교'가 '사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4세기 로마가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세상이 되면서 다신교를 인정했던 관용정신의 미덕은 사라졌고 멸망의 길을 재촉했다. 초고속 통신망과 인터넷 혁명의 21세기에도 종교적 반목으로 자살폭탄 테러가 난무하는 등 종교문제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로마와 기독교 문제를 집중해부하고 있는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런 점에서 더욱 읽어볼 만하다. 전15권으로 완간될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 한 권을 남겨두었다. 이제 로마 제국은 마지막 세기인 서기 5세기로 접어들 것이며, 제국의 분할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황제들이 통치를 분담해도 분할은 아니었지만, 서기 395년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은 아무 관계가 없는 두 나라가 된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 임진영 님 2009.05.07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는 데 너무 늦은 법은 없습니다.하지만 그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는 있습니다

회원리뷰

  • 로마인 이야기. 14 | y0**21man | 2017.07.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14권은 특이하게 황제를 전면에 내세운게 아니라 성직자를 전면에 내세우고있다. 바로 표지 그림에 나오는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
    14권은 특이하게 황제를 전면에 내세운게 아니라 성직자를 전면에 내세우고있다. 바로 표지 그림에 나오는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그 주인공. 이 사람은 성직자이지만 23년 동안 황제에 버금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앞선 13권에도 외부 야만족들의 침략으로 로마제국이 쇄락해간는 모습을 여실이 보여주는데 14권에선 드디어 게르만족이 로마제국 깊숙히 침공하는 사태까지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서는 예전 전략게임 에이지오브 엠파이어2를 통해서 먼저 접했던 터라 반갑고 한편으론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서고트족에게 대패한것도 부족해 황제마저 전사했을 정도로 로마의 국력은 예전의 그 로마가 아니었다. 결국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고트족의 이주를 허용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고 이때는 이미 로마제국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키울때로 키운뒤라.. 외부로는 고트족이 내부로는 암브로시우스라는 성직자에게 시달리는 상황에 처해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종교와 정치는 결코 하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됨 ㅎ
  • 기독교와 황제 | hj**oahead | 2015.03.2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로마제국의 기독교 인프라가 어떻게 구축되는지 배경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면 도움이 될 책이다.   사...

    로마제국의 기독교 인프라가 어떻게 구축되는지 배경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면 도움이 될 책이다.

     

    사실, 로마제국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것을 들라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몇개 고르라하면, 로마의 정치체제는 물론이고, 그밖에 로마의 가도와 로마군의 책임감, 로마법, 그리고 로마의 다신교가 들어가지 않을까 ?

     

    이중에서, 로마제국은 흔들리는 3세기를 건너 4세기에 들어간 후 종교의 인프라를 다신교에서 기독교로 변화시킨다. 몇가지 흥미있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해본다.

     

    황제들은 기독교 성직자가되면 세금을 면제해준다. 그 파급효과는 어떠했는가?

    콘스탄티누스 등 황제는 죽는 순간에서야 기독교 세례를 받는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수호성인을 대량생산한다. 왜 그랬을까? 흥미있는 설명이 들어있다.

    삼위일체를 반대하던 아리우스파가 결국 정통성싸움에서 밀린다. 그 이유는?

    우상숭배 금지란 이유만으로 기독교가 그리스로마의 신전을 파괴한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보다 많은 지적탐험의 재미를 경험하기 바란다.   

  • 14권의 부제는 ’그리스도의 승리’이다.14권은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로 즉위한 서기 337년부터 밀...
    14권의 부제는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14권은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로 즉위한 서기 337년부터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사망한 서기 397년까지의 60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안토니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정착,확산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부분적으로 몇몇 황제들이 이를 막아보려 했으나 이미 로마제국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붕괴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로마 전역에 말기 암처럼 자리잡았다.
     
    결국 서기 388년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다.
    하지만, 이미 그 시기에 로마제국은 사실상 더 이상 기원전 8세기부터 이어온 ’로마’가 아니었다.
    ’로마’가 ’로마’일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 원로원, 사업체계, 문화, 로마군, 시민권, 외교, 치안, 자치도시, 속주민, 인프라, 다신교 등은 사라졌으니까...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권력을 ’신격화’할 목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보인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후 죽으면서 아들 3명과 조카들에게 로마 제국을 5개로 나누어 ’몫’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생각과 달리 역시 유일신 체계에서는 ’신격화할 황제’는 한 명이어야 했다.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는 숙부와 황제인 사촌 달마티우스와 한니발리누스를 궁정에서 살해하였고 맏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는 3년 뒤 막내 콘스탄스와 내전에서 피살, 막내 콘스탄스는 13년 뒤 로마군 내부의 마그넨티우스 반란으로 피살되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마그넨티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였으나 로마식 전쟁을 모르는 이들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휘하의 장병 수 만명을 그 내전으로 잃게되고 로마군대는 결정적으로 취약해졌다.
    그리고 사촌이었던 갈루스는 17년 뒤 콘스탄티우스에게 처형당한다.

     
    로마제국이 더 이상 ’로마’가 아니도록 마지막 쐐기를 박은 황제는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우스 부자(父子)였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제국의 황제 명의의 재산을 기독교 교회에 기증했다.
    기독교 사제들에게 공무를 면제시켜주고 인두세까지 면세시켜주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면세받던 기독교 관계자의 범위를 사제에서 교회의 고용인이나 농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확대하였다.
    그리고 성직자가 되면 사유재산을 소유하도록 허용했다.
    이로써 콘스탄티우스는 로마제국 내부의 귀족, 부자와 기사계급들에게 재산을 지키고 늘릴 수 있는 ’구원’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성직자가 되어야 함을...
    콘스탄티우스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마의 전래 종교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우선 로마 전래의 신들에게 바치는 공식제의와 기타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하였고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법률을 공포한다.
    그리고 신전을 폐쇄한다. 이 신전은 로마의 신전 뿐 아니라 시리아의 태양신전과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도 폐쇄한다.
    신전을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는 것을 허가한다. ’재활용’은 ’파괴’보다 치사한 잔머리...
     
    기독교를 열심히 부흥했던 콘스탄티우스는 제국 통치는 엉망이었다.
    황궁에서는 궁정관료들의 중상과 비방에 따른 희생이 일상적인 행사가 되어 적지 않은 수의 유능한 장교들이 황제 암살음모를 뒤집어쓰고 처형되었다.
    콘스탄티우스는 후임 장교인사에도 실력보다 궁정관료나 환관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로마군대와 실력있는 행정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페르시아와 치른 메소포타미아 전쟁에서 대패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페르시아에서 패한 콘스탄티우스는 부제 율리아누스가 오랜 기간 갈리아와 도나우강 전선의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키워놓은 로마군을 빼앗으려 했으나 로마군대의 반발로 무산된다.
    율리아누스의 갈리아 군단은 콘스탄티우스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내전이 시작된다.
    다행하게도 콘스탄티우스는 내전을 준비하다가 병으로 쓰러지고 서기 361년에 죽었다.
     
    이렇게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우스 부자가 기독교를 우대하였으나 공식적으로 종교를 인정받고 로마제국의 상대한 재산을 기증받은 데다가 성직자의 면세와 사유재산을 통하여 엄청난 부를 취득,확보한 기독교도들은 ’삼위일체’이나 ’경전의 해석’으로 첨예한 내부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기독교에서는 ’이교’에 대한 우위를 확실히 해놓았으니 기독교 내부의 ’이단’을 처리할 차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단’은 ’이교’보다 더 잔인하고 철저했다.
     
    서기 361년에 황제로 즉위한 율리아누스는 궁정을 구조조정하고 종교정책을 ’밀라노 칙령’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그래서 후대의 기독교도들에게 율리아누스는 ’배교자’로 불리운다. 그런데 원래 기독교가 아니었다는데 웬 ’배교자’??)
    로마군대를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갈리아 지역에 감세법을 실시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그리고 콘스탄티우스가 실패한 페르시아 원정을 개시한다.
    하지만, 원정에 실패하고 철수하는 도중에 경호대원에게 살해당한다.
    작가는 율리아누스가 일찍 죽지않고 오랫동안 로마제국을 통치했다면 로마제국의 마지막 역사가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라 아쉬워한다.
    하지만 율리아누스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이미 로마 제국의 운명은 다하지 않았을까?

     
    율리아누스의 후임인 요비아누스가 재임기간 7개월 동안 한 일은 페르시아와 강화를 맺고 율리아누스가 시행한 법률과 정책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 뒤에 즉위한 황제는 발렌티아누스와 발렌스 형제...
    야만족인 게르만족 출신의 발렌티아누스는 즉위 후 10년 동안을 새로운 야만족인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픽트족, 스코트족, 앵글로족, 색슨족, 고트족, 훈족, 사막민족과 전쟁으로 보낸다.
    서기 375년 발렌티아누스가 병사하고 발렌스와 발렌스의 아들들인 발렌티아누스 2세와 그라티아누스가 맡는다.
    하지만 3년 후 고트족과 치른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참패하고 발렌스는 살해된다.
    그리고 그라티아누스에 의하여 테오도시우스가 동방 황제에 임명된다.
    서기 380년 그라티아누스가 브리타니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령관 막시무스의 공격을 받고 살해된다.
    이 때부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실질적으로 제국 전역을 통치한다.
    발렌티아누스 2세는 서기 392년 데살로니카에서 군대 폭동 중 살해된다.
    ’배교자’를 응징한 것일까?
     
    테오도시우스는 ’반이교’와 ’반이단’ 노선으로 직행한다.
    기독교 이외의 공식 제의 뿐 아니라 사적인 제의도 금지한다.
    제단 앞에 등불을 켜 놓는 것, 향을 피우는 것, 벽면을 꽃장식으로 장식하는 것, 신이나 조상에게 술을 바치는 것도 금지한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사교’로 규정하여 탄압한다.
    카톨릭 이외의 기독교 종파는 ’이단’으로 규정하여 탄압한다.
    서기 388년 테오도시우스는 원로원을 협박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서기 393년에는 올림피아 경기대회를 완전히 폐지한다.
    테오도시우스는 이 것 밖에는 한 일이 없다.

     
    작가는 상당히 지면을 할애하여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서기 330년에 로마에서 명문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수도장관까지 자리에 올랐다.
    그는 43세에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주 아이밀리아의 장관을 맡았다.
    그의 관할도시인 밀라노에서 기독교도간 파벌싸움 -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파 - 이 물리적인 실력 행사를 동반한 항쟁으로 발전했다.
    장관인 그가 이 분쟁을 중재하는 가운데 삼위일체파가 암브로시우스가 마음에 들어 신도집회를 통해 그를 주교로 선출했다.
    그는 주교 자리를 제공받자마자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는 주교관을 머리에 쓴 직후에 자신의 재산을 기독교회에 기부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는 운이 좋았다. 밀라노는 동방과 서방 황제들이 서로 협의하거나 이동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코스였던 것이다.
    그는 주어진 운에 자신의 수완을 발휘하여 크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가까운 관계를 만들었다.
    야만족 족장과 교섭할 때, 동료 황제의 특사로, 반란을 일으킨 군단장을 설득할 때 황제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그러다가 테오도시우스의 실책을 빌미로 황제에게 교회에게 참회하도록 요구하여 성공한다.
    이로써 콘스탄티누스가 생각한 ’신격화된 황제’는 ’유일신 아래의 황제’로 격하되기 시작한다.

    13권의 부제인 ’그리스도의 승리’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과연 기독교가 애기하는 그리스도가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원했을까?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세 1,000년을 가져온 기독교도들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과연 유일신만을 믿었다고, 죽기 전에 참회했다고 천당으로 보냈을까?
    내 생각에 기독교의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그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말짱 도루묵이니까...^^

     
    [ 2010년 10월 07일 ] 
  • 어떤 황제도 단 몇 줄로 끝이 날 정도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몇 페이지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로마사...
    어떤 황제도 단 몇 줄로 끝이 날 정도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몇 페이지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로마사라는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이번 14권에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대에 이어 충실히 심은 콘스탄티우스황제를 뒤이은 율리아누스 황제같은 경우에는 그의 치세기간은 겨우 3년이라는 기간 밖에 안되었지만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된지도 이미 반세기가 지날 정도로 도도한 강물이 되어 그 흐름을 막거나 변경시키기는 힘들다고 볼 때 짧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잠시 조약돌과 같은 둑으로 막은 것에 지나지 않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치세를 꽤 길게 소개한 것은 아마도 로마라는 위대한 제국이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기(종교)에 의해 결국 망하고 만 것에 대한 반발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다.
     
    시오노 나나미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로마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시선에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좀 더 치우쳐져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마라는 체계를 볼 때 기독교 국가로 변하면서 절대왕정으로 변하고 원로원과 시민들을 의식하며 통치를 했던 것에 비해 거대한 궁으로 둘러쌓여 외부와는 차단되어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어 황제의 측근들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로마로 변한 것은 무척 아쉽고 제국이였던 로마가 그립다고 느끼며 책을 읽게 되었다.
     
    로마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로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 로마는 국가의 이름이 되었을 뿐이고 로마라는 수도로써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로마 도시가 책에서 언급되는 것도 점점 사라졌다. 오죽하면 황제로 등극하여 국가를 다스리면서도 로마를 방문하지도 않고 몇 년이라는 기간이 지나 겨우 로마를 방문하고 오랜 세월동안 로마에 황제가 방문하지도 않아 로마에 사는 시민들이 로마로 입성하는 황제를 보는 것이 낯설을 정도면 로마라는 국가로 불리울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니 로마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로마의 연구를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는 하지 않고 접었다고 하는 겻도 이해가 된다. 지속적으로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견제기능으로 로마라는 국가를 이끌던 원로원은 이제 존재자체가 희미해졌고 아직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는 언급자체가 거의 없다.
     
    실제로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을 쯔음에 원로원에 대해 언급하는 문구를 읽고는 시오노 나나미도 쓰다보니 '아,, 원로원에 대해 책에서 이제 거의 쓰지 않는구나'하며 원로원에 대해 굳이 언급한 것이 아닐까한다. 이제 원로원이라는 조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로마라는 절대왕정으로 변한 시대에는 그 용도가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당시에 원로원들은 도대체 모여서 무엇을 하였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도 원로원이라는 이름은 모여 국가와 사회에 대해 토론을 하든지 잡담을 나누던지 했을 텐데 말이다. 로마에 대한 사료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볼 때 이 당시 원로원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모이면 하고 토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텐데 황제와 중요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니 제외시킨 듯 하여 좀 아쉽다.
     
    마지막 단락의 암브로시우스주교를 타이틀로 삼은 것은 이전까지 황제중심으로 서술되어 로마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 것에 비추면 당시의 황제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로마의 중심이 황제에서 주교로 변한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철저하게 인물과 정치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주교라는 관점보다는 정치적이고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현재도 주교라는 지위가 단순한 종교적 지도자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정치적 인물인 것은 맞지만 말이다.
     
    실질적으로 14권에서 로마라는 통일된 이름의 국가는 사라진다. 15권부터는 동로마, 서로마라는 이름으로 불릴테니 말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로마에 침투하지 않았다고 해도 로마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본다. 결국, 로마는 야민족의 침입으로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대적인 이민이겠지만 - 멸망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야만족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여 나타난 것일까?
     
    동양의 한 나라에 속한 곳에 살고 있어 서양 세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무넹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 야만족이라는 민족에 대한 정보는 무척 적다. 분명히 유럽의 역사에서는 그에 관련된 정보가 많을텐 데 이에 대해서도 한 번 관련 자료나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런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한 것인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볼때면 선진문화를 갖고 있는 선진국이라 불리우지만 지금 유럽의 선조들인 야만족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을 보면 중국,한국,일본은 참으로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한다. 그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보존한 것을 보면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딱 한권으로 끝을 맺는다. 아니, 실제로 로마인 이야기는 14권에서 끝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15권에서는 로마라는 국가의 멸망과 에필로그에 해당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 서기 337년에서 397년까지를 담아놓은『로마인 이야기· 14』에는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를 받아들인다.  우연이겠지만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든다. ...

    서기 337년에서 397년까지를 담아놓은『로마인 이야기· 14에는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를 받아들인다우연이겠지만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든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죽기 2 전부터 명의 아들과 명의 조카에게 국토 방위를 분담시켰다권력의 마력일까골육상쟁이 벌어져 차남 콘스탄티우스이 동방을 막내는 서방을 맡는 것으로 일단 정리된다갑자기 북한의 권력 승계로 생각이 옮겨간다로마 황제보다 막강한 권력의 3대째 승계가 과연 순조로울까야만족 출신인 마그넨티우스가 막내를 죽이고 황제를 자처하자, 정예병 54,00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간신히 이긴다소심한 사람이 오히려 잔인해질 있는 법이다.”  콘스탄티우스는 반대편 로마군 장교 대부분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처형한다갈리아 방위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면서 프랑크족과 알레마니족의 침입이 거세진다 동안 생명을 보존하는데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촌동생 율리아누스를 부제로 임명 갈리아 방위를 맡길 밖에강대국 사산조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침입하자, 콘스탄티우스는 율리아누스에게 그의 병사 대부분을 자신의 휘하로 파병할 것을 명령한다하여간 찌질男일수록 심술은……파병거부 농성을 벌이던 야만족 병사들이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고, 격돌 직전 콘스탄티우스가 병으로 숨진다.

     

    *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율리아누스는 환관 모두를 해임하고 황궁 직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기는 개혁을 단행하여 환호를 받는다그러나 기독교 우대정책을 전임 황제와는 달리 그리스에서 철학을 공부한 율리아누스는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칙령을 발표하면서 국면은 대반전된다국비로 교회를 짓는 것을 금지하고 교회 재산과 성직자 사유재산에 대한 비과세도 철폐한다기독교를 믿는 교사에게는 교직 추방령을 내린다기독교도가 아닌 그에게 역사는 배교자라는 딱지가 붙일 정도로 비호감이었으니 당대 기독교 성직자 계층의 원성이야……. 페르시아 수도 크테시폰까지 진군한 율리아누스는 행방불명이 2군과 합류하려고 퇴각 사망한다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낀 기독교도들의 사보타주가 그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이 아닐까 하고 작가는 대담한 추리를 펼친다기독교를 우대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평생 비기독교도로 지내다가 죽기 직전에야 세례를 받았고, 율리아누스 황제는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이후 황제들은 모두 기독교도이었으니까, 율리아누스가 사망한 363년이야말로 역사의 변곡점이 아닐까?

     

     

     

     

    *

    황제의 호위대장이나 야전 경력이 없는 요비아누스가 신임 황제에 추대되어,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왕국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페르시아와 굴욕적 강화조약을 체결한다기독교 세력 확대에 제동을 전임 황제의 법률을 모조리 폐기하였으나 수도에 입성도 못하고 시체로 발견된다 정도로 충분히 용도를 다했기 때문일까출신은 상관없이 기독교도면 된다는 고관들의 생각으로 도나우강 방위를 맡고 있는 순수 북방 야만족 출신인 발레티니아누스가 황제에 추대된다신임 황제는 동생 발렌스를 공동황제에 임명하여 동방 방위를 맡기고는, 격렬해지는 야만족의 침입에 맞서 국토방위에 전력을 다한다원래 교육을 받지 못해 정치에는 무관심했던 그는 전투 11년째 병사하고,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승계한다.

     

    인간은 이동한다게다가 대개는 폭력적으로 이동한다.”  유럽에 악마보다 흉악하다(?) 아시아계 유목민 훈족이 등장한다훈족에게 밀린 동고트족이 서고트족의 흑해 유역으로 밀려들자, 서고트족은 도나우강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다전투를 지휘해 적이 없는 동방의 발렌스 황제는 서고트족에게 패해 사망한다고트족이 도나우강 남쪽 제국의 중앙부를 차지하는 바람에 로마제국은 서방과 동방으로 동강 났다.

     

    *

    일신교는 자기가 믿는 것이 옳은 종교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당연직인 최고제사장에 취임하기를 거부한다브리타니아 군단의 반란으로 그라티아누스가 살해되고, 반란을 진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로마에 입성하여 신의 자리에 유피테르 대신에 그리스도를 앉히라고 원로원에 요구한다.  1141 만에 유피테르의 하야 - 이로써 이교배척은 완료되었다인간들은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내부의 적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매년 이상 이단 배척을 목적으로 칙령이 공표된다삼위일체설을 믿는 아타나시오스의 카톨릭파 외의 모든 기독교 종파는 이단으로 몰린다.  기독교도가 같은 기독교도한테 박해당하고, 심지어 순교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로마 제국에서 <관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 제국의 실질적 실력자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였다명문가 출신으로 밀라노 주지사를 맡자 삼위일체파가 재빨리 그를 주교로 선출한다기독교도가 아니었던 그는 43세에 비로소 세례를 받는다.  20년간의 고위 관료 경력, 높은 교양과 명석한 두뇌, 세련된 말을 구사하는 설득력으로 당시 하층계급 출신에다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다른 주교들에 비하면 군계일학이었다일단 기독교도가 되면, 황제라 해도 마리 양일 뿐이다.”  암브로우스 주교는 테살로니키 폭동을 진압할 저지른 학살을 사죄하라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요구하면서, 속죄가 이루어질 때까지 교회 출입을 금지시킨다.  8개월을 버티던 황제는 밀라노 교회 앞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공식으로 사죄한다 F. 케네디는 카톨릭 신자로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되었다바티칸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부분도 암살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종교가 현세까지 지배하는데 반대한 율리아누스 황제야말로 고대에 유일하게 일신교의 폐해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라고 자문하는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다올림피아 경기대회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법률이 공표된 393년을 서양 역사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공식적으로 끝난 라고 불린다고.

교환/반품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안내
반품/교환방법

[판매자 페이지>취소/반품관리>반품요청] 접수
또는 [1:1상담>반품/교환/환불], 고객센터 (1544-1900)

※ 중고도서의 경우 재고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교환이 불가할 수 있으며, 해당 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교환/반품 접수 전에 반드시 판매자와 사전 협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중고도서의 경우 판매자와 사전의 협의하여주신 후 교환/반품 접수가 가능합니다.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판매자
넘버원헌책방
판매등급
전문셀러
판매자구분
사업자
구매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평균 출고일 안내
3일 이내
품절 통보율 안내
4%

바로가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