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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37480972
ISBN-13 : 9788937480973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중고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역자 송은주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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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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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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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소년의 슬픔과 사랑에 관한 퍼즐 같은 이야기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마음을 치료하는 책으로 소개하며 화제가 된 책. 2000년대가 낳은 미국의 작가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독창적인 인물로 꼽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9.11사건을 배경으로 아홉 살짜리 소년 오스타의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효과로 그려내고 있다.

아마추어 발명가이자 탬버린 연주자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배우, 보석세공사이면서 평화주의자인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리고 그는 뉴욕 구석구석을 뒤져야 하는 긴급하고도 비밀스러운 탐색을 하고 있다. 그의 임무는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 때 세상을 떠난 아빠의 유품 속에 있던 열쇠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수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오스카는 저마다 슬픔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오스카의 이야기는 사라져버린 그의 할아버지와 오랜 세월을 고독과 싸우며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와 한데 얽히면서, 상실과 소통 불능, 기억 그리고 치유에 관한 보다 커다란 이야기로 나아간다.

저자소개

저자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2000년대가 낳은 미국의 작가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독창적이면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타임'은, 포어의 데뷔작이 '천재의 작품'이며 포어가 “위대한 문학성을 당당히 보였으며, 이후에는 문학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첫 소설이 출판계에 화제를 뿌리며 출간에 성공하면서 포어는 '분더킨트(wunderkind, 신동)’라는 찬사를 받는다. 누구도 돌아보기를 꺼리던 과거의 이야기를 실험적인 언어를 사용해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낸 이 데뷔작은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LA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혔고, 포어에게 '가디언' 신인 작가상과 전미 유대인 도서상을 안겨줬다. 또한 이 작품은 리브 슈라이버가 감독하고 일라이저 우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2005)

역자 : 송은주
옮긴이 송은주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미들섹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이성과 감성』, 『클림트』 등이 있다.

목차

대체 뭐야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1963.5.21
구골플렉스
나의 감정들
유일한 동물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1963.5.21
무거운 부츠 더 무거운 부츠
나의 감정들
행복, 행복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1978.4.12
여섯 번째 구
나의 감정들
살아서 그리고 혼자서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2003.9.11
불가능한 문제를 푸는 간단한 해결책
나의 감정들
아름다우면서 진실한

옮긴이의 글 - 송은주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세 명의 화자, 퍼즐처럼 맞춰지는 세 가지 이야기 이 책의 화자는 세 명이다. 아홉 살 소년 오스카와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오스카는 밤이 늦도록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 아빠 목소리로 휘파람을 불어주며 잠들 수 있게 해...

[출판사서평 더 보기]

세 명의 화자, 퍼즐처럼 맞춰지는 세 가지 이야기

이 책의 화자는 세 명이다. 아홉 살 소년 오스카와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오스카는 밤이 늦도록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 아빠 목소리로 휘파람을 불어주며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찻주전자니, 환자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앰뷸런스니, 추락을 막아주는 새 모이로 된 셔츠니, 머릿속으로 발명을 하거나 그날 있었던 일을 적고, 찍은 사진들을 『나에게 일어난 일』 에 스크랩해 두며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을 달랜다. 오스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아빠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빠는 9.11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질 때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스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게 슬픈데, 엄마는 남자 친구와 즐겁다. 오스카는 아빠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다가 선반 꼭대기 파란 꽃병 안에서 봉투에 담긴 열쇠를 발견한다. 꽁꽁 숨겨둔 열쇠라. 무엇을 여는 것일까. 뉴욕에는 162,000,000개의 자물쇠가 있고, 열쇠를 자물쇠에 맞춰보는 데는 3초가 걸리는데, 50초에 한 명씩 아이가 태어난다. 내내 자물쇠 찾는 일만 한다 해도 0.333초에 하나씩 열쇠가 늘어나니, 그걸 언제 다 찾아본단 말인가. 단서를 찾았다. 열쇠가 들어 있던 봉투에 ‘블랙(Black)’이라고 쓰여 있고, 그건 아마도 사람 이름 같다. 뉴욕에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472명 있고, 그들의 주소는 216개가 있다. 이제 오스카는 이들을 하나씩 만나 열쇠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보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엄마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에게도 비밀이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공책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할 말을 글로 써서 보여주고, 아예 왼손에는 ‘예(yes)’를 오른손에는 ‘아니요(no)’를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머스와 할머니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드레스덴에 살 때 토머스는 오스카의 할머니의 언니, 애나와 사랑에 빠졌었다. 둘은 행복한 미래를 꿈꿨으나, 2차 대전 기간 중 드레스덴에 공습이 일어나면서 토머스는, 그리고 오스카의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 둘은 뉴욕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첫사랑 애나와 드레스덴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을 잊지 못하고, 할머니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점점 지쳐간다.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떠날 당시 할머니는 임신한 상태였다. (그 아이가 바로 오스카의 아빠다.) 할아버지는, 비록 떠나긴 했지만, 자신의 입장을 아이에게 해명하기 위해 날마다 편지를 쓴다. 매일 편지를 쓰지만 부치지는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사망자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온다.
한편 오스카의 비밀스러운 작전은 센트럴 파크에서 코니아일랜드를 거쳐 할렘 가까지 이어진다. 그는 103세의 종군기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떠나려 하지 않는 관광 가이드, 그리고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연인들과 친구가 된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다.
어느 날, 할머니 아파트의 비어 있던 방에 세를 세입자가 들어온다. 여덟 달을 뉴욕 구석구석 돌아다녀 봤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하나뿐인 친구마저도 자기 곁을 떠나자 절망에 빠진 오스카는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가고, 거기서 세입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이제 오스카는 이 말 없는 손님과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아빠의 텅 빈 관을 파내기로 한다. (세입자가 들어온 것은 오스카의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직후이고, 그 세입자는 오스카의 할아버지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블랙 씨들과의 만남 이야기는 할아버지와 오스카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2차 대전과 9.11,역사의 비극이 아닌 일상의 공포

이 책의 주인공이자 중심 화자인 오스카 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홉 살짜리 아이들과는 다르다. 아마추어 발명가인 오스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서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스크랩북에 모아둘 사진들을 수집하고, 스티븐 호킹이나 제인 구달과 같은 과학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조숙한 아이 오스카를 보면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나 『양철북』의 오스카가 연상된다. 『엄청나게』의 오스카는 콜필드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도시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감정적인 혼란과 무너짐을 겪고 있다. 또한 『양철북』의 동명의 주인공 오스카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탬버린을 흔들면서 떨쳐버리곤 한다.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들의 특징은 대개, 어른이 보기에는 익숙하고 심지어 당연한 것들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그 독특한 시선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점을 적용할 때, 작가의 독창성은 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시점의 효과가 십분 활용되고 있는데, 어린아이답게 순진하면서도 동시에 또래보다 먼저 아픔을 겪어 조숙해진 탓에, 오스카가 바라보는 세상 역시 진실 너머의 것인 듯하면서 오히려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그 정곡에 닿고 있다. 오스카는 늘 공포에 휩싸여 살고 있다.

“일 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무슨 이유에서인지 샤워를 한다든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에 엄청나게 어려움을 겪었다. 현수교, 세균, 비행기, 불꽃놀이, 지하철의 아랍인들(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닌데도),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등 공공장소의 아랍인들, 비계, 하수구, 지하철 격자창, 주인 없는 가방, 신발, 콧수염 기른 사람들, 연기, 매듭, 높은 건물, 터번, 나를 공포에 빠뜨리는 대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거대한 검은 바다 속이나 깊은 우주 속에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에게서 멀리멀리 사라지는 듯 했다. 밤에는 더 나빴다.”

물론 이것은 9.11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겪은 후유증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테러나 전쟁 같은 재난은 더 이상 특수 상황이 아니며, 이미 일상적인 공포가 되었다. 오스카의 모습은 현대의 세계, 늘 위험천만한 상황이 잠재하고 있는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오스카의 공포는 낯설지 않다.
소설 속에서 두려움은 오스카의 것만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 드레스덴 공습에서 살아남은 오스카의 할아버지에게도 인생은 두려움 그 자체다. “모두가 모두를 잃”는 것을 목격한 경험은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하여금 그 무엇도 혹은 그 누구도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없게 만든다. 또다시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그들은 다시 사랑을 하지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도 못한다. 상실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 이 역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목격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포어는 2차 대전과 9.11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지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 실재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실재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기억, 그 기억이 포어의 문장을 통해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짐으로써 그 두려움의 필연성과 막대함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다. 포어의 문장은 그 감정을, 그 심리를 “엄청나게 그리고 믿을 수 없게” 정확하게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상실과 슬픔, 사랑 그리고 소통의 단절에 관한 소설
이 소설은 오스카의 눈을 빌려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이 소설이 시종일관 그리고 있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오스카의 머릿속이다.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묘사하는 것이다. 오스카는 매 순간 순간을 “감정의 과잉 상태”에 빠져 보내고 있다. 기쁘지만도 슬프지만도 화나지만도 않는 상태, 그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휘돌고 있는 상태다.

“지금 전 슬픔, 행복, 분노, 사랑, 죄의식, 기쁨, 수치심을 느끼고 있고, 그리고 약간 즐겁기도 해요.”

감정적으로 무뎌질 대로 무뎌진 우리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상태가 오스카에게는 늘 계속되고 있다. 어떠한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쉽게 두려움이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생에 단련된 것이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우리의 머릿속에도 공포와 슬픔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을 쉬이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못한 까닭일 뿐이다.
이러한 ‘표현할 수 없음’의 문제는 오스카의 할아버지에게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드레스덴 공습으로 모든 것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머스는 말을 잃는다. 모든 단어들이 그에게서 하나씩 떠나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완벽한 ‘소통의 단절’ 상태에 이른다. 그 단절은 가장 가깝고 내밀한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조차 극복되지 못한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집에 있는 ‘무(無)의 공간’이다. 바로 곁에 있음에도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 안 곳곳에 ‘무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옷을 벗고 입는다. 그들은 함께 지내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디가 ‘무의 공간’이고 어디가 ‘존재의 공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의 공간이 집 안 전체를 잠식하고, 이제는 상대와 자신의 존재까지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은 ‘존재’인가 ‘무’인가라는 필연적인 질문에 맞닥뜨린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대로의 삶을 지속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토머스는 떠난다.
토머스는 ‘표현할 수 없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누구와도 소통하기를 거부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상대에게까지 슬픔을 더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오스카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 오스카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뉴욕에 사는 ‘블랙 씨’들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 슬픔을 안고 사는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된다. 오스카는 열쇠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고, 그렇게 아빠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이들의 사연도 함께 가지게 된다. 오스카는 자신의 슬픔과 두려움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그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들어줌으로써 서서히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그렇게 포어는 상실과 슬픔, 소통의 단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그것을 이겨내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엄청나게 시끄’러우면서도 그들 모두가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슬픔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 상상력
위험을 무릅쓰고 넓은 뉴욕 구석구석을 혼자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열쇠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다. 봉투에 쓰인 ‘블랙’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단서로 삼아 216명의 블랙 씨들을 모조리 만나러 다닌다는 계획은 언뜻 얼토당토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공상과 발명에 빠져 지내는 오스카라는 인물의 설정은 이러한 무모한 여정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그것은 ‘비범한 상상력’을 지닌 오스카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의 문제는 삶의 불가피한 비극성이다. 따라서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애의 정서 혹은 센티멘털리즘에 빠질 위험이 크다.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서평에서 실은 대로 포어가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에서 탁월할 수 있는 것은, 센티멘털리즘에 빠지지 않고서도 슬픔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데 있다. 이 소설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지극히 슬픈 이야기에 머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포어의 ‘비범한 상상력’에 힘입은 것이다.
오스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끊임없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겨낸다. 스스로 움직이는 빌딩, 심장 고동 소리를 들려주는 마이크 등, 그것은 실상 비극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투이지만, 독자는 오스카의 상상에서 슬픔을 이겨내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오스카의 반짝이는 상상력은, 비록 실제로 그것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15장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상상력의 힘은 붕괴 직전의 건물에서 떨어지던 사람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포스트모던, 새로운 소설의 장을 여는 작품
출간 당시, 이 책이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데뷔작 『모든 것이 아름답다』로 미국 문학의 새로운 주요 작가로 부상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9.11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잠시만 훑어보아도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실험적인 텍스트와 사진들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60여점의 사진들이 본문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텍스트들은 한 페이지에 한 문장만 들어가 있거나(책 41쪽 등), 아예 어떤 문장도 들어 있지 않거나(169~171쪽), 오직 숫자들만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고(372~374쪽)텍스트들이 겹치면서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391~396쪽). 기존의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시도들은 포스트모던 소설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평을 받으며, 이 작품을 격렬한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렸다.
포어의 파격적인 시도들은, 독서에서 비롯되는 감각적 반응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독서를 책 읽기 이상의 체험이 될 수 있게 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글 사이사이의 사진들은 소설의 내용 중 토머스가 자신의 아파트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며, 오스카가 스크랩을 위해 찍어둔 사진들을 실제로 보여준다. “이러저러한 사진을 찍었다.”라는 텍스트의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것이 그 사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한 페이지에 한 문장씩만 들어가 있는 텍스트 역시 토머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썼던 공책을 그대로 우리가 읽고 있는 책으로 가져온 것이며, 한 문장도 없는 페이지 역시 오스카의 할머니가 쓴 자서전의 빈 페이지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텍스트들의 겹침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무한히 두꺼운 공책과 영원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했던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글 위에 덧쓰기를 했음을 별도의 설명 없이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이처럼, 이 책은 오스카의 스크랩북인 동시에 오스카 할아버지의 공책이며, 할머니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바로 이렇게 세 가지의 다른 책들을 모았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다른 형식의 텍스트 형태를 띠며 전개된다. 이 책이 오스카의 스크랩북인 동안에는 오스카가 사람들을 만나며 찍은 사진들이 섞여 나오고, 할아버지의 공책인 동안에는 조금이라도 많은 글을 쓰기 위해 단락의 구분도 없이 글을 써나가다가 급기야 글자들이 뒤엉키게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글을 썼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할머니의 자서전인 동안에는 문장과 문장 사이 기억을 더듬기 위해 쉬는 시간이 긴 할머니의 글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가의 손과 입을 빌려 듣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각각이 직접 쓴 글들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바로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색다른 독서의 체험을 가능케 한다. 읽는 책이 아닌 경험하는 책인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통해 독자들은 독서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포어는 독자와의 소통에서도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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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허성미 님 2011.08.05

    왜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려는 뜻을 그 순간에 다 말할 수 없을까?

  • 허성미 님 2011.08.05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왔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 허성미 님 2011.08.05

    그리움은 늘 사랑보다 더 강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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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번째 메시지. 오전 9시 46분 , 아빠. 토머스 셸이야, 토머스 셸이라고, 여보세요? 내 말 들리니? 거기 있니? 전화 ...
    네 번째 메시지. 오전 9시 46분 , 아빠. 토머스 셸이야, 토머스 셸이라고, 여보세요? 내 말 들리니? 거기 있니? 전화 좀 받아라.제발! 받으라고,난 테이블 밑에 있다. 여보세요? 미안하다. 젖은 냅킨으로 얼굴을 덮고 있어. 여보세요? 아니요. 다른 걸로 해봐요.여보세요? 미안하다.사람들이 미쳐가고 있어.헬리콥터가 주위를 빙빙 돌고 있고, 그리고 옥상으로 올리길 갓 같다. 사람들 말로는 뭔가 수가 있을 거래.피란이랄까.모르겠어요.저걸 써보세요. 거기 올라가면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구나. 그렇다면 말이 되지. 헬리콥터가 충분히 접근할 구 있을 거야. 그렇겠지. 제발 전화 좀 받으렴. 몰라요. 네, 저거요.거기 있니? 저걸 써 보라고요.(p287)


    소설은 2001년 9월 11에 일어났던 테러를 모티브로 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탈취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충돌한 사건으로 인해 수천명이 죽어야 했다. 그때의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져 있지만, 소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닌 한 가정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보석상을 운영하는 토머스와 그의 아들 오스카, 아홉살이 된 오스카는 여느 아이들보다 영리하고 똑똑하였다. 숫자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으며, 아빠와 게임을 즐기면서 자신의 영리함을 부모님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의 죽음으로 시간에 갇혀 버리게 된다. 아빠가 9월 11일에 남겨놓은 마지막 음성 메시지와 전화는 오스카 뿐 아니라 오스카의 아내 마드무아젤 셸에게도 슬픔이었으며, 오스카는 아빠를 그리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 아빠를 생각하게 된다. 아빠가 남겨놓은 유품 중에서 찾아 낸 블랙이라는 단어와 좌물쇠, 오스카는 그 좌물쇠가 블랙이라는 사람과 관련있을 거라 생각하고 뉴욕에 있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모두 찾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오스카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아빠에 되한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스카의 감정 표현과 혼란스러움, 오스카의 내면 속 슬픔과 마주하게 되는데,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찾는 '블랙'이라는 이가 바로 오스카의 알아버지였으며, 할아버지 또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스카의 할머니는 24년전 세상을 떠났으며,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아파트 밖을 나오지 못하게 되는데, 죽음이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오스카의 성장 뒤에는 아빠의 죽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생에서 지혜와 깨달음, 성장을 얻게 되지만 죽음 앞에서 더 큰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 건 아닐런지, 오스카의 내면 속 깊은 슬픔과 외로움은 바로 우리가 놓쳐 버리고 있는, 외면하고 있는 나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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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 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아빠의 목소리가 녹음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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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실과 소통 불능 | hs**9 | 2015.04.09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9.11 테러 사건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홉살 소년의 이야기라고 해서 슬픈 내용이라 짐작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사실 ...

    9.11 테러 사건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홉살 소년의 이야기라고 해서 슬픈 내용이라 짐작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사실 9.11이 문제가 아니라 상실과 소통 불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홉살 소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각자의 상실과 소통 불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통일되지 못하고 집중하기 힘든 소설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효과도 그리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내가 닫힌 사고를 갖고 있는건지, 편협된 감정을 갖고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저 상실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진심이 담긴 속마음을 꺼내보이기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익숙함은 진솔한 마음을 무디게 만들고, ...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진심이 담긴 속마음을 꺼내보이기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익숙함은 진솔한 마음을 무디게 만들고, 관계의 의미조차 희미하게 한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한 관계란 이름은, 이름 그 자체만으로 행복이자 위안이며 평안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친구, 연인,,,,,자연스레 머리속에 떠오르는 나와 관계한 사람들.

    하지만 때때로 존재만으로 커다란 충족감을 주던 관계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이름뿐인 관계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건 내가 이름뿐인 관계로 돌아서 버린 것일수도 있고, 서로가 동시에 돌아서 버린 것일수도 있다. 그러한 돌아섦은 등을 맞대고 서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면서 다른 풍경을 보는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풍경속에서 당연한 소중함 대신 당연하지 않은 소중함을 갈구하고,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하던 관계의 의미를 조금씩 잊어간다. 가슴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머리는 조금씩 잊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관계의 이음줄이 끊기는 순간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불투명해지고 ''이별한 후에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라는 지독히 슬픈 사랑이 잊었던 기억을 대신 채워간다.



    이 소설은 죽음앞에서도, 시간앞에서도 퇴색하지 않는 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끊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홉살인 ''오스카''는 9.11 세계 무역 센터 폭발사건으로 아버지를 잃고,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부모님, 연인,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잃게 된다. 국가간의 소통 불능에 의한 전쟁과 테러로 수 많은 관계들이 상처입고 부숴진다. 소중한 존재를 잃은 후의 상실감과 아픔을 절실히 느껴버린 토마스는 더 이상 그 어떤 소중한 존재도 만들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양손에 yes.no라고 새긴 문신과 공책만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미약하게 이어간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애나''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지만 그의 눈에 비춰지는 것은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잔상일뿐 현실이 아니다. 잃어버린 관계의 상흔이 깊숙히 새겨진 그의 가슴에 새로운 관계가 들어설 곳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내과 아들을 버려둔채 홀연히 사라진다.

    자신의 첫번째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였던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 역시 가슴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눈물로써 아픔을 삭히지도 못하는 오스카에게 9.11 이후의 삶은 매일이 고통이자 슬픔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 서재에서 낯선 열쇠를 발견하고, 이 열쇠의 의미를 찾아나서기로 마음먹는다. 편지겉봉에 적혀있던 단서 하나로 ''black'' 이라는 성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시원한 답을 해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 시간은 흐르고 오스카의 마음속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커져간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열쇠가 어떠한 의미를 가진 물건인지 알게되지만 그건 아버지의 죽음과도 전혀 무관한 물건이다. 매일밤 아버지가 어떻게 고층건물에서 죽어갔는지 상상하기 싫다고..그래서 어떻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이 순수한 아이는 해답을 찾지 못한채 허망하게 열쇠 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오스카는 ''토마스''의 텅빈 관을 파헤쳐 아들이자 아버지인 그의 죽음을 직시한다. 토마스의 텅빈 관 속은 수 년간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써 온 편지로 채워지고. 그 속에 슬픔과 상실감이 함께 묻힌다.

    전쟁과 테러에 의해 상실과 아픔으로 흔들거리는 관계들이 사랑이라는 ''소통''으로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치료해간다. 슬픔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주위에 함께하는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건낼 뿐이다. 잃어버린 관계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죽음으로 끊겨진 관계는 끊겨진게 아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관계위에 한겹두겹 두터운 이음줄을 덧입혀 그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이음줄이 사랑이라는 소통의 표현에 의해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더욱 와닿았던 점은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된 많은 사진들과 실험적인 서술 기법이다. 글로써 묘사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을 보면 이들의 상실감과 슬픔이 절로 전해진다. 소설의 감정이 살아서 내안에 파고드는 기분이랄까. 뿐만아니라 글자의 전형적인 배열을 깨뜨린 서술 방식은 글자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그림이자 감정이었다. 글자가 단지 의미의 전달이나 묘사의 수단이 아니라 글자가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형상 자체가 표현이었다. 엄청나게 독특하고 믿을수 없게 가까이 다가왔던 소설이다.


     
    태어난 이상 천 분의 일 초 후든, 며칠 후든, 몇 달 후든, 76.5년 후든 누구나 죽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사람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이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있다.
  • 그래도 미안합니다 | wi**gen77 | 2013.12.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뭇 생명의 계급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구의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고, 또 다른 이들의 생명은 하찮은 것일까? 과연 그러한 기준이...
    뭇 생명의 계급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구의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고, 또 다른 이들의 생명은 하찮은 것일까? 과연 그러한 기준이 있다면 그딴 것은 어느 잡놈이 만들었고, 또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따르고 있을까. 누군가를 잃은 슬픔에도 등급이 있을까.
     
    확실히 독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작품은 2001년 9․11테러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영민한 아이 ‘오스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스카는 눈물겹게 때론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그리움을 이겨내고 또한 타인들의 상처에 다가간다.
     
    저자는 9․11테러를 스스로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이 저지른 그 수많은 죄악들로 인해, 애꿎게 숨져간 이들을 거론하지도 않는다. 다만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무기력한 ‘우리’들의 상처를 쳐다볼 뿐이다.
     
    그러한 저자의 접근에 불만은 없다. 저자는 온전히 인간에 주목하고 있으니까. 미국인이냐, 이라크인이냐, 혹은 한국인이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와 달리 난 따져야겠다. 왜 우리는 9․11에 그다지도 충격을 받았을까. 왜 전 세계가 9․11에 충격을 받았을까. 그리고 도대체 왜 9․11로 희생된 미국인들보다 이후 몇 십 배, 몇 백배, 몇 천배에 이르는 이들이 아무런 죄 없이 숨져갔다는 사실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까. 난 따져야겠다.
     
    그 잘난 신자유주의의 광풍으로 더 이상 ‘국경’이 무의미하고, 국적 또한 쉽사리 바꾸며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좋게 말하면 경제, 솔직히 말하면 초대형 다국적 기업들과 ‘전 지구적인’ 착취만 자유로울 뿐,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란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따져 물어야겠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슬픔에 등급을 매기고, 생명에 경중을 따지고, 소통과 어울림마저 자기 계산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오스카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자물쇠’를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깜찍하고 귀여운 아이 오스카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아니, 오스카의 여정을 통해 바로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게 된다. 상실의 아픔, 그리고 치유를 위한 소통과 또 다른 만남.
     
    많은 사진과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활자 밖 더 풍부한 체험을 이끌어낸 상상력과 기발함은 독자들의 감탄과 찬사로 저자의 실험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오스카와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단절과 상실에 아파하고,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소통과 공감 그리고 자신 만의 용기로 상처를 극복해가는 오스카를 사랑하게 된다. 결국 매일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나눠야 한다. 나누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순하고 무지한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죄 없이 죽어간 9․11테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만큼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간 수많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아파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그와 같은 비극을 만들어낸 미국을 비롯한 추악한 자본 권력들에게 먼저 그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명과 사랑에는 그 어떤 계급도 존재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옮긴이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인간의 나약함을 향한 연민이며 궁극적으로는 무시무시한 운명에 대한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운명에 맞서 싸우고 또 싸우다 그렇게 스러져가는 존재일 것이다. 그 투쟁이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으로 덜 아프고 덜 힘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점점 대한민국이 무섭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얌전해 보일 정도로, 두려운 세상이다. 더구나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혹독할 것인가. 우리의 운명은 또 얼마나 눈물겨울 것인가. 또 다시 노동자의 죽음이 전해진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지독한 현실인지, 얼마나 잔인한 공식인지,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보여준다.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 그 자체가 오염이자 죄악이 아닐까. 아름다운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이라크 아이들의 주검이 눈에 밟혔다. 아프간 아이들의 피울음이 밟혔다. 그리고 경제 순위 세계 10위권이라고 자랑하는 이 땅에 잠시 셋방 얻어 들어왔다, 쫓겨나듯 숨져간 이들의 눈물이 밟혔다.
     
    무력함이 넘치면 나중에는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살기 위해서는 더욱 독하게 연대하고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스카의 상처가 아물 때쯤, 지구상 어디에선가, 그리고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눈물을 닦고 있을 우리들의 또 다른 오스카들도 부디 덜 아팠으면 좋겠다.
     
    정리해고에 내몰렸던 또 한 명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너무 추워 이가 덜덜 떨린다.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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