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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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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70635416
ISBN-13 : 9788970635415
호미 중고
저자 박완서 | 출판사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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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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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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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위안을 건네는 글! 어느덧 일흔일곱 살에 이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7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저자가 겪어야 한 애증과 애환과 행운과 기적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경건한 고백처럼, 이 책은 자연과 사람을 인내의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아차산의 품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즐거움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베어버렸으나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을 토해낸 목련나무에게는 자신을 용서해주고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주어서 고맙다며 말을 거는 등 저자의 마음은 그러한 수다로 일구어낸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그리고 저자는 죽어있지만 살아날 것과 살아있지만 죽을 것이 공존하는 자연을 통해 깨달은 엄혹한 순환의 법칙을 가르쳐주면서,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가족은 물론,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김수근, 김상옥, 이문구 등 유독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찡하게 추억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너그러운 저자 주위의 어른들의 삶은 우리에게 길의 거지라도 능멸할 수 없게 만드는 상상력의 힘을 불어넣어준다.

저자소개

저자 : 박완서
박완서 약력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 동화집 『부숭이의 땅힘』 『보시니 참 좋았다』 『옛날의 사금파리』,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 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등과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2006) 등을 수상했다.

목차

책머리에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다 지나간다
만추
꽃 출석부 1
꽃 출석부 2
시작과 종말
호미 예찬
흙길 예찬
산이여 나무여
접시꽃 그대
입시추위
두 친구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

그리운 침묵
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
그리운 침묵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야무진 꿈
운수 안 좋은 날
냉동 고구마
노망이려니 하고 듣소
말의 힘
내가 넘은 38선
한심한 피서법
상투 튼 진보
공중에 붕 뜬 길
초여름 망필(妄筆)
딸의 아빠, 아빠의 엄마
멈출 수는 없네
감개무량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그는 누구인가
음식 이야기
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내가 문을 열어주마
내가 문을 열어주마
우리 엄마의 초상
엄마의 마지막 유머
평범한 기인
중신아비
복 많은 사람
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딸에게 보내는 편지

책 속으로

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모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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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모든 건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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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 되었을 만큼,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263쪽) 싶어할까봐 밤낮으로 경계하여야 할 만큼, 한없이 낮고 두려운...

[출판사서평 더 보기]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 되었을 만큼,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263쪽) 싶어할까봐 밤낮으로 경계하여야 할 만큼,
한없이 낮고 두려운 나이.
어느덧 일흔일곱에 이른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가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두부』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에게 내놓는 신작 산문집이다.
70여 년의 세월 동안 박완서가 겪은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작은 행운과 기적들…”이 고스란히 이번 산문집에 담겨 있다. 애증과 나락마저도 박완서의 깊은 성찰을 통해, 묵직한 울림이 되어 전해져온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박완서의 경건한 고백처럼,『호미』는 작가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을 한없는 인내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22쪽), “땅은 내가 심거나 씨 뿌리는 것한테만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아온 온갖 잡풀의 씨앗, 제가 품고 있던 미세한 실뿌리까지도 살려내려 든다”(55쪽),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112쪽).
한결같이 박완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축복의 문장들이다.


들판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살고 있는 박완서의 즐거움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싹둑 베어버렸으나 죽지 않고 새싹을 토해낸 목련나무에 대고는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건다. 일년초 씨를 뿌릴 때는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말을 건다. 일년초가 비를 맞아 쓰러져 있으면 “바로 서 있으라고 야단”(15쪽)도 친다. 스스로 원경으로 물러서는 박완서의 마음밭은, 바로 그러한 수다와 속삭임으로 일구어낸 꽃들과 나무들 천지다. 오늘도 박완서는 새벽의 조용한 마음밭으로 나가 꽃과 나무들의 출석부를 부른다. 복수초, 상사초,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매화,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모든 자연의 시작은 종말을 예고하는 법.
그러나 박완서는 종말이 새로운 시작을 불러오는 순환의 법칙을 일깨워준다. “작년에 그 씨를 받을 때는 씨가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45쪽)
자연의 엄숙한 순환인 시작과 종말 앞에서, 박완서는 겸허히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35쪽)


오늘날의 박완서를 지탱해주는
팔 할의 아름다운 영혼들


박완서는 이번 산문집에서 유독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들을 가슴 찡하게 추억한다. 세상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웠던 그녀 주변의, 그녀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갔거나 여전히 우인(友人)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삶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박완서의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종교도 없었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신 분”(165쪽)이었으며, 철저히 유교적이었던 할아버지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사람의 근본으로 삼으면서도, 대처에 나가 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해 양력설을 쇠도록 한 진보적인 분이셨다.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 깎지 마라”(168쪽) 등등 그분의 훈계와 뜻을 박완서는 오늘도 잊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보배로운 이 시대의 기인”인 역사학자 이이화, “복 많은 사람” 김수근, “돼먹지 않은 걸 꾸짖고 혐오하실 때는 망설임이 없으”시던 시조시인 김상옥, “이름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에 대한 박완서의 존경과 그리움이 주는 깨달음은 값지다.


1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작년에 그 씨를 받을 때는 씨가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 ―본문 중에서

2부 그리운 침묵
마침내 침묵의 계율이 풀렸다. 혀가 풀리자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본문 중에서

3부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더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본문 중에서

4부 내가 문을 열어주마
한글을 가르치는 건 내 취미 생활이자 내 자식에 대한 의무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마 점점 비우호적인 세상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동물과 식물 곤충하고까지 소통을 나눌 수 있는 한없이 놀랍고 아름답고 우호적인 세상에 대한 믿음이 되길 바랐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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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김지연 님 2009.04.03

    벽촌의 비 오는 날의 적막감은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그러나 장차 피할 수 없게 될 인생의 원초적 고독의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랑채 툇마루에 오도카니 앉아 있으면 비에 젖어가고 있는 허허벌판과 큰 나무들과 나직한 동산과 몇 채 안되는 초가지붕과 불어나고 있는 개울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면 대식구 속에서 귀염받는 어린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핑계만 있으면 울어버리고 싶게 청승스러워지곤 했다.

  • 김은미 님 2007.03.18

    관심 소홀로 잃어버린 게 어찌 책방뿐일까.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은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 이은주 님 2007.03.09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

회원리뷰

  • 호미 | pe**kw | 2014.09.15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발췌]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틀림없이 나의 시골생활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 근교의 시골 생활이라는...

    [발췌]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틀림없이 나의 시골생활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 근교의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숲과 개울물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야금야금 훼손되고 오염되는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 견디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리라. 나도 미처 몰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남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속물이니까 그런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속물은 조금은 비겁하게 마련이다. 비겁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내 마당이라도 안전하면 그만이라고 이기적이 되는 것도 속물근성이다.

     

    *호미질을 해보면 알지만 살짝 비틀린 날의 방향 때문에 호미는 절대로 오른손 왼손이 같이 쓸 수 없게 돼 있다. 극소수의 왼손잡이까지 생각한 세심한 배려가 호미날의 그런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내가 땅 위를 기면서 하는 노동은 제가 잉태한 것은 어떡하든지 생산하고자 하는 땅의 욕망과 내가 원하는 것만 키우고 즐기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과의 투쟁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땅 위에 직립했을 때 가장 땅과 친하고 기어다닐 때 가장 땅과 적대적이라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건강에 좋다는 것이라면 인정사정없이 덤벼드는 우리들의 그악스러운 건강열에 문득 진저리가 쳐졌다. 그 물이 정말 그렇게 몸에 좋은 것일까. 만일 검증된 효능이 있다면 더더욱 나무도 살리고 그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나무 눈치 봐가며 조심조심 채취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재치가 돋보이는 입시생을 위한 선물용 소품들 : 휴지는 문제를 잘 풀라고, 도끼나 포크는 정답을 잘 찍으라고, 파스나 접착제는 잘 붙으라고, 가스테라는 가서 되라고.

     

    *나 하나쯤 안 사줘도 사줄 사람이 많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니. 내가 정말로 종로서적을 사랑했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사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들었다. 관심 소홀로 잃어버린 게 어찌 책방뿐일까.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은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더 불행한 경우를 가정하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자위의 방법이다.

     

    *들판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야말로 신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전율처럼 나를 흔들었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남존여비가 더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후진국에서 아들도 아닌 딸을 저 정도로 가꾸어 학교에 보내려면 본인의 각오도 비상해야겠지만 그 어머니의 노고는 도대체 얼마만 한 것일까. 그건 엄마들이 딸에게도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 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

     

    *우리 고향은 아주 보수적인 산골 마을이고 그런 마을에서도 드물게 할아버지는 상투를 틀고 계실 만큼 고루한 어른이셨는데도 설은 양력으로 쇠도록 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처에 나가 학교 다니는 손자들이 방학에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 장만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나 이때나 음력설이 겨울방학 안에 드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의 상투 튼 진보 덕분으로 손자들은 귀향의 기쁨과 설에만 맛볼 수 있는 지방색 짙은 음식과 놀이 문화에 대한 풍부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

     

    *시어머님의 장례를 이렇게 치르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분은 종교도 없었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분이셨다. 만일 장례란 누구나 다 그렇게 치르는 거라면 구태여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전에 가본 문상 중에서 나도 죽으면 저런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 깊은 장례식은 거의가 천주교 의식의 영결미사였다. 영결미사는 고인이 부자든 가난하든 명사든 보통사람이든 관계없이 고인이 이 세상을 살아냈다는 데 대한 극진한 대접을 한다. 고인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절망보다는 큰 평화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장례미사를 보고 나면 인간이란 슬픔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정화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슬픔이 있는 기쁨이랄까. 그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남기고 가는 선물일 수도 있었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된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영성체 전에 다같이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였다....아니, 저 사람이 누구지? 저 초라한 중늙은이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남편의 낯섦에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난 줄 알고 살아왔다. 그는 뭐든지 나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고달프게 돈을 벌고, 아이들에게는 믿음직스럽게 굴어야 하는 가장이었다. 그가 번 돈은 내 돈이었고 내 생각은 그의 생각도 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간적인 돌연한 낯섦이 이런 나의 관습적인 생각에 충격이 되었다. 내 몸과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던 남편을 독립된 타자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카톨릭을 믿고 나서 유일하게 경험한 신비체험이다.

     

    *시까라레루 도고로니 이끼나사이 (일본어): 야단맞는 데로 가라. 라는 뜻.

     

    *나는 일본의 '가다가나'를 도무지 외울 수가 없었다. 나는 결코 한글을 하룻밤에 익혔다고 전해지는 총명한 아이가 아니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한글은 '가'느 가라고밖에 읽을 수 없는 까닭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서 소리가 되나 하는 이치만 알면 그 다음은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게 돼 있었다. 나는 일본의 '가다가나'의 글씨들이 왜 저를 '가'라고 또는 '아'라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덮어놓고 외야 하는데 그게 안 됏다. 나는 꼴찌를 못 면했고 학교생활이 지옥 같았다....3학년이나 되고서야 겨우 성적이 중간 정도가 되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하라고 상성을 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는 일은 국어교과서를 소리내어 읽는 일인데 결과적으로 그게 말문이 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동화나 시를 소리내어 반복해서 읽으면서 조선말에는 없는 일본말의 '야사시사'에 조금씩 매료당하고 있었다.

     

    *손자들을 봐줄 일이 있을 때마다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나의 큰 낙이었고, 아이가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만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그걸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나타내는 부호가 있다는 걸 반복해서 일러줬다. 꽃,새,사슴,구름,나무,책상,엄마,아빠....  굳이 벽에다가 '가갸거겨'를 써 붙일 필요는 없었다.

     

    *이 이화 선생.(저서: 한국사 이야기, 인물한국사) 그는 이름 없는 백성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삼지 사방으로 짖기는 분단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견딜 수 없어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역사하는 태도가 아닐까. 역사에서 민초들의 생활사를 소외시키지 않고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참신하게 보이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 여태까지 견지해온 기본적 자세였을 것이다.

     

    *박수근 화백 미술관 위치는 양구. 미술관 명예관장은 유홍준.

     

    *엄마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을 하게 된 건 네가 고등학교 가고 나서였다. 초등학교 때 현금 나르는 일을 시킬 만큼 너를 어른 취급해왔으니까 중학교 가고부터는 집안의 대소사나 근심거리를 마치 동서끼리나 친구 사이처럼 기탄없이 의논해왔다. 그러나 소설 쓰는 것만큼은 너에게도 눈치 못 채도록 깜쪽같이 해치웠지.....근심이 생겨 너한테 털어놓을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기만 해도 근심의 반은 사라지고, 미운 사람 욕을 너한테 하고 나면 미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너는 딸이요 친구인 동시에 근래에는 내 문학의 적절하고 따뜻한 비평가 노릇까지 겸해주었다.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 피로써 글을 써라 | je**sam | 2011.07.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호미   박완서 열림원 2007   피로써 글을 써라   글은...
     
    호미
     
    박완서
    열림원 2007
     
    피로써 글을 써라
     
    글은 피로써 써야 한다. 피로 쓰라는 것은 의미적인 표현이다.
    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쓰인 글과 마음이 일치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 쓰인 글과 마음의 불일치가 될 때 앞서간 마음을 다잡아 쓰인 글에 굴복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글은 쓰였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로써 쓰이지 않은 글은 거짓 글이요, 사람을 속이는 글이요,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범죄의 글이다. 세상에는 참된 글이 있는가 하면 또한 거짓 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를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에겐 글의 진실함을 참기란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내 인생이 찾아낸 글 중에 진실한 글, 피로써 쓰인 글이 있다면 자랑스럽게 박완서님의 글이라 외치고 싶다.
     
    "호미"
     
    마음 아련한 곳에 옛 어머니께서 허리춤에 차고 다니시던 닳고 닳아 손가락 크기만 하여 뭉뚱그려져 어머니의 생을 대변하는 추억으로 안내한다. 그 기억에는 호미와 어머니는 분리되지 않는다. 호미는 남성적이 아니라 여성적인 농기구이다. 거친 세상과 싸우기보다는 거친 잡초들과의 싸움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연약해 보이는 호미로 쉼 없이 올라오는 잡초들의 항변을 정벌한다. 언제 한국에 갈 일이 있다면 닳고 닳은 호미를 하나 구입해서 영국으로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 인생은 호미에 실린 박완서 선생님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품을 느끼게 될까 기대함을 갖지만 어머니가 아니라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선생으로서 내 인생 앞에 그녀는 우뚝 서 있다. 그에게 비춰진 세상은 참 아름답다. 버려질 것들에 희망을 부여하여 위대함으로 다시 탄생한다. 호미도 그렇거니와, 마당에 나 있는 잡초들도 그러하다.
     
    “요새도 새벽에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가게 된다. 봄에는 이불 속이 등 따순 맛에 벌떡 일어나기가 귀찮다가도 식물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 한 느낌 때문에 이부자리를 박찼던 것 같다. 밖에 나가 나날이 부드러워지는 공기와 흙의 감촉을 즐기며 마당을 어슬렁거리노라면 땅속에서 아직 움트기 전의 식물들이 부산하게 웅성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 느낌은 고막에 와 닿는 음향은 아니지만 마음을 두드리기도 하고 무슨 영감처럼 소리 없이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 (p16)
     
    식물들의 웅성거림…….내 인생은 사실 들어본 적이 없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가든에 여러 가지 잡초들을 가꾸곤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내 작은 마음에서 나오는 판단에 의해 그들의 처형당하기도 하고 새로운 종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들의 신음을 난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사람의 깊이의 차이 아닐까 싶다. 식물들이 말은 할 수 없겠지. 그러나 마음이 열려 있다면 그들의 외침을 듣지 않을까 싶다.
     
    “나무들이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 흙 속의 무수한 씨들이 서로 먼저 나가려고 부산을 떠는 소리가 날로 도타워지는 햇살 속에 파문을 일으키고 지표에 아지랑이를 만든다. 봄기운의 유혹을 못 이긴 산새들도 그때부터 짝짓기 철이 시작된다. 제 나름의 온갖 미성으로 지저귀기 시작한다. 새벽잠을 깨우던 소리 없는 소요가 비로소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으로 바뀐다. ” (pp17-18)
     
    호미를 통하여 한 사람의 철학을 배운다. 그것은 마더 테레사의 철학이기도 하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p79 / 마더 테레사)
     
    세상은 다문화, 다원화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고 있다. 정성 들여 하나씩 물건을 만들어 팔던 장인정신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대량 생산을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이다. 잡초 한 포기를 땀으로, 피로써 김을 매던 호미도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대량으로 약물을 살포하여 잡초 자체가 살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대형화되는 시대, 교회도, 식당도, 모든 것들이 사람이 몰려야 비로소 그 이름을 내고 있다. 그러기에 당연 인간의 마음속에 한 사람의 소중한 철학은 잠식되어 버렸다.
     
    아……. 내 인생이 그러하다. 잡초 한 포기를 뽑기 위한 몸부림이 아쉽다. 글 한편을 쓰기 위해 피를 토하기까지 자료를 찾는 그 모습이 아쉽다. 컴퓨터만 켜면 얼마든지 약간의 노력만으로 자료를 찾을 수 있기에 자료의 소중함도 사라져 버린다. 교회에서의 목양도 그러하다. 성도 한 명이 소중하여 그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의 자세도 이미 사라진 듯하다. 곤고한 내 생에 한 줄기 빛이 비추인다. 그것은 피로써 써야 하는 호미 정신이 아닐까 싶다. 좀 느리긴 하여도 대량 살포하는 살충제보다는 안전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거룩한 도구가 아닐까 싶다.
     
    책을 통하여 위대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박완서 선생님을 통하여 잉크와 컴퓨터로 장식되어지는 것을 버리고 피로써 내 인생을 살려 한다. 풀 한 포기의 소중한 마음 그 이상으로 한 사람의 영혼의 소중함을 피로써 배운다.
     
    예수마을 커뮤니티 교회
    박심원 목사 독서묵상
     
     
  •  대학 재학시절... 여름 방학을 맞아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전라도 어디쯤이었을 텐데 지명도 위치도 정확히 기...
     대학 재학시절... 여름 방학을 맞아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전라도 어디쯤이었을 텐데 지명도 위치도 정확히 기억에 없다. 당시만 해도 한총련의 기세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하늘을 찌를 듯했고, 여전히 이데올로기는 유효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학생운동이 학생복지와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진다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이라면 좀 더 사회 참여적이고, 지성의 고뇌를 품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80년대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간신히 끝자락을 부여잡고 유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운동권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도 없이 그냥 동료들과 시골로 놀러 간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농활에 참여했다.
      첫 날 도착하자 밤새워 마신 술에 아침까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보통 술을 마시면 잠으로 해독하는 내게 시골의 아침은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아침밥을 챙겨 드신 어르신들이 주섬주섬 일터로 향했다. 흔히 땅을 가꾸고 땅에서 생산되는 작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땅은 결코 노동에 대한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들 말하는데, 그 흔해빠진 진리가 도심 속에서만 살다 시골 생활을 처음 해 보는 내게 정직하게 다가왔다.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더 많은 지역에서 나도 호미 한 자루 쥐고 시골 어르신들을 따라 나섰다. 하루 종일을 밭고랑을 파고 그 곳에 무슨 씨앗인지 씨앗을 뿌리고 얇게 흙을 덮는 게 내게 주어진 임무였던 거 같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과 무릎 관절이 굳어지는 듯한 통증에 괴로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측은한 표정으로 불안하게 나를 내려 보시던 아주머니께서 가서 좀 쉬라고 하는데... 이거 참 남자 체면에 시골 아주머니보다 일을 더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인내심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싫어서 조금 더 견뎌볼 요량으로 괜찮다고 호기를 부렸다. 덤덤히 일을 계속하시는 아주머니와 내가 맡은 구역의 진도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결국 아주머니께 조용히 양해를 구해야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밭 사이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 내 모습이 마치 무슨 패잔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호미를 잡아 본 기억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노동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약한 내 육체가 부끄러워지는 아련한 추억이다.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짓고, 전원생활을 꿈꾸고 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나의 오만한 감정의 사치가 아닐까 우려가 인다.
      그런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는 호미를 작가 박완서는 가장 애용하는 농기구라며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는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며 느낀 저자의 일상들을 평이한 어조로 쏟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나간 70여년의 인생을 정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원생활에서 얻게 되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예찬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라는 장에서 잠깐 언급이 되고,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딸에게 보내는 편지나 가까운 지인들을 보내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글들은 아직 글 쓸 여력이 남아 있을 때 반드시 정리해야 만 할 것 같은 숙제처럼 저자에겐 일종의 의무감처럼 느껴졌다. 또,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과 산문집들의 표현을 다시 옮기며 부연 설명을 할 때면 저자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자전적 소설에 애착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뭔가를 시키고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p.263)
     
      평소 박완서의 책을 즐겨 읽다보니 그 분이 가진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그 분이 당신의 자식들을 향한 마음도 그 어머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그리 놀라울 것이 없었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나도 내 자식이 문을 열고 나가 부딪힐 몇 겹의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우호적이길 바랐다. (p.215)
     
      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을 꽂아든 내 의도는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을 엿보고, 그 유려한 문체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대리 만족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호미를 잡아 본 내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저자의 호미 예찬은 반갑고 아름답다.
     
      내가 애용하는 농기구는 호미다. 어떤 철물전에 들어갔다가 호미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손에 쥐어보니 마치 안겨오듯이 내 손아귀에 딱 들어맞았다. (중략)... 젊은 친구로부터 날이 날카롭고 얇은 잔디 호미까지 선물로 받아 지금은 부러진 호미까지 합해서 도합 네 개의 호미를 가지고 있다. 컴퓨터로 글쓰기 전에 좋은 만년필을 몇 개 가지고 있을 때처럼이나 대견하다. (pp.48-49)
     
      이렇게 호미를 예찬하던 저자도 전문 농사꾼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무래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호미에 대한 예찬이 지나친 감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고작 잔디나 꽃밭이나 가꾸는 주제에 농사 기분을 내보고 싶은 속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략....)  대대로 시골에서 겨우겨우 먹고살 만한 농사를 지으면서 그래도 남자들은 입신양명의 꿈을 못 버렸던지, 혹은 학문이 좋았던지, 주경야독을 사람 사는 도리의 기본으로 삼았고, 여자들은 요새 여자들 핸드백처럼 늘 호미가 든 종댕이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김매고, 밭머리건 논두렁이건 빈 땅만 보면 후비적후비적 심고 거두던 핏줄의 내력은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꽤 집요한 것 같다. (pp.50-51)
     
      보통 책이 한 권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간다. 출판기획사의 전략으로 가장 공감 가는 문장들을 뽑아 책 여기저기에 혹은 보도 자료에 눈에 잘 띄게 배치해 놓는다. 그러다보니 그 문장력에 이끌려 책을 사고 나면 내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경우가 많아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닐 때가 잦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뒤 내가 만난 느낌이 이와 비슷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와 <호미>라는 제목이 이끄는 시선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중략...)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책머리에 중)
     
      저자의 집필 의도는 잘 알겠지만, 그 의도에 비해 생을 마감하기에 앞서 정리해 둘 것은 정리하고 싶어 하는 듯한 이기적인 글들이 상당히 많이 보여 조금은 씁쓸했다. 특히, 저자의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를 회고하며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났지만 여덟 살 때까지는 이조시대를 살았다."(p.193)라고 할 때면 왜 굳이 "조선시대"가 아닌 "이조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지 궁금해 졌다. 또, "변소에 가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맡으면 되는데 그 소리가 하기 싫어 주리 참듯 하다가 폐회식을 위해 도열한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p.195) 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일제시대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변소'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것 같긴 한데,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도 책을 읽는 동안 지울 수 없는 의혹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공익 광고의 한 장면을 떠올릴 만한 구절에 다다르면 여전히 박완서가 따뜻한 눈길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휴머니스트임은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보모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p.256)
  • 호미 | ya**oone | 2011.02.11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어찌 작가님 책을 평할 수 있을까? 왜 진작에 작가님 생전에 많이 접하지 않았을까? 많은 후회의 물결로 내 맘을 채우며 ...
    어찌 작가님 책을 평할 수 있을까?
    왜 진작에 작가님 생전에 많이 접하지 않았을까?
    많은 후회의 물결로 내 맘을 채우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줄 한줄
    사용하신 언어를 보며 역시 작가님 다우신 카리스마가 있으시구나.
    이렇게 많은 새로운 어휘를 적재적소에 사용하시니....
    이러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읽었다.
     
    작가님께서 사용하시는 단어들이 아무리 어렵고 무거운 느낌의 단어일지라도 작가님의 고운 필체와 어우러지니
    맛깔 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필에 실린 모든 글들이 70대에 쓰신 글이라 하시니... 이 또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어르신들의 지혜로움이 있었기에 소싯적부터 지혜롭고 당당한 성장기를 보내신 듯 싶었다.
    어머님과 할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책 내용 곳곳에 스며들어 지혜를 느낄 수 있었기도 했다.
     
    천주교의 신앙과 자연으로 벗하시며 살아내셨던 삶 속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
    지인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이름모를 야생화에 대한 애착을 유감없이 발휘하시기도 하셨다.
     
    예전에 사용하셨던 호미의 묵직함을 사랑하셨나 보다.
    제목이 호미여서 왜? 왜? 어떤 내용이길래???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책속의 글 제목도 호미로 정하시고 쓰신 단편도 있었다.
     
    문학가 다우신 모습으로 감성이 풍부하시지만, 본인도 말씀하신다.
    연세에 6자 들어가 있었을 때는 글에다 촌철살인적 내용을 담아내셨다 하지만,
    7자 들어간 이후로 그러시지 않으셨다 쓰시기도 했다.
     <책 머리에>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 나잇값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포송포송한 솜에 누워 폭 쌓여 뒹굴거리며 응석부리는 느낌?
    보호받는 느낌?
    포근하고 푸근하고 편하고, 돌아보지 않은 자연의 소중함도 느꼈고,
    어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한 삶을 영위함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지혜들이 담겨 있었고,
    그 많은 지혜를 수용할 그릇이 못되는 내 자신이 안타까웠다.
     
    이분들도 세월 앞에
    신의 섭리 앞에선 대적할 수 없으니
    그분이 부르실때 조용히 마감하고, 그분께 가시는 거겠지?
     
    고인이 되신 후에 읽어서 그랬을까?  요즘엔 작가님들이 많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작가님들의 책을 찾는 지혜를 얼른 배워서
    생전에 계실때 그분들이 책 속에 쏟아낸 생각들을 엿보고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겠다.
     
    다시 느꼈다.
    무엇이든 언제나 늘 있는 지인들, 물건들을 당연시 하며 그러려니? 하며 소홀히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소소해서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가지는 마음을 내 그릇 안에 자리잡도록 담을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해야 겠노라고...
     
    여러 글들 아니 첫글부터 덮을 때까지 쏟아내신 열정과 지혜에 감탄하고, 감복했다.
    하지만, 요즘 일상에서 쉬이 느낄 수 있어서 였는지
    그리운 침묵(pp.89~94)이란 제목의 글로 쓰신 내용이 참 가슴에 와 닿았고, 먹먹해졌다.
    요즘에도 말을 하지 않으면 마치 죽을 듯 하게 쏟아내는 말로 인한 부작용들이 얼마나 많은가?  침묵할 줄 아는 지혜도
    내 부족한 그릇에 담아 보겠노라 다짐을 하며
    그 내용의 마지막 부분을 옮기고자 한다.
     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점심시간 마침내 침묵의 계율이 풀렸다.  그 도 ㅇ안 아무도 침묵을 갑갑해하거나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건만 혀가 풀리자 식당 안은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꽃이었다.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꼇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꼇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p.94)
     
    당신께서는 촌철살인의 언어를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한편 한편엔 아직 녹슬지 않은 작가님 만의 언어로 촌철살인적 언어들로 우리
    일상에서 범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자연을 소홀히 함에 대해 일침을 놓으시는 듯한 어조의 글들과 단어를 찾아 볼 수 있기도 했다.
     
    작가님의 꼿꼿하셨을 말년을 감히 운운할 수 있는 그릇은 되지 못하겠으나. 다 알 순 없겠지만,
    그 분의 삶을 엿보며 내 그릇에 채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되어 행복했다.
  • 땅과 얘기하다. | ja**90924 | 2010.09.0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텃밭을 가꾸는 노작가의 어깨춤을 본다. 그녀의 시간이 달려온 애환과 고뇌와 그 사이에서 빛났던 것들.... 누구의 것이든 ...

    텃밭을 가꾸는 노작가의 어깨춤을 본다.

    그녀의 시간이 달려온 애환과 고뇌와 그 사이에서 빛났던 것들....

    누구의 것이든 글이 될만큼의 속내를 담고있는 삶이지만,

    그녀의 한 시절은 그랬고,

    그것을 읽어내고 생태를 살펴내는 그녀의 힘은 어디에서 온것이었는지 늘 궁금했다.

    웃을수있으면 그대로 웃었고 비판할 일이 있으면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속사포처럼 그랬던것 같은데....

    주변에 널려있는 모든 신변잡기가 예리한 작가의 초점에 맟춰지면 한권의 소설로 뚝딱,

    마녀처럼 그녀는 40대 초반부터 달려왔다.

    하지만 밭을 일구는 그녀의 호미잡은 손이 떨고있다.

    아마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렇지 가늘게 흐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챙 넓은 모자 그늘에 가리워진 그녀의 얼굴이 킬킬 거리고 있을는지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 노작가의 치마폭안에서 재미난 얘기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한편 한편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소품같지만 그렇게 짧은 얘기속에서 우리가 전해듣는 말은 엄청나다.

    그래서 그녀를 선택하지만 늘 실망하지 않는다.

    꽃들과 속삭이고 나무들과 숨을 쉬는 꾸미지않은 소탈함속에서

    삶의 연금술을 찾아헤매다 마침내 알아낸 현인의 미소를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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