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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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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쪽 | A5
ISBN-10 : 899010677X
ISBN-13 : 9788990106773
존 메이너드 케인스. 1 [반양장] 중고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 | 역자 고세훈 | 출판사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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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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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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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경제석학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대기!

이 책은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30여 년에 걸쳐 펴냈던 케인스 전기 3부작을 압축한 단행본이다. 격렬하고 무자비한 경제적 진실을 밝히는 데 헌신했던 한 인간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록이다. 케인스는 '마르크스가 몰락을 예언한 자본주의'를 벼랑에서 구출하는 이론을 제공했고,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 개입을 강조했다.

불황이 체계의 구조적 변혁을 요구하는 장기의 문제가 아니라 단기적으로 치유 가능한 문제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 금융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케인스에 주목한다. 본문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배상금 문제, 영국과 미국 간의 차관 협상 과정 등 케인스가 관여한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면밀히 살펴본다.

동시에 케인스의 저서와 논문, 강연글 그리고 그의 이론을 역사적 맥락과 정리한다. 핵심 내용, 쟁점과 학문적 공방, 시대적 배경, 역사적 함의 등을 소개한다. 케인스의 경제학적 이론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것을 둘러싼 논쟁 및 반응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케인스의 개성과 업적도 집중 조명하였다.

이 책의 독서 포인트!
케인스는 이성이 죽으면 괴물이 태어난다고,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사악함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고 경고했다. 본문에는 이처럼 그가 남긴 수많은 금언과 명언들이 담겨 있다. 자기성찰의 미덕을 상실한 무지막지한 비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제1권에서는 케인스 인생 초반부와 전성기 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소개

지은이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1939년 중국 만주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지저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부교수, 영국 워릭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를 거쳐 경제학과의 정치경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워릭 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이다. 영국 사민당 창당(1981) 멤버였으며, 사민당이 해체(1992)된 후에는 보수당 상원 의원, 문화위원회, 재정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상원 의원(종신 귀족)으로 서품되었으며, 1994년에는 영국학술원(British Academy)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코소보 폭격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당시 보수당 당수이던 윌리엄 헤이그에 의해 위원장직에서 해임됐고, 2001년에 보수당을 떠나 지금까지 무소속 상원 의원으로 남아 있다. 현재 ‘사회시장재단’(Social Market Foundation) 이사장, ‘세계연구센터’(Centre for Global Studies), ‘맨해튼 연구소’(Manhatten Institute)의 이사로 있다. 1983년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 제1권 『배반된 희망, 1883~1920』을 출간했고, 1992년에 나온 제2권 『구원자로서의 경제학자, 1920~1937』로 울프슨 역사상(Wolfson Prize for History)을, 그리고 2000년에 출판된 제3권 『영국을 위한 투쟁, 1937~1946』으로 더프 쿠퍼상(Duff Cooper Prize),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전기상(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 for Biography), 라이어널 겔버 국제관계학상(Lionel Gelber Priz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아서 로스 외교위원회의 국제관계상(Arthur Ross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Prize for International Relations)을 수상했다. 케인스 전기 외에도, 『정치인과 불황』, 『영국의 진보학파』, 『오스월드 모슬리 평전』, 『예종으로부터의 길: 공산주의 이후의 세계』를 저술했다. 현재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인디펜던트』, 『런던 타임스』, 『뉴 스테이츠맨』 등에 케인스주의, 세계화, 러시아 문제, 국제정치 등과 관련해 활발하게 기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20세기 영국사’와 ‘세계화와 국제 관계’에 관한 저서를 집필 중이다.

옮긴이 고세훈

연세대학교 경제학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석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국 노동당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공공행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정치와 복지국가 이론에 관심이 많으며, 저서로『영국 노동당사』(1999),『복지국가의 이해』(2000),『국가와 복지』(2003),『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2007)를 펴냈고, 역서로는『페이비언 사회주의』(2006)가 있다. 현재 “조지 오웰의 ‘급진적 비관주의’: 속죄 혹은 해원(解寃)의 방식으로서의 삶과 글쓰기”와 “영국 정치와 국가 복지 사상의 부침”을 집필 중이며, 영국 노동당 당원이자 사회 경제사가였던 리처드 헨리 토니의 일생에 대한 전기를 준비하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역자 서문
저자 서문

[제1권]

제1부 의무와 선함
01 가문
02 케임브리지 문명:시즈윅과 마셜
03 케임브리지에서의 성장
04 이튼
05 케임브리지 학부 시절
06 “나의 초기 신념들”
07 케임브리지와 런던
08 리튼, 덩컨, 메이너드

제2부 벼랑에서
09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경제적 관심
10 사생활
11 인디언 서머

제3부 순수와의 결별
12 전쟁에 적응하기
13 케인스와 제1차 세계대전
14 긴박했던 순간들
15 파리평화회의의 케인스
16 위기의 문명

제4부 전쟁의 경제적 귀결
17 1920년대의 케인스
18 평화로의 이행
19 확률과 선
20 러시아와 독일 문제
21 통화개혁

제5부 금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22 금 그리고 결혼
23 케인스의 중도
24 로이드조지와의 협력
25 저축의 수수께끼
26 불황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더 이상의 케인스 전기는 없다! “모든 위인이 훌륭한 전기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분명히 그런 행운을 얻었다.” [글래스고 헤럴드] “스키델스키의 놀랍도록 지적인 이 전기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를...

[출판사서평 더 보기]

더 이상의 케인스 전기는 없다!

“모든 위인이 훌륭한 전기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분명히 그런 행운을 얻었다.” [글래스고 헤럴드]

“스키델스키의 놀랍도록 지적인 이 전기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를 통털어 가장 훌륭한 전기가 될 것이다. 케인스는 그에 합당한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스 매거진]

“이전에 출간된 세 권짜리 케인스 전기만큼이나 훌륭한 이 한 권의 압축판은 케인스주의의 전설에 흥미를 느끼는 많은 비경제학도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하다.”[옵저버]

여기저기서 케인스의 부활을 외치는 소리로 시끄럽다. 요즘 들어 케인스는 특히 친화력 있는 경제학자로 부상했다. 대안을 찾는 좌파나 사고 후 수습을 원하는 우파나 모두가 되돌아보는 경제학자가 바로 케인스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는 무엇보다 독창적이고 재기 넘치는 경제학자였고, 제1,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재무부 관료로 일하면서 두 개의 국제기구(IMF와 IBRD)와 다수의 정책을 남긴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자 능력 있는 후원자였고, 재기발랄하고도 거침없는 비판으로 수많은 명사들을 오싹하게 하던 논쟁가이자 문필가였으며, 놀라운 속도로 일을 처리해 내는 출판인이자 편집자였고, 투기를 즐기다 때론 크게 잃기도 하고 크게 성공하기도 한 사업가였다. 또 그는 케임브리지 예술극장의 설립자이자 문명화의 이상을 위해 그림을 사들이던 미술 애호가였으며, 말년엔 돼지 키우기를 즐기던 농부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 누구보다 다양한 매력과 중요성을 지닌 인물이 로버트 스키델스키라는 걸출한 역사가를 만나면서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전기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30년에 걸쳐 완성한 스키델스키의 케인스 전기는 세밀한 자료 조사와 주변의 실존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위대한 천재의 삶을 오롯이 되살려 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그것의 내막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과 역사학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스키델스키는 복지국가로 상징되는 케인스 모델의 한계가 운위되던 시절에 케인스에 대한 전기를 집필하면서, 케인스 경제사상의 논리적 핵심뿐만 아니라 그것이 위치해 있는 역사적 맥락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구나 이 책은 아름다운 서사와 재치 있는 문체로 인해 비전공자들에게는 혼란의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한 천재의 삶이 전해주는 재미와 감동을, 경제학자들에게는 경제학을 넘어선 인식론과 철학, 인생관까지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

전 세계적으로 케인스가 이보다 더한 인기를 누렸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1946년 죽음을 맞이한 이 저명한 경제학자는 한때 반대파를 비난할 때 붙던 수식어였지만 또다시 찾아온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08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표지를 장식하는가 하면, 오바마 행정부에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까지도 케인스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케인스의 사상이 좌파에 의해서나 우파에 의해서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어 본 적은 없다. 복지정책을 들고 나온 사민주의 정당들도, 군산복합체와 SOC 투자를 주장하는 이들도 너도나도 케인스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진정한 케인스의 모습은 없다.
어쨌든 우리는 금융위기라는 터널 속을 지나고 있고, 현재 ‘구원의 빛’으로 ‘케인스’라는 이름을 걸어 놓은 상태다. 그리고 그는 이제 모든 경제적 고통을 일소할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전쟁과 대공황 속에서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대안을 제시했던 경제학자가 아닌가. 더구나 그는 단순한 이론가나 사상가가 아니라 재무부 관리로서 직접 회의장을 뛰어다니며 수많은 정책과 대안을 제시했던 열정적 행동가였다.
그러나 케인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만큼 그 변화의 폭도 크고 다양했다. 케인스 사후 그를 따르던 ‘케인스주의자’들은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계량경제학을 도입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비판하면서도 정부 정책의 확실성을 맹신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케인스가 진정으로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그를 정확한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라고 말하기 이전에 역사 속에서 실제 ‘케인스’를 만나보아야 하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자가 되건, 케인스를 비판하건 간에 우리는 그가 무엇을 위해 분투했고,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스키델스키의 케인스 전기보다 더 유용한 책은 없을 것이다.





● 어느 비범한 경제학자의 초상


‘자기 조정적 시장’의 신화 비판
케인스 경제학은 화폐와 시간이 개입되는 한, 경제주체로서의 인간 행위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인간의 예측은 극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시장은 본래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람들은 희망과 공포가 일 때마다 쉽사리 군중심리에 휩쓸려 행동한다. 이때 경제 행위자들의 선택 ―현금을 비축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소비(지출)할 것인지―은 고전경제학이 중시하는 희소의 조건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화폐의 기능이, 교역의 편의가 아니라,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서 부각되는 계기가 여기서 마련된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은 지출에 대한 두려움, 곧 화폐퇴장hoarding의 성향을 낳는다. 퇴장된 돈은 자본재의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의 가변성으로 인해, 투자로 연결되기보다는 투기적 목적을 위해 보유되며, 투자 행위 또한 합리적 계산보다는 “동물적 충동”에 따라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이 모두는 투자수요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이 점이야말로 고용과 산출이 요동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이처럼 가격 기제(물가, 주가, 이자율, 임금 등)가 유연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경제는 가격보다는 오히려 양(소득, 고용, 총수요, 정부 지출 등)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성stickiness을 띤 무엇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 생산과잉은 불가능하다”는 고전경제학의 대전제, 이른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오히려 산출과 고용은 공동체의 지출 양에 달려 있다.


불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
따라서 해결책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통해 유효소비를 증가시켜야 한다. 경기침체 시에는 통화정책이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가 위축되고 대규모의 인적?물적 유휴 자원들이저축보다 소비를
“아, 여보. 이 옷을 사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일종의 의무이기 때문이지요. 참, 요전날 우리가 저축을 할수록 가엾은 누군가가 직업을 잃게 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지요?”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이자율이 낮고 돈이 넘쳐도, 유동성 선호의 심리 때문에 구매력은 저하되고 투자는 활성화되지 않으며, 고용은 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율이라는 ‘가격’이 아니라 정부 지출의 ‘양’에 초점을 두는 재정 정책이 부각되는 계기가 여기에 있다. 퇴장에 대한 욕구를 미리 제어하기 위해 구매력은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으로 재분배되고 이자율은 될수록 낮게 책정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저축자들이 자본의 희소가치를 악용하여 퇴장에 대한 보상을 비정상적으로 증대시키려는 동기가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불로소득 생활자의 안락사”가 뒤따를 것이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갇혀 있고 자원의 불완전고용 정도가 심할수록,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적자재정의 창출은 민간투자를 구축crowding out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 자원의 상실분―실제로 그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을 몇 배로 메울 정도로 승수효과를 낳는다는 것이 케인스의 생각이었다.



케인스의 ‘중도’ 철학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케인스의 불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현재의 금융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와는 다른 역사적 지평 위에서, 그가 불황을 이겨내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 기반이 되었던 그의 철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경제학 이전에 철학이, 즉 목적의 철학이 수단의 철학보다 선행했다.
경제학자들은 보통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잘살게 만드는 것이 곧 선한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하지만 케인스는 경제성장은 그것이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향상시키는 한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개인주의를 옹호했지만 개인주의 철학이 전 경제체제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유 체제의 핵심 구조와 포기할 수도 있는 외루를 구분하면서 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후자의 일부를 집산주의에 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키델스키는 이를 케인스의 ‘재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유 체제의 핵심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현대자본주의의 ‘돈에 대한 집착’과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다.
“현대자본주의는 철저하게 불경하다. 내적 결속은 사라졌고, 공공 정신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재산 소유자들과 이윤 추구자들로 뒤엉킨 단순한 집괴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체제는 그저 웬만큼 성공해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자유방임체제는 그만큼 더 작동하기 어려우며”, “현대사회의 3대 악”은 폭리, 불확실한 기대, 실업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모두가 화폐가치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어떻게든 가외의 실적을 짜내 보려는 케인스의 집념에는 다음과 같은 윤리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그 체제가 모두를 위한 부의 생산이라는 약속을 신속히 이행할수록 인류가 ‘선한’ 삶, 즉 미래보다는 현재를, 수단보다는 목적을, 효용보다는 만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기가 그만큼 빨라질 것이라고 믿었으며 경제문제의 해결이야말로 문명의 필요조건(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이라고 생각했다.





현실 속의 경제학자
: 재무부 관료 케인스의 현실주의

이러한 케인스의 사상과 이론은 천재 지식인의 추상적 사유의 소산이 아니라 양차 대전과 전간기의 혼란(파시즘, 볼셰비즘, 대공황)에 대한 현실적 인식과 실천적 개입의 결과라는 점에서 현실성을 더한다.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화이트홀과 런던 금융권 사람이었으며 여러 관계를 통해 공공 정책에 관여했다. 그 과정에서 케인스는 유연한 실천적 지식인답게 자유주의적 신념과 자동적 진보 사상을 가지고 있던 자유주의자에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을 외치는 수정자본주의자로 변모했으며, 화폐수량설의 개량자에서 비판자로,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적 현상(가격 하락, 실업, 불황)으로, 시장에서 국가로 관심사를 이동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케인스의 이론과 정책 대안이 현실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은 한 번도 없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구나 케인스가 재무부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는 케인스가 지속적으로 국내 지향적이 되어 간 반면 과거에 국내 지향적이던 재무부는 점점 국제주의적이 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지식인의 의무는 불가피한 정치적 거짓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야 정치인들이 거짓을 말할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케인스는 구원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시장의 부분적 통제와 국가 개입주의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 당시와 같은 국가 개입주의를 실행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정책과 더불어 감세안을 병행하고 있다. 감세를 통해서는 소비가 진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케인스의 우려를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와 케인스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응임을 감안할 때 케인스주의의 반복이 신자유주의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실제로 케인스는 시장의 역할에 대한 맹신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당시 그 누구보다도 현실에 밀착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능수능란했던 경제학자였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케인스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보고, 그의 대안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통찰과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는 일이 아닐까? 자유방임 시장경제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식견과 무능한 정치가들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지식인의 모습,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유연한 현실주의자, 그리고 현실 체제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주의나 자유시장 모두를 넘어서) 개선 가능한 것으로 보았던, 그 기지와 혜안을 지닌 용감한 오디세우스로서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이다. 그가 정부의 역할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경제학자, 정책가, 그리고 시장에 대한 기대 속에 잔뜩 부풀어 있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그의 삶 자체에 있다.

● 케인스 전기를 알차게 읽는 다섯 가지 방법


하나. 살아 숨 쉬는 위인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케인스를 비롯한 당시 학계?문화계?정계의 유명 인사들이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버지니아 울프, 리튼 스트레이치, 덩컨 그랜트를 비롯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G. E. 무어와 같은 쟁쟁한 철학자들, 아서 피구, 조앤 로빈슨, 하이에크, 스라파 등 기라성 같은 경제학자들, 또 로이드조지, 체임벌린, 처칠, 애스퀴스, 루스벨트, 모겐소, 해리 화이트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풍미했던 수많은 위인들이 위인전기 속의 전형들로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점과 매력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슬퍼하며 살아서 숨 쉰다.

둘. 양차 대전과 전간기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살펴본다.
이 책의 두 번째 매력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현장들의 내막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며 올바른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옮겨가는 과정, 영국과 미국 간의 차관 협상 과정과 각국의 정책 결정 과정, 화이트 플랜과 케인스 플랜의 논쟁을 통해 브레턴우즈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셋. 편지, 일기, 비망록 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 방대한 분량의 전기가 지루하지 않고 사건과 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저자 스키델스키가 공식적인 기록뿐 아니라, 인물들의 편지?일기?저서 등을 바탕으로 사건의 전후를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심리와 생각들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케인스의 열정적인 젊은 시절의 연애사나 블룸즈버리 그룹 사람들과의 관계, 아내 리디아와의 감동적인 연애담들, 정치인들?경제학자들과 벌였던 첨예한 논쟁들은 사적인 편지를 통해 더욱 더 생생히 드러난다.





넷. 자본주의의 발흥지 영국에서 ‘경제학’이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본다.
18세기 중반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트 밀과 칼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고전학파 경제학의 거물들은 모두 영국에서 살았다. 영국에서 경제학이 태동했던 것은 자본주의가 최초로 꽃피웠던 곳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종교와 신앙이 사라진 자리에 ‘경제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과 학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다섯. 케인스의 주요 저서와 이론을 역사 속에 위치시켜 가며 읽는다.
이 책에서 우리는 케인스의 저서와 논문, 강연글, 그리고 그의 이론을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읽을 수 있다. 특히 그것이 탄생하게 된 배경,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케인스의 주장에 대한 갖가지 반응들이 모두 생생히 기록되어 있어 그 어떤 케인스 해설서보다도 생생하게 케인스의 이론과 사상을 접할 수 있다.

● 케인스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것들


1. 케인스는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해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흔히들 케인스가 정부의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해서 그가 정부의 역할을 전지전능한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케인스가 시장 체제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메커니즘 대신 권력과 명령의 경제학을 들여놓았다는 비난은 크게 과장된 것이다. 불확실성이 자유방임된 시장경제의 성과를 위축시킨다면, 그것은 정부 정책의 효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개인과 국가 행위의 적정한 영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추상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각 시대에 맞는 선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케인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가 개입이냐의 문제였다.
하지만 케인스의 제자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정책 입안자들이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실제로 그들은 경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권한이 사실상 무제한적이라는 신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케인스의 도구는 상속받았지만, 그 도구의 범위와 효율성의 한계에 대한 그의 철학은 물려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오만이 인과응보의 재앙을 만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2. 케인스는 경제학자가 경제의 작동을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수량적으로 관찰하고 예측 및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계량경제학의 방정식들에 실수(實數)를 채워 넣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신랄한 경고를 남겼다. “그것은 마치 사과가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사과의 동기, 땅에 떨어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의 여부, 그리고 땅이 사과가 떨어지기를 원하는지의 여부, 자신이 지구의 중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사과 쪽의 계산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스키델스키는 1936년 9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계량경제학대회를 기점으로 ??일반이론??은 “명확하고 계산 가능한 미래”를 가정하는 “수학적 모델”로 환원되기 시작했고, 케인스 경제학이 고전주의의 주류적 인식과 방법론에 포획되는 현상이 비롯됐다고 암시한다. 방법(론)이 내용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일반이론??의 태동 과정에 누구보다도 깊이 개입했으며 케인스가 가장 총애했던 두 제자 리처드 칸과 조앤 로빈슨은 옥스퍼드 대회 이후 케인스 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훗날 칸은 ??일반이론??이 “도식과 하찮은 대수”로 환원된 것은 커다란 비극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르지만, 그 점에 대해 가장 통탄해 마지않았던 사람은 케인스 자신이었다.


3. 케인스는 좌파 경제학자다?
케인스는 마르크스가 죽던 해인 1883년에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케인스와 마르크스를 상징적으로 연결시키곤 한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는 히틀러의 집권이 준 충격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로 들끓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전쟁?파시즘?실업의 치유책으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모든 도그마를 거부했던 블룸즈버리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스 역시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으며 그것이 자기 세대가 파멸시킨 기독교가 떠난 빈 공간에 침입해 들어온 영혼의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감염된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모든 것 중에 최악이며, 늙은 리카도가 저지른, 그리고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바로잡았을, 어리석은 오류 위에 세워진 것이지. 결국 더 이상 경제적 시련이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기본적으로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파괴하기보다는 수정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타당성이 입증되지 못한 사회주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의 병리현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자유방임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 모두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체제를 동일시하고 자본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혁명은 불황의 치유책이 아니라, 그것이 몰고 올,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가능한 결과일 뿐이었다. 그는 에드먼드 버크의 논거를 빌려 세 가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며 혁명에 반대했다. 첫째, 기존의 질서는 개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량한 것이 아니며, 둘째, 혁명이 가져다 줄 훗날의 체제가 현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없고, 셋째, 설사 새로운 체제가 전복된 그것에 비해 낫다는 것이 증명됐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혁명 과정에서 치르게 될 희생을 보상할 만한 것인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케인스는 급진주의자였지만, 결코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폐절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해야 할 대상이었다.
또한 그는 러시아 볼셰비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러시아는 “행정적으로 무능하고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드는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최악의 사례를 보여 준다…….” 그것은 “광적이고 불필요한 조급증을 지닌 악폐들의 가공할 만한 전형”이었다. “스탈린으로 하여금, 실험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화신이 되도록 하라.”
그는 소련 경제학자들 앞에서 집단주의적 기조를 따라 개조된 자유주의만이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 모두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는 내용의 연설문 “나는 자유주의자인가?”를 낭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초기 히트작 ??평화의 경제적 귀결??은 그를 “그가 결코 속한 적이 없던” 좌파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절충’이 아닌) 중도의 입장에서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케인스 혁명을 일구어 내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노동당에게는 실행 가능한 통치 철학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한때는 자유당의 진정한 회복과 노동당과의 연립정부를 염원했으며, 이런 연대를 위한 행동 강령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지적 에너지를 쏟아붓기도 했다.
그는 좌파/우파로 정의하기보다는 현실주의자로 보는 편이 옳은 인물이었다.


4.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는 주식 투자에 성공했을까?
블룸즈버리 친구들과 달리 케인스에게는 상속받은 자산이 없었으며, 교류 범위가 넓어진 생활 방식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케인스의 소득 가운데 1/3은 저술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그 외에 오스월드 포크와 주식 중계 회사를 차려 돈을 벌기도 했다. 또 그는 환투기를 하기도 했는데, 스키델스키는 “투기는 그의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경제학은 그의 투기를 부추겼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한다. 사실 1930년대 그의 투자 철학은 경제 이론에 맞춰 변화했다. 그는 부란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문명화된 생활을 위해 소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그대로 실천했는데 환투기로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그림 구입을 위해 따로 책정해 두기도 했다.
또 그 역시 투기 열풍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확실성에 도박을 건다고 느꼈다. 그는 따든 잃든 고수익이 걸린 도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한때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때 그가 진 부채는 2만 파운드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케임브리지 재무관으로서 그 재산을 열 배나 불려 주기도 했으며, 많은 유산을 남기는 등 결국은 성공한 투자가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5. 케인스는 동성애자였다?
케인스는 ‘활발한’ 동성애자였다. 그가 속했던 블룸즈버리 그룹이 오히려 이성애를 기이한 것으로, 이성과의 결혼을 배반으로 간주할 정도였으니, 그의 동성애적 편력을 특별한 기행으로 볼 필요는 없다. 스키델스키는 이러한 동성애의 만연을 당시 많은 젊은 남성들이 여성이 배제된 환경에서 청년기와 성인기 대부분을 보낸 데서 찾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케인스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남성들은 젊은 남성에 대한 사랑이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윤리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훗날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그의 성적 취향을 그의 이론적 성취를 폄하하거나 그의 이론적 ‘탈선’을 조롱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슘페터는 케인스가 ‘단기’에 치중한 것은 자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케인스 경제학의 숭배자들은 일종의 방어 행위로 그의 사상을 삶에서 분리시키기도 했다.
물론 스키델스키는 이 책에서 그의 동성애 편력과 이후 리디아와의 결혼 생활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케인스의 생애를 지배했던 두 연인인 덩컨과 리디아가 모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는다. 스키델스키는, 이들이 신선하고 의외의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었으며 케인스가 찾던 대상은 자신보다 열등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지성을 보완하거나 균형을 잡아 줄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인습을 벗어난 케인스의 사고와 상상력과 연결 짓고 있다. 스키델스키는 리디아와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도박꾼이었고, 리디아는 그에게 가장 큰 도박이었다.”


6. 케인스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엘리트주의자였다?
스키델스키는 케인스 전기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류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했던 모든 주류 집단 내에서도 엘리트였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저 높은 곳에서, 영국인들과 전 세계를 내려다보며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 “첫 인상으로서는 드물게 못 생긴 얼굴이었다. 입술은 돌출해서 잘생긴 코를 위로 밀어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약간 유인원을 닮은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아무리 영리할지라도 외모에 자신이 없고 운동에 재질이 없다는 것은 고민거리였다. 특히 그는 언론인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자신이 없었고, 자신의 재능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감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 메이너드가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는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언제나 자랑하고 싶어 했다. 남자들이 결혼하는 것은 많은 경우 아내에게 으스대기 위해서라며 ‘내가 의아해 하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 칭찬해 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는 까다로운 블룸즈버리 친구들이나 케임브리지 친구들로부터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리디아는 그런 점에서 리디아는 케인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리디아는 메이너드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칭찬들로 메이너드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으며, 이를 통해 메이너드는 이런 의구심들을 일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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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메이너드 케인스 | wa**er79 | 2014.10.0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한국어판 서문 케인스와 아시아 그리고 한국   1.  존 메이너드 케인...

     

     

    한국어판 서문

    케인스와 아시아 그리고 한국

     

    1.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

     

    케인스는 W. S. 제본스가 아시아를 "귀금속의 거대한 저장소 내지 창고"로 표현한 것에 대해 매우 좋은 묘사라고 생각했다. 제본스는 동방으로 귀금속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갔던 것은 "동양의 값싼 제품들"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서, 그 결과"이곳에 그냥 있었다면 아무 쓸모도 없었을 수백만 개의 금괴가 우리의 손을 떠났다"라고 말했다. (17P)  

    2.

    케인스주의는 본질적으로 단기고용이론이다.

    2009년 1월 12일 자 <코리아 타임스> 사설은 "케인스가 환생했다"고 쓰고 있다.  

    3.

    4.

    케인스는 경제성장은 그것이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향상시키는 한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명이란 몇 안 되는 소수가 갖고 있는 개성과 의지에 의해 건립되며, 교묘하게 전파되고 교활하게 보존되는 규칙과 관습들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빈약하고 불안정한 겉껍질에 불과하다"는 점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009년 2월 

    로버트 스키델스키 (21P)

     

    역자 서문

    "케인스 혁명은 일어나 본 적이 없다" 

    4.

     국내 정치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케인스가 조급한 세계화를 반대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왜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결합한 자유무역은 평화를 유지하기보다 전쟁을 도발하기 쉬운지, 왜 국제경제에서 채권국들이 청산의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지, 왜 국가의 민주화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서 떠안아야 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케인스의 깊은 사색과 통찰이 담겨 있다. 그는 모든 정부는 국내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국제금융의 문제는 일단 국내적 조정장치가 갖춰진 이후에 비로소 거론되어야 하며, 전자가 후자를 압박하거나 강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생존 수단이 정치적 국겨을 넘나들며 거래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국민의 운명을 강대국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다. 자본의 흐름을 규제해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경직됐고 경제는 점성적이지만, 통상의 정보들은 아직도 가격을 매개로 한 시장 기능이 유연하다는 가정 하에 행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27p)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체제가 안고 있는 이런 '근본적인' 위험 외에도, 정말 위험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케인스주의를 오도된 방법으로 정책화한느 것이며, 둘째는 자본주의가 방치될 때 초래될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다. 우선 첫째 문제에 주목해 보자. 전자의 오도된 방법이란 무엇보다도 시장 체제에 내재된 근본적 불확실성을 온갖 방법론적 기교를 차용해 계산 가능한 확률로 치환하고 그것에 확실성의 외양 혹은 확실성과 공일한 지위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불황을 경기순환에 가두려는 현실에서 유리된 주장을 하려니 논증은 점차 추상화되고, 정교한 기법들이 등장하지만, 그럴수록 적실성은 더욱 상실된다. 케인스는 경제학 연구에 과도한 도식론 formalism을 들여오는 것을 반대했다. 특히 경제학에 수학적 기법을 차용하는 데 대한 케인스의 불신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스키델스키는 그러한 불신이 "사회적 삶의 복잡성과 성찰적 성격에 대한 그의 이해가 점차 깊어진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스키델스키는 1936년 9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계량경제학대회를 기점으로 <일반이론>은 "명확하고 계산 가능한 미래"를 가정하는 "수학적 모델"로 환원되기 시작했고, 케인스 경제학이 고전주의의 주류적 인식과 방법론에 포획된느 현상이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암시한다. 방법(론)이 내용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일반이론>의 태동 과정에 누구보다도 깊이 개입했으며 케인스가 총애했던 두 제자 리처드 칸과 조앤 로빈슨은 옥스퍼드 대회 이후 케인스 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훗날 칸은 <일반이론>이 "도식적 하찮은 대수"로 환원된 것은 커다란 비극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르지만, 그 점에 대해 가장 통탄해 마지않았던 사람은 케인스 자신이었다. 특히 계량경제학의 방정식들에 실수實數를 채워 넣은 일의 위험성에 대한 그의 경고는 실랄하다. "그것은 마치 사고가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사과의 동기, 땅에 떨어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의 여부, 그리고 땅이 사과가 떨어지기를 원하는지의 여부, 자신이 지구의 중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사과 쪽의 계산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위기는 케인스의 통찰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키거니와, 이런 '탈선'의 극적인 표출이 1980년대 자본자유화 이후 갈수록 정교해진 금융 기법들, 월가가 수많은 수학 전공자들을 고용해서 만들었다는 수십 종의 기상천외한 파생 상품들일 것이다. 투자자는 물론이고 전문가들조차 파생 상품의 전모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는가. 영국의 경제 평론가 윌 허튼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케인스 혁명은 결코 일어나 본 적이 없다."(28-29p)


    ​케인스가 경계하고 우려했던 또 다른 위험은 자본주의 체제를 그냥 방치할 때 인류가 겪게 될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었다. 우선 케인스에게 불황은 체제의 구조적 변혁을 요구하는 장기의 문제가 아니라 단기적을 ㅗ치유 가능한 문제였다. 그는, 불황은 그 자체가 치유 과정인, 따라서 인류가 충분한 대가를 치루고나면 세월과 더불어 스스로 소진될 신의 형벌이라는, 도덕주의적 진단을 거부했다. 그맇사여 그는 말했다. "단순히 '장기'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진단해 주는 적절한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경제학자가 장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폭풍우가 지나가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평온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너무나 안이하고 사태 해결에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그는 불황을 그냥 내러려두면, 예컨대 볼셰비즘이나 파시즘으로의 길을 열어 주는, 혁명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잇다고 보았거니와, 그에게는 "계약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혁명의 진정한 잉태자들"이었다.

     당연히 케인스는 구조 변혁을 내세우는 혁명적 처방을 누구보다도 불신했다. 혁명은 불황의 치유책이 아니라, 그것이 몰고 올,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가능한 결과일 뿐이다. 그는 에드먼드 버크의 논거를 빌려 세 가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며 혁명에 반대햇다. 첫째, 기존의 질서는 개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량한 것이 아니며, 둘째, 혁명이 가져다 줄 훗날의 체제가 현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없고, 셋째, 설사 새로운 체제가 전복된 그것에 비해 낫다는 것이 증명됐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혁명 과정에서 치르게 될 희생을 보상할 만한 것인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케인스는 급진주의자였지만, 결코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폐절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었다. 그의 심적 정향은 영국 구토리주의 Old Toryism의 오랜 전통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케인스느 여전히 신념과 믿음이 필요한 세대에 속했다. 말년에 이를수록 그는 종교적 신념이 떠난 자리에 그것을 대체할 아무런 윤리적 '보호 체계'없이 우왕좌왕하는 -때로는 마르크스주의로, 때로는 프로이트로, 심지어는 파시즘으로 -젊은 세대를 말할 수 없이 딱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기독교적 신앙의 궁극적 쇠락을 재촉하며 통쾌해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한 연민을 드러냈다. 케인스는 T.S. 엘리엇에게 "기독교 없이는 도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밣혀진다면, 나는 기독교를 부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햇다. 버지니아 울프를 향해서는 "당신과 나의 세대가 ​우리 선조들의 종교에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지, 이제야 느끼기 시작했어. 기독교 없이 성장한 젊은이들은 삼의 참맛을 모를거야. 그들은 발정 난 개처럼 피상적이지.  … 우리는 기독교를 파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준 이점들은 남아 있잖아"라며 자신의 착잡한 심경를 피력했다. 이런 점에서 케인스는 사회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케인스는 자신이 우익 성향의 노동당 사람들보다는 좌파적인 보수당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더 호감이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는 노동계급을 이상화하기를 거부했다. 그의 사적 생활의 중추였던 불룸즈버리 그룹은 자본주의적 문화 못지않게 프로레타리아 문화에도 적대적이었는데, 그들에게 이 둘 모두는 산업사회가 낳은 병리 현상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이비어들이 그랬듯이 이들의 외침은 주로 중산계급의 계몽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에세 "인생에서 선한 것들은 중간계급에게서 나왔다." 게인스는 "기득권층의 권력은, 사상의 점진적 약화와 비교해 보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낙관하면서, 자신의 방식이 승리할 것을 점쳤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번영이 누적적이라면, 계급 권력도 누적적임을 케인스는 보지 못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그의 이러한 낙관이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30-31P)

     5.

    이 책의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 "전간 시절의 묘비명"-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전간 시절에 대한 예언서였지만 - 이었다고 선언한다. 그 책의 마지막 단락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감히 예언컨대, 보복은 결코 머뭇거리며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32P)

     

    케인스는 생전에 경제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으며, 학위라고는 수학 학사 학위가 전부였다.(33P)

     

    버틀런드 러셀은 케인스의 지성이 "내가 일찍이 알았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예리하고 명징한 것이었다. 내가 그와 논쟁을 할 때면, 나는 모든 걸 걸어야 했고, 논쟁이 끝날 무렵에는 거의 언제나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스키델스키에게 그는 "작은 언덕들 위를 굽어보는 외로운 산"이었다. 그리고 거인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그는 외로웠다. 그의 사상과 활동의 분주함에는 홀로 우뚝한 자의 오만이 배이 있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아마 그의 고독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죽기 하루 전, 마지막 산책에서 그가 부인 리디아에게 햇던 말은 이랬다. "걱정하지 마시오, 언제나 신의 정의가 있다오."(33P)

     

    현재 영국 워릭 대학 정치경재학 명예교수인 스키델스키는 자신을 경제학적 교양을 지닌 역사가라고 말한다.(35P)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

     

     서문

    1.

    <정치인과 불황>은 1929~1931년 대공황에 대한 영국 노동당 정부의 대응을 서술한 것으로, 나의 옥스퍼드 대학 박사 학위 논문을 줄인  것이었다. 그 책이 답하려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노동당 정부는, 각료였던 Oswald Mosley 와 경제 자문관의 한 사람이었던 케인스가 대량 실업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한 '뉴딜'을 일축했는가? 나는 노동당 정부가 기피했던 이 두 경제적 급진주의자들에 관한 전기 두 권이 추가되면 이 3부작은 쉽사리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었다.(37p)

     

    이 위업이 터무니없이 늦어진 데 대한 몇 가지 변명거리는 있다.

     

    제프리의 신뢰를 얻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두 가지 주된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 첫째, 자신의 형을 생각하자면 너무 많은 가족들의 상처들을 다시 헤집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프리가 외과 의사와 장서가로서 획득한 그 모든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메이너드와 관련해서는 치유할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릭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자신의 부모가 메이너드를 편애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잠재돼 있었다.(40p)

     

     또 다른 문제는 케인스의 동성애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 논문들은 리처드 칸이 보관하고 있었다. 칸은 케인스의 "총애하는 제자"였는데, 그가 <일반이론>General Theory을 쓸 때 함께했었고, 킹스 칼리지에서 살고 있었으며, 제프리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매우 고령인데다 제프리와는 달리 심한 청각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42p)

     

    경제학자 Ian Little과 용감히 암에 맞서 싸우다 죽은 그의 부인 Dobs 도 그 마을의 경계 바로 바깥쪽에 살았다. 니키 칼도어의 휴가 별장도 그곳에 있었다. 이 두 경제학자는, 심지어는 경제이론에서도 상극이었다. 실제로 내가 경제학이란 후기 기독신학의 한 형태이며(경제학에서의 논쟁이 과학이 아니라 현대 신학에서의 독트린 싸움과 같은 것이 되었다는 뜻-옮긴이) 경제학자는 피차 적대하는 종교적 파벌을 이끄는 성직자라는 통찰을 얻은 것도 Lady Jane Heaton의 집에서 점심을 들며 이들이 벌엿던 논쟁을 통해서였다. (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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