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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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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쪽 | 양장
ISBN-10 : 1188768158
ISBN-13 : 9791188768158
나의 조국 [양장] 중고
저자 츠노다 후사코 | 역자 우규일 | 출판사 북스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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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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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만족합니다. 책 잘 보겠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os120*** 2018.03.07
12 만족합니다. 책 잘 보겠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os120***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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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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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작가 츠노다 후사코의 작품 『나의 조국(わが祖?)』을 우규일(現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이 번역하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육종학자의 길을 걸어온 우장춘 박사는 52세의 나이에 돌연히 처자를 일본에 두고 한국으로 왔다. 일본의 가족과 지인들이 반대하는 한국행을 강행한 우장춘,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던 우장춘은 왜 한국에 와서 10여년간 채소 등을 연구한 것일까?

저자소개

저자 : 츠노다 후사코
1914년 일본 도쿄 출생
후쿠오카 여학교(福岡女?校) 졸업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소르본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의 전근과 함께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10년 동안 체재한 후 1960년 『문예춘추』지에 집필을 시작한 이래 정밀한 취재와 균형 잡힌 역사 감각으로 군인의 전기를 많이 저술하였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진상을 파헤친 논픽션 작품 『명성황후(최후의 새벽)』이 번역 출판되어 대한민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역자 : 우규일
일본 나가노현 우에다시(上田市)에서 중3 때 귀국,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주)한국론타이 대표이사/회장, (사)한·중 친선협회 고문, (사)제주서복(徐福)문화국제교류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徐福을 중심으로 한 한·중·일 고대사 연구를 하고 있으며, 『우규일 강론집, 徐福』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한국 독자들을 위한 저자 서문

프롤로그

1. 나라 잃은 국민의 슬픔
 최초의 한일 국제결혼
 우장춘 전설
 농학의 길
 재일유학생의 조선독립선언
 아내 고하루와의 만남
 박사학위 논문 『종(種)의 합성』
 나라 잃은 국민의 슬픔
 전시하의 농장장
 한반도의 분단과 우 박사의 귀국 운동

2. 한국 농업의 선구자
 한국전쟁과 귀국
 제주도의 귤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
 씨 없는 수박의 경위
 아내의 고달픔
 조국애의 원천
 수원의 묘 앞에서

에필로그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한국인이라면 ‘우장춘 박사’의 이름 석 자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씨 없는 수박’, ‘한국 근대화 농업의 아버지’ 등등의 별칭처럼 우장춘 박사가 오늘날 한국 농업, 특히 육종학에서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일본의 학자가 처...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한국인이라면 ‘우장춘 박사’의 이름 석 자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씨 없는 수박’, ‘한국 근대화 농업의 아버지’ 등등의 별칭처럼 우장춘 박사가 오늘날 한국 농업, 특히 육종학에서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일본의 학자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우장춘 박사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우 박사는 육종학이라는 학문을 설명하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처음 만들어 언론에 소개하였다.

이 책은 일본 작가 츠노다 후사코의 작품 『나의 조국(わが祖?)』을 우규일(現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이 번역하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육종학자의 길을 걸어온 우장춘 박사는 52세의 나이에 돌연히 처자를 일본에 두고 한국으로 왔다. 일본의 가족과 지인들이 반대하는 한국행을 강행한 우장춘,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던 우장춘은 왜 한국에 와서 10여년간 채소 등을 연구한 것일까?

작가는 우장춘의 한국행에 대한 미스테리를 풀고자 추리하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녀는 명성황후 암살에 관련된 아버지 우범선의 죄를 아들인 우장춘이 대신 씻고자 한국으로 온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수년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우장춘 박사의 삶을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었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된 우장춘 박사에 대한 책은 거의 다 츠노다 후사코의 기록에 빚지고 있다.

8·15 광복 후 우리나라 농업은 종자 대부분을 일본의 종자회사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 농업은 더는 일본의 종자회사들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종자를 사 올만한 외환도 비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종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신생 독립국 한국의 농업은 당장이라도 파탄이 날 상황이었다. 농업이 파탄 난다는 것은 그대로 굶주림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모금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초대 농림부 장관이던 죽산 조봉암이 나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우장춘 박사의 귀국 문제를 정식으로 건의하게 된다.

1950년 3월 8일 드디어 일본에서 우장춘 박사가 귀국하였다. 우장춘은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을 위해서 일본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우장춘 박사는 불철주야 아버지 나라의 농업 지도에 온갖 힘을 기울이다가 병들어 쓰러졌다. 과로로 병원에 입원한 우 박사에게 정부가 훈장을 수여하자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며 고마워했다는 일화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아버지의 나라 한국과 어머니의 나라 일본, 우장춘 박사는 어느 쪽을 조국으로 여겼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우장춘 박사의 삶에 가슴 뜨거운 감동과 더불어 무한한 고마움이 샘솟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대관령 평창의 고랭지 배추, 무 그리고 제주도 감귤농장 등은 모두 우장춘 박사가 품종을 개량했고, 농업을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맛 좋은 배추, 무 그리고 감귤 등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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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예전에 어디선가 아버지의 친일에 대한 속죄로 더 연구에 몰두하여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어했다는 걸 본 적이 있어서우장춘...

    예전에 어디선가 아버지의 친일에 대한 속죄로 더 연구에 몰두하여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어했다는 걸 본 적이 있어서

    우장춘 박사님의 일대기가 더욱 궁금하였는데

    한국어를 하나도 못 했다는 것과 씨 없는 수박의 개발자가 아니였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참 많구나 싶은 것이,

    이렇게 유명한 육종학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데 얼마나 모르고

    잘못 알고 살고 있는 것이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은 일본의학자 기하라 박사이고,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재배하여 성공시킨 사람이라고 한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52세의 나이에 돌연히 처자를 일본에 두고

    한국으로 와서 '한국 근대화 농업의 아버지'가 되었다.

    육종학이라는 학문을 설명하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처음 만들어 언론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가 씨 없는 수박의 개발자로 둔갑한 것이다.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을 위해서 일본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었고,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위해서 불철주야 최선을 다해 일하다 병들어 쓰러졌다.

    지금도 재일한국인은 일류 대학을 졸업해도 일본의 일류 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어렵고

    출세에도 한계가 있다는데 그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라는 생각에 어머니의 나라에서도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모두 환영받지 못했지만, 양쪽에게 모두 고맙다고 육종학자로서

    최선을 다한 그에게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모친에게도.

    "민들레는 아무리 짓밟혀도 끝내는 꽃을 피운다. 네게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거기에 굴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그에게 민들레의 교훈을 깊이 새겨주셨으니 말이다.

  • 우장춘 박사 일대기_ 나의 조국 : lalilu 책의 표지는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라는 내용과 함께 ‘나의...

    우장춘 박사 일대기_ 나의 조국 : lalilu


    책의 표지는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라는 내용과 함께 ‘나의 조국’이라는 책의 제목이 커다랗게 넣어져 있다. 그리고 “길가에 민들레는 밟혀도 꽃을 피운다”는 문장을 넣는다. 우장춘 박사는 우리에게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원리를 제공했지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일본인 저자는 서문에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전해준다. 그래서 우 박사는 한국과 일본의 두 가지 면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동안 우 박사의 가족들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 이 책의 이미지를 그려보았고 일본인이 바라본 우장춘 박사라는 새로운 모습을 우리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1959년 8월 죽음에 임박한 우장춘 박사에게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고 눈을 감기 전 그는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사 속 시대의 아들로 우장춘 박사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부정적인 면만 부각한다면 역사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모습을 긍정적인 모습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면 그에게 우리는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것을 나누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책을 보며 지금도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받게 되는 차별과 집단적 따돌림(왕따)가 심각한데 그 옛날 우장춘 박사가 어렸을 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학대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가 가슴에 한을 품고 복수를 꿈꾸기에 충분했을 법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마음에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훌륭하신 아버지의 아들로 나라에 큰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한 사람이 품은 뜻과 열정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왜 한국인이 우장춘 박사를 기억하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 이 책을 보면서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최근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간의 관계가 많이 안 좋아졌다. 이것이 장기화 될 때 양국이 입을 피해가 상당히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장춘 박사의 일대기를 보면서 한국과 일본이 과연 떨어질 수 있는 관계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풀지 못한 과거사의 끔찍한 사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은 서로 상생을 위한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본 시간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지만 우장춘 박사의 삶을 통해 깨달은 것처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좋은 점은 칭찬하며 잘못된 점을 사죄하며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다. 이 책을 특별히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 이 책은 우장춘 박사에 대한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우장춘 박사가 태어나기 전 부친인 우범석이 한국에서 있었던 역사적 ...

    이 책은 우장춘 박사에 대한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우장춘 박사가 태어나기 전 부친인 우범석이 한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과 당시 국제관계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한일 관계에서 대해서도 꼼꼼히 분석한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한-일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한 이 책은 물론 <민비 암살>, <슬픔의 섬 사할린> 등을 펴낸 저명한 작가였는데 2010 타계하였습니다. 이 책도 1990년에 쓴 사실 30여 년 된 책입니다. 그렇지만 전혀 오래됐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 ‘신선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우장춘 박사는 단순히 씨없는 수박 등을 발명한 세계적인 과학자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조선을 개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1895년(고종 32) 10월 8일 훈련대 해산 다음날인 을미사변 때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 시해에 방조 내지 가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명성황후의 시신에 석유를 부어 태우는 마지막 처리 과정에도 가담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는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망명해있던 명성황후의 측근인 고영근에 의해 1903년 12월에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조선의 대역죄인이었고 다섯 살 때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던 우장춘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아비없는 혼혈 조선인으로서 극심한 빈곤과 주위의 학대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학업에 열중하여 육종학자가 됩니다. 그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초청을 받아 1950년 귀국하여, 사망하던 1959년까지 만 9년 5개월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중앙원예기술원장·원예시험장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연구 업적은 1926년「종자(種子)로써 감별할 수 있는 나팔꽃 품종의 특성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모두 19편의 논문이 있는데, 초기에는 나팔꽃이나 피튜니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겹꽃이 피는 피튜니아 계통을 육성해 냈다고 합니다. 귀국한 뒤로는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내에서 완전히 자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 육종학도와 종묘기술자를 양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국내 업적으로 큰 것을 들면,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 해결 외에 무균종서(無菌種薯)의 생산으로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959년 8월 11일 사망하였고 국민의 애도 속에 사회장으로 치뤄졌습니다. 정부는 부산시문화상에 이어 두 번째의 문화포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년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우장춘 박사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냅니다. 이 책을 끌고 가고 있는 큰 줄기는 우장춘의 한국행에 대한 미스테리인데, 저자는 명성황후 암살에 관련된 아버지 우범선의 죄를 아들인 우장춘이 대신 씻고자 한국으로 온 것은 아닐까 추측합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물론 개인과 국가의 관계와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 [도서후기] '...

    [도서후기] '우장춘 박사 일대기 ; 나의 조국'

    -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 & 길가에 민들레는 밟혀도 꽃을 피운다 -

     

     

     

    나의 조국 우장춘01.jpg

     

     

    저자 : 츠노다 후사코(角田房子)

    역자 : 우규일

    펴낸곳 : 북스타

    발행일 : 2019년 6월 28일 초판1쇄

    도서가 : 20,000원

     

     

    점점 무더워지는 요즘 시원한 것들 무척 생각나게 하는 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름철 시원한 것으로는 빙수만 한게 없겠지만 수박화채도 참 좋죠. 빨간 속과 함께 검은 수박씨와 얼음이 동동 떠있는 수박화재. 생각만 해도 시원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수박화채에 씨가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편하게 먹을 수 있겠죠?ㅎㅎ 씨없는 수박하면 떠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우장춘 박사죠. 이 분은 70~80년대 출간된 아동용 위인전집이라면 거의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매우 추앙받는 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요즘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대들을 보면 이 분이 누군지 아는 아이 그리 많지 않은거 같더군요..

     

    이번 도서후기는 그러한 우장춘에 대해 일본인 여성이 저술한 <우장춘 박사 일대기 ; 나의 조국>입니다. '나의 조국'이란 말에 책내용 방향이 어떠한지 살짝 짐작됐지만 일본인의 시각에서 어떻게 표현했을런지가 궁금했지요. 읽어보니 재일 조선인 차별에 대해 냉혹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쓰였더란 느낌이 들던데 그 느낌, 참 오래가더랍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제국주의를 꿈꾸는 소위 극우파라 불리는 인간들만 있는게 아니다란 걸 알게도 해주었구요.

     

    저자는 1914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2010년 사망한 여성분으로 당시로는 보기 드문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진학하신 분입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는데요. 종전 후에 남편의 전근으로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많은 군인들의 전기를 저술하였다는군요. 저자의 작품 중 눈에 띠는 건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을 소재로 한 논픽션이 있다는 것인데요. '명성황후 ; 최후의 새벽(원제 : 閔妃暗殺)'이란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된 책이라 합니다. 우장춘 박사 일대기를 읽어 보니 수많은 인터뷰와 남아 있는 기록들을 고증하여 당시 상황을 추정한 내용들이 많던데 이 책도 그러할 것 같아 보이네요. 기회되면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책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저자 서문>으로 시작하여 <프롤로그>, <1. 나라 잃은 국민의 슬픔>, <2. 한국 농업의 선구자>, <프롤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부는 우박사의 일본에서 삶과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의 삶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연대순으로 집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재일한국인의 고단함과 슬픔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표현한 내용이 좀 낯설게 느껴졌어요.

     

    책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저자 서문>으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당시 일본에 살고 있는 우장춘 박사의 다섯 자녀와 손자들, 학계 후배와 지인들,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제자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농학자들을 만나 우박사에 대한 회고담을 전해 들었다고 하면서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우박사가 아니란 점을 책 본문에 상세히 밝혔다고 합니다. 최초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이는 일본 교토대의 기하라 히토시로 1943년에 처음 만들어졌다네요. 하지만 기하라 히토시도 우박사의 '종의 합성'의 이론을 바탕으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고 했답니다.

     

    흥미로운 내용으로 저자는 우장춘 박사에 대한 전설이라며 '민들레의 교훈'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책의 여러군데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수록된 내용인데요. 소년 시절 우장춘이 차별과 학대를 받고 길거리에서 울고 있을 때 모친이 민들레꽃을 가리키며 한 말로 우장춘의 제자인 홍영표의 수필에도 수록된 내용이랍니다. 내용은 "민들레는 아무리 짓밟혀도 끝내는 꽃을 피운다. 네게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거기에 굴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는게 그것이죠. 저자가 우범선의 차남이자 우박사의 동생으로부터 확인한 바로는 모친은 공부해라, 훌륭한 인물이 되라, 또는 아버지에 관해서, 조선을 위해 봉사하란 그런 말씀 전혀 하신 적이 없었기에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답니다. 의지가 강하신 분이었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법이 없었던 분이었다는 것이죠하지만 제자였던 홍영표의 기억에는 우박사께서 연구생들에게 격려와 충고를 하면서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장춘의 모친은 두 아들에게 다른 교육방침으로 키운게 아닌가 추측하더군요. 조선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생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장남은 아버지의 나라에 헌신하는 인간이 되도록, 아버지가 작고한 뒤 태어나 호적상 순수한 일본인인 차남은 장치 일본 사회에서 훌륭하게 살아가도록 말이죠.. 그럴 수도 있을까 싶었습니다.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우장춘 박사는 1935년 발표한 '종의 합성'이란 논문을 통해 세계 최초로 자연종을 합성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다는걸 증명해 낸 세계적인 유전육종학자로 명성을 얻었던 분입니다. 1950년 한국에 귀국해서는 식량 증산을 위해 종자 개발 등 많은 기여를 했었죠. 우 박사의 부친은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과 함께 왕궁에 들어가 민비 시해의 공범자라 알려진 훈련대장 우범선입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일본으로 가 동경에서 거주하다가 사카이 나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으로 올 때까지 일본에서 오십여년을 살았습니다. 우장춘이 한국에 건너갈 때 쯤 결혼한 차녀 마사코 기억에는 아버지가 일본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는군요. 그러면서도 '차별은 있었다'라고도 말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는데, 저자는 우장춘이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승진에 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내면에는 많은 고뇌가 있었을거라 유추가 되지요.

     

    우박사는 구레중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농학실과에 입학, 1919년 졸업했답니다. 그런데 농학실과는 농학부 내에 있지만 졸업 후에도 농학부에 진학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는 전문학교라는데요. 그렇지만 박사 논문을 동경제국대학 농학부에서 취득하였기에 우장춘 박사의 학력을 표시하는데 사실과 다른 경우가 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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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장춘 박사 역시 1924년 일본인 여성 고하루를 아내로 맞이하여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사범학교에서 수재였다 전해지는 고하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데요.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고 남편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일 신경쓰지 않게 잘 내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을 때 현지처 같은 분이 있었답니다. 일본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며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혼 경력 있는 여성이었다는데 우박사 사후에도 우박사 묘지가 있는 수원에 사셨다는군요. 흐흠.. 큰일을 이루신 분이 여복도 많았네요.

     

    우장춘과 고하루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고하루의 집안에서는 극렬하게 결혼을 반대하였다는데요. 이로 인해 고하루는 시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생가와 29년이나 의절했다네요. 혼인신고를 하는데 있어서도 복잡하기 그지 없었답니다. 호적등본을 보면 고하루가 스나가 고헤이 부부의 양녀로 들어간 뒤에 우장춘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답니다.

     

    해방 이후 한국에는 식량부족이 극심해집니다. 일제의 식민지 강탈로 종자는 물론 비료, 농약도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네요. 이러한 농촌의 사정으로 인해 육종학자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귀국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었고, 1950년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하게 되었답니다. 일가족을 일본에 남겨두고 홀로 귀국하였는데 그것은 막내의 교육문제와 딸(마사코)의 결혼문제가 있었을거라고 저자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귀국후 우박사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에 취임했는데 한국어를 잘 몰랐기에 일본어로만 소통했었고 죽을 때까지 일본어만 사용했답니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에 취임한 우장춘 박사는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와 배추의 종자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석달 보름뒤 6·25전쟁이 발발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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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위치한 연구소이지만 피난민 유입으로 인한 인구 급증과 주거 식량 부족 사태 등으로 혼란상태였다는데도 소장으로서 당황하는 모습 전혀 보이지 않고 연일 작업복 차림으로 직원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우량한 채소 종자 생산에 힘쓰던 우박사는 무엇보다 자급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데요. 전쟁의 영향으로 연구가 지연될 것을 우려해 연구 사업계획을 주도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실천하게 했다는군요. 이외에도 채소 원종의 생산과 종자의 대량 생산 적임지를 찾아 제주도를 방문한 우장춘 박사는 제주도 기후가 귤 재배에 적합하다 판단하여 품질 좋은 묘목을 도입하고 재배기술을 지도하여 국내 최대의 귤생산지가 되도록 기여했답니다.

     

    우장춘박사는 귀국한지 9년 만인 1959년에 위와 십이지장 궤양으로 3차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1959년 8월 10일 오전 3시 10분에 숨을 거둡니다. 아내 고하루는 우박사가 숨을 거두기 보름전에 일본에서 들어와 남편의 임종을 지켰다 합니다. 비록 심혈을 기울였던 품종 개량하던 벼(일식이수)의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제자들이 꽤 자란 상태의 '일식이수'를 공수해 와 보여주기까지 했다는군요.

     

    <p align="left" style="text-align: left; line-height: 2.5;"> 에필로그의 첫문장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가 그것인데 이 말은 우장춘 박사가 숨을 거두기 3일 전에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떨리는 손으로 수여 받으면서 눈물 흘리며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음... 헬조선이라며 기회만 된다면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 순간 우장춘 박사의 심경이 어떠한 건지 상상이 잘 되질 않네요.. 짧은 제 소견으론 이 말은 우박사에게 있어서 일본인으로 살아온 삶보다는 한국인으로 살다간 삶이 더 중요했다란 의미인 듯 보이는데요. 보이지 않은 차별로 일관한 일본보다는 자신을 우대하고 환영해 준 한국을 조국으로 여겼다는 말일테니까요. </p>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p style="text-align: center;"> 나의 조국 우장춘11.jpg </p>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p align="left" style="text-align: left; line-height: 2.5;"> </p> <p align="left" style="text-align: left; line-height: 2.5;">일본인이 집필한 우장춘 박사의 일대기이지만 의외다 싶을 정도로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쓴 부분이 무척 많습니다. 저자는 어쩔수 없는 일본인이구나란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구요. 돌려서 말하거나 제3자의 발언처럼 쓴 문체가 많다는게 특이하게 보였습니다만 확실히 객관적이게 보여줍니다. 재미도 있구요. 우장춘 박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라면 이 책만큼 그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는 책은 흔치 않을 것 같아 보이기에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p>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p align="center" style="text-align: center; line-height: 2.5;"> </p>
  • 나의 조국 | ho**nna50 | 2019.07.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우장춘 박사, 우리나라의 훌륭한 육종학자로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이 쓴 이 책을 통해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이는 우박사가 아님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

    우장춘 박사, 우리나라의 훌륭한 육종학자로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이 쓴 이 책을 통해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이는 우박사가 아님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o:p></o:p>

    그 보다도, 우 박사는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과 얽히고설킨 기막힌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박사의 아버지인 우병선은 그 당시의 중인 신분으로서,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에 가담을 하였고, 그 일로 일본에 망명하여 일본인의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리고 일본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o:p></o:p>

    우박사는 우병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아로 태어났습니다.

    우박사는 본인이 일본인에게 많은 차별을 받았으나,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함구하고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o:p></o:p>

    이 책은 1991년도 일본사람이 쓴 책으로서, 이 책을 쓰기 3년 전에 명성황후에 대한 책을 집필하다가 그 사건과 관련하여 우장춘의 부친이 연루된 것을 알았고, 이 책까지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o:p></o:p>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일본 작가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한 이런 책을 쓴 것이 대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작가는 우장춘박사의 이야기를 쓰기 위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우박사의 친척들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우박사의 동생과 딸들을 만나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한 과정이 이 책 내용을 신뢰하게 합니다.

      <o:p></o:p>

    우박사는 정식 일본의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나, 그의 논문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는 나팔꽃이나 유채, 각종 식용 채소나 심지어는 무궁화 꽃에 대하여도 뛰어난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o:p></o:p>

    그러나, 그가 50이 넘은 나이에 우리나라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애국심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가설만 세울 뿐, 확실한 답을 내 놓지 않고 있는데, 그만큼 이 책 내용에 대하여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o:p></o:p>

    우장춘박사는 가정에서는 효자요, 아내에게는 으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아버지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밤에 잠을 자면서도 메모지를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로 육종 연구에 몰입하며 살았음도 알 수 있습니다.

      <o:p></o:p>

    그냥, 평범하게 우장춘박사를 훌륭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복잡한 사연들을 깊이 알게 되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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