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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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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쪽 | A5
ISBN-10 : 8957076530
ISBN-13 : 9788957076538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중고
저자 사사키 아타루 | 역자 송태욱 | 출판사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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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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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상세정보대로이고, 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nejs***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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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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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사사키 아타루가 책과 혁명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담아낸 에세이다. 저자는 루터를 비롯해 마호메트, 니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등 수많은 개혁가와 문학가, 철학가를 통해 ‘책이 곧 혁명’임을 이야기한다. 즉, 혁명이 책을 읽고 쓰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며,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책은 사라지지 않기에 미래의 희망 역시 ‘책을 읽고 쓰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소개

저자 : 사사키 아타루
저자 사사키 아타루 (佐?木中)는 1973년생. 도쿄대학 문학부 사상문화학과 졸업.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계 기초문화연구 전공, 종교학 종교사회학 전문 분야 박사과정 수료. 박사(문학). 현재 릿쿄대학, 게이오대학, 도쿄의과치과대학 교양학부 비상근 강사. 전공은 철학, 현대사상, 이론종교학. 저서로 「야전과 영원―푸코, 라캉, 르장드르」(2008), 소설 「구하전야」(2011)가 있다.

역자 : 송태욱
역자 송태욱은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에서 강의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탐구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과학의 척도」, 「유럽 근대 문학의 태동」, 「미인의 탄생」, 「안도 다다오」, 「해적판 스캔들」, 「미국 현대 사상」, 「문명개화와 일본 근대 문학」, 「십자군 이야기 1, 2」 등이 있다.

목차

1. 문학의 승리
2.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3.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 - 마호메트와 하디자의 혁명
4. 우리에게는 보인다 - 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5.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

발(跋)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중략…)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빠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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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중략…)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빠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이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고, 따라서 이 세계의 질서는 옳고 거기에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루터를 제외하고. 교황이 있고 추기경이 있고 대주교가 있고 주교가 있고 수도원이 있고, 모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성서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 본문 78~79쪽

문학은 끝났다, 라고 사람들은 반복해서 말해왔다
문학이 끝났다, 순문학은 끝났다, 근대문학이 끝났다, 하는 이야기는 수백 년, 수십 년이나 반복해서 말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만은 새롭다고 생각하겠지요. 자기도 새로운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유감입니다. 그런 것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괴테나 실러의 시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의 황금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문학은 끝났다”고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저는 좀 뭐랄까요 짜증이 납니다. - 본문 235쪽

379만 년을 양보한다고 해도
물론 통계는 통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380만 년을 산다는 건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백 보 양보하여, 그렇네요. 379만 년 양보한다고 해도 앞으로 1만 년은 남은 셈이네요. (…중략…)
그렇다면 그 1만 년간 우리의 루터, 무함마드, 하디자, 아우구스티누스, 테레지아, 도스토옙스키, 조이스, 베케트, 버지니아 울프, 그(녀)들 같은 사람들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1만 년이나 있으니까 예수도 부처도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부처는 두 번 다시 환생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진짜 예수가 온다면 세상은 끝나버리니까 좀 곤란하지만, 그들 정도의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그러므로 이렇게 됩니다 변혁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 본문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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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사사키 아타루’. 그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비평가로 자리 잡은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의 뒤를 잇는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 사사키 아타루의 첫 책 <야전과 영원 - 라캉, 르장드르, 푸...

[출판사서평 더 보기]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사사키 아타루’. 그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비평가로 자리 잡은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의 뒤를 잇는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 사사키 아타루의 첫 책 <야전과 영원 - 라캉, 르장드르, 푸코>는 사상계와 독자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2년 만에 발표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으로, 책과 혁명에 관한 저자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감히 ‘니체’라 부를 만한 ‘사사키 아타루’

조용하지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이 책의 제목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니체의 유명한 선언 “신은 죽었다”를 떠오르게 한다. 저자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대혁명’이라 부른다. 루터는 성서를 반복해 읽고 성서에 기록된 메시지와 현실 종교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루터에게 책을 읽는 것은 기도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책을 읽고 깨달은 바를 실행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루터가 살았던 그때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고,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빠졌”기 때문이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부제는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으로, 저자가 책과 혁명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쓴 에세이다. 저자는 루터를 비롯해 마호메트, 니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등 수많은 개혁가와 문학가, 철학가를 통해 ‘책이 곧 혁명’임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혁명이란 폭력이 아니다. 읽고 쓰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다. 저자는 혁명이 책을 읽고 쓰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문학의 종말과 책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시대이지만, 이러한 논란은 수백 년 전에도 있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종교개혁을 비롯해 시대를 바꾼 혁명은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미래의 희망 역시 ‘책을 읽고 쓰는 데’에 있다. 목숨을 걸고 책을 읽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식과 깨달음이 인간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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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의 타이틀만 봐서는 종교서적인듯도 싶고 부제에 적힌 '혁명'이란 키워드를 발견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의 타이틀만 봐서는 종교서적인듯도 싶고 부제에 적힌 '혁명'이란 키워드를 발견하고선 정치철학서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위의 문장을 읽고서야 저자가 말하는 '혁명'과 '문학'의 관계를 깨닫게 되면서 읽는 다는 행위가 어째서 '혁명'의 시작점이 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철학자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 그리고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을 공통의 한 분야로 부른다면 당시 사람들은 뭐라고 불렀을가요? 당연히 '문학'이고, 그들은 '문학자'였습니다. 전혀 놀라운게 아닙니다. 그들은 문헌이나 자연법칙을 '읽고' 그리고 책을 쓰는 데 아주 뛰어났으니까요. 54쪽

    앞서 발췌한 문장처럼 우리는 '문학'이란 개념을 상당히 좁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저자는 일반적인 텍스트와 말과 글 뿐 아니라 춤, 공연과 같은 장르도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도 문학가고, 과학자도 문학가며 예술가 또한 문학가인 셈이다. 종교학자는 말할 것도 없다. 종교혁명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루터의 사례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혁명'을 목적으로 시작된 '읽기'가 아니었다.

     

    루터가 일이킨 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역사학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Reformation'이라는 독일어를 루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것만을 이유로 루터는 개혁자가 아니었다, 아니 종교개혁 자체가 그렇게 내실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67쪽

     

    루터는 과연 개혁자인가 아닌가를 살펴보면 그가 주도한 것은 '성서를 읽는 운동' 즉 대혁명이었다. 그저 성서를 제대로 올바르게 읽자고 말하는 과정에서 그저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읽는것에 그치지 않고 베껴쓰고 메모해가며 되풀이해서 읽었다. 심지어 라틴어와 그리스어 뿐 아니라 히브리어까지 공부하며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읽는동안 루터는 과연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면서 깨달은것이 있다면 책 그자체에 쓰여있는 것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설사 읽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읽기는 이처럼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자의식과 싸워가며 스스로를 추궁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민중이 쉽게 올바른 의미의 성서를 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음악을 사랑했던 루터가 찬송가를 만들어내고 낭송하는 방법을 이용하면서 문학이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이나 무용혹은 공연까지 이어진다는 저자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사례외에도 이슬람 종교의 기원인 무함마드와 문학의 관계, 그리고 중세해석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언뜻 보면 종교와 관련된 '읽기'혹은 '문학'이라고 보여지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저자가 독자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언급된다. 책쓰기 열풍이 부는 요즘 이런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개나 소나 다 책 쓴다'라던가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은 세상'등이 있다. 어찌보면 읽을 만한 텍스트가 아니라 자기과시욕으로 책을 쓰는 것을 비난한 것일수도 있지만 과연 그런 활동이 비난받아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 책의 뒷표지에 실린 본문발췌 내용은 니체의 저술서가 40부를 자비로 출판했고 그 중 7부만 지인에게 전달되었는데 과연 그의 저술이 실패했다고 보아야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내용인데 관련 내용이 4장에 나와있다. 읽는 것은 고쳐 읽는 것이고 다시 고쳐 쓰는 것이고 역시나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읽는 것이다. 결국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면 자신의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이런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273쪽

     

  •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모든 의식의 흐름을 바꾸고 거대한 물음표 를 내 머릿속에 남겨둔 책...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모든 의식의 흐름을 바꾸고 거대한 물음표 를 내 머릿속에 남겨둔 책이라는 것을..

    이번에 리뷰할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는 책이다.

    책 제목부터 어딘가 강렬하고 도발적인 느낌이 드는데 책 제목은 파울 첼란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책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단언컨데 1장을 덮는 순간, 당신의 이 젊은 철학자만의 독특한 문체에 빠져들 것이다!!

    1장은 프란츠 카프카의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대인들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바쁘지 않은 것을 죄악이라고 여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보의 노예가 되기 시작했고 최신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현재에 도태된 인간이라 여겼다.

    이러한 지점에서 카프카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그래서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라고 고백한다.

    미술관에 다니는 것, 영화를 보는 것, 텔레비전을 보는 것

    정보의 매체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교양학부 커리큘럼이 가장 빈곤한 의미에서의 '비평가'를 낳는 시스템" 

    다만,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해 조금은 재치있는 말 한 마디를 해낼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할 뿐이라는 것이다.

    책의 본문을 다시금 인용하자면 '눈을 칩떠 사방을 잘 둘러보는 것만을 연마할 뿐 ' 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는 어느순간 자본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은 남들과 같지 않은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미디어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트렌드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트렌드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안감에 떨게 만들었다.

    미디어를 통해 배포되는 선전 문구들을 통해 사람들은 현혹되고 일 순간 거리에는 같은 브랜드, 같은 옷,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로 뒤덮혔다. 그렇게 정보를 모으고 정보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열심히 살고 있어 라는 합리화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런데 아무런 근거 없는 정보 수집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서였을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해서 정보를 차단한채 살아가는 우리가 그럴듯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정보를 모두 차단했을 때의 느낌은 '실오르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무위가 고난의 모습 ' 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읽어지는 것이라고

    책에 대한 저자의 철학관이 꽤 흥미롭다.


    " 책을 대강으로 읽고 있는 사람들. 

      즉 자신은 知를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취당하는 측에 있다 " 


    대량으로 책을 많이 읽어나간다고 해서 그게 양질의 독서는 아닐터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 역시 반복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암기할 수준이라고 했다.

    모든 정보를 흡수하려 애쓰고 (대량으로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 이렇게하는게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1장에서 언급한 비평가와 전문가의 비교도 흥미로워 이곳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비평가는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반면에 전문가는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집단은 공통점을 가진다.

    자크리캉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게 안다라고 생각하는 건 팔루스적 향락이라는 '가장 비참한 향락'이다.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르시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다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수집한 정보의 양에 오히려 질식사 하는 건 아닐까.


    정말, 중요한 건 본질을 회복하는게 아닐까?

    포장하고 있는 껍데기가 아니라.


    한 장 한장 쉽게 넘어가는 페이지가 없었다. 멈춰서 생각하고 

    이 지점에서 멈춰 묻고 또 다른 지점에서 책을 덮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서울: 자음과모음, 2010.   ...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서울: 자음과모음, 2010.
     
    우치다 타츠루 이후로 일본인 일반작가로 내 관심을 끌어낸 사람, 사사키 아타루. 제목부터가 참 도발적이다.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소수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는 저력이 있지 않나 싶다. 저자의 솔직함과 타고난 비판의식으로 인해서 말이다. 패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학자들의 작업을 축소 재생산이라고 고발한다. 파편화된 지식으로 우쭐대는 모습이 아니꼬왔나 보다. 아무튼 그런 신랄함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5번의 강의로 만든 거다. 그래서 쉬운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빈약하다고 할 수 없다. text가 기록되고, 읽고, 해석되고, 다시 쓰여지는 그 과정을 주목하였는데, 거기에 혁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신선한 접근이다. 텍스트의 변혁이 혁명의 본질이라는 흥미로운 발상 말이다.
     
  • ...
     
    생각이 비딱하고 문체가 독특하다.
    그래서였을까읽는 동안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문학과 독서와 혁명에 관한 닷새 동안의 기록,
    대개는 깊은 밤을 지나 동이 터올 때까지 지속된 강의를 닮은 글쓰기의 결과다.
     
    사사키 아타루(木中),
    이제 우리 나이 마흔을 넘긴 일본의 신예 사상가이자 작가로
    『야전과 영원(夜戰と永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그의 박사학위논문
    『푸코, 라캉, 르장드르에 있어서의 종교와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탐구』는
    600페이지가 넘는 사상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데뷔작에 대한 그러한 반응은 일본에서도 이전에 차례밖에 없었던 일이었던 터라
    그는 데뷔작을 통해 일약 사상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알게 것이지만
    그러고도 그는 고의적으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하는 이른바비평가
    어떤 가지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른바전문가 대해
    그는 그들이 전체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자신은 자신에게 들어오는정보화 모든 것을 차단한 오로지읽는 가지에,
    그것도 많은 책이 아니라 가지를 되풀이해서 읽는 것에 침잠했다고 말한다.
    니체와 쇼펜하우를 비롯한 세기의 철학자들 대부분이 말했던 것처럼
    책이란 많이 읽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게 읽어야 하는 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
    텍스트를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고 번역하고, 천명하는 . 과정에서 폭력적인 것이 나타나는 일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혁명에서는 텍스트가 선행합니다.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닙니다. 경제적 이익도 아니고 권력의 탈취도 아닙니다. 텍스트의 변혁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
    -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중에서
     
    사사키 아타루는 독서를읽을 없는 것을 읽는 으로 정의한다.
    속에 쓰인 것을 정보화된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사람에게 독서란
    읽었으므로 그렇게 따라 살지 않으면 되는,
    세속의 시선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미쳐버리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읽지 못하는 것을 읽어내는 고난이 죽지 않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읽히는 것만 읽고 마는 지식과 정보로 책을 대하는 독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이라는 것을 피할 없게 된다고 말한다.
     
    문학과 독서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혁명으로 이어지고
    문학이야말로 혁명을 잉태하는 행위이며
    독서야말로 흘리지 않는 혁명을 완성하는 바탕이요 시작이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교회에 의해 세기 동안 없는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로마법대전』의 발견과
    그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교회법 제정 사회체제의 재구축,
    루터에 의한 성서 새로 읽기와 그로 인해 촉발된 종교개혁,
    그리고 무함마드가 하늘의 소리를 들어 시작된 무슬림 등을
    자신의 논리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로 들어가며
    문학과 읽고 쓰기와 혁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문학의 범주는 시나 소설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문학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보다 훨씬 넓은,
    문자로 쓰인 모든 텍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춤과 그림과 소리까지도 포함된다.
    그리하여 그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속에 불러낸 이들은
    루터와 무함마드와 니체와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같은 사람들이다.
     
    루터는 성서를 읽고 읽고 읽은 끝에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자신 또한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아온 세상의 질서에
    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서는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대주교라는 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았고
    교황을 섬기고 교회가 정한 법과 규칙을 지키라는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성서에는 다만십계명을 지켜라라고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루터는 마침내 고백의 글을 쓰고 만다.
    나는 죄인을 벌하는 정의의 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시장을 헤매고 다니며 먹고 살던 사람 무함마드도
    하늘의 소리를 듣게 기적 외에 어떤 기적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고
    붓다도 신통을 발휘하여 자신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전파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신이와 기적은 사람이 새처럼 하늘을 날거나 죽은 사람을 일으켜 숨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통해 지난 날과 달라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직접 언급한 내용은 아니지만
    종교에 관한 대목에서 루터와 무함마드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둘에 붓다를 더한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이 하나 보였다.
    바로 그들 모두에게 내재된 친여성성이었다.
    붓다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없는 여인의 출가를 허락했고,
    무함마드는 남아선호의 결과로 어린 딸을 함부로 죽이는 동족들에게 경고의 말을 남겼으며,
    루터는 읽는 사람이 가운데 사람도 되던 시대에 여성교육의 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후에 전개된 역사에서는 가부장제가 더욱 강고하게 고착되었다.
     
    저자는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종말론의 허구를 파헤치고
    생물종의 멸종에 관한 역사적 선례를 통해
    지구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종이 위에 쓰여 있는 글씨만 읽어내는 사람은
    지식을 채워 비평가나 전문가는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고 삶을 새롭게 하는 혁명가는 결코 수가 없다.
    미쳐버릴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필터를 통해 책을 읽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꾸는 이라면 당연히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있어야 하고
    혁명을 바라는 이라면 마땅히 쉽게 읽을 없는 책을 두려움 없이 읽을 있어야 한다.
    읽을 없는 책을 읽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의해 혁명은,
    흘리지 않는 혁명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가 책을 맺으며 적은 말이다.
    마지막 밤도 깊은 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밤은 없습니다. 밤은 시작입니다.
    그도 지금 분명 무혈의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일 게다.
     
    휩쓸려가는 삶은 사는 동안에는 누구도 혁명을 꿈꿀 없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서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는 드문 세상에서
    혁명이 글을 읽고 읽고 쓰고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천둥과 같고
    읽었으므로 그렇게 수밖에 없었다 고백은 일종의 계시와 같다.
    독서는 지식이나 정보를 늘리고 채우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는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불길을 자신 안에 지피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책을 쓰고 읽으면서 해내는 기적이고 혁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끝에 이르도록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이란 제목과 직접 연관되는 대목을 만나지 못하다가
    저자가 직접 발문에 이르러서야 제목의 내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빛의 강박(Lichtzwang)(1970) 실린
    시의 구절이었다.
     
    책의 운명도 어쩌면 저자가 말을 따라가게 것이다.
    혁명의 꿈을 품은 사람이라면 책을 펼쳐 읽게 것이고
    혁명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사람, 그리고
    혁명이라면 으레 유혈과 권력을 떠올리는 이라면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까.
     
     
  • 읽으라, 지금 당장! | by**go96 | 2013.02.0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자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 관한 책이다.  단순한 읽기가 아닌 개인과 사회혁명을 촉구하는 책읽기다.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개인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나에겐 ‘닥터 노먼 베쑨(1992, 실천문학사)’이 삶의 전후를 결정짓는 책에 제일 근접하다.  의사이지만 보이는 질병보단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질병인 악을 치료하기 위해 혁명전선에 뛰어든 투사의 일대기다. ...
     
    이 책에선 종교개혁(1517)(종교)대혁명으로 설명한다.  중세 수도원은 귀족의 사치스러운 사교장으로 전락했다(현재 한국 교회와 유사한 것 아닌가??).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혁명이다.  루터는, (성서), 읽었다.  성서에는 교황이 높은 사람이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쓰여있지 않았다.  추기경을, 대주교 자리를, 주교 자리를 마련하라고도 쓰여있지 않았다.  교회법을 지키라고도 쓰여 있지 않았다.  책을 읽는 루터가 미친 것일까? 세상이 미친 것일까?  루터는 읽는 것이 “기도이고 명상이고 시련이다”고 했다.  종교개혁을 부르짖었던 루터는 그 시대엔 무법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결국은 종교대혁명은 루터의 읽기 혁명에 의해 성공했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며,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다.
     
    저자는 다독보다는 심오한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독은 자연스럽게 돋보기처럼 빛이 넓은 곳을 통과해 하나의 작은 초점으로 집중하는 반면, 어려운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초점을 한 곳에 집중해서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책을 읽음으로써 배움의 자세를 죽는 순간까지 동행하는 것이며,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냐 돈오 점수(頓悟漸修)냐를 본다면 이 책은 돈오돈수에 가까운 책이다.
     
    읽으라, 지금 당장, 기도하는 그 손을 자르고, 책을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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