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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옷장
224쪽 | | 125*189*21mm
ISBN-10 : 1190533014
ISBN-13 : 9791190533010
빈 옷장 중고
저자 아니 에르노 | 역자 신유진 | 출판사 1984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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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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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시초 ‘기억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거짓과 허구는 없는 그녀의 글쓰기. 데뷔작 〈빈 옷장〉은 그러한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시초이다. 첫 작품부터 날 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스무 살의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에서 출발하여,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어린 시절을 거쳐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과 부르주아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은 일까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그리며 그러한 분리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한 인간을 다른 사람으로, 자신의 환경을 적으로 만드는, 문화에 대해, 하나의 문화 형태가 개인에게 한 일, 이 단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의 결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이 매끄럽고 찰랑거리기만 한 길을 지나왔다면, 아니 에르노의 책을 펼쳤을 리 없지 않은가…… "

〈빈 옷장〉을 번역한 신유진 작가는 이 책을 펼쳤을 당신의 지나온 삶의 결을 짐작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덮은 이들의 이후의 삶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의 이브토에서 자랐다. 루앙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후, 정식 교원, 현대문학 교수 자격증을 획득했다. 1974년 ‘빈 장롱’으로 등단해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했으며, 자전적인 글쓰기와 역사, 사회를 향한 작가만의 시선을 가공이나 은유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대표작으로는 ‘단순한 열정’, ‘사진의 용도’, ‘한 여자’, ‘부끄러움’, ‘다른 딸’ 등이 있으며, 2008년 ‘세월’로 마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소설, 미발표된 일기 등을 수록한 ‘삶을 쓰다’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최초의 생존 작가가 되었다.

역자 : 신유진
파리 8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저서로는 소설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여름의 끝 사물들]과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이 있으며,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얼굴들]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 [사진의 용도] [진정한 장소] [세월]을 번역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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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빅토르 위고나 페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 볼까. 구역질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것, 내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묘사하거나 이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게끔 도와주는 대목은 한 구절도 없다. 탄생,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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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나 페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 볼까. 구역질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것, 내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묘사하거나 이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게끔 도와주는 대목은 한 구절도 없다. 탄생, 결혼, 임종, 모든 상황마다 그에 따른 기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상황에 맞는 구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태 전문 산파의 집에 갔다가 나온 스무 살의 여자아이를 위한, 그 여자아이가 걸으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것에 관해 쓴 구절. 그렇다면 나는 읽고 또 읽을 것이다. 책은 그런 일에 대해 침묵한다. - 13p

나는 누구인가. 일단 르쉬르 식료품점의 딸이다. 언제나 우등생이며, 일요일에는 짧은 발목 양말을 신는 얼간이이자 장학생이다. 그리고 어쩌면 낙태 전문 산파에게 따먹힌, 아무것도 아닌 존재. - 16p

후회가 밀려오지만, 무엇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조립하듯 하나씩 순서대로 재구성하고, 쌓고, 끼워 넣는다. 왜 내가 죽음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두려워하며 기숙사에 갇혀 있는지를 설명한다. 두 번의 진통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고 이야기한다. 이 소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본다. 아니다, 나는 증오를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내 부모를, 손님들을, 가게를 늘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타인들, 교양 있는 사람들, 선생님들, 예의 바른 사람들, 나는 이제 그들 역시 증오한다.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 19p

아기 고양이처럼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행복, 모두 가져야 할 것들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감탄했던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 역겹다 할지라도. 세상은 그곳에 있었다. 허기와 갈증 그리고 만지고 싶고 찢고 싶은 욕망의 수천 개의 조각들로, 질기고 수다스러운 끈으로 엮인 채, 나, 드니즈 르쉬르, 나는…… - 55p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야 하는가, 배에 단단한 돌덩이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눈물 때문에 눈이 따갑다.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이것은 모욕이다. 학교에서 나는 모욕을 배웠고, 모욕을 느꼈다. - 70p

내가 피하려 했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잊어버렸던 그 말들이 사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처음의 것, 진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학교, 책 속의 단어들은 이제 아무 소용없다. 그것은 증발한 말들이며, 눈속임이며, 쓰레기들일 뿐이다 - 93p

아름다움, 일종의 치명적인 행복은 그쪽에 있었다. 초라한 벨 소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빛 한가운데에 끈적이는 잼이 있는 쪽이 아니다. 선은 청결한 것과 예쁜 것, 쉽게 존재하고 말하는 것, 한마디로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과 섞여 있었고, 악은 보기 흉하고, 끈적끈적하고, 배움이 부족한 것이었다. - 123p

문학, 그것조차도 빈곤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상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전적인 방법. -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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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낯선 여자의 집, 한 소녀가 테이블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다. 뜨거운 냄비에서 꺼낸 금속 기구가 뱀처럼 고개를 든다. 그 기구의...

[출판사서평 더 보기]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낯선 여자의 집, 한 소녀가 테이블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다. 뜨거운 냄비에서 꺼낸 금속 기구가 뱀처럼 고개를 든다. 그 기구의 이름을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것은 소녀와 나의 부족한 의학적 지식 탓만은 아닐 것이다. 병원이 아닌, 어느 나이 든 여자의 주방에서 벌어지는 불법 낙태 시술을 설명해 주는 곳은, 그곳에서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을 알려 주는 곳은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소녀의 말을 빌리자면, 빅토르 위고도, 페기도, 이런 상황을 위한 글을 쓰지 않았다. 정제된 문학은, 정제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무력해진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은 것은 자궁을 가졌다는 불행을 확인하는 것 외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은 빅토르 위고의 문학에도, 페기의 소설에도 없는 ‘자궁을 가졌다는 불행을 확인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어떤 이는 불법 낙태 수술이라는 이 충격적인 장면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역시 아니 에르노’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강렬한 첫 장면이 ‘충격’ 장치가 아닌, 플래시백을 여는 일종의 ‘충동’ 장치라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 소설은 과거로 내달린다.

교육과 수치심을 통해 드니즈라는 화자에게 행사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
"나는 빈 옷장의 폭력성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라지만, '자전적 소설'이란 명칭은 아니 에르노에게 부여된 명사가 된 지 오래다. 개인의 삶을 공동의 삶으로 확장해나간 소설 〈세월〉은 2019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지금껏 당신이 읽어본 적 없는 회고록"이라는 수식을 받은 바 있다. ‘기억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거짓과 허구는 없는 그녀의 글쓰기. 데뷔작 〈빈 옷장〉은 그러한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시초이다. 첫 작품부터 날 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스무 살의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에서 출발하여,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어린 시절을 거쳐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과 부르주아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은 일까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그리며 그러한 분리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한 인간을 다른 사람으로, 자신의 환경을 적으로 만드는, 문화에 대해, 하나의 문화 형태가 개인에게 한 일, 이 단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칼 같은 글쓰기는 작가 자신을 찌르고, 여지없이 우리를 찌른다. ?빈 옷장?의 드니즈 르쉬르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 모든 것이 ‘나’로 뭉뚱그려져 있던 세계에서 주체와 객체로 나눠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리되고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그것은 ‘이해한다’와는 다른 의미다. 칼에 손가락을 베인 사람을 보면 내 손가락이 욱신거리듯이, 우리는 그녀의 글을 감각으로 느낀다. 살아낸 글, 살아서 건너오는 글, 그것이 바로 아니 에르노의 문학이 가진 힘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의 결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이 매끄럽고 찰랑거리기만 한 길을 지나왔다면, 아니 에르노의 책을 펼쳤을 리 없지 않은가…… "

〈빈 옷장〉을 번역한 신유진 작가는 이 책을 펼쳤을 당신의 지나온 삶의 결을 짐작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덮은 이들의 이후의 삶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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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빈 옷장 | sh**jw486 | 2020.06.0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꼬박 열흘이 걸렸다, 이 책을 손에서 놓기까지. 퇴근 후 자리에 앉으면 열시. 한두 시간쯤 읽다 보면, 내일의...

    꼬박 열흘이 걸렸다, 이 책을 손에서 놓기까지. 퇴근 후 자리에 앉으면 열시. 한두 시간쯤 읽다 보면, 내일의 출근을 위해 눈을 붙여야 하는 시각이 되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어제서야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매일 밤 나는 그렇게 ‘드니즈 르쉬르’가 있는 세상에 들렀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시간과 공간, 모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차마 가늠해볼 수 없는 그녀의 세상.
    .
    피곤하고 잠이 부족한 현대의 직장인에게, 이 책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회상은 참담하면서도 서글픈 현실에 절대 주저하지 않고 계속된다. 자칫 방심하면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아 위태로웠다.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속도를 늦춰야하는 순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매일 밤, 다시 이 책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의 단어가, 그녀의 세계가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세상에 눈을 뜨고, 나와 같고 다름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 수치심과 안도감의 자리를 오가며, 나와 타인의 경계선에서 이리저리 선을 그어댔다. 과연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세상에서 온전히 멀어졌을까. 돌아보면 그저 아득하게 멀게 느껴질 뿐, 대부분의 어린시절은 미화되고 낡고 잊혔다. 애써 들춰내고 싶지 않은, 한편에 처박아 둔 기억, 그렇게 먼지 쌓인 앨범처럼 꽂혀있을 시절을, 아니 에르노는 지금 당장 이 순간에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너무도 분명해서 되려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들. 하지만 뱉어내야 했던 고백들. 그마저도 ‘그녀’였다.
    .
    이제 나도 ‘나’를 본다. 선택적으로 기억했던 아름다운 시절, 그 너머의 나와 가족들, 친구들. 남루하고 별 볼일 없었던 언어들. 매일 밤, 멀게만 느껴지던 그녀의 세상을 오고 가며, 좁혀보려 했던 그 거리는, 이제 나와 나의 세상으로 옮겨 온 듯 하다. 이제 내가 문을 열 차례일까.
    .
    p.69 그 외의 모든 것들, 그 애를 둘러싼 것들, 우아함, 보이지 않는 타고난 어떤 것들이 부족했다. 뿔테 안경, 분홍색테 안경을 파는 반짝이는 상점, 거실, 식모. 그러나 나는 그것들 사이에 있는 연관 관계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벼움, 경쾌한 조소가 순수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나 녹색 식물이 있는 현관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끔찍한 점이다. 나는 이미 결정지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애와 비교하면 드니즈 르쉬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기서는 카페 겸 식료품점의 작은 여왕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나는 잔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무시하며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던 수많은 타인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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