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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쪽 | A5
ISBN-10 : 8960901660
ISBN-13 : 9788960901667
벨 자 중고
저자 실비아 플라스 | 역자 공경희 | 출판사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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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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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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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보다 더 뜨거운 생의 기록!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벨 자』. 사후 출간된 싯집 가운데 유일하게 퓰리처 상을 수상한 저자가 유일하게 남긴 소설로 저자가 죽기 몇 주 전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가명으로 1963년 영국에서 출간된 자전적 소설이다. 19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줄곧 모범생으로 살아온 열아홉 살 에스더 그린우드를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취직을 위해 속기를 배울 것을 채근하는 엄마, 의대생 남자친구이자 위선자인 버디 윌러드, 평생을 대학 교수의 아내로 순종하고 봉사하며 살아온 버디의 엄마 등은 하나같이 에스더의 삶을 지루한 방식으로 규정하려 드는데…….

저자소개

저자 : 실비아 플라스
저자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는 미국의 시인, 소설가. 1932년 10월 27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처음 《보스턴 헤럴드Boston Herald》에 시 작품을 실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문학적 영감이 풍부했다. 1950년에 스미스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해 문학을 공부했으며 우등으로 졸업 후 1955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때 만난, 촉망받는 시인 테드 휴스와 1956년 결혼하고 1957년부터 이 년 동안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재직했다. 1960년 10월에 첫 시집 『거대한 조각상The Colossus and Other Poems』을 출간했다. 같은 해 4월에 딸 프리다가 태어났고 1962년에 아들 니콜라스가 태어났다. 1962년 10월에 테드 휴스와 별거에 들어갔으며, 두 아이를 키우다 1963년 2월 11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몇 주 전 자전적 소설 『벨 자The Bell Jar』(1963)가 빅토리아 루커스Victoria Lucas라는 가명으로 출간되었으며 사후에 시집 『에어리얼Ariel』(1965) 『호수를 건너며Crossing the Water』(1971) 『겨울나무Winter Trees』(1972)가 출간되었다. 1981년 테드 휴스가 엮은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The Collected Poems』은 이듬해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시 부문에서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이 퓰리처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지금까지 유일하다.

역자 : 공경희
역자 공경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타샤의 정원』 『호밀밭의 파수꾼』 『우리는 사랑일까』 『좀비』 『파이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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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찌뿌드드하고 후텁지근한 여름이었다. 그 여름 로젠버그 부부가 전기 사형에 처해졌고, 나는 뉴욕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지냈다. -9쪽에서 우리는 유엔의 조용한 강당에 들어가 건강한 러시아 여자 옆에 앉았다. 화장기 없는 여자는 콘스탄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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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뿌드드하고 후텁지근한 여름이었다. 그 여름 로젠버그 부부가 전기 사형에 처해졌고, 나는 뉴욕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지냈다.
-9쪽에서

우리는 유엔의 조용한 강당에 들어가 건강한 러시아 여자 옆에 앉았다. 화장기 없는 여자는 콘스탄틴처럼 동시통역사였다. 거기 앉아 있으려니 아홉 살 때까지 순수하게 행복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는 진정으로 행복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날 위해 모은 돈으로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고 수채화를 배우고 무용 강습을 받고 조정 캠프에 갔고, 대학에 진학한 후로는 아침 식사 전에 안개 속에서 배를 타고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꽃놀이 하듯 떠올렸지만 말이다.
-104쪽에서

가지 끝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무화과 같은 멋진 미래가 손짓하고 윙크를 보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고, 어떤 것은 유명한 시인이었고, 또 어떤 것은 뛰어난 교수였다. 훌륭한 편집자라는 무화과도 있었고,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인 무화과도 있었다. 어떤 것은 콘스탄틴, 소크라테스, 아틸라 등 이상한 이름과 엉뚱한 직업을 가진 연인이었다. 올림픽 여자 조정 챔피언인 무화과도 있었고, 이런 것들 위에는 내가 이해 못하는 무화과가 더 많이 있었다.
무화과나무의 갈라진 자리에 앉아, 어느 열매를 딸지 정하지 못해서 배를 곯는 내가 보였다. 열매를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만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무화과는 쪼글쪼글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107쪽에서

“내게 어디에 살고 싶은지, 시골인지 도시인지 물었던 거 기억해?”
“너는…….”
“나는 시골과 도시 양쪽 다 살고 싶다고 말했잖아.”
버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갑자기 힘 있게 말했다.
“그러자 너는 웃으면서 내가 진짜 노이로제 환자의 면모를 갖췄다고 말했지. 그 주에 심리학 시간에 본 질문지에 나온 질문이라면서.”
버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
“신경증이라니, 웃기네!”
나는 조롱하듯 웃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은 게 신경증이라면 난 끔찍한 신경증에 걸렸어. 난 죽을 때까지 완전히 다른 것들 사이를 날아다닐 거야.”
-127~129쪽에서

기니 여사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녀가 유럽행 티켓이나 크루즈 왕복표를 줬다 해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내가 어디 있든?배의 갑판이든 파리나 방콕의 거리 카페든? 나 자신의 시큼한 공기 속에서 속을 태우며 벨 자종 모양의 유리관 밑에 앉아 있을 테니까.
-245~246쪽에서

단단한 땅을 1.8미터 깊이로 판 구덩이가 있겠지. 그 그림자가 이 그림자와 하나가 될 테고, 우리 고장의 노란 흙이 흰 바탕에 난 상처를 봉합해주겠지. 다시 눈이 내려 조앤의 새 무덤 자리를 지우리라.
나는 깊이 숨을 쉬고 예전 같은 심장박동 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323~32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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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실비아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 『벨 자』 섬세한 문장에 깃든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 존재만으로 “문학에서의 한 사건”이자 “대중적인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으로 사후에 출간된 시집 가운데 유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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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 『벨 자』
섬세한 문장에 깃든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


존재만으로 “문학에서의 한 사건”이자 “대중적인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으로 사후에 출간된 시집 가운데 유일하게 퓰리처 상을 수상한 그가 유일하게 남긴 소설 『벨 자』가 개정판으로 거듭났다. 실비아 플라스의 사후 50주기를 맞이해 국내에 처음으로 내놓는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과 함께여서 더욱 뜻 깊다.
《보스턴 글로브》가 “『호밀밭의 파수꾼』에 맞먹는 걸작”이라고 평한 바 있는 『벨 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죽기 몇 주 전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가명으로 1963년 영국에서 출간된 자전적 소설이다. 고국인 미국에서는 그의 어머니의 반대로 1971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지만 영국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젊은이들은 이 소설을 구해 함께 읽고, 공감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실비아 플라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20세기 후반의 여성주의 그리고 여성운동에서 『벨 자』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고유명사로도 자리매김했다.
“신중하게 긍정적인 소설”(재닛 맥캔, 『벨 자에 대한 비평적 견해』 중에서), 『벨 자』는 19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줄곧 모범생으로 살아온 열아홉 살 에스더 그린우드를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는, 러시아의 비평가 슈클로프스키Shklovsky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 부른 사실주의의 주요한 문학 기법을 써서 에스더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미국의 비평가인 로버트 숄스Robert Scholes는 《뉴욕 타임스》에 실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사소한 언어유희부터 대단히 문제적인 이미지들까지 아우른다. 일례로 에스더가 뉴욕에서 머문 여성 전용 호텔을 “아마존Amazon”이라 이름 지음으로써, 단순히 “바비존Barbizon”의 발음과 가깝다는 것을 즐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 호텔의 전체적인 성격에 대해 재고하기를 촉구한다. “남자들이 얼쩡대며 유혹하지 못하는 곳에서 딸들이 살기를 바”라는 “부자 부모를 둔 내 또래 여자애들이 주로 묵”는 곳 말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적대감임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실비아 플라스는 이 “낯설게 하기”를 통해 에스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심리 상태를 치밀히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에스더의 삶을 보다 다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광기를 ‘숨막힐 듯한 벨 자가 머리 위로 내려오는 것’이라 생각한 에스더가 왜 극단적인 길을 걸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벨 자가 언제 덮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스더를 비롯한 우리는 언제나 벨 자 밑에 앉아 있을 것이므로.

“고요가 날 짓눌렀다. 그것은 내 자신의 고요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진실


열아홉 살 에스더 그린우드는 유명 잡지인 《레이디스 데이》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여름 한 달 동안 뉴욕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한적하고 전형적인 1950년대 미국 교외 풍경 속에서 줄곧 자란 에스더는 언제나 우수한 학생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터였다.

나는 지역신문 《가제트》의 대학 통신원이었고 문예지의 편집자였다. 또 인기 좋은 부서인 우등생위원회의 간사로 학문적·사회적 위반과 처벌을 담당했다. 또 유명 여자 시인이기도 한 교수가 동부에 있는 여러 큰 대학의 대학원에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고, 이제 지성적인 패션 잡지의 최고 편집자에게 일을 배우게 됐다.
-49쪽에서

그러나 정작 뉴욕에서 마주한 것은 빛날 미래도, 보장된 커리어도 아니었다. 에스더는 처음으로 맞닥뜨린 화려하고 음울한 대도시의 인간 군상 속에서, 사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도린처럼 화려하게 살 수도 없으면서 엄마가 바라는 ‘모범적인 미국 여성’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비겁한 위선자인 버디 윌러드와 눈 딱 감고 결혼해서 의사 부인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 따위도 없지만 콘스탄틴 같은 남자와 적극적으로 만남을 이어가지도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간 별 의심 없이 품어온 삶의 전망이 더는 밝지 않았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스더의 내면에는 이제 깊은 고요만이 존재한다.

큰 장학금을 따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학자금을 지원받아서 유럽에서 공부할 생각을 늘 했다. 그 후 교수가 되어 시 관련 책을 집필하거나, 시에 대한 책을 쓰면서 편집자가 될 계획이었다. 평상시에는 이런 계획을 이야기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하면서 스스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그게 사실임을 알았으니까.
-49~50쪽에서

“미국 전역의 수많은 여대생이 선망하는”,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냈어야 할 에스더는 어딘가 텅 빈 채로 보스턴에 돌아온다. 유명 작가가 강의하는 여름 학기 글쓰기 강좌를 들으며 다잡을 계획으로 버텼지만 지원자 선정에서 탈락하면서 그야말로 갈 곳을 잃는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며 살았고 또 살아갈 예정이었던 인생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가운데, 에스더는 자살을 기도한다.
삶이 기차라면, 그곳에는 반드시 레일이 깔려 있을 것이다. 기차에 몸을 실은 그 누구도 목적지 이탈이나 탈선을 의심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기차는 언젠가, 목적지에 닿는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기실 우리는 우리네 삶도 그렇다고 여기곤 한다. 하물며 전쟁이 끝나고 냉전에 돌입한 1950년대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했으리라. 그것이 돌연 희부옇게 보이는 순간, 일상의 곳곳에 생겨날 미세한 균열들을 실비아 플라스는 날카롭게 포착해 우리 앞에 조용히 펼친다. 『벨 자』가 미국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난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벨 자 너머의 진정한 해방을 갈구하는 목소리


앞서 말했듯 『벨 자』는 20세기 후반의 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취직을 위해 속기를 배울 것을 채근하는 엄마, 의대생 남자친구이자 위선자인 버디 윌러드, 평생을 대학 교수의 아내로 순종하고 봉사하며 살아온 버디의 엄마 등은 하나같이 에스더의 삶을 지루한 방식으로 규정하려 든다.

그가 늘 “남자가 원하는 것은 반려자이고 여자가 원하는 것은 끝없는 안정감”이라거나 “남자의 인품은 미래로 날아가는 화살이고 여자의 인품은 그 화살을 쏘는 시위”라는 어머니의 말을 읊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으니까.
-100쪽에서

속기도 할 줄 몰랐다.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을 못 구할 거라는 뜻이었다. 엄마는 영어 전공만으로는 아무도 일을 주지 않을 거라고 잔소리했다. 하지만 속기 능력을 갖춘 영어 전공자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다들 그런 여직원을 원할 터였다. 그런 여자라면 잘나가는 젊은 남자들이 서로 일을 시키려 할 테고 계속 멋진 편지를 받아쓰게 될 터였다.
-105~106쪽에서

그리고 에스더는 엄마와 버디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1950년대 미국 사회가 당대의 여성 일반에 기대하는 바로 그것임도 안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그런 삶은 에스더에게 “지긋지긋하게 따분해” 보였다. 이는 에스더가 자살 기도에서 실패하고 기니 여사의 도움으로 정신 요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곳의 다른 여성들을 보며 든 생각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다들 “벨 자 밑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연대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나와 너,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공감이야말로 연대를 이루는 근본일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여성운동이 『벨 자』에게 빚진 것은 이 지점일지 모른다.

호텔 이름은 ‘아마존’이었는데, 여성 전용이어서 부자 부모를 둔 내 또래 여자애들이 주로 묵었다. 부모들은 남자들이 얼쩡대며 유혹하지 못하는 곳에서 딸들이 살기를 바랐다. 다들 수업에 갈 때는 모자와 스타킹, 장갑 차림을 해야 하는 케이티 깁스 같은 호화판 비서 학교에 다녔다. 혹은 케이티 깁스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임원의 비서나 하면서 뉴욕에서 얼쩡대다가 직업 좋은 남자랑 결혼하기를 고대했다.
-12~13쪽에서

브리지 게임을 하고 소문에 대해 떠들고 공부하는, 내가 돌아갈 대학의 여학생들과 벨사이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 여학생들 역시 어떤 종류의 벨 자 밑에 앉아 있는 것을.
-316쪽에서

다만 이와 같은 읽기 방식은 『벨 자』가 품은 여러 겹의 의미 중 하나만을 떼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벨 자』는 단순히 실비아 플라스가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여성이 처한 상황을 자전적으로 그린 소설이 아니”(「옮긴이의 말」 중에서)며, 에스더는 남성이 되고자 갈망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삶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이 죽음임을 깨달은 하나의 인간이었고, 실비아 플라스는 성별의 차이를 은유로 사용해 단지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있다. 『벨 자』는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 소식과 함께 시작되는데, 에스더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 사건을 머릿속에서 떨치지 못한다. 《텔레그라프》는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을 가진 걸작소설 30편”에 『벨 자』의 이름을 다섯 번째에 올리기도 했다.
실비아 플라스는 『벨 자』를 통해 “그의 세대가 마주하기 꺼린 진실들을 지그시 응시”했고, 고통스러웠을 내면을 소설 속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 소설은 좁은 의미에서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작품이 아니다. 이 소설은 광적인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진정한 현실적인 소설에 담긴 이 질문은 ‘현실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현실에 맞설 수 있는가?’이다.”(《뉴욕 타임스》) 복잡하게 얽힌 주제를 명료한 언어로 세심히 표현하고 있는 문장에 힘입어, 『벨 자』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차분히 그러나 단호하게 물음을 띄울 것이다.

추천사

실비아 플라스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전설이 된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일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녀들은 한때 종 모양의 유리관, 벨 자 밑에 앉아 있었다. 두려움에서 자유를 향해 자신을 쏘아 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벨 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유리관 밖으로 걸어 나와 쓴, 매달리고 싶은 생의 기록이다. 마치 ‘해에 대고 간 칼날처럼’ 날카롭고 본질만 남은. 이제 삶보다 더 뜨거운 그녀의 문학과 정면으로 만날 차례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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