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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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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쪽 | 규격外
ISBN-10 : 893783118X
ISBN-13 : 9788937831188
김종필 증언록 세트 [양장] 중고
저자 김종필,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 출판사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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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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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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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의 43년 정치 인생이 그대로 녹아있는 증언록!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 증언록 세트』. 이 책은 JP와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2015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114회에 걸쳐 연재된 ‘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의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담아낸 것으로 5 · 16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생각까지 JP의 43년 정치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중앙일보 연재 순서를 재구성하고 관련 사진을 재편집하였으며 대한민국 현대사에 숨어 있던 거친 곡절과 절묘한 반전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 2권으로 구성된 이 세트는 ‘박정희와의 첫 만남’을 중심으로 5·16혁명의 발단 배경과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 5·16 이후 재편된 상황을 중심으로 중앙정보부 창설, 공화당 창당, 대일청구권 협상, 용미 외교 등 제3공화국의 수립에 얽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밖에도 2차 외유를 통해 진행된 파독광부. 베트남 파병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김형욱과 얽힌 악연, 유신개헌과 권력 투쟁에 따른 다양한 군상들과 고 육영수 여사의 숨겨진 비화 등을 소개하며 굽이치는 현대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종필
저자 김종필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잠시 국민학교 교사를 지냈다. 해방이 되자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 육군 소위로 군문에 들어갔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며 중공군을 포로로 잡는 등 무공을 세워 한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여러 개의 훈장을 받았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부패한 군을 정화하기 위한 정군운동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어 중령으로 강제 예편 당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지도자로 모시고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5천 년 가난을 벗어날 조국근대화의 횃불을 점화했다.
저자는 5·16의 궁극적 성공을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현대사의 중심에서 헌신과 성취의 이정표를 세웠다. 정치 40여 년 인생 동안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제11대·31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최다선인 9선 국회의원을 기록하며 공화당 · 신민주공화당 · 민주자유당 · 자유민주연합 4개 정당의 총재 · 대표를 지냈다. 2004년 40여 년간의 정치 생애를 마감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저자 :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엮은이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은

박보균 중앙일보 大記者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준호 중앙일보 차장
한애란 중앙일보 기자

목차

추천의 말 홍석현 (중앙일보·TBC 회장)
추천의 말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국 전 내각총리대신)
저자 서문

1권
1부 5·16 과 박정희
1 ‘5·16 혁명공약’의 탄생 22
2 5·16의 두 거대한 물줄기 28
3 5·16 거사의 씨앗 34
4 “이분이 우릴 이끌 분이다” 42
5 천기누설-민심의 또 다른 반영 50
6 두 번의 실패 58
7 혁명 전야 64
8 D데이-“거사 기밀이 샜다” 70
9 혁명 성패의 분수령 78
10 혁명의 완결-새로운 질서 88
11 혁명 반대한 미 8군 사령관과의 담판 96
12 좌익 꼬리표가 붙어 다닌 박정희 106
13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 112
14 6·25전쟁 65주년 특별 회고 118

2부 제3공화국 수립과 한일회담의 진실
15 신질서-국가재건최고회의 출범 126
16 한국판 CIA, 중앙정보부 창설 134
17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제거 140
18 “박정희·김종필 만나러 왔다” 148
19 김일성의 오판 156
20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의심 164
21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년 특별 회고 170
22 민주공화당의 탄생 178
23 현대식 정당의 기틀을 마련하다 186
24 4대 의혹 사건의 오해와 진실 194
25 ‘자의반 타의반’ 1차 외유 202
26 한일회담의 총대를 메다 210
27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정체 218
28 ‘독도 폭파’ 발언의 진실 224
29 위안부 문제와 역사 왜곡 234
30 매국노냐, 조국근대화 위한 결단이냐 240
31 수교 50년, 한일 관계 미래는 248
32 미국의 반 JP 기류를 바꾸다 254
33 2005년 한일 수교 40주년 초청강연 회고 260

3부 조국근대화의 여명과 권력 투쟁
34 경제 재건에 앞장선 기업인 280
35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 이병철·정주영 286
36 박정희와 수출입국 295
37 서독 함보른의 애국가-파독 광부 이야기 302
38 글로벌 한인시대 개막 308
39 베트남 파병과 그 뒷이야기 314
40 TK세력의 형성과 반 JP 4인 체제 322
41 10·2 항명파동의 전말 330
42 JP 호위병 자처하다가 권력 맛본 뒤 변해 338
43 반 JP 전선과 국민복지회 사건 348
44 미국 망명과 최후의 만남 354
45 3선 개헌의 서곡 362
46 3선 개헌 지지의 진실 370

4부 유신 개헌, 그리고 운명
47 3선 개헌과 아슬아슬한 대선 승리 380
48 유신의 책사 이후락 388
49 이후락과 7·4남북공동성명 394
50 유신을 찬성한 진짜 이유 402
51 윤필용 사건과 권력구조의 균열 408
52 자주 국방을 향한 꿈 416
53 핵개발은 좌절됐는가 424
54 박정희의 용미用美외교 432
55 김대중 납치사건 440
56 월남 패망을 예견한 박정희의 통찰력 448
57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456
58 육 여사 서거와 역사의 아이러니 464
59 정인숙 사건과 정일권의 처신법 472
60 총리 사퇴와 수도 이전 계획 478
61 김재규의 등장과 파국의 서막 486
62 박정희의 용인술과 김재규의 과잉 충성 494
63 JP 후계론의 실체 502
64 차지철의 안하무인 510
65 파국의 절묘한 드라마 516

인물 찾아보기 522

2권

5부 10·26과 신군부의 등장
66 YS 제명 사건과 부마사태 12
67 하늘의 도道는 있는가! 20
68 그날, 궁정동의 진실 28
69 박정희와의 18년 36
70 인간 박정희-일품 미소의 추억 44
71 정치인 박정희의 한마디 52
72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60
73 전두환과 12·12 군사반란 66
74 민주공화당의 와해 72
75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80
76 5·17과 신군부의 3김 ‘각개격파’ 88
77 서빙고 분실에 갇히다 96
78 신군부가 꺾은 희망 104

6부 2인자 정치의 제2막
79 2인자의 정치 철학 114
80 망명 아닌 망명 4년 4개월 122
81 정치 인생 제2막을 열다 130
82 여소야대 정국과 편지 정치 140
83 3당 합당, 진천동지震天動地의 전야 148
84 9시간 담판, 민자당의 탄생 156
85 내각제 합의 각서 파문 164
86 민자당 대선 후보 선출을 둘러싼 갈등 172
87 YS의 중앙청 철거, 역사관과 충돌하다 180
88 YS의 하나회 제거와 전·노 처벌 188
89 YS와 결별 … ‘기승전결’ 정치 염원 196
90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특별 회고 204

7부 자민련 창당과 DJP연합
91 ‘더 가야 할 몇 마일’-자민련 창당 210
92 1997년 대선, 3김 최후의 격돌 220
93 DJ는 공산주의자인가- 230
94 ‘내각제 유보’ 단안을 내리다 238
95 6·15남북정상회담의 뒷이야기 246
96 나와 이회창 254
97 나와 노무현 262
98 사무사思無邪의 43년 정치 인생 270

8부 인간 JP, 나를 말한다
99 19세, 일본인 교장을 때려눕힌 뒤 광복을 맞다 280
100 입대-탈영-재입대-육사 8기 입교 288
101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298
102 그림에 담긴 나의 정치 철학 308
103 음악은 정치의 지향점과 닮아 318
104 건축과 민족기록화의 정치학 326
105 정치인의 패션학과 재건복 336
106 광복 70주년 특별 회고 344
107 유묵遺墨과 나의 정치 인생 352
108 은유·상상의 정치 언어-시·한자성어 360
109 골프 사랑과 정치 368
110 내가 본 세계 정상들의 리더십 376
111 중국 지도자들의 리더십 384
112 사진으로 보는 면裏面의 장면들 392

엮은이 후기 박보균 중앙일보 大記者 398
엮은이 후기 김종필증언록팀(전영기·최준호·한애란) 406
엮은이 후기 김상윤 특보 409
김종필 연보

책 속으로

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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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결기와 4천만 국민의 세찬 각오가 어우러졌던 그 어제가 이런 오늘을 만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뿌리 없는 열매는 결코 없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자 서문] 중에서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13장 -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중에서I

‘황태성 사건’ 하면 19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19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 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방송 스튜디오 건물은 착공됐지만 방송용 기자재를 사올 돈이 부족했다.
나는 오재경 장관을 불렀다.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간첩들로부터 압수한 공작금 20여만 달러를 갖고 있었다(1961년 20만 달러는 2억 6,000만 환). 거기엔 황태성이 가져온 돈도 포함됐다. 내가 “이 돈으로 방송 기자재를 사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개국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오 장관은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박 의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 돈을 오 장관에게 넘겨줬다. 그 돈으로 카메라를 포함해 필요한 기자재를 미국에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KBS TV 개국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20장 -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의심] 중에서

내가 총리로 재임하던 1971년 어느 날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총리실로 찾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장소를 찾아봤더니 경기도 용인 쪽이 제일 좋은데, 거기에 섞여 있는 국유지를 사지 못해 골치가 아픕니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유럽의 티볼리나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세우려고 계획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그가 “산림청이 땅을 나한테 좀 팔도록 해주시오”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산림청장을 만났더니 땅을 절대 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산림녹화가 국정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다. 하도 강경하게 반대하기에 머리를 짜냈다. 나는 이 회장에게 “정부 땅의 두 배쯤 되는 땅을 사서 주고 용인 땅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바로 “그거 좋습니다”며 반겼다. 산림청은 대토代土를 받고 삼성에 땅을 내줬다. 그 자리에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이 바뀐 용인 자연농원이 들어섰다. 테마파크의 원조가 이렇게 탄생됐다.
[35장 -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 이병철 ·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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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JP는 역사다!” “소이부답笑而不答”하던 JP, 역사의 비록을 열다. ‘불꽃처럼 살아온 풍운아’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영욕을 거친 구순九旬의 김종필JP. 그는 1961년 5·16을 시작으로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

[출판사서평 더 보기]

“JP는 역사다!”

“소이부답笑而不答”하던 JP, 역사의 비록을 열다.

‘불꽃처럼 살아온 풍운아’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영욕을 거친 구순九旬의 김종필JP.
그는 1961년 5·16을 시작으로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43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초대 중앙정보부장, 9선 국회의원, 두 차례의 국무총리 역임, 4개 정당 총재라는 전무후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격변기였던 지난 반세기 동안 JP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박정희· 김형욱 · 이후락 · 김성곤 · 김재규 · 차지철 · 김대중DJ · 김영삼YS … 그들과의 인연은 혁명 동지로 시작해 끔찍한 악연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정치적 적수로 만나 상생과 공조의 관계로 발전하여 새로운 시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JP와 함께 ‘3김 시대’의 상징이던 DJ와 YS 모두 고인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태양’처럼 자신을 완전히 불사르고 싶었던 JP는 2004년 총선을 끝으로 ‘타다 남은 등걸’ 로 정치 현장을 떠났다.《김종필 증언록》에서 JP는 홀로 남은 자의 마지막 소임을 완수하고자 했다. 오랫동안 자화자찬이 될까 스스로 경계하며 세상의 온갖 풍문에도 소이부답으로 일관해 왔던 그가 마침내 자신이 아니면 증언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10가지 진실
“진실의 가장 큰 적敵은 거짓이 아니라 조작된 신화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말처럼, 《김종필 증언록》은 거짓 신화와의 대결이다. 이 책에서 밝힌 현대사의 새로운 진실들은 그동안 왜곡된 신화와 굴절된 사건 기록에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생명을 얻어 다시 역사의 무대에 섰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義로 삼고…”로 시작되는 5·16 혁명공약 제1조는 당시 사상을 의심받고 있던 궐기군 지도자 박정희를 보호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심하며 그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체포 경위, ‘김일성의 밀사냐 간첩이냐’로 논란을 일으켰던 황태성 사건, 매국노 소리까지 들었던 김·오히라 메모의 진위 그리고 독도 폭파론과 한일 밀약설, 김대중 납치 사건에 얽힌 오해와 진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환국 추진, 민주화 투사로 둔갑한 김재규의 진실, 차지철 비서실장 발탁에 얽힌 뒷이야기,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배경 등 지금까지 현대사의 비록에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들이 새롭게 공개된다.

예술가와 혁명가의 기질을 두루 갖춘 다정다감하고 매력적인 스토리텔러
《김종필 증언록》에 담긴 JP의 육성은 밋밋하지 않고 재미있다. 40여 년에 걸쳐 그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진실’과 함께 국정의 결단, 리더십의 고뇌, 그리고 권력의 내면 등이 살아 숨 쉬는 이유는 JP의 유려한 말솜씨에 있다. 단순히 입담만 좋은 게 아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부터 윈스턴 처칠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질문에도 물 흐르듯 답을 내놓는다. 그가 이끄는 현대사의 한 장면, 한 장면과의 대면은 지루할 틈이 없다. JP를 잘 아는 전직 의원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JP는 말을 참 잘해. DJ가 연설을 잘한다고 하지만 비교가 안 돼. JP가 대중 속에서 이야기 하면 심금을 울려.”
그가 펼치는 독보적인 흡입력의 비결은 예술가와 혁명가의 기질을 두루 갖춘 데 있다. 그가 스스로 “예술가와 혁명가 기질의 공통점은 다정다감多情多感”이라고 밝히듯이 ‘불꽃’, ‘바람’, ‘구름’은 풍운아 JP를 해석하는 키워드다. 전장의 방아쇠를 당기던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온갖 스포츠에도 심취하고 문화 예술과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이 책은 은유나 시구, 한자성어를 적재적소에 인용 · 응용함으로서 직설과 단도직입적 표현을 싫어했던 JP 특유의 표현을 담은 집결체다. 어린 시절부터 다독多讀과 남독濫讀으로 다져진 박학다식과 다방면에 걸친 재능은 그를 이 시대의 ‘매력적인 스토리텔러’이자 다빈치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향기와 상상력이 가득한 그의 언어로 자칫 무겁거나, 아니면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무거운 현대사의 정면과 마주 하는 즐거움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왜 ‘회고록’이 아닌 ‘증언록’인가?
JP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격동과 파란이다. 바로 그가 연출한 시대다. 그가 몸담았던 시절이다. 성취와 고뇌, 좌절과 영광의 이야기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파괴력은 역대 어느 권력자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크다. 그렇기에 자칫 포장과 미화로 흐를 수 있는 회고록보다 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기에 ‘증언록’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 책이 JP의 마지막 소망대로 역사의 충실한 증언인가, 아니면 그가 그토록 경계하고 주저했던 과거에 대한 변명과 미화, 진실의 오도인가 평가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독자의 몫이자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김종필 증언록》에 대해
《김종필 증언록》은 JP와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2015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114회에 걸쳐 연재된 ‘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의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담아낸 것이다. 5·16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JP의 43년 정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책은 중앙일보 연재 내용과 글의 순서, 관련 사진을 수정·보완·재편집함으로써 대한민국 현대사에 숨어 있던 거친 곡절과 절묘한 반전을 끄집어내어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박정희와의 첫 만남을 중심으로 5·16의 발단 배경과 진행 과정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5·16 이후 재편된 상황을 중심으로 중앙정보부 창설, 공화당 창당, 대일청구권 협상, 용미用美 외교 등 제3공화국의 수립에 얽힌 이야기가 전개된다. 3부에서는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국내 기업인들의 다양한 활동과 JP의 2차 외유를 계기로 이루어진 파독 광부 이야기. 베트남 파병 등에 얽힌 뒷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며, 김형욱이나 김성곤 등 악연이자 정치적 라이벌과 관련된 인물들의 일화가 공개된다. 4부는 유신헌법 개헌과 권력 투쟁에 따른 다양한 군상과 고 육영수 여사의 숨겨진 비화를 소개한다.
5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18년 동안에 대한 회고와 함께 10·26과 신군부의 등장으로 재편되는 변화를 서술한다. 6부는 2인자로서 JP의 정치 철학과 함께 3당 합당으로 이어진 고 김영삼YS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7부에서는 YS와의 결별 이후 자민련 창당과 고 김대중DJ 대통령과 함께한 순간들을 전한다. 마지막 8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간 JP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공개한다.

* 책속으로 추가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까 박 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뜻밖이었다. 내가 본 차지철은 그런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인물이 못 됐다. 나는 “그래요? 차지철을요?”라고만 대꾸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박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대사가 차지철을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추천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였다. 생전에 육 여사는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 보시라”고 대통령에게 권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효자로 알려졌고, 술?담배를 하지 않는 차지철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육 여사는 차지철을 박 대통령 곁에 두면 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육 여사가 없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다 밤새 생각이 달라졌다. 차 실장 임명은 육 여사가 남긴 유작遺作인 셈이다.
[58장 -육 여사의 서거와 역사의 아이러니] 중에서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72장-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중에서

1997년 10월 27일 밤 8시 30분. 김대중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나는 마당으로 마중 나가 그를 기다렸다. 김 총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감정이 상당히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DJ가 이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시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사를 한 뒤 갑자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DJ를 소파에 앉도록 권하며 “그러잖아도 도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이 시키지도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은 이후락이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낸 ‘자기가 죽을 꾀’였다. 내가 김대중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 외에 박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가슴에 맺힌 원寃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92장 - 1997 대선, 최후의 3김 격돌] 중에서

중공군을 생포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세밑 금성천의 칼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다. 연대장인 허영순 대령으로부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네주는데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인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출장차 인근 7사단장에게 왔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대령은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 오는 길에 춘천 시장통에서 우연히 애를 업고 있는 옥이를 만났어. 자네가 중공군과 싸우고 있는데 죽을 거라는 소문이 나서 ‘같이 죽으러 왔다’면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해. 빨리 가봐.”
‘옥’이는 아내 박영옥이었다. 연대장 허 대령은 고맙게도 자기 지프에 쌀 한가마니를 실어주고 아내를 만나고 오라고 했다. 춘천 거리는 폭격으로 집과 건물이 다 무너진 쑥대밭이었다. 급히 가서 보니 아내는 소양강 옆에 가마니로 바람막이를 하고서 애를 데리고 있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군수용 화물 열차를 타고 왔어요. 서울서 춘천까지는 GMC 군용 트럭에 태워 달라고 했고요. 당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올라왔어예”라며 엉엉 울었다. 돌 지난 딸 예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연락병에게 부대에서 모포 대여섯 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일주일을 함께 지낸 뒤 아내를 대구로 내려 보냈다. 그때 40만~50만 군인 중에서 남편이 죽을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멓게 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며 최전방까지 찾아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내 박영옥은 그런 여자였다.
[ 101장-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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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 김종필 증언록 】        &nb...

     

    김종필 증언록 】          김종필 / 와이즈베리

     

        

    JP. 이 분은 대한민국의 현대사 중심을 걸어왔다. 5.16을 앞둔 1941514(일요일)부터 증언이 시작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 “석 달 전 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하극상(下剋上)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면서 벗어뒀던 카키색 군복이다. 중령 계급장은 달려 있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나는 이 군복을 입고 먼 길을 나설 것이다.”

     

     

    196147일 서울 명동 회합에 참석한 5. 16 주체는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예비역 중령을 포함해 총 29명이었다. 초기부터 가담한 멤버들이다. 29명의 평균 연령은 35. 젊은 장교들이었다. 5.16 성공 뒤 이들 29명의 행보는 엇갈린다. 일부는 권력의 핵심에 섰다. 김종필, 김재춘, 김형욱 3명의 중앙정보부장이 나왔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김종필을 비롯해 15명이다. 거사에 참여했지만 반혁명으로 몰린 이들도 있다.

     

     

    5.16 거사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였을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장면 총리가 지목된다. 그 한 해전 4.19 혁명은 새 시대를 열었다. 민주당은 총선에 압승했다. 812일 민주당 장면 내각이 출범했다. 내각제 헌법의 국무총리는 권력 실세다. 대통령(윤보선)은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위치였다. 정권 출범 뒤 민주당 내부의 분열, 사회 불안이 이어지면서 장면 정권의 운신 폭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9개월 뒤 장면은 군부의 기습을 당했다. 장면은 메모에 이렇게 기록했다. “1961516일 쿠데타 발발, 박정희 소장 지휘하 군사 쿠데타 발생.”

     

     

    일본 식민제국주의 치하의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JP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선인 위안부문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한일 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1951년부터 1965년까지 벌인 14년간의 회담에서 위안부는 단 한 번도 의제가 된 적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위안부로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구사일생으로 고국에 돌아온 그들의 나이는 아직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나이었다. 겨우 고국에 돌아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물론 지극히 일부였을 것이다. 그들의 과거사와 상처를 꺼내는 것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는 증언은 납득하기 힘들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좌절시킨 것은 미국 책임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북한을 치고 들어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중단됐지만 북한은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2010년대에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정작 막았어야 할 북한 핵무기는 못 막고 엉뚱하게 우리의 손발만 묶은 셈이다. “미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우리의 핵무기를 막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을 손바닥 안에 놓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어 자기들 손바닥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JP의 증언은 노무현까지 이어진다. “나는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가치는 요지부동의 국가관과 위기관리의 결단력이라고 본다.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중엔 인간미도 있다. 인간미는 정치인의 매력적인 품성이다. 2002년 대선 무대에 등장해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성정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었다.”

     

     

     

    201410월부터 201512월까지 14개월간 중앙일보의 김종필증언록팀JP의 현대사 기억을 채취했다. “이제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 나는 내 증언록을 누가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없다.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읽는 이들이 김종필이라는 자가 헛되이 움직이지는 않았구나, 그것만 이해해준다면 고맙겠다.” 지난 역사를 보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 길이다. 현재를 이해하는 것은 또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 JP라는 풍운아가 살아온 과정은 곧 한국의 현대사가 걸어 온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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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필 증언록 | na**eje | 2016.03.20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김종필 증언록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책을 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종필 증언록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책을 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내용이 뉴스에 나올정도였고, 도서 출판과 관련된 기념회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했다는 내용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한 인물이 책을 냈고 그것을 기념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야의 많은 혹은 유력한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겨울에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김종필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김종필이라는 이름과 함께 나오는

    몇몇의 중요한 이름중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김종필이라는 사람 본인은 대통령을 하지 않았지만, 혹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부터 시작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에나 나오는 인물들과 관계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어 나가는데는 쉽지 않은 결심도 필요했지만,

    어쨌든 뒤를 보지 않고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서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썼던 이른바 '회고록'을 쓰지 않고, '증언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전에 나왔던 다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회고록'이라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저자의 의도에 동감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6과 박정희 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1권에서부터 

    그동안 역사책이나 뉴스와 같은 매체에서 단순하게, 혹은 단편적으로 그려왔던

    5.16에 대한 관련자의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5.16에 대한 명칭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서로의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으로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5.16이라는 상황에 대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의 시각으로 부터, 과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증언'을 들어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는 동안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서 살짝 이상했었습니다. 

    알아보니, 이 책은 이미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1년 동안 연재 되었던 기사를 

    정리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땐가 중앙일보에 실렸던 

    특정 부분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신문을 통해 봤던 경우라도 저 같은 경우 처럼 전체를 다 읽어 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책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는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읽다보면 '정말'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인물들, 사건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옵니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이 과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겪은 일이고

    또한 그의 생각과 기억을 '증언'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단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어떤 평가나 의도를 고민하기 보다는 일단 그의 증언 내용에 

    집중했는데요. 제 스스로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좀 더 많은 공부와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나 여러 의견들을 다음에 보게되더라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거의 천 쪽에 이르는 책을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주행했다는 점에서 작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김종필 증언록 | mn**tn | 2016.03.2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아무리 탁월한 족적을 남기고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사람 자체를 놓고 "역사"라 일컫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탁월한 족적을 남기고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사람 자체를 놓고 "역사"라 일컫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인물에 대해 찬반과 호오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라면 어떤 중립적인 규정을 시도한다는 것부터가 지난한 작업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모르지 않지만, 왠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그리고 근엄한 평자까지 겸하는 중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그가 곧 역사였다"라는 비유적 평언을, 좀 다른 의미에서 허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역사(일단 자유당 집권기를 제외하면)의 결정적 전환점에는 그가 항상 자리해 있었습니다. 5.16 군사정변의 한 주역(이때 그는 실제로 예비역이었으므로 병력 동원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았죠)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3선개헌(처음에 그는 반대 입장이었고, 여당 내에서 집중적으로 반대했던 인물들은 바로 그를 옹립하려는 의도였죠), 유신, 신군부의 등장, 여소야대 정국의 캐스팅 보트, 3당 합당, 그리고 마지막 DJP 연합까지, 한 개인이 이처럼이나 정계에 오래 머물고 그 머문 기간 동안 현대사의 전환점적 사건들에 모조리 개입할 수도 있는 건지, 이 두꺼운 책 페이지를 넘기고 쓰다듬을수록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으로 개탄스럽다는 감회, 이 양가의 상념이 동시에 머리 속을 교차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YS의 경우 심한 고초와 격렬한 투쟁의 시기를 겪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치욕, 몰락의 쓴맛을 인생에서 다신 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JP는 "영욕의 인생"이라는 말이 잘 걸맞을 만큼, 영화로울 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였고, YS나 DJ와 결별할 때는 노년에 참으로 수치스러운 곤경에 몰린다는 느낌을, 그에게 공감할 아무 이유가 없는 입장에서도 지울 수가 없었고요. 이 거대한 생은 언제나 공적 인생이었고, 그의 부상과 몰락 모두가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바꿔 놓았던 중대한 사건들과 긴밀히 엮여 있었습니다.

     

    이 책은 케이스입으로 1권, 2권이 함께 묶여 있습니다. 회고록을 1,2권으로 나눠 내는 게 보통인데, YS나 이종찬씨, 박철언씨 같은 경우는 케이스입도 아니고 하드커버도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은 이 책처럼 하드커판 2권 묶음이었고요. 이 회고록들을 저는 일일이 구입해서 꼼꼼히 읽어 본 독자지만, 이 책은 그런 기록들과는 또다른 개성을 풍긴다는 느낌이 지금 정리됩니다. 솔직히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렴풋이나마 한 문장으로 적어 보자면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보다 솔직한 태도로 털어 놓았다" 정도겠습니다.

     

    얼마 전(이 책 출판 기념회 말고, 그의 구순 잔치 때), 그는 대단히 격노한 어조로 5.17 특별조치 당시 신군부의 재산 환수 처분에 대해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당시의 그 참담한 처지에 대해, 독자가 처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세히 술회합니다. YS에 의해 문민정부에서 축출당했을 때, (이 증언록에는 안 나와 있으나) "이것보다 더 힘든 일도  다 겪어 봤다."고 결기를 다지기도 했죠. 이 증언록에서 그는 YS의 회고록 일부를 인용하며, "김종필을 붙들어 두지 못한 게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라고 한 말을 문언 그대로 믿고 싶다며 담담한 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 읽어 보면 저자는 "믿고 싶다"고만 했지 그 말이 틀림없겠다거나 의당 그래야만 한다는 취지가 아닙니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 본인의 아전인수격 왜곡이나 미화, 윤색이 최대한 절제된 게 특징입니다. 이런 말까지 다 털어놓는다는 게 자존심이나 감정적 이유에서도 쉽지 않을 텐데 싶은 대목이 참 많았습니다. 워낙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다 보니 회고록에 그런 말이 당연히 들어가지 않겠나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치부나 좌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저런 가감없는 태도를 취하기란, 유명인이 아닌 우리들 대중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게 아니죠. 공산주의식 강제 자아비판이 아닌 이상, 당사자 본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중에는 가장 솔직한 한계까지 가지 않았나는 생각입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 근접 거리에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르포도 시중에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제법 묵직한 평론과 일차사료에 가까운 중요성을 담은 것도 있고,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런 저널리즘의 충실한 "증언"들을 균형감각 있게 읽고 취사선택을 하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조감도를 머리 속에 그리는 게 보통이죠. 이런 기록들과, 정치인의 "회고록"은 대체로 내용이 크게 상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양식 있는 독자라면, 그래도 중립적인 위치겠다 싶은 저널 쪽을 더 크게 의존하는 게 보통이죠. 그러나 이 책은, 거물급, 아니 그 정도 말로는 올바른 형용이 어려운 초거물급 인사 본인의 입으로 털어 놓은 증언을 정리한 내용인데도, 시선이 담담하고 초연하며 공정합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박정희 정부에서 모두 국무총리를 역임한,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이 지니기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력을 갖춘 진귀한 케이스입니다. 성향이 전혀 상반되고 화해가 불가능한 정적 둘과 차례로 손을 잡고, 두 권력자들로부터 모두 견제를 받았으며, 그러면서도 두 권력자 모두 그의 힘을 어느 순간에는 절실히 필요로 하며 자세를 낮추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실로 많은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이 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뇌리에 머문 느낌은, 이분이 박, 김 양 진영으로부터 비교적 비슷한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어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 업무 능력과 추진력 등에 대해서만 높은 평가를 하고 있을 뿐, 자신의 처삼촌이기도 한 그에 대해 가슴이 사무칠 만큼 감정적 접착을 보이지는 않습니다(기념관 건립 건은 그저 의리의 발로로 보이기도 하고요). "유신 정권 치하에서 겪은 일은 살아 있는 내가 대신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는 대목에선, 정계를 누빈 그 수많은 실력자들 중에 진짜 인간의 가슴을 지니고 사내다운 낭만과 진심을 유지한 이가 이분뿐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회고록"이 아닌 증언록입니다. 책을 JP가 직접 쓰지 않고 기자들한테 들려 준 이야기를 다른 필진이 정리한 까닭도 있지만, "회고록"에서 흔히 드러나는 아전인수식의 위증 없이, 역사의 법정 앞에 선 증인의 겸손된 자세로 담담히 들려 주는 "자신과 매듭매듭 결부된, 상처 많은 한국사"의 진술 자체라는 점에서, 이 제목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 JP가 말하는 한국 정치사 | 5f**10 | 2016.03.2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결기와 4천만 국민의 세찬 각오가 어우러졌던 그 어제가 이런 오늘을 만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뿌리 없는 열매는 결코 없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 '저자 서문'중에서

     

     

    5.16혁명과 현대사의 물결을 증언하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운정 김종필은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책에서 밝힌다.

     

    5천 년 가난을 벗어나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나라 한번 만들어보자'고 궐기한 군사혁명은 마침내 '무항산 무항심'의 명언이 지향하는 바 민주복지 국가 건설로 이어졌다.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복지는 경제 건설이라는 '항산恒産'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라는 '항심恒心'을 일구어낸 것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해석을 입히는 것은 호사가나 역사가의 몫이다. 운정雲庭은 그저 굽이치는 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에다 '증언록'이란 이름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론'이란 타이틀을 붙이지만 굳이 이렇게 명명한데는 있었던 사실만을 얘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는 1년 동안 매주말 서울 청구동 운정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2015년 3월 3일부터 연재된 중앙일보의 '소이부답笑而不答' 기사는 12월까지 114회로 이어지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재물을 가감없이 그대로 묶어서 책으로 출간했다.

     

     

     

     

     

     

    처음 본 박정희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 박정희를 의심하다

     

    '황태성 사건' 하면 19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19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 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방송 스튜디오 건물은 착공됐지만 방송용 기자재를 사올 돈이 부족했다.


    나는 오재경 장관을 불렀다.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간첩들로부터 압수한 공작금 20여만 달러를 갖고 있었다(1961년 20만 달러는 2억 6,000만 환). 거기엔 황태성이 가져온 돈도 포함됐다. 내가 "이 돈으로 방송 기자재를 사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개국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오 장관은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박 의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 돈을 오 장관에게 넘겨줬다. 그 돈으로 카메라를 포함해 필요한 기자재를 미국에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KBS TV 개국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 정주영과 이병철


    내가 총리로 재임하던 1971년 어느 날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총리실로 찾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장소를 찾아봤더니 경기도 용인 쪽이 제일 좋은데, 거기에 섞여 있는 국유지를 사지 못해 골치가 아픕니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유럽의 티볼리나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세우려고 계획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그가 "산림청이 땅을 나한테 좀 팔도록 해주시오"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산림청장을 만났더니 땅을 절대 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산림녹화가 국정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다. 하도 강경하게 반대하기에 머리를 짜냈다. 나는 이 회장에게 "정부 땅의 두 배쯤 되는 땅을 사서 주고 용인 땅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바로 "그거 좋습니다"며 반겼다. 산림청은 대토代土를 받고 삼성에 땅을 내줬다. 그 자리에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이 바뀐 용인 자연농원이 들어섰다. 테마파크의 원조가 이렇게 탄생됐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까 박 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뜻밖이었다. 내가 본 차지철은 그런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인물이 못 됐다. 나는 "그래요? 차지철을요?"라고만 대꾸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박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대사가 차지철을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추천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였다. 생전에 육 여사는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 보시라"고 대통령에게 권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효자로 알려졌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차지철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육 여사는 차지철을 박 대통령 곁에 두면 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육 여사가 없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다 밤새 생각이 달라졌다. 차 실장 임명은 육 여사가 남긴 유작遺作인 셈이다.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최후의 3김 격돌

     

    1997년 10월 27일 밤 8시 30분. 김대중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나는 마당으로 마중 나가 그를 기다렸다. 김 총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감정이 상당히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DJ가 이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시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사를 한 뒤 갑자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DJ를 소파에 앉도록 권하며 "그러잖아도 도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이 시키지도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은 이후락이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낸 '자기가 죽을 꾀'였다. 내가 김대중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 외에 박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가슴에 맺힌 원寃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중공군을 생포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세밑 금성천의 칼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다. 연대장인 허영순 대령으로부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네주는데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인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출장차 인근 7사단장에게 왔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대령은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 오는 길에 춘천 시장통에서 우연히 애를 업고 있는 옥이를 만났어. 자네가 중공군과 싸우고 있는데 죽을 거라는 소문이 나서 '같이 죽으러 왔다'면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해. 빨리 가봐"


    '옥'이는 아내 박영옥이었다. 연대장 허 대령은 고맙게도 자기 지프에 쌀 한가마니를 실어주고 아내를 만나고 오라고 했다. 춘천 거리는 폭격으로 집과 건물이 다 무너진 쑥대밭이었다. 급히 가서 보니 아내는 소양강 옆에 가마니로 바람막이를 하고서 애를 데리고 있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군수용 화물 열차를 타고 왔어요. 서울서 춘천까지는 GMC 군용 트럭에 태워 달라고 했고요. 당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올라왔어예"라며 엉엉 울었다.

     

    돌 지난 딸 예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연락병에게 부대에서 모포 대여섯 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일주일을 함께 지낸 뒤 아내를 대구로 내려 보냈다. 그때 40만~50만 군인 중에서 남편이 죽을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멓게 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며 최전방까지 찾아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내 박영옥은 그런 여자였다.

     

     

     

     

     

    JP는 역사다

     

    김종필의 삶은 현대사다. 한국 현대사는 격동과 파란이다. 그는 그 시대를 증언했다. 그가 연출한 시대다. 그가 몸담았던 시절이다. 성취와 고뇌, 좌절과 영광의 이야기다. 그는 군사혁명으로 세상에 등장해 5.16 혁명 공약을 만들었는데, '반공을 국시국시의 제1의義로 삼는다'에 숨은 사연을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령 시절 좌익으로 몰려 구속, 예편당한 불행한 때가 있었으므로 주한미군은 그런 박정희를 의심했기 때문에 이를 잠재울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거다.

     

    혁명은 야망의 분출이다.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 수준이었으니 구습舊習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그런 혁명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미국 CIA가 박정희를 견제할 목적으로 김형욱을 활용해 <김형욱 회고록>을 출간, 온갖 비난으로 박정희를 헐뜯었지만, 조작된 내용이 너무 많다고 그는 증언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법정에서마치 자신이 민주화 투사인 양 행세햇지만, 그는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에서 패한 후 발작을 일으켜 총을 쏜 살인범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영원한 이인자였다. 권력은 냉혹하다. 이는 나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거되지 않은 이인자였으니 그만큼 박정희도 순수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의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집권당의 당대표 등 노욕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내 무덤을 파헤치라고 하고 싶어"라고 했다. 한국 정치사에 앞으로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다. 격동기의 한국정치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 김종필 증언록 | co**2890 | 2016.03.1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질문>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재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

    질문>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재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대부분 군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후에는 언론을 통제한다거나 반대파를 숙청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한다. 이것은 은밀하게 계획되며 기습적으로 감행된다.

    답>

    쿠데타

    그런데 김종필은 이 질문에 대해서 "혁명"이라고 답했다.

    명확한 오답이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주체로 체제 변혁을 꾀하는 것, 즉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있어야 혁명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1961년 5월 16일에 발생한 사건은 군사쿠데타가 답이다. 김종필이 계획하고(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5.16 군사쿠데타는 자신이 계획하고 박정희와 군사세력이 동조했다) 성사시킨 5.16에 대해 시종일관 '혁명'이라고 칭하는 <김종필 증언록>은 사실에서 많이 벗어난다. 즉, 이것은 김종필의 '증언'일 뿐이다.

    1961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등장해서 2004년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43년 동안 자신이 겪은 대한민국 정치를 다룬 <김종필 증언록>은 일단 재미있게 읽힌다. 삼국지처럼, 혹은 정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그가 사생의 결단을 했다는 그 절박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바는 없지만 6.25 전쟁을 치른지 10년도 안되는 상황, 어지럽던 나라에서 혼란스러운 풍조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그 몇 달을 마치 영화처럼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서 김종필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절박했다고 하지만 이유가 부족하고 4.19는 벌어진 일이 되어버린다.


    1961년 5.14일 일요일. 나는 아내에게 군복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 나는 그해 그 봄, 그렇듯 결연했다. 사생의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함이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중략 1960년 4.19가 벌어졌다.

    당시 소장이던 박정희는 김종필의 증언에서 박 장군이 되기도 하고, 혁명공약 제1조의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문장은 박정희의 빨갱이 혐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업고 더욱 커져서 온 국민을 옥죄는 사상이 되기도 함을 엿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만들었던 이유가 당시 쿠데타의 주요 세력이었던 이북 출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증언은 솔직하고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현안에 김종필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는 현대 정치사의 곳곳에 등장해 흐름을 바꿔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진 책임이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자찬과 5.16의 미화로 증언록의 대부분을 채우기는 했지만, 거꾸로 우리의 의식이 이런 정치가와 정부를 용인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Alexis de Toqueville:1805~1859)의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싶다. 랑케가 말한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라는 실증주의 역사철학의 진술에 매여 역사적 서술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데, 여러 사실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그 사실을 해석하는 것도 모두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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