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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모던 클래식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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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쪽 | A5
ISBN-10 : 893749051X
ISBN-13 : 9788937490514
숨통(모던 클래식 51) 중고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역자 황가한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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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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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110826, 판형 140x210, 쪽수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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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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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거센 흐름을 마주한 주변인들의 지난한 여정! 아프리카 현대 문학을 이끄는 차세대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집 『숨통』. 2002년부터 6년간 세계 유수의 잡지에 발표했던 단편 12편을 모은 것으로, 세계화의 흐름에 맞서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분투기를 담아냈다. 남편이 미국과 나이지리아에서 두 집 살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은켐, 모든 걸 미국식으로 바꾸려 드는 남편 때문에 답답한 치나자, 가족과 나이지리아 전통에 무심한 아들이 걱정되는 느왐그바 등 저마다 다른 삶의 내력을 지닌 다양한 나이지리아인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주변인으로서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1977년 9월 15일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다. 나이지리아 대학교 의약대에 1년 반 동안 다니다가 열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의 드렉셀 대학교에서 2년간 언론정보학을 수학한 후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교로 옮겨 언론정보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각각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생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면서도 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감성을 보여 주는 작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의 엄격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열다섯 살 소녀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자주색 히비스커스』(2003)를 발표하며 영연방 작가상,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수상하고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이지리아 현대사를 정확히 조명하면서 그곳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 낸 두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2006)로 오렌지 소설상을 받고 “천재 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맥아서 펠로로 선정되었으며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 주목해야 할 100대 소설”의 목록에도 올랐다. 소설집 『숨통』(2009)은 모든 것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미국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쓰며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개척해 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지난한 여정을,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이스 캐럴 오츠와 치누아 아체베의 찬사를 받으며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도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면서 소설작법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뉴요커》에서 뽑은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 20인’과 하버드 대학교 래드클리프 고등 연구소 펠로로 선정되었다.

역자 : 황가한
역자 황가한은 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어 및 불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지평선』,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가 있다.

목차

1번 감방 9
모조품 33
사적인 경험 61
유령 79
지난주 월요일에 101
점핑 멍키 힐 129
숨통 153
미국 대사관 171
전율 189
중매인 221
내일은 너무 멀다 245
고집 센 역사가 259

옮긴이의 말 285

책 속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 동안 그의 눈은 눈물 어린 꿈으로 빛났다. “우리도 언젠가는 아드모어나 메인 라인의 다른 동네에 있는 그런 집에서 살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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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을 하는 동안 그의 눈은 눈물 어린 꿈으로 빛났다. “우리도 언젠가는 아드모어나 메인 라인의 다른 동네에 있는 그런 집에서 살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변해 버린 그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월요일에」, 112쪽

당신에게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나이지리아라고 대답하고 나서 그가 보츠와나의 에이즈 퇴치 운동에 돈을 기부한 얘기를 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요루바족인지 이보족인지를 물었다. 얼굴을 보니 풀라니족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깜짝 놀랐다. (중략) 그는 가나와 우간다와 탄자니아에 가 본 적이 있고, 오코트 프비테크의 시와 아모스 투투올라의 소설을 좋아하며, 사하라사막 이남의 나라들과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당신은 경멸감을 느끼고 싶었고, 그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그 경멸감을 보여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를 너무 좋아하는 백인들과 너무 싫어하는 백인들은 똑같은 부류, 즉 찰난 척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숨통」158~159쪽

“부인? 미합중국은 정치적 박해의 피해자에게는 새로운 삶을 제공합니다만 그러려면 반드시 증거가…….” 새로운 삶.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줬던 것은 우곤나였다. 그녀는 자신이 새로운 신분, 새로운 정체성에 적응해 가는 속도에 깜짝 놀랐었다. “제가 우곤나 엄마예요.” 그녀는 유치원에서, 교사들에게, 다른 학부모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중략) 꽃이 피어서 벌이 모여들면 그녀는 땅 위에 도두앉은 채 꽃을 따서 빨아 먹고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 먹은 꽃들을, 우곤나가 레고 블록으로 그랬듯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놓고 싶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을. (중략)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 대사관을 나와서, 아직도 법랑 접시를 한껏 앞으로 내민 채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을 지나 자기 차에 올라탔다. -「미국 대사관」, 186~187쪽

그날은 신부가 미사를 시작하면서 성수로 신도들을 축복하는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패트릭 신부가 왔다 갔다 하면서 큰 소금 통처럼 생긴 것으로 사람들에게 물을 뿌렸다. 우카마카는 그를 쳐다보면서, 미국의 가톨릭 미사가 나이지리아보다 얼마나 억제되어 있나 생각했다. 나이지리아에서였다면, 땀 흘리며 허둥지둥하는 복사(服事)가 든 성수 통에 신부가 담근 것은 망고 나무에서 꺾은 싱싱한 녹색 가지였을 것이고, 신부는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물을 뿌리고 빙글빙글 돌아서 성수가 비 내리듯 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흠뻑 젖은 채 미소를 띠고 성호를 그으면서 자신들이 정말로 축복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전율」, 218~219쪽

그가 카트에 포장육을 담았을 때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나는 오그베테 시장에서 자주 하던 것처럼 고기를 직접 만져 보고 색깔이 얼마나 빨간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푸주한이 방금 자른 고기를 들어 보이면 파리가 그 주위를 윙윙대곤 했다. “저 비스킷 좀 사도 돼요?” 내가 물었다. 버턴스 리치 티의 파란 포장이 눈에 익어서였다. 비스킷을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카트에 뭔가 익숙한 게 있었으면 했다. “쿠키. 미국인들은 그걸 쿠키라고 불러요.” 그가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서 비스킷(쿠키)을 집었다. (중략) “영어로 말해요. 당신 뒤에 사람들 있어요.” 그가 반짝이는 보석으로 가득한 유리 진열장 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그리고 그건 엘리베이터예요, 리프트가 아니라. 미국인들은 엘리베이터라고 해요.” -「중매인」, 229~233쪽

느왐그바가 그 애를 안은 순간부터 아기의 밝은 눈동자는 생글거리며 그녀를 쳐다봤고 그녀는 오비에리카의 영혼이 돌아왔음을 알았다. 여자애로 환생하다니 이상한 일이었지만 조상님의 뜻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오도널 신부는 아기에게 그레이스라는 세례명을 주었지만 느왐그바는 손녀를 ‘내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뜻의 아파메푸나라고 불렀다. 꼬마 손녀가 그녀의 시와 이야기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소녀가 되어서도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데 느왐그바는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파메푸나가 중등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는 전율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숙학교에서 배우게 될 새로운 방식들이 손녀의 투지를 사라지게 하고 아니켄와 같은 옹고집이나 음그베케 같은 무력함으로 바꿔 놓을까 봐 겁났기 때문이다. -「고집 센 역사가」 278~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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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아버지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최신작 급격히 밀려들어 온 미국 문화의 물줄기 세계화라는 이름이 붙은 그 거센 흐름을 마주한 사람들 동경과 환멸, 몰이해와 소통의 순간들을 오가...

[출판사서평 더 보기]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아버지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최신작

급격히 밀려들어 온 미국 문화의 물줄기
세계화라는 이름이 붙은 그 거센 흐름을 마주한 사람들
동경과 환멸, 몰이해와 소통의 순간들을 오가며
공존에 다다르려는 주변인들의 위태하고도 흥미로운 여정


ㆍ아디치에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을 만들어 낸다. 이 캐릭터들은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당신의 머리와 심장 속으로 뛰어 들어올 것이다. - 〈USA 투데이〉
ㆍ작가는 우아함과 솔직함을 갖춘 매우 숙련된 이야기꾼이다. 짧은 길이의 제약을 받긴 해도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 〈옵저버〉
ㆍ외국에서의 삶을 꿈꾸거나,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해야 하는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보내는 동정 어린 시선. - 〈파이낸셜 타임스〉

아프리카 현대 문학을 이끄는 차세대 대표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신작 『숨통』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51번)으로 출간되었다. 아디치에는 『자주색 히비스커스』로 등단하자마자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두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2006)로 오렌지 소설상을 받고 “천재 상”이라 불리는 맥아서 펠로로 선정되었다. 『숨통』은 2002년부터 6년간 《프로스펙트》, 《그란타》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발표했던 열두 개의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으로, 모든 것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미국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전통을 지키려 애쓰며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개척해 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지난한 여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전작들을 통해 고국 나이지리아가 겪은 역사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던 작가는 이번에는 열아홉 살에 도미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이 아닌 ‘타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다 동시대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화라는 커다란 흐름에 놓인 약소국가의 한 개인이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낸 『숨통』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작가의 날카롭고 섬세한 관찰력과 진중하면서도 곳곳에 배어 있는 유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09년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도서’ 목록에 올랐다. 아디치에는 2011년 《뉴요커》에서 뽑은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 20인’과 하버드 대학교 래드클리프 고등 연구소 펠로로 선정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져 나가고 있다.

■ 세계화의 흐름에 맞서 ‘자기만의 삶’을 꾸려 나가려는 이들의 이야기
『숨통』에는 저마다 다른 삶의 내력을 지닌 다양한 나이지리아인들이 등장한다. 나이지리아라는 나라 자체는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고민은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다. 나이지리아에 살면서도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미국에 살지만 나이지리아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양쪽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모습에 구미 문화권 출신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도 하지 않는 이른바 주변인으로서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들은 미국 혹은 나이지리아 어딘가에서 펼쳐지지만, 그들이 어디 사느냐 하는 공간적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주인공을 한국 사람이라고 가정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작품은 국가, 가족, 개인의 신념 등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을 위협해 오는 것으로부터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키고 싶어 하며, 보호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길 원하는 인간의 열망을 매우 세밀하게 그려 낸다.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애에겐 마침내 여기 와서 나를 미국으로 끌고 갈 구실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이 너무 편리해서 재미없는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회”라 부르는 것으로 더럽혀진 삶. 내게는 맞지 않는 삶. (중략) “그런 생활이 좋으세요, 아빠?” 은키루카는 요즘 나랑 통화할 때 은근히 귀에 거슬리는 미국식 악센트로 이렇게 묻는 데 맛을 들였다. 그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냥 내 삶일 뿐이지. 나는 딸에게 그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유령」에서

작품들 속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신념 아래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삶의 양식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에 자신의 삶이 휩쓸릴까 조심스러워하는 이들이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무엇이 좋고 나쁜가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거대하고 막강한 세력 앞에서 무차별적인 변화를 강요받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며 모든 것이 단일한 기준에 의해 통합되고 수렴되어 가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으로 망명 간 남편 때문에 정부 요원의 손에 아들을 잃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결혼 이민을 와서 사랑하지도 않는, 배 나오고 입 냄새가 나며 이보어도 못 쓰게 하는 의사 남자와 살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기보다는 최대한 저항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미국 대사관」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자가 죽은 아들을 팔아넘겨 미국 망명 비자를 받느니 이 땅에 남겠다며 대사관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이나, 「고집 센 역사가」에서 노인 느왐그바가 기독교식 장례를 위해 자기 몸에 성유를 발랐다간 남은 힘을 다해 후려쳐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 등은 ‘대세’가 무엇이든 각 개인은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상기시켜 준다.

■ 편견 너머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해 주는 소설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긴 듯이 한참 파이프를 씹더니, 이런 유의 동성애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느 아프리카요?” 우준와가 불쑥 말했다. (중략) “지금이 2000년일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는 여자 이야기가 대체 얼마나 아프리카적이라는 거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그러자 세네갈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속사포처럼 쏟아 내기 시작하더니 약 1분 동안의 일장 연설을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네갈인이에요! 내가 세네갈인이라고요!” -「점핑 멍키 힐」에서

당신은 그와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당신의 아버지가 실은 교사가 아니라 건설 회사의 말단 운전사라고 그에게 말했을 때. 그리고 당신은 아버지가 털털거리는 푸조 504를 운전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중략) 당신이 이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당신의 손을 잡고는 당신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세상이 자기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혹은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갑자기 화가 났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에게,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냥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말했다. -「숨통」에서

『숨통』은 또한 타자, 특히 주변부를 바라볼 때 범하기 쉬운 오류를 보여 준다. 작품 속에는 소위 아프리카 애호가, 아프리카 전문가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며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특정 대상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많은 정보를 터득한다고 해서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중심부에서 서서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누군가를 편견 없이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그 불가능성을 겸허히 인정하고 시각의 축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이동하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에드워드 교수가 “이런 유의 동성애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점핑 멍키 힐」)이나 외제차를 살짝 박은 아버지가 길바닥에 엎드려 “저와 제 가족을 판다 해도 선생님 차의 타이어 하나 살 수 없을” 거라며 비는 모습이 꼭 ‘똥’ 같아 보였다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인 남자 친구가 “당신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숨통」)은 자기가 아는 일부 사실만으로 그 대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만용’과 같다. 작가는 ‘아프리카’를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지 못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동성애, 결혼 이민과 같은 일들을 진솔하게 그려 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편견의 더께를 걷어 내고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소설에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진실이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며 이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일상성 안에서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여 줄 때 느껴지는 진실”을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이 개인의 삶에 드리운 행복과 불행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소설집 『숨통』에도 작가의 이러한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낯선 세계 속에서 갖가지 난관들을 헤치며 자신의 영역을 위태롭게 확보해 나가는 이들에 관한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진솔한 이야기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채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 줄거리
ㆍ1번 감방
나이지리아의 부유한 중산층인 은나마비아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재미 삼아 도둑질을 일삼는 겉멋 든 비행 청소년이다. 어느 날 은나마비아는 교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무장 강도로 수배 중인 아들 대신 감옥에 들어온 무고한 노인이 갖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ㆍ모조품
은켐의 남편 오비오라는 나이지리아와 미국을 오가며 일하는 아트 딜러다. 어느 날, 은켐은 나이지리아를 다녀온 친구로부터 남편이 나이지리아 집에서 애인과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은켐은 평온을 깨지 않기 위해 남편에게는 알은체하지 않는 대신 가정부 아마에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ㆍ사적인 경험
나이지리아의 시장 골목에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간 충돌이 일어난다. 이보족 기독교도 치카는 엉겁결에 시장에서 양파를 팔며 생계를 잇는 가난한 하우사족 이슬람교도 여자와 함께 마켓에 숨는다. 폭동 때문에 각각 언니, 큰 딸을 잃어버린 치카와 여자 사이에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ㆍ유령들
은퇴한 수학 교수 제임스 느워예의 눈앞에 37년 전 비아프라 전쟁 중에 죽었다고 믿었던 교수 동료 이켄나가 나타난다. 그는 그때 죽은 게 아니라 군인들을 피해 스웨덴으로 도망한 것이었다. 느워예는 이켄나와 이야기하며 지난 과거를 회상한다.
ㆍ지난 주 월요일에
미국으로 건너온 카마라는 유대계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부부로 사는 혼혈 가정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한다. 어느 월요일, 카마라는 그림을 그리느라 지하실에만 처박혀 있던 여자 트레이시를 처음 만나고, 이후 카마라의 일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ㆍ점핑 멍키 힐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 우준와는 케이프타운 바깥에 위치한 리조트 점핑 멍키 힐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작가 워크숍에 참석한다. 그녀는 워크숍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갖가지 편견을 목도한다.
ㆍ숨통
나이지리아에서 숙부가 사는 미국으로 온 여자는, 미국에 대한 부모의 막연한 동경과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인의 환상 혹은 무시 사이에서 질식할 것처럼 답답하다. 방세를 내기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식당을 찾아온 손님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여느 미국인들과는 다른 ‘개방적인’ 사람이지만 그런 그도 온전히 그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ㆍ미국 대사관
쿠데타를 반대하는 언론인 남편을 둔 여자는, 미국 망명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을 찾는다. 남편은 사흘 전 몰래 해외로 도주했고, 아들 우곤와는 그다음 날 남편을 잡으러 온 정부 요원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 모든 일은 사실이지만 면접관은 그녀가 거짓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면서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ㆍ전율
유학생 우카마카는 나이지리아에서 비행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전 남자 친구 우덴나가 타고 있을지 모르는 비행기였다. 불안해하는 사이 예기치 않게 그녀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나이지리아인 치네두가 집으로 찾아오고,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우연한 계기로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ㆍ중매인
미국으로 결혼 이민을 온 치나자는, 입 냄새가 나고 배 나온 아저씨인 데다 재미도 없는 남자와 사는 게 괴롭기만 하다. 남편은 치나자에게 나이지리아인의 정체성을 서서히 버려 달라고 부탁하며, 이보어도 못 쓰게 한다. 그러던 중 그가 이전에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하지만, 그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아직 그를 떠날 수 없다.
ㆍ내일은 너무 멀다
‘당신’과 당신의 오빠 논소, 고종사촌 도지에가 나이지리아 할머니 댁에서 함께 있었던 18년 전 여름, 할머니가 이들에게 에치 에테카, 즉 ‘내일은 너무 멀다.’라는 이름을 가진 뱀에 한 번만 물리면 10분 안에 죽는다고 말해 준 그 여름에 논소가 아보카도 나무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 논소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당신과 도지에뿐이다.
ㆍ고집 센 역사가
부유한 오비에리카는 가난한 사촌들을 물심양면 돕는다. 여러 번 유산 끝에 아들을 얻지만 기쁨도 잠시, 오비에리카가 죽고 사촌들은 그의 아내 느왐그바에게 재산을 내놓으라며 괴롭힌다. 여자는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가산을 지키게 하기 위해 아들을 미션스쿨에 입학시키지만, 곧 기독교에 물들어 가족과 나이지리아의 전통에 무심한 아들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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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숨통 | ap**t | 2016.04.21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눈으로 글자를 따라 가며 읽었다. 참 익숙하지 않는 글자 조합이었다. 나이지리아식 이름이라 그런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눈으로 글자를 따라 가며 읽었다. 참 익숙하지 않는 글자 조합이었다. 나이지리아식 이름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나이지리아 소설가가 쓴 소설은 처음이라 이름처럼 생소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묘하게 비슷한 정서가 흘렀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내가 많이 읽었던 유럽이나 미국, 일본 작가가 쓴 것보다 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시간이 30년은 넘은 친구가 하와이에 가서 산 지 4년 가까이 될 무렵

    잠시 귀국해서 한 달 간 친정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있는 한 달 동안 다섯 마디 중 한 마디엔 말끝마다 “미국은 안 그래...”가 달렸다.
    보행자 중심의 운전,
    밀고 당기는 문에서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이면도로에서의 주차 행태 등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이 훨씬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국은 멀었다’고도 했고, ‘이래서 한국은 안 돼~’라고도 했다.

     

    그 해 겨울, 친구가 하와이 집으로 초대했다. 나도 한 달 간 하와이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운전이 보행자 중심인 이유는 이를 어겼을 시 법칙금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
    이면도로에 주차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구 밀도는 낮고 땅 덩어리는 넓다는 사실,
    태평양 한 가운데 둥실 떠 있기에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가 환경보호가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가 쓰레기 분리배출 개념이 없다는 사실,
    밀고 당기는 문에서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는 사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엔 장애인, 비장애인처럼 백인, 흑인, 동양인이 고루 섞여 있었다는 사실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왠지 모르게 그 생각이 났다.


    옮긴이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로 드러나고 – 종교적, 정치적 학살이 자행되고, 정국과 치안이 불안하고, 부패가 만연하고, 미신을 믿는다는 점 – 그 밖의 것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 주인공이 한국 사람이라고 가정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설정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재밌다, 이 소설집. 감동이 안개처럼 은은하게 온다.

    첫 번째 작품인 <1번 감방>부터 그렇다. 예상치 않은 결말을 알아차렸을 때 ‘인간 존엄’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숭고해졌다.
    <모조품>은 푹 빠져 읽느라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내일은 너무 멀다>처럼 얼마 전 읽은 최정화의 [지극히 내성적인] 소설집에 실린 한 작품 같았다.
    <전율>에서는 (내 표현이 진부하지만) 진짜 전율하는 순간이 있었다.
    <고집 센 역사가>란 작품을 읽고는 ‘책 읽고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싶었다

    주술에 걸린 듯 신비롭기도 하고, 인연설이 떠오르기도 하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라디오 책다방에 나온 두 번역가 덕에 알게 된 작가다.
    김명남, 박현주 번역가님.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제마마카의 입이 과즙을 다 빨아내서 흐물흐물해진 오렌지처럼 쪼그라드는 것을 상상한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지친 입.
    p34 <모조품>

     

    그녀가 오비오라에게 이웃들이 그들을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말하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이보들은 원래 그렇다는 것이었다. 누가 무언가를 다른 방식으로 하면, 마치 자신들의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37 <모조품>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의 진가를 몰라.
    p38 <모조품>

     

    가정부 아마에치가 아주 신경 써서 갈아 놓은 커튼 사이로 태양이 유리 탁자 위로 노란 빛의 사각형을 던진다.
    p38 <모조품>

     

    치카가 아는 여자들이 하는 대성통곡,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날 껴안고 위로해 줘요라고 외치는 울음이 아니다. 여자의 울음은 개인적이다.
    p71 <사적인 행위>

     

    자기 자식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예전에 카마라는 여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기가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을 위해 뭘 희생했는지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짜증이 났다.
    p111 <지난주 월요일에>

     

    우준와는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술처럼, 양이 적을 때에만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p132 <점핌 멍키 힐>

     

    세네갈인이 그렇지 않다는 거 다 안다는 듯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고, 우준와는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프랑스식 악센트가 거슬렸다.
    p139 <점핌 멍키 힐>

     

    그가 다니는 회사는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회사로 보이는 데 목매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평균임금보다 몇천 달러 많은 봉급과 스톡옵션을 제시했다
    p154 <숨통>

     

    그가 당신 얼굴을 쳐다볼 때의 강령하고 간절한 시선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등 돌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p161 <숨통>

     

    그녀는 면접관이 앞으로 흘러내리지도 않은 적황색 머리카락을 뒤로 홱 넘기는 것을 보았다.
    p186 <미국대사관 >

     

    삶이란 창을 휘두르는 악마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p191 <전율>

     

    인생은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믿음을 가져라. ‘믿음을 가져라.’라는 말은 키 크고 날씬하라는 말과 똑같았다. 그녀는 키 크고 날씬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았다.
    p197 <전율>

     

    “그 사람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늘 프린스턴은 지루한 학교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곤 했어요. 자기랑 상관없는 일로 내가 너무 행복해한다 싶으면 어떻게든 그걸 깎아내릴 방법을 찾아내곤 했지요.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에게 허락된 행복의 양을 조절하고 싶어 할 수가 있죠?”
    p203 <전율>

     

    서로 다른 나무들의 가지가 맞닿고, 때로는 캐슈 나무에서 망고가 발견되거나 망고 나무에서 구아바가 발견되기도 했다.
    p245 <내일은 너무 멀다>

     

    너 괜찮니? 그녀는 계속 그렇게 물었다. 너 괜찮니? 그녀는 논소가 죽었는데도 당신이 정말로 괜찮아서 걱정하는 것만 같았다.
    p248 <내일은 너무 멀다>

     

    게다가 그녀가 시집 식구들과 싸울울 때마다 친정으로 돌아올 경우 자신이 맞게 될 괴로운 세월을 피하려면 제가 선택한 남자한테 보내는 편이 나았다.
    p260 <고집 센 역사가>

     

    왜냐하면 남을 지배하는 자는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남들보다 좋은 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p266 <고집 센 역사가>

     


     

  •   “아프리카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떳떳한 자립을 통해 존중받기를 원한다.”   ...

     
    “아프리카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떳떳한 자립을 통해 존중받기를 원한다.”
     
    최근 열렸던 12회 세계지식포럼의 아프리카 세션에서 아샤 로즈 미기로 유엔사무총장이 했던 말이 기사화 되었다. 미국 백악관의 아프리카 위원회 위원장 역시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미국의 2배가 넘는다는 말로, 세계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동정 혹은 원조해 주어야 할 국가로 바라보는 시선에 일침을 가했다. 기사를 읽으며 나는 내가 읽었던 <숨통>을 떠올렸다. 그동안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학이, 아프리카의 작가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편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잊고 지낸 것은 아닐까.
     
    <숨통>은 나이지리아의 여성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12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이다.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흔들리는 문화적 정체성. 작품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그들의 혼란과 불안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받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정치적 혼란으로 자식을 잃고 망명 신청을 하러 미국 대사관을 찾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 대사관」이었다. 결국 망명 신청을 뒤로 한 채 대사관을 등지고 걸어 나오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이지리아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미국 문화에 젖어 있는 남편을 둔 여자의 이야기,「중매인」 역시 그녀에게 미국인으로의 삶을 강요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나 역시 숨통이 죄여오는 느낌이었고, 재산을 되찾기 위해 아들에게 서양식 교육을 시켰지만 결국 정체성을 잃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고집 센 역사가」의 느왐그바의 모습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지리아에도, 그렇다고 미국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숨통이 죄여 오는듯한 고통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글로벌 시대, 다양화, 다문화 가정을 외치면서도 그들의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나를 반성하며 소통과 이해, 그리고 스스로가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 <숨통>을 처음 보았을 때, 표지 속 나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저 나비는 날아가려고 하는 것인지, 혹은 손에 ...
    <숨통>을 처음 보았을 때, 표지 속 나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저 나비는 날아가려고 하는 것인지, 혹은 손에 앉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이의 몫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숨통>을 읽는 동안, 내 주변에서는 여럿 관심을 보였다. 
    그 중은 인상강한 제목에서 또는 작가의 특이한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나라 작가냐고 물었을 때 '나이지리아'라고 답하면, 조금은 쌩뚱맞는다는 한 표정을 짓곤했다.
    그러면 어느정도 제목과 나이지리아의 상관성을 짐작한다는 듯이
    나를 국제구호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제3세계에 관심이 있어보이는
    사람쯤으로 비추는 듯 해보였다. 그들의 짐작은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숨통>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나이지리아인의 고단한 생활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방향은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된 통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주의가 보편화되면서 세계의 보편성은 더 두꺼워지고 특수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무섭게 세계를 동질화시키고 뉴스와 문화물에 있어서 중심과 주변의 불균형은
    너무나 삐걱거린다. 불완전한 이야기가 유일한 이야기가 되기 쉬운 구조속에서 <숨통>은
    그 위험성이 어떤 것인지 솔직하고 세련되게 보여준다.
    <숨통>에 담겨있는 여러 단편들은 그녀의 미국 생활을 드러내준다.
    그 생활은 미국'식'인 동시에 누구나 경험했을 듯한 감정의 연속이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열두편의 작품, 그 일상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목을 감아 오는 어떤 것들로 부터 멀리 날아갔음하는 바람이다.
     
  • 심지가 뾰족한 펜촉으로 가느다란 곡선을 그린다. 선은 부러질 듯 세밀하여 때로는 튕겨나...
    심지가 뾰족한 펜촉으로 가느다란 곡선을 그린다. 선은 부러질 듯 세밀하여 때로는 튕겨나가고, 원을 잇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접선을 찾으려 애를 쓴다. 12편의 이야기가 다르고 유기적이다. 낯설 새도 없이 흘러들어온 이국문명의 밀물, 존속하던 가치와 도입된 가치의 충돌, 우월함을 가르는 잣대의 혼동이 낱낱하고 세밀하다.
     
    메가네*로 보는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인
    (*볼록렌즈를 통해 그림을 확대해 보는 장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장의 어미에는 부정형이 즐비하다. 하지 않은 행동들의 나열만으로 이야기는 앞으로 간다. 작가는 소설의 인물이 하려는 행위를 삼키고 절제하면서, 새 문명의 잠입이 그들의 일상의 근간을 쥐고 흔드는 지각변동을 친절하고 고상하게 시각화한다. 소설의 무대는 내전에 상처하고 외부 문명에 죄이는 아비규환의 아프리카일 테지만 화상을 담아내는 작가의 글은 담대하고 우아하다. 고상함을 유지한 채 한 뼘 줌-아웃한, 하지만 화질만은 생생한 최첨단의 카메라다. 그리하여 작은 치부도 숨기지 않는다. 다양한 채색으로 시각화된 문장들이 모여 감정의 응집이 되고, 급기야 점화된다. 메가네 장치로 일본 목판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어떤 편은 제목만으로 씁쓸한 취(臭)를 자아내고 (미국 대사관), 어떤 편은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전개 하나로 심장이 말캉말캉해지며 오픈 결말의 여운과 신비가 남는다. (지난주 월요일에), 어떤 편은 사랑의 대상과 미움의 대상이 차례로 교차하며 스프링쿨러처럼 한 순간에 조용하고 거대한 비극을 분출해낸다. (내일은 너무 멀다)
     
    멀고도, 놀랍도록 가까운
    이야기는 멀고도 가깝다. 존속하는 것보다 우월해 보이는 문명의 전염, 흔들리는 사람들 흔들리고 싶은 사람들, 재빨리 새 문명에 편승하는 사람들,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전통의 가치들, 안팎으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화상은 조금 더 옳고, 더 나아보이는 현란한 이국의 이미지즘에 현혹되어 맹목적으로 동기화하고, 때로는 대항하고 갈등하며 실재하는 우리들이다. 이는 세계화의 보편적인 흐름이자, 종속이론(문화적 제국주의)이 현실로 체화된 야만이다.
    작가는 어떤 흐름이 옳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이 목도한 그것을 그려낸다. 이국문명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욕망하였다가 본질의 허상을 목도하는 모습, 어떤 문명에의 종속과는 상관없이 묵묵하고 강렬하게 살아내는, 삶이 우선인 사람들. 작가는 이러한 사이에서 날카롭게 촉을 유지하고, 또 살고 싶었으며, 그런 이들을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인터뷰어가 되어 그녀에게 왜 글을 쓰는지 질문을 던져보았고, 숨통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나는 그녀의 대답을 이렇게 유추해 보았다. 숨통의 원동력에 관해서다
    ‘그 후 몇 년 동안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갑작스레 들이닥쳐진 방향성에 관하여, 이에 종속되어 실물보다 커진 어떤 물줄기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소위 머리카락은 직모로, 스킨톤은 옅게 만들고 싶은 미국 문명의 모방자들과 우러렀던 문명의 실체와 대면했을 때의 헛헛함을, 주류문명의 중심지에 서 있어도 주류와 주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어떤 이데올로기와도 상관없으나 내전과 가난을 통째로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 그럼에도 숨통을 유지하여 색색거리는 그들의 숨소리와 날카로운 신경으로 스스로 투쟁하는 그 자신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       The thing around Your ...
     
     
     
    The thing around Your Neck.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목 주변에 있는 건 미국의 물결일까. 미국의 물결에 폭 빠진 채 머리만 동동 떠있는 나이지리아인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목욕탕을 가서 탕속에 들어갔을 때, 발이 닿지 않아 겨우 머리만 동동 내어놓고 있었던 때. 그때 분명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분명 소설 속의 아프리카인들도 비슷한 숨쉬기를 하고 있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낀 감정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근거 없는 이야기이지만 왠지 ‘은희경’ 소설가의 느낌과 사뭇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서 최고의 단편집을 쓴 작가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근거없는 연관성으로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대단한 결말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 비켜서서 내가 지나가게 했다.”(중매인)라든지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 대사관을 나와서, 아직도 법랑 접시를 한껏 앞으로 내민 채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을 지나 자기 차에 올라탔다.”(미국대사관) 등, 열린 듯한 결말이 하나의 단편은 끝났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더 이상 활자화되지 않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동감이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에는 ‘한의 정서’가 있다면 이 소설에는 여러 단편이 모여 하나를 관통하는 큰 주제, ‘세계화라는 이름의 미국화’가 있다. 단편들 안에는 보통 미국화되기를 주체적으로 원하는 사람과 그런 그들의 그늘 아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들도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에의 사회화를 결정한 사람들을 따르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특히 중매인에서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미국화 속에 흐려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정체성 혼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 그 동시에 현실적 문제(생활 수준이나 돈의 논리)에 치이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비단 나이지리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닐까. 다만 정도의 극대화일 뿐. 다른 나라 문학의 단편집을 읽을 때의 느낌보다 더욱 친숙한 느낌을 받는 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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