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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쪽 | 규격外
ISBN-10 : 8971996676
ISBN-13 : 9788971996676
담론 중고
저자 신영복 | 출판사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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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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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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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의 삶과 철학! 신영복 교수는 1989년부터 거의 25년간 대학 강의를 하였다. 이제 그는 2014년 겨울 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않고 있다. 비정기적 특강을 제외한다면, 대학 강단에서 그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신 저자는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그의 강의를 녹취한 원고와 강의노트를 저본으로 삼은 책 『담론』으로 대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전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강의》에서 ‘동양고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탐색을 거쳤다면, 이번 책에서 그는 ‘사색’과 ‘강의’를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합쳐냈다. 그리하여 동양고전 독법을 통해 ‘관계론’의 사유로 세계를 인식하고, 고전을 현재의 맥락에서, 오늘날의 과제와 연결해서 읽어본다.

또한 저자 자신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들, 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들려줌으로써 동양고전의 현대적 맥락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의》 이후 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훨씬 깊어진 논의와 풍부한 예화를 담아낸 이 책에서 저자의 고도의 절제와 강건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신영복
저자 신영복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청구회 추억』,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신영복』 등이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1 가장 먼 여행
2 사실과 진실
3 방랑하는 예술가
4 손때 묻은 그릇
5 똘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6 군자는 본래 궁한 법이라네
7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8 잠들지 않는 강물
9 양복과 재봉틀
10 이웃을 내 몸같이
11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며

중간 정리-대비와 관계의 조직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
12 푸른 보리밭
13 사일이와 공일이
14 비극미
15 위악과 위선
16 관계와 인식
17 비와 우산
18 증오의 대상
19 글씨와 사람
20 우엘바와 바라나시
21 상품과 자본
22. 피라미드의 해체
23 떨리는 지남철
24 사람의 얼굴
25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한 시대, 한 지성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책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강의』에서 ‘동양고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탐색을 거쳐, 이제 그 두 가지 ‘사색’과 ‘강의’가 합쳐져서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한 시대, 한 지성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책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강의』에서 ‘동양고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탐색을 거쳐, 이제 그 두 가지 ‘사색’과 ‘강의’가 합쳐져서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옵니다. ‘한 시대 한 지성의 삶과 철학이 이렇게 정리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통해서 이 시대 사람 혹은 후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지향했는가를 명확히 알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유홍준(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담론』 출간 기념 인터뷰 중에서)

신영복의 강의실 위로와 격려, 공감과 소통의 장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면 어김없이 강의실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곳은 성공회대학의 한 강의실. 서울 한복판도 아니고 부천시에 인접한, 변방(邊方)의 조그만 대학 강의실이 수강생들로 북적인다. 수강생들 중에는 성공회대학의 학생들도 있지만, 나이 지긋한 청강생들이 제법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보험회사·은행·일반 회사 등에 다니는 직장인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은 신영복 선생의 강의실이다.
선생은 오랜 강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 있다고 한다. 첫째, 교사와 학생은 비대칭적 관계가 아니며, 둘째, 설득하거나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며 매우 완고한 것이므로, 그 사람을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의 강의는 정답이 없는 문제 중심이다.
선생의 강의실은 늘 웃음이 넘친다. 칠순을 넘긴 노학자가 가진 재치와 유머는 젊은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교재가 있지만 미리 읽어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미리 읽어오라고 해봐야 읽어올 사람이 몇 안 된다는 것. 둘째, 한 사람이 교재를 낭독하고 전체가 조용히 함께 듣는 교실의 풍경은 공감(共感) 공간의 절정(絶頂)이라는 것이다. 수강생 한 명이 교재를 낭독하는 동안 강의실은 교감의 에너지가 넘친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런 가슴 뭉클한 위로가 전해진다.
선생의 강의는 여럿이 함께 가는 여행과도 같다. 가을에 시작되어 늦가을을 관통하고 초겨울 눈이 내리는 날까지 진행된 긴 여정의 마지막 날이면, 선생은 수강생들 모두를 데리고 나목이 된 느티나무 아래로 간다. 그리고 각자 아름다운 별 하나를 가지 끝에 달아보라고 한다. 영원히 함께할 순 없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긴 항로에 북극성처럼 반짝여줄 별 하나를 마음에 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선생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그 이듬해인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하였고,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계속하였다. 거의 25년간 대학 강의를 한 셈이다.
이제 선생은 2014년 겨울 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정기적 특강을 제외한다면, 대학 강단에서 선생을 뵙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신 선생은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성공회대학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저본으로 한다. 선생의 강의는 총 3번에 걸쳐 녹취가 이루어졌다. 사전에 선생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고, 학생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녹취한 것이었다. 이후 녹취록을 받아본 선생은 자신의 강의가 중언부언하고 내용도 미흡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술회했지만, 선생이 직접 편집해서 만든 ‘강의 교재’와 강의를 위해 정리한 여러 권의 「강의노트」는 선생의 강의가 단 한 강좌도 허투루 진행된 적이 없음을 말해준다. 물 흐르듯 담담하게 펼쳐내는 ‘담론’ 속에는 선생의 고도의 절제와 강건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담론』은 선생의 「강의노트 2014-2」와 녹취록을 저본으로 한다.

동양고전에서 읽는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

『강의』이후 10년, 더욱 깊고 풍부해진 ‘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년에 출간된 『강의』에 이어 신작 『담론』에서도 선생은 동양고전 독법(讀法)을 통해 ‘관계론’의 사유로 세계를 인식한다. 동양고전을 공부의 텍스트로 선택한 이유는 동양고전이 갖고 있는 풍부한 사상들이 세계 인식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동양고전에 담긴 사상들은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에 둔다. 여기서 인간 중심이란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동양 사상에서 인간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도 하다. 동양 사상이 갖고 있는 조화와 균형감, 그리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은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유연한 틀이 된다.
선생은 고전을 현재의 맥락에서, 오늘날의 과제와 연결해서 읽는다. 물론 이러한 독법이 실증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방법이겠지만, 선생의 생각은 다르다. 모든 고전은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이며, 실제와 상상력, 현실과 이상이 넘나드는 역동적 공간이어야 한다. 유가(儒家)의 발전사관, 진(進)의 신념도 현대의 금융자본이 갖고 있는 자본축적 양식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다뤄지는 동양고전은 축자(逐字) 해석이나 자구의 의미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양태들과 결합되어 현재의 문맥으로 새롭게 읽힌다. 모든 텍스트는 새롭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또한 선생이 겪은 다양한 일화들, 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들려줌으로써 동양고전의 현대적 맥락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강의』 이후 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훨씬 깊어진 논의와 풍부한 예화를 담아낸 동양고전 독법의 결정본이다.

『시경』: ‘개념’이라는 문사철의 작은 그릇이 아닌, 시인의 감수성으로 세계를 담는다
시(詩)는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을 담고 있다. 시는 문사철(文史哲)의 이성영역이 아니라 서화악(書畵樂)과 함께 감성 영역에 속한다. 그만큼 개념과 논리적 사고에서 자유롭다. 그만큼 우리의 인식 지평(地平)을 넓혀준다.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연한 ‘인식틀’로서의 시적 관점이다.
선생은 『시경』의 사실성과 진정성, 『초사』의 낭만과 창조를 ‘대비’하며 인식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문사철이라는 완고한 인식틀에 갇혀 있다. 문사철은 언어, 개념, 논리 중심의 문학서사 양식이다. 언어와 개념, 논리라는 추상화된 그릇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담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세계를 온당하게 인식할 수 없음도 물론이다. 넓은 바다를 ‘바다’라는 글자에 넣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시적 관점이 최고의 대안은 아니지만, 문학서사 양식의 완고한 틀을 반성할 수 있는 훌륭한 관점이다. 그리고 문사철을 통한 ‘추상력’과 시서화악을 통한 ‘상상력’을 나란히 키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성훈련 공부와 감성훈련 공부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선생은 감옥에서 만난 한 노인 재소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신입자가 들어오는 첫날이면 어김없이 이 노인은 신입자를 옆에 불러 앉혀놓고 자신의 긴 인생사를 이야기한다. 이 인생사는 물론 사실이 아니다. 창피했던 일들은 빼고 무용담이나 미담은 부풀려 넣고 해서, 몇 년 뒤엔 제법 근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선생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늦가을 어느 날, 하염없이 철창 밖을 내다보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만약 저 노인이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최소한 각색해서 들려주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노인을 온당하게 이해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재소자라는 삶이 아닌, 소망과 반성이 있는 진실의 주인공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문사철의 완고한 인식틀이 아닌 시서화악의 인식틀을 빌려오는 이유는 시적인 관점이 사실성과 사회미에 충실하되 사실 자체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역』: 세계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사람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
『주역』에서는 이 강의의 화두인 ‘관계론’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온전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 그 사람을 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역』의 인식틀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와 관련하여 동베를린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고암 이응노 선생의 감옥 에피소드를 전한다. 재소자를 수번(囚番)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불렀다는 고암 선생. ‘응일’應一이라는 이름의 재소자에게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이라 하셨다는 선생의 일화는 사람을 인식하는 틀의 차이를 보여준다. 『주역』의 관계론이 인식틀로 작용할 경우, 숫자로 인식되던 사람이 ‘뉘집 큰아들’이 된다는 것, 이것은 큰 차이다.

『논어』: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패권주의이며 동(同)의 논리이다
『논어』의 화동(和同) 담론은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를 줄여서 붙인 이름이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군자와 소인이 대비의 개념인 것처럼, 화(和)와 동(同)도 대비의 개념으로 읽어야 한다. 이 화동 담론은 춘추시대 유가학파의 세계 인식이다. 전쟁을 통한 병합을 반대하고 큰 나라, 작은 나라, 강한 나라, 약한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和)의 세계를 주장한다. 화(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반면에,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다.
선생이 화동 담론을 현대의 문맥으로 다시 읽는 까닭은 동(同)의 논리로 오늘날의 패권적 구조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권적 질서는 우리 시대의 대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달러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강대국의 폭력이며, 동(同)의 논리이다. 엄청난 파괴와 살상으로 점철되는 강대국의 패권 구조가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패권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화동 담론은 우리나라의 ‘통일 담론’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갖는다. 선생은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쓴다. 평화 정착과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通一’이다. ‘通一’이 되면, 언제일지 알 순 없지만 ‘統一’로 가는 길 또한 순조로울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지극히 경제주의적 발상이며, 그 근본은 동(同)의 논리이다. 민족의 비원(悲願)이며 눈물겨운 화해를 ‘대박’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통일을 경제적 논리로 본 것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통일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그것은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일 것이다. 統一은 通一로서 충분하다.

『맹자』: ‘관계’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왜소한 만남
『맹자』에는 흔히 ‘곡속장’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예화가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그 소가 불쌍해서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일화이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니다. 왜 소를 양으로 바꾸라 했을까? 그 까닭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이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며, 보고[見], 만나고[友], 서로 안다[知]는 것이다. 즉 ‘관계’이다.
이 대목에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만남이 없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뉴스에서 보듯,‘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는 바로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식품에 유해물질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무관심과 냉담한 인간관계의 원인을 도시의 특성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다. 도시는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존적 형식이다.
선생은 맹자의 이 예화와 함께 자신이 직접 겪은 지하철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선생은 오랜 수형생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한다. 언젠가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서 바로 앞에 서 있었는데, 과연 전철이 신도림역에 도착하자 그 사람이 일어섰다. 선생이 그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얼른 그 자리로 옮겨 앉고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자기 자리에 앉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생이 떠올린 것이 바로 맹자의 이 예화이다. 그 여자와 선생은 만난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다. 지하철 속에서의 지극히 짧은 만남으로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그 지하철 안에서 3년쯤 먹고 자고 같이 생활한다면 그 사람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세대(世代) 간의 만남이 단절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비자』: 불법행위자와 범죄인의 차이
『한비자』에서는 신발을 사러 장에 간 차치리의 탁(度)과 족(足)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고한 인식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생은 우리가 탁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가는 차치리와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우선 그 현실을 대면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본뜬 ‘탁’을 가지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인터넷을 뒤진다. 살아 있는 현실을 대면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고한 인식틀은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의 인식틀과도 같다. 전국시대 법가(法家)의 원칙은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형(刑)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대부(大夫) 이상은 예(禮)로, 서민들은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통용된 형 집행 원칙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사법 현실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처벌도 경미하고 또 받은 형도 얼마 후면 사면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법 현실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사회의식이다. 정치·경제 사범은 ‘불법행위자’로 인식하면서 절도, 강도와 같은 일반 사범은 ‘범죄인’이라고 한다. 엄청난 인식의 차이다. 한쪽은 그 사람의 ‘행위’만이 불법임에 반하여, 다른 쪽은 ‘인간 자체’가 범죄인이 된다. 완고한 인식틀이다.

20년 20일, 나의 대학 시절

‘검열필’ 편지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들

선생의 대표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을 모은 것이다. 선생의 편지는 계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내진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심 어린 성찰이 담겨 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느 정도 알려진 바지만, 이번에 출간되는 『담론?에서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상황을 상세히 밝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들은 하나같이 반듯하고 차분하다. 징역살이의 고달픔, 괴로움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선생은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가족들이 편지의 최종 독자였기 때문이다.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족들에게 선생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였다. 둘째, 그 편지가 검열을 거쳤기 때문이다. 교도소 당국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이 편지를 검열하기 전에 자기검열을 통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자존심이었다.
이 책 『담론』에서는 검열필 편지 속에 미처 쓰지 못한 말들을 담았다. 징역살이의 고달픔과 괴로움뿐 아니라, 편지를 쓸 당시의 심경도 서술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편지글들의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의 자전(自傳)적인 글들
신영복 선생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이후 무기수로 20년 20일의 수형생활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부터 이후 무기징역수로 살면서의 심경을 자세히 언급한 적은 거의 없었다. 「청구회 추억」을 쓸 당시의 선생의 심경, 이후 기나긴 무기징역수의 삶 속에서 자살하지 않았던 이유 등등 『담론?은 신영복 선생의 자전(自傳)과도 같은 글이다.

▶「청구회 추억」의 추억
「청구회 추억」은 선생이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1년 가까이 사형수로 지내며 쓴 글로,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5시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났던 어린이들과의 이야기이다. 선생이 감옥에 수감된 사실도 모른 채 매주 토요일이면 장충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아이들과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에 쓴 글이 바로 이 글이다. 선생은 이 글에 대해 “기록이라기보다는 회상이었고, 옥방의 침통한 어둠에서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는 구원의 시간이었다”라고 술회한다. 이 글이 발견된 건 20년이 훨씬 지나 출소 이듬해였다. 어느 청년이 집으로 전해 주었다는데, 아무래도 이송통보를 받고 이감되면서 급히 휴지 묶음을 맡겼던 그 근무헌병인 듯하다. 그 청년 덕분에 이 글은 잊히지 않고 199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증보판에 실리게 되었고, 이후 그림과 함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
선생은 남한산성에서 사형수로 1년을 보낸 뒤 무기징역수로 민간교도소에 이송되었다. 선생은 20년의 감옥 생활을 ‘나의 대학시절’이라 술회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 끝을 상상할 수도 없는 긴 동굴이었다. 선생이 있는 감옥에서 수형생활 10년 차의 재소자가 자살했다. 한밤중에 화장실에서 손목을 긋고 죽었다 한다. 감옥에는 《재소자 준수사항》에 자살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하니, 이런 일이 빈번하다는 뜻일 것이다. 선생은 남한산성에서 사형수로서 혹독한 임사(臨死) 체험을 했고, 이후 20년의 무기징역을 살아오면서 수시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선생이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고 술회한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고 말한다. 선생에게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남한산성에서의 끔찍한 임사 체험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도 같은 무기징역수의 삶 속에서도 선생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에서 역사를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인간을 배웠다. 끊임없이 개조하고 변화하고 탈주하며, 추상처럼 자신을 지켜낸 신영복 선생. 이 때문에 우리는 선생을 이 시대의 어른이라고 부른다.

20년 20일간의 대학 시절
선생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기나긴 수형생활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은 실천이 제거된 감옥에서 수많은 재소자들의 삶을 자신의 목발 삼아 걸었고, 이로 인해 인간을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는 눈을 갖게 되었음을 술회한다. 그러므로 선생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직접적이며, 1인칭이다.
선생은 자신의 20년 수형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술회한다. 이 대학 시절이라는 용어는 막심 고리키의 《나의 대학》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선생이 대학 시절이라고 술회하는 감옥에서의 20년 수형생활은 고리키의 고달팠던 ‘인생 대학’만큼이나 엄혹한 세월이었고, 일반인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철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선생에게 독방에서의 사유는 철학 교실이었으며, 감옥은 사회학 교실, 역사학 교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인간학의 교실이었다.
이 책에는 선생이 교도소에서 만난 많은 재소자들의 삶이 적혀 있다. 푸른 보리밭을 보며 살고 싶어 울음을 터뜨리던 그, 선생과 함께 나란히 떡신자로 이름 날린 창신꼬마, 밤중에 몰래 건빵을 먹던 조목사,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라는 놀랍도록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장기수 노인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그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비극의 주인공’ 나팔수 이야기, 물 섞인 피를 헌혈했다고 끝끝내 양심에 가책을 받던 재소자 등 선생의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이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들이 평면적으로 등장했다면, 이 책 『담론』에서는 선생의 솔직한 심경 토로와 함께 한 명 한 명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감옥에서 만난 이들과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되살려내고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이 어쩌면 선생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까닭은 무얼까? 아마도 실천 없는 이론으로 허공에 뜬 삶을 사는 우리에게 선생의 이야기를 목발 삼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 공부란 두 발 걸음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 노인 목수 문도득 이야기
선생은 감옥에서 문도득(道得)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노인 목수를 만났다. 선생은 이 목수가 땅바닥에 나무 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목수는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린 반면, 책으로만 생각을 키워온 선생은 지붕부터 그린다. 실천하는 사람과 이론만 있는 사람의 큰 차이다.
선생은 이 일화를 통해 근대화의 최고 수준이라는 ‘톨레랑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만약 이 그림을 보고 “좋습니다.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나는 지붕부터 그립니다. 우리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합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톨레랑스다. 물론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感謝)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머릿속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 톨레랑스라면, 이제 자기 변화로 나아가는 것은 가슴에서 발로 가는 실천의 여행이며, 탈주이며, 노마디즘이다. 탈근대이다.

▶ 인간 이해의 천박함: 위악(僞惡)과 위선(僞善)
교도소 재소자들 중에는 문신을 한 이들이 많다. 문신은 나쁜 인간, 성질 사나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위악(僞惡)이다. 약자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반대로 위선은 강자들의 의상(衣裳)이며 위장(僞裝)이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의 붉은 머리띠는 일종의 문신이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이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이다. 검은 법의의 엄숙성과 정숙성은 시위 현장의 소란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위선이 미덕으로, 위악이 범죄로 재단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강자의 논리이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이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모순된 조어를 버젓이 사용한다. 우리는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내는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화려한 무대와 의상, 오디오와 비디오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서 우리가 그 실체를 직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이러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 이해의 천박함에 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을 고르게 키워 가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노력이 부족함을 탓해야 한다. 공부는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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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담론 | at**77 | 2019.12.0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신영복 선생님 저,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그림엽서처럼 간간히 소개된 선생님의 글씨나 그...

    신영복 선생님 저,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그림엽서처럼 간간히 소개된 선생님의 글씨나 그림을 보면서, 정말 수형자의 신분으로 저렇게 곱고 아름답게 세상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게,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처음처럼 등 몇 권의 책을 더 읽으면서 선생님의 사람과 세계에 대한 시선은 선생님의 아름다운 글씨나 그림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예쁘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서는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녹취하여 실은 책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단 한번도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교도서에서 쓴 서신이 모요, 나무야 나무야는 기행문들을 모은 것들로서, 마찬가지로 고전이나 담론은 선생님의 강의로 책으로 묶은 것이지, 책을 저술하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만큼이나 지식에 대한 겸손의 자세도 항상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 잘 듣겠습니다. 평화로우시길 바랍니다.

  •   오랜 강의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사와 학생이란 관계가비대칭적 관계가 아니라는...

    신영복1.jpg

     


    오랜 강의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사와 학생이란 관계가
    비대칭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날분들은 가르치는 것을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모르던 것을 이야기만 듣고 알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그림을 보여드리면 여러분은 그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앨범에서 그와 비슷한 그림을 찾아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설득하거나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략)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대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 가장 먼 여행 14page 본문 中


    퇴직 후에야 마음편히 '담론'을 읽었다.
    그간 몇 번을 읽기를 시도하다 다시 책장에 꼽기를 여러번 했다. 그분의 마지막 강의가
    담긴 내용이 너무나도 간명하면서 묵직하고 소중해서 였을 것이다.
    자세를 고치고 다시 첫 장부터 읽는데, 공부에 대한 개념부터 남다르게 다가온다.

    신영복교수님은 2016년 1월에 피부암으로 돌아가셨다.
    1968년 반체제 지하조직 통혁당 사건에 연류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
    20년만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셨고, 이후 고된 수감생활의 보상차원에서라도 편히
    노후를 보내셔도 무관하련만 25년간 대학강단에서 강의하셨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주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겸손하게 들려주신
    마지막 책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앞서 밝힌 공부(工夫)의 의미를 읽다보면
    반듯한 자세가 절로 하게된다. (위 인용문 참조)
    공부는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소외 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적 소통, 관계를 위함이다.
    나를 상품화 하지 말것 이며, 부단한 노력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라는 시대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고전문학, 역사, 철학의 이성훈련인 공부에 갇혀있다고 지적하신다. 문사철을 뛰어넘는
    감성훈련 공부인 시서화로 확장시켜 언어를 초월하고 사실을 초월하는 고정된 인식탈피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의식의 전환, 공감, 포용, 관용의 필요성은 결국 인간관계의 또다른
    표현이 아닌가.

    이 책은 '신영복 사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고금의 문학, 역사,
    철학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해석을 덧붙여 신영복교수님의 사상을 배우고 싶은 독자라면
    입문서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총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고전에서 읽은 세계 인식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동양고전의 명서인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을 보는 관계론이다.
    어렵다 생각할즈음엔 동양고전의 이야기를 현대를 비유해 설명해 주신다.

    나는 법가사상의 '한비자' 속 하나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신발을 사러 간 차리리의
    탁(度)과 족(足) 이야기다. 신발을 사러 장에 간 차리리는 발을 본뜬 '탁본'을 집에 놓고와서
    결국 신발을 못사고 돌아간다는 어리석은 얘기다. '완고한 인식틀'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면 현실을 대면하지않고 현실을 본뜬 '탁'을 찾으러 인터넷을
    뒤진다. 교수님은 우리의 사법현실을 비유한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불법행위자'로 얘기하고
    일반시민의 절도, 강도에 대한 사범은 '범죄인'으로 분류하는 인식의 차이를 지적한다.
    한쪽은 그 사람의 ‘행위’만이 불법임에 반하여, 다른 쪽은 ‘인간 자체’가 범죄인이 된다.
    완고한 인식틀인 것이다.

    2부는 20년간의 수감생활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바를 엮은 '인간 이해와 자기성찰' 이야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담대하게 그려내고 있다. 징역살이의 고달픔
    보다 국가권력의 편지검열에서 무너지기 싫었던 자존심을 보여 주신다. 냉철함이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니 차마 따라할 수도 없는 존경심이 느껴졌다.

    검열편지에서 미쳐 쓰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재소자들과의 부딪김 속에서 얻은 교훈, 관계 속 성찰들이 담겨있다. 똑같이 재소생활을 했어도
    그분과 같은 성찰을 얻기란 힘들 것이다. 고통과 불안의 시간임이 분명한데 교수님은 역사학의
    교실이었고, 인간학의 교실이었다 회고하신다. 감옥은 '대학(大學)'이라고.

    책을 다 읽고나자 나는 신영복교수님이 안계시다는 사실에 새삼 눈물이 난다.
     
     
  • 그의 삶은 시대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허나 그는 결코 세상 사람들의 안쓰러이 여기는 시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20...

    그의 삶은 시대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허나 그는 결코 세상 사람들의 안쓰러이 여기는 시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20년에 달하는 고독의 순간을 벼림의 시간으로 승화시켰고,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자신만의 삶을 역설적이게도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 기제로 삼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 때면 술잔에 쓰인 그만의 힘 가득한 글씨체가 생각난다고 말하는 것도 독특한 일 중 하나일 터다. 이제는 모든 시제를 과거형으로 쓸 수밖에 없음이 서럽다. 2016년 초 세상을 떠난 신영복 님을 향한 그리운 마음과 함께 그의 마지막 강의가 담겼다는 책 <담론>을 읽었다.

     

    1989년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국사상사>, <동양고전강독>, <사회과학 개론>, <정치경제학> 등 그가 도맡은 강의는 실로 다양했다. 전공 아닌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고됐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20년하고도 20일에 달하는 긴 복역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옥에서 자유를 논하는 건 부당하다. 일단 몸이 갇혀 있는데다 협소하기 짝이 없는 공간을 여럿이 나누어 사용해야만 한다. 체온 탓에 상대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는 말이 성립할 정도로 그곳에서의 생활은 힘겹다. 독방에서의 고독은 또 어떠한지. 모든 관계로부터의 고립을, 그것도 장기간 감내하는 일은 고역이다. 책을 읽는 일이라 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진 않았겠지만, 정신 산란한 바깥세상에서는 집중해 읽기 힘들었을 주역 등을 읽는 것으로 그는 시간을 보냈다. 감옥 안에서는 모든 게 거꾸로였다. 두껍고 난해할수록 더디 흐르는 시간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현 시점에서는 너무나도 먼 과거의 논쟁 같고, 어찌 보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하--주 시대 사상가들의 이야기 또한 절대 고독 속에 놓인 그였기에 절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자이기에 왠지 가장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이론을 펼쳤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아니라면 동양의 마키아벨리라는 수식어로 불리곤 하는 한비자야말로 이 혼탁한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명쾌함을 선사해주리라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허나 책을 읽으며 의외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묵자에 나는 끌렸다. 무려 2천 년만인 19195.4운동과 함께 주목 받았으나 이내 배척당했다. 묵자의 묵()이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형벌을 받은 노예임을 선언한 자자(刺字)를 뜻한다는 설도 있다. 모두가 전쟁에 나서 공을 세우는 시기에 그는 평화를 논했다. 그가 중시한 겸애 정신은 하층민을 대변하는 사상이라 칭할만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평화를 중시하는 그의 사상은 183명이 성에 누워 일제히 자결하는 비장한 최후를 낳고야 말았다. 평화라 하는 것은 그렇게 소멸할 운명인 것인가. 비타협의 어처구니 없는 말로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1부가 조금은 난해한 사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2부에서는 저자가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책이 다소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속도 내어 읽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2부 덕분 같다.

    무언가 무시무시한 죄를 지은 이들의 집합소라 칭할 만한 장소가 감옥이다. 타고난 인성이 그릇되어서, 처한 환경이 모질어서 등의 이유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로 들끓는 감옥에서도 사형수와 무기징역은 드문 케이스에 해당한다. 희망을 논하기 힘든 처지의 저자는 그곳 질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는 게 현명했다. 이른바 먹물의식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나름의 잣대로 쟀다. 머리보단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제시하는 규칙과 규율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가르침을 얻었지만 그는 결코 달라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지인들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노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세심함이 다른 사람들에 섞여 산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창의성이라며 칭송하는 콜럼버스의 계란 이야기로부터 생명에 반하는 폭력을 읽어내는 시선 또한 사회로부터 격리 당한 시간들이 아니었더라면 힘들었으리라고 본다. 삶을 절실히 기원하는 마음을 읽어내는 눈은 제 삶의 소중함을 느껴보지 못한 자에겐 허락되지 않는 법이다. 이른 아침 스미는 한 줄기의 태양볕이 있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는 그의 마음을 진실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고된 작업의 결과로 그가 얻었을 거친 손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를 감옥에 가둔 이념은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었음에도 사람을 여럿 죽이고 살렸다. 더디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모두 지난 일이라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5시면 장충체육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약속은 결코 깨어지지 아니 할 것이다

  • 담론(신영복) | ag**li | 2016.07.2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한 마리의 제비를 보면 천하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리의 제비를 보면 천하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담론] 관계에 관하여 | cu**35 | 2016.05.2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변화란 무엇일까. 단순희 책을 읽고 감명을 받고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물론 변화에 대한 저마...

     변화란 무엇일까. 단순희 책을 읽고 감명을 받고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물론 변화에 대한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담론에서 작가는 


    단순히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는 완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


    라고 말한다.

     

     이렇듯 관계 즉 관계는 담론의 일관된 화두다. 작가는20년간의 수형생활 동안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변화란 개인만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통하여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위대한 것은 시대의 조류에 상관없이 언제나 새로운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담론에서의 고전 재해석 또한 새롭다. 그리고 수형생활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를 통한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시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찰을 통한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그와 함께 생활하던 수형 생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바로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의 형태라고 강조한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담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도우면서 감사하자고 한다. 함께 한다는 것. 그러면서 작은 변화부터 실천하여 이뤄내는 것. 그러면서 세상을 향한 자부심을 가지고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고인이 된 작가의 마지막 유훈인 듯 싶다.

    자신이 외롭고 혼자라고 느낄 때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은 축 처진 어깨를 어루만져주면서 함께 옆에서 말없이 서 있어줄 것이다.

     

     <책 속 문장>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어 가기를 결심하는 변화의 시작, 탈주이고 새로운 관계의 조직이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독서 후 망각하는 것은 단순히 독서로 끝나버려서 이다. 책을 읽었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찢어버려야 한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차이는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출발 이어야 한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유목주의)

     

    똘레랑스는 은패된 패권 논리다.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사람 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자기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그 사람속에 담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다만 가능성으로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자기 개조와 변화의 양태는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그런 변화와 개조를 개인의 것으로, 또 완성된 형태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 사고의 자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경청이다

     

    대전의 노랑머리 창녀의 사례를 보며,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한다는 것, 인간의 오만과 천박함,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수순한 어떤 것을 상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왜소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무궁화는 덕이 있는 꽃이다. 벌레와 함께 진드기까지 함께 살아가지 않느냐.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 꽃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기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는것도 아니다. 빛과 향기를 발하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 위해서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다. 시들어서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자라고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모정이다. 꽃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무궁화는 아름답다.”

     

    약자의 위악과 강자의 위선, 약자의 위악은 잘 보이지만 강자의 위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보지 못한다.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 내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식이란 주체와 대상의 엄숙한 혼혈의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관계없이 인식 없다

     

    머리좋은 것이 마음 좋은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것만 못한 법이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 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이다.”

     

    인식은 그것이 어떤것에 대한 인식이든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러닝셔츠 없어도, 치약 없어도 떳떳한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조건이 나아지는 것도 어려움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차라리 그런 것이 없더라도 떳떳한 자존심이 역경을 견디는 데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자부심은 고난을 견디게 한다. 물질적 도움 보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혹서의 교도서 안에서의 고통,, 옆 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들어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동을 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겨울을 선호한다. 몸이 차가울수록 정신은 은화처럼 맑아지기 때문이다. 겨울은 어지러운 생각을 청리하는 철학의 계절이다. 기상 한 시간 전에 일어나 찬 벽에 기대고 앉아서 열중했던 명상.  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신적 탈옥이다. 강의의 화두로 삼고있는 관계론의 산실이 겨울 독방이었다.

    세계는 관계다. 나는 관계다. 아픔과 기쁨의 근원은 관계다

    나의 겨울 독방은 무한한 시공으로 열려있는 정신적 비약이었다.”

     

    증오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해서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지금을 그때만큼 춥지않다. 덥지도 않다.

    자신의 생각을 서슬 푸르게 벼를 수 있는 계절이 없다.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과제라면 과제다

    //

    서도의 미학이란 것은 극한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이공이산寓公移山을 쓴다고 하자. 첫 획을 너무 위로 치켜 그었다고해서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쓸수는 없다. 인생과 마찮가지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개칠치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획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자字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 보완해야 한다. 한 행은 그 다음 행으로, 그리고 한 연은 그 옆의 연으로 조정하고 조정시켜가야 한다.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써야 한다. 그렇게 하여 얻게되는 한 폭의 글씨에는 실패와 사과와 감사등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담긴다. 서로의 관계론은 획,,,연의 조화에 그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워야 한다. 상당한 정도의 필력이면 까만 부분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하얀 부분이 얼마나 더 남았나를 더 많이 본다.”

     

     

    처럼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또 한 글자의 실수는 그 다음 글자로 만회해 가면서 씁니다. 자연히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기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방서와 낙관을 합니다. 전체 균형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실수와 사과와 도움과 감사가 어우러져 있는, 그러기에 삶과 인생이 그 속에 담겨있는 경우 그것을 서로의 격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를 테면 구조에 있어서의 서도의 관계론이다.”

     

    사람의 학식이 글에 담긴다. ,,사상과 뜻이 글에 담긴다. 최종적으로 그 사람과 같다.”

     

    최고의 기교는 졸렬한 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교라는 것은 반 자연이다. 붓글씨도 마찬가지다. 명필이나 대가의 글씨는 졸렬하다. 졸렬해 보인다. 날렵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어리숙하다. 어리숙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고 싫증이 나지 않느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작품 명인전’, 불사지사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

     

    콜롬버스의 계란 세우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단순히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어미품을 빠져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형의 구조이다. 바로 생명의 모양이다. 이것을 깨뜨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황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이다.”

     

    보르헤스 촛불, 촛불은 어둠을 밀어낼 수 있을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 자신이 등가물이었던 경험을 소개하겠다. 나는 오로지 무게로만 서있었던 경험이 있다. 자르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도록 밟고 있는 역할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내게는 나무를 밟고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몸무게 이외에도 여러가지 능력이 있다. 그런것이 모두 사장되고 오로지 몸무게 으로서만 의미가 있구나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등가물은 그 물건의 속성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교환 가치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고나서 우리나라 개혁 세력들이 일대 반성을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다.

    중앙->지방, 정치투쟁->사상투쟁, 기동전->진지전으로…”

     

     

    갇히지 않는 사유, 100년후는 아니더라도 10년 후, 20년 후의 사유를 선취先取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식인 담론의 실천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 깨달음과 공부였다.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의 한 구절 버섯이야기….

     

    이건 독버섯이야….~~~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 논리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한다. ‘자기의 이유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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