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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 141*211*27mm
ISBN-10 : 118622231X
ISBN-13 : 9791186222317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중고
저자 김종훈 | 출판사 이케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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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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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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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ㆍ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까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들어 있는 현충원 역사 기행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2009년 11월 초, 민족문제연구소는 44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다.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5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4명이 있다. 이 책에서는 2009년 반민규명위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 들지는 않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비공인 친일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친일파와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국가공인과 비공인 친일파 발밑에 잠들게 된 독립운동가,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이 잠든 5곳(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ㆍ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의 위치를 지도에 그렸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종훈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를 썼다. 현재 오마이뉴스 사회부 기자다.

목차

ㆍ이 책을 읽기 위해

1부 국립서울현충원
ㆍ한눈에 보는 국립서울현충원
ㆍ추천 답사
ㆍ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ㆍ서울국립현충원 친일파 묘역 위치(총 35명)
ㆍ임시정부요인묘역
ㆍ무후선열제단
ㆍ독립유공자들이 잠든 곳

1장 국립서울현충원의 국가공인 친일파
01 김백일 _독립군 때려잡던 친일파, 어떻게 현충원에 묻혔나?
02 신응균 _대한민국 포병의 아버지가 감추고 싶은 이력 하나
03 신태영 _“야스쿠니가 목표”라고 외쳤던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과거
04 이응준 _“천황에게 충성을” 외치던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
05 이종찬 _3대가 친일했지만 묘비엔 ‘명문 혈통’으로 언급된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06 백낙준 _해방 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된 연세대 총장의 과거
07 김홍준 _친일파 선정 발표 뒤 현충원에 재안장된 간도특설대원

2장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비공인 친일파들
01 박정희 _만주군 박정희가 남긴 기록 “멸사봉공, 견마지로”
02 정일권 _대통령 빼고 모든 걸 다 이룬 만주군 출신 최장수 총리
03 안익태 _《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작곡가의 노래는 어떻게 애국가가 됐나
04 채병덕 _무능했던 일본군 출신 육군참모총장의 최후
05 임충식 _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된 간도특설대 병사

3장 친일파 아래 잠든 국립서울현충원의 지사들
01 신규식 _그를 ‘임시정부의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이유
02 이상룡 _조선의 선비들이 이상룡과 같았다면, 역사는 어찌됐을까?
03 지청천 _친일파 이응준 발아래 잠든 광복군 사령관의 비애
04 김성숙 _이제는 제대로 알려져야 할 독립운동가 출신 민주주의자
05 김익상 _조선 최고의 상남자,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06 이재명 _이완용을 찌른 칼이 한 치만 더 깊었다면
07 나석주 _“나는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08 박열 _일본 감옥에서 외친 말, “나는 조선인이로소이다”
09 김상옥 _1:1000, 종로를 흔든 그날의 총성
10 박재혁 _‘가기허다수익’이면 ‘불가기재견군안’
11 이종암 _끝까지 살아남았다면, 그는 현충원에 잠들었을까?
12 조명하 _‘로즈데이’를 기념하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 사람
13 남자현 _영화 〈암살〉의 전지현은 정말로 남자현을 모티브로 했을까?


2부 국립대전현충원
ㆍ한눈에 보는 대전현충원
ㆍ추천 답사
국립대전현충원의 역사
국립대전현충원 친일파 묘역 위치(총 34명)

1장 국립대전현충원의 국가공인 친일파
01 신현준 _‘광복군’으로 신분 바꾼 해병대의 아버지
02 김석범 _‘창씨개명’만 하지 않은 해병대 사령관의 비밀
03 송석하 _“간도특설대 창설에 가장 큰 영향 끼친 인물”
04 백홍석 _친일파 백홍석이 묘비에 남긴 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05 백선엽 _한국전쟁 ‘영웅’의 감추고 싶은 과거 기록

2장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든 비공인 친일파들
01 김창룡 _김구 암살의 배후는 어떻게 현충원에 잠들었나?
02 방원철 _친일과 항일, 남과 북을 모두 ‘걸은’ 유일한 인물
03 황장엽 _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이 현충원에 잠든 이유

3장 친일파 아래 잠든 국립대전현충원의 지사들
01 곽낙원과 김인 _독립운동가 ‘김구’를 만든 사람들
02 정정화 _임정의 어머니, 그녀가 해방 후 정치를 하지 않은 이유
03 조문기 _우리가 놓쳤던 ‘마지막 레지스탕스’의 비극


3부 국립4·19민주묘지와 효창공원
1장 국립4ㆍ19민주묘지
ㆍ한눈에 보는 국립4·19민주묘지
ㆍ추천 답사
01 김경승 _친일파가 국립4ㆍ19민주묘역에 남긴 짙은 흔적
02 국립4ㆍ19민주묘역에 잠든 4ㆍ19혁명 시민 희생자
03 근현대사기념관 _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귀한 장소

2장 수유리묘역
ㆍ한눈에 보는 수유리묘역
ㆍ추천 답사
01 김창숙 _조선의 마지막 선비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
02 무후광복군과 이시영 _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애국지사들
03 이준 _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갔건만
04 신익희 _그가 살았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
05 여운형 _그날 혜화동로터리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3장 효창공원
ㆍ한눈에 보는 효창공원
ㆍ추천 답사
01 효창공원 묘역에 잠든 애국지사들
02 백범김구기념관과 의열사
03 안중근 _효창원에 마련된 가묘
04 차리석 _임시정부의 버팀목

ㆍ에필로그
ㆍ참고문헌

책 속으로

(p. 31)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 김백일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김찬규(본명)는 만주국 초기의 장교 양성 기관인 펑톈군관학교에서 수학했다. 견습 기간을 마치고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인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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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1)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 김백일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김찬규(본명)는 만주국 초기의 장교 양성 기관인 펑톈군관학교에서 수학했다. 견습 기간을 마치고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인 1938년 12월 젠다오성 일대 항일무장세력 탄압을 목적으로 설립된 간도특설대의 창설 요원에 선발되었다. 대위 진급 후 특설대 제1련의 연장(중대장)을 맡아 휘하 조선인 장병들을 거느리고 젠다오성 일대의 동북항일연군을 포함한 항일무장부대를 공격했다. 1944년부터는 러허성 및 허베이성 일대로 이동해 팔로군 ‘토벌’과 민간인 탄압에도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p. 79) 쿠데타 일으킨 만주군 출신 장군. 1960년 4ㆍ19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제2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한다. 정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이 됐고, 계엄부사령관과 계엄사무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거쳐 7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한다. 1961년 8월에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고 3개월 뒤인 11월에 별 네 개를 단 육군 대장이 됐다. 이때부터 육군 대장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내각 수반을 겸했다.
박정희는 5ㆍ16군사정변 직후인 5월 19일 〈민족일보〉를 폐간하고 발행인이었던 조용수사장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용수 사장에 대한 탄원이 이어졌지만 박정희 정권은 같은 해 12월 22일 사형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 916개 언론사 가운데 일간지 39개(중앙일간지 15개), 일간통신 11개, 주간지 31개만 남기고 모두 폐간당했다.

(p. 120) 1921년 9월 10일께, 베이징을 떠난 김익상은 신의주를 거쳐 1921년 9월 11일 서울에 도착한다. 동생 김준상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12일 일본 전기수리공 차림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로 갔다. 오전 10시경 청사로 들어가 2층 비서과에 폭탄을 던지고, 이어 회계과에 폭탄을 던졌다. 불행히도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계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했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리는 말도 안 되는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김익상의 놀라운 기지가 발휘된다. 전기수리공으로 위장한 김익상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일본어로 ‘피하시오’를 외치며 조선총독부 청사를 빠져나왔다. 이후 전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며 몸을 피했다. 목수로 위장해 평양을 거쳐 다시 자신이 왔던 길을 되짚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1927년 9월 17일. 베이징을 떠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총독부는 광화문이 아닌 남산 자락에 있었다는 것이다. 김익상의 의거 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 이전을 준비했고,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새로이 올렸다. 1926년의 일이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이 완전 철거할 때까지 무려 조선총독부 건물은 70년을 경복궁과 광화문을 잇는 맥을 끊고 있었다.

(p. 146) 타이중에서 일본인 이케다가 경영하는 차 농장 등에서 일하며 기회를 엿보던 조명하는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이던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가 일본군에 검열을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조명하는 그날부터 거사를 준비한다. 여기서부터 무협지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조명하는 확실한 성공을 위해 중국인에게 비도를 배워 연마한다. 비도, 말 그대로 칼을 던져 상대를 해하는 방식이다.
1928년 5월 14일, 타이중시 도서관 앞, 환영 인파 속에 일왕의 장인이었던 구니노미야가 등장했다. 구니노미야를 확인한 조명하는 품 안에서 비도 한 자루를 꺼내 망설임 없이 던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비도는 구니노미야의 목을 스쳐 운전자에게 박혔다. 하지만 조명하는 애석해하지 않았다. 그는 의거 성공을 위해 미리 칼에 독을 발라뒀다. 거사 후 조명하는 중국 군중을 향해 “당신들은 놀라지 말라. 나는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군경은 조명하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조명하는 타이베이로 압송돼 사형선고를 받고 5개월 뒤인 1928년 10월 10일 순국했다. 그렇다면 황족이었던 구니노미야는 어찌됐을까? 조명하의 예상대로 구니노미야는 패혈증에 걸려 이듬해 1월에 사망했다. 패혈증은 인체에 세균이 침입해 죽는 병이다. 조명하 의사의 거사가 죽음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p. 262)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김창숙. 3ㆍ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한 김창숙은 임정에서 이동녕과 이시영, 신규식 등 지사들을 만나 임시의정원을 조직한다. 1919년 4월 30일부터 열린 제4차 회의에서 김창숙은 김정묵 등과 함께 의정원 경상도의원으로 선출됐다. 5차 회의에서 김창숙은 교통위원이자 의정원 부의장직에도 당선됐다. 당시 의정원 회의가 진행됐던 곳이 중국 상하이 진선푸루, 지금의 루이진얼루라는 거리다. 아무런 표식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장소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이미 유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친 김창숙은 중국의 국부 쑨원 등과 도 공조해 한ㆍ중 공동 항일운동을 추진했다. 훗날 김창숙의 행보가 의열 투쟁까지 이어진 것을 고려하면 위기의 순간 대쪽 같은 선비의 지조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게 한다.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한국독립후원회도 당시 김창숙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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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현충원에서 만나는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와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 ‘충렬을 높이 드러냄. 또는 그 충렬.’ 국어사전에서 현충(顯忠)을 정의한 말이다. 충렬(忠烈)의 사전적 의미는 ‘충성스러운 열사’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독립...

[출판사서평 더 보기]

◇ 현충원에서 만나는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와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
‘충렬을 높이 드러냄. 또는 그 충렬.’ 국어사전에서 현충(顯忠)을 정의한 말이다. 충렬(忠烈)의 사전적 의미는 ‘충성스러운 열사’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충원은 현재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이상한 동거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불린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이 2020년 7월, 논란 속에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안장됐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업적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를 다시 기억해내고 기록한다. 그리고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의 행적과 좇아서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를 짚어낸다. 더불어 항일과 친일을 기억하는 공간이 달라야 하는 이유를 통해서 우리의 실천적 지혜를 모으고, 항일과 친일의 경계를 짓는다. 현충원이 독립운동가에게는 항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장소로, 친일파에게는 책임을 ‘묻을’ 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차이와 사이를 구분하고 하나씩 바꿔가는 일이 우리 후손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은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그리고 국립4ㆍ19민주묘지과 수유리묘역과 효창공원을 총 3부로 나눠 설명한다. 국립묘지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고, 누가 잠들었는지 알 수 있도록 각각의 국립묘지를 지도 위에 그려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역사를 풀어냈다.
1부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 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외에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비공인 친일파 5인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등이 있다.
제2부는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선엽의 행적을 좇는다. 국립대전현충원은 계룡산 줄기 따라 뻗은 국가공인친일파의 무덤들 아래 독립운동하다 생을 마감한 지사들의 묘가 펼쳐져 있다.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뤘다. 서울시 강북구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민주열사와 애국지사의 무덤,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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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당신은 한국인인가? 그렇다면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여기 와 있는 동지들 ...

    당신은 한국인인가? 그렇다면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여기 와 있는 동지들 중에 그 병을 앓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 아들만 살릴 수 있단 말이냐'  -김구가 죽어가는 장남을 두고 며느리에게 한 말.


    매국노라는 단어를 청소년기에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매국노에 대한 분개가 일어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매국노가 있었으며 그 사람이 결국 마을의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나서 욕아닌 욕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일제를 향한 감정은 어쩌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한국을 향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독일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의 위령탑 앞에서 무릎 끓고 사과한 행동은 역사에 길이 남을 행동이면서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지표가 되리라 생각된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빌리 브란트 총리
    왜놈이라고 일컫는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도 국민 감정상 좋지 않건만 더 국민 감정을 화나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친일파'라는 존재들이다. 한국인이라면 친일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것이다. 수년 전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남양주 남이섬이 친일파 후손이 산 땅이라는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친일파에 대한 잔재는 한국에서는 뿌리 뽑히지 않는 앙금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협력자'(collaborateur)의 약칭인 콜라보(Collaborateur)들에 대한 숙청 작업을 벌였으며 과거사 청산을 어느 정도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협력자는 '독일강점기'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인을 의미)

    그런 가운데 ' 항일과 친일의 역사에 따라 현충원을 한 바퀴' 도는 책이 나와서 이 책을 통해 한 번은 제대로 친일파에 대한 정리와 기본적인 자료를 알고 싶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현충원은 말 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친구가 수유리에 있어서 4.19 국립묘지를 가본적은 있지만 매스컴에 나오는 현충원은 TV로만 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에는 국가를 위한 목숨을 바친 자들만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읽으면서도 매우 화가났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렇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책 18페이지를 보면 2009년 11월 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4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 내용이 나온다.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5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4명이 누워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2009년 반민규명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놓쳐서는 아니 될 '비공인 친일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감정을 가라 앉히되 냉정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런 부분을 이야기 한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의 묘역에서 독립 운동가의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p05


    그렇다. 우리는 절대로 그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악행을 지금이라도 처단하고 그들이 가진 재산이나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또 다른 짓밟힘이 있을 때 매국노와 같은 친일파들이 드글드글 꿈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1부를 보면 국립서울현충원을 다룬다.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 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외에도 국립서울현충원 최중심부에 잠든 박정희 전 대통령,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에 대해 나온다.

    제2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해 다룬다.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그리고 한참 TV에서 거론되었고, 최근에 광화문 불법 점유에 따른 분향소 철거가 이루어진 '전쟁영웅'이라고 불리는 백선엽 장군에 대한 행적이 나온다. TV에 나왔기에 관심을 가지며 읽은 부분이다. 그런데 국립대전현충원은 계룡산 줄기 따라 뻗은 국가공인친일파의 무덤들 아래 독립운동하다 생을 마감한 지사들의 묘가 펼쳐져 있다. 이분들에게 미안하다.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룬다. 이곳 또한 위의 두 곳과 다르지 않게 애국지사의 무덤과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이 함께 펼쳐진다.

    이 책은 저자가 3년이라는 시간을 '발로 만들어 간 책'이다. 그만큼 정성과 애국에 대한 마음이 이 책 안에 스며져 있다. 물론 이 책은 친일파에 대한 자세한 악감정을 잘 드러내 주지만 무엇보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루어주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자들도 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 있어 한쪽 마음은 밝아지게 되었다.

    특별히 이 책은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이 잠든 5곳(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의 위치를 지도에 그려주어서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 자료와 함께 유용하게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무엇보다 잘 알지 못하여 하마터면 그곳에 잠들어 있는 자들에게 존경심과 경외감을 다 줄 뻔한 우리의 마음을 분별해 주는 귀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저자의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국가공인 친일파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한 문장


    김백일 _ :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파, 어떻게 현충원에 묻혔나? p27

    신태영 _ : 야스쿠니가 목표라고 외쳤던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인 그는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안장)이다고 말했다. p43

    백낙준 _ : 해방 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된 연세대 총장의 과거. (이 사람에 대해 몰랐다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나 그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이 이 책에 나온다)

    백낙준이 직접 편집과 살료, 사설을 써가며 자신의 친일 행각을 알린 <기독교신문>은 1942년 4월 29일 일왕 히로이토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조선기독교협회가 창간했다.
    <기독교신문> 창간 10년 전인 1932년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의거를 성공시킨 날이기도 하다. 반민규명위는 백낙준의 행적에 집중했다.

    "백낙준은 1942년 '종교보국'을 사명으로 창간된 기독교 신교 각차의 합동기관지 <기독교신문> 이시와 편집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황민화 정책과 전쟁 협력을 강조하는 지면을 편집하고 직접 설교와 사설을 썼다. '이영타도' 좌담회에 참석하고 전잰협력설을 역설하는 기고문을 반복적으로 발표하는 등 사회단체를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적극 협력했다." p62-64

    그는 어디에 잠들었나? 국가유공자 제1묘역 26번이다. 여기는 이승만 대통령 묘소 바로 뒤쪽에 조성된 곳으로, 친일파 김백일과 신응균이 잠든 장군제1묘역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걸 보면서 감정을 추수르는 것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이놈들의 비열함과 악행을 봐야할 것이다.)
    곽낙원 지사 _ : 독립운동가 김구를 만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곽낙원 지사는 김구의 오른팔이었던 엄항섭을 찾아가 "돈을 모았으면 내가 알아서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테니 돈을 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일날 곽낙원지사는 임정 지사들에게 보자기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단총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이 총으로 왜놈들 한 놈이라도 더 죽여라."

    ---------


    김구의 장남이자 관낙원의 손주였던 독립운동가 '김인' 떠나다.

    당시 김인의 나이는 스물여덟게 불과했다. 폐렴을 앓다 약을 제때 쓰지 못해 병사했다.
    당시 김인의 부인이었던 '안미생'과 시아버지 김구 사이에 일화가 전해진다.
    "남편 김인이 폐병으로 쓰러지자 안미생은 시아버지 김구를 찾아가 당시 폐병에 특효약으로 알려진 페니실린을 맞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김구는 '폐병으로 죽어가는 다른 동지들도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데 아들이라고 특별히 대우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이 당시의 상황을 회고록에 남겼다.
    "형님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볼 것은 페니실린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봉쇄로 물자 수송이 어려워 페니실린을 구하기 힘들었고, 가격도 매우 비쌌다. 형수는 아버지에게 페니실린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정색하며 말씀하셨다. '여기 와 있는 동지들 중에 그 병을 앓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 아들만 살릴 수 있단 말이냐' 형수는 아버지의 매정한 대답에 마음속으로 원망했을 것이다. p215-216

  •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 1부,,,국립서울현...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

    1부,,,국립서울현충원은 서울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묘지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을 선택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땅 ,,, 그곳이 바로 국립서울현충원

    2부,,,국립대전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로 달하는 100만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묘지

    충남의 자랑인 계룡산 줄기 따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3부,,,수유리 4.19 국립묘지와 서울효창공원을 다뤘다

    서울시 강북구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민주열사와 애국지사의 무덤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과정과 희생을 거쳐 탄생가게 됐는지 수유리 4.19국립묘지 곳곳에 잠든 지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사망한 국군장병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동작동 일대에 국립묘지를 조성할 것을 결정했고 1954년 삼일절을 기념해 공사가 시작됐다

    2년이 지난 1956년 4월 대͈령령으로 첫 번째 안장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중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묘였다

    이듬해인 1957년 4월부터 신분이 확인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국립묘지로 불리던 현충원이 국립현충원으로 개편된 건 1996년 6월의 일이다

    현충원에 국립묘지가 조성되고 40년이 지나서의 일인데 그 사이 현충원에는 신분이 바꾼 친일파들이 국가의 영웅으로 포장돼 잠들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개원 이래 지금까지 국방부가 직접 운영관리하고 있다

    대통령 이하 주요 인사들이 현충일을 비롯해 광복절이나 선거를 마친 뒤 항상 참배하는 곳이지만

    요지마다 친일파가 잠들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고 본인의 주관적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현충원에서 만나는 '바로 알아야'할 우리 역사와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역사


     

    '역사를 잊는 이에게는 미래란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역사니까 우리가 알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지금 한국사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 아이에게도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번에 만난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책에서는 친일파와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국가공인과 비공인 친일파 발밑에 잠들게 된 독립운동가,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충신 애국지사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북'인 만큼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책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현충원에 직접 가 보고 싶네요,,


    <p style="text-align: center;"> 눈보라처럼 혹독한 시대였던 일제 강점기, </p> <p style="text-align: center;"> 이 시기에 여러 열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하나뿐인 목숨도 아끼지 않고 말이에요,, </p> <p style="text-align: center;"> 독립운동가들은 저마다 가진 재능으로 나라를 구하는 데 힘썼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총을 잘 쏘기로 유명한 의병장 홍범도는 깊은 산속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으며, </p> <p style="text-align: center;"> 강직한 김구는 중국 상하이에서 수많은 독립군을 지휘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그런데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의 무덤이 친일파 무덤 발밑에 있다니.. </p> <p style="text-align: center;"> 어떻게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을 수 있나요~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대통령 이하 주요 인사들이 현충일을 비롯해 광복절이나 선거를 마친 뒤
    </p> <p style="text-align: center;"> 항상 참배하는 곳이지만 요지마다 친일파가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그중에는 '국가공인 친일파'도일곱 명이나 있다니 참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나네요. </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 무후선열제단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건만 후손이 없거나 유해를 찾지 못했다는 </p> <p style="text-align: center;"> 이유로 이름 석자만 남긴 지사들을 기리기위한 곳입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그곳에는 3*1운동의 불꽃인 유관순, 헤이그 특사의 이상설과 이위종, 봉오동 전투와 </p> <p style="text-align: center;">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등 독립운동을 한 의사와 열사 130명이 모셔져 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무후선열제단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고개를 숙여 참배를 할 때마다 제단 너머 자리한 </p> <p style="text-align: center;"> 장국제2묘역에도 참배를 하게 된다는 점인데, 자신들 머리 위해 친일파가 잠들어 있는 </p> <p style="text-align: center;"> 사실을 알면 지사들은 어떤 마음이 들지 정말 저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책에 소개된 친일파들의 행적들을 보면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일제강점기 때는 버젓이 친일파로 활동하다가 광복 후 아무렇지않게 대한민국의 </p> <p style="text-align: center;"> 국민으로 스며들었다는 것이.. 아마 미군정치로 인해 친일파를 제대로 구별해내지 못한 </p> <p style="text-align: center;"> 이유가 있었겠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참 안타깝습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정부가 국가공인 친일파로 발표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변함없이 무덤이 유지되고 있다니, </p> <p style="text-align: center;"> 이는 법을 바꿔야하지 않을까요~ 친일파 아래 잠든 지사들이란 말이 안 나오도록..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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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이었네요.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이었네요.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싶어요.

    신친일파의 등장!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함부로 친일파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무리에게 속지 않으려면.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북이라고 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충원.

    이 책은 우리에게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역사와 인물들을 알려주고 있어요.

    바로 항일과 친일의 역사.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 4·19민주묘지와 효창공원.

    같은 공간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 가장 충격이었어요.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국가공인 친일파' 일곱 명.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   

    특히 국립서울현충원 장군2묘역에 잠든 신태영과 이응준의 묘소 위치가 문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애국지사묘역 머리맡에 있다.

    지사들의 묘소를 바라보고 참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국가공인 친일파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17p)


    우리 정부가 친일파로 공인하지 않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비공인 친일파 5인  (75p)

            박정희, 정일권, 안익태, 채병덕, 임충식     


    읽는 내내 부글대는 속을 주체하기 어려웠어요.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대며 사는 나라인 것도 원통한데, 죽어서까지 애국지사들을 제치고 명당 자리에 떠억 누워 있었구나. 

    2020년 7월 10일 별세한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은, 정말이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였음을 알게 됐어요.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보수세력은 "향년 100세로 별세한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해 각계 조문과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없었다. 대한민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189p)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백선엽은 봉천(펑톈) 군관학교를 9기로 졸업한 뒤 견습군관을 거쳐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다"면서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패망으로 해산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에 대해 모두 108차례 토벌 작전을 벌였다"라고 설명되어 있어요.(189p)

    군인권센터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고 백선엽 씨에게 믿기 힘든 국가 의전을 제공했다는 성명을 냈는데도, 관련 법안의 부재로 그의 현충원 안장을 막지 못했어요.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바른 역사 지식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은 친일파 매국노를 처단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직접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 4·19 민주묘지와 효창공원, 수유리묘역까지 현장을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캡처.JPG

  • 이케이북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김종훈 지음

    서울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면적의 국립대전현충원, 수유리 4.19국립 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랜 일제 치하의 세월을 보내며 광복을 맞이했지만 미 군정으로 인해 친일파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척결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파들이 대거 미 군정 아래로 편입되면서 친일파들에겐 구사일생의 기회를 맞이했던 안타까운 역사 앞에서는 늘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해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조선인으로 일본인의 편에 서서 조선인들을 응징했던 친일파들은 광복을 맞은 후 경찰이나 군인으로 탈바꿈한 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인물들로 거듭났으니 책을 읽다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극명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이런 역사적 흐름과 현충원 안에 잠든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과 함께 묻힌 친일파들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애석함과 아이러니라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자리 배치를 접하게 된다면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오게 되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애국지사가 묻힌 묘 윗부분을 친일파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믿기지 않을 뿐이다.

    현행 상훈법 제8조로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나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거나 적대 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관세법, 조세범 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금고형을 받은 경우에만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국립묘지법 제5조 1항에 의거해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 퇴역 또는 면역된 후 사망한 사람"이라는 조건 때문에 친일파 인명사전에 오른 후 십 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평안히 묻혀 있다는 게 사실 좀 납득이 안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4,4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에 35명, 대전현충원에 33명이 아직도 아무런 조치 없이 잠들어 있다. 책에서는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친일파들에 대한 세세한 내력과 반민 규명위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비공인 친일파'에 속하는 박정희, 정일권, 안익태, 채병덕, 임충식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어제까지는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던 일본군에서 광복 후 여순사건 계엄사령관으로 변신한 김백일이나 일본군이었다가 야전포병 사령관으로 활동하며 '한국 포병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신응균, 3대가 친일파로 활동했지만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던 이종찬 등의 이야기를 내리읽다 보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이들의 전술과 홀로 감행했다면 이런 지위까지 얻지 못했을 이들의 승승장구가 같은 친일행적을 했던 끼리끼리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시대를 엿보며 묵직해진 명치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게 된다.

    화딱지 나는 이들의 행적을 지나 신규식이나 이상룡, 지청천 등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는데 어쨌든 이 책의 팁은 저자가 알려준 동선대로 현충원을 돌아보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사가 있을 때 티브이에 비치는 현충원 모습만 접하고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저자가 알려준 동선대로 현충원을 돌아보다 보면 말없이 잠들어 계실 애국선열들의 목소리가 가슴 절절히 들려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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