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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
384쪽 | | 154*223*27mm
ISBN-10 : 8997201352
ISBN-13 : 9788997201358
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 중고
저자 프랭크 에이렌스 | 역자 이기동 | 출판사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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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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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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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경제부 기자였던 저자가 현대자동차 글로벌 홍보 임원으로 전직해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이방인 임원이 낯선 유교문화의 나라에서 겪은 유쾌한 문화적 충돌과 현대자동차의 치열한 사무실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한국에서 일한 3년여의 시간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현대자동차의 노력이 빛을 발한 시기였다. 자신이 이러한 노력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저자는 한국 근무를 하며 ‘전장의 상처’ 같은 것을 입었다고 고백한다. 크고 작은 문화적 충돌은 물론이고, 치열한 사내문화에서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근무를 마칠 무렵 그는 3년 넘는 세월이 자신을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좀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었다고 고백한다.

저자소개

저자 : 프랭크 에이렌스
저자 프랭크 에이렌스(Frank Ahrens)는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18년간 기자로 일하다 2010년 현대자동차로 옮겨 2013년 말까지 글로벌 홍보 부문 상무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사로 출발해 2년 근무 후 상무로 승진, 현대자동차 국내 본사에서 일하는 외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책에 올랐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대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가족과 함께 워싱턴에 살고 있다.

역자 : 이기동
역자 이기동은 서울신문에서 초대 모스크바 특파원과 국제부차장, 정책뉴스부차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소련연방 해체를 비롯한 동유럽 변혁의 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등과 경북대 철학과,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지원으로 미국 미시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블라디미르 푸틴 평전-뉴 차르》《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인터뷰의 여왕 바버라 월터스 회고록-내 인생의 오디션》《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선택》《마지막 여행》《인터넷 시대의 신문명 비판-루머》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기본을 지키는 미디어 글쓰기》가 있다.

목차

1. 미국 비슷한 나라 8
2. 중년의 위기 31
3. 현대차그룹 홍보 담당 임원이 되다 61
4. 별천지, 용산 미군부대 안 숙소 86
5. 디트로이트 모터쇼: 프리미엄 브랜드를 향해 98
6. 코리안 코드 124
7. 눈치 보기 138
8. 경쟁 또 경쟁 148
9. 이순신 장군과 현대차 정신 158
10. 세종대왕과 중국의 자동차 시장 174
11. 통일 특수 기다리는 현대차 189
12. 현대차 홍보해 준 폴크스바겐 CEO 200
13. 우리 집으로 온 회장님, 체어맨 213
14. 콩글리시, 영어 비슷한 영어 221
15. 올해의 차’ 아반테 244
16. 기러기 아빠 254
17. 공황발작 264
18. 외국인 상무 280
19. 다시 혼자가 되다 292
20. 제네시스와 쏘나타 310
21. 서울과 자카르타의 차이 316
22. 출구전략 332
23. 뉴 제네시스의 성공 337
24. 집으로 343
에필로그: 현대차와 대한민국, 그리고 나 356

책 속으로

[1장 미국 비슷한 나라] 요란한 K팝 음악이 고문하듯이 두 귀를 두 드린다. 남들이 피워대는 간접흡연 담배연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운다. 빳빳하게 다려 입고 나온 셔츠는 땀에 흠뻑 젖고, 저녁에 먹은 소고기 기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양념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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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미국 비슷한 나라]

요란한 K팝 음악이 고문하듯이 두 귀를 두 드린다. 남들이 피워대는 간접흡연 담배연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운다. 빳빳하게 다려 입고 나온 셔츠는 땀에 흠뻑 젖고, 저녁에 먹은 소고기 기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양념이 여기저기 튀어 범벅이 되어 있다. 창 도 없는 컴컴한 방안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번쩍이고, 열댓 명 되는 한국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박수치고, 웃고, 서로 껴안은 채 놀고 있다.
벽에 있는 가라오케 화면에는 눈을 휘둥그레 뜬 아이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영어와 한글로 가사가 지나간다. 아내는 방안 어 느 구석엔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피신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마이 크 하나를 같이 잡고 한국 가요를 합창하자, 나머지도 신이 나서 따라 불렀다. 나도 그들 가운데로 끌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다 잠시 쉬는 사이 나이 든 아주머니가 날라다 주는 작은 녹색 병에 담긴 액체를 계속 마셔댔다. 나는 그런 곳에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웃 고, 쉬지 않고 노래 부르고, 만난 지 닷새밖에 안 된 사람들과 서로 끌 어안고 뛰었다. 웰컴 투 코리아! Welcome to Korea!

나는 한국이 무미건조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일본이 그 랬던 것처럼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곳이리라는 생각을 하고 왔다. 놀라 운 경제성장, 활짝 핀 민주주의, 초고속 인터넷망, 우수한 학생들, 그리 고 흠잡을 데 없이 말끔하게 차려입은 시민들. 차세대 삼성, LG 전자기 기들의 TV 광고를 통해 내가 아는 한국의 모습은 그랬다. 실제로 본 한 국의 모습도 그렇기는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것과는 살짝 다른 모습이 또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음과 복닥거리는 사람들, 교통체증, 고약한 냄새, 밤을 새는 회식, 가두시위, 멱살잡이가 오가는 국회 등 시 각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런 장면이 한꺼번에 덤벼들자 나는 링에 오르는 순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그래도 시작해 봐야겠다. 충격을 받은 순서 대로라면 김치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다.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인 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입국장을 벗어나기 전에 벌써 이 냄새가 훅 풍 긴다. 사실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곧바로 이 냄새가 난다. 한국 사 람들에게는 김치 냄새가 바로 고향의 냄새이고 집 냄새이다. 150년 걸릴 산업화를 50년 만에 압축해서 이룬 나라가 한국이다. 그 엄청난 도 약을 가능하게 해 준 로켓연료 같은 존재가 바로 김치이다. 하지만 처 음 접하는 외국인에게 김치는 그저 냄새 고약한 음식물일 뿐이다. 김치 양념의 핵심은 마늘과 고춧가루이다. 그래서 매운 맛을 낸다.
아침식사 때부터 김치가 나오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약한 냄새에 놀라 움찔하게 된다. 김치는 여러 종류가 있고, 냄새 또한 다양 하다. 시큼하고 매운 맛이 나는 김치도 있다. 냄새가 덜 나는 김치도 있 고, 고약한 발 냄새가 나는 것도 있다. 금속 냄새도 나는데, 점심 때 김 치를 먹은 사람 스무 명이 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숨을 내뿜으면 그런 냄새가 진동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집안에 김치 냉장고 여러 대를 놓고 김치 냄새 가 집안에 퍼지지 않도록 한다. 김치 냄새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거의 모든 한국인들 의 일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김치는 한국인들이 가 진 문화적 정체성의 주축을 이룬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미국인들의 햄 버거와 비슷한 존재이다. 미국인들도 끼니마다 햄버거를 먹지는 않으 니, 햄버거보다 더한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치는 한국에 도착했 음을 알리는 위치 탐지기 같은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두 눈 을 가린 채 비행기에 태워 미지의 장소로 데려다 놓았을 때 햄버거 냄 새가 나면 그곳이 세계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 리는데 김치 냄새가 난다면 그곳은 한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치는 끔찍하게, 공격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한국적인 음식이다. 한국에 대 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건너야 할 첫 번째 다리 가 바로 이 김치 냄새일 것이다.
나는 아내 레베카와 함께 2010년 10월 워싱턴을 출발해 열세 시간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그것도 중간 열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논스톱으로 왔다. 아내는 외교관U.S. Foreign Service 신분으로 주한 미국대 사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홍보 담당 이 사director를 맡기로 돼 있었다. 우리는 함께 근무하던 워싱턴 포스트를 사직하고 서울로 왔다.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서로에 대 해 알아가고, 신혼생활을 좀 더 즐길 시기에 갑자기 근거지를 떠나 외 국으로 떠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새로운 직장에서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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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려는 현대의 노력에 동참 저자가 현대에서 일한 시기에 현대차는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펼치기 시작했고, 글로벌 톱3에 드는 우수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성과지표에 올인했다. 그리고 저자가 일한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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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려는 현대의 노력에 동참
저자가 현대에서 일한 시기에 현대차는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펼치기 시작했고, 글로벌 톱3에 드는 우수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성과지표에 올인했다. 그리고 저자가 일한 글로벌 홍보팀은 현대차가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결실과 환희,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현대의 노력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치열한 경쟁과 일사불란함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패러독스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서울 근무를 마칠 때쯤에는 그 경쟁심이 바로 한국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해한다. 경쟁에서 질 것에 대한 두려움. 현대자동차를 이끄는 힘, 대한민국을 이끄는 힘이 바로 이 경쟁심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저자의 서울생활 회고는 애정으로 일관한다. “가끔, 정말 가끔은 테이블 한가운데 소고기가 잔뜩 놓인 지글거리는 불판 앞에 어깨를 부대끼며 앉아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불티가 튀고, 소주병이 오가고, 연기와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따스함이 모두에게 스며들었다. 정이 넘쳐났고, 외국인도 그때는 이방인이라는 기분을 조금은 덜 느꼈다.”

일사불란한 대기업 사내문화에 떨어진 미국 폭탄
저자가 한국에서 겪은 문화적인 충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는 자신을 한마디로 동양적이고, 조화롭고, 격식을 중시하는 사무실 문화 한복판에 투하된 ‘미국 폭탄’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와 외교관인 그의 부인은 모두 4년의 근무기간 중에서 계약 기간 10여 개월을 남기고 해외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은 서울에 있고, 아내와 갓난 딸은 자카르타에 떨어져 사는 가정적인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마침내 깨달았다. 아내와 나는 가족으로서 마땅히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을 다름 아닌 돈과 맞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악마와의 거래’였다.” 그의 사정을 아는 현대 측은 그의 사직을 선선히 받아들여 주었다고 했다.

[책속으로 추가]
아내는 가보고 싶은 여러 곳 가운데서 다음 차례가 된 나라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다른 미국인들보다 더 아는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터넷망이 가장 잘 깔린 나라이고,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김치를 먹는다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미국 소비자들은 LG 평면 스크린 TV와 삼성 스마트폰, 그리고 현대차와 기아차 등 대표적인 소비제 브 랜드를 통해 한국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폭압적인 북한 김씨 왕조의 위협적이고 웃음거리 같은 뉴스를 통해 한국을 아는 정도이다. 서울에 오기 전 누가 나보고 유명한 한국사람 이름을 대보라 고 했다면 몇 명 꼽지 못했을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유명한 야구선수, 영화배우 몇 명을 아는 정도였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께 서 한국전 참전용사였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전쟁에 대해 들은 것도 조금 있다. 시차 때문에 서울은 워싱턴보다 13시간 내지 14시간 앞서 간다. 한국은 우리에게 미래의 세상인 셈이다.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우리는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라는 말 은 그만 쓰고, 그냥 ‘코리아’Korea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우스 코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날을 기다리며 한국인들은 북한을 북쪽에 위치한 한국 영토로 생각하고, 북한 사람들 은 ‘사우스 코리아’를 남조선이라고 부른다. 남쪽에 위치한 북한 영토라 는 뜻이다.
시간을 내서 며칠 동안 서울 곳곳을 둘러보았다. 서울은 인구 1천 만 명이 사는 메가시티로, 한강을 기준으로 강의 북쪽에 있는 구시가는 강 북이고, 강남이라 부르는 남쪽은 신시가지이다. 강남은 베벌리힐스와 만나는 5번가인 핍스 애비뉴Fifth Avenue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K팝스타 인 싸이의 2012년 유투브 [강남 스타일]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유 투브 조회수가 20억 회가 넘었다. 많은 부자들이 강남에 살고, 쇼핑도 그곳에서 한다. 민주적이고 활기에 넘치며, 호화로운 강남은 강북의 한 국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땀 흘려 이룬 노력의 결실이다. 이들은 강력 한 지도자의 통치 아래 헐벗은 한국을 잿더미 속에서 일으켜 세웠다. 강남은 한국의 미래처럼 보이고,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전통적인 한 국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사실은 전국 대부분이 산악 지역 이다. 한국의 산들은 나의 고향인 웨스트 버지니아주 풍경을 연상시킨 다. 워싱턴 D.C.는 위도가 서울과 비슷하기 때문에 기후도 여름은 무덥 고 겨울은 살을 에듯 춥다. 낮의 길이가 짧은 겨울철 내내 한국의 샐러 리맨들은 깜깜할 때 출근하고 깜깜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실은 일 년의 절반을 그렇게 산다. 10월에 도착했을 때 산들은 오렌지, 노랑, 붉 은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서울에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스처럼 다른 아시아 대도 시들에 있는 상징적인 고층건물이 없다. 대신 서울 건축물의 특징은 20 층 넘는 베이지색 아파트 건물이 무리를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아파트 각 동의 측면 벽에는 큰 숫자로 동수가 쓰여 있다. 멀리서 보면 여 러 개의 언덕이 일렬로 늘어서서 행진하는 모양새이다. 평지가 부족하 고 산과 산 사이에 도시가 형성되다 보니 서울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수직적인 도시가 되었다.
5천 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울을 둘러싼 수 도권에 산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인구는 350만 명에 불과하 다. 그래서 한국은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에 가깝다. 국토 면적이 더 넓을 뿐이다. 서울은 정치에서부터 유행을 선도하는 분야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최고 중심지이다. 서울은 여러 분야에서 동아시 아의 문화 엔진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인들은 K팝과 한국 TV 드라마에 열광하는데, 일일 연속극 DVD와 유에스비 플래시 드라이브는 북한 지 역에까지 진출해 있다. 뇌물이 성행하는 중국과의 국경을 통해 북한 땅 으로 몰래 들여보내지는 것이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2500 만 명의 북한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아쉬우나마 이 비디오를 통해 아름 답고, 잘 먹고, 그지없이 부유한 서울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서울은 또한 수많은 성형외과 병원이 모여 있어 한국 성형 벨트의 중 심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인구 대비 성형수술을 한 사람의 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이다. 일류 대학이 가장 많은 도시도 서울이 고,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재벌 회사가 모여 있는 곳도 서울이다. 그래 서 한국을 알려면 서울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서울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 나라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저수지 같은 곳이다. 발전하는 한국이 보여주는 최고의 모습이 바로 서울인 것이다. 미국대사관은 서울 구시가 다운타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크고 제일 중요한 역사적인 궁궐에서 대로를 따라 내려가면 있다. 이 궁궐은 한국을 500년 동안 다스린 영광스러운 왕조의 본거지 이다. 전통적인 곡선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끝이 마치 모자챙 처럼 우아하게 위로 올라가 있어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영화감 독들에게 이 궁궐은 서울을 상징하는 ‘설정샷’establishing shot이다.

아내는 처음 몇 주 동안 함께 일하는 미국인 직원, 한국인 동료들과 얼굴을 익히고, 매일 처리해야 할 영사 업무에 대해 파악하며 보냈다. 아내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해 하루 8시간 고객 서비스 창구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방문비자를 신청한 한국인들 과 (한국어로) 하루 250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내가 하는 일은 이들 의 방문 목적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쌍둥이 타워였다. 미국대사 관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양재라는 동네로, 현대 창 업주가 1970년에 건설한 남북을 잇는 주요 고속도로 가까운 곳에 자리 하고 있다. 아내가 일하는 강북의 도심과 달리 내가 일하는 곳 주위에 는 전통적인 건축물이 거의 없다. 사무실 바로 옆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하나 있는데, 아마도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슈퍼마켓일 것이다. 대 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본사가 가까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코스트코Costco 매장이 있다. 토요일 오전이면 수천 명의 내국인과 외국인이 몰려 들어 이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이 주차공간이 나기를 기다리느라 건물 주 위를 뱀처럼 휘감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에 이은 한국 제2의 재벌이다. 현대차와 기아 차를 비롯해 30개가 넘는 계열사들로 구성돼 있으며, 자동차 부품 생 산업체, 철강회사, 방위산업체도 있다. 나는 재벌 기업인 현대차에서만 일했는데, 재벌은 일본의 자이바쓰財閥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들은 한 국의 고속성장을 이끈 견인차였고, 세계 13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 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역이다. 재벌은 수십 개의 계열사로 구성되는 데, 그 가운데 일부는 그룹의 핵심 비즈니스와 관련돼 있고, 전혀 관련 없는 업종들도 있다. 재벌 일가들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 소규모 지 분을 가지고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런 식으로 재벌의 소유권은 대를 이 어 세습되어 왔다. (‘현대’라고 부르면 현대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이 해당되지만, 이 책에서는 내가 일한 현대자동차를 ‘현대’로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한국의 재벌들은 창업자의 3세, 4세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중 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정권을 세습하고, 남한에서는 기업을 세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국내외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승계 과정에서 한국의 재벌이 경영방식이나 인적 구성 면에서 더 국제화 되 고, 덜 배타적인 모습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 후계자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통한데, 영어 실력은 재벌에서 일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질이 다. 재벌은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국의 놀라운 성장 스토리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으며, 미래의 번영도 자신할 수 없는 처지이다. 한국의 미래는 상당 부분 삼십대, 사십대인 이들 재벌 후손들 몇 명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나를 고용 한 것이다.
한국은 거의 단일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97퍼센트가 한민족이다. 일 본, 북한에 이어 지구상에서 세 번째 단일 민족 국가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김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 다. 한국을 가장 대표하는 이름은 ‘김이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 도이다. 그러다 보니 출근 첫 주에 많은 한국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 면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자신을 소개하는 동료들 거의 대부분이 같은 성에 이름만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 동안 글로벌 PR 담당 이사로 본사 사무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미스터 리, 미스터 김, 미스터 박을 만났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알아듣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고개 숙 여 인사하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곳의 예법에 따라 두 손으로 공손 하게 받은 명함을 한 웅큼 들고 내 방으로 돌아오면 누가 누군지 하나 도 기억나지 않았다.
글로벌 홍보팀은 유럽의 일류 자동차 전문기자 몇 명을 초청해놓고 그 준비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 온 ‘외국인’인 내게 업 무보고를 해줄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자기들의 직속 상사가 아니었다. 출근한 첫째 주 금요일 저녁에 팀원들이 나를 환 영하는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알고 보니 팀원들과 함께 나를 초대한 사람은 나의 직속 상사인 미스터 리였다. 출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기억하기 쉽도록 그 사람이 준 명함에다 ‘마이 보스’my boss라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고약하 게도 내 서투른 안목으로는 그 사람과 본사에 근무하는 다른 임원들이 외모로 구분이 안 되었다. 하나같이 남성이고, 중년에, 중키, 중간 체 격, 검은 머리, 수염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옷도 똑같이 입었다. 짙 은 색 정장, 흰색 와이셔츠에 빨간색 아니면 푸른색 넥타이를 맸다. 미스터 리는 같은 연배의 다른 남자들보다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걸음걸이는 다소 으스대는 폼이었다. 겉으로 감정 을 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집 떠나온 미국인 홍보 이사에게 아 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함께 점심을 하러 나가면,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동차의 라디 오 채널을 자신이 듣는 한국 가요 방송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채널로 돌 렸다. 미스터 리는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짓궂은 농담을 잘했다. 팀원들 에게 수시로 야근을 시켰는데, 그런 식으로 단체생활의 규율을 세우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아시아의 기업 문화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 다. 근무시간은 월요일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금요일 저녁에 끝나는 데, 마치는 시간은 보스가 정했다.
드디어 아내와 내가 처음으로 한국음식을 제대로 먹을 기회가 왔다.

사실은 억지로 먹은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녁 자리에 아내와 함께 갔는데, 팀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직원들끼리 하는 저녁식사 자리에 직원의 아내는 함께 참석하지 않는 게 관례 였기 때문이다. 그런 관례는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 리가 이곳 관습대로 새로 태어난 우리 아이의 백일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다면 우리 팀 보스의 아내도 참석하겠지만, 이번 저녁처럼 팀원들 의 회식 모임에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끼리는 이런 일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를 모르고 나는 그날 저녁 아내와 함께 팀원들이 모이는 숯불구이 식당으로 갔다. 식탁 한가운데 자리한 벌겋게 단 숯불화로에 날고기를 올려놓고 구웠다. 식탁에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작은 반찬 접시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나물과 잡채, 젓갈류를 비롯해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김치가 등장했다. 하지만 바비큐 소스는 보이지 않았 다. ‘한국식 바비큐’는 우리를 도와주는 국무부 소속의 스폰서 직원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해준 말을 실감시켜 주는 음식이었다. 그는 ‘거의 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나라’the land of Almost, Not Quite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말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대한민국, 특히 서울은 대도시 에 익숙한 서양인들의 눈에 익숙한 도시이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조금 씩 생소한 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바비큐 소스 없는 바비큐. 그리고 후진 주차는 예외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공공장소에 휴지통이 없다. 사무실, 인도, 영화관 등등 어디에도 휴지통이 없다. 보이스 메일이 한통도 오지 않는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도 남자 화장실에 여성 청소부가 들어온다. 모든 자동차가 차창에 짙은 색으로 소위 ‘썬팅’을 해놓았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정장 차림에 욕실 슬리퍼나 샤워 샌들을 신고 있다. 앰뷸런 스가 파란색 경광등을 켜고 달린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TV 방 송이 나오고, 운전자는 운전 중에 그걸 본다. 식사 때 음식이 개인별로 따로 나오지 않고, 큰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함께 먹는다.
국무부 소속의 한 친구는 요약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인력거를 타 고 출근해야 하는 나라에 나가 살면, 그걸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좋아, 이게 바로 내 삶이야. 나는 인력거를 타고 출근하는 거야.’ 하는 거지요. 거기에 맞춰 기대치도 낮추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에 오면 모든 수준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높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기대 이하의 일들과 마주치게 되면 엄청 실망감을 맛보게 되지요.” 실망은 양 측이 모두 한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모두 당연한 일들이다. 동료들은 내가 (자기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이상하고, 신기하 다고 떠드는 것을 보고 얼마 안 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실에서 식탁 주위에 둘러앉았다. 비즈니스 회식은 별실에 서 하는 게 관례이다. 테이블 한쪽 편 한가운데 자리에 미스터 리가 앉 았다. 그곳에는 언제나 방안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앉는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처음에는 매우 유쾌하게 시작됐지만 소주가 나오면 서 분위기는 한국적으로 바뀌었다. 소주는 한국의 국민주이다. 알코올 도수는 브랜드마다 차이가 나지만 대략 28프루프proof를 넘나든다. 한국 인들은 알코올 도수를 ‘몇 도’ 하는 식으로 부른다. 옛날 코카콜라병 만 한 크기의 작은 푸른색 병에 담겨 나오는데, 한국 정부는 소주 가격을 1 달러 내외로 유지되도록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모든 국민이 타고난 권 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힘든 삶에서 잠 시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을 사람들이 쉽게 사서 마실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이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고단한 삶을 산다. 60년 전 아프리카 최빈국들 처럼 가난하게 살 때는 매일매일 목숨을 부지하는 게 힘들 정도였다. 이제 한국은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삶은 그때와 다른 의 미에서 여전히 고달프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며 평생 온갖 육체 적, 정신적인 문제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주를 마 신다. 러시아인의 보드카처럼 한국인들에게 소주는 단순한 술 그 이상 이다. 직장에서는 팀원들 간의 단합을 이끌고, 직장 밖에서는 인간관계 를 돈독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한 번은 저녁 회식자리에서 임원 한 명이 일어나 건배를 제의했다. 남성 참석자들은 으레 건배사를 한 번씩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술잔을 들어 올리고 한껏 멋을 내며 이렇 게 소리쳤다. “이것은 소주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응답 했다. “이것은 우리의 혼입니까?” “맞습니다.”
나는 이런 문화를 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음 주문화에 대한 글을 미리 읽어보았다. 현대에 입사하기 위해 처음 면접을 볼 때 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술 드십니까? 팀원들이 술 권하 는 것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어 할 텐데요.” 나는 면접관에게 맥주는 아 주 좋아한다고 답하고, 팀원들이 존경을 표할 방법은 술 말고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여러 모로 한국인들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국민보다도 술을 더 많이 마신다. 그것도 이등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일등이다. 2014년 유럽에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술을 일주일에 평균 11잔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5잔을 마셔 2위를 기록한 러시아인들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한테 있었다. 나는 사실 술을 잘 마시 지 못한다.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신앙과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저녁에 친한 친 구 몇 명과 밖에 나가 서너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맛있는 맥주를 고 작 두세 잔 마시는 것이다. 약한 에일 맥주나 IPA 맥주, 혹은 코퍼 에일 copper ale 맥주를 마신다. 한국 임원 한 명이 내게 퉁명스런 투로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술 안 드십니까?” “맥주 마십니다.” 이렇게 대답했 더니 그는 “허!”라고 한마디 내뱉었다. 한국인들은 맥주를 술로 치지 않 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정말 터무니없 는 편견이 한국인들의 음주문화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내 환영 회식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는 각자 소주잔 하나와 그보 다 큰 맥주잔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맥주잔은 욕실 싱크대용 유리잔만한 크기이다. 두 잔 모두 가득 채워지면 비우고, 비우면 채우고 하는 식 으로 계속됐다. 한국인들은 옆 사람 술잔이 비면 채워 주는 게 예의라 고 생각한다. 옆 사람 잔을 빈 채로 두면 예의 없는 사람이 된다. 술을 따를 때는 두 손이나 오른 손으로 병을 잡고, 왼손은 공손하게 오른쪽 팔꿈치에 댄다. 술을 받는 사람은 잔을 공손하게 두 손으로 잡는다. 그 런 다음 그 사람에게 자기도 술을 따라준다. 팀원들은 “건배!”를 외치거 나 “무엇 무엇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건강’이든, ‘비즈니스의 성공’이 든, 무슨 말을 붙여도 상관없다.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모두 “원샷!”을 외치더니 단숨에 잔을 비웠 다. 환영 만찬은 그렇게 흘러갔고, 모두들 벌겋게 술 취한 얼굴이 되었 다. 그때 변형된 원샷이 등장했는데, 바로 ‘러브샷’이었다. 두 사람이 한 팔을 서로 걸고 얼굴을 마주 바싹 갖다 댄 다음 단번에 잔을 비우는 것 이었다. 그런 다음 잔을 비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잔을 뒤집 어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폭탄주’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보일 러메이커’boilermaker라고 부르는 것이다. 소주를 맥주에 섞은 다음 원샷 으로 마시고 나서 잔이 비었다는 표시로 빈 잔을 흔들어 보인다. 그러 면 같이 앉은 사람들은 환호를 보낸다.
팀장인 벤이 두목이었다. 자신만만하고 키가 큰 벤은 그 또래의 다른 현대맨들과 마찬가지로 평생 현대맨이고 애국자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현대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했다. 한번은 왜 현대에서 일 하는 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 글로벌 홍보팀의 오락반장이었다. 음주에 관한 한 그는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한국인들처럼 벤도 영어 이름 을 갖고 있다. 영어 퍼스트 네임을 갖는 이유는 한국 이름은 서양인들 이 발음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벤과 나는 같은 또래이고, 서로 완전히 다른 성장배경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 다. 그 중에는 80년대 록도 포함되는데, 벤이 제일 좋아하는 밴드는 퀸
Queen이었다.

현대차 임원들이 내리는 지시사항을 무조건 이행하는 것은 팀장인 벤이 하는 역할이었다. 군에서 지휘관인 장교의 명령을 이행하는 선임 하사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상사인 임원이 저 녁회식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그 명령을 집행하는 것은 팀장의 몫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이다. 벤은 자신 을 팀원들의 아버지나 큰형님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벤의 자세가 유교 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사실상 한국의 국교라고 할 수 있는 유교의 가르침은 한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 어 있다.
벤은 또한 다른 의미에서 한국 직장인의 전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기러기 아빠’였다. 수컷 기러기가 가족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둥지를 떠나 돌아다닌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이 한국 기 러기 아빠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현대차에서 일하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희생하고 있었다. 벤의 경우는 여러 해 전에 가족과 함 께 미국에 파견 근무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가족은 그대로 미국 에 남았다. 사무실에 있는 그의 컴퓨터 스크린 보호기에는 가족이 있는 미국시간이 표시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일 년에 한두 번 본다.
저녁회식 때 벤이 하는 역할은 술을 실컷 마시고 떠들썩하게 놀도록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었다. 그는 분위기 띄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소리 지르고, 웃고, 서로 놀리고 하며 요란한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연 이어 “위하여!”를 외치고, 술병을 손에 들고 다른 사람의 잔에 술을 따르느라 테이블 주위를 뛰어다녔다. 특히 내 상사인 미스터 리의 잔은 비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달려가서 얼른 채웠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 었지만 분위기를 즐겼고, 팀원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있었다. 여성 팀 원 한 명이 일어나더니 게의 집게발처럼 손가락 두 개로 팀원들을 꼬집 으며 애정을 표시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에 이런 장면 본 적 있어?” 내가 이런 식으로 술 마시는 것을 본 것은 1980년대 웨스 트 버지니아대 재학 시절 ‘쿼터 비어 나이츠’quarter-beer nights에서가 마지 막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봤어요.”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 안 나요? 나는 아시아에서 4년이나 살았잖아요.” 아내는 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외국으로 뛰쳐 나간 사람이다.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폐쇄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 해서였다. 아내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해외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홍콩에 있는 레바논 무역회사에 일자리를 구했다. 2년 동안 다른 외국 젊은이들과 신나게 어울리고 나서도 아내는 집으로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의 센다이로 가서 여 고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2년을 더 지냈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말괄량이 삐삐] 같은 드라마도 제작하면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화의 가교역할을 했다.
아내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음주는 사회적인 여가놀이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고, 직원들끼리나 사업 파트너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샐러리맨 문화를 이해 하는 데 음주는 필수였다. 한국으로 일하러 오기 전에 나는 백인 미국 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가진 전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인들 은 열심히 일하고, 착한 학생이고, 얌전하고 내성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정치나 스포츠 분야에서보다는 실험실이나 오케스트라에 더 잘 어울리 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실제로 현대에 출근하고 첫 일주일 동안 나는 사무실이 너무 조용한 것을 보고 놀랐다. 직원들 대부분 자 기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회의 때도 얌전히 모여 앉아 있었다. 책상 모 서리에 모여 업무와 관련 없는 잡담을 하는 일도 드물고, 워싱턴 포스 트 편집국처럼 사무실에서 동료들끼리 떠들썩하게 친밀감을 나누는 이 도 없었다.
그런데 업무가 끝난 금요일 저녁에 십여 명의 코리언 파티 애니멀들 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느슨한 미국과 달리 이곳 에서는 근무시간 중 사무실에서의 행동과 근무시간 후의 행동이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별실의 소란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즈음 누군가가 테 이블에 있는 버튼을 눌러 여종업원을 불러서는 고기를 추가로 주문했 다. 집게를 든 친구가 벌겋게 단 숯불화로를 새로 가져와 테이블 한가 운데 갖다 놓으면 여종업원이 그릴을 얹고 양념하지 않은 생등심 조각 을 그 위에 더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우리가 쳐다보는 가운데 가위 를 들고 고기를 잘랐다.
지글거리는 고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글거리는 숯불이 맨손 가까이에서 위태롭게 타고, 방안은 웃음소리와 소란으로 가득 찼다. 그 런 와중에 팀원 중 한 명이 유리잔이 두 줄로 나란히 놓인 카트를 밀고 들어오는 것을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한 줄은 가득 찬 맥주잔인데, 맥 주잔 테두리 위에는 꽉 찬 소주잔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일렬로 올려져 있었다. 쇠젖가락으로 맨 앞에 있는 소주잔을 툭 치면 연쇄반응을 일으 켜 소주잔들이 줄줄이 맥주잔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잔을 사 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줘 마시도록 했다. 잔을 받은 사람은 한입에 잔을 비워야 한다. 내게 맨 앞의 잔을 떨어뜨리는 영광을 준다고 했다. 나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며, 진짜 한국 사람이라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들 었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맨 앞의 잔을 제대로만 떨어뜨려 주면 연 쇄반응은 저절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하고 나니 나도 한국인 들에게 그들의 일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여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 모두 제대로 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내에게도 연쇄반응을 만들도록 요구했다. 그렇게 하고 나자 팀원들도 모두 아내의 존재에 적응하고, 아내를 환영했다. 내가 미 처 몰랐던 관습인 셈이다. 두 시간에 걸친 축제가 끝나고 나서 우리 부부는 그게 그날 저녁 축제의 1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 았다. 2차는 가라오케 노래방이었다. 밝은 조명에 술이 더 나오고, 열 정적인 노래들이 이어졌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가라오케를 할 줄 모 른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에서는 가라오케를 할 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니 문제였다. 필리핀, 태국, 중국, 일본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엉망으로 부른다고 사람을 구타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아 시아 샐러리맨들에게 ‘마이 웨이’는 애국가 같은 노래이다. 아마도 자기 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이 웨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중 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노래방은 남녀노소, 직업, 사회적 신분을 가리 지 않고 저녁 여흥의 단골 코스였고, 모두들 노래방 애창곡 한두 곡씩 은 갖고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모두들 한국어 와 영어를 섞어가며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긴 소파가 놓인 창문도 없는 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비닐 커버가 입혀진 영어 와 한국어로 된 선곡 책을 돌려보았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팀원 한 명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노래가 이어지고 벤이 소주를 시키자 분위기는 더 고조되었다. 싸이키 조명strobe lights이 번쩍번쩍 돌아가고, 댄스가 시작됐다. 예상한대로 내 상사는 ‘마이 웨이’를 불렀고, 나는 영어 노래를 몇 곡 했는데, 클래시Clash의 곡은 반주가 없어서 빌리 조엘Billy Joel의 노래들을 불렀다. 한 시 간 남짓 그렇게 놀자 잔뜩 먹은 고기 때문에 배는 부르고, 피곤하고, 머 리는 핑핑 돌았다. 옷은 담배연기와 땀에 푹 절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집으로 보내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팀원들은 안 된다고 우겼지만 우리 는 거듭 애원하다시피 했다. 3차가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팀원들 가운데서 나이가 적은 에두아르도를 따라 담배 연기 없는 맑 은 가을밤 공기 속으로 나와 우리를 집으로 태워다 줄 검정색 현대 세 단을 기다렸다. 한국 청년 에두아르도는 현대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으 로 해외에서 몇 년 산 적이 있었다. 의사인 그의 부친이 해외에서 근무 했는데, 그 때문에 페루에서 미국인 학교를 다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살았다. 그는 특정 지역 악센트가 들어가지 않은 영어를 구사했다. 그 때문에, 그리고 팀의 막내이기 때문에 팀장인 벤은 금요일이면 에두아 르도를 내 옆에 따라 붙여 주었다. 그는 내게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도와줄 뿐만 아니라, 내 차 점검도 수시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 다. 주유소에서 회사 카드가 말을 안 들어서 긴급 전화를 하면 그가 받 아서 해결해 주었다.
에두아르도는 내게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 같은 존재였다. 네팔 의 셰르파인 노르가이가 없었다면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절대로 못했을 것이다. 에두아르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작지만 놀랄 만큼 복잡하고 오래된 문화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현대차에서 6개월도 못 버티고 잘렸을 것이다. 노래방 바깥에서 우리를 태워다 줄 자동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에두아 르도는 그날 저녁에 대해 내게 미안해했다. 그는 한 발은 한국 문화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바깥에 내딛고 있는 사람이었다. “써Sir, 이 지랄 같은bullshit 한국의 술판 회식에 대해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는 나를 항 상 ‘써’라고 불렀다. “괜찮아요.” 나는 혀 풀린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관자놀이도 우지끈거렸다. 제트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고, 요 란한 파티 뒤에 클럽 바닥을 걸레질하던 시절의 기분이었다. 아내와 나 는 자동차 뒷좌석에 처박힌 다음 두 손을 맞잡은 채 그대로 꼬꾸라졌 다. 한국인 기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브레이크 등 불빛이 끝도 없이 이어 지는 서울의 밤거리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밤 11시쯤 되었을 텐데 거 리는 아침 출근길 러시아워처럼 붐볐다.
썬팅이 된 차창을 통해 우리는 양쪽 보도를 메우고 있는 깔끔하게 차 려입은 한국인들을 보았다. 쇼핑하는 사람, 셀카 찍는 사람 등 각양각 색이었다. 기사가 숨을 쉬면 쇳가루 냄새 같은 익은 김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참아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 냄새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 았다.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같은 생각을 나누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집으로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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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요새 유행하는 | ja**panzer | 2019.04.2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티비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오는 프로그램 같은 느낌의 책 기자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의 대가업에 면접을 보고 입사해서&nbs...

    티비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오는 프로그램 같은 느낌의 책

    기자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의 대가업에 면접을 보고 입사해서  보여준

    외국인이 본 한국의 기업문화와 한국에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거...

    다르게 보면 한국인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는 책..

    한국인들은 모르나 공항에서부터 나는 마늘냄새라던가..

    폭탄주를 먹는 모습이라던가... 여름철 복장이 변화하는 모습...

    기자 출신의 글이기에 잘 묘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의 생활이라던가 ..

    정의선 부회장에게 연설문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하였다는 거나.. 어찌 보면

    동양인에게서는 보여주기 힘든 내용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3년이라는 현대자동차에서의 근무는 처음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이에게는

    생소할수도 있었고 아슬아슬한 경험이 아니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한 본인이 다닌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많이

    생기지 않았나 그렇게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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