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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7.8 출시
[VORA]첫글만 남겨도 VORA가 쏩니다
[이북]sam7.8
숨겨진독립자금을찾아서
  • 교보손글쓰기대회 전시
  • 손글씨스타
  • 세이브더칠드런
  • 교보인문학석강
  • 손글씨풍경
기억과 기록 사이
384쪽 | 규격外
ISBN-10 : 8971999926
ISBN-13 : 9788971999929
기억과 기록 사이 중고
저자 이창재 | 출판사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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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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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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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학출판부 25년 차 북 디자이너가 쓴
책의 기억과 생애의 기록 사람은 늘 어딘가에 머무른다. 그곳은 때로 육체적 장소이며, 때로는 정신적 장소다.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한 북 디자이너 이창재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책에 머물렀다. 책으로 관계 맺고 책을 통해 세상을 마주했으며, 이제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억과 기록 사이』는 컬럼비아대학출판부 25년 차 북 디자이너가 읽은 책과 만든 책에 관한 에세이다. 지은이는 네 살 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독서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20여 년간 북 디자이너로 생계를 꾸리며 책을 삶처럼 여겨왔다. 『기억과 기록 사이』는 책을 매개로 한 사유와 기억을 찬찬히 담아내고 있으며, 다루는 책의 목록에서 지은이의 일관된 눈썰미와 정서가 느껴진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책과 관련한 일을 한 전문인의 기록인 동시에, 모국어를 잃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책에 대한 동경과 헌사이고, 이민자이자 바이링구얼의 책을 통한 교차적 문화 읽기이며 장소와 시대에 관한 감각이 깃든 산문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마주한 기쁨과 고통, 관계와 단절, 소망의 실현과 좌절 등 독자가 일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민자로서 한국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으며, 아시아권 문화 교류의 일면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북 디자이너를 비롯한 출판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의 고민도 목격할 수 있고, 번역과 글쓰기에 관한 문제와 과제, 한국과 미국의 출판 문화 차이 등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이 책에는 체제의 모순을 포착하고 현장의 맥락과 서사를 능숙하게 기록하는 사진가 노순택과 감정에 관해 집요한 관심을 가지고 대상 내면의 색채와 정서를 표면으로 이끌어내는 사진가 안옥현이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다루는 책을 오브제로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글로 표현한 책의 가치와 의미를 사진으로도 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노순택 작가와 안옥현 작가가 그간 해온 작업과는 다소 다른,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라면 탐독할 만한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이창재
인천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미술사와 회화로 전공을 바꾸어 학위를 받았고, 뉴욕의 대학원에 진학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컬럼비아대학출판부에서 북 디자이너로 24년째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출판협회와 뉴욕출판협회에서 다수의 디자인상을 받았다. 한편, 사진전 〈삶의 궤적: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1945~1992〉를 기획해 1905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 사진가 13인의 작업을 미국에 처음 소개했다. 2015년에는 도서전 〈책을 만들고 보는 열세 가지 방법: 컬럼비아대학출판사 북 디자인, 1990~2015〉를 기획해 갤러리사각형과 서울도서관에서 전시했다. 노순택·안옥현 사진가가 찍은 사진과 도서로 구성한 전시 〈책의 초상〉을 기획해 고양문화재단이 주관한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2018 책의 해 특별전’ 〈예술가의 책장〉에도 참여했다. 문학과 예술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뉴욕에서 책과 함께 살고 있다.

사진 : 노순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길바닥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분단 체제가 파생시킨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수집하고 있다.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붉은 틀〉, 〈좋은 살인〉, 〈비상국가〉, 〈망각기계〉,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책을 펴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6년 ‘구본주예술상’을 받았다.

목차

머리말 9

R1 파랑새, 파랑새를 찾아서 15
『파랑새』,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R2 시 쓰며 일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27
『일하는 아이들』, 이오덕 엮음

R3 오래된 교과서와 ‘오감도’ 40
『대학작문』, 서울대학교출판부 지음 / 『이상』, 김용직 엮음

R4 자신 앞에 남은 생 51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R5 손찌검이 가져다 준 선물 63
『한국가곡 161』, 세광출판사 편집부 지음

R6 전집 시대의 종말 69
『세계의 문학 대전집』, 동화출판공사 엮음

R7 ‘아무도 아닌’이라 쓰인 글자를 보고 읽는 열세 가지 방법 79
『월리스 스티븐스 시 선집』, 월리스 스티븐스 지음

R8 현실 직시, 어쩌면 비행접시 기다리기 88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R9 기억의 고고학 100
『〈30주기 특별 기획 이중섭전〉 도록』, 호암갤러리 지음 / 『이중섭 평전』, 최열 지음

R10 책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내려앉거나 108
『거대한 뿌리』, 김수영 지음

R11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반문하기 117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지음

R12 나의 정원으로 127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R13 어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136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엮음

R14 내 책장의 새빨간 책들 143
『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지음

R15 잃어버린 책의 몽타주 151
『카프대표소설선 I·II』, 김성수 외 엮음

R16 그리 사적이지 않은 책의 사생활 161
『행복한 책읽기』, 김현 지음

R17 문학은 삶을 구원하는가 169
『익사 지침서』, 데이비드 실즈 지음

R18 어떻게 찾지, 좋은 기분을 178
『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지음

R19 기억, 기록, 주석 186
『글쓰기의 영도』·『밝은 방』, 롤랑 바르트 지음

R20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의 목록 197
『초록 눈』,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M1 기억의 영지 208
『현대 한국문학 단편 선집』, 브루스 풀턴·권영민 편저

M2 최상의 저자 219
『옥쇄』, 오다 마코토 지음

M3 흑백 영화에 빠지다 230
『우게쓰 이야기』, 우에다 아키나리 지음

M4 꽃자주빛, 잿빛, 음지의 빛 238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최윤 지음 / 『불의 강』, 오정희 지음

R21 관계와 단절의 미학 248
『어려운 일이다 I·II』, 알프레도 자르 지음

M5 세계가 작동하는 신비로운 방식 260
『이 믿기지 않는 믿음의 필요』,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M6 나만의 『무서록』 271
『무서록』·『먼지와 그 외의 단편들』, 이태준 지음

M7 별이 늘어서다 283
『만덕 유령 기담』, 김석범 지음

R22 나는 왜 읽는가 294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R23 책의 유산, 책의 운명 305
『순교자』, 김은국 지음

M8 비켜서서 볼 때 보이는 것 315
『역사와 반복』, 가라타니 고진 지음

R24 낡은 인공위성에서 보낸 교신 322
『비상국가』, 노순택 지음

M9 언어의 가을과 추락 사이 333
『영어 시대, 언어의 추락』,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R25 커넌드럼, 코끼리 사라지다 342
『코끼리의 소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R26 디아스포라의 디아스포라 354
『시의 힘』, 서경식 지음

R27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 365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추천의 글 376
감사의 말 377
도판 목록 382

책 속으로

내 생애 첫 책은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를 원작으로 하는, 마분지처럼 빳빳한 종이 위에 천연색 삽화가 그려진, ‘파랑새’ 아니면 ‘파랑새를 찾아서’란 제목의 그림책이다. (…) 내게는 없는, 어머니의 기억일 뿐이지만, 이날 나는 세상에 나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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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책은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를 원작으로 하는, 마분지처럼 빳빳한 종이 위에 천연색 삽화가 그려진, ‘파랑새’ 아니면 ‘파랑새를 찾아서’란 제목의 그림책이다. (…) 내게는 없는, 어머니의 기억일 뿐이지만, 이날 나는 세상에 나와 어머니에게 첫 번째 실망을 안겨주었다. 어머니의 여동생이 ‘네깐 게 어디 보자’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리야 없지만, 내가 어느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을 중얼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머니가 희망한 대로 글을 깨우친 게 아니라 어머니가 읽어준 내용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기억했다가 책장을 넘기며 단순히 재생한, 좀 희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 「R1 파랑새, 파랑새를 찾아서」에서

거의 닥치는 대로, 대략 열서너 가지 일을 해봤다. 몸을 쓰든 머리를 쓰든 별다른 바 없는 비정규 임시직을 전전하며 지낸 12년 넘는 세월을 떠올리면 아직도 먹먹해지는 탓에, 한 번 정규직이 되자 다시는 불안정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 북 디자이너들이 더 나은 대우와 보수를 찾아 대형 상업 출판사로 이직하거나 말거나 나는 가능하기만 하면 그대로 남아 첫 직장에서 은퇴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 같다. 내가 근속하고 있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실질적 요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설립된 지 242년 된 대학과 연계된, 창립된 지 103년이 된 출판사의 안정성이었다. 다음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출근 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출판사에서 펴낸 책 중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초록 눈』이 있다는 점이었다.
- 「R2 시 쓰며 일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낮은 지붕 바로 아래에 있던 내 다락방은 밤이 되어도 더위가 전혀 식을 줄 몰랐는데, 잠이 들 때까지 이상야릇한 글을 한 편씩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는 난장이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이 떠나온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머니는 난장이었고, 우리 역시 어쩔 수 없이 난장이 가족이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 만약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고 내가 여태껏 그 세계에 남아 있었더라면, 내 삶은, 내 현실은 어땠을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 「R8 현실 직시, 어쩌면 비행접시 기다리기」에서

2011년 4월,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갔다 왔다는 소식을 시애틀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서울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안위를 묻는 이 전화 통화 중에, 뜬금없이 동생이 먼저 내게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책 제목을 쭉 읊었더니, 내가 여러 번 주문처럼 외운 그 책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보았다 했다. 자신의 아내가 갖고 있는 인터넷 서점 멤버십 포인트로 구입하면 할인가에 살 수 있을 거라며, 다른 책들과 함께 배편으로 보낼 테니 원하는 책 목록을 작성해 메일로 보내라는 거였다.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목록을 보냈다. 운이 나빴으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나서 한 것이 책 주문이라니, 이 정도면 나도 간서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 거의 2개월 가까이 걸려 도착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은 예상한 대로 벽돌 여섯 장에서 여덟 장 정도를 늘어놓았음 직한 무게와 부피였다.
- 「R10 책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내려앉거나」에서

내가 가진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1927년 1월 뉴욕에 설립된 미국의 유수한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출간한 책이다. 랜덤하우스가 당시 저명한 삽화가이자 화가인 록웰 켄트에게 의뢰해 만든 삽화가 실려 있는 스페셜 에디션은 창립 1주년을 기념해 1928년에 나왔다. 단 1,928권만 만든 책이다. 내 책은 이 스페셜 에디션을 1929년에 재제작한 랜덤하우스의 첫 번째 재판본이다. (…)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재판본도 내 책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1,928부만이 존재한다. 모두 남아 있다 해도 단 1,928부뿐인,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스페셜 에디션 초판본처럼.
- 「R12 나의 정원으로」에서

약속 장소인 고려대학교 캠퍼스로 갔는데, 학교 앞에는 전경이 이미 쫙 깔려 있었다. 모르면 겁이 없다고,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던 어리바리한 나는 정문 근처도 못 가고 그만 불심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내 가방 안에는 심이 뾰족하게 깎인 연필이 죽 늘어서 있는 삽화가 그려진, 꽤 멋진 표지를 한 『카프대표소설선 I·II』 두 권이 들어 있었고, 그뿐 아니라 칫솔도 하나 들어 있었다. 앳된 얼굴의 전경은 이 칫솔(어쩌면 책날개에 적힌 ‘월북 문인’이나 ‘민족 해방 운동’ 등의 표현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을 보자마자 보고해야 한다며 워키토키에 대고 암호 같은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내 책을 거머쥔 손으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 이 세상에는 직접 땅을 파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나는 그때의 삽질을 통해서 그것들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내 전공도 아닌 사회과학 책을 사 모으며, 지나버린 시대의 작품들이 실린 카프 소설집을 읽은 시간은 그래도, 그런데도, 내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자기합리화일지라도.
- 「R15 잃어버린 책의 몽타주」에서

“죽은 저자야말로 최상의 저자이지.” 이 놀라운 말은 아트 디렉터한테서 처음 들었다. (…) 죽은 저자가 제일이라는 말을 다른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한 걸 보면 출판계에서 그리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그런데, 흔치는 않지만, 출판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말을 뱉고 싶은 상황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군가가 이 말을 내뱉는다면, 그건 책이 나올 때까지 디자이너가 저자로부터 상식선을 넘어서는 주문에 계속 시달렸다는 의미일 테다.
- 「M2 최상의 저자」에서

나는 왜 읽는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갖게 된 세계관을 버릴 수도 없고,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자신이 살아서 정신이 멀쩡한 한,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을지 모를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모두가 내가 ‘읽는’ 이유다. 세커 앤드 와버그가 1998년 펴낸 조지 오웰 전집 제11권은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오웰이 문자로 남긴 총 228점의 기록물을 담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다: 1937~1939』Facing Unpleasnt Facts: 1937~1939인데, 나는 2000년 재판 수정본을 가지고 있고, 때때로 꺼내 읽는다. 내가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냉소와 회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다.
- 「R22 나는 왜 읽는가」에서

저자가 아무리 정중하게 말해도, 작업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면 사반세기 가까이 일한 지금까지도 열부터 받고 김이 끓어오른다. 그때도 끓는 물이 담긴 주전자처럼 잠깐 씩씩거렸던 것 같다. 아트 디렉터는 이 시안을 완전히 뒤집어엎기보다는 저자를 먼저 한번 설득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저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디자인을 변형해보자고 제안했다. (…) 표지가 골치 아픈 수정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무사히 통과되고, 책이 출간되고 나서는 뉴욕출판협회 디자인상도 받고, 그러고 나서도 어느새 수년이 훌쩍 더 지났기에 가능해진 일이겠지만, 첫 표지 시안과 최종 결정된 수정 표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나니 (…) 나 역시 한결 말랑말랑해져서, 나름 진보적이고 점잖은 노학자의 책에 내가 두고두고 후회할 수도 있는 그 무슨 짓궂은 짓을 할 뻔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약간은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 「M8 비켜서서 볼 때 보이는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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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상당 부분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되었고, 그렇다 보니 책은 내 삶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매우 중요한 일부다. 어쩌다 보니 햇수로 24년째 줄곧 책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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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상당 부분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되었고, 그렇다 보니 책은 내 삶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매우 중요한 일부다. 어쩌다 보니 햇수로 24년째 줄곧 책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바깥세상과 관계를 맺거나 교류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인 데다가 내게는 함께 사는 가족마저 없는 터라, 일과 쉼으로 나뉜 일과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극단적으로 단조롭다. 고작 나와 책의 사생활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이유다. (…) 만약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왔던 책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해보려 한다면 책을 읽고 만들다가 쓰게 된 이로서 무척 반가울 것 같다. ”
-「머리말」 중에서

아름다운 책의 목록,
그 이면에 담긴 개인의 삶과 시대의 풍경

이창재가 엄선한 책 목록은 특히 눈여겨볼만 하다. 지은이는 『기억과 기록 사이』에 싣고자 삶에 영향을 준 책을 선별했는데 그 목록이 결국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길어져서, 초판을 가지고 있는 책으로 한정했다고 한다. 거기에 책 자체의 물성과 유의미함을 고려하여 목록을 추가했다. 『행복한 책읽기』(김현)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책을 비롯해 『이 믿기지 않는 믿음의 필요』(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비교적 낯선 책도 있다. 책 자체로도 한 권 한 권 의미가 크고 역사가 깊으며, 각각의 매무새는 미감을 자아낸다. 그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생애사부터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사회사에 이르기까지, 책에 얽힌 이야기의 면면도 흥미롭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R2 시 쓰며 일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지은이는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해온 일에 관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정직하게 삶을 드러내며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백한다. 「R8 현실 직시, 어쩌면 비행접시 기다리기」에서는 자기 가족이 ‘난장이’는 아니었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난장이’ 가족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의 고백에서 삶의 터전을 다지고자 분투하는 이민자 가족의 현실을 만날 수 있다. 「R19 기억, 기록, 주석」에 쓴, ‘기록’이라는 이름을 지닌 지은이 어머니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밝은 방』(롤랑 바르트) 속 겨울 정원 사진과 지은이 어머니의 사진을 겹쳐 보여줄 때는 어머니를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며, 어머니의 가족사는 우리네 부모님의 지난 삶이 어떠했을지 더듬어보게 한다. 지은이가 한 권의 책, 한 장의 사진으로 불러낸 오랜 기억과 추억은 독자로 하여금 곁에 있는 사람 혹은 떠난 사람을 아련히 그리게 할 것이다.

한편 「R7 ‘아무도 아닌’이라 쓰인 글자를 보고 읽는 열세 가지 방법」에서 새로운 언어가 익숙지 않아 자폐아처럼 자신을 가둔 지은이를 밖으로 꺼내준 ‘미스터 어드만’이라는 고등학교 선생님과의 만남을 이야기할 때는 좋은 교사, 훌륭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R9 기억의 고고학」, 「R13 어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R15 잃어버린 책의 몽타주」 등에서 『행복한 책읽기』, 『카프대표소설선 I·II』(김성수 외 엮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엮음) 같은 책을 매개로 민주화 운동 시기의 기억을 펼쳐낼 때는 시민이 그 시절을 어떻게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고, 이 땅을 떠난 이들에게도 ‘불의 시대’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겪은 상흔은 한국에 뿌리를 둔 모든 이에게 지워지지 않는 역사다. 또한 「R23 책의 유산, 책의 운명」에서 한국(계)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으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에 오른 『순교자』(김은국) 이야기에서는 한국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고, 「M4 꽃자주빛, 잿빛, 음지의 빛」, 「M7 별이 늘어서다」 등에서는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통해 지은이가 한국 작가와 교류하며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장면들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M9 언어의 가을과 추락 사이」에서는 『영어 시대, 언어의 추락』(미즈무라 미나에)을 바탕으로 언어의 소멸과 지속에 관해 말하면서 공용어와 소수 언어, 번역의 문제 등에 고민거리를 던지며, 「R22 나는 왜 읽는가」에서는 조지 오웰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 출판 역사의 일면을 만날 수 있다.

책을 모으는 사람, 읽는 사람,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책에 관한 책은 많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의 책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이창재는 책을 모으는 이, 읽는 이, 만드는 이로서 다양한 시선에서 책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들려준다. 「R10 책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내려앉거나」에서 지은이가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도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김수영)를 소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는 간서치의 면모를 볼 수 있다. 「M6 나만의 『무서록』」에서 『무서록』·『먼지와 그 외의 단편들』(이태준)을 만들며 번역자인 재닛 풀 교수와 소통하는 장면에서는 읽는 이로서, 또 만드는 이로서 좋은 책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을 향한 지은이의 깊은 애정은 관련 전시로도 이어지는데, 「M7 별이 늘어서다」에서는 『만덕 유령 기담』(김석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진으로 1905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 사진가 13인의 작업을 미국에 처음 소개한 〈삶의 궤적: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1945~1992〉 전시를 성사시킨 일화가 나온다. 지은이는 또한 1944년 박문서관에서 3쇄를 찍은 이태준의 『무서록』을 포함해 두 명의 고서 전문 컬렉터가 소장한 72권의 귀한 책들을 보여주는 전시도 준비한다. 〈문화유산: 한국의 책과 표지 1883~2008〉Artifacts of Culture: Korean Books and Covers 1883~2008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활판 인쇄술이 조선에 들어온 1883년부터 125년간 한국에서 출간한 주요 문학서로 한국문학과 시각 문화, 출판 역사를 보여주는 도서 전시였으나 아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노순택·안옥현 사진가가 찍은 사진과 도서로 구성한 전시 〈책의 초상〉을 다시 기획했고, 고양문화재단이 주관한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2018 책의 해 특별전’ 〈예술가의 책장〉에 참여하여 『기억과 기록 사이』가 출간되기 전에 대중에게 이 책 실린 사진을 미리 선보이기도 했다.

「M1 기억의 영지」에서는 9·11 테러와 개인적 위기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듯 절망하고 있을 때 『현대 한국문학 단편 선집』(브루스 풀턴·권영민 편저) 같은 책을 만들며 버텼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만드는 이로서의 정체성과 열정이 지은이에게 삶을 버티는 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M2 최상의 저자」에서는 ‘죽은 저자가 최상의 저자’라는 험한 말을 내뱉게 하는 저자와 기쁨과 보람을 주는 저자에 관해 말한다. 출판인들이 책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끝내 한 권의 책을 완성해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이 꼭지에는 함께 책을 만든 후 세상을 뜬 편집자 동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 만드는 일은 생명이나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뇌 수술이나 로켓 사이언스가 아니”지만, 출판인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때로는 얼마나 큰 무게를 느끼는지 짐작하게 한다. 「M5 세계가 작동하는 신비로운 방식」에서는 『이 믿기지 않는 믿음의 필요』 디자인 과정을 통해 지은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역할과 북 디자인의 의미를 말한다. 지은이는 북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예술을 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책이 지닌 고유한 사유의 세계로 불특정 독자를 안내하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표지 디자인은 책의 콘텐츠를 집약해 가장 중요한 느낌이나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문맥/텍스트와 맥락/컨텍스트를 시각화해야만 하는 일종의 번역과 같은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만든 600여 권의 책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예술처럼 작업했다는 『이 믿기지 않는 믿음의 필요』 표지 구상 과정에서 깊은 고민을 하는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M8 비켜서서 볼 때 보이는 것」에서 『역사와 반복』(가라타니 고진)을 만들며 가라타니 고진과 표지 디자인 요소에 관해 갑론을박하고 조율해가는 모습에서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이창재는 한국에서 읽은 책과 미국에서 만난 한국 책, 북 디자이너로 일하며 만든 책 등 그 범주와 성격이 다른 책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먼지 하나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하듯이, 한 권의 책에는 지은이, 출판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세계가 얽혀 있다. 이창재는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으로 책과 함께해온 삶의 이야기를, 그에 얽힌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다. 지은이의 기억과 기록은, 한없는 기쁨과 찬사로 가득하지 않으며 종종 무한한 절망과 고통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어려운 일상사를 극복해가는 생활인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표지에 실린 책은 지은이가 사랑하는 예술가 알프레도 자르에게 선물 받은 전시 도록 『어려운 일이다 Ⅰ·Ⅱ』이며, 이 책의 표제 ‘It is Difficult’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이 책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책을 쓰고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세상사 모두가 ‘쉽지 않은 일’ 혹은 ‘어려운 일’이라는 뜻에서 지은이는 이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선택했다. 때때로 고난이 삶을 엄습하고, 관계는 실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책을 읽고 만들며 분투한 생애의 기록은 우리 모두의 삶이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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