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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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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쪽 | 규격外
ISBN-10 : 8954610684
ISBN-13 : 9788954610681
은교 [양장] 중고
저자 박범신 |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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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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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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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다!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들여다본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은교』.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 Q변호사는 유언에 따라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하지만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 서지우를 죽였고, '심장'을 비롯한 서지우의 모든 작품을 이적요가 썼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다. 이적요 기념관 설립이 한창인 시점에서 공개를 망설이던 Q변호사는 은교를 만나고,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듣는다. 은교에게서 서지우의 디스켓을 받은 Q변호사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기록을 통해 그들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알게 되는데...

저자소개

저자 : 박범신
저자 박범신은 충남 논산 출생 소설가. 그는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작가였던 그는 1993년 돌연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갖기 위해 절필을 선언하고 깊은 침묵에 들어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작품 활동을 재개한 그는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 보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시인이 마지막 남긴 노트 이적요 시인
Q변호사 1
시인의 노트 창槍
시인의 노트 쌍꺼풀
Q변호사 2
시인의 노트 등롱燈籠
시인의 노트 심장
Q변호사 3
시인의 노트 나의 처녀-은교에게
시인의 노트 육체-풀과 같은
시인의 노트 의심
Q변호사 4
서지우의 일기 류머티즘
시인의 노트 우단 토끼
시인의 노트 노랑머리
Q변호사 5
서지우의 일기 불안
시인의 노트 침묵
시인의 노트 범죄
서지우의 일기 수상한 평화
시인의 노트 분노
서지우의 일기 반역
시인의 노트 선고
서지우의 일기 헌화가
시인의 노트 꿈, 호텔 캘리포니아
시인의 노트 집행
Q변호사 6
시인의 노트 은교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에필로그 - 시인이 마지막 남긴 노트 Q변호사
작가의 말 - 돌아온 내 젊은 날

책 속으로

내 마음속 영원한 젊은 신부, 은교. 나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비참하지도 않다. 너로 인해,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것을 나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생생하고 환한 것이었다. 내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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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영원한 젊은 신부, 은교.

나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비참하지도 않다. 너로 인해,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것을 나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생생하고 환한 것이었다. 내 몸 안에도 얼마나 생생한 더운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를 알았고, 네가 일깨워준 감각의 예민한 촉수들이야말로 내가 썼던 수많은 시편들보다도 훨씬 더 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세상이라고, 시대라고, 역사라고 불렀던 것들이 사실은 직관의 감옥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의 감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들은 대부분 가짜였다.

- p394쪽,『은교』, 「시인의 노트-은교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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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10년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 박해일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이 소설로 나는 내 안의 욕망이라는 게 여전히 눈물겹게 불타고 있음을 알았다!” (박범신) “연애소설이 예술가소설로 육박한 사례라고 하자. 2010년의 박범신만이 쓸 수...

[출판사서평 더 보기]

2010년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 박해일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이 소설로 나는 내 안의 욕망이라는 게 여전히 눈물겹게 불타고 있음을 알았다!” (박범신)
“연애소설이 예술가소설로 육박한 사례라고 하자. 2010년의 박범신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신형철)

2010년 1월 8일 소설가 박범신은 그의 네이버 개인 블로그에 방 하나를 만들었다. 애초의 문패는 ‘살인당나귀’, 그러했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포문을 열었던 『촐라체』 이후 많은 작가들이 현재까지 다양한 포털 사이트에서 소설 연재를 펴나가고 있다. 그의 용기 있는 첫발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작금의 상황은 불가했을 터, 2010년 그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바로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어디에도 발표한 적 없고, 단 한 번도 독자들에게 선보인 적 없는 미발표 장편소설의 연재를 시작한 것.
정해진 어떠한 형식도 분량도 없었다. 개입하는 출판사도 편집자도 없었다. 시간 또한 예고될 리 없었다. 그저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을 때 써서 올리고 싶은 만큼만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독자와의 직거래,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순정한 글쓰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번 소설에 임하는 제 자신에게 ‘미친 듯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막상 시작을 하니 그 질주를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마치 “인기 작가이자 청년 작가였던 내 젊은 날”을 회복한 것처럼.
한 달 반 만에 소설은 완성되었다. 끝내고 보니 제목은 『은교』로 바뀌어 있었다. 연재를 시작한지 석 달, 최종회의 챕터는 44회. 환갑을 훌쩍 넘긴 소설가는 그러나 그 미친 듯한 질주 끝에도 차마 마음속에서는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내 말들이 말처럼 질주하는 대로 따라가자 했고 지금도 그 폭풍의 질주가 멈춰지지 않고 있어. 지금도 이 얘기를 한 권 더 쓰라면 금방 쓸 것 같아. 사건은 없고 아직도 너무나 많은 말들이 남아 있어. 이게 정말 사랑의 소설인지는 모르겠어. 존재론적인 소설이고 예술가 소설이지 싶어, 나는.”
-『풋,』 2010년 봄호에서

평생 원고지를 고집했던 작가가 처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쓴 소설 『은교』. 『은교』는 과연 어떤 소설일까.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를 살짝 엿보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 Q변호사는 이적요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노트를 읽고 나자 공개를 망설인다.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 서지우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 또한 『심장』을 비롯한 서지우의 작품은 전부 이적요가 썼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이적요기념관 설립이 한창인 지금, 이 노트가 공개된다면 문단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이 빤하다. 노트를 공개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Q변호사는 은교를 만나고, 놀랍게도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듣는다. 은교에게서 서지우의 기록이 담긴 디스켓을 받은 Q변호사는,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디스켓을 통해 그들에게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게 된다.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자신을 “할아부지”라고 부르며, 유리창을 뽀드득 소리 나게 닦는 은교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청춘’을 실감하기도 했다. 한편, 서지우는 은교를 바라보는 이적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갔다. 정에 넘치던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조금씩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고, 열등감과 질투, 모욕이 뒤섞인 채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서지우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이적요는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갔다. 이적요는, 정말 서지우를 살해했던 걸까. 이적요는, 정말 한은교를 사랑했던 걸까.

소설『은교』의 키포인트는 다름 아닌 ‘갈망’에 있다. 예서 ‘갈망’이란 무엇인가. 이는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다. 소설 속 주인공 이적요를 핑계 대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다는 작가에게 ‘갈망’이란 단순히 열일곱 어린 여자애를 탐하기 위하는 데 쓰이는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갈망은 이룰 수 없는 것, 특히나 사랑의 갈망은 이미 절망을 안고 있다는 데서 보다 근원적인 어떤 감정이 아닌가.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渴望)’이었다.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나는 혼잣말로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고 부른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감히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엉켜 있는 사랑이 실타래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연애소설에 국한시킬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인가.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남자들에게 여자란 나이가 없는 것이듯, 여자에게 또한 남자란 나이가 없는 것이듯, 작가가 계속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던져진 질문에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몸을 빌려 살아가고 살아내고 죽어가고 죽음으로 작가가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가 고유하게 받고 있는 에너지와 욕망이 있어. 그걸 어떻게 해서든 사용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글로 풀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쓰니까 그래도 내 욕망을 공깃돌 갖고 놀 듯 핸들링하지 않냐. 나는 말이다, 소설이 없었으면 무슨 나쁜 짓을 했을지 모를 사람이야. 그것만은 분명해.” -2010년 『풋,』 봄호에서

2010년 작가 박범신은 여전히 쓰고 있다. 그럼으로 그는 존재한다.

< 작가의 말 >
내가 미쳤다. 이 소설을 불과 한 달 반 만에 썼다. 정말이지 폭풍으로서의 질주였다. 창밖엔 자주 북풍이 불어재꼈고 자주 폭설이 내렸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먼, 우주의 어느 어둑어둑한 동굴에 혼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 안에서 생성된 날 선 문장들이 포악스럽게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갔다. 나는 때로 한없이 슬펐고, 때로 한없이 충만했다. 겨울 숲처럼 ‘쓸쓸하게 차 있고 따뜻이 비어’ 있었다.
다 쓰고 났을 때, 몸 안에서 무엇인가, 이를테면 내장들이 쑥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쭉정이가 되어 어둔 방구석에 가만히 누웠다. 그리고 보았다. 저만치 흘러가던 나의 젊은 날이 어느새 돌아와 내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5월의 물푸레나무처럼 내가 다시 푸르러졌다고 느꼈다.
어느덧 봄이었다. 나는 햇빛 환한 봄 길로 걸어 나갔다. 민들레 홀씨만큼 몸이 가벼웠다. 바람으로 천지를 흐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길 끝에 서서, 막 세수하고 난 어린아이처럼 킥킥거리고 웃으면서 흥얼흥얼했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친구여, 모든 해답은 나부끼는 바람 속에 있다, 라고 나는 노래 불렀다. 놀랍게도 봄이 예민해진 내 젊은 살(肉)을 산지사방으로 부드럽게 관통했다. 오랫동안 ‘갈망’해온 길이었다. 행복했다.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渴望)’이었다.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나는 혼잣말로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 부른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라고 있다.
이로써, 나의 눈물겹고 뜨겁고 푸른 ‘갈망’의 화두를 일단 접는다. 새 소설이 나를 부르고 있다.
-2010년 이른 봄, 한밤에 북한산 자락에 엎디어.

< 추천의 말 >
이 모든 이야기는 은교의 하얀 손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리막대를 쥐고 설탕물을 휘젓는 그 작은 손이 사랑의 폭풍을, 죽음의 회오리를 일으켜도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은교. 은교는 알았을까요? 폭풍의 노래가 사나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날 밤 나의 당나귀가 살인기계로 변했다는 것을. 은교는 나의 심장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속삭입니다. 할아버지의 노트는 스스로 불꽃을 일으켜 타버렸어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안녕.
-김행숙(시인)

다음 네 가지가 마음을 점거하고 때로 인질극을 벌인다. 본능, 충동, 욕망, 사랑. 본능이 주체를, 사랑이 대상을 보존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충동은 주체를, 욕망은 대상을 파괴하는 괴물들이어서, 모든 야심만만한 소설들은 그 둘과 사투를 벌인다. 그런 소설들에서는 인물보다 먼저 그 욕망과 충동이 주인공이 되어 서사를 끌고 나간다. 이 소설이 그렇다. 두 남자와 한 여자를 제물 삼아 욕망과 충동이 처연한 난투극을 벌인다. 이제는 그 마음의 괴물들과 거의 친구가 되어버린 이 작가의 형안(炯眼)이 있어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두 개의 이야기가 박력 있게 엉켜 있다. 노시인 이적요와 여고생 한은교의 서사는 일흔넷의 괴테와 열아홉 소녀 울리케의 그것을 연상케 하거니와, 노년의 욕망에 대한 현미경적 보고서이자 한 시인의 통절한 자기 부정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연애소설이 예술가소설로 육박한 사례라고 하자. 스승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의 서사는 사실상 유사 이래 되풀이된 부자지간의 애증을 바탕에 깔고 있어 그 울림이 처절하다. 서로를 잃을까 두려워 함께 죽어버린 두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자. 어느 이야기를 따라가건 온몸이 아플 것이다. 2010년의 박범신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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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윤필용 님 2013.04.10

    나는 명백히 알았다. ‘선생님 같은 분’이라는 말은 곧은 정신, 높은 품격, 고요한 카리스마 등으로 둘러싸인, 대중들이 품은 시인 이적요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를 전제로 한 표현이었다.

  • 교보문고 님 2013.01.21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 강민정 님 2012.09.04

    추억이란 단순히 쌓여지는 것이 있고, 화인처럼 내 몸에 찍혀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 있다.

회원리뷰

  • 소설 은교는 시인 이적요(寂寥)의 인생을 통들어 단 한번의 욕망이 늦게(?) 찾아와 그의 필명적요,고요하고 쓸쓸한 그의 내면을...

    소설 은교는 시인 이적요(寂寥)의 인생을 통들어 단 한번의 욕망이 늦게(?) 찾아와 그의 필명적요,고요하고 쓸쓸한 그의 내면을 더 이상 떠들썩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이다.더불어 아니 어쩌면 더욱 중요해 보이는 것은 그로 인한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의 뒤틀림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달은 은교가 이적요의 집 데크의 한가로이 따스한 햇볕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자고 있던 은교가 이적요와의 만남으로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이것은 마치 이적요의 잠자고 있던 욕망이 은교의 기상과 더불어 눈을 뜨는 것처럼 느껴진다.이적요는 죽어가는 노인과 생생하게 발화하는 은교의 그것과의 거리가 마치 한국과 한국의 대척점인 아르헨티나와의 거리처럼 느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 번 찾아온 욕망은 어찌하지 못하고 은교를 향해 달음박질한다.그 와중에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권력 관계로 볼 때 자신보다 아래인 서지우와의 은교를 둘러싼 삼각관계에 놓인다.심지어 그 관계에서는 젊은 서지우가 자신보다 위다.결국 이들의 관계는 이적요가 서지우가 타고 갈 차를 고의적으로 망가뜨려 죽게 만듦으로써 절망에 빠진다.가장 사랑하는 제자를 자신이 죽이게 만들게 되고 이적요 또한 스승이 제자의 뒤를 따르게 됨으로써 이 모든 이야기처럼 뒤집힌이야기를 남긴다.

    소설의 큰 틀은 위의 이야기와 같다.그러면 본격적으로 이 소설의 구조,형식,의미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려 한다.먼저 영화와 소설의 형식적 차이가 흥미롭게 다가온다.정지우 감독의 은교는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이런 형식은 파국의 형태를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이적요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관계가 비틀리고 전락하게 되는 스토리 텔링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반면에 박범신 작가의 은교는 이야기가 역순으로 진행된다.모든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들(이적요,서지우)가 남긴 노트를 통해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 구조를 취한다.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그러면서 이적요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으로 독해를 하게 된다.이런 형식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소설 은교에 대해서 좀 더 집중해보면,중간중간 가 삽입되어 있다.이적요가 시인이라서 사용한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든다.‘를 통해 이적요의 감정 상태를 설명한다.가령 이적요가 절벽에서 은교의 손거울을 주워주는 대목에서 견우노옹의 헌화가를 통해 그의 감정을 서술한다.‘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다여기서 암소는 그의 명성,지위,체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런 것들을 놓게 하시고라는 말은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다.놓게 한다라는 말은 명령,강압,굴복을 의미한다.따라서 어쩌면 이적요는 은교를 나의 의지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좋아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또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이라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연히 안온할 리가 없다.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런 관계에서 더욱 적극적이여야 할 사람은 이적요가 아니라 은교일 것이다.이적요 입장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 같을 테니까.그렇기에 은교가 이적요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그대에게 바치리오 라는 비장하면서도 애상적인 각오를 전달한다.

    은교가 이적요 시인의 집을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흥미롭다.은교는 이적요의 집에 대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축대를 통해 담장을 넘어서 들어왔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침투했다.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한 것처럼 보인다.이적요와 은교의 관계는 적어도 사회적으로 볼 때는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루트이다.그래서 은교는 정상적인 대문을 통해 들어 올 수 없고 담장을 통한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이적요의 침에 침투할 수 밖에 없다.필자가 왜 침투라고 표현했냐면 아까도 말했듯이 이적요는 은교를 자유의지로 좋아한게 아니라 수동태로서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은교는 이적요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은유한다.예를 들어 서지우의 대필 소설 <심장>을 통해서 보여준다.이적요가 창작한 소설 심장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다루고 있다.이것은 당연하게도 그의 이름과는 반대로 은교를 향한 들끓는 욕망을 예고한 내용일 것이다.또한 이적요가 쓴 단편소설은 주인공 종지기가 더 완전한 종을 만들지 못하고 극적인 내적분열을 견디다 자살하는 작품인데 서지우는 마무리에 주인공을 살린다.이것은 또한 원래 이적요가 창작한 소설에서는 서지우가 죽은 주인공이였다면 서지우가 개작한 소설에서는 자신을 살리는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으면 욕망의 헤엄을 치는 대목에서도 그의 발화하다 못해 폭발하는 욕망의 지점들을 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이 이야기가 어린 소녀를 둘러싼 노인과 젊은이의 대결이 아니라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일그러지는 것으로 보인다.은교는 계속해서 말한다.두 사람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내가 들어갈 틈이 없어서 오히려 내가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이다.팔씨름을 통해서 골프를 통해서 그리고 은교를 통해서 두 사람은 대결한다.서로 너무나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이기려 든다.결국 죽음으로 까지 몰아넣는다.서지우는 이적요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다는 것을 안다.그런데 그것을 막지 않았고 피하지 않았다.그저 받아들였다.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서지우는 이적요와의 사랑에 실패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그리고 이적요도 서지우를 따라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물론 병세가 있기는 했지만 일부러 치료도 받지 않고 술을 통해 요단강을 건너려 했던 것은 이적요의 의지였다.두 사람은 다 은교를 차지하지 못해서 죽은게 아니다.상대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서 상대가 없어져서 그랬다.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사제 지간의 관계가 은교를 향한 열정 만큼 혹은 그 이상이였기에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며 은교를 읽으며 누구는 69세 할아버지가 17세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만으로도 거부감을 느끼고 무조건적으로 이야기를 거절 할 수 있다.물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그러나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다루는 것이다.그러면 당연히 보편적이고 알콩달콩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랑이야기는 예술의 영역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따라서 이 소설의 플롯의 형태처럼 이적요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해보고 판단 내려야 할 것 같다.우리도 또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의 진실,관계를 하나 씩은 품고 있지 않을까?

  • 역대 최강의 삼각관계 | me**y | 2018.07.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보니 이 책이 주인공들의 사랑의 삼각관계의 이야기였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감탄스러...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보니 이 책이 주인공들의 사랑의 삼각관계의 이야기였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박범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섬세하고 디테일한데 이런 수준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는데 한 글자 한 글자가 깊이가 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에도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위주로 구매해 보는 시도를 해야겠다. 은교라는 10대 소녀와 70대의 시인과 40대의 제자작가의 삼각관계이고 그중 핵심 플롯은 노인과 소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랑이다. 욕망을 넘어서는 사랑에 대해서도 한 문구가 나오기도 하다. 시인과 제자의 부성애와 같은 사랑도 있다. 그 관계의 틈을 만들고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은교의 마음 또한 신선하다. 죽음과 삶, 늙음과 젊음을 매우 대조적으로 비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창이었다. 창 끝이 쇄골 가까이 솟아 있었다. 셔츠의 브이라인 아래에서부터 직립해 올라온 푸른 창날에 햇빛이 닿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인 침이 꿀꺽 목울대를 넘어갔다. 가슴에 그려넣은 창의 문신이라니. 그렇다면 창의 손잡이는 셔츠 속에 감춰진 젖가슴이 단단히 거머쥐고 있을 터였다.

    쇄골을 치고 나온 땀방울 하나가 한순간 창 끝을 적시면서 또르르 굴러 셔츠 안으로 재빨리 흘러들어갔다. 우주의 비밀을 본 것 같았다.

     

    어깨에 닿았던 가슴이, 네가 위치를 바꾸는 데 따라 머리, 광대뼈를 건들고, 턱을 살짝 눌렀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손 끝은 껍질을 벗겨내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었으며, 입술은 오렌지 단물을 베어물고 싶어 지옥문처럼 굳었다. 향기가 네 머리칼, 가슴에서 났다. 쥐스킨트 소설 ‘향수’에서 완성된, 세상의 모든 시간을 해방시키는 ‘처녀의 향기’였다. “저는요, 할아부지. 발목이 간지럼을 제일 많이 타요. 발목 뒤 옴씬 들어간 데요.”네가 말했고, ‘옴씬’이 기름통, 내 몸에 성냥을 그거대는 것 같은 효과를 금방 가져왔다. 나는 경악했다. 우회해서 표현하진 않겠다. 갑자기 나의 페니스가 고개를 기웃, 들더니 맹렬하게 허리를 세우고 일어났다. 전에 없던 일이었고, 너무도 돌발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너를 강력히 떠밀면서 홱 엎드려 누웠다. 네가 건너편 벽까지 밀려나 머리를 부딪힐 정도였다. 너에 대한 욕망이 아주 ‘사실적’이었다는 말을 내가 이리 길게 쓰고 있다. 도대체 너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그때 살기를 느꼈다. 서지우는, 은교의 젖가슴을 빨고 있었다. 남국의 태양빛에 잘 익은 오렌지 같은...‘내 처녀’의 젖가슴을.

     

    무서운 상상이었다. 의심의 봇물은 한 번 터지고 말자 삽시간에 이성의 둑을 넘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예전의 잠수함은 토끼를 태웠다. 토끼가 가장 산소 결핍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산소측정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밀폐된 잠수함은 토끼의 상태를 보고 실내 산소량을 감지했다.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 쥐는 것이다.”

     

    슬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눈물로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눈물로도 덜 수 없는 슬픔이다. 내가 만난 그날 밤의 슬픔은 후자였다.

     

    루소는 ‘에밀’에서 이렇게 썼다. 10세는 과자, 20세는 연인, 30세는 쾌락, 40세는 야심에 미친다고.

     

    은교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자꾸 웃었다. 그래도 내 마음은 되살려지지 않았다. 감자탕 국물이 묻은 노란 셔츠는 아주 무참해 보였다. 내 얼굴에 감자탕 국물이 쏟아진 듯했다. 나의 첫 데이트는 그것으로 파탄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애와 촛불이 켜진 카페에서 마주 앉아 와인으로 건배를 하면서 저녁 한때를 보내고 싶은 꿈이 그렇게 용서받을 수 없는 꿈이던가. 감미로운 발라드를 한 곡쯤 백 뮤직으로 거느리고 그애의 맑은 눈을 들여다 보면서, 낮에 있었던 일이며, 앞날의 희망이며, 그리운 사랑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 혁명보다 더 불온한 꿈이던가. 다 발라먹고 버린 탁자 위이 돼지뼈들이 늙은 나, 혹은 늙은 나의 꿈처럼 느껴졌다.

  • 사랑이란 | ss**um | 2015.12.10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창문을 여니 풀벌레 소리가 났다. 풀벌레 소리가 다양해지고 깊어진 것을 보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꼈다. 때마침 불어온...
    창문을 여니 풀벌레 소리가 났다. 풀벌레 소리가 다양해지고 깊어진 것을 보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쐬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면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현재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일상의 저녁을 더 쓸쓸하게 만든 것 같았다. 때가 되면 내 곁에 누군가가 다가오겠지 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이렇게 나날이 깊어지는 자연을 볼 때면 외로움을 감출 수가 없다. 마음이 통하는 것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마음이 가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그러면서 열일곱 소녀를 사랑했던 예순 아홉의 노시인이 생각났다. 그가 소녀를 바라보며 가졌을 마음을 쓸쓸한 오늘 저녁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당면한 사랑이 <은교>의 이적요 시인의 상황이었다면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용기가 있을까? 평생 시인으로 존경받아 왔는데, 한 소녀를 사랑했고 자신의 애제자를 죽였노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의 힘인지, 아니면 인간이 지닌 양심인지 조금은 헷갈렸으나 이적요 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가 남긴 글로 모든 실체가 밝혀지고 있었다. 이적요 시인도 서지우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대학생이 된 은교와 이적요 시인의 유언을 담당한 변호사로 인해 비밀은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변호사에게는 이적요 시인이 남긴 노트가 있었고 은교에게는 서지우가 남긴 디스켓이 있었다. 두 내용이 병행해 가면서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모든 과정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시인으로 존경받는 이적요 시인은 열일곱 은교를 사랑했다. 우연히 자신의 집 마당의 벤치에서 자고 있는 은교를 발견할 때부터 그는 은교를 사랑했고, 청소 아르바이트로 자주 마주치면서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적요 시인이 남긴 노트에는 자신이 사랑한 소녀 한은교에 대한 고백이 가득했고, 노트의 시작에서 밝혔던 것처럼 서지우에 대한 자신의 마음, 어떻게 그를 죽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내면의 변화가 그대로 전해졌다. 서지우는 자신의 제자였지만, 그가 발표한 작품은 모두 이적요 시인의 글이고 문학적 소양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서지우가 쓴 관능적이고 충격적인 소설이 이적요 시인의 글이라는 사실만 밝혀져도 충격적인 마당에, 은교를 사랑하고 제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사후 1년 뒤에 공개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은교에 대한 사랑, 은교를 향한 애정, 은교에 대한 추억을 담뿍 담는 글들을 썼다. 늘 상황에 적절한 시와 함께 써 내려간 글을 읽고 있노라면 시인에게 은교는 정말 깊이 사랑하는 존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랑에 나이와 상황이 좀 더 나았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지만, 이적요 시인이 당면한 현재의 상황에 은교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이 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기를 괴롭혀서 시를 짓는 것보다/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라고 쓴 앙드레의 시를 빌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듯, 이적요 시인의 글과 시는 잘 어우러져 은교에 대한 사랑, 서지우에 대한 분노, 은교에 대한 추억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반면 서지우의 일기 같은 내용에는 스승 이적요 시인과 은교의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으나, 재능이 없음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스승의 글로 발표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승이 깊이 사랑하는 은교를 맘대로 농락했으며, 문학적 지위의 강압을 못 이겨 스승이 써 놓은 글을 훔쳐 발표하기도 한다. 서지우의 삶도 결코 평탄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문학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그가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승보다 조금 젊다는 이유로 은교를 제멋대로 농락하고, 명예와 물질만 좇는 그의 모습이 한심해 보일 때도 많았다. 스승이 감히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아이 은교, 시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감히 발표할 수 없었던 농염한 소설들이 이적요 시인을 대신 말해주면서도 서지우의 허울을 그대로 드려내고 있었다.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의 노트를 번갈아 읽다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트는 은교에 의해 운명이 갈린다. 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어 두 사람의 내면을 채운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적요 시인의 은교에 대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순수하고 깊었으나, 서지우를 우아하게 살인하려고 했던 점과 그의 이름으로 발표한 소설들 속에 감추어진 문학적 위치가 위선으로 보이기도 했다. 서지우는 스승에 대한 애틋함, 문학에 대한 갈망이 기특하긴 했으나 은교를 함부로 대하고 스승을 기만하고 경쟁상대로 삼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생각한 것들은 용서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이적요 시인은 서지우를 교묘히 살해하려 했고, 서지우는 이적요 시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처하긴 했으나 목숨을 건지진 못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스승이 자신을 버렸다는 슬픔으로 인한 눈물이라고 말한  은교의 말처럼, 죽음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이미 그를 이해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적요 시인이 사후 1년 뒤에 발표하라고 한 사실들 모두가 이 소설 안에서 펼쳐졌지만, 그것은 결코 알려져서 득이 되지 못할 내용이었다. 이적요 시인의 양심 고백이 그를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남겨진 은교에겐 충격이고 상처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은교는 이적요 시인의 죽음보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시인의 마음을 알게 되어 상심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사실도,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한 발짝도 건너오지 못한 이적요에 대한 마음이 터져 바보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이적요의 노트도 서지우의 글도 모두 그녀로 인해 상실되고 만다.

     

      한바탕 꿈을 꾼 듯 폭풍처럼 몰아친 그의 글 앞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지 멍해질 정도로 격렬한 글이었다. 은교를 사랑한 이적요 시인의 열정 같은 마음도 느껴졌고, 열일곱 소녀의 천진함도, 어느 것에도 정착하지 못한 서지우의 방황과 잘못됨도 모두 낱낱이 보게 되었다. 이적요 시인의 은교를 향한 마음을 온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순히 나이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의 사랑은 깊었으나 외롭고 쓸쓸했으며, 모든 것을 안고 가야할 정도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 모든 것을 은교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인이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픔이 가득한 그녀였기에, 애잔함만 남기고 떠난 시인과 남겨진 은교가 한 없이 마음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이 리뷰는 리뷰 마블 이벤트 응모작 입니다
  •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영화보다 더 생생한 묘사가 살아있는 듯 했다. 영화보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영화보다 더 생생한 묘사가 살아있는 듯 했다. 영화보다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박범신 작가가 영화를 보고 은교는 어린 소녀에 대한 노인의 욕망만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니, 과연 소설 은교는 어느 시인의 늙음에 대한 상념이 주로 다뤄진다. 그리고 이적요 시인, 제자 서지우, 은교, 이 세 사람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갈등 관계가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그 상황에 걸맞는 시가 적절하게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박범신 작가는 정말 많은 시를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리고 특정 단어를 강조할 때 아예 문단으로 구분짓는 방식도 눈에 띄었다. '옴씬' 이런 단어는 잊지 못할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적요가 자신의 마음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점은 좀 과하게 느껴졌다. 은교에 대한 마음, 서지우에 대한 생각, 시와 문학에 대한 주관, 늙음과 죽음에 대한 상념 등이 너무 많이 설명되어서 마치 자신의 행동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후반부로 가면서 그의 말이 장황하게 느껴져 피로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더라도 은교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 책을 쓰고 늙는 것에 대한 고민이 누그러졌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은교 | ch**lizi | 2013.10.2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p. 125   ...
     
     
     
     
     
     
     
    p. 125
     
    목이 마르면 물을 찾아 마시면 되고 걷고 싶으면 운동화를 찾아 신으면 그뿐인 것이, 자연이다. 자연의 사이클을 따르면 된다고 여겨온 섹스의 욕망이 나를 긴장시킨 것은, 그러므로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은교를 향한 욕망은 확실히 강도와 빛깔에서 전에 경험한 것과 판이했다. 평생 처음 겪는 강도, 빛깔이었다. 포악스럽고 장렬했다.
     
     
    p. 310
     
    늙어서 힘이 없었다고 오해하지 말라. 나는 회복되었으며,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라고 느낄만큼 관능적이었고, 아무런 방비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고요했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비로소, 욕망이 사랑을 언제나 이기는 건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애를 오로지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은 관능조차 이길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나의 사랑으로 관능과 욕망을 자유롭게, 공깃돌처럼, 갖고 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 394
     
    내 마음속 영원한 젊은 신부, 은교.
     
    나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비참하지도 않다. 너로 인해,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것을 나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생생하고 환한 것이었다. 내 몸 안에도 얼마나 생생한 더운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를 알았고, 네가 일깨워 준 감각의 예민한 촉수들이야말로 내가 썼던 수많은 시편들보다 훨씬 더 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세상이라고, 시대라고, 역사라고 불렀던 것들이 사실은 직관의 감옥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시의 감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들은 대부분 가짜였다.
     
     
     
     
    박범신의 <은교>는 사실 책보다는 영화를 먼저 알았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워낙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던 작품이라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또한 소재자체가 자극적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 필름의 잔상 때문에 이적요한은교에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지꾸만 이적요의 박해일 모습과 한은교의 김고은 모습이 떠올랐다.
    책의 끝부분에 이를때쯤 한번 정도 영화 은교를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부분은 시인 이적요가 시인으로서의 '신성을 가진 줄 알았으나, 결국 한은교를 알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책으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는 보지 않기로 했다.
    영화의 잔상 없이 책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는 것에 있어서도 사실은 어느 정도 나 혼자만의 튕김질이 있었다.
    뭐랄까,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은교>를 사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읽어 내려갔다. 박범신은 <은교>를 한 달 반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적요서지우한은교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번민을, ‘이적요서지우가 서로를 향한 사제지간의 사랑과 질투를 박범신은 밤마다 손끝으로 내달렸다.
    나의 눈도 그와같은? 마음으로 함께 내달렸다. 하지만 박범신의 부디 밤에만 읽으라는 권고를 지키지는 못했다.
     
     
    이적요한은교를 향한 마음은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그저, 한 남자의 욕망이었을까.
    이적요의 집에서 데크의 의자에 앉아 경계심이 풀린 채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늘어지게 낮잠을 청했던 소녀가 한은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실에서는 미친짓이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적요에게 어느 식당의 아주머니도 손녀딸이 참 예쁘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교는 이적요에게 내 마음 속 영원한 젊은 신부였다.
     
     
    이적요는 엿 먹이고싶었던 문학현실에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간다.
    문학계는 결혼도 하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오직 만 집필하는 시인 이적요에 대해 역시, 이적요시인이야.’ 라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이적요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이적요를 향한 평가이다.
    메이저 문학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인정을 받고 그 상위에 들어서기까지의 방법을 시인 이적요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이적요는 대중적으로 문학계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은교를 통해 철저히 가짜라는 것이 이적요 스스로에게 까발려진다.
     
     
    밸런스는 없다.
    그저 이적요는 계속 불타오를 뿐이다.
     
     
    사실 욕망이니, 예술이니 이따위 것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적요는 이적요일 뿐이고 한은교는 한은교일 뿐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은교>를 읽으면서 어떤 이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이다.’
     
     
    한은교 때문에 서지우가 움직였고, 시인 이적요가 움직였다.
    <은교>는 그런 책이다.
     
     
    역시, 영화 <은교>는 별로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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