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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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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쪽 | A5
ISBN-10 : 8937403943
ISBN-13 : 9788937403941
장밋빛 인생(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26) 중고
저자 정미경 | 출판사 민음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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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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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화영,이문열,조성기 등 심사위원들이 흔쾌히 의견을 일치할 만큼 기법과 주제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광고, 헬스, 요리, 메이크업 등 가시적·감각적 외관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삶의 다양한 양식을 다루며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고독하게 찾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저자소개


작가 정미경
1960년생.
1982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 수상.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2001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비소 여인]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데뷔.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목차

1. 장밋빛 인생 2. 결혼기념일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장밋빛 인생]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본심 심사위원들이 흔쾌히 의견을 일치할 만큼 기법과 주제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아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

[출판사서평 더 보기]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장밋빛 인생]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본심 심사위원들이 흔쾌히 의견을 일치할 만큼 기법과 주제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아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 자체가 광고 카피를 연상시키는 현란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는 환상, 껍데기, 포장, 화면, 카메라, 분장, 조명발, 디스플레이 등 휘발성 <겉모습 para tre>이 <존재 tre>를 압도하고 대신하는 세계의 <비어 있음>을 동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데 효과적이고 또한 적절하다. 자신이 선택한 소재, 즉 <광고>와 <이미지>의 세계를 다루는 작가의 자유자재한 솜씨는 거의 <직업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자주 감탄을 자아낸다. 상품과 인간, 사물과 삶의 연결과 소통이 직업이지만 정작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존재의 표면에서 부유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고독하게 찾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은 그 건조함 때문에 새롭고도 감동적이다.(김화영/문학평론가)

[장밋빛 인생]은 한 분야의 전문성을 보편적인 관심과 흥미의 대상으로 바꾸는 데 무엇보다 뛰어났다. 육화(肉化)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푹 밴 직업적인 정보와 지식이 주는 재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깔끔하면서도 속도 있는 문장에다, 성격 창조에 있어서도 신인 같지 않은 능란함이 느껴진다. 현대성의 이해에도 나름의 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이문열/소설가)

[장밋빛 인생]은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걸맞는 중요한 사회학적인 주제(이를테면, 광고 문화 속의 인간 실존)를 구체적인 생활과 섬세한 의식의 빼어난 형상화를 통하여 녹여내듯 잘 드러내고 있다. 탄력 있는 문장으로 끝까지 독자를 사로잡아 이끄는 힘이 이 작가의 역량을 보증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성기/소설가)

[장밋빛 인생]은 사막 같은 현실에서 습기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정서적인 금치산자>들의 이야기를 강렬하고도 세련되게 풀어낸 소설이다. 광고회사, 헬스센터, 방송국 등을 배경으로 광고나 헬스, 요리, 화장 속에 편재해 있는 <조작된 환상>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김미현/문학평론가(예심평에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장밋빛 인생]의 작품집에는 작가가 <<문학사상>> 2002년 1월호에 발표한 {결혼기념일}이란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상작인 [장밋빛 인생]과는 달리, 사회의 음습한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에 연루된 한 개인의 하루를 통해 체제의 음습함에 점차 동조되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 메시지를 잔잔하게 깔아놓는 적절한 어조와 소재적인 흥미 때문에 수상작에 못지않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 소설은 광고, 헬스, 요리, 메이크업 등 가시적·감각적 외관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삶의 양식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신인답지 않게 소설의 육화(肉化)에 적절히 성공함으로써, 존재의 표면에서 부유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고독하게 찾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을 다룬다.

작가는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 강점을 보이는데, 이미지 속에 사는 인물, 즉 <15초의 인생>을 사는 광고인의 직업 세계를 적절히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은 1인칭 화자의 회상으로 시작되며, 화자가 관찰한 세계의 이미지가 단상처럼 흐른다. 비단 광고장이인 <나>뿐만 아니라, <나>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또 다른 인물 <이강호>도, <나>의 옛 연인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민>도, TV 프로 <사랑이 꽃피는 요리>의 진행자인 <나>의 아내 정애도, 헬스클럽에서 만난 여인 재즈스쿨 강사도, 모두 이미지 속의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조작된 환상>을 보여주는 인물이거나, 혹은 그 <조작된 환상> 속에 살 수밖에 없는 단자화된 현대인들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입는 건 청바지가 아니라 리바이스의 자유로움이며, 들이마시는 건 담배가 아니라 말보로의 마초 이미지>이다.

이 <조작된 환상>이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광고 문화, 이미지 문화, 메이크업, 요리 등의 소재는 실재 아닌 실재를 구현한다. 이들은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이며 바로 시뮬라크르이다. 시뮬라크르, 이미지, 환상에 의해 구성된 세계가 상상 세계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모방할 혹은 재현할 실체가 없고 이미지가 실체인 세계에서는 상상 세계는 존재를 상실한다. 작가는 가상실재 속의 삶의 표현하는 데 넉넉한 직업의 세계를 다루어,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절히 성공한다.


본문 소개

어느 날 <나>에게 <민>의 죽음이 알려진다. 그것도 <민>의 남편에게서. 그는 <민>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살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나>는 <민>에 대해서, <민>과의 사랑에 대해서 회상하기 시작한다.

광고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온 나(광고 회사의 AE)에게는 30초만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이었다. 인생에 결코 의미를 두지 않는 삶. 사람은 잠들어도 광고는 밤새도록 펼쳐지며 보는 이를 유혹하지 않는가. 무엇을 살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갖는 삶이란 소비의 유형으로 규정되어지는 현대인의 삶의 극점을 보인다.

내가 다니는 광고 회사에 인턴 사원 <이강호>가 들어온다. 그는 광고만을 위해서 사는 양, 미친 듯이 광고에 매달린다. 그가 추구하는 광고란 <역사성을 획득하면서 두고두고 찬양받아야 할 예술>이다. 그렇듯 열정적인 존재인 이강호에게 <나>는 현실을 바로 보라는 충고를 한다: [광고는 광고일 뿐이야. 광고의 화려한 포장을 벗기면 거기 돈이 있다. 광고는 돈의 포장지일 뿐이다]

그러나, 이강호의 삶은 보다 젊은 시절의 <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이미 광고계에서는 초신성이라 불릴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놓았다. 그러나 나는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하고 나면 자신이 꼭 헝겊인형처럼 느껴>지는, <몸속에 수분이 하나도 없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나에게는 30초만이 의미 있었지만, 그 무렵 <민>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30초 바깥의 편안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민>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년 전 일 때문에 만난 사이다. 그때 이미 <민>은 결혼한 상태였고, <나>는 <사랑이란 그저 행복한 한 순간일 뿐> 어느 한 여자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민과 단지 눈길, 갈증, 기억의 편마암에 새겨진 그림을 강박적으로 교환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꿈이나 현실의 어려움, 혹은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눈빛을 입술을 혀를 성기를 정액을 나누고 기억까지 뒤섞고 마는, <서로의 존재의 바닥에 닿고야 말리라는 간절함>, 그에게 내 기억을 이식해 놓으려는 간절함, 안타까운 몸짓이 <사랑>이 아닐 것인가. 나는, <한 편의 광고를 만들 때마다 자신의 영혼을 5센티미터씩 잘라서 넣는 것 같은 이 생활>에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민> 때문이라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민에게 경도되어 간다.

그러나, 현실 속의 삶은 여전히 버겁다. 민은 나와 육체 이상의 것을 나누었어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민은 오히려 나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나 역시 민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민에게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다. 결국 둘의 관계는 내가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정애>와 결혼하고 끝나게 된다. <정애>와의 삶 역시 같다. 결혼은 15초 안에 끝나는 광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결코 현실을 꾸려갈 의지도 능력도 없다. 정애와의 말없는 삶, 정애가 구현해 나가는 또하나의 조작된 환상, 내가 지속해 나가는 삶 속에는 더 이상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헬스클럽에서 몇 번 스친 적이 있던 재즈스쿨 여강사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에어로빅과 재즈댄스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다고 수강생들에게 믿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영이며 헬스까지 해야 하고, 그걸 제자들이 알게 되면 좌절감 때문에 운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여강사가 조작하는 환상, 그것은 형태만 다르지 광고판에 있는 그 실체와 다르지 않다.

<나>의 다른 자아인 <이강호>도 이러한 조작된 환상, 혹은 시뮬라크르의 이미지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는 이강호에게서 끊임없이 과거를 환기한다. 이강호는 <나>를 존경하면서, <나>와 같은 광고장이가 되려 하지만, 동맥이 서서히 괴사하는 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강호는 심약함을 잊고, 자신의 몸이라는 하드웨어와 정신의 소프트웨어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적인 인물이다.

<정애>와의 말없는 삶, 재즈스쿨 강사와의 스쳐가듯 한 정사, 이강호와, 일 사이에서 맴돌던 <나>의 무의미한 삶 앞에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놓여진다. <민>의 남편이 건네준 <민>과 <나>의 추억이 되올려진다. <무엇이든 잃고 나서야 제 마음속에서 그것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의 크기를 손으로 더듬을 수밖에 없는 게 나라는 인간인지.> <민>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민의 남편>의 말. 민의 남편은 자신 때문에 둘 사이에 애가 생길 수 없었는데도, <민>이 죽을 당시에 임신중이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제는 <셀로판지로 바라본 부분일식처럼> 아릿하게 기억에만 새겨져 있는 <민>의 모습.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 빛바랜 기억뿐이다. <장밋빛과도 같은 인생>이다.

광고 촬영 현장. <누군가 날 좀 꺼내줘. 이토록 현란한 화면 속에서 날 꺼내줘. ……이 어지러운 화면 속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외침은 광고 콘티 속의 한 여인이다. 거의 흑백에 가까운 화면. 그 여인은 <민>이었던가. 아니면 30초면 끝날 CF의 한 장면일 뿐인가. 누군가 불을 켰고, 밝은 화면은 우연치 않게 찾아온 사고가 <이강호>를 덮쳤음을 보여준다. <크리에이티브>한 삶과 자유로운 발상, 늘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추구를 보여준 이강호는 결국 삶의 우연성을 보여줄 뿐이다.



저자 소개
작가 정미경
1960년생.
1982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 수상.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2001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비소 여인]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데뷔.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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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소설 하나 읽는 것이 사치였다면 믿을 누가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러했다.
    내 삶을 영위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었으니까.

    지리멸렬하게 내리는 비 속에서
    또 괜한 맬랑꼴리에 젖어들기 싫어서,
    "아메리칸 파이2" 라는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 류를 골랐으며,
    책 대여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골랐다.
    "장미빛 인생"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제목에서 이브 몽땅을 향한 에디뜨 삐아쁘의 전율어린 음성이 아른거려서...

    재밌다...
    맛없는 삶을, 참 맛깔나게 담아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엔 장미빛 인생은 없다...
    온통 잿빛.

    이 작가가 써내려간 사는 법, 사랑법에 난 완전히 동의한다.
    가슴에 칼 하나 품고 사는 법...
    남에게 연약한 나를 내 보이는 건, 추한 것...
    영원한 사랑은 없고, 다만 그 사랑에 대한 추억만이 영원한 것...
    소설이 맛나다...

    게다가 나처럼 누군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불가사의" 대신 "불가사리"로 부르는 것이 어찌나 반갑던지...별게 다...

    <장미빛 인생>

    – 정미경

    커피는 환멸스럽게 식어있었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과 사람과 현상들에 차가워져 있는 자신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일정한 라인 속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부담스럽고 거부 반응이 생긴다.
    다정함이란 내 속에 동질의 감성이 있을 때에만 소통될 수 있는 전류의 일종이 아닐까?

    자신의 고통이나 감정을 타인 앞에 드러내는 건 연약한 짓이고 연약한 건 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살아간다는 건 그 무언가를 위해 날마다 존재의 일부를 내어놓는 일이다.

    사랑이란 교환에 대한 광기가 아닐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교환하고 싶어하는 건 왜일까?
    서로의 존재를 꿰뚫어보려는 눈길, 손끝에 느껴지는 갈증,
    너 없이 혼자 지냈던 날들과 퇴적된 내 기억의 편마암에 새겨진 그림을 너에게는 보여주고 싶어지는 거.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누군가 바라보아 주어야 하는,
    누군가 내 전두엽에 새겨진 기억을 공유해 주어야만 하는,
    누군가 내 체온을 점자처럼 읽어주어야만 안도하는 그토록 연약한 존재.

    관대해질 수 있는 정서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다투는 연인들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때때로 유치한 질투심에 휩싸일 만큼의 거리감을 상실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음은 연약한 근육이라고 말했던 건 우디 앨런이었던가.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불수의근이다.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않을 때가 더 많다.

    너에게 난 무엇이었나
    사랑한다 해서, 둘이서 죽도록 사랑한다 해서,
    다시는 나누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며 뜨겁게 엉긴다 해서
    그 사랑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두려움과 고뇌의 무게까지 같이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내게 결혼하라고 말하던 민의 쓸쓸함에는 무심했다.
    나를 밀어내던 민 앞에서 느꼈던 내 외로움만 컸지, 민의 아픔은 몰랐다.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민이 마음 속에 얹고 살았던 돌의 무게를 나를 몰랐다.
    민이 우울해있으면 그저 나도 우울해지고 민이 밝아지면 같이 밝아졌다.
    흐린 후의 맑음, 그것 어쨌건 고마운 일이었다. 때로 민은 맑은 후 차차 흐릴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삶이란 정색을 하고 저울질하기엔 너무 무거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무거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소비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거짓 사랑에 짐짓 빠져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광고에서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말하자면 이 현실의 느낌과 가장 먼 것,
    그러니까 깃털같은 가벼움, 거칠게 말하자면 진실과는 대척점에 있는 어떤 것. 현란하며 경박한,
    눈 한번 깜박이면 잊을 수 있어야 하는 그 속에서 현실 속의 길은 잠시 잃어버릴 수 있는.

    이강호 - "형, 불행은 언제나 빛나는 행복의 끄트머리를 잡고 오는 거에요?
    활짝 웃는 입술이 닫히기도 전에, 소리내어 웃으면 찔끔 흘린 눈가의 물기가 걷히기도 전에."

    사랑의 상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렇게 맛없게 하는데 안 망하고 계속 가게가 된다는 거, 불가사리야."
    "불가사의지."
    "알아,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발음하기가 어려워. 불가사리. 내가 불가사리라고 그러면 불가사의인 줄 알아."
    "말도 안돼."
    나는 그 밤에 앞으로 불가사리를 볼 때면 민을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었다.
    불가사리를 볼 때만 민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사리……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그저 행복한 한 순간일 뿐. 소멸되지 않는 것은 기억이다.

    시간 속에서 바래지 않고 간절함 속에 후광마저 얻게 되는 것은 다만 기억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추억만이 영원할 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이 세상과 맞서는 칼 하나쯤은 있어요.
    어떤 일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나의 전부를 걸지 않는 거.
    어느 날 내 것인 줄 알았던 어떤 것이, 내 사람인 줄 알았던 누군가가 홀연히 떠나갈 때,
    깃털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릴 때 그 칼이 얼마나 날 편하게 해 주는지 몰라요.
  •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설의 멋진 구절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이 장밋빛으로 묻들기를 바라기도 ...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설의 멋진 구절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이 장밋빛으로 묻들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앞으로 펼쳐질 사랑과 인생의 행로가 장밋빛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그 꿈에서 아마도 깨고 싶지 않은 순간이리라.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정미경의 이 소설은 다른 작품을 다 읽고서 뒤늦게 이렇게 만났다.

    제목에서 풍기듯 조금은 속물적이고 통속적인 연애소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미경이라는 작가를 아는 이라면 모두 느꼈을 듯이 무척 고급스러운 글로 쓰인 연애소설이라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광고계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만난 네 남녀의 사랑은 원하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민,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애, 광고 기획을 하는 영주, 그리고 민의 남편. 민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던 영주는 자신을 향해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정애와 결혼을 하고도 민을 만나왔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한 사랑의 시선은 한 순간 갈라져 버리는 유리처럼 되고 만다. 서로 한 공간에 산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나누지 않는 부부가 되고 민은 자살을 하고 만다. 지극히 뻔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단연 배경이 되고 있는 광고와의 적절한 조화 때문이다. 광고라는 것은 진실보다는 허구나 과장으로 가득하다. 메이트업 아티스트지만 민낯으로 다니는 민, 방송에선 사랑의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정작 남편을 위해 자신을 위한 사랑의 요리는 할 수 없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애, 30초 짧은 순간에 세상 모두를 만족시키고 흡족시키지만 자신의 아내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영주의 모습이 그러하다.

    모두가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광고처럼 빛나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화려한 마지막 광고를 향한 그들의 몸부림처럼 자신의 인생에 있어 사랑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부서지고 만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주에게 지쳐버린 정애, 사랑을 지키고 싶었기에 죽음을 택한 민, 그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영주, 이들 모두 메마른 정서의 소유자들이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이 주인공들과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미경은 이 불륜을 아주 우아하게 묘사한다. 마치 민과 영주의 사랑이 장밋빛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갈하면서도 수려하다.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다.

    [살아간다는 건 그 무언가를 위해 날마다 존재의 일부를 내어놓는 일이다. 79쪽] 매일 매일 우리는 자존심을 내놓기도 하고 때로는 철면피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삶이란 정색을 하고 저울질하기엔 너무 무거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무거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소비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거짓 사랑에 짐짓 빠져보기도 한다. 140쪽] 삶이란 저울의 양 접시에 우리는 무엇을 올려 놓고 싶을까? 과연 그것은 욕망, 명예, 부, 사랑 중 어느 것일까?

    우리네 인생은 불륜이 남긴 깊은 상처가 보여주듯 장미빛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저 멀리 장밋빛 인생이 있지 않을까 하며 살아가는게 또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과대포장인 줄 알면서도 광고를 보고 선뜻 물건을 사게 되는 실수를 범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에는 이 소설 외에 '결혼기념일' 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물적이면서도 이중적인 모습과 약한 내면을 아주 소름 돋게 표현했다. 긴 호흡으로 만난 '장밋빛 인생' 뒤에 만나는 짜릿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잃어버린 사랑의 정체성. | ju**su19 | 2003.03.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2002년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장밋빛 인생] 내용은 그간 수상했던 신인상 들의 순수함에 걸맞지 않는 노련한 글솜...
    2002년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장밋빛 인생] 내용은 그간 수상했던 신인상 들의 순수함에 걸맞지 않는 노련한 글솜씨로 일관해, 정말 신인일까 갸우뚱 했던 작품이다. 은희경씨의 느낌이 풍기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정도다. [장밋빛 인생]이란 제목에서 풍기는 기대치 상상은 화려하고 향긋한 이야기 인듯 느껴진다. 상응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직업은 광고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재즈강사, 화려한 요리를 소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직업상, 외형적으로 비춰지는 그네들의 삶이야기는 화려하게 비쳐지는 것과는 다르게 관념적이고 공허하며 건조하다. 광고인 미혼 영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결혼한 [민]을 사랑한다. 서로의 존재를 바닥까지 아는 간절한 사이가(육체적 사랑)됐음에도 질투의 감정에 몸을 떠는 자신을 발견한 영주는 민의 생활에 상처를 주게 되고 급기야, 불편(?)한 민은 영주에게 결혼을 종용하게 만든다. 나는 솔직히, 여기서 뻔한 소설의 결과에 콧방귀가 나왔다. 그렇지 않은가. 불륜에서 방해되는 귀찮은 또다른 구속. 영주는 애인의 독촉에 결혼을 하지만 마음이 빈 결혼은 행복할 리 없다. 민은 영주의 아기를 임신하고선 피할 수 없는 결혼의 책임에 자살을 하게 된다. 자살 직전 그녀는 진정 사랑 때문에 죽는 용기를 갖는다.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내가 이해되는 행동이다. 민의 자살을 민의 남편으로부터 통보 받으며 영주의 민에 대한 회상으로 일관하는 이 소설은 어찌보면 상투적인 드라마를 보는듯 보인다. 하지만, 간략된 내용으론 결코 가볍게 보일 수 없는 것은 신인 같지 않은 저자의 노련한 글솜씨와 매일같이 쏟아지는 현란한 광고의 시대에 살며 그로 인해 현대인은 존재성을 잃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의도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요리강습가 영주의 아내 정애는 집에서는 결코 사랑의 요리를 만들지 않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민은 자기 얼굴은 백지장과 같다. 헬스클럽 재즈강사는 자신의 날씬한 이미지를 위해 재즈외에 수영과 헬스로 몰래 몸을 가꾼다. 이는 현대인의 이중성과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여주는 고독과도 같다. 영주의 자유분방한 자기식 사랑법은 상대방에겐 방황을 준다. 문득, 이런 류의 사랑식은 요즘 현대인의 부담없는 자기합리식 생각의 반영이 아닐까..싶은 기분이 든다. 자유를 부르짖는 노처녀,노총각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30초 광고가 아무리 힛트를 쳐도 몇달 뒤면 식상해 지는 것 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네 의식 속에서 광고처럼,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랑이 자리 잡는 것을 소설로 반영한건 아닐지.. 사뭇 걱정이 든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책임이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 내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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