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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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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1*191*22mm
ISBN-10 : 1160402841
ISBN-13 : 9791160402841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중고
저자 이민경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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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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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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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꾸밀 자유’가 있는 만큼 ‘꾸미지 않을 자유’ 또한 주어지는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쓴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출간하며 동시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민경이 지금 페미니즘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탈코르셋’을 이야기하는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탈코르셋 운동을 통과하며 저자가,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몸으로 얻은 지식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생생하고도 내밀하며 균형 잡힌 사회과학적 기록이 되어준다.

2017년 탈코르셋 운동이 시작된 이래 2018년 초여름부터 2019년 늦봄까지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들을 직접 만나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총 13개의 담론으로 구성했다. 다양한 찬반양론에 휩싸이며 논쟁이 되었던 탈코르셋 운동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며, 운동의 비전과 가치, 고민과 갈등, 운동이 고집하는 획일적인 방향성까지, 페미니즘 연구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규범적 여성성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이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고통 받으며 어떤 방식으로 처벌받는가를 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여성 스스로 선택해서 입었다고 믿었던 코르셋을 직접 벗어던지지 않았다면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지점이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애초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았던 이 운동에 몸소 뛰어들게 되면서, 탈코르셋을 통해 저자 스스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기록한다.

저자소개

저자 : 이민경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삶에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공부하면서 페미니스트를 위한 언어를 짓고 옮기는 활동을 한다. 저서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유럽낙태여행》 등이 있다. 역서로 《임신중지》 《어머니의 나라》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나, 시몬 베유》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0. 관념에서 감각으로

1. 여자에서 사람으로
― “남자들은 아무도 꾸미고 다니지 않아요”
2. 할 자유에 하지 않을 자유로
― “나 때문에 남성성을 못 느끼면 내 탓일까, 쟤 탓일까?”
3. 노력에서 망각으로
― “거울을 보니까 볼에 마커가 묻어 있더라고요”
4. 예쁨에서 아픔으로
― “횡단보도도 원래 포기했었거든요”
5. 평면적인 자아 이미지에서 입체적인 자신으로
― “세계를 3D로 보다가 4D가 된 거죠”
6. 미관에서 기능으로
― “이제는 다 너무 인형 옷 같아요”
7. 남성의 타자에서 여성 동일시된 여성으로
― “들기 좋은 여자 말하는 거예요”
8. 획일한 일과에서 다양한 일상으로
― “‘탈코상’은 미인상을 부수는 무기예요”
9. 순응에서 위반으로
―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본다는 불안인 거죠”
10. 분열에서 통합으로
― “차라리 내가 찍어 바르느니…… 쳐맞고 말지”
11.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세계로
― “도대체 여자는 누가 만든 거야?”
12. 죽음에서 삶으로
― “적금은 내가 나중에도 살아 있다는 뜻이잖아요”
13. 이제, 다음 세대로
― “태어난 순간부터 고삐에 매여 끌려가다시피 해요”

후기

책 속으로

탈코르셋은 자신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논리를 따르느라 둔감화된 고통을 생경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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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은 자신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논리를 따르느라 둔감화된 고통을 생경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의 몸이 고통에 둔감해졌다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_119~121쪽

한 초등학교 교사가 트위터를 통해 학급에서 실시한 ‘자신의 눈에 대해 설명해보자’는 활동의 결과를 공유한 적이 있다. 여자아이들은 ‘눈이 작다’, ‘쌍꺼풀이 없다’ 등으로 적은 반면, 남자아이들은 ‘0.3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누가 누구의 눈으로 누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태어난 지 10년 남짓 된 모든 아이들에게 이미 너무나 뚜렷하게 내면화된 것이다. 몸을 기능 측면에서 바라보고, 딱히 특정한 외형을 선망하지 않고, 선망한다면 자신에게 최적의 기능을 주는 형태를 선망하는 심리는 남성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_203쪽

분열을 딛는 결심은 여성 개인에게 전에 없던 평온을 안기기도 하고 감당 못할 화를 입히기도 한다. ‘잘 살자
고 하는 운동이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냐’라며 동료들을 다독이는 말은 내가 지현에게 건넨 우려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진심이다. 여성은 사소한 범법을 저질러도 구제될 수 없고 너무 쉽게 죽는다. 더 이상의 여성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손해인 순간조차 이 결심을 끝끝내 고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시도들은 때로 죽음을 불사하는 개인을 만들어낸다. 나 역시 나서서 죽음을 택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인지부조화는 머리를 기르느니 자른다는 결정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느니 죽는다는 결의를 가질 때에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기준이 된다. 이 결의는 어떻게 보아도 개인의 인생에서 손해이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개인의 삶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투쟁에 나서게 만드는
이해할 수 없는 시도들을 불러일으켰고, 오직 그 시도만이 전에 없던 이득을 불러오는 모순을 낳았다. 죽음을 불사하는 의지는 미화될 필요도 없지만 단순한 손해로 볼 수만도 없는 것이다. _287쪽

탈코르셋 운동은 구체적 맥락 위에 위치한다. 한국 사회에서 2015년 초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확산된 이래,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2017년 시작되어 2018년 전폭적으로 확산되고 2019년인 올해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2016년 무렵, 여성성을 전유하고 긍정하는 흐름과 갓 확산된 페미니즘을 전파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꾸밈을 수행하는 개인들이 늘어난 직후라는 특정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외모에 대한 간섭이 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와 여성을 외모 강박으로 몰아넣는 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구체적인 시공간적 맥락에서 등장한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한 이들은 여태까지 한국 여성으로서 외모 강박에 시달려왔던 개인적 맥락과 페미니스트로서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적 맥락 위에 서 있다. 운동에 동참한 개인들은 ‘여성 개개인에게 부여된 규범적 여성성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행동 양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운동 특유의 방침을 공유하는 동시에, 저
마다 운동을 확산할 전략을 고안한다. _288쪽

주제의 특성상 탈코르셋 운동의 투쟁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미디어와 사회구조를 비판하더라도 결국은 욕망을 파고들어 내면화된 압력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싸움보다도 도망가고 싶은 싸움을 해내고, 동시에 한 강박을 다른 강박으로 대체하지 않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_388쪽

탈코르셋 운동은 2015년부터 시작된,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가장 첨예하게 마주한 지점이자 지금까지 쌓아 올린 페미니즘 지식이 활용되고 생성되는 장이라는 점이다. 폭발하는 운동을 통과하며 여성의 몸이 만들어낸 지식은 기존의 사유를 부수는 과감한 도전이었고, 이는 고통과 착취, 학대를 경험하는 지금 여기 여성들의 삶을 바꾸어내는 데 가장 적절한 도구였다. 나아가 다른 시기, 다른 곳의 여성들의 삶에도 변화를 만들어낼 도구라고 본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생긴다면 그로부터 또 다른 지식이 만들어질 것임을 믿고 그때에도 함께할 것이다. 촉발되는 운동이 무엇이든지 언제나 핵심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유동하는 몸을 갖는 것이다. _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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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신작 ★★★★★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폭발하는 현장, 그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가장 정교한 탈코르셋 담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첫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출간하며 동시대 여성의 목...

[출판사서평 더 보기]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신작 ★★★★★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폭발하는 현장,
그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가장 정교한 탈코르셋 담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첫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출간하며 동시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민경이, 지금 페미니즘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탈코르셋’을 이야기한다. 2017년 탈코르셋 운동이 시작된 이래 2018년 초여름부터 2019년 늦봄까지 1년여,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들을 직접 만나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총 13개의 담론으로 구성했다. 다양한 찬반양론에 휩싸이며 논쟁이 되었던 탈코르셋 운동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며, 운동의 비전과 가치, 고민과 갈등, 운동이 고집하는 획일적인 방향성까지, 페미니즘 연구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더불어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애초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았던 이 운동에 몸소 뛰어들게 되면서, 탈코르셋을 통해 작가 스스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기록한다. 탈코르셋 운동을 통과하며 작가가,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몸으로 얻은 지식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가장 생생하고도 내밀하며 균형 잡힌 사회과학적 기록이 될 것이다.

“여성과 여성성은 무관하다”
탈코르셋: ‘꾸밈 중지’의 실험

2018년 초 SNS에서는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_인증’이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아이섀도가 산산이 부서져 있고 립스틱이 잔뜩 짓뭉개진 사진들에 붙여진 이 해시태그는 ‘탈코르셋 운동’의 확산을 알리는 징후적 표현이었다. 화장이나 하이힐, 치마와 같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꾸밈’을 통칭하는 ‘코르셋’이란 표현의 반대급부로, 여성의 꾸밈을 전면 거부하는 운동을 ‘탈(脫)코르셋’이라 일컫게 되었다. 탈코르셋은 여성 각자의 몸을 도구로 삼는 실천적 운동으로, 이는 꾸밈 강요를 비판하는 다른 흐름과 이 운동이 가장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셔츠와 바지를 입으며, 머리를 짧게 깎는다. 단발 대신 쇼트커트, 쇼트커트 대신 투블럭으로,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영역까지 적극 침범하다. 탈코르셋 운동은 ‘규범적 여성성’을 이탈해 금기를 위반한다는 분명한 기치를 담고 있다.

13개의 인터뷰, 13개의 서사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써내려간 1년의 기록

‘왜, 굳이, 이렇게’ 탈코르셋을 하는가. 페미니스트는 꾸밈노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선택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꾸밈을 전면 거부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작가 이민경은 온라인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고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탈코르셋 운동은 3년 여간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일해온 작가에게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으로 인해 생경함을 안겨주었다. 작가는 이 운동을 독해하기 위해 2018년 초여름부터 2019년 늦봄까지 1년여,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서울, 경기, 대전, 전주, 대구에서 100명 남짓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스무 명 가까운 여성들과는 한 번에 두세 시간가량 인터뷰했다. 유치원 교사, 대학원생, 제조업 분야 직장인, 여성주의 동아리 회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인터뷰에 응했고, 이들이 운동에 동참한 계기는 다양했다. 다이어트와 폭식증에 시달리던 민주는 친구 단풍의 권유로 탈코르셋을 접했다(80쪽). 중학교 교사 혜인은 탈코르셋에 동참하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아 운동에 뛰어들었다(108쪽). 여덟 살 딸을 둔 보경은 유아 화장품 산업의 확대를 피부로 접하며 탈코르셋을 지지하게 되었다(371쪽).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이수역 폭행사건’ 또한 많은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 역시 이즈음 머리를 잘랐다.

“나 역시 적당히 자르려던 머리를 훨씬 더 짧게 잘랐다. 여성이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이 표적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여성이 머리를 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드러내지 않고는 폭력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젠더폭력은 성별 규범을 위반한 자에게 주어지는 폭력이다.” _242쪽

이 책은 탈코르셋을 실천하며 일상과 생애 전체에서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채취한 13개의 인터뷰는 그래서 한편 한편이 ‘몸의 이동’에 관한 13개의 서사가 된다. 이 서사들은 탈코르셋이 여성 개개인의 일상에서 구현되는 다채로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안 꾸미면 될 걸 가지고 운동씩이나?”로 대변되는, 탈코르셋에 관한 피상적이고 평면적인 이해를 단숨에 일축시킨다.

꾸밀 자유 vs 꾸미지 않을 자유
양쪽 자유의 무게는 평등한가

탈코르셋은 ‘외모 지상주의’ 대신 ‘외모 다양성’을 추구하며, 단순히 ‘꾸미지 않을 자유’를 넓히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존의 흐름을 적극 비판하며 터져 나온 운동이다. 외모 지상주의나 외모 강박은 사회문제로 여겨지지만, 여성 개개인이 행하는 꾸밈은 취향이나 기호와 같이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져, 꾸밈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다양한 찬반양론에 휩싸여왔다. 여기서 ‘선택의 자유’는 핵심 쟁점이 된다. 여성에게 ‘꾸밀 자유’가 있는 만큼 ‘꾸미지 않을 자유’ 또한 주어지는가?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여성이 삶에서 감수하는 불이익의 정도는 단순히 성가신 간섭을 듣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얼굴을 드러내고 탈코르셋을 선언한 유튜버 배리나가 끊임없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실정이 또 다른 예일 것이다. 특히나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의 경우, 투쟁에 참여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위협은 신체적 폭력부터 생계 위협에 이르기까지 결코 경미하지 않다. _277쪽

이 책은 ‘규범적 여성성’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이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으며 어떤 방식으로 처벌받는가를 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여성 스스로 ‘선택’해서 입었다고 믿었던 ‘코르셋’을 직접 벗어던지지 않았다면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지점이다.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동료 여성에게 탈코르셋에 동참할 것을 권하는 압력, 즉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탈코르셋 운동의 전략은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이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민주와 단풍 역시 친구로부터 ‘머리를 자르라’, ‘코르셋을 벗으라’는 ‘강요’를 직접 당한 경우였다(74쪽).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들은 스스로의 변화를 실감한 이상 ‘바꾸기 위해 움직이자’는 권유를 단순히 사적 영역의 침해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외모 강박이나 폭식증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는 탈코르셋 운동이 꾸밈을 줄이라는 권유 대신 전격적으로 중지하는 강경한 접근을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코르셋 운동은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에 집중하기보다 개인의 선택이 만들어지는 데 관여되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주목한다.

‘걸그룹 네이티브’ 세대에게 메이크업, 다이어트, 성형이
과연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일까

탈코르셋 운동을 주도하는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20대 중반 이후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요즘 10대가 “형광펜을 틴트 대신 바른다”는 말이었다. 과거 학교에서 꾸밈을 금지했다면, 오늘날 학교에서 10대들은 또래와 미디어로부터 형성되는 꾸밈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2010년 초반부터 저렴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로드숍이 대거 등장하며 확대된 뷰티 산업 또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아직 성인기에 접어들지 않은 여성에게도 꾸밈 압박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한국 뷰티 산업이 공략하는 나이대는 점점 내려가고 있다.

“사실상 여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삐에 매여 끌려가다시피 해요. 미용 산업 쪽으로요. 태어나서 선물받는 옷의 형태도 너무 다르고, 약간만 크면 메이크업 키트를 장난감이랍시고 팔고, 아이들이 네일 케어를 받을 수 있는 키즈카페가 있고, 놀이공원에서도 공주 판타지, 그러니까 메이크업을 하고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몇만 원에 팔죠. 이렇게 어린 나이의 여아들에게까지 미용 산업이 손을 뻗치고 있고, ‘예뻐질 것’을 강조하는 마케팅과 문화가 성장기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해 강박이나 혐오를 갖도록 만들기 쉬운 마당에 ‘아이의 선택’ 운운하는 것은 불공정한 파워 게임을 간과하는 거예요.” _370~371쪽

키즈 뷰티 유튜브의 확산을 걱정하면서도, 선택의 자유를 억압받으며 자라났기에 아이에게도 욕망이 있음을 존중하고자 하는 어머니가 어린이 화장 문제를 읽는 주된 방식은 ‘막을 수 없다면 제대로’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의 안전을 우려하고 또래집단으로부터의 배제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불안을 이용한 산업이다. 한국 사회에서 탈코르셋 운동의 등장은 2010년 초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뷰티 산업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으며,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이러한 산업과 경제에 대항하는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선을 넘어야 한다. 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이처럼 탈코르셋 운동은 한 개인의 삶이 변화하려면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함을 지적하며, 여성에게 꾸밈 압력을 형성해내는 사회·문화·경제의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한다. 아름답기 위해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제 전혀 당연해지지 않으면서,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행하는 뷰티 산업과 패션 업계 전반의 문제, 남성의 타자로서 자기를 대상화는 데서 비롯된 이성애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담론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처럼 구체적 맥락 위에서 등장해 특수한 모습을 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개인은 다양한 변화를 경험한다.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접근으로는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꾸밈 압박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인식, 꾸미지 않을 자유를 선택해도 여성에게는 사실상 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발견, 그러나 꾸밈을 중단한 이후로 그간 수행하던 행위를 잊음으로써 경험한 자유, 후순위로 미루어졌으나 뒤늦게 감각한 고통, 왜곡된 자기인식으로부터의 탈출, 패션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선망했다는 자각, 꾸밈을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의 전부로 보았던 협소한 시선에 대한 반성, 위반을 거듭함으로써 얻은 존재에 대한 재정의까지, ‘여성은 왜 당연하게 화장을 하는가’ 물었을 뿐임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제까지 다시 물었다.” _289쪽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안기는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던 여성은 이제 코르셋을 벗는 행위를 통해 시각을 확장하고 각자의 몸이 세계에 연루되었다는 자각을 얻게 되었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각계각층의 여성들로부터 여성주의가 퍼져나가고, 2017년 시작되어 3년째 전파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각자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탈코르셋 운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규범적 여성성에 대해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실천’을 행한다. 그리하여 코르셋을 입었을 때에는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고통을, 코르셋을 벗음으로써 또렷이 감각하게 된다. 이 책은 제3자의 입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해석하며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운동으로 ‘인해’ 얻게 된 살아 있는 지식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탈코르셋 운동을 통과하며 작가가,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몸으로 얻은 지식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은, 지금 페미니즘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가장 내밀하고도 정교한 담론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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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에서 찬양하는 뷰티와 거리가 먼 나와 달리 야자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과한 해석일 수 있지만 가끔은 야자가 지각이어도 고데기는 하고 렌즈는 끼고 나가는 게 그 ‘예쁘다’는 말 탓인 것 같다. 내 좁은 교유관계는 꾸밈에 관심 있는 애들이 한두 명에 불과했고 학교에서 민낯이더라도 소수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 야자가 다니는 교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삭막한 사이라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뷰티 유튜버가 성행하거나 ‘예쁜 몸무게’가 교리처럼 돌아다니지 않았어도 야자는 매일 붓기를 빼는 차를 마시고 꼬박꼬박 화장을 수정하며 다녔을까?   ...

    사회에서 찬양하는 뷰티와 거리가 먼 나와 달리 야자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과한 해석일 수 있지만 가끔은 야자가 지각이어도 고데기는 하고 렌즈는 끼고 나가는 게 그 예쁘다는 말 탓인 것 같다.

    내 좁은 교유관계는 꾸밈에 관심 있는 애들이 한두 명에 불과했고 학교에서 민낯이더라도 소수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 야자가 다니는 교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삭막한 사이라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뷰티 유튜버가 성행하거나 예쁜 몸무게가 교리처럼 돌아다니지 않았어도 야자는 매일 붓기를 빼는 차를 마시고 꼬박꼬박 화장을 수정하며 다녔을까?

      <o:p></o:p>

    ***

      <o:p></o:p>

    탈코르셋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나는 꾸밈의 역사를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성과 외모지상주의라는 포괄적인 단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까다로운 미의 기준. 침대를 기준으로 크면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다리를 늘리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다른 점이라면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를 죄다 자르거나 늘렸던 신화 속 악인과 달리 지금 사회에서 그 침대에 눕혀지는 건 여성뿐이라는 거다.

     

  • "탈코르셋은 응시당하다가 맞응시(countergaze)를 하는 순간을 만드는 거죠.“ ...

    "탈코르셋은 응시당하다가 맞응시(countergaze)를 하는 순간을 만드는 거죠.“

     

    -145p

     

     

    ----

     

    작가님께서 언급하셨던 경험을 나 또한 겪어본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탈코르셋 내지는 탈코르셋 인증 해시태그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화장품들을 깨뜨리고 깨부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가 재작년부터는 머리를 짧게 민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회에서 정한 관념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입고 다니던 치마를 버리고, 높은 구두를 내던지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올해 초에 <탈코일기>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텀블벅에서 후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참여했었다. 책의 추천사를 탈코일기 작가님께서 써주신 것을 보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는 강남역 10번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에 시작된다. 여성을 노려서 살해했다는 그 사건의 가해자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범인이 여성이었으면 이미 어린 아이들까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성학 강연을 듣고, 관련 페미니즘 여성학 책들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이 답답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 같다.

     

    그때 구입한 책들 중에는 이민경 작가님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있었다. 그때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자신있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도 작가님께서 탈코르셋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서 이야기될 여성의 삶과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길거리 전광판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 모델들이 화장한 얼굴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주목했다. 더불어서 이런 사회라면 여성이 화장한 얼굴을 자신의 기본 얼굴로 여기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다.

     

    -37p

     

     

    중학교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었다. 돌이켜보면 수치심을 느꼈던 부위의 순서대로 화장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얼굴이 노랗다는 지적을 듣고 비비를 찾아 바르기 시작하고, 입술색이 어둡다는 소리에 틴트를 사기 시작했었다. 자꾸만 거울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나를 떠올릴 때면 왜 이렇게 마음이 미어지고 속이 상할까.

     

    치과에 갈 때도 틴트를 놓지 못했던 학원 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바르지 않으면 부끄럽다고 했다. “아예 민낯으로 다니는 건 좀 그래요.” 그렇구나 하며 지나쳤던 일들이 다시금 하나 둘 떠올랐던 것 같다.

     

     

    여성들은 수치심의 학습을 통해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하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란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보인다’는 것, 즉 신체의 특정 부위가 그것을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의식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눈썹을 그리라는 지적을 듣고 울었던 날의 윤아도 그랬다.

     

    -85p

     

     

    어학연수에 갔었을 때 동행한 남교수는 화장하지 않은 학생에게 자꾸만 여성스럽지 않다느니, 꾸미지 않고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말이야 방귀야 하면서도 가끔씩 자유롭지 못한 내가 밉고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작년 여름 광화문 광장 중심에서 삭발을 하며 심정을 토로하고 우는 사람들과 나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울고 그만큼 위로받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탈코르셋은 자신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논리를 따르느라 둔감화된 고통을 생경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121p

     

     

    새내기 때는 난생 처음으로 높은 구두를 사본 적이 있다. 발끝과 발뒤꿈치를 받치는 굽으로 몸 전체를 지탱하며 걷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보기에 좋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구두를 신고 외출을 했다. 그 날 나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 가게에 들르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을 한두 개 갈아타고 버스를 기다릴 때쯤 나는 너무도 지쳐버렸었다. 구두 속에 갇힌 발이 너무 아파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가게도 도서관도 조금만 더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으면서도 더는 걸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때 집으로 다시 돌아와 구두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구두를 신고 있는 한 나는 평생 멀리 내달리거나 자유롭게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고, 그런 예감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여성의 의복이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가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존재, 혹은 기능이 불필요한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인형에게 주머니가 필요 없듯 마네킹에게는 핫팩이 필요 없다.

     

    -173p

     

     

    올해 여름을 더울 거라는 말을 듣고, 린넨 바지를 여러 개 사두었다. 그런데 바지 주머니가 손가락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좁아서 난감했었다. 주머니가 작아 불편하지만, 바지 자체는 예쁘니까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며 입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손이 부족해서 그 작은 주머니에 잠깐 핸드폰을 걸쳐두다시피 넣어두었다가 떨어뜨릴 뻔 한 뒤로 새 바지까지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다.

     

    하나에 육만 원씩 하는 린넨 바지들과 작별을 한 뒤, 이만 원에 파는 남성용 면바지를 샀는데 주머니가 너무 깊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요즘 바지는 불편하다며 토로하던 나를 바지가 뭐 어떠했길래 그러냐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하게 보던 남동생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편한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주머니가 없는 바지를 입은 적도, 밑위가 짧은 바지를 사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이상하다. 머리 길이가 세상을 활보하는 여성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러나 이는 우리가 대상화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하다. 여성임을 더 쉽게 알아볼수록 더 쉽게 대상화된다.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125p

     

    ***

     

     

    글을 읽는 동안 인상 깊었던 부분들에 줄을 그었는데, 그 중 하나를 남기고 글을 끝내려고 한다.

     

    익숙한 이야기는 원형을 그리던 기존의 구조를 벗어나는 궤도를 택한다. 원 아닌 궤도는 ‘이걸 왜 몰랐지?’라는 의아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바깥을 해부할 단초일 수도 있다. 이 갈림길에서, ‘왜’라는 틈 앞에 멈추어 쐐기를 박고, 쪼개어,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궤도를 따라갈 수 있다.

     

    -44p

     

    새로운 궤도를 향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는 우리들을 기대하며.

  • 1. 예전에 이미 비슷한 주제의 책을 리뷰한 적이 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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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전에 이미 비슷한 주제의 책을 리뷰한 적이 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https://blog.naver.com/unouno99/221348707668

     

    이후 약 일 년이 지났고, 그동안 국내의 탈코르셋 운동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도 봐왔다. 나 나름의 고민도 생겼고, 어떤 부분은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몇몇 사안에 대해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거였다.

     

    현재 국내 페미니즘 흐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라고 한다면 역시 '탈코르셋'이 아닐까. 처음 이 담론이 제기된 지 약 2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활발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그만큼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고, 모두의 동의를 끌어내기도 어려울 수도 있고, 실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탈코르셋'은 왜 그런 개념이 되었을까?

     

     


     

     

    2. 이민경 작가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페미니즘 실천서'였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빻은 질문'에 어떻게 대항하느냐가 <우리에겐~>의 내용이었다.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은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언뜻 '탈코르셋 이론서'처럼 보이는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있었던 탈코르셋 논의에 대해 쭉 훑어내려가며 맥을 짚어주는 한편, 탈코르셋 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반박들에 오목조목 답글을 달았다. 탈코르셋 운동가들에게 언어를 보태준 셈이다. 저자는 연구가로서의 입장을 넘어, 또 한 사람의 참여자로서 몫을 보태고 있다.

     

    책 속에는 여러 인터뷰이와 함께한 인터뷰가 등장한다. 저자는 인터뷰이와 만난 장소와 먹은 음식들을 굳이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시도에서 인터뷰이가 '실재하는 누군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탈코르셋 운동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것. 너무나 달라서 이질감이 드는 인간이 아니라 그냥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저자에게 다른 인터뷰이를 소개하기도 하고, 또는 누군가를 통해 저자를 소개받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들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싶었으리라고 생각한다. 


     


     

     

    3. 비슷한 주제를 다룬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와 비교를 아니할 수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쪽이 더 심화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물론 <거울 앞에서~>보다 늦게 출간된 책이니 그 사이에 생성된 담론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거울 앞에서~>보다 <탈코르셋>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고 탈코르셋 운동이 전개되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왜 '맨얼굴'을 기본값으로 여기지 못하게 됐을까? 수업에 늦었는데도 화장을 하는 사람,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고서야 '제한된 이동성'을 깨달았다는 사람, 아파서 살이 빠진 것을 보고 '부럽다'고 했던 여자 친구들과 스스로도 기쁨을 느꼈던 사람, 생활비 때문에 보일러를 틀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옷을 구입하는 사람……. 이러한 관습적이고 뿌리깊은 '규범'을 탈출하기 위해선 강력한 '탈학습'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꾸밈을 통해 '자기대상화'를 체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단순한 꾸밈의 문제를 넘어서 가부장제에 종속되게 되는 그 흐름과 사회 전방위적인 세뇌를 고발한다. '탈코르셋'에 대한 정의와 논의를 이 책에서는 꽤 폭넓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4. 어째서 탈코르셋은 논쟁적인 주제인가?

     

    ㄱ) "정치화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욕망과 결부된 취향이나 기호는 본디 접근이 까다로운 문제이다."-94p

     : 탈코르셋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간섭하게 되는 주제이므로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문제 사이에서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 반발은 한국보다 개인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 더 강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ㄴ) "여성들을 화장하게 만들려고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죠. (……) 이 산업과 물질적 세계에 대항하는 의미로서 탈코르셋이 등장한 것과, 여성성/남성성을 담론적 차원에서 다루는 건 층위가 다른 문제인데 이 부분을 간과하기가 쉬워요."-131p

    : 여성성에 대한 규범을 정의내리는 것. 여전히 학계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이 이분법을 더 공고히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또한 탈코르셋의 모습이 다른 어떤 '규범'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비판도 있었다.

     

    ㄷ) "'우리 때는 화장이 화장이 저항이었다'는 말에 이어 '같은 꾸밈이라도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자동으로 나오는 이유이다. 이들에겐 화장이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기억된다."-372p

     : 개인의 경험과 맥락이 같은 '꾸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세대는 꾸밈을 '저항'으로 느낀다.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터져나오는 10대-20대 초반의 세대는 오히려 꾸밈을 '강압'으로 일찍이 경험했다. 이 세대 간 경험의 차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동시에 나의 고민이었다. 탈코르셋을 둘러싸고 있는 논쟁에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지점들. 아마 탈코르셋 의제를 접해본 많은 이들의 고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위 질문들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고, 그간의 흐름에서 읽은 것들을 면밀히 보여준다.(자세한 것은 책 속에서!)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은 그 고민에 길을 비춰주는 책이 될 것이다. 직접 차를 태워서 목적지에 데려다주지는 않지만, 길 끝에 있는 거대한 목표를 비춰주며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사실상 여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삐에 매여 끌려가다시피 해요.

    미용 산업 쪽으로요."

    - 370p

    5. 사실 가장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문제가 있다. 모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판매하는 상품 중에 '어린이용 메이크업 키트'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을 사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그런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 구매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대개는 모양을 흉내만 낸 가짜 장난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요근래 판매하는 제품들은 실제로 화장을 할 수 있게 내용물이 들어있으며 수요도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점에 방문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됐는데, 내 세대 때보다 화장을 한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비율도 그렇지만, 특히나 화장하는 연령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들도 적지 않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정말 절실하게 생각한다. 이미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혹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이미 한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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