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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못 된 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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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34933526
ISBN-13 : 9788934933526
왕이 못 된 세자들 중고
저자 함규진 | 출판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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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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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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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그늘이 깊으니, 왕이 되지 못하면 목숨도 보전하지 못한다! 역사의 흐름에 희생된 왕자들의 삶과 죽음!「표정 있는 역사」시리즈『왕이 못 된 세자들』. 조선을 통틀어 27명의 세자가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2인자, 다음 대의 최고권력자. 그러나 그들 중 절반은 죽은 세자가 되었다. 그들의 기구한 삶과 그들이 왜 왕위에 오르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본다.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것 같은 세자. 그러나 그들은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복잡한 예절 교육으로 날을 보냈으며, 만인의 모범이 되고자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살도록 강요받았다. 세자의 일상은 책임과 의무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각종 오락이나 취미생활은 철저하게 배제된, 수도승 또는 고시생 같은 갑갑하고 피로한 삶을 살아갔다.

뿐인가? 그들은 권력에 휘둘려 어린 나이가 죽임을 당하거나 왕세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정치와 권력은 친 혈육 간에도 비정하기만 했으며, 책임은 과중했다. 조선왕조의 최초의 세자였던 의안대군 이방석은 이복형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양녕대군 역시 총명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미친 척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 왕조 최초의 세자부터 마지막 왕세자 영친왕까지 7가지 테마로 구성하여 소개한다.

저자소개

저자 : 함규진
함규진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저자의 맨 처음 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님께 “학문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으려면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하는 질문을 드리자 “법대에 들어왔으면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만 봐라. 그것 말고는 볼 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법학 공부에 정이 붙지 않았던 저자는 대학도 학과도 바꾸고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두번째로 택한 것은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였다. 처음엔 행정학과로 입학했으나, 대학원은 정외과로 갔다. 정외과에서도 정치사상을 택했고, 다시 그 중에서도 동양 및 한국정치사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해서 결국 박사학위까지 받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다시 쓰는 간신열전』, 『역사법정』, 『세상을 움직인 명문vs명문』이 있고, 논문에는 「예의 정치적 의미」, 「유교문화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등이 있다.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록펠러 가의 사람들』, 『마키아벨리』, 『팔레스타인』등의 번역서도 다수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기 전에

1. 바람에 진 꽃봉오리 _최초의 세자 이방석
2. 나는 전설이다 _양녕대군 이제
3. 역사의 소용돌이에휘말려 _소현세자 이왕
4. 잠수함의 토끼 _사도세자 이선
5. 춘궁 뒤뜰 봄볕이 다하기도 전에 _의경세자 이장, 순회세자 이부,
효장세자 이행, 문효세자 이향,
효명세자 이영
6. 아버지와 함께 폐위되다 _폐세자 이황, 이질
7.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_영친왕 이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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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역사에서 왕과 그 후계자인 세자만큼 공인의 삶이 철저하게 강요된 사람은 또 없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엄중히 감시받았으며, 매사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맞게 행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것은 왕조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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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왕과 그 후계자인 세자만큼 공인의 삶이 철저하게 강요된 사람은 또 없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엄중히 감시받았으며, 매사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맞게 행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것은 왕조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다. 전제권력을 손에 쥔 왕이 자칫 관행에서 이탈하면 잔혹한 압제자로 바뀔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인 역시 사적으로는 평범한 인간인 이상, 그것은 불편한, 그리고 잔인한 일이었다. 공과 사를 아직 구별도 못할 나이에, 한창 청춘의 열기가 끓어오르는 시기에 일체의 사를 없애고 오직 공으로만 살아가라는 것,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 조선의 세자들은 불행했고, 우울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숫자가 끝내 왕좌에 앉아보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할 때는 그의 공적인 맥락과 사적인 맥락을 모두 살펴야 한다. 즉 정치학적인 접근법과 심리학적인 접근법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에 치우칠 때, 우리는 역사를 편협하게 이해하게 된다. 가령 왜 양녕대군이 쫓겨났는지, 왜 사도세자가 죽어야 했는지를 풀이할 때 지나치게 권력의 맥락에서만 해석해서도, 심리적 접근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이 책은 미흡하나마 두 가지 시각을 모두 사용하여, ‘불행했던 세자들의 역사를 온전히 살피려’ 한 노력의 결과다. _책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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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왕조를 통틀어 27명의 세자가 있었다. 절대권력의 2인자, 다음 대의 최고권력자이지만, 그들 중 절반 가까운 12명이 왕이 되지 못한 채 쓸쓸한 최후를 마쳐야 했다. 살해되거나 폐위된 경우가 다섯, 병사한 경우가 여섯, 왕조가 멸망해버린 경우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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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통틀어 27명의 세자가 있었다. 절대권력의 2인자, 다음 대의 최고권력자이지만, 그들 중 절반 가까운 12명이 왕이 되지 못한 채 쓸쓸한 최후를 마쳐야 했다. 살해되거나 폐위된 경우가 다섯, 병사한 경우가 여섯, 왕조가 멸망해버린 경우가 하나다. 의안대군, 양녕대군, 소현세자, 사도세자, 영친왕…. 혹은 질병에, 혹은 권력다툼에, 혹은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희생된 이 불행했던 남자들의 삶과 죽음을 최초로 조명한다!

세자, 다음 대의 왕! 일견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것 같은 세자들이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조선의 세자들은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복잡한 예절 교육으로 날을 보내며 만인의 모범이자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살도록 강요받았다. 세자의 일상은 책임과 의무로 꽉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각종 오락이나 취미생활은 철저히 배제된, 마치 수도승이나 고시생 같은 갑갑하고 피로한 삶이었다.

세자는 하루 3번의 유교 경전 공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한편, 부왕을 보좌하는 역할로 조회에 배석하고 각종 예식과 연회에 참석해 의식을 이끌어야 했으며 경우에 따라 대리청정을 맡아 정무를 돌보기도 했다. 또한 세자의 학문 성취는 왕과 대소신료들의 주요한 관심대상이어서 공부가 조금이라도 미진하다 싶으면 신하들과 유생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이를 시정하시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활쏘기, 말타기 등 무예에 관심을 보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왕의 아들’이기 전에 ‘권력의 2인자’여야 했던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자가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이면서 권력의 2인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종종 필연적인 비극을 불러왔다. 인조는 세자를 노골적으로 경계했고, 태종과 영조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세자에게 양위하겠다는 거짓 선언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만큼 세자의 존재는 현 왕에게 정치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왕이 늙고 병에 걸려 신하들이 ‘떠오르는 태양’인 세자 쪽으로 잰걸음을 칠 때, 또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 왕의 권위가 흔들릴 때는 더욱 그랬다.

조선의 세자들은 대체로 불행하고 우울했다. 정치와 권력은 친 혈육 간에도 비정하기만 하고, 책임은 과중했으며 즐거움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도 조선의 세자들은 언젠가는 옥좌에 앉아 만인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이상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그날이 오리라, 그렇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절반은 끝내 왕좌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들은 왜, 왕이 되지 못했을까?

조선왕조 최초의 세자는 살해당했다!
궁궐 댓돌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쓰러진 17세 소년. 그렇게 조선 최초의 세자 의안대군 이방석은 이복형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적장자도 아니고 공로도 없는 어린아이를 세자로 삼는 순간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강력한 재상권이 발휘되는 성리학 국가를 꿈꿨던 정도전과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었던 태조의 바람은 결국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으로 끝났다. 이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서 왕권이 승리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권력도 정치도 몰랐던 소년세자 이방석은 개국 초의 혼란기를 지나던 역사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또한 일찌감치 후계자를 선정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성군으로 길러내기 위해 마련된 ‘세자제도’ 역시, 이미 그 출발부터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총명한 동생에게 왕좌를 양보하기 위해 미친 척 했다?
역사에는 그 참모습보다 전설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양녕대군 역시 그렇다. 양녕대군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질을 가진 동생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미친 척하며 일탈행동을 일삼아 폐세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후일 세종이라는 걸출한 왕이 된 충녕대군과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였던 세종 시대와 맞물려, 양녕대군의 일화는 조선왕조 최고의 미담으로 그려진다. 정말로 그랬을까? 500년 전의 진실이야 알 수 없지만, 실록에는 충녕대군을 험담하는 양녕의 모습도, 양녕의 비행을 소문내는 충녕의 장인 심온의 모습도 보인다.

양녕대군의 좌절은 더욱 큰 시대적 흐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는 태조와 태종을 빼닮아 호탕하고 진취적인 기질의 왕자였다. 그러나 시대는 폭력과 부조리로 점철된 개국 초의 혼란기를 마감하고 평화와 소통의 정치를 펼칠 수성군주를 원하고 있었다. 역사와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 양녕대군은 호방한 북방민족적 가치관과 함께 좌절했던 것이다.

비정한 아버지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조선왕조 27명의 세자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삶은 산 사람은 누구일까? 8년간의 볼모살이,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왔지만 냉혹한 아버지의 경계와 의심 속에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한 소현세자가 아닐까? 그의 비극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심양에서 볼모살이를 했던 사실,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 함께 볼모살이를 했으면서도 소현세자처럼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었던 봉림대군(효종)이 주로 동정과 연민을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소현세자의 처지는 몇 배나 어려웠다. 청나라의 무리한 요구를 겨우겨우 줄여놓아도 조선에서는 ‘세자가 심양에서 하는 일이 무어냐’고 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인조는 유달리 비정하고 경계가 심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소현세자가 아버지 인조의 손에 독살됐다,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죽었다는 말까지 있을까? 이런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소현세자의 사후 아내와 세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영조는 왜 친아들을 죽였는가? 사도세자는 정말로 뒤주에서 죽었을까?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및 여러 사료를 조목조목 분석하는 한편, 영조와 사도세자의 내면 심리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죽음, ‘뒤주사건’을 새롭게 해독한다. 저자는 영조가 실제로 세자를 죽이려 하지는 않았고, 뒤주에 가둔 것도 잠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세자는 동궁의 골방에 유폐되었다가 심리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실록에는 뒤주가 등장하지 않는데다 이처럼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치고는 급박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뒤주를 언급하는 유일한 사료인 한중록을 쓴 혜경궁 홍씨는 당시 친정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정치적 고려 없이는 한 발짝 떼기도 조심스러운 세자의 자리가 주는 압박감과 그것을 버티지 못하는 기질 때문에 벌어졌다. 그는 유난히 오래 산 임금을 모셨고, 유난히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학문에 정진하고 부왕의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유독 심했다. 거기다 영조는 자주 양위 선언을 정치적 카드로 활용했는데, 세자는 석고대죄 등으로 들러리를 서야만 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현대의학에서 볼 때 ‘심리적 공황상태’로 여겨지는 이상행동을 일삼기에 이른다. 세자 스스로 장인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가슴을 짓누르는 우울을 토로하고 있다. “저는 원래 남에게 말 못할 울화 증세가 있는데다, …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사도세자가 절망과 우울 속에서 저지른 비행은 차라리 자해에 가까운 단말마였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최초의 세자가 그랬듯 조선 최후의 세자도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비록 왕의 칭호는 얻었으나, 오늘날 아무도 그를 조선 제28대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1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에 보내져 일본 황족과 결혼해야 했고, 나라가 무너지자 이름뿐인 이왕가李王家의 왕이자 일본군 중장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그. 그래도 그는 일본의 집 안에 작은 종묘를 꾸며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혼자서 한국말 연습을 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광복이 되고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다. 그러나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존재를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고, 귀국의 가망은 점점 멀어져갔다. 1963년 영친왕이 겨우 귀국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반신불수에 실어증에 걸린 상태였다. 5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조선의 마지막 세자는 7년간 병원에서 ‘고국생활’을 보내다 조용히 숨을 거뒀다. 조선 왕조의 세자이면서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그의 모호한 정체성이야말로 이 남자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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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왕이 못 된 세자들 | ky**623 | 2011.08.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최초의 세자 이방석부터 마지막 영친왕 이은까지 불행했던 왕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이다. 두 어깨에 실린 권력의 무게만큼 ...
    최초의 세자 이방석부터 마지막 영친왕 이은까지 불행했던 왕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이다. 두 어깨에 실린
    권력의 무게만큼 불행하게 살았던 왕자들은 권력의 2인자로 빛 보다는 어둠이 짙었던 시기를 보내다가 왕이 되
    지 못하면 목숨까지 보전할 수 없는 운명들이었다.
     
    살해당한 최초의 세자 - 의안대군 이방석은 이복형제에게 살당했다! 17세 소년의 죽음으로 끝난 골육상쟁! 일찌
                                    감치 후계자를 선정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성군을 길러내려 마련된 '세자제도'는 이미
                                    출발부터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대에 버림 받다 - 양녕대군은 태조와 태종을 빼닮아 호탕하고 진취적인 기질의 왕자였다. 그러나 시대는 폭력
                              과 부조리로 점철된 개국 초의 혼란기를 마감하고 평화와 소통의 정치를 펼실 수성군주를 원
                              하고 있었다. 역사와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속에 양녕대군은 호방한 북방민족적 가치관
                              과 함께 좌절해야 했다!
     
    권력보다 더 비정한 혈육 - 조선왕조 27명의 세자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삶은 산 사람은 누구일까? 8년간의 볼모
                                        살이,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왔지만 냉혹한 아버지의 경계와 의심 속에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한 소현세자! 비록 독살설은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자신의 사후 아내와
                                        세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조선의 세자는 우울했다. - '왕의 아들'이기 전에 '권력의 2인자'로서 정치적 고려 없이는 한 발짝 떼기는 조심스
                                        러운 세자의 자리!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사도세자가 절망과 우울 속에서 저지른 비행
                                        은 차라리 자해에 가까운 단발마였다. 결국 그는 뒤주와 골방에 갇혀 더욱 절대적인 고
                                        독 속에 숨을 거뒀다.
     
    두 갈래로 찢겨진 정체성 - 최초의 세자가 그랬듯 조선 최후의 세자도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영친왕! 비록 왕의 칭
                                        호는 얻었으나, 오늘날 아무도 그를 조선 제28대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의
                                        세자이면서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그의 모호한 정체성이야말로 이 남자가 겪어야 했
                                        던 비극의 결정체였다.
     
    위의 세자들 뿐만 아니라 왕의 되기 위해 수 많은 권력가들이 1인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혹은 만들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아무리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5~8세쯤에 세자의 자리에 오르
    게되고 세자가 아닌 10세 전후에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수 많은 정치 세력에게 희생되는 비극적인 왕자도 있었다.
  • 조선 왕조는 정확히 27명의 군주가 그 명맥을 이어온 세계사 유래 없는 단일 장수 왕조이다. 이 비결에 대해서 후대의 평가는 ...
    조선 왕조는 정확히 27명의 군주가 그 명맥을 이어온 세계사 유래 없는 단일 장수 왕조이다. 이 비결에 대해서 후대의 평가는 다양하다. 절대왕권국가가 아니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논거 그러니까 왕과 사대부가 적절하게 권력을 양분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는 설, 또한 타왕조 국가에 비해 철저한 세자교육이 있었고 그로 양성된 군주에 의한 치세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첫번째 논거에는 수긍이 가지만 두번째 세자제도에 관해서는 의구심이 많이 간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정확히 왕의 숫자만큼 왕의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세자 역시 27명 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이들 세자중 자연사할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보위에 올랐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이들이 보위에 오르지 못하였다. 이중 15명만이 최고의 권좌에 등극하였을 뿐 나머지 12명이라는 많은 이들이 보위에 등극하지 못했다. 보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병사가 그 원인이었지만 그중에 반정으로 폐세자된(연산군 아들과 광해군 아들) 경우와 독살의혹이(소현세자와 효명세자) 있는 경우 그리고 의문의 죽음(사도세자)을 당해서 보위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있다.  


    <왕이 못 된 세자들>은 바로 보위에 오르지 못한 12명의 세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보위를 잇지 못했던 것인가? 조선시대의 세자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 차기의 지존이라는 뜻에서 國本이라고 지칭했고, 세자의 교육을 위해서 별도의 독립기관인 세자시강원의 주도하에 철저하게 제왕수업을 받아야 했다. 왕비나 후궁의 임신에서 부터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까지 조선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씽크탱크에 의해서 차근차근 제왕의 자질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성리학에 근간을 둔 조선사회의 왕도정치 이념의 실현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과정이었고 세자인 이상 이러한 절차는 필수요건이었다. 그만큼 세자는 나라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자의 지위는 과연 부왕의 다음 자리에 해당할 정도였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가는 점이 있다. 세자라는 제도가 결국 제왕수업을 얼마큼 제대로 습득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흔들릴수 있는 가변적인 위치였던 것이다. 때론 부왕의 정적으로 때론 신하들의 들러리로 이용될 소지가 많았던 것이다. 어찌보면 세자의 자리는 권력이라는 최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태풍의 눈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들이 보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조선이라는 제도적 모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왕도정치실현을 위한 철저하게 성리학으로 무장하지 못하는 대권후보는 자연도태되었던 것이다. 비록 이러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보위에 올랐다 해도 생활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자를 거치지 않거나 그러한 기간이 짧았던 군주들의 치세가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마도 너무 일찍 권력의 진실을 알아버린 탓에 신경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니였을까 싶다.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역사는 그 시초부터가 불행하다. 조선 최초의 세자(이방석)부터가 권력파워에서 밀려나 비명횡사 하면서 조선은 세자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예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불길한 징조는 조선왕조 내내 지속된다. 보위에 오르지 못한 세자들의 공통점은 마지막 영친왕양녕대군을 제외하고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혹은 자연적인 병사이든 타살의 의혹이든 제명을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최대의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이 뒤받침하는 세자양성과정에서 그 낙오자의 비율이 이처럼 높았다는 것은 바로 세자의 지위가 후대의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그리 튼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이 자체로서 조선왕실은 대단히 불행한 왕실이었다는 뜻도 된다. 조선은 내내 세자흔들기를 하였다. 이방석의 죽임, 앙녕의 중도하차, 계유정난을 통해서 보위에 올랐으나 정작 자신의 아들(의경세자)은 단명을 하게 되고, 터무니없는 이유로 반정에 성공하였으나 아들(소현세자)을 죽음으로 몰고, 선왕의 독살설에 연루되어 보위에 오르고도 부족하여 아들(사도세자)의 죽음을 방치하는 등 끊임없는 잡음과 소란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왔던 것이 조선왕실의 역사이다. 불교의 인과응보처럼 그러한 정당성을 결여한 보위계승은 끝내 자손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 결말이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종반정 이후 왕실의 손이 갑작스럽게 귀해지는 부분(이점은 이후 조선의 폐망까지 이어진다)이나 부자간의 권력대립이라는 극한상태를 연출하는 것을 볼 때 한낮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그나마 의경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의 경우는 후에 왕으로 추존되는 것으로 그 울분을 달랬을까... 


    이들 세자중에서 주목받는 이가 바로 소현세자효명세자일 것이다. 특히 이들은 타살이라는 의혹이 후대에 이르기 까지 의견이 분분하여 그 안타까움을 배가 시킨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그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이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조선의 중흥을 이끌수 있는 어찌보면 정말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현세자나 효명세자의 역사적기록에 의해 미루어 보았을때 성군의 자질이 충분하였다는 점이 더욱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보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이미 물이 새기 시작한 배의 침몰을 멈출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침몰하는 배만 바라볼 수 는 없는 것 아닌가.  


    이처럼 조선은 세자들의 수난시대였다. 물론 세자가 아닌 왕자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하지만 세자 또한 그 자리가 그리 녹녹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서 병사한 몇몇의 세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세자들이 그 한을 가슴에 안고 이승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폐세자 되고 나서 죽게되는 이황이질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조선의 세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었다. 차기대권후보라는 공인의 신분으로 철저히 감내하기엔 그 댓가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이다. 이점은 세자(세손포함)라는 교육을 제대로 완수하고 보위에 올라 제대로 된 정사를 이끌어간 군주가 정조가 유일할 정도라고 보면 세자들은 꽃이 만개하기 전에 시들었던 것 아닐까... 결국 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몬것은 조선특유의 세자양성제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본디 세자라 함은 다음 세대의 왕이 될 사람으로 왕의 자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던 사람이다. 세자는 왕자 중에 맏이 혹은 유능한 이가 책봉되곤 했다. 이들은 차세대 왕으로 대접받아 왕교육을 받으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럼에도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사나이들이 많았다. 조선의 4번째 왕인 세종을 놓고 보면 세자가 다른 사람으로 갈려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세자가 아니었다가 왕이 된 대부분의 조선의 왕들은 왕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기에 원래 세자가 왕통을 이어 다음 세대 왕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로 보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통인 세자가 왕이 되어 다음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나갔더라면 조선은 과연 어떻게 전개됐을까? 만약 세자 교체가 반복적으로 거듭되지 않았더라면 왕조국가였던 조선에서 명분이 뚜렷한 적통의 왕이 신하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

    본디 세자라 함은 다음 세대의 왕이 될 사람으로 왕의 자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던 사람이다. 세자는 왕자 중에 맏이 혹은 유능한 이가 책봉되곤 했다. 이들은 차세대 왕으로 대접받아 왕교육을 받으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럼에도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사나이들이 많았다. 조선의 4번째 왕인 세종을 놓고 보면 세자가 다른 사람으로 갈려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세자가 아니었다가 왕이 된 대부분의 조선의 왕들은 왕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기에 원래 세자가 왕통을 이어 다음 세대 왕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로 보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통인 세자가 왕이 되어 다음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나갔더라면 조선은 과연 어떻게 전개됐을까? 만약 세자 교체가 반복적으로 거듭되지 않았더라면 왕조국가였던 조선에서 명분이 뚜렷한 적통의 왕이 신하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왕이 못 된 비운의 세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당연히 왕이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왕이 못 된 세자들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왕이 되지 못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어 알리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불운의 사나이들인 이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만약 이들이 순리대로 왕의 자릴 이어나갔더라면 어떠한 세상이 펼쳐졌을까 상상한다. 조선의 운세는 세종 때 정점을 찍고 세자도 아닌 상태에서 명분 없이 자리에 올랐던 무능한 왕들로 인해 하향곡선을 탔으니 저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책은 총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양녕의 ‘깊은 뜻’이었다는 양보 전설”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실록을 근거로 양녕대군이 ‘자신보다 더 나은 셋째 충녕(세종)’을 위해 세자 자리를 일부러 양보했다는 것은 전설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에는 분명 이 전설을 실제인양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저자의 이 주장을 듣기 전까진 그것이 진실이고 훈훈한 역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양녕대군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 태종의 견제와 2인자로서의 방탕함 때문에 세자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훗날 조카인 수양대군(세조)의 쿠데타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스러진 야망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다는 저자의 해석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나 같아도 무골(武骨)의 피를 이어 받아 몸이 근질거리는데 가둬놓고 공부만 시켰다면 양녕대군처럼 몰래 술 마시러 다니고 여색을 밝히고 사냥하러 다녔을 것이다. 난 태종이 자신의 무골의 피를 고려해 자식인 양녕을 좀 적당히 풀어주면서 자신의 뒤를 잇게 했어야지 옳았다고 본다. 다행히 세종이 나라를 잘 이끌고 한글까지 창제했지만 양녕이라고 못했을 소냐! 오히려 세자 교육을 잘 받은 양녕이 더 나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무골이면서 진취적이었고 호방한 성격이었던 양녕대군이 왕이 되었더라면 북진을 해서 고구려 땅 수복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소현세자’를 언급한 부분이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이다. 인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이 된 덕분에 세자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때부터 소현세자의 비극은 시작된다. 아버지 왕인 인조는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인물이었다. 광해군이 잘 구축한 외교관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려 병자호란정묘호란을 초래한 것은 물론이고 선진국을 경험해 조선을 보다 나은 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자식인 소현세자를 비정하게 독살한 것이 바로 인조였기 때문이다. 명분도 없이 반정을 일으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막은 것도 모자라 천륜을 어기며 자식을 죽여 조선이 다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마저 없애버렸으니 인조는 정말이지 조선의 왕 중에서 최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현세자는 이런 한심하고 무능력한 아버지였던 인조를 위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완충외교를 펼치고 선진국의 문물을 배워 귀국했는데 고생한 아들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냉대와 독살이었다. 이 얼마나 한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세자가 아니었다면 타국에서 인질로 잡혀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익히고 배워온 선진기술을 조선에서 써먹었다면 조선은 분명 강대국으로 도약했을 것이다. 부모 잘못 만나 괜히 세자가 되어 고생만 하다가 죽은 소현세자가 너무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그의 재능과 경험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효명세자’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순조의 맏아들이었던 효명세자를 재능이나 성품에 있어서 성군의 자질이 다분해서 별 탈 없이 즉위했더라면 조선왕조를 다시 한 번 중흥시킬 수 있었던 인물로 평가한다. 효명세자는 음악과 무용에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던 것은 물론이고 세종처럼 여론조사를 실시하려 했고 정조처럼 상언과 격쟁제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만약 순조롭게 효명세자가 왕권을 이어받았더라면 하향곡선을 탔던 조선은 다시 상승곡선을 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의 운이 다해서 그랬는지 유능했던 효명세자는 너무나 의욕이 넘쳐 몸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건강을 잃고 왕이 되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세자교육 시스템이 문(文)뿐만 아니라 무(武)도 같이 닦는 구조였다면 효명세자는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종의 문치주의에 대한 욕심이 결국 후손에게 이렇게 악영향을 미치고 만 것이다. 효명세자가 왕에 등극해 조선을 다스렸다면 일제치하 36년이 안 올 수도 있었는데 그런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오욕의 역사를 겪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되짚어볼 가치는 있다. 2인자였던 세자들이 순조롭게 왕위를 이어나갔더라면 조선은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고구려 땅을 되찾아 만주 벌판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능했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간 세자들에게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 후세에 다시 유능한 인재로 태어나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이 강대국이 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역사는 전설이나 미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야 한다.”

  • 이 책은 세리 포럼 직장인 글쓰기 연구회(비즈니스 라이팅/기획서/보고서/제안서/자기소개서/콘텐츠/)북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

    이 책은 세리 포럼 직장인 글쓰기 연구회(비즈니스 라이팅/기획서/보고서/제안서/자기소개서/콘텐츠/)북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김영사의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 9권중 하나인 모양이다.

     

    김영사에서 나온 책은 일단 신뢰가 가지만 읽어보니, 작가가 무척 노력을 기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고증이 철저히 되어 있고 1인자에 관점을 둔 왕조 사관에서 비껴서서 왕세자 그것도 '왕이 되지 못한 세자'라는 역사의 그늘에 있던 소재를 통해 조선시대 전반의 흐름과 시대적 상황을 알기 쉽게 적어 놓았다.

    책속의 화보 편집도 아주 잘되어 있어서 휴가철 에 대비하여 읽어보고 유적 탐방을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요즘 사극에서 시청률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역사를 왜곡하는 듯한 장면을 보다가 이런 노력이 깃든 책을 만나니 속이 트이는 기분이다.

    많은 사료와 참고 문헌 찾아보기, 그리고 유적 사진 등 보는이를 배려한 흔적이 역역한 작품이다.

     

  • 왕이 못된 세자들 | bb**a46 | 2009.06.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조선왕조의 세자는 모두 27명이었다고 한다. 그중 왕이 된 세자는 단 15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12명이 세자를 거...

    조선왕조의 세자는 모두 27명이었다고 한다.

    그중 왕이 된 세자는 단 15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12명이 세자를 거치지 않고 왕이되었다고했다.

    그렇다면 12명의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짐작하듯이, 권력의 정점에는 두개가 존재하지 못한다.

    12명의 세자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왕이 되지못한 12명의 세자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왕이 되지 못했을까?
    현대사회에서는 평등사회라서 대표자를 국민스스로 투표를 통해 뽑는다.

    그것은 한 개인이 누군가를 선택할 때 대표자를 이력을 보고 판단한다.

    즉, 대표자의 자질과 인품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어떤가?

    발달도 많았던 반면, 수많은 역사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민족이 뒷걸음치던 시절이 아닌가?

    고대부터 왕이 될때는 자질과 인품보다는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왕이 될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왕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왕은 세습을 통해 왕에 올랐다.

    그러므로, 왕의 될 자질과 인품이 없더라도 왕의 피를 이었다면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있지만,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내생각에는, 왕의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신하들의 권력싸움에 문제가 있었다.

    즉 권력의 편협한 세자들은 신하들의 도움에 의해 왕에 올랐고, 권력에 타협하지 못하거나 주변을 읽을줄 몰랐던 세자들은 왕이 되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했다.

    권력의 힘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충녕대군은 우리가 흔히아는 세종대왕이다.

    양녕대군은 세종의 형으로 일찍부터 태조의 미움을 받았왔기 때문에 왕의 자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면, 태조의 심중을 먼저 헤아렸기 때문에 일부러 한량노릇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덮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도 한번쯤은 조선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바꾸어야겠다고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지향했던 조선의 미래는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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