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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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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쪽 | A5
ISBN-10 : 8972323551
ISBN-13 : 9788972323556
오사마 빈 라덴 중고
저자 요제프 보단스키 | 역자 최인자 | 출판사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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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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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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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에서 반미성전의 영웅이라 불리는 오사마 빈 라덴. 빈 라덴의 전기가 국내 최초로 독점출간됐다. 세계적인 군사, 테러분석가로 미의회의 대 테러리즘 특별팀 책임자인 요제프 보단스키가 25년에 걸쳐 이슬람의 지하드 전사, 테러리스트, 망명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취재하며 풀어쓴 책이다. 빈 라덴은 누구인가부터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 빈 라덴의 음모 등을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저자소개

목차

1.빈 라덴.그는 누구인가? ...27
2.시련을 넘어 영웅으로 부활하다 ...67
3.테러조직의 두목이 된 빈 라덴 ...87
4.이슬람혁명의 선봉에 서다 ...113
5.세계를 뒤흔든 '3인위원회' ...141
6.미국에 선전포고한 사나이 ...173
7.늘어나는 협력자들 ...193
8.미대사관에 쏟아지는 폭탄세례 ...235
9.미국이 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311
10.마약밀매.매춘.그리고 돈세탁 ...357
11.빈 라덴의 음모 ...401
12.빈 라덴의 다음 타깃은? ...457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거부의 아들로 출생, 외톨이로 자라난 성장기 빈 라덴은 193cm(외신에는 2m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의 큰 키에 72.6kg의 몸무게, 과거 이란의 호메이니옹을 연상시키는 긴 수염에 하얀 터번을 두른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

[출판사서평 더 보기]

거부의 아들로 출생, 외톨이로 자라난 성장기
빈 라덴은 193cm(외신에는 2m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의 큰 키에 72.6kg의 몸무게, 과거 이란의 호메이니옹을 연상시키는 긴 수염에 하얀 터번을 두른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500만달러(약 60억원)의 현상금을 걸 만큼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계의 최고 거물이다.

라덴이 태어난 곳은 사우디의 리야드. 그는 1957년 사우디에서 가장 큰 건설업(총 자산 50억달러)을 하는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지금도 이스라엘과 영토싸움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키가 2m가 넘는 장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도 사실은 사우디가 아닌 예멘인이다. 예멘에서 사우디로 이주, 건설업을 하면서 거부가 되었던 것이다.

거부의 아들로 태어난 빈 라덴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부인이 10명이 넘었으며, 배다른 형제만도 52명이나 되었기 때문. 특히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자신은 늘 '외톨이'라고 생각했던 점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동생(이복동생이 아닌)을 만들기도 전에 자가용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10살이었다.

4명의 부인과 결혼, 15명의 자녀 얻어
빈 라덴이 정확히 몇 살에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외신마다 다르다. 분명한 것은 20대 초반에 결혼했다는 것. 그는 첫번째 부인으로 시리아인을 맞았다. 그후 2명의 사우디 여인과 또 결혼했다. 외신에 의하면 네번째 부인은 현재 19살이라고 한다.

45살인 라덴과는 무려 25살 차이가 난다. 그는 나이 어린 네번째 부인을 늘 대동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4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들은 모두 15명. 일부 언론에서는 25명이라는 설도 있으나 외신들을 종합해보면 15명이 근사치에 가깝다.

거부의 아들이 어떻게 국제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나
1979년 12월말,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22살의 라덴은 불도저와 덤프트럭을 몰고 지하 벙커를 파는가 하면, 산 속에 터널을 뚫어 적극적으로 아프간을 도왔다. 당시 소련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최신식 무기를 지원받기까지 한 라덴은 아프간으로부터 소련군을 몰아내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

라덴의 재산
현재까지 알려진 라덴의 재산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포함하여 약 3억달러(3,600억원) 정도. 그는 주식투자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가 재테크의 일환으로 금융업이 몰려 있는 세계무역센터를 테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강도 높은 테러훈련, 영어회화는 기본
빈 라덴의 테러훈련은 매우 혹독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특수부대보다도 더 지독할 만큼 육해공에 걸쳐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는 것. 특히 영어회화 훈련은 기본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정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난 뒤에는 각자 고향, 혹은 자국으로 돌아가 일반인으로서 평범하게 지내다가 이메일이나 팩스를 통해 테러 지시가 내려지면 행동에 옮긴다고 한다.

미국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말해주는 발언
1998년 라덴을 인터뷰한 미국의 ABC 기자에 의하면, “우리들은 군복을 입은 자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리들의 표적이다. 반드시 미합중국의 종말을 맞이하도록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때 자식들의 시체들을 모아서 되돌려 보내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로서의 강한 신념과 청렴한 생활태도
카불 주재 국제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야마모토씨는 말한다. “수단에 있을 때이다. 몸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날씨인데도 그는 단 한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또한 도피생활을 할 때는 쥐가 우글거리는 동굴 안에서 빵 몇 조각으로 지내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러면서도 기도와 운동을 단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가 거부이기 때문에 그 재력으로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는 자신의 재산 외에도 그를 지원하는 이슬람교도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

라덴의 카리스마
팔레스타인이 사는 이스라엘의 자치구역과 파키스탄에서는 신문에 그의 사진만 들어가도 불티나게 팔린다. 또한 그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나 포스터, 달력, 연설 테이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신생아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주는가 하면, '오사마약국' '오사마병원'이라고 이름 붙인 곳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이슬람교도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의 강한 카리스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는 신비감도 한몫 하고 있다.

아프간 북부 산악지대에 은신중
외신에 따르면 그는 현재 아프간 북부의 산악지대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핵폭탄이 터져도 끄떡없을 만큼 깊은 지하요새가 있으며, 6개월간 수천여명이 먹을 식량과 무기가 준비돼 있다고 한다. 이미 그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안전지대로 피신해 있으며, 당분간 잠수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본문 중에서
1장 빈 라덴, 그는 누구인가?
억만장자의 길 포기한 공학도 출신
이제 막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한 명민한 공학도. 컴퓨터 공학기술을 전공한 최고 명문대학 졸업생 오사마 빈 라덴은 4명의 아내와 1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거느리고 동부 아프간에 있는 한 작은 동굴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는 흐르는 물도 없고, 오직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막기 위한 원시적인 난방 설비만 갖추어져 있을 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항상 암살자들과 특공대들의 기습, 전투 비행단의 공습 등에 대비하기 위해 측근으로부터 삼엄한 경고를 받고 있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정해 주었던 길을 그대로 따랐다면, 현재 빈 라덴은 응당 사우디의 존경받는 건설업자이자 억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진해서 그 모든 풍요로운 삶을 버린 채 황량하고 거칠고 힘든 상황 아래에서 '지하드(성전)'를 수행하는 길로 뛰어들었다.

나이트클럽과 창녀촌 출입하던 대학시절
오사마 빈 라덴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높은 교육을 받았던 수많은 다른 고위층 가문의 자제들처럼 1970년대를 시작했다. 국제 도시인 베이루트에 살면서 사우디의 엄격한 이슬람식 생활방식을 깨뜨렸던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동안, 라덴은 종종 베이루트를 방문하면서 현란한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술집 등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는 한때 술꾼이고 바람둥이였으며 창녀촌에도 자주 출입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빈 라덴은 베이루트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방탕하게 즐기다 사는 사우디의 평범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1973년에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은 두 개의 성스러운 이슬람 사원을 보수하고 재건축하면서 영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점차 아들 오사마 빈 라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인생의 전환점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의 침공 이후에 아프간을 찾아간 첫번째 아랍인들 중의 하나였다. “나는 몹시 분노했으며, 당장 그곳으로 떠났다.” 빈 라덴은 한 아랍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소련은 무력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그리고 이슬람의 성스러운 전사들은 국제적인 지원을 간청하고 있었다. 20세기 초강대국에 의해 포위당했던 한 구식 사회에서 이슬람교도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우리 종교에서 이제부터 그곳은 지하드에 참여했던 자들에게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아프간에서 보낸 하루는 다른 나라의 평화로운 이슬람 사원에서 드리는 천일 기도와도 같았다.”

불도저를 몰고 아프간으로 - 사우디에서 중장비 조달해 군사시설 건설
아프간에 투입된 무자헤딘들은 소련과 아프간 민주주의 공화국 소속의 포병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빈 라덴은, 곧바로 사우디에서 중장비들을 조달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집안 소유의 불도저 몇 대를 황급히 아프간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동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무자헤딘들을 위해 도로와 각종 편의시설 등을 신속하게 건설했다. (중략) 소련군은 무장 헬기를 동원해서 빈 라덴의 불도저를 공격했다. 소련군은 여러 번이나 빈 라덴을 공격했다. 그러나 빈 라덴은 신변의 위협마저도 잊은 채, 뜨거운 화염 속에서 공사를 계속 진행시켰다.

사우디 왕실의 9천만달러 제안 거절 - 지하드에 더 많이 지원해달라
1980년대에 사우디 왕실은 두 개의 신성한 이슬람 사원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사업은 아버지인 무하마드 빈 라덴의 건설회사가 맡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파드국왕은 개인적으로 빈 라덴에게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사원의 확장 공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이 거래 하나만으로도 빈 라덴은 무려 9천만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파드국왕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빈 라덴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그 대신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하드에 더욱 많은 지원과 참여를 해달라고 열렬히 호소했다고 한다.

4장 이슬람 혁명의 선봉에 서다
투라비의 비호 아래 무장 이슬람 세력의 중심으로 급부상
1995년 초, 오사마 빈 라덴은 무장 이슬람 운동(Armed Islamist Movement)을 지휘하던 투라비(Turabi)의 최고 참모들 중 한 사람으로서 하르툼에서 활동했다. 빈 라덴은 투라비의 신임을 받던 사람들 중 하나로, 그의 충고와 의견은 의사결정에 반영되었다.

투라비의 핵심인물이 된 빈 라덴은 아랍권의 주요 미국 동맹국가인 이집트와 사우디에 맞서 전략적 전쟁의 준비작업에 참여했다. 이때가 바로 빈 라덴이 투라비의 비호 아래 이슬람 국제 테러리스트 운동에서 완전히 권력의 중심을 형성해나간 시기였다.

사우디 민중 회교도 운동의 지도자
빈 라덴은 사우디의 민중 회교도 운동의 지도자였다. 아프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을 갖고 있던 이슬람 전사들의 지도자인 그의 영웅적 행동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카리스마를 갖춘 달변가로서 그의 연설은 기록되고 녹음되어 사우디 전체의 이슬람 지하조직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 정당한 이슬람 정책 실현을 위해 그가 개인적으로 치른 대가는 상당했다.

수단에서의 망명생활 후, 빈 라덴은 사우디 회교도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수단과 걸프 국가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런던에서의 이슬람 운동의 지원체제를 상당 부분 조정하고 유지해나갔다. 빈 라덴은 진정한 박애심을 갖고 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노력은 고위 사우디 회교도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지도자로서 최전선에서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9장 미국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98년 미대사관 폭탄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간 공격
1998년 8월 7일 나이로비와 다레스-살람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에서 두 건의 차량 폭탄 사건이 발생했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은 빈 라덴이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아프간이 반미주의 성향 지하드의 본산이기는 하지만, 동아프리카에서의 폭탄 테러와 직접적으로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략) 8월 20일, 미 해군은 아프간의 코스트 지역에 있는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에 75발에서 80발에 이르는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영국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미사일은 마르카즈 칼리드 빈 와히드라는 지역에 13발, 마르카즈 아미르 부아비아에 10발, 그리고 자랄루딘 하카니에 있는 기지에 5발씩 떨어졌고, 나머지는 부근의 마을에 떨어졌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유산탄에 의한 가옥 파괴 등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우리의 캠프는 안전하다
코스트 지역의 원래 지도자였던 물라 자랄루딘 하카니가 미사일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는 미국의 주장을 비웃은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바라에 있는 기지는 두 차례에 걸친 붉은 군대(Red Army)의 공중 및 지상 공격에서 끄떡없었다. 이 기지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무작위로 쏘아대는 미국측 미사일 몇십 발 때문에 산 속에 있는 요새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카니의 주장에 따르면, 살만 파시 캠프는 “거의 피해가 없었으며” 아부 진달 혹은 아랍 캠프로 알려진 알-바드 캠프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칼리드 빈 왈리드의 아미를 무아위야 캠프는 “타격을 좀 받은” 정도였다. 그리고 캠프 주위의 동굴에 있는 무기고들은 “거의 모두 안전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빈 라덴이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공습 덕택이다. “빈 라덴은 아주 멀리 있는 인물이었지만, 바로 당신들(미국)이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이제 반서구 세력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라고 투라비는 말했다. “아랍과 무슬림의 젊은이들이 그를 본받으려 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앞으로 빈 라덴 같은 인물이 만 명쯤은 더 나올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10장 마약밀매, 매춘 그리고 돈세탁
산악지역 지하동굴에 은신하며 전세계 동향 파악
빈 라덴과 그의 심복들은 동부 아프간의 잘라라바드 근처의 산악지역에 있는 지하동굴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굴에는 방이 3개 있는데, 회의장소 및 지휘본부로 쓰였던 첫번째 방에는 몇 대의 컴퓨터(최소한 노트북 2대와 데스크탑 1대)와 팩스, 그리고 위성전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상황 보고나 뉴스 자료 등 전세계의 동향이 이 본부로 전해졌다. 이 본부에서 그가 싫어하는 서구의 통신 장비를 이용해 빈 라덴은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서유럽과 미국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접촉했다. 통신은 주로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동굴의 두번째 방은 자체 방어를 위한 무기고였다.

자동화기들로 가득 찬 그 방 덕택에 동굴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세번째 방은 빈 라덴 개인이 쓰는 방이었다. 거기에는 이슬람 고전과 불편해 보이는 침대가 3개 있었는데, 낮시간에는 통행을 위해 침대를 벽에 세워놓아야 했다.

지하동굴에서 해외 자산 관리 - 핵심지역 중심으로 자금관리 시스템 구축
빈 라덴은 동굴 본부에서 자신의 재산은 물론 이슬람주의 운동에 대한 지원금에 이르기까지 재정상태를 면밀히 검토했으며, 탈레반의 해외 자산도 관리했다. 오사마 빈 라덴 주식회사나 자와히리 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빈 라덴은 제휴, 유령회사 설립 등을 통해 전세계에 퍼져 있는 자신의 사업체들을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재산이든 이슬람주의 운동자금이든, 빈 라덴의 자금관리 시스템은 몇 개의 핵심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첫번째 지역이 암스테르담과 앙비르, 그리고 룩셈부르그를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인데, 페르시아 만의 국가들에서 들어오는 기부금과 기타 자금들은 이곳에서 세탁된다. 개인이나 아라비아 반도의 기업체가 제공하는 자금은 두 개의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오는데, 각각 쿠웨이트와 카타르의 기업인이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모은 자금을 지역의 은행이나 런던에 있는 구좌로 보내고, 그 돈들이 다시 트라이앵글 지역에 있는 일군의 구좌로 이동한 다음 최종적으로 룩셈부르그에 있는 회사들로 들어간다.

(중략) 두번째 지역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본부를 둔 극동지역이다. 극동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입된 돈은 이곳으로 흘러들어간다. 빈 라덴의 자금 활동은 처음에는 이슬람주의 단체가 있는 지역에서만 이루어졌지만, 이후 급속히 확대되었다. 하지만 중동 지역에 불황이 닥치자 그는 활동 범위를 줄이고, 자산을 룩셈부르그로 이동시켰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연대 - 이슬람주의자들의 활동 지역에 자금 조달
이슬람주의 자금의 집결지는 구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독일, 그리고 동유럽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얼핏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 지역들이 한데 묶인 것은 빈 라덴과 러시아 마피아, 특히 카타르와 사이프러스에서 활동하는 마피아와의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1990년 중반, 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무기들을 카타르로 이동시키면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이후에 보다 포괄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러시아 마피아는 카타르나 아랍 에미레이트에서의 마약, 매춘, 그리고 밀주 판매 등에 관여하고 있었지만, 사업 파트너로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들은 현재 빈 라덴의 자금을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퍼져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의 활동 지역에 유입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아프간의 마약 시장이 확대되면서 빈 라덴과 러시아 마피아의 관계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중략) 최근에 전자금융 및 국제 거래가 증가하면서 금융거래가 노출되는 것을 염려한 빈 라덴은 새로운 재정 시스템을 구축중인 것을 알려졌다. 유럽의 은행 시스템에 기반한 이 새로운 시스템도 역시 아프리카와 남미에 걸쳐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돈을 세탁하고 있다. 빈 라덴의 돈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기업체들의 네트워크를 거치는 사이에 꼬리를 감추고 만다.

돈세탁 해주며 연간 1백만달러 커미션 챙겨
마약 유통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늘어나자, 러시아 마피아와 빈 라덴은 '문어발식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돈세탁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조성된 자금은 탈레반이나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 활동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데, 빈 라덴 자신은 거기서 얻은 이윤을 러시아와 아프간이 아닌 지역에서 쓰고 있다.

(중략) 해마다 쿠웨이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기부하는 금액이 2억달러, 걸프 만의 기타 국가에서 기부하는 금액이 4억달러나 되고, 탈레반이 마약 유통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도 8천만달러에 이른다. 빈 라덴은 이 돈들을 세탁해 주면서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의 커미션을 챙기는데, 그 금액만 해도 연간 1백만달러 정도이다.

빈 라덴의 측근, 미군 그린 베레에 복무
동아프리카 폭격 사태 이후 미국과 서유럽에서 일었던 오사마 빈 라덴 관련자 검거 및 기소 선풍으로 빈 라덴 네트워크의 전모가 드러났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빈 라덴의 전 비서(레바논 출신의 와디 엘 하게)가 텍사스 앨링턴에서 타이어 가게를 하고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활동가(이집트 출신의 알리 모하메드)는 미군 엘리트 그린 베레에 복무중이었다.

마약밀매, 매춘, 돈세탁을 통해 자금 확보
새로운 이슬람 네트워크의 지원 및 운영 체계는 조직범죄와 결탁되어 있다.(중략) 새로운 이슬람 근본주의 네트워크는 지역별로 마약 판매, 돈세탁, 이란에서 위조한 품질 좋은 1백달러짜리 지폐 판매 등으로 활동자금을 확보하며, 테러 작전이 수행될 때마다 인력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자금 확보의 수단이다.

매춘 조직을 활용하는 것은 최근의 추세로, 주로 보스니아-회교도 여성이나 북아프리카 여성을 이용한다. 현대적이고 분방한 여성들을 이용함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물론, 평범한 회교도 남성도 접근하기 어려운 상류 사회에 침투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관할하는 중심지가 벨기에의 앙비르(빈 라덴의 비밀 재정을 운용하는 중심지)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화학.방사능 무기를 사용하는 대형 테러 준비
1998년 초여름부터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칸다하 근처의 완벽한 비밀 요새에서 빈 라덴의 지휘와 ISI의 지원 아래 생화학 무기와 방사능 무기를 사용한 대형 테러 공격을 적극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한편으로, 1998년 5월 초에 파키스탄을 통해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입수한 특수 생화학 물질 제조 연구소에서 무기들을 준비중에 있다.

최초의 군수공장 건설 계획이 이미 마감되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유독 물질 샘플을 확보하고 있다. 에볼라와 살모넬라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러시아에서 입수되었다. 보톨리누스 중독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대량생산 설비와 함께 체첸 공화국에서 확보되었다. 치명적인 탄저병 샘플(세계적으로 무기로 즐겨 쓰이는 유독성 생물체)가 북한에서 비교적 싼값에 들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입수한 방사능 물질과 살충제가 이미 아프간에 도착했다. 방사능 물질은 방사능 무기의 성분으로 사용된다. 알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가장 심혈을 기울려 준비하는 무기는 “상수도를 오염시키는 유독 물질, 인명 살상용 독가스, 곡식 박멸용 독버섯”이다.

(중략)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은 앞으로의 테러 공격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것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1998년 여름에 이미 이슬람 전선의 고위 실전 장교들은 화학무기와 특수 비상 계획을 사용할 가능성을 감지했다.

구소련에서 휴대용 핵폭탄 입수 - 체첸 마피아 조직과 연계
빈 라덴은 구소련에서 휴대용 핵폭탄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3백만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스트카에 주둔했던 팔레스타인의 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자기가 체첸 마피아의 도움으로 그런 휴대용 폭탄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체첸에서는 그런 핵무기를 몇 벌 입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빈 라덴은 러시아와 싸우는 체첸에 '아프간' 병력과 자금을 지원해준 이후로 체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빈 라덴은 지금도 체첸에 테러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체첸 마피아를 통한 탈레반의 마약 거래 일부도 아직 담당하고 있다.

(중략) 빈 라덴의 무한정한 자금과 거의 통제불능 상태인 구소련의 경제 위기를 등에 업고 체첸 마피아는 휴대용 핵폭탄 거래를 주선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전 러시아 안보 책임자 알렉산드르 이바로비치 레베드 장군은 일찍이 1997년에 러시아 군수공장에서 휴대용 핵폭탄 몇 개가 사라진 적이 있음을 시인했다.

체첸에 헤로인 2톤, 현금 3천만달러 제공 - 휴대용 핵폭탄 입수 대가
빈 라덴이 확보한 무기의 정확한 양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가 결국 휴대용 핵폭탄 입수에 성공했다는 것에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빈 라덴의 밀사들은 아프간에서 체첸에 3천만달러를 현금 지불했고, 7천만달러어치의 아프간 헤로인 2톤을 제공했다. 또한, 서유럽과 미국의 거리에 뿌린 달러와 마약은 적어도 이것의 10배는 될 것이다.

적들의 항공기를 격추하라 - 1998년, 대변인의 입을 통해 전해진 빈 라덴의 메시지
1998년 8월 말에 “오사마 빈 라덴의 입과 눈과 귀”를 자처하는 런던 소재 이슬람 조직 중 하나인 알 무자헤룬의 지도자 오마르 바크리가 분명한 대답을 주었다. 바크리에 따르면, 반유태 반십자 지하드의 이슬람 국제 전선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본거지에 “인정사정없는 맹렬한” 테러 공격을 감행할 것을 다시 한번 맹세했다.

(중략) 바크리에 따르면, 빈 라덴은 한 팩스에서 “전쟁 시작”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바크리는 빈 라덴이 네 가지 특수 목적에 관한 지시 사항을 하달했다고 말했다. 서방에 맞선 이슬람 지하드에서 “적들의 항공기를 격추하라. 적들의 안전한 항로를 차단하라. 적들의 대사관을 점거하라. 적들의 회사와 은행을 강제 폐쇄하라.”

따라서 바크리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비행기가 서방에 맞서는 이슬람 성전에서 “적법한 공격 목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탑승객은 적법한 공격 목표이다. 그러나 지금은 항공기를 납치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탑승객이 적법한 공격 목표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이론적인 문제이다.”

빈 라덴 전기에 쏟아지는 찬사
미국에 대항하는 오사마 빈 라덴. 매혹적인 그의 전쟁 이야기 속에서 이슬람 과격주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와 테러조직이 여지없이 폭로된다. 강력 추천!
―진 J. 커크 패트릭, 조지타운대학 교수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빈 라덴 최고 연구가로 정평이 나 있는 요제프 보단스키의 치밀한 연구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빈 라덴의 '특별한 과거'와, 무엇이 그를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막강한 적이 되도록 이끌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들. 훌륭한 작품이다!
―프레드 반즈,『Weekly Standard』편집장

우리 삶의 방식과 전세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에 대해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과 그가 이끄는 세력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친 1급 연구서!
―헬 베어링 젠슨,『Washington Times』논설위원

내가 수년 동안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다. 매력적인 이야기와 세밀한 조사의 환상적인 결합! 난무하는 국제테러를 우려하고 21세기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는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캐롤린 콕스, 영국 상원의원


저자 소개
지은이 요제프 보단스키(Yossef Bodansky)
세계적인 군사.테러분석가로 미의회의 대테러리즘 특별팀의 책임자다. 국제전략연구협회(ISSA)의 연구원이자 국방외교문제그룹 편집위원이다. 미국무성과 국방성의 콘설턴트직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포럼과 회의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국제테러리즘과 전지구적 위기에 대해 7권의 책을 저술했다.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 The Man Who Declared War on America)은 저자가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약 25년에 걸쳐 이슬람의 지하드 전사들, 테러리스트, 군사령관, 망명자, 탈영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취재해 쓴 역작이다. 그의 저서로는『테러목표가 된 미국과 서구』『미국의 테러음모 비사』『이슬람세계의 반유대주의』『곧 재발할 발칸전쟁』『한국의 위기』등 주로 국제테러리즘과 전지국적 위기에 관한 책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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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오사마 빈 라덴 | wa**er79 | 2013.12.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오사마의 운명은 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살아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제다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사우디에서 가...
     오사마의 운명은 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살아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제다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사우디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 중의 하나인 제다의 압둘 아지즈 대학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능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오사마에게 회사의 경영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 회사는 한창 사우디의 왕실과 빈 라덴 가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어마어마한 이익이 보장되는 계약들을 체결하곤 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높은 교육을 받았던 수많은 다른 고위층 가문의 자제들처럼 1970년대를 시작했다. 국제도시인 베이루트에 살면서 사우디의 엄격한 이슬람식 생활방식을 깨뜨렸던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닌 동안, 라덴은 종종 베이루트를 방문하면서 현란한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술집 등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는 한때 술꾼에다 바람둥이였으며 창녀촌에도 자주 출입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빈 라덴은 인생을 낭비하고 방탕하게 즐기며 사는 사우디의 평범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켤코 아니었다. 1973년에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은 2개의 성스러운 이슬람 사원을 보수하고 재건축하면서 영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점차 아들 오사마 빈 라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33p)
     
     사우디는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국가들 중에서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의 폭력이 분출되었던 첫번째 나라였다. 1979년 11월 29일, 주헤이만 알 우테비는 1천 3백에서 1천 5백여명의 잘 조직된 무리들을 이끌고 메카에 있는 대사원을 포위했다. 백색수비대(국가수비대)의 장교 출신이었던 그는 자기 자신을 '마흐디(메시아)'라고 선언했다. 사우디인들과 더불어 이 무리의 핵심요원들 중에는 이집트와 쿠웨이트, 수단. 이라크 북예멘(YAF) 그리고 남예멘(PDRY) 출신의 잘 훈련된 이슬람 전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39p)
     
     메카에서 벌어진 이 반란은 지금까지 사우디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전통적인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주헤이만이 불러일으킨 분노의 목소리들은 사우디 전역에 메아리쳤으며, 비밀집회를 통해 삽시간에 전파되었다. 지식인들 사회에서 주헤이만의 주장은 잠시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이슬람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언제나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많은 책들을 읽었던 빈 라덴은 주헤이만이 제시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빈 라덴은 여전히 파드 국왕과 사우디 왕가의 충성르러운 신하였다. 비록 1979년 11월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오직 이슬람 정부만이 서서히 다가오는 서구화의 악으로부터 사우디와 나머지 이슬람 세계를 수호할 수 있다는 빈 라덴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지기는 했지만.(41p)
  • 오사마 빈라덴, 그의 이름을 달고 출판된 책인 만큼 손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9.11 테러 ...
    오사마 빈라덴, 그의 이름을 달고 출판된 책인 만큼 손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9.11 테러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수많은 미국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남아 얼마전에는 미국을 옹호한 발언을 한 몇몇 국가들을 주목하고 있노라고 경고 메시지까지 보낸 것을 보면서 확실히 범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것은 보다 안정적이고 편한 사우디에서의 생활을 거부하고 스스로 지하드 운동으로 뛰어든, 운동의 시작에서부터 이미 드러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중동 지역의 모든 것은 그다지 진실되게 평가받아오지 못했다고 난 생각한다. 세계사 시간을 통해 수많은 역사를 접하지만 그 안에서 중동의 역사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없다. 유럽과 미국이 우리가 배우는 세계의 전부이다. 아랍, 그들은 철저히 외면당해왔고 그것으로도 모잘라 박해받아왔다. 이슬람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국의 질서를 거절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기에 난 작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료를 수집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오사마 빈라덴 개인에 대한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란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계의 반미 투쟁의 역사이고, 아랍 역사의 산 증거이다. 제목은 그저 지난 9.11 사태 이후 증가된 오사마 빈라덴의 영향력을 고려한 상업성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오사마 빈라덴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이슬람에 대해 이해 아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게 어떨까 한다. 이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또한 문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그의 글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수집한 자료들의 가치만큼이나 명쾌하진 못한 듯 하다. 오히려 수많은 이슬람 정부와 테러의 연관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슬람 자체의 호전성에만 지나치게 연연해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한 호전성이 빈라덴이라는 영웅을 만나 좀더 거대한 테러로 다듬어지고 있다는 식의 논리 속에서 작가는 계속적으로 이슬람의 테러가 미국 때문이라는 언급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 아닌 이슬람 측의 주장이다. 작가는 그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하지 못한 체 그저 같은 이야기를 계속 나열하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역사로 받아들이고 평가를 할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미국인’이라는 국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이미 추천의 글에서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미국인이라면 미국의 안전 수호를 위해 자신들의 적을 알아야만 한다는 식의 논리 속에서 이미 이슬람은 연구 혹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배척과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듯 하다. 미국은 국가 권력을 빌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왔다. 수많은 곳에서 그들로 인해 수많은 합법적인 정권이 붕괴되었고 문화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했고, 테러를 위한 또 다른 자신들의 테러는 정당하다고 이야기한다. 보복은 결코 평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로지 이슬람의 호전성을 이야기한다. 빈라덴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테러는 분명 세계 정세의 불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테러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아무 잘못없이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테러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테러를 근절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또 다른 테러를 불러오는데 익숙한 미국의 진실된 바람은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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