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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계획이야기. 1(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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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쪽 | 규격外
ISBN-10 : 8946066512
ISBN-13 : 9788946066519
서울 도시계획이야기. 1(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중고
저자 손정목 | 출판사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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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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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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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 서울 도시계획 반세기에 대한 증언 서울시의 공간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66년부터 1980년까지의 15년간이었는데, 지은이는 격변하는 시기의 한가운데-1970년부터 1977년까지-서울시에서 도시계획국장 등으로 근무하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수많은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이 난무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 배경, 즉 도시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입안되고, 수정되고, 시행되는 과정과 뒷이야기를 엮었다. 서울시 최초의 도시계획 수립에서 최근 수서사건의 전말까지 신문, 국회속기록, 용역보고서, 재판소판결문 등의 자세한 자료 인용을 통한 고증과 관련인물에 대한 얘기, 비사까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불쾌해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자는 오직 귀중한 역사이기 때문에 충실하게 후세에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써내려갔다. 7년간 23꼭지, 200자 원고지 7,200여 매의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하면서 작업 막바지에 위암 수술도 한 차례 받았고, 교통사고도 있었다. 23꼭지 중 19꼭지는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국토≫에 1996년 5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연재했던 내용이다. 군살을 뺀다고 했는데도 방대한 분량이다. 서울시나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부처에서처럼,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은 역사의 충실한 전달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손정목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중학(구제),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법과 전문부(구제)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에 편입하자마자 6?25 전쟁이 발발하여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을 탈출, 49일 만에 경주에 도착하였다. 1951년 제2회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1957년 예천군에 최연소 군수로 취임하였다. 3?15부정선거 관련자로 3년간 실직하고 1963년에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하였다. 1966년 잡지 ≪도시문제≫ 창간에 관여, 1988년까지 23년간 편집위원을 맡았다.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특별시에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7년 서울시립대학(당시 서울산업대학) 부교수로 와서 교수?학부장?대학원장 등을 거쳐 1994년 정년퇴임하였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1977),
?한국개항기 도시사회경제사연구?(1982),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1982),
?한국 현대도시의 발자취?(1988),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1990),
?한국지방제도?자치사연구?(상?하)(1992),
?일제강점기 도시화과정연구?(1996),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연구?(1996)

* 8월 29일 KBS <인물현대사> ‘김현옥 전 서울시장’편 출연 예정
* ≪역사비평≫2002년 12월호 ‘나의 학문 나의 인생’ 대담 중에서

도시계획 이야기나 현대도시사를 정리하면서 절치부심하실 것 같은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도시계획국장이나 도시계획 행정가로서 도시계획을 평가하려면 아무래도 자기 일이기 때문에 후하게 평가하겠지만, 학자로서 평가하라면 객관적이고 냉정해져서 평가에 인색할 거거든요. 사람이 그렇게 되기 마련인데, 선생님께서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갖고 계시니, 만약 회고록을 쓰신다면 평가대상이 당신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데서 오는 갈등이나 고민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웃음)
-어느 저명한 교수가 미국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서 공식석상에서 우리 선배들은 무엇을 했느냐, 왜 도시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놨느냐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아주 혼이 났습니다. 작년에 일본 도시계획학회 50년사에서 글을 써보내라고 해서 내가 이렇게 썼어요. “토지가 있고 돈이 있으면 인구가 10배가 늘든 20배가 늘든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항상 일본의 1/10, 서울시 재정규모는 도쿄의 1/30, 서울시의 면적도 산을 빼고 나면 도쿄의 1/5밖에 안된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어떻게 도시게획을 했겠느냐”고 썼습니다. 대담, 기발, 강압, 부조리 이것이 서울시 도시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김현옥, 양택식, 구자춘 이 세 사람이 서울시정을 맡았던 12년 8개월 동안에 도로, 상수도, 지하철 등 서울시의 하부구조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이때 했던 일은 미국사람이나 서양사람, 일본사람들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것들이에요. 그렇게 안 하면 천만 명을 수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했겠느냐는 거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시 행정담당자로서의 입장이시고요.
-물론 문제가 있습니다. 1970, 80, 90년대 이 30년 동안 서울과 서울 주변의 아파트들이 다 지어졌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이 수명을 다하는 때도 같이 오겠지요. 예를 들어 2030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참 큰 문제입니다.

지금 청계천 복원 얘기가 나오면서 그때 왜 묻었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30년 동안 지은 아파트 양에 비하면 청계천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요. 지을 것은 또 짓는다치고, 지은 것들 파괴한 쓰레기를 다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아무런 해답이 없어요.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는 그런 아파트들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요. 답변할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웃으면서 “내가 죽고 난 뒤니까 내가 그런 데까지 머리 썩힐 필요가 없지”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국민소득 300불 시절에도 했는데 3만 불 시대에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는 낙관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잘했던가? 내가 다 책임질 문제는 아니지만, 참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원고를 쓰셨는데… 원고량에서도 그렇지만, 원고료 액수로도 대한민국 1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 장에 5,000원씩 잡아서 20만 장이면 10억인데, 그 이자로 아들 둘 미국유학 보냈고, 내가 지금 가진 전재산이 10억 가까이 될 거예요. 그러면 맞죠?(웃음)

목차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한국전쟁과 서울의 피해
1. 7월 16일 용산폭격과 김용주 공사
2. 세기의 대도박-인천상륙작전
3. 1.4후퇴와 서울의 파괴
4. 만신창이가 된 서울

서울시의 전쟁피해 복구계획
1.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계획가, 장훈
2. 서울시의 전쟁피해복구
3. 시가지 고층화의 꿈-1953년의 건축행정요강

워커힐 건설-군사정권 4대 의혹사건의 하나
1. 베일에 싸인 워커힐 건설과정
2. 호화로운 워커힐의 적자운영
3. 워커힐이 미친 파급효과

박흥식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전말
1. 기업가 박흥식과 불광­수색 신도시계획안
2.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3. 계획 좌절의 과정

새서울 백지계획, 도시기본계획과 8.15전시
1. 새 행정수도 건설계획
2.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3. 계획의 발표와 평가
4. 8.15전시

아 ! 세운상가여-재개발사업이라는 이름의 도시파괴
1. 방공법에 의한 소개도로
2.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이전의 사정
3. 종묘 앞­대한극장 간 재개발계획
4. 설계에서 건축까지
5. 짧았던 영광, 퍼부어진 비난
6. 아! 세운상가여-앞으로의 운명

한강종합개발-만원 서울을 해결하는 첫 단계
1. 1950~60년대의 서울과 한강
2. 한강종합개발계획
3. 한강개발과 강변도로
4. 한강제방공사로 조성된 택지지구

책 속으로

김현옥 시장은 기발한 쇼맨이었고 탁월한 연출가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슬로건이 시청 정문에 게시되었을 때는 그 말이 지닌 의외성 함축성에 온 시민이 놀라워했다. “8월 15일까지 교통난 31%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에 접했을 때 많은 시민은 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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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시장은 기발한 쇼맨이었고 탁월한 연출가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슬로건이 시청 정문에 게시되었을 때는 그 말이 지닌 의외성 함축성에 온 시민이 놀라워했다. “8월 15일까지 교통난 31%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에 접했을 때 많은 시민은 왜 30도 35도 아닌, 31%여야 하느냐에 오히려 감탄할 정도였다.
주요공사의 기공식 준공식을 3 1절이니 5 16, 8 15 또는 개천절을 택한 것도 그가 최초였다. ‘몇 월 며칠까지 완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도 그였다. 세종로지하도도 무악재길도 삼일로도 그렇게 해서 개통되고 확장되었다. 그리고 가장 사람의 통행이 많은 시간에 이들 공사장 한가운데 헬멧을 쓰고 지휘봉을 든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한강개발을 할 때에는 시(詩)를 써서 각 언론기관에 돌리고 스스로도 그 시에 도취되는 그런 인물이었다.
1권 234쪽에서

45세 김현옥과 35세 김수근의 ‘일을 통한 최초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단계에서 완전히 의기투합했다. ……김수근은 그 후의 시장들과도 매우 친숙한 관계를 맺었다. 구자춘 시장(1974~78년)과도 가까워 이른바 삼핵도시개발을 구상한 김형만은 김수근이 구자춘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구자춘 시장 재임시에 김수근은 잠실대운동장(훗날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착수했고 그 작업은 그후 정상천 박영수 김성배 염보현 시장으로 이어지는 1986년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김성배 시장은 김수근을 대단히 좋아해서 김 시장이 목동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김수근을 불러 상의했고 그 결과 김수근과 그가 추천한 인물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목동지구가 실현되었다.
1권 268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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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도쿄의 도시계획 120년의 역사를 ‘바람기가 전혀 없는 날의 남해바다’로 비유한다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태풍을 맞은 부산 앞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격동의 서울 50년을 도시계획의 차원에서 재조명하여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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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도시계획 120년의 역사를 ‘바람기가 전혀 없는 날의 남해바다’로 비유한다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태풍을 맞은 부산 앞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격동의 서울 50년을 도시계획의 차원에서 재조명하여 오늘날의 도시 구조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증 유발과 함께 해답을 제시해준다. 그 내용을 여기에 요약해본다.

한국전쟁과 서울의 피해
서울에서만 9만 5천 명 이상 사망?학살?납치?행방불명되었다. 보통의 사망이 2만 9,628명, 학살이 8,800명, 납치가 2만 738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일반주택의 피해 연건평 182만 358평, 서울시청 청사는 외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내부는 거의 파괴 소실되었고, 당시 9개 구청 중 3개 구청은 본관이 완전 파괴, 나머지는 모두 반소파, 277개 동사무소 중 62개는 완전히 불타 없어졌고 나머지 215개는 모두 반소파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인적 피해와 함께 중요한 문화재의 피해를 눈앞에 두고 있던 서울은 주일대표부 김용주 공사의 노력으로 그나마 문화재의 폭격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워커힐 건설-군사정권 4대 의혹사건의 하나
1961년 멜로이 유엔군 사령관과 김종필 정보부장의 대화를 발단으로 미군장병 3만 명의 휴가 유치를 위해 건설된 워커힐. 사단법인 워커힐이 60억 환으로 출발하여 1962년 1월 5일 기공식이 거행되었으나 토목공사는 그보다 앞서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4대 의혹사건 국회 감사로 1961년 9월부터 1962년 2월까지 각 군 공병감 휘하 각종 장비를 동원하고 연인원 2만 4,078명을 무상노역케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가 워커힐 건설 비용과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모두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19만 평의 부지 중 사유지는 얼마나 되었으며 그 매수대금은 얼마였던가, 국유지?시유지는 자동적으로 워커힐 소유로 전환되었는가. 둘째 건축위원 및 기타 자문위원?고문 등에 대한 사례는 어떻게 얼마나 지급되었던가. 셋째 삼환?대림?동아 등의 건설회사와는 어떤 조건으로 시공계약이 이루어졌던가. 군장병의 노임은 무상이었겠지만 이들 시공업체가 어느 부분까지 자체 노동력을 동원했던가. 넷째 개관준비 요원 다수를 일본에 파견, 사전교육시켰는데 그 비용도 6억 4천만 원 중에 포함되었던가.

박흥식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전말
화신백화점, 그 후신 신신백화점 등 유통업으로 이 나라 최고의 부를 축적한 박흥식이 신도시계획을 처음 구상한 때는 화신백화점에 화재가 나던 1935년 봄이었다. 일제하에서 불광-수색 도시계획안을 수립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면서, 육군 소장 이주일이 “수도 서울 인구증가에 대비한 주택건설계획을 구상해보라”는 과제를 하나 주었는데 그것이 후일 ?남서울 도시계획사업 인가신청서?가 되었다.

새서울 백지계획, 도시기본계획과 8?15전시
불도저 김현옥 시장이 불쑥 “인구 150만 명을 수용하는 새 행정수도를 만들어내겠다”는 말을 내뱉은 것은 그가 시장으로 부임한 지 약 50일이 지난 1966년 5월 27일이었다. 김 시장은 8월 15일을 기해서 도시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마련해야 할 것이 새서울 백지계획과 도시기본계획이었다. ‘4천만 평 정도의 넓이와 상주인구 100만 내지 150만 명 규모, 그리고 도시의 외곽을 무궁화형으로 해달라’는 것이 새서울 백지계획의 작업 조건이었다. 이 그림의 작가는 1992년인가 93년에 밝혀졌는데 바로 저자와 허물없이 지내던 박병주였다. 그는 이 그림이 당시 엄청난 언론의 비판을 받아 부끄러움이 앞서 비밀에 부쳤다고 회술했다. 또한 도시기본계획안에 대해서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고무풍선”이니 “기술?과학성은 전혀 생각도 않고 세워졌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으나 저자는 그것이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둘째 이 계획에서 처음으로 도심부재개발이니 고도지구?미관지구니 하는 개념이 도입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는 점, 셋째는 불완전하나마 20년 장기계획이라는 것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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