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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392쪽 | 규격外
ISBN-10 : 8960179264
ISBN-13 : 9788960179264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중고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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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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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 받았고, 좋은마음 감사드립니다. 5점 만점에 5점 sch*** 2018.09.17
1 만족합니다. 책 잘 보겠습니다. 승자의 뇌에 붙인 메모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시고 사업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핵산 아이더 큐 ! 화이팅 !!!!!!! 5점 만점에 5점 os120*** 2016.07.15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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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실존적인 대답! 인류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예수, 붓다는 사회·정치·종교 영역의 기성 질서를 위협하는 선구자이자 개혁가였다. 그들 모두는 안락하고 안정된 삶 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칙과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았고, 그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3인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이 실천한 덕목과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한다.

세 성현의 유년기부터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 각각의 개성,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후대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역사가의 관점에서 꼼꼼히 조망한다. 저자는 불멸,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키워드들이 그들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짚어내 어설픈 통합을 지양한다. 나아가, 세 스승의 가르침 중 어떤 것을 따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물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재정비하는 데 단단한 토대가 되어준다.

저자소개

저자 :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Frederic Lenoir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세계적인 종교사학자, 철학자.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도미니크회 수사인 마리 도미니크 필립과 세계적인 철학자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신적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인도와 이스라엘에 체류하고 프랑스의 수행 암자와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파야르 출판사에서 총서 책임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직접 저자로 나서 피에르 신부, 움베르토 에코 등과 나눈 철학과 영성에 관한 다수의 대담집과 심층 연구서를 펴냈고, 생태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국경 없는 환경’이라는 단체를 창립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1994년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학문적 스승인 에드가 모랭의 뒤를 이어 철학, 사회학, 역사학을 한데 엮은 학제간 연구에서 종교 문제를 다뤘다. 공영방송 프랑스5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이비 종파, 그 거짓말과 이상」을 공동 연출하고 여러 편의 TV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집필했으며, 공동 집필한 희곡 「신의 선의」는 2009년에 초연한 뒤 5개국에서 각색되어 상연되고 있다. 현재 저자는 철학자이자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프랑스 최고의 종교 간행물 《종교의 세계》 편집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두 편의 역사소설 『천사의 약속』과 『루나의 신탁』은 20개국에서 1백만 부가 판매되는 등 ‘프레데릭 르누아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오직 사랑』, 『네오르네상스가 온다』, 『불교와 서양의 만남』, 『이중설계』, 『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 철학자』,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 등이 있다.

역자 : 장석훈
역자 장석훈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불문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과정을 수료했다. 쓴 책으로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 이야기』, 『한국사 신문』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고통받는 몸의 역사』, 『하염없이 내리는 비』, 『러쉬』, 『상식 밖의 경제학』, 『스티브 워즈니악』 등 100여 권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이야기 | 존재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8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1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21
2 사회적 배경과 유년기 51
3 성 문제와 가족 71
4 소명의 발견 85
5 인격과 개성 101
6 안주하지 않는 삶 121
7 가르침의 기술 143
8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177
9 세 스승이 자신에게 내린 평가 211
10 후대의 평가 227

2부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11 그대는 영원불멸한 존재다 251
12 진리를 찾아서 277
13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존재다 303
14 올곧은 사람이 돼라 319
15 사랑할 줄 아는 사람 337

참고문헌 373
주 376
찾아보기 380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함정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여름휴가 동안 프랑스인들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책” -《르 피가로》 물신주의 시대, ‘인간’이 ...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함정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여름휴가 동안 프랑스인들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책”
-《르 피가로》

물신주의 시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단호한 길을 제시하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던 인류의 스승 3인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화를 재조명하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정의, 사랑, 자비 등의 메시지가 현재의 우리 삶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 주는 수작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이자 철학자, 종교사학자, 잡지 편집장,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박학한 지식과 영적 지혜를 한데 아우르며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여름휴가 동안에 대형 서점보다 바닷가 소매점에서 더욱 많이 팔린 책으로 보도되어, 바야흐로 여름이 사색하는 계절로 바뀌고 있음을 알린 신호탄이 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단순히 경제적이며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철학적이며 영적인 위기로 규정한다. ‘혼란스러운 위기의 시기에 인간이 나가야 할 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저자는 세 성현의 삶을 서로 교차하여 조망한다. 유년기부터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 각각의 개성,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후대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역사가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불멸,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키워드들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짚으며 어설픈 통합을 지양한다. 세 스승의 ‘윤리적 가르침’ 중 어느 것을 따르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자들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삶과 가르침은 보편적인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개별적 존재와 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개별적 존재들이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지혜롭게 어우러져 있다. 비록 그 메시지들이 다양한 종교적 기반에 뿌리내리고 있긴 하지만 포용력 없이 교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상식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으며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호소를 한다. (p.14)

"내면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사회, 정치, 종교 영역의 기성 질서를 위협하는 선구자이자 개혁가였다. 기원전 47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산파와 조각가 사이에서 태어난 소크라테스는 델피신탁을 받아 아테네의 많은 청년과 함께 진리의 길을 모색하다가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당했다. 기원전 560년경 인도 왕족 자제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어느 날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내면의 각성을 얻고 출가하여 35세 때 득도한 뒤 45년간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불법을 설파하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혹은 독살되었다.) 기원전 4년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는 서른 살에 세례를 받고 40일간 광야에서 고행하며 신의 부르심을 받아 12사도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다가 30년경 십자가형을 당했다.
그들은 모두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칙과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았고, 그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서 그들의 가르침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불멸의 개념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각으로 내면의 삶을 계발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지혜와 정의, 사랑을 중시하는 태도가 비롯된다. 참과 거짓,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진리 탐구가 그 삶의 중심을 이루며, 진리를 찾다 보면 자연스레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전통과 권위 그리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짓눌렸던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내면적 자유를 얻는다. 이런 자유는 바로 진리를 통해 자신을 알고 더 깊은 차원에서의 노예 상태(소크라테스-무지, 예수-원죄, 붓다-갈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됨으로써 얻어진다.
더 나아가 저자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는 “내면의 자유를 얻는 것보다는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옳고 그름의 문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문제 등 가르침의 정수들이 나온다. 소크라테스의 정의, 예수의 사랑, 붓다의 자비라는 개념도 이 실천의 문제에서 나온 덕목이다. 예수의 사랑은 나눔과 친절이 전제되는 신적인 특성을 가진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욕망의 에로스와 구분되고, 붓다의 자비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전체 생명계를 깊이 경외한다는 점에서 예수의 자비와 구분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 스승이 가진 지혜의 눈으로 보면 참된 것과 바른 것은 같은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앎이 의미를 지닌다. 그런 연유로 붓다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입증한 바가 중요하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도 여전히 그들 에게 믿음이 간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행적으로 그 가르침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p.371)

“삶의 성찰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다.”
여름휴가에 만나는 삶의 스승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3인의 스승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이 실천한 덕목들을 전하며 삶의 의미를 묻는 이 책은 역사를 대한 엄정한 자세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쓰였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 인문교양서의 전범(典範)이다. 특히 한 종파나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려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영적 휴머니즘(spiritual humanism)’이라는 개념을 싹 틔웠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발간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여름휴가를 앞둔 6월에 출간된 이 책은 휴가가 단지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서 사색하는 시기로 변해 가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등장했다. 각종 볼거리와 TV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도 한 달 동안 대형 쇼핑몰과 서점 등을 통해 2만 권이 팔려 나갔으며, 바닷가 신문판매대와 같은 소매점에서 더욱 잘 나가 여름휴가 기간에만 모두 5만 5천 권 가까이 팔려 나갔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으며, 아무리 흥미로운 멀티미디어가 넘쳐나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여전히 책에서 그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세상의 가치와 정신적 축을 만든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이 그들의 삶을 통하여 전하는 메시지는 단호하고 간결하다. 인간의 삶은 고귀하며, 저마다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삶에 심오한 통찰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함께 평화를 누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적이며 영적인 메시지는 ‘왜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에두르지 않는 대답이기도 하다. 삶의 스승 3인이 전하는 가장 뜨겁고 실존적인 메시지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현대인들의 삶을 재정비하는 데 단단한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일화

1. 그들은 왜 직접 글을 쓰지 않았을까?


세 스승이 문맹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서는 젊은이들이 문자를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주로 교역과 통치에 한정하여 사용되었다. 따라서 문자가 아니라 말로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선 별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은 삶의 지혜였다. 삶의 지혜를 전하는 방식은 산교육의 방식이었다. 올곧은 행위 그리고 현장 속에 살아 있는 언어와 어조로 직접 보여 주는 방식이었지, 문자로 써서 전달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p.15~16)

2. 그들의 실존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자료는 왜 남아 있지 않을까?

그들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주나 통치자만이 초상을 주화에 새기고 석판에 기록을 남기거나 거대한 무덤을 남기는 식으로 후대에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당대의 역사는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권력자가 아니었으며,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 또 그들은 세상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세속에서의 지위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거의 없고 정치적 영향력도 보잘것없었기에 제자들은 스승들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위대함에 감화를 받았어도 그들을 위한 기념물 하나 세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p.26)

3.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크리톤이여,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닭 한 마리를 갚으라는 말은 역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역설이라 할 수 있을까?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이다. 당시 전통에 따르면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목숨을 잃는 판국에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이돈』에서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의 다른 모든 대화를 놓고 보았을 때, 이것 또한 소크라테스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역설일 것이라는 가정이 분명 설득력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니체는 이 마지막 말에 사로잡혔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삶의 고단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로 보았기에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죽음과 영혼 불멸에 관하여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그 제물이 육신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가정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신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고 한 셈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죽음이란 “영혼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단순히 옮겨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배심원들을 향해 소크라테스는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하면서도 기쁨에 겨운 듯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 죽는 것이, 그러니까 인생의 근심 걱정으로부터 벗어는 것이 제겐 더할 나위 없는 일인 듯합니다.”(p.200~202)

4. 간음한 여인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 예수의 일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일화는 정의보다 사랑이 먼저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 앞뜰에 도착한 예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때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율법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권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 앞에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데려와 세워 놓고선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죄를 범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예수가 그 여자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독실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썼다. 무엇을 썼는지는 전해진 바 없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무 글자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가 몸을 굽힌 것으로 보건대 예수는 상대와 적의의 시선을 주고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몸을 곧추세우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러고 나서 예수는 시선을 피해 다시 몸을 굽히고 땅에 무언가를 써 나갔다. 간음한 여인을 고발한 이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복음에선 “나이 많은 순으로” 떠났다고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그들을 조롱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곤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자와 단둘이 남게 되자, 비로소 예수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고발자들을 경멸하듯 보면서 그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들이 스스로 양심을 돌아볼 수 있게 더는 나서지 않고 한발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p.339~340)

5. 붓다는 정말 독살되었을까?

기존 전통 세력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파바라는 마을에서 보석상을 하는 ‘춘다’가 망고나무숲으로 붓다 일행을 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오늘날 그 조리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춘다는 ‘수카라맛다바’(부드러운 돼지고기)라는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게 했다. 붓다는 그 요리를 먹으면서도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지 못하게 했다. 붓다는 요리를 다 먹지 않았고 범천도 먹을 수 없을 테니 남은 것을 땅에 묻으라고 했다. 밤중에 붓다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피를 토했다. 그럼에도 다시 길을 떠났고 룸비니 남쪽에 위치한 쿠시나가르 근방에 이르렀을 무렵 더는 길을 가지 못하고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몸을 뉘었다.
고의로 붓다에게 독이 든 음식을 준 것일까? 그 무렵 승가는 엄격한 고행을 강조하는 부류와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었다. 붓다는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팔리어 경전을 보면 독살설을 언급하면서 이내 그 가설을 부정한다. 다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건이라고만 한다. 왜냐하면 붓다는 그 보석 상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몇몇 비구들을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제공한 최후의 공양 덕분에 붓다가 반열반에 들어 “천상 세계에 지고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무 아래, 오른쪽으로 돌아누운 붓다는 마치 사자가 엎드린 형상이었다. 그런 자세로 붓다는 가까운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울음을 곧잘 보이는 아난다를 붓다는 나무마려 처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난다여, 그대는 참 오랫동안 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도 사랑과 다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아낌없이 이 여래를 옆에서 도왔다.” 불교 설화에 의하면, 동트기 전 붓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 천지가 흔들리고 포효했다고 한다. (p.180~182)

▶ 추천의 말

매력적이고 교훈적이다. 《르 피가로》

르누아르가 지속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그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 깊이 영향받은 영적인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는 철학적이고도 영적인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그의 목표는,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각 인물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그들이 어떻게 오늘날과 관련되는지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이콜로지(Psychologies)》

우리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 개성, 생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이유로 그들을 함께 묶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련이 있는가? 이 책에서는 저자는 보편적이고도 핵심적인 세 인물의 초상을 그려 낸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

정말 좋은 읽을거리!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성공적이고 풍부한 내용과 의미를 담은 책. 사색을 위한 양식을 제공한다. 《르 파리지앵(Le Parisien)》

휴가 기간에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꼭 봐야 할 책. 《펠레헨(P?l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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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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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mr**c | 2016.01.0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표지에 적힌 글귀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보여주기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

    표지에 적힌 글귀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보여주기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 프레드릭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의 대표적 지성이자 종교학자, 철학자이다. 또한 그는 정신적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비롯, 수도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의 종교가 아닌 종교학자로서 여러 종교와 철학자들을 탐구한 그가 세상에 내놓은 책 제목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은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2부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이렇게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대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플라톤도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아테네 법에 위배되었다하여 안타깝게도 사형을 당한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기초로 '영혼'에 대해 생각하면서 삶의 옳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이 곧 지식의 목적이라 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향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플라톤에게 계승되었고 지금도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쳐가야 할 철학적 스승이다.

     

    예수는 갈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신이었고, 33살에 죽었는데 30년간 삶을 살고 나머지 3년은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며 다녔다.

     

    붓다는 본래의 성은 원래 고타마이고,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이 이름이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이 세 성인이 과연 살아있었던 실존 인물이었는지 질문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우선 역사적으로 그들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명 또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어쩌면 더 어려운 문제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들 세 성인의 사상과 삶, 그리고 언어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나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막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예수를 근거로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예수 사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는지 의문을 던지고 예수 뿐 아니라 세명의 성인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말한다. 또한 이 세 명의 성인들은 권력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들의 발자취가 역사에 남아 그들의 삶과 가르침이 후대에 전해진 것이므로 그들의 실존을 받아들일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실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나는 깊이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화라고 말할 때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 단군신화, 여러나라의 신화적인 사건들을 계기로 그 나라의 건국을 말한다. 그러나 신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말도 안되게 부풀리어 신격화 시킨 부분이 여지없이 발견된다. 그렇다고 하여 그 신화가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그런 신화들조차도 믿는 이들도 있건만 삶의 교훈과 도덕을 제시하고 사랑을 전파했던, 그리고 그 증거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격과 증언, 문헌들로 인해 증명 되어가고 있는 세 명의 성인들의 존재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이들이 성인답게 인격(성품) 또한 훌륭했는가,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는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과 절제하는 성격 모두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는 종종 반업법을 구사했으며, 차분하고 당당했다.

     

    붓다는 도를 깨달은 자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공명정대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반면 예수는 달랐다. 위의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소크라테스, 붓다와 달리 자신을 신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분명 그는 하나님이 보낸 성자 하나님이며,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누누히 밝히고 설교했다. 그러나 예수 또한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는 어린시절을 보냈고, 30세까지 부모를 도와 목수일을 하였다. 품성은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서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병을 고쳐주는 사역을 하였다.

     

    후대의 평가를 통해 각각 세 성인들만의 세계관이 정립되어 발전해왔다. 공통된 점은 세 명의 성인 모두 죽음은 끝이 아닌 과정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이런 믿음에서 출발하여 내면의 삶을 추구하며 지혜와 정의, 사랑을 얻는 것이라 말한다. 정신적 체험에 따라서는 다양한 양상을 띤다. 그러나 윤회와 영혼, 그리고 영생은 서로가 보완해주는 역할을 지칭해주는 것일 뿐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유로워지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세 명의 성인들의 공통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가 말했다.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교리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 명의 현자들의 삶을 잘 좇아왔다면 분명 진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인이든 아니면 무신론자이든 모두 이 책을 일독 하기를 권한다. 책을 다 읽고 덮기 전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좁은 길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게 될 것이다.

  •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wh**hagy01 | 2014.12.1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지혜와 지식을 생각해봅니다. 인생의 전반기는 지식이 지혜의 우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후반으로 갈 수록 지혜가...

    지혜와 지식을 생각해봅니다.

    인생의 전반기는 지식이 지혜의 우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후반으로 갈 수록 지혜가 우위를 점하죠.

    즉, 지식은 이론, 이성, 머리 등으로 생각되고

    지혜는 감성, 경험, 가슴 등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젊으나 늙으나 지혜와 지식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우리의 삶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인간적 삶을 통해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답은 사실 개인들의 몫이죠. 어쨌든 저자는 뻔하게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뻔하게'라는 표현을 썼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제대로 사랑을 실천하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 우리가 아는 '사랑'은 지식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머리로 그냥 아는 것이죠. 가슴으로 이해되는 '사랑'은

    지금 우리가 알고 보고 읽는 사랑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랑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아직 지식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는 것 같네요. 


    위의 세 분은 사랑에 대한 지혜를 실천하고 전파했던

    인류의 스승들입니다. 이 분들의 삶을, 사상을 우리는 현재

    배우고 익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분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삶의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변화해라, 실천해라" 이렇게 말이죠. 그렇게 우리의 몸으로 가슴으로

    배우고 익혔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변화하고 실천하기에 저는 너무나 소심하고 게으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해봐야 겠지요.

    버릇 될 때까지.

  •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삶과 가르침은 보편적인...

    소크라테스예수 그리고 붓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삶과 가르침은 보편적인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개별적 존재와 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개별적 존재들이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지혜롭게 어우러져 있다. 비록 그 메시지들이 다양한 종교적 기반에 뿌리내리고 있긴 하지만 포용력 없이 교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상식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으며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호소를 한다. - '들어가는 이야기' 중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산업혁명을 거쳐 1960년대 이후 지구촌은 소비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문명 속에 살고 있다.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성장이란 '더 많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물건의 구매를 유혹하는 온갖 광고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더 많이 갖는 것이 성장이자 곧 발전이다'는 교리敎理를 우리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거처하면서 흔하디 흔한 문명 이기利器를 외면한 채 살더라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 텔레비전, 컴퓨터, DVD, 심지어 휴대폰이 없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앞서 말한 교리, 즉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체제에선 이런 질문은 던지지 않을 것이다. 

     

    자원의 유한성有限性 때문에 분배 문제가 대두되면 이런 이데올로기적 삶은 궁극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낳게 된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지구를 황폐화시키므로 오히려 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의미, 돈의 가치, 사회적 평등, 그리고 개인의 행복 등을 위한 진정한 조건이 무엇인지 말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인가?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면 필요 조건이 무엇인가?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어릴 적부터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세계적인 종교사학자, 철학자.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도미니크회 수사인 마리 도미니크 필립과 세계적인 철학자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신적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인도와 이스라엘에 체류하고 프랑스의 수행 암자와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파야르 출판사에서 총서 책임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피에르 신부, 움베르토 에코 등과 나눈 철학과 영성에 관한 다수의 대담집과 심층 연구서를 펴냈고, 생태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국경 없는 환경'이라는 단체를 창립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1994년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학문적 스승인 에드가 모랭의 뒤를 이어 철학, 사회학, 역사학을 한데 엮은 학제간 연구에서 종교 문제를 다뤘다. 공영방송 프랑스5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이비 종파, 그 거짓말과 이상>을 공동 연출하고 여러 편의 TV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집필했으며, 공동 집필한 희곡 <신의 선의>는 2009년에 초연한 뒤 5개국에서 각색되어 상연되고 있다.

     

    현재 그는 철학자이자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프랑스 최고의 종교 간행물 <종교의 세계> 편집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두 편의 역사소설 <천사의 약속>과 <루나의 신탁>은 20개국에서 1백만 부가 판매되는 등 '프레데릭 르누아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존재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저자는 사춘기 시절,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편에서 '나 자신을 아는 것',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탐구', '영혼 불멸' 등에 관해 논했다. 어릴적부터 기독교 교리를 공부하면서 판에 박힌, 온전치 못한 답변을 들어왔던 것에 비해 이는 그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17살에 그는 인도를 발견하고 붓다를 알게 되었다. 이야기체로 된 입문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롭상 람파의 <제3의 눈>, 월폴라 라훌라의 <고대 문헌으로 본 붓다의 가르침> 등으로 정진했다. 이때 또 그는 깨달음을 경험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계정혜戒定慧'를 통한 자비심을 강조한 것이었다.

     

    19살에 그는 처음으로 복음서를 펼쳤다. 우연히 요한복음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예수의 언어는 그의 지성과 감성 모두를 건드렸다. 이후 두 종류의 언어 사이에 놓인 간극을 가늠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책무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참신한 예수의 언어와, 죄의식을 부여하면서 우리를 옭아매는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언어 사이에 놓인 간극 말이다.

     

    이로부터 25년 이상 저자는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셔 왔다. 공간적, 시간적,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스승의 삶과 가르침은 중요한 몇몇 부분에서 일치했다. 이에 그는 삶의 등불이 되어 준 스승들의 행적과 가르침을 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이 책의 탄생 동기이다.

     

    돈과 재물은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임엔 틀림없으나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고, 소유에 대한 욕망은 그 특성상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욕구불만과 폭력의 씨앗이 들어 있다. 인간의 욕망은 잔인하다.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싶어 하며 급기야 남의 것을 강제로 뺏으려 든다.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점철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선 역사가의 관점에서 세 스승의 전기를 살펴본다. 신화적 전기가 아닌 실제적인 그들의 삶을 전한다. 후반부에선 다섯 가지의 주제를 다룬다. 즉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과 진리, 자유, 정의, 사랑에 대한 탐구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세 스승의 삶에서 특이하고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있다.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이 세 스승들 중 어느 누구도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 스승이 문맹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선 젊은이들이 문자를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주로 교역과 통치에 한정하여 사용되었다. 따라서 문자가 아니라 말로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선 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은 삶의 지혜였다. 삶의 지혜를 전하는 방식은 산교육의 방식이었다. 올곧은 행위 그리고 현장 속에 살아 있는 언어와 어조로 직접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지혜는 제자들이라는 아주 작은 무리에게 먼저 전달되었다.

     

    "붓다, 소크라테스, 예수, 공자는 인간의 척도를 제시한 사람들이다"

    - 카를 야스퍼스, 철학자 

     

     

    붓다, 소크라테스, 예수, 이들은 실존 인물일까? 역사적으로 그들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붓다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북부 인도에서 살았고,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2300년 전 아테네에서 살았으며,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들의 무덤이나 유골이 남아 있지 않다. 직접 쓴 글도 없으며, 삶에 대한 기록은 주로 제자들이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들은 이 세사람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에 동의한다.

     

    세 사람의 실존을 확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고고학 자료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주나 통치자만이 초상을 주화에 새기고 석판에 기록을 남기거나 거대한 무덤을 남기는 식으로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당대의 역사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권력자가 아니었으며,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 또 그들은 세상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세속에서의 지위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거의 없고 정치적 영향력도 보잘 것 없었기에 제자들은 스승들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위대함에 감화를 받았어도 그들을 위한 기념물 하나 세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스승과의 일화를 전할 유일한 방편은 구두로 전하다가 훗날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 기록은 점점 더 널리 전파되고 방대해지면서 마침내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라는 존재가 우리들에게 알려졌다. 비록 느리긴 했지만 확실한 방법인 입에서 입으로 전달한 덕택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이란 그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칙과 진리에 입각한 삶이었다. 그들은 선구자였다. 어떤 분야든 선구자라면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사람이기에 대부분 제거되기 마련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재판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는 처형당했다.

     

    기존 전통 세력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파바라는 마을의 보석상 '춘다'가 망고 나무 숲으로 붓다 일행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오늘날 그 조리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춘다는 '수카라맛다바' 라는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특별 요리를 준비하게 했다. 채식주의자인 붓다가 과연 육류를 섭취했을까? 돼지 사료로 주던 버섯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붓다는 그 요리를 먹으면서도 다른 사람은 이를 먹지 못하게 했다. 붓다는 요리를 다 먹지 않았고 범천도 먹을 수 없을 테니 남은 것을 땅에 묻으라고 했다. 밤중에 붓다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다시 길을 떠났고 룸비니 남쪽에 위치한 쿠시나가르 근방에 이르렀을 무렵 더는 길을 가지 못하고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몸을 누었다.

     

    고의로 붓다에게 독이 든 음식을 준 것일까? 그 무렵 승가僧家는 엄격한 고행을 강조하는 부류와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었다. 붓다는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팔리어 경전을 보면 독살설을 언급하면서 이내 그 가설을 부정한다. 다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건이라고만 한다. 왜냐하면 붓다는 그 보석 상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몇몇 비구들을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제공한 최후의 공양 덕분에 붓다가 반열반에 들어 "천상 세계에 지고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무 아래, 오른쪽으로 돌아누운 붓다는 마치 사자가 엎드린 형상이었다. 그런 자세로 붓다는 가까운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때 아난다는 덤불 뒤에 몸을 숨기고 울고 있었다. 울음을 곧잘 보이는 아난다에게 붓다는 처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난다여, 그대는 참 오랫동안 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도 사랑과 다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아낌없이 이 여래를 옆에서 도왔다" 불교 설화에 의하면, 동트기 전 붓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 천지가 흔들리고 포효했다고 한다.

     

    "내 마지막 말을 남기겠노라. 당부하노니 명심해서 들어라. 굴레에 갇힌 모든 것들은 소멸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다" - 붓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독특해서 그 해석도 여러모로 분분하다. "크리톤이여,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 닭 한 마리를 갚으라는 말은 역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역설이라 할 수 있을까?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이다. 당시 전통에 따르면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목숨을 잃는 판국에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이돈>에서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의 다른 모든 대화를 놓고 보았을 때, 이것 또한 소크라테스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역설일 것이라는 가정이 분명 설득력 있다.

     

    비록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니체는 이 마지막 말에 사로잡혔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삶의 고단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로 보았기에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죽음과 영혼 불멸에 관하여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그 제물이 육신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가정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신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고 한 셈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죽음이란 "영혼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단순히 옮겨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배심원들을 향해 소크라테스는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하면서도 기쁨에 겨운 듯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 죽는 것이, 그러니까 인생의 근심 걱정으로부터 벗어는 것이 제겐 더할 나위 없는 일인 듯합니다"

     

     

    붓다와 예수에겐 정의보다 더 중요한 한 쌍의 미덕이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일화는 정의보다 사랑이 먼저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 앞뜰에 도착한 예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때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율법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권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 앞에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데려와 세워 놓고선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죄를 범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예수가 그 여자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독실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썼다. 무엇을 썼는지는 전해진 바 없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무 글자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가 몸을 굽힌 것으로 보건대 예수는 상대와 적의의 시선을 주고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몸을 곧추세우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러고 나서 예수는 시선을 피해 다시 몸을 굽히고 땅에 무언가를 써 나갔다. 간음한 여인을 고발한 이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복음에선 "나이 많은 순으로" 떠났다고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그들을 조롱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곤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단둘이 남게 되자, 비로소 예수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고발자들을 경멸하듯 보면서 그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들이 스스로 양심을 돌아볼 수 있게 더는 나서지 않고 한발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이 이 불행한 여인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새벽부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불륜의 현장을 들킨 이 여인은 아마도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상태로 성전 앞 마당까지 끌려왔을 테니 말이다.

     

    "나도 너를 벌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 요한복음

     

    예수는 사랑과 자비가 정의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규칙, 법, 규제도 존재해야 하며 그 필요성을 예수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로선 정의를 구현할 때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그의 처지와 전후 사정이 어떠한지, 더 나아가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으며, 그 사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다 행복하라. 약하든 강하든, 잘났든 중간치든 못났든, 작든 크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태어난 것이든 태어날 것이든, 모두 다 남김없이 행복하라"

    - 숫타니파타

     

     

    세 스승이 가진 지혜의 눈으로 보면 참된 것과 바른 것은 같은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앎이 의미를 지닌다. 그런 연유로 붓다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입증한 바가 중요하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도 여전히 그들에게 믿음이 간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행적行跡으로 그 가르침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들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자, 이제 확 바뀔 준비가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름 휴가 동안 읽어보길 바라는 책이다. 나도 여름 휴가의 여유를 즐기며 이 책을 펼쳐...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름 휴가 동안 읽어보길 바라는 책이다. 나도 여름 휴가의 여유를 즐기며 이 책을 펼쳐 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알아볼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는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다른 점을 가지고 있어 개성있는 삶의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에서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세 사람의 전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세 스승이 전하는 가르침의 핵심을 다섯 개의 주제별로 즉,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과 진리, 자유, 정의, 사랑에 대한 탐구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존재다."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얼마나 얽매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이고 자유로워지고 싶게 만드는 문장으로 내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게 만든다. 책의 내용이 철학적이라 다소 마음이 침착해지고 고요해지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조금 더 내 자신을 알게 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되는 기회였다. 인생의 전환점이나 방황기에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 난이도 : ★★​☆ 1.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발췌 한 곳을 노트에 옮...
    난이도 : ★​☆

    1.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발췌 한 곳을 노트에 옮겨 적고, 또 한 번 블로그에 저장하면서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2. 아. 너무 심취했나보다. 지금 횡재라는 카테고리에 적어둔 이웃에게만 공개하는 포스트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다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이 블로그 주인장은 '도를 아십니까?' 혹은 '당신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라는 엉뚱한 소리를 건네면서 접근하는 사람(지난 주에 삼산 롯데백화점을 지나가는데 왠 아주머니가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던데... 물론 나는 쿨하게 '됐어요'를 외치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단언컨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여러차례 말해왔지만,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인간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세 스승이 권하는 죽음 이후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위해서 현재를 사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의미로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혹은 선한 업을 쌓아서 육도의 가장 으뜸인 천도로 가는 꿈을 꾸며 현재를 보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면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371. 참된 것과 바른 것은 같은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앎이 의미를 지닌다. 그런 연유로 붓다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라는 문장은 내가 원하는 삶 (참된 선을 추구하고, 그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삶)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 참됨을 나만의 기준으로 곱씹어본다. 정의와 사랑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의를 추구하는 부분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붓다 형님에게는 사랑 때문에 좋은 소리를 못들을 것 같기도 하다. 

    갈애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큰일이라고 혀를 차면서 걱정하며, 사랑 뿐만 아니라 태어난 이후부터 살아가는 모든 것은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예 잊어버리기를 권하거나. 아니면 들끓는 에로스의 사랑을 보살로서의 자비로 대신하는 것은 어떠냐 되묻겠지만, 나란 놈은 그런 갈애에 빠져 몸부림쳤던 러시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백만송이 장미가 아름다워 보이고. 훌륭했던 작가와 그들의 뮤즈에 얽힌 여러 낭만 혹은 고통 혹은 파멸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는 그런 놈이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3. 소크라테스 형님이 노예 상태의 인간의 증거로 제시한 무지에 관련해서는 '무지'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것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계몽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기로운 지혜' 라는 개념을 '무지'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이 허용된다면 나 역시 소크라테스와 같이 무지를 '참되지 않은 것' 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고 본다. 

    4. 진리.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 이것은 세 명의 성인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37. 예수는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재물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고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고 했다. 붓다는 우리 삶의 목적이 명상을 통해 자기를 바라봄으로써 '아상'이라는 자아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수 형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요. 그러므로 진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했으니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설파한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다이몬'을 통해 목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싯다르타 형님 같은 경우에는 '붓다'라는 절대적 진리를 깨우쳤고, 그것을 명상을 통해 찾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해도 결론적으로 그것을 따르고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점에서 개인이 가진 중요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5. 소크라테스 형님이 줄곧 말씀하신 '영혼의 산파' 와 탄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되묻고, 또한 그 방법이 아이러니한 형식을 나타낸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예전에 책을 읽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어서.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붓다 형님의 사상적 틀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현실 속 무상한 존재를 정의하는 오온의 개념. 그리고 오온을 지니고 있는 '아'의 존재. '아'의 존재가 업, 윤회, 해탈로 이어지는 과정들과 윤회의 굴레에서 나뉘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 그리고 열반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팔정도(계정혜)로 고통을 소멸시키고, 사념처경이라는 명상을 통해 몸, 감각, 마음, 그리고 마음의 대상을 수행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을 열반이라는 절대적인 진리에 이르게 한다는 것 까지는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그 모든 성찰과 고뇌를 씻어내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고독한 인간을 치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모든 행위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6. 예수에 관한 부분은 이 두 성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미흡하게 읽었는데. 조만간 <젤롯>이라는 책을 통해 다시 공부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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