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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인에 빠지다
344쪽 | 규격外
ISBN-10 : 896090189X
ISBN-13 : 9788960901896
옛 여인에 빠지다 중고
저자 조혜란 | 출판사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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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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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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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 속 여인들, 다시 태어나다! 『옛 여인에 빠지다』는 《옛 소설에 빠지다》를 통해 고전소설 깊고 재미있게 읽기에 앞장선 조혜란의 책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의 춘향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삼한습유》의 마모까지,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열다섯 명을 되살려낸다. 이를 통해 옛 소설은 물론 옛 여인의 다채로운 빛깔을 전한다.

‘인간 세상’, ‘욕망’,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버림받은 자’ 등 총 다섯 장의 주제로 나누어 각각 세 인물씩 소개한다. 여기에 소설의 줄거리와 당대의 시대문화사적 개괄과 의미, 해당 캐릭터와 비교해서 읽거나 보면 좋을 거리까지 덧붙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방식의 독서를 선사한다.

가령, 남자 인간인 양소유를 사랑하여 동질화되고 싶어 했던 《구운몽》의 백능파와 안데르센과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비교하는가 하면, 《사씨남정기》의 현숙한 사씨에게서 외려 모범생 마인드의 속내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생동하는 사회를 느끼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삶을 통해 현재 우리 삶을 비춰볼 수도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조혜란
저자 조혜란은 고전소설을 전공하고, 19세기 한문 장편소설인 『삼한습유』로 박사논문을 썼다. 고전문학에서 여성 작가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다가 고전문학을 여성의 관점에서 읽을 필요를 경험하였고, 그 이후 ‘여성’이 관심 영역의 하나가 되었다. 단아한 여인부터 헌걸찬 기상의 여인까지,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옛 소설 속 여성들을 한 명씩 호명하는 작업은 언제나 흥미롭다. 또 아주 가끔 공상에 빠지는데, 과거의 이야기들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 파도처럼 넘쳐나고 또 지금의 이야기들과 넘나들기도 하면서 이 거리 저 거리로 흘러 다니며 물결치는 환상을 그리곤 한다. 평소에는 주로 읽고 쓰는 작업을 하거나 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TV 보는 것을 좋아하고, 동물의 세계를 동경한다. 번역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 《월요일 독서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옥루몽의 서사 미학과 그 소설사적 의의」「조선의 여협 검녀」 외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삼한습유』『고전서사와 젠더』『옛 소설에 빠지다』『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공저) 『한국 고전 여성 작가 연구』(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삼한습유 역주』『19세기 서울의 사랑-절화기담·포의교집』(공역) 외 다수가 있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인간 세상을 동경하지 마

조선판 인어공주 『구운몽』의 백능파
처녀귀신 처녀귀신, 이름도 없는 「만복사저포기」의 그녀
조선시대에도 아줌마는 있었다 『삼한습유』의 마모

욕망, 도사리거나 배설되거나
남편보다 벼슬 『홍계월전』의 홍계월
세상에 이런 일이 『옥루몽』의 강남홍
음악은 힘이 세다 『옥루몽』의 벽성선

가부장제에서 살아남는 한두 가지 방법
조선시대 가족의 경계, 첩 『사씨남정기』의 교채란
기득권층의 선한 얼굴 『사씨남정기』의 사정옥
죽어야 사는 여자 『숙영낭자전』의 숙영

섹슈얼리티는 나의 무기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변강쇠가』의 옹녀
기녀妓女와 서녀庶女 사이 『춘향전』의 춘향
책으로 사랑을 배웠어요 『포의교집』의 초옥

버림받은 자들의 귀환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삼한습유』의 향랑
차마 버려진 아이 『숙향전』의 숙향
입 없어도, 발 없어도 『금방울전』의 금방울

책 속으로

이 책은 고전소설에서 정채精彩 있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열다섯 명에 대한 글이다. 그녀들의 이름은 춘향, 숙향, 향랑 같은 것들인데, 이발소 사인의 세 색깔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쉼표 없이 ‘춘향숙향향랑’처럼 붙여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이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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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전소설에서 정채精彩 있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열다섯 명에 대한 글이다. 그녀들의 이름은 춘향, 숙향, 향랑 같은 것들인데, 이발소 사인의 세 색깔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쉼표 없이 ‘춘향숙향향랑’처럼 붙여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이름들은 ‘순이영이영자’와 같은 이름들로 대체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지금 눈으로 보면 조선시대 소설의 주인공들이지만 그녀들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던 여성들 가운데 하나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시대의 그녀들은 21세기 오늘날을 살아가는 누구누구와 같은 여성들과 겹쳐져 몇백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다시 살고 있는 듯하다. 그 언저리 어디쯤엔가 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년 봄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금 이 원고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오래된 여성들이 지금 보아도 여전히 생동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머리에’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인간이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마련이고,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무엇인지 끈질기게 들여다볼 수 있는 내공을 지닌 이는 오히려 소수에 가깝다. 설사 자신의 욕망을 안다 해도 불안정한 미래를 마주했을 때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슬쩍 기존의 가치나 질서에 기대면서 타협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선택이리라. 그런데 백능파는 이와는 다른 선택을 하였다. 동정 용왕의 막내딸 백능파. 용왕의 막내딸이라니, 얼핏 철없는 공주 캐릭터가 연상될 수도 있지만 백능파는 그와는 정반대의 여성 인물인 것이다.
-23~24쪽에서

그런데 김시습의 애정전기는 지금의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도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의 애정전기의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포착하고, 그 관계 안에서 남자도, 여자도, 귀신도, 인간도 변화해간다. 15세기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울림이 있는 이유는 그 작품의 지향이, 가치가 오늘날에도 공감 가능한 ‘그 무엇’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공감을 형성해내는 김시습의 애정전기들. 이 작품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고전古典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52쪽에서

이와 비교해보면 마모는 그저 함께 전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하는 동지로 그려진다. 마모도 전쟁을 수행하지만 그녀는 중년의 여성이다. 아들도 아홉 명이나 된다. 더 이상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그녀는, 여리거나 여성스러운 태도로 승부를 걸 수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은 그녀가 실제로 상황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상황을 헤쳐나가는 마모의 현실 대응력. 그것은 그녀의 자신감과 생명력에서 비롯한다. 자기 땅을 딛고 선 굳건한 허리와 두 발의 실루엣. 다른 이들이 늙고 추하다고 비웃어도 마모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긍정한다. 이것이 바로 아줌마인 마모의 힘이다. 빛나는 젊음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지만, 그러나 삶의 경험이 뒷받침하는, 내용 있는 당당함은 거센 삶 앞에서 넉넉하다. 마치 대지의 그것처럼.
-74쪽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에도 주인공 올란도가 오랜 잠 끝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이 전환된 후, 의복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즉 의복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단순히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 이상의 중대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의복은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도 변화시킨다. 『올란도』의 서술자는 ‘우리는 의복이 팔이나 가슴의 형상을 갖도록 만들지만, 의복은 우리의 정신과 두뇌와 혀를 그들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복장을 하느냐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복장을 했느냐에 따라 행동 양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계월은 남복을 함으로써 남자처럼 보이고, 남자로서 세상에 편입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남자의 옷을 입었기에 계월이 아닌 평국으로서 여성들에게 폐쇄적이었던 조선이라는 공적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가 있었다. 여자의 옷을 입었더라면 애당초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없으므로, 계월의 사회적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평국이 실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천자는 계월에게서 직첩과 봉록을 환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조정에 서거나 전쟁에 출정할 때에는 역시 남복을 하고 나서야 했다. 여성의 영웅적 행위는 남성으로 가장한 동안에만 가능했으며,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 역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가짜 남성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80~8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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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새롭게 읽기 몇백 년을 건너온 지극히 현재적인 옛 여인들 이야기 『옛 소설에 빠지다』를 통해 고전소설 깊고 재미있게 읽기에 앞장서며 학계는 물론 독자의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조혜란 교수가 이번에는 고전소설 속 여인들...

[출판사서평 더 보기]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새롭게 읽기
몇백 년을 건너온 지극히 현재적인 옛 여인들 이야기


『옛 소설에 빠지다』를 통해 고전소설 깊고 재미있게 읽기에 앞장서며 학계는 물론 독자의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조혜란 교수가 이번에는 고전소설 속 여인들을 불러냈다. 역사에 묻힌 조선 여성들의 삶과 욕망을 생생히 복원한 저자의 저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당대와 오늘의 시선으로 읽는 여자 이야기다. 저자는 “고전소설에는 남자들이 훨씬 많이 등장할 터인데 내게 쏙 들어오는 인물들은 여성”이 많았다며, 그 이유는 이 오래된 여성들이 지금 보아도 여전히 생동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옛 여인에 빠지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부터 향랑까지,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15명을 통해, 독자에게 옛 소설은 물론 옛 여인의 다양한 빛깔을 전한다. 『춘향전』의 춘향, 『변강쇠가』의 옹녀같이 익숙한 혹은 쉽게 소비되어왔던 이미지의 인물들은 저자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고,『삼한습유』의 마모같이 주목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은 새롭게 소개되었다. 담백하고도 여유롭게 옛글과 옛 여인들의 삶을 읽어주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생동하는 사회상과 인간상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 삶을 정확히 비춰볼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그 여인들은 여전히 “치열하고 열렬하며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다섯 장으로 주제를 나누어 세 인물씩 소개했으며, 각 이야기들은 “공간과 공간을 건너, 시대와 시대를 건너” 오늘날의 시선과 맞닿는다. 소설의 줄거리, 당대의 시대문화사적 개괄과 의미, 이 여성 캐릭터와 함께 비교해서 읽거나 보면 좋을 거리까지 소개해 입체적 방식의 독서를 선사한다.

옛 여인을 읽는 다섯 가지 시선
인간 세상, 욕망,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버림받은 자에 관한 통찰


첫 장 「인간 세상을 동경하지 마」에서는 『구운몽』의 백능파, 「만복사저포기」의 그녀, 『삼한습유』의 마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능파와 그녀 그리고 마모는 모두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보다 못할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이종異種인 이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태도와 사연이 흥미롭다. 조선판 인어공주라 할 백능파는 남자 인간 양소유를 사랑하여 동질화되고 싶어했고 공짜는 없으니 기꺼이 감내했을 뿐, 대가가 있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가운데 「만복사저포기」의 그녀는 귀신으로 등장해서 인간과 잠시 어우러진다. 『삼한습유』의 마모는 생소한 캐릭터임에도 가장 당당하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인형으로서 남성을 압도하는 헌걸찬 기상의 그녀를 통해 또 다른 여성형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리고 그 동경은 무엇을 대가로 한 것인지, 독자의 사고를 유도한다.
「욕망, 도사리거나 배설되거나」에서는 『홍계월전』의 홍계월과 『옥루몽』의 강남홍과 벽성선을 통해 욕망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홍계월의 욕망은 여성이지만 사회에 나아가 공적인 성취를 거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음양 체계, 젠더 체계에 반하는 홍계월의 욕망은 작품을 통해 완전히 승인된다. 강남홍과 벽성선은 기생으로, 나란히 양창곡의 첩이 된 여성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방식의 개연성이다. 문제의식의 진지함 여부에 따라 어떤 꿈꾸기는 한 번의 배설욕구처럼 다 해소되어버릴 수도 있고 또 어떤 꿈꾸기는 여전히 문제적 잔여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욕망의 여러 갈래와 그 해소 방안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세 번째 장은 『사씨남정기』의 두 여인, 첩 제도에 기대어 풍족히 살아보고자 자신의 욕망만을 좇은 교채란과 내면화한 유교적 가치대로 떳떳하게 자신을 승인해줄 권위에 기댄 사정옥과 함께, 목숨을 담보로 명예를 회복하려 한 『숙영낭자전』의 숙영이 취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생존 전략을 생각해본다. 세 여성의 선택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한 물음을 남긴다.
네 번째 장에서는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전면화한 여성들을 불러낸다. 성을 상품화한 속내를 보여주는 『변강쇠가』의 옹녀, 양반들의 열烈 논리, 정절 이데올로기를 전유한 『춘향전』의 춘향, 그리고 이른바 불륜을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해간 『포의교집』의 초옥이 그녀들이다. 하층 여성이었던 그녀들은 모두 ‘몸’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여성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치열하고 열렬하며 현재적이다.
마지막 장은 버려진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삼한습유』의 향랑, 『숙향전』의 숙향, 『금방울전』의 금방울은 가난해서, 급박해서, 불구불비不具不備해서 버려진다. 그러나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본래 자리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들은 넘치는 자격들을 갖추고야 돌아올 수 있었는데, 마침내 귀환한 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오늘과 소통하는 고전, 새롭고 진진한 현재로서의 텍스트 읽기


각 장마다 세 명의 여성 인물을 놓고 공간과 공간을 건너, 시대와 시대를 건너 말을 걸었다. 글의 시작은 조선시대 소설 속 ‘그녀’에 대한 내용으로 펼치다가, 나올 무렵쯤에는 당대 현실 속 ‘그녀들’이나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살필 수 있는 ‘그녀들’의 문제로 연결되는 식이다. 생각의 흐름은 그녀들 주변을 감돌아 이런저런 문학작품들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TV 드라마나 영화로도 넘나든다. 사람 사는 속내는 그렇게 몇백 년 시간을 납작하게 만든다. 켜켜이 들춰보게 한다.
_「책머리에」에서

저자가 읽어주는 옛 여인들은 풍성하고 새롭다. 흔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덕을 미덕으로 학습받으며 살아온 여인들의 이미지란 수동적이기 그지없을 테지만, 그 가운데 남편보다 벼슬을 택한 여인인 홍계월이나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선인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향랑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노라면 지금 이곳의 현실적인 여인상이 선연히 떠오르고, 이로써 박제된 여성 이미지는 어김없이 전화된다. 여기에는 고전소설 속 여성들을 우리 시대의 텍스트와 겹쳐 보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 읽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크다. 이를 테면 『구운몽』의 용녀 백능파를 안데르센과 월트 디즈니 판본의 만화영화 《인어공주》와 연관해 읽고 또 오늘날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재벌과 가난한 아가씨의 계급적 사랑 서사와 고찰하는 식이다.

우선 백능파는 인어공주처럼 무력하지 않다. 그녀는 꿈속에서나마 양소유를 초대할 수도 있으며, 곤경에 처한 그를 도울 수도 있다. 또한 그녀는 양소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양소유가 오자 못의 물도 맑아지고 자신을 방어해주던 장치도 해제된다. 앞으로는 혼자가 아니라 양소유와 함께 자신을 지켜나가리라는 확신으로 나타난 변화였다.
둘째, 인어공주와 백능파 이야기는 외모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인어공주는 왕자와 만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인 꼬리를 부정해야 했다. 그녀는 인간의 표지인 아름다운 다리를 얻는다. 백능파도 자신이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했음을 부끄러이 여긴다. 그러나 양소유는 이 점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과 귀신 사이도 넘나들 수 있는 신명한 존재라면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양소유는 생긴 그대로의 백능파를 받아들인다. 이에 비해 『인어공주』에 등장하는 왕자는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어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되기 전까지는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한다. 백능파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채로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
셋째, 남녀의 관계 양상 역시 다르게 그려진다. 인어공주와 왕자에 비해 백능파와 양소유는 비교적 동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통과제의가 백능파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백능파는 자신이 원하는 배필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궁궐을 떠나 어둠 속에서 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양소유는 백능파와 인연을 맺은 후, 남해 용왕 아들의 군대와 접전을 벌어야 했다. 그 싸움에 승리해 양소유는 백능파를 얻는다. 『인어공주』의 왕자는 별다른 노력 없이 그녀를 얻은 데 비해 양소유에게는 고난이 있었고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_「조선판 인어공주」에서

이렇듯 현재적 관점에서 텍스트를 읽는 저자의 시각은 흥미롭다. 춘향에게서 십 대 소녀가 사랑에 눈뜨는 순간의 설렘을, 마모에게서 ‘아줌마’의 힘을, 강남홍에게서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예를, 홍계월에게서 공적 사회의 여성 진출을, 옹녀에게서 강한 생활력을, 『사씨남정기』의 현숙하다는 사씨에게서 오히려 모범생 마인드의 속내를 읽어낸다. “감히 그녀를 내 안에 들여놓겠다는 말은 못해도 그녀의 저간 속으로 들어가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로 다시 읽는 옛 여인들이 진진한 이유다.

책속으로 추가

미모면 미모, 전쟁이면 전쟁, 사랑이면 사랑, 경전經典이면 경전, 요리면 요리, 음악이면 음악, 게다가 진취적인 기상에,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톡톡 튀는 개성에 이벤트까지도 멋들어지게 계획할 줄 알았던 여자, 그런 여자가 바로 강남홍이다. 원도 한도 없이 자신의 능력을 모든 방면에서 발휘했던 여인, 아마도 고전소설의 여성 주인공 가운데 가장 마음껏 살았던 이가 그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글쎄,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아름답고, 완벽한 여인으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어쩌랴? 『옥루몽』을 읽다 보면, 강남홍이라는 여성 인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97쪽에서

사실 『옥루몽』에 이런 기대를 갖는 것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발랄한 도전이 있기 때문이다. 『옥루몽』에는 과거 공부하고 정치하고 전쟁하는 주인공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양창곡은 진왕과도 방대한 규모의 놀이들을 한껏 즐기고, 강남홍과 벽성선을 내세워 가무와 요리를 즐기고, 경치 좋은 산에 갈 때에도 연희적 요소를 곁들인다. 『옥루몽』의 노는 이야기는 대를 이어 계속되어 아들 대에서는 기방 출입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니 조선시대 소설 중에서 이렇게 노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대개 조선시대 소설에서 노는 인물들, 유흥적 인물들은 부정적인 결말을 맞곤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노는 일들도 징치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소설이 유교적 이데올로기나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점인 것이다. 게다가 벽성선과 강남홍 이 두 명의 기생첩이 윤부인과 황부인 이 두 명의 정실보다도 서사적 비중이 대단하다. 보기 드문 선택이다. 뿐만 아니라 개과천선을 하는 인물이 기생첩인 벽성선이 아니라 정실인 황부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 남영로의 새로운 꿈 꾸기가 엿보이는데, 그 대안적 모색은 아마 이 정도가 마지노선인 듯하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현대 독자가 조선시대 작가의 의도보다 앞서 나가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탓일까?
-114~115쪽에서

첩을 두는 제도는 그런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여자에게는 억압적인 것인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투기, 칠거지악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이 제도로 말미암은 모순조차 여자에게 짐 지웠다. 투기하지 않는 인간이 바람직하다고 당시의 여성들을 계속 교육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세뇌시켰다. 그리하여 가문의 안녕을 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정을 준다면 질투가 나는 것은 당연한 감정적 반응이 아닐까? 연인으로 인한 질투의 감정은 남녀 모두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를 유교적으로 이념화하여 여성에게만 적용한 것이 이른바 ‘투기’라는 개념이다. 이념은 그것이 이념임을 간파당하는 순간 힘을 잃는다. 그러나 사씨는 투기 운운하는 가르침이 이념적 세뇌라는 것을 간파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채 그저 도덕 교과서처럼 여기면서 순응적으로 내면화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현실의 모순을 깨닫고 더불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전망을 얻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다. 사정옥 역시 독서하였다. 그러나 사정옥의 책읽기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제시하지 못한 채, 중세의 논리를 자기의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사씨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당연한 감정조차도 스스로 자연스레 부정하면서, 존경받는 현숙한 중세의 여인이 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사정옥을 그 ‘빛나는’ 자리에 세워주었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사씨가 태사를 본받고자 했던 것처럼 조선의 양반가 부녀자들은 사정옥을 본받아야 했던 것이다.
-168~169쪽에서

남편과 가정을 꾸려 살아보고 싶었던 옹녀는 왜 그렇게 성애의 화신으로, 주체 못하는 교태를 흘리고 다니는 여성으로 비난받아야 했을까? 조선시대나 오늘날 콘텐츠에서나 성적인 힘을 지닌 여성의 이미지로 당돌하게 서 있는 옹녀. 옹녀는 조선 사회의 대표적 타자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감히 그녀를 내 안에 들여놓겠다는 말은 못해도 그녀의 저간 속으로 들어가보는 노력은 필요하다. 돌로 쳐서 해결될 문제는 없다.
-214쪽에서

춘향은 열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춘향은 흔히 생각하는 봉건적인 정절 이데올로기의 열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열녀이다. 그녀의 열은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며,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생의 딸인 춘향의 열, 춘향의 정절은 오히려 봉건의 인간 차별적인 시각을 교정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자기감정에 충실했던 여인, 그리고 한번 자신이 선택하면 온 마음을 다해 그 선택을 지켜나가고자 했던 춘향은 그래서 조선시대 어느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랑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은 그저 외로운 남녀의 사랑놀음이 아니라 조선조 사회의 거대한 제도에 저항하는 의미까지 획득하는 그런 사랑이었다.
이렇기에 『춘향전』의 주제를 놓고 사랑이니 열절이니 봉건 모순에의 저항이니 하는 여러 견해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있어서 춘향은 열녀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엄청난 시련을 피해 가거나 타협하지 않고 용기 있게 온몸으로 감당해낸 춘향은 진정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었다.
-235쪽에서

초옥은 이상적인 남녀관계를 책을 통해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책이란 모두 중세 한문 교양에 해당한다. 이미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던 조짐이 농후했던 1860년 무렵, 하층 여성 초옥이 꿈꾸었던 사랑의 성격은 중세 회귀적 성격이 강하였던 것이다. 이 점이 무척 아쉽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지적 능력이 뛰어났던 초옥이 앞으로 열릴 세계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더라면 그녀의 앞날은 오히려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녀가 하층 여성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책으로 사랑을 배웠던 초옥, 신분과 시대와의 부조화로 인해 초옥의 사랑은 허공을 가른다.
-258~259쪽에서

소설 속에서 향랑은 자신이 혼인하기 전 마음에 두었던 남자에게 다시 시집가고자 천상계의 인물들을 두루 설득하러 다닌다. 그리고 여론이 ‘불가하다’는 쪽으로 기울자 향랑은 ‘부처와 구이도 몇 번의 윤회를 거쳐 부부 인연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논리가 부당함을 역설한다. 향랑이 설득했던 인물들은 공자를 비롯한 당대의 큰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녀는 상당한 권위를 가졌던 사상가들의 판단에도 그냥 순종하지 않는다. 이런 향랑에게서 ‘권위에의 호소’ 따위의 오류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향랑은 소신에 찬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대의 정절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29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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